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7
Chapter.2 위기는 기회는 위기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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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 속보!”
척! 척! 척! 척!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착실하게 명령을 따르는 정규군의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이런 대군 지휘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마 이 전투가 끝나면 지휘 관련 특성이나 통솔 같은 스텟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음, 역시 정규군이야. 용병들 대열 맞추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군!’
바로 옆 중앙군을 지원하러 가는 거였지만 대열의 끝에서부터 크게 돌아서 기사들이 반전해서 돌파할 공간을 만들어 줘야 했기 때문에, 병력이 전선에 도착하기까지 약간 시간이 남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대화창을 꺼놨네.’
마침 시간도 비었겠다. 잠깐 확인하는 정도는-
피잉-
– 노루Drug해요 : 눈나! 눈나아아아아!!!!!!
– 간장게이바 : 샬롯이다! 진짜 샬롯 누님이야! 스샤아아앗! 스샷 전부 풀로 돌려어어!!!“
– 하이웨이나초맨 : 끄아아악!
– 남바쓰리 : 나, 나 더 열심히 일해야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GG가 돌아가는 접속기로 구매하는건데! 돔에서 개발한 싸구려 접속기는 커뮤니티랑 거래소 밖에 못들어간다고!
– 하이웨이나초맨 : 아니 미친, 직접 보려고 플레이어 감각 공유 켰는데 대가리 터지는 줄 알았다! 교수 저 인간은 저 상태로 어떻게 플레이 하는거임?
– 노루Drug해요 : 어허, 잡담하지 마라. 누님에게 집중해.
– 홀리 : 와, 예쁘다….
– Jokass : 교수야아아아!!!! 방송 좀 관리해라아아!!!!
– 간장게이바 : 아냐! 게임에 집중해!
– 노루Drug해요 : 다가온다! 바로 앞에 섰어!
– 무카바 : 앵글 죽이네. 아니, 플레이트 메일 같은 거 입고 저렇게 이뻐 보이는게 말이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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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kass : 와.
– takealook : 미친 뭔데. 천인대장? 그거 졸라 높은 거 아님?
– 스피드 웨건 : ‘임시’. 사실 왕실 기사가 가진 권한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라서. 기껏해야 면책 특권, 살인 면허, 자율 강압 조사 및 사형집행권 정도? 군 관련 지휘권은 있어도 임명 권한은 없으니 이번 전투 끝나면 회수될 직위임.
– 간장게이바 : 개쩌네. 왕실 기사.
– 남바쓰리 : 누님 되게 높으신 분이셨네.
– 노루Drug해요 : 아무튼 이렇게 얼굴 보는 게 어디냐. 원래 킹스 랜드 죽순이라 수도는커녕 왕성 밖으로도 잘 안 나오잖아.
– 무카바 : 그러게. 왕이 하도 끼고돌아서 숨겨진 애첩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었지.
– Jokass : 불가능.
– takealook : 절대 불가능. 공략 불가 캐릭임.
– 스피드 웨건 : ㅇㅇ. 매력 94 찍고 가면 한번 벗을 때마다 연대 단위의 여자들을 혼절시키는 살아움직이는 페로몬 덩어리 같은 캐릭터로 90일 동안 죽자고 꼬셨는데 호감도 더 떨어진 사건은 유명하지. 괜히 철벽이라고 불리는게 아님.
– 노루Drug해요 : 절벽 위에 핀 꽃! 만인의 연인! 오히려 좋아!
– 간장게이바 : 끼에에에에엑!!! 조, 존나아파! 머리만 아픈게 아니라 몸도 드럽게 아파아아!!
– 하이웨이나초맨 : 감각 공유 켜지 말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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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대화창 off”
피잉-!
보지 말걸 그랬다. 괜히 더 어지러워졌잖아.
잠시 딴짓하는 사이에, 어느새 병력이 전선에 충분히 접근해 있었다.
“이쯤이면 거리가 충분하겠군. 전구우운!!! 반전!!”
척! 척!
좌익의 병력은 중앙군과 전투 중인 뮤트의 뒤쪽으로 20보 정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중앙군이 받아내고, 기사단이 반쯤 박살낸 뮤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이다.
“완보 전진! 적이 사거리에 들어오면 자율적으로 공격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중앙군은 적을 붙잡고 버티는 역할. 포위진을 완성한 우리는….
“….전투 개시!”
적들을 신나게 때려 부수는 역할이지!
