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72
Chapter. 10 납과 은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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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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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사위 : 사람 좀 받아줘라. 37세, GG 계정 있음, 고정적인 실링 수급 가능, 화기 다룰 줄 앎. 40번대 안쪽이면 어디든 가능. 일 잘함. 돔 출신. 혹시 픽업 되시는 분?
– 라스푸틴 : 엌ㅋㅋㅋㅋㅋ [돔 출신] 한마디로 컷ㅋㅋㅋㅋ
– bUllllll : 딱 봐도 5년 동안 앵벌이밖에 안 한 돔 가축이네 ㅋㅋㅋㅋ밖에서 돔 출신 쓰는 놈이 어딨냐? 전투시 포지션 안 적어놓은 것만 봐도 깡통인 거 티 확 나는데.
– 엘고어32 : 요즘 이런 애들 겁나 많이 보이더라. 38구역 통신장애 해결된 다음에 죄다 탈출하려고 별 지랄을 다 하고 있음.
– 변수사위 : 그냥 좀 받아줘…. 여기 있으면 진짜 다 죽겠다고. 어제만 해도 도시에 총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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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38구역…. 민간인 이주 희망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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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구스 : 근 한 달 만에 연락이라. 반가워해야 할지, 당장 좌표 추적에 들어가야 할지. 그래, 끊었던 밀수를 다시 시작해볼 참인가?
– 잭32 : 제기랄. 상황이 개판이었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30번대 전체가 지옥같이 변해버렸다고요.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밀수 판은 아예 엎어졌고, 마약류도 원료가 거의 다 떨어져서 뒷골목에서 폭동이 일어날 판인데. 그, 거래소 드론은 이제 좀 써도 되잖겠슴까? 변종들한테 스캐빈저들이 전부 쓸려나가서 드론 터는 놈들도 거의 없어진 것 같은데.
– 로구스 : 38구역으로 가는 경로에는 그 삼두사 놈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안 되네. 그놈들은 애초에 커뮤니티 사용 말소 지역을 정해놓고 계정 날아간 놈들로 드론을 납치하는 게 일이니까.
– 잭32 : 제기랄. 다른 건 몰라도 마약은 어떻게 해야되는데…. 감찰부 새끼들도 지 발등에 불 떨어졌다고 나 몰라라 한단 말입니다! 이대로 두면 진짜 마약쟁이들 다 미쳐 날뛴다고! 쿨-재키 3kg만 어떻게 유통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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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38구역 감찰부…. 마약사업도 하는 중. 구역 간 거래소 이용은…. 여전히 불가. 중소 스캐빈저가 다 쓸려나가서 원거리 드론 운송도 되나 싶었는데. 뱀 대가리 놈들이 거기 자리 잡은 이유가 있었구만.”
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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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velgod :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30번대 구역은 말할 것도 없고, 45구역 근처도 돔의 사업으로 매일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잖아. 우리도 이주하자.
– 디슬람 : 돔 입주 신청이야 2년 전에 했지. 자리가 없다잖아, 자리가. 그렇다고 언더돔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거고.
– shovelgod : ….비슷하게 안전한 곳을 하나 알아뒀어. 개인 이주도, 단체 이주도 받는다더라.
– 디슬람 : BDSM? 거기 괜찮겠어? 돔이랑 가까운 것 말고는 파밍도 거의 끝난 지역이고, 가봤자 메리트가 없을 것 같던데….
– shovelgod : 지금은 나름 체계가 잡혔대. 돔 쪽에서 관리 인원도 보내주고, 이번 원정 무역이 끝나면 들어올 돈으로 자체적인 생산체계도 갖출 계획도 있다나 봐. 어쩌면, 지금처럼 기반이 잡히지 않았을 때 빼고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41구역 방사능 수치 봤잖아. 여기도 이젠 안전지대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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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 집 얘기로군. 돔에서 사람 붙여준다고 하더니 마을이 그럭저럭 돌아가긴 하는 모양이다.
“어우, 눈알 빠지겠네.”
