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71
Chapter. 10 납과 은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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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감찰부는 다 잡았잖아. 굳이 이렇게 뒷골목만 골라 다니면서 쫓기는 사람처럼 도망갈 필요는 없을 텐데?”
“절대 아니니까 이렇게 튀고 있는 거지. 우리가 잡은 건 죄다 타워 관리병력 정도 되는 쭉정이들이고 진짜배기 요원들은 지금쯤 발바닥에 불이 나게 튀어오고 있을 거다.”
타워 쪽 일이 잘 풀린 것은 일행이 개개인의 실력이 워낙 특출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타이밍이 좋아서 그랬던 것이 7할 정도는 되었다. 감찰부에서 일 좀 한다는 놈들은 최근 그들에게 연속적으로 벌어진 악재를 수습하기 위해 작전에 나가 있었으니까.
“안에 보니까 침상이나 개인 물품도 잔뜩 있던데? 동부 터지고 새로운 본진으로 라디오타워를 선택한 것 아냐? 지금 상황을 봐도 그렇고 방어 병력 정도는 남겨놓았을 텐데?”
“피아식별이 안 되긴 해도 어쨌든 터렛이 살아있었잖아. 침입자가 적대 행위를 하는 순간 7.62mm탄이 초당 130발이 넘게 쏟아진단 말이다. 7탄이 대충 9.5그램쯤 되니까…. 무게로만 따져도 초당 1.2kg의 납탄을 쑤셔 박는 미친 터렛이 수백 개가 깔렸는데 기지 방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 뭐, 라이터 하나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몰랐겠지만.”
썩을 대로 썩었다고는 해도 38구역 돔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우리도 달려드는 적을 사살했을 뿐 타워 내의 모든 병력을 추적하면서 제거한 게 아니니 분명 살아나간 녀석들이 있을 것이고, 누가 저 난장판을 만들었는지 금방 들통나겠지.
타다닥!
‘골목, 발소리!’
앞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감출 생각도 없는지 긴장한 듯한 숨소리와 금속의 반사광이 골목에 그대로 비췄다.
“이, 이야아아! 죽어!”
퍼어억!
열셋? 열네 살? 헝겊으로 감싼 날붙이를 든 소년은 미쳐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이안의 발길질에 걷어차여 날아갔다. 벡스가 인상을 쓰긴 했지만 누구도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제 입으로 ‘죽어’ 라고 말했으니까.
“….애새끼잖아? 보통 길 생활하는 녀석들은 덤벼야 될 놈이랑 그러면 안 될 놈 정도는 구분하지 않나?”
“아무래도 현상금이 걸렸나 본데.”
“쓰으읍. 어쩐지 어제 감찰부에서 왔던 놈, 돈 많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대더니.”
지난밤 찾아온 감찰부 대변인이 말했듯, 그들의 힘은 점거하고 있던 라디오 타워도, 요원들도 아닌 돈이었다. 권력과 유착한 상인 집단에서 나오는 막강한 금력. 아마 습격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현상금부터 잔뜩 때려 부었겠지.
‘그리고, 그렇게 돈 많은 녀석들이 정말로 작정하고 현상금을 걸었다면….’
핏-슈웅
퍼억!
“저격수다!”
“2시 방향 주택! 옥상이나 3층 언저리!”
“염병, 2시! 확인!”
탄환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뒤쪽 벽에서 파편이 튀었다.
순식간에 저격 방향을 복창하고 사각에 엄폐하는 일행.
교수는 슬쩍 바깥 분위기를 살피며 골목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까가가강! 빠캉! 빠캉!
“….선순데?”
왼손이 드러나자마자 쏟아지는 탄환. 명중률도 그렇고, 잠깐 쏘고 바로 멈추는 걸 보니 대응도 나쁘지 않았다. 흠집도 안 나니까 손이 아니라 뭐, 모형 미끼 같은 건 줄 알았나 보다.
‘쩝. 더 쐈으면 확실하게 위치를 파악했을 텐데.’