손에 닿을 정도로 다가가도 눈앞에 있는 적에게만 집중하던 뮤트들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전투의 열기에 취하지 마라! 사소한 상처라도 입은 자는 즉시 대열에서 이탈! 피를 뒤집어쓰지 마라! 놈들에게 감염된다!”
그렇게 앞,뒤 양쪽에서의 공격에 혼란에 빠진 뮤트를 쓸어 담다가,
“좌익! 공격 중지! 구령에 맞춰 10보 후퇴!”
“10보 후퇴!”
“발을 맞춰라! 공간을 만들어!”
어느새 오른쪽 끝까지 적들을 긁어내고 반전하여 다시 가속 중인 기사단을 위해 공간을 만들었다.
콰가가가가각!
“크아아아악!”
“키아악!”
“워어어어!”
“기사단이 지나갔다! 다시 10보 전진!!!”
그렇게 기사단이 지나가고 반파된 뮤트 무리를 향해 다시 돌격.
“흐흐흐. 어이, 애늙은이. 정말 네 말이 맞았는데? 이건 전투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야. 이건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군!”
“막내야! 돌아가면 술 한잔 사마!”
“암! 사야지! 이 녀석 덕분에 상여금이 몇 배는 더 늘어났는데! 한잔이 뭐냐! 한 통은 사야지!”
용병들은 벌써 전투가 끝난 다음 받을 돈을 어떻게 쓸지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었다. 그만큼 위기감이 없는 반복 작업에 가까운 전투였다.
‘쉽다.’
교수는 그 사실이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다른건 몰라도 이 게임에서 쉽다는 생각이 든다면,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는 중이니까.
‘샤를롯 데 아가트라는 비대칭 전력이 있다고 해도, 너무 쉬워. 이 녀석들은 내 기준에서야 강력한 몬스터지, 정규군 입장에서는 감염만 조심하면 1대1도 가능할 정도로 전투력이 부족한 개체들이다.’
물론 상황을 잘 활용하고, 최선의 전략을 세웠으며, 운도 따라줬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적이었다면, 몰루딕 캐슬과 펠라스가 함락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끈, 지끈지끈!
정신쇠약이 울리는 경종은 쓰러지는 적들이 많아질수록 더 빠르게 울리고 있었다.
‘뭔가 내가 놓쳤다. 뭐지? 무엇을 그렇게 경계하는 거지? 뭘 보여주고 싶은거야? 반쪽짜리 방패? 의미 없어. 쓰러진 뮤트? 이것도 의미 없고. 중앙군? 저들은 아군이야. 기사단? 아니 왜, 왜 이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지?’
지금까지 내 경험에 의하면 특성 [정신쇠약]은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두통을 주며 캐스팅을 방해하는 효과를 주는 대신, 주변의 거의 모든 위협이 될만한 가능성을 가진 것들의 정보를 머리에 주입한다. 한 번이면 몰라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정신쇠약의 범위에 들어왔다는 것은 분명 뭔가 있긴 있다는 의미.
‘내가 모르고 지나친 것. 인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슬쩍 넘겨버린 의문들.’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평면적으로만 보였던 사실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왕의 제 1기사라는 전술 병기나 다름없는 샬롯이 왜 이곳 투란에 왔을까.
두 동강 난 카이트 쉴드. 기사용으로 제작되어 안과 테두리에 철판을 덧댄 대형방패. 깔끔하게 반으로 잘린.
이제 뮤트가 거의 다 정리되어 슬슬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중앙군의 병사들. 전투가 끝나가는데,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는데, 왜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거야?
그리고, 이정도 병력에 그렇게 빠르게 무너질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시작되고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우익의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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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악-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을 끊은 것은, 예리한 칼로 종이를 베는 듯 조용한 파육음이었다.
“어….어?”
병사의 머리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피와 흙먼지로 더러워진 장화와, 놈들의 발톱에 긁혀 반쯤 이가 나간 체인메일과, 신나게 뮤트를 향해 휘두르던 철퇴, 그리고…..
“어….어어어어어!!!”
깔끔한 절단면만 남은, 머리를 잃어버린 목.
후두두두둑!
고통도, 비명도 없었다. 비스듬하게 절단된 머리와 몸통들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한 순간에 전장의 한 부분을 깨끗하게 비워버린 그것은, 나른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핏빛이 만연한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색을 모조리 빼앗긴 듯한 부자연스러운 하얀색 몸을 가진 괴물이, 중앙의 지휘관과 기사들로만든 작은 시체 산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늦었구나.”