38구역 행정부에 복귀하고 반나절 정도 푹 쉰 다음 날 아침, 교수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매달리는 이들을 내팽개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막강한 화력을 갖춘 돔의 지원군은 우리보다 훨씬 이동속도가 빠를 테니 대충 35구역까지 이동하는 데 일주일 정도. 피할 거 다 피해서 가야 하는 우리가 38구역에서 35구역까지 가는 데 대충 5일 정도. 여유 있게 가도 6일. 하루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그 안에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라디오 타워의 감찰 기능을 풀로 돌리며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헤드셋을 벗은 교수는 잠시 일어나 뻐근한 몸을 풀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섯 시간, 한시도 쉬지 않고 38구역과 47구역 사이에서 날아드는 모든 메세지를 긁어 모았지만, 영양가 있는 정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분명 있긴 할 텐데, 막혀있던 통신장애가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 메세지가 쏟아지다 보니 전부 확인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행정부 요원들도, 우리 일행도 전부 달라붙어서 확인하고 있었지만….
“으아악! 못해! 이걸 언제 다 보고 앉아있어!”
“쓰으읍. 앉아, 에젤. 아직 저녁 시간 안 됐다.”
“아니, 그렇잖아! 구역 하나도 아니고 감청 영역권이 몇 개 구역을 통째로 아우르는 데다, 심지어 그 범위 밖에서 그 영역권 안으로 보내는 통신도 다 잡아내잖아!
에젤이 말하는 것처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해야 해. 적어도 지금 상황이라면, 무조건 한번은 연락하게 되어있으니까.”
“그, 우리 영 총장님 말이야?”
“그래. 보아하니 이쪽에 뻗어놓은 손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아. 평소에 연락할 수 있었다는 뉘앙스도 있었지만,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제 내 입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지. 절대로 연락할 수밖에 없어.”
자고 일어난 다음 가장 먼저 확인한 게 지난밤 동안 총장의 이름이 들어간 메세지가 오갔나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한 개도 보이지 않았으니, 아직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뜻.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나름 정보를 긁어모았지만 현시점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상황파악 수준에 지나지 않아. 사건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체스 말을 움직이는 이들의 정보가 필요해. 기다린다. 필요하다면 돔에서 온 지원군을 며칠 기다리게 만들더라도, 무조건 여기서 총장의 협력자 정도는 확인해야 해!’
38구역을 떠나면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시간은 없겠지. 체스판 위의 장기 말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지금 그 판을 움직이는 이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 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칼로리 바가 몇 개 있어서 하나를 에젤한테 던지고,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옛다 점심. 먹으면서 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좀만 더 힘을 내자고. 아마 밖에 나가면 이 시간이 그리워질걸?”
“으흐흑, 예수도 죽기 전에는 제자들이랑 한 상 크게 차려 먹고 가셨는데…..”
징징대는 소리를 하는 에젤과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벡스. 아예 본격적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자고있는 이안.
주머니에 남아있던 칼로리 바를 모조리 꺼내 이안의 머리통을 향해 던져준 다음, 한숨과 함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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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rls2020 : 요즘 사는게 ….
– 에미야물맛이싱겁다 : 변종 개체수 증가로 주요 스크랩 파밍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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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해라 총장. 일이 꼬였으니 궁금해 미칠 것 같잖아. 놈에게 연락을 해.”
메세지들을 확인하는 교수의 눈이 사냥꾼의 그것처럼 빛났다. 찾아내리라. 내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줄, 확실한 증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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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청 12시간째. 격무로 단련된 행정부 요원들도 지쳐가고, 충혈된 눈의 에젤이 인권을 역설하며 나도 졸음을 참다 허벅지에 피멍이 맺힐 때쯤.
“해, 햅번.”
“….”
“햅번? 자?”
“음! 어, 뭐. 아, 안 잤어. 메모해 놓은 거에 뭐가 묻어서 확인하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지. 계속해, 계속.”
“아니, 그게 아니라…. 찾은 것 같아.”
쿠당탕!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튕겨져나간 의자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난 교수는 벡스의 곁으로 한달음에 다가갔다.
벡스의 화면에는 한눈에 봐도 총장이 누군가와 대화한 것으로 보이는 메세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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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everYoung : 왜 그랬나?
– ForeverYoung : 적어도 그쪽에서. 아니,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자네 만큼 믿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하일.
– M. Pletnev : 사과하지. 이번 일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에 대해서도.
– ForeverYoung : 그 말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건가?
– M. Pletnev : 미안하네.
– ForeverYoung : 막상 완성된 오르페우스를 보니 그 힘이 탐이 나던가?
– M. Pletnev : 미안하네.
– ForeverYoung : 그래서,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 함께 과거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맹세한 친구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그 힘으로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고자 한 건가!