대강 파악하긴 했는데, 저격수는 쏘고 이동하는 게 특기인 놈들이니 바로 달려들 수 없는 경우에 대강 파악한 위치는 그리 쓸모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하나 건너 1층에 차양 있는 건물 옥상에 하나. 위치는 모르지만 다른 옥상에 저격수 셋. 좀 치는 놈들이야.”
“그러고 보니 여기 애들은 실드에 구멍만 내면 방사능 킬이 확정이니 저격을 선호한다고 했었지. 골때리는 놈들이 붙었네.”
긴장한 표정으로 소총을 들어 올리는 에젤. 일단 들기는 했지만 고지에 자리잡은 저격수를 상대로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총알 밥 먹는 놈들이라…. 감찰부가 설마 벌써 도착할 리는 없고…. 동업자인가?”
“동업자?”
“어. 캐러밴. 스캐빈저. 너도 장사하러 가서 다 죽이고 물건 찾아온 적 있잖아. 총 들고 밖에 돌아다니다 물건 팔면 캐러밴이고, 쏴죽이고 물건 훔치면 스캐빈저. 현상금 쫓아다니면 바운티 헌터지.”
어제 머물렀던 캐러밴 숙소에 우리 말고도 다른 이들이 제법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밖에 폭발적으로 불어난 변종 때문에 이동하지도 못하고 이곳에 발이 묶인 이들. 당장 물건 팔러 나가야 하는데 도시에 가만히 틀어박혀 돈이나 까먹고 있으니 속이 탈만도 하지.
푸슉! 푸슉!
파박!
“윽, 씨발!”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소음기의 답답한 격발음이 들리더니 뒤쪽 벽에 파편이 튀며 이안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맞았어?!”
“….스쳤어. 도탄 갈기는 놈이 있어! 왼쪽 2층 방범창!”
이안이 지혈제를 꺼내 허벅지에 때려 붓는 사이, 순식간에 튀어 나간 벡스가 반대편 건물 입구로 몸을 날렸다.
투타타타타!
핏 슈웅- 핏 슈웅-
기다렸다는 듯 벡스의 발자취를 따라 흙먼지를 튀기는 탄환들.
“….이 애미 터진 새끼들이 보자보자하니까!”
군복 바지가 피와 하얀 가루 투성이가 된 이안이 건물 입구로 수류탄을 까서 던지자 폭발과 함께 설치된 부비트랩이 날아가고, 그 폭연 사이로 벡스의 그림자가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저격수가 있던 방범창 밖으로 피 묻은 손 하나가 축 늘어져 나왔다. 잡았다는 표시.
이안이 가방에서 유탄 발사기 하나를 꺼내며 으르렁거렸다.
“….이쪽 애들은 우리 동네 쓰레기들보다 더 더러운 맛이 있군. 방아쇠만 당길 줄 아는 놈은 아냐. 서두르다간 당하겠어.”
“안 서두르면 진짜 당할걸? 아침에 우리 차가 행정부 쪽으로 향하는 걸 본 놈들이 있을 테니까. 놈들이 우리 이동 경로를 알고 있는 이상 시간을 주면 계속 모여들 거야. 그나마 이제 막 현상금이 걸려서 이 정도 숫자밖에 없는 거지.”
“그럼…. 강행 돌파밖에 답이 없겠군.”
철컥!
퉁-
유탄 발사기에서 날아간 탄환이 허름한 건물의 벽면에 닿았다.
콰아앙!
후두두둑!
자욱하게 퍼지는 폭연과 비처럼 쏟아지는 파편들과, 그 사이로 일행이 있는 골목을 향해 정확히 쏟아지는 제압사격.
정말 짜증 날만큼 멀리서 상대하는 법을 잘 아는 놈들이었다.
파바바박! 챙그랑! 챙그랑!
“으아악! 저 좆같은 저격수 새끼들이 진짜!”
“흐흐흐흐. 어이, 체리. 아직도 사람을 죽이는 게 무섭나? 응?”