“…!!!!!”
오싹!
교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모든 기관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피하라고, 숨으라고, 그게 안 되면, ‘저것’에게 붙잡히기 전에 죽어버리라고.
달칵-
갈아낸 뼈를 닮은 새하얀 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얇은 팔다리, 비슷하게 마른 체형의 몸에 3m 정도 되어 보이는 긴 체구. 일견 연약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교수의 본능이 속삭였다. 놈이 움직이는 순간 죽은 줄도 모를 것이라고. 제 몸을 닮은 새하얀 창이 움직이는 것을 볼 기회조차 없으리라고.
“참으로…. 늦었어. 나는 아주 바쁘단다. 어머님은 지금도 굶주려 있으시고, 이번 사냥은…. 너무나도 지체되었지.”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랐다. 정신쇠약이 만들어낸 환상이나, 겁에 질린 내 망상이길 빌었다. 하지만 도사견의 그것을 닮은 하얗고 길쭉한 입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말’ 이었다.
‘이족 보행. 다른 개체와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인 외모에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지능.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전투력. 무엇보다 개를 닮은 얼굴에 날렵해 보이는 하얀색 일색의 전신.
놈이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한 정보와 약간 다르게 생겼지만, 나머지 정보가 모두 일치해.’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급~1급 사이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네임드 뮤트.
여왕의 명령 없이 자율 사고가 가능한 엘리트 개체.
백색 죽음. 여왕의 개. [에데오르나]
교수가 흘려넘긴 사소한 실마리들의 종착역이, 조용히 그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어머님은, 존경받을만한 분이란다.”
사락, 사락.
발소리조차 없었다. 땅을 가득 메운 시체를 밟는 순간에도, 피에 젖어 질척한 땅을 딛는 순간에도, 놈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가벼울 뿐이었다.
“흑마법사들의 농간에 어머님의 의식은 대부분 잠들어계시지만, 그 남아있는 편린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계시지.”
사락, 사락.
“많은 양의 고기를 말씀하셨지. 흑마법사들이 어머님의 능력을 훔쳐 가기 위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수복하기 위해.”
사락.
“강한 생물의 육신을 말씀하셨지. 나약한 나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강한 육신을 내려주고자.”
사락.
“그리고, 지능이 높은 생물의 피를 말씀하셨지. 혼몽(昏蒙) 속을 헤매는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나와 같은 지성을 심어주고자 하여.”
탁.
에데오르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허리를 숙인 괴물은 굳어버린 교수의 턱을 손톱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새어 나오는 피를 한 방울 찍어 입가로 가져갔다. 도사견을 닮은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내 너를 지켜보았단다. 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곳에 오기까지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연약한 몸으로 그 폭력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고, 천한 무리를 이끌어 나의 앞에서 형제자매들을 학살한 그 지혜를.”
천천히 볼을 쓰다듬어 내려오던 손톱이, 마침내 목에 닿았다.
“네 피는, 성찬(盛饌)이로구나.”
‘움직여! 제발 움직이라고 이 빌어먹을 몸뚱아리야!’
하지만 교수의 몸은 꿈쩍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전투력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네 피와 살, 한 톨의 낭비도 없이 귀하게 써줄 터이니.”
‘젠장!!!’
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얀 발톱이 굳어버린 교수의 목덜미로 버터처럼 부드럽게 가르고 들어오며-
카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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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더러운 발톱을 치워라. 괴물”
“….이런. 급하기도 하지.”
교수의 목이 떨어지기 직전, 벼락처럼 내달려온 샬롯의 검에 가로막혔다.
***
쩌엉-!
콰가가가각!
“쿨럭! 케엑!”
살았다. 아니, 살았나? 샬롯과 에데오르나가 충돌할 때의 충격파에 튕겨져 나오기는 했는데,
“쿨럭, 커억, 그륵, 그르륽!”
몸을 날려보낼 만큼의 거대한 충격에 내장이 작살났는지 식도로 피가 역류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젠장, 날붙이, 아무거나 날카로운 거….!’
시야도 흐릿한 게 각막에도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다행히 이곳은 전장이었고, 필사적으로 주변을 더듬어 부러진 칼날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푸우욱!
“그르르륵!”