– M. Plenev : ….미안하네.
– ForeverYoung : 나는 고작 사과 따위를 듣기 위해 네놈에게 연락한 게 아니다, 미하일!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이유야! 그 누구보다도. 이 알렉산더 영보다도 더! 이 부서진 세계에 질서를 되찾는 것에 목말라 하던 자네가 왜 별안간 나를 배신했느냐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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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눈앞에 있는 내용이 진짜 그 차분하고 예리한 중년 알렉산더 영의 메세지가 맞는지 믿을 수 없었다.
“이거…. 47구역 감찰부 좌표 맞지? 다른 비슷한 좌표라거나 그런 거 아니지?”
“나도 잘못 봤나 했는데, 아냐. 정확해. ‘ForeverYoung’은 47구역의 감찰 총장, 알렉산더 영 이야.”
“‘M. Pletnev’…. 미하일 플레트네브…. 38구역 집행부의 총장이라고 했지. 둘이 친구였다니.”
총장은 분명 나를 100%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상 미동도 없는 그 가면 속에 자신의 감정을 감추던 총장이 이렇게나 흥분하다니. 지금 영 총장이 대화하는 이 미하일이라는 사람이야말로 그가 100%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한테도 드러내지 않는 가면 속 맨얼굴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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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everYoung : 처음 돔이 만들어지고, 그 구더기 같은 정치 귀족들이 우리만 보고 모여든 민간인들을 모조리 내쫓고 어떻게든 자기 가족, 친인척, 측근들만 돔에 꽉꽉 채우려고 했을 때! 내가 주먹에 피가 맺히도록 분노하면서도 그 역겨운 자태를 지켜보고만 있을 때 자네는 어떻게 행동했나. 미하일 플레트네브가 어떻게 행동했나!
– M. Pletnev : 다 지나간 일일세.
– ForeverYoung : 이것도 잊어버렸다면 내가 얘기해주지. 그대로 그놈들이 VIP 회의룸이라 부르는 돼지우리에 불을 놓아버렸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네 호위가 들고 있던 화염방사기를 빼앗아 들고는 대통령, 국제연합, 초국적 시민단체장 등 세상을 휘두르던 이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잿더미로 만든 게 바로 자네란 말이야! 내 물음에 자네는 ‘그래야만 했다’ 라고 대답했지! 덕분에 돔은 과거의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곳이 아닌 자유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까운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수 있었어. 그런 자네가, 세계를 불태운 폭풍 속에서도 언제나 올곧기만 했던 자네가 왜! 어째서!
– M. Pletnev :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 영. 나는 변하지 않았네, 영. 그저 언제나 그렇듯, 눈앞에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못한 것. 그뿐이야.
– ForeverYoung : ….내가 알아듣도록 설명하게.
– M. Pletnev : 별것 아니네. 그저, 내가 누군가를 다스리는 위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지. 나도 알아. 지금 내가 한 번만 참으면, 정말 돔의 정의가 이 세상에 널리 퍼질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난 그게 안 되는 사람이잖나. 그릇된 일을 좌시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살아남은 이유였으니. 그저 내 눈앞에 그자가 나타난 순간, 더는 자네의 작전을 마주할 수 없었어. 그뿐이야.
– ForeverYoung : 아직…. 바로잡을 수 있어. 내가 보낸 사람들이 그쪽 행정부에 머물고 있을 거야. 그들과 협력하게. 내가 보낸 병력과, BDSM 사람들과 같이 광신도들을 밀어버리고 오르페우스를 확보하면 원래 계획에서 그리 멀어진 것도 아니지. 38구역도 내가 사람을 보내서 관리하도록 하겠어. 그 올곧음이 누군가의 위에 서는데 방해된다면, 내려오도록 하게. 47구역에서 치안 유지라도 하면서 지내면 돼. 이 시대에는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해.
– M. Pletnev : 날뛰는 자네 얼굴이 눈에 선하군, 친구.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속을 터놓을 수 있어서 즐거웠네. 자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여러모로.
– ForeverYoung : 제기랄,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미하일! 이 벽창호 같은 자식아! 얘기해! 얘기를 하란 말이다!
– M. Pletnev : 그저, 운명이 아닌가 싶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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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작!
“….절절하네, 총장 양반. 아주 돌덩이 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내가 말했잖아! 우리 총장님은 늬들처럼 속이 시꺼먼 인간이 아니라고! 사람이 좀 음흉해서 그렇지 속은 휴머니즘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니까!”