“개소리! 내가 저 새끼들 잡으면, 어! 아주 모가지를 따서 내 차 엠블럼에 꽂아놓고 다닐 거야!”
도탄에 깨진 유리 파편에 맞아 피를 줄줄 흘리는 에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노획한 군복 주머니를 뒤지던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연막탄! 제기랄, 내 손에 죽은 아저씨가 날 살려주다니!”
“저격수만 드글거리는 동네에서 스모크 하나 안 들고 다닐 리가 없지. 저 앞에 던지고, 연막 퍼지면 바로 뛰어서 골목에서 빠져나간다!”
핑-! 취이이이익!
에젤이 던진 연막 수류탄이 정확히 한 블록 앞 골목에 떨어지고, 유탄의 폭연과 연막탄으로 위 아래가 전부 가려지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일행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행정부까지 죽어라 뛰어!”
“전방, 부랑자! 다섯!”
“걷어차! 그런 거 상대할 시간 없어!”
“씨발! 라디오 타워에서 오늘치 행운은 다 썼을 텐데!”
탁탁탁탁!
아무리 개인 전투력이 뛰어나다곤 해도 머리에 납탄이 박히면 죽는 법. 아무리 교수 일행이라도 자리를 잡은 저격수들을 상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15분 뒤.
결국 이안이 가지고 있던 폭발물로 뒷골목 건물을 갈아대며 폭연을 뿌리고, 온갖 재주를 구르며 몇 블럭 안되는 골목을 돌파한 끝에 행정부에 도착하긴 했다.
“생츄어리-! 어흐흑!”
“씨발 살았다! 제기랄! 똥 지릴 뻔했네!”
“아니 여러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피비빙-!
“히끅!”
그렇게 전신에 온갖 유리 파편을 맞고 연막용으로 터트린 건물 파편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면서 행정부에 도착했을 때는, 몸과 마음이 죄다 넝마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상태에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어나온 행정부 대변인, 카렐이 실드에 튕겨나가는 탄환에 놀라는 것을 보자 ‘이제 진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으허어어엉! 카렐씨! 우리 진짜 다 죽는 줄 알았어….”
“담배, 제발 담배 좀 주쇼….”
“난 물 좀. 아아아, 물 마시고 싶어….”
“끄아아아아….”
동맹으로서 위신이라거나, 부끄러움 따위는 죄다 집어치우고 그대로 행정부 입구에 드러눕는 교수 일행.
카렐 벨르몽트는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린 다음 일행에게 다가왔다.
“뉴스 보이들이 속보라면서 외치고 다니는 걸 들었습니다만….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감찰부에서 1500만 실링이라는 거금으로 여러분을 수배한 겁니까?”
“같이 일하는 댁이 그걸 모르면 어떡합니까…. 라디오 타워 털고 왔잖아요.”
“….오늘 아침에 출발한 것으로 아는데?”
카렐은 건물 입구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출발하고 다섯 시간도 안 지난 시간.
“설마…. 오늘 아침에 말한 작전을 당일치기로 하고 온 겁니까?”
“그게, 애초에 오래 걸리면 끝난 거라고 봐야하는 작전이…. 아 몰라! 나중에 합시다! 나 뒤지기 전에 물 줘, 물!”
“술, 담배에에에!!!”
“어흐흑, 나는 집에 좀 보내 줘….”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서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교수 일행. 무슨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인데, 유능하기가 어이없을 정도의 사람들이다.
우르르르!
안에서도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연구동에 있던 의사들이 손에 뭔가를 주렁주렁 들고 뛰어나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47구역의 변종 융합 인간이 다쳤다고!”
“내가 47구역 에블린 그 여편네의 메세지를 듣고 얼마나 설렜는데! 그 박교수가 직접 찾아오다니!”
“피! 피를 흘린다! 그거 가져와 그거! 지혈제 말고 샘플 담는 거 가져오라고!”
그 후,
교수가 의사들이 들고 온 식염수 통을 물어뜯고.
이안이 소독용 알콜 솜을 탈취해 빨아먹는 소동 끝에야 이안의 입에는 담배가, 교수에게는 충분한 물이, 에젤에게는 진정제가 제공되며 일행은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마스터 코드 연결 확인됐습니다! 원격 시스템 제어도 정상적으로 돌아갑니다!”
“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교수의 물음에 피아노 치듯 자판을 두드리던 연구원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협력관계라고는 해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게 거의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드려야죠.”
교수 일행이 라디오 타워의 중앙 통제실에 삽입한 마스터 코드. 행정부 사람들은 그것으로 타워 시스템에 원격으로 연결한 다음 시간상 끄지 못했던 광역 재밍을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다.
“보안 설비도 확보했습니다. 보안 시스템의 그린 존에 들어있던 데이터를 싹 비우고, 행정부 인사 데이터와 BDSM 여러분의 데이터를 삽입했으니 감찰부는 이제 타워 못 씁니다.”
꿀꺽- 꿀꺽-
“크어어-! 살 것 같다. 뭐, 그놈들이 엿먹었다니 기분이 썩 괜찮기는 한데. 딱히 우리가 그 타워를 확보했다고 해서 이득이 될 일은 없지 않나?”
벌써 두 번째 술병의 뚜껑을 따고 있는 이안. 그 말에 내 왼손에 달라붙어 있던 연구원들이 무슨 원숭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이안에게 던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애초에 47구역 돔이 그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메이어 제우스 때문인 것처럼, 우리가 38구역에 자리 잡은 이유가 라디오 타워입니다.”
제우스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이안.
“어…. 그럼 이것도 빌어먹게 끝내주는 빔 같은 거 쏘나?”
“후후후. 그건 아니지만, 더 끝내주는 기능이 있지요. 라디오 타워는 구시대의 모든 정보전 기술의 총아와 같은 것. 광역 재밍 같은 무식하게 출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다 일리가 없잖습니까?”
연구원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카렐의 눈치를 보았다. 카렐이 고개를 끄덕이자, 드론 한 대를 끌고 와 켜져 있는 화면을 일행의 앞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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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새야 : 야, 메세지 가냐? 잘 보임?
– bedulgyee : 오, 이제 보인다. 이제 통제 끝났나 봐.
– 남새야 : 세금도 그렇고 통신 장애도 그렇고, 싸우면 지들끼리 싸울 것이지 왜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는지.
– bedulgyee : 입 조심해. 누가 메세지 보내는거 보기라도 하면 신고 당하는걸로 안 끝나니까. 식량은 얼마나 챙겨놨어?
– 남새야 : 일주일치 정도. 무섭다. 다들 나가면 죽는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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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화방 같은데? 이건 왜?”
“후후후후…. 그야, 이게 공개 대화방이 아니라 상대방을 특정해서 보낸 개인 메세지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잠시 연구원의 말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대화방이 아니라 개인 메세지다. 개인 메세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다. 연구원은, 그런 개인 메세지를 자랑스럽게 보이며 라디오 타워의 기능을 자랑했다.
“이거…. 감청한 거야?”
“예! 41~35구역까지, 타워의 범위 내에서 오가는 통신이라면 모두 감청이 가능합니- 으악!”
연구원의 옆에 있던 드론을 낚아채 내 눈앞으로 가져왔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메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 심지어 현시점의 돔의 정책을 비난하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임에도 둘의 메세지는 주저함이 없었다. 정말 GG의 개인 메세지를 감청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제우스보다 더한 놈이잖아 이거?”
감청. 꺼진 광역 재밍. 오가는 정보. 스파이. 총장의 협력자. 진실.
지금 당장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니 머릿속에 키워드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 나 이것 좀 빌립시다.”
“그,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일단 치료가 끝난 다음에….”
“당장!”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교수의 머릿속에는 온통 저 감청장치에 47구역의 좌표를 찍을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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