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73
Chapter. 10 납과 은화(26)
****
10월 23일. AM 06:00 / 행정부 차고 앞.
“에…. 차체는 전차 상판에 쓰는 비관통성 소재로 감쌌습니다. 바퀴는 무른 고탄성 금속 타이어로 대체해 펑크가 나지 않게 했으며 이동형 실드를 이용하던 차체 실드를 2레벨 정도 성능을 높여 내장했고, 자동화 터렛에 또….”
“….이거 굴러가긴 합니까?”
“물론 가속력과 최고 속도가 30% 정도 감소하긴 했지만, 티타늄 코팅 강자성 탄을 사용하는 저격수들 상대로 이 정도 대비는….”
“그럼, 행정부 측에서 개조한 건 냅두고…. 이안 저 멍청이가 덕지덕지 붙여놓은 파츠들은 다 들어냅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B급 좀비 영화처럼 2형이 우글거리는데 전방 분쇄기를 떼자고? 넌 영화도 안 봤냐! 안돼!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데바스테이터를 그냥 거북이로 만들겠다니!”
“그 거북이가 네놈이 만든 세기말 컨셉카보다 20%는 더 빨라 이 새끼야! 30분 내로 출발할 거니까 그때까지 전부 떼와!”
10월 23일. AM 7:00 / 38구역 돔 입구
“바, 박교수….저어-기, 버섯바위 위에 저 반짝이는 거.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거 맞아?”
“어. 전부 스코프 반사광 같다. 저 새끼들, 숨을 생각도 없군. 어차피 차량 소음 때문에 변종이 몰려들어 길막 할 거 아니까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우리 트럭 상대로 일방적으로 갈길 생각인 거지. 질척하게 소모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로군. 차량에 저장된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우리 패배. 최대한 전력 소모를 피하면서 지원군에 합류하면 우리 승리. 변종이 얼마나 달라붙느냐가 승패의 갈림길이겠군.”
“크흐흐흐. 거봐. 내 분쇄기 파츠 달아오길 잘했지?”
“빌어먹을 똥고집 같으니라고. 난 몰라 임마. 그것 땜에 배터리 먼저 떨어지면 알아서 해라.”
10월 23일. AM 11:00
빠캉- 콰직!
“마, 맞았다! 2호차! 기름 샌다! 연료통 맞았어!”
“염병할 전차 판때기가 뭐 이리 잘 뚫려! 마스크 쓰고 어떻게든 밟아! 37구역에 계곡까지는 어떻게든 가야 해! 여기서 트럭 두 대 중 하나라도 잃으면 돌파력이 약해져서 다 죽는다!”
“이 염병 처먹을 저격수 새끼들이….!”
“나가지 마! 야, 이안!”
“있어 봐! 저 새끼들도 변종 피해야 하니까 저격 위치가 한정돼있을 거 아냐! 저 고지대만 어떻게 날려버리면….!”
슈화아악!
쿠우웅! 쿠르르르…
“머, 멈췄다! 저격수를 잡았어!”
“기회다! 실드 끄고 버블 올려! 분쇄차량으로 밀고 전속력으로 튄다!”
“아주 초입부터 지랄 용천을 하는구만…. 알아서 사이드 봐줘! 민다!”
10월 25일. PM 2:00
“그아아아!”
“끄어어! 끄아아아아- 억