어느새 다가와 메세지를 보고 있던 이안과 에젤의 평이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칼로리 바를 씹는 이안과 아주 생기가 도는 에젤. 영 총장님의 정의로운 사상에 감화됐는지 아주 깃발을 흔들며 수령 동지에 대한 예찬이라도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나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결국 집행부도 적이라는 소리군.”
대화의 방향을 보면 충분히 영 총장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와는 뜻을 달리하겠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벽창호], [올곧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정의 집행], [그 자]‘그 자가 나타난 순간, 더는 자네의 작전을 마주할 수 없었어.’ 라고 했지.
미하일 플레트네브.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영 총장과 손 잡고 일하던 그가 돌연 변심한 이유는 [그 자] 때문이라고 밝혔다. 뭔가 대단히 눈에 거슬리는 ‘정의롭지 못한’ 인물이 그의 앞에 나타났고, 미하일은 그를 상대하는 것이 영 총장의 작전과 상충하는 일이라 판단, 총장의 손을 놓고 정의를 수행하러 가버렸다. 영 총장의 인선. 그러니까 여기 모인 아군 중에 미하일의 눈에는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누굴까? 저 도덕적 결벽증 인간의 눈에 거슬린 정의롭지 못한 악인이.’
카렐 벨르몽트? 글쎄. 멍청하긴 해도 쓰레긴 아닌 것 같은데.
얼굴도 못 본 행정 총장? 애초에 존재하긴 하는 건가? 대외 활동을 아예 안 하는 것 같은데. 이쪽은 보류고.
우리 애들? 이틀 전 저녁에 미하일 그 인간 처음 본 사이인데 뭐가 있겠어.
‘그럼…. 난가?’
박교수. BDSM 수장. GG 랭커. 돔의 영웅. 대전쟁 당시에도 엄청나게 죽여댔고, 혼자 살아남겠다고 생존자들 사이에서 아귀다툼하면서도 제법 죽였으며, 최근에는 제우스를 이용해 렙터에서 온 인간 수백 명을 금속 혼합물로 만들어버린 전적도 있다. 세상에. 너무 훌륭한 악인이잖아? 거의 사탄이 면접도 안 보고 특채로 데려갈 만한.
‘….진짜 난가?’
갑자기 소름이 막 돋았다. 이틀 전 밤에 봤던 각진 얼굴의 냉철한 남자. 38구역의 무력, 대부분이 A+++급 저격수인 집행부 요원들의 수장인 인물이 뜻을 나눈 친구와도 연을 끊고, 기어코 죽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나라고? 진짜? 리얼리?
“어…. 이안.”
“….”
“이안?”
“스읍- 어우 깜빡 졸았네. 뭐, 왜?”
“그…. 방탄복 좀 좋은 거 있냐? 5레벨 이상, 대전차 라이플 같은 것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걸로.”
“있긴 한데…. 저번에는 움직이는데 방해된다고 싫다더니? 실드 있잖아?”
“그, 그냥! 갑자기 필요할 것 같아서!”
“….뭐, 나중에 차고 내려갔을 때 한번 찾아보지. 어차피 내일까지 거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말도 안 되는 가정 같지만…. 혹시 모르잖아. 동네 스캐빈저, 캐러밴 저격 메들리만 해도 사선 위에서 코사크 댄스를 추는 기분이었는데. 드림 샷을 밥 먹듯 갈기는 구시대 저격 라이플로 무장한 집행부가 노리는 단일 타겟이라니. 시발 사람 살려.
그날 밤, 교수는 온 사방에 깔린 저격수들이 그를 농락하듯 난자하고 산처럼 커다란 미하일이 ‘정의의 심판이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을 깔아뭉개는 꿈을 꾸었다.
교수가 악몽을 꾸든 말든 휴식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아침 해가 뜰 무렵 일행은 평온한 행정부 건물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충 봐도 스코프의 반사광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저격수들이 잔뜩 깔린 거리.
그곳을 뚫고, 어쩌면 밖에 매복했을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을 뚫고, 지금쯤 더 늘어났을 변종 무리도 뚫고 35구역까지 가야 한다.
“뭘 그렇게 쓰고 있냐?”
“청구서.”
눈 밑에 시커멓게 다크서클이 내린 교수의 [47구역 감찰부 대 BDSM 계약 청구서]에는 0을 하나 더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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