쉬익- 쉬익-
날붙이를 겁내기엔 질식의 고통이 너무 강했다. 곧바로 칼날을 목젖 아래쪽 기도 부분으로 찔러넣었고, 바람세는 소리와 함께 약간이나마 호흡이 확보되었다.
쉬익- 쉬익-
‘전투, 전투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지?’
난폭한 격돌음이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렸지만, 눈이 상한 덕분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하다못해 포션 하나라도 있었으면….!’
순간, 교수의 손이 피와 오물로 질척해진 땅바닥을 훑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 여기저기서 뒤집어쓴 뮤트의 피가 벌써 옛 저녁에 교수의 몸속에 감염인자를 풀었을 것이다.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뮤트의 피는 다소 까다로운 연금술 과정을 거쳐 감염인자를 제거해 고급 포션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차피 감염이 퍼지는 중인 몸, 눈에 살짝 추가한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감염이 빨라지거나 하진 않겠지.’
물론 이렇게 직접적인 상처에 별다른 조치 없이 뮤트의 피를 사용하면 사제에게 정화를 받아도 감염된 부위를 되돌릴 수 없어 눈을 적출해야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뒷일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처덕 처덕.
땅에서 그러모은 핏덩이가 진 진흙을 한쪽 눈에 바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선명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교수는 눈을 뜨자마자 여전히 쇳소리와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분명히 나았지만, 고전하는 샬롯만 보일 뿐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데오르나는 눈으로 쫒을 수 없었다.
‘…..접전이군, 지금까지는. 하지만 오래갈수록, 우리 쪽이 불리해.’
에데오르나는 단 한 가지, ‘강자 사냥’ 이라는 목적을 위해 여왕이 직접 잉태한 괴물이다. 외골격과 근육, 내골격으로 이루어진 강도와 완충 두 가지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신체는 에데오르나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를 선사했으며, 속도는 그 자체로 가장 예리한 창 이자 방패였다.
애초에 대군(對軍)전투에 특화된 영웅과 대인(對人)전투에 특화된 네임드가 붙었으니 상성 상 불리한 것은 당연지사. 아직은 잘 방어하고 있지만 데미지는 꾸준히 누적되고 있었고, 에데오르나는 그 누적된 데미지가 방어에 빈틈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 끝이다. 어떻게든 샬롯이 이기게 만들어야 해….’
“쿨럭! 그르르륵!”
교수는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몸을 일으키자 오른쪽 다리가 힘 없이 꺾이며 쓰러지고 말았다.
고통스럽다. 기도에 간신히 뚫어놓은 구멍에는 피가 자꾸 흘러들어 가 호흡을 방해했고, 후들거리는 다리도, 쓸리고 찢어진 피부도, 누군가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내장도 모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겨우 게임이다. 지금이라도 종료를 누르면 순식간에 암전될 세계.
털그럭.
“…..”
달콤한 유혹이 뇌리를 간질이던 그때, 힘겹게 전투지역에서 멀어지던 교수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슴베가 빠진 숏소드의 나무 손잡이가.
교수는 쥐고 있던 칼날 조각으로 손잡이의 힐트 부분을 찍어 부순 다음, 그대로 손잡이를 목의 구멍에 끼워 넣었다.
“으으! 으으으으으!!!”
쉬이익! 쉬익- 쉬익-
손잡이의 슴베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오자 호흡이 편해졌다. 살과 거죽을 비집는 고통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위태로운 의식 사이로 가장 날카로운 옛 기억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시인이셨다. 호탕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 손끝에서 섬세한 문장을 자아내던 아버지는 유언마저 시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적진 한가운데 투입되어, 화학탄이 떨어진 지역에 고립돼 죽어가던 나를 찾아와 내 얼굴에 방독면을 씌워주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썼음에도 그 표정이 눈에 잡힐듯한 아버지의 얼굴이.
아버지의 방독면에는 정화통이 없었다. 내 것과는 다르게.
지이익-
교수는 근처에 널브러진 창대로 부러진 다리를 묶었다. 질질 끌리긴 했지만, 어떻게 기어갈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상태창은…. 안 봐도 훤하지. 죄다 시뻘겋게 깜박이면서 감염 중이다, 악화 중이다, 그러겠지.’
하지만 그건 결국 시스템이 내게 부여한 상태일 뿐.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접속기에 연결된 내 정신이다. 교수는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하지마. 움직여.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이곳 어딘가에, 내가 찾아야 할 답이 있을 거야.’
교수의 무너져가는 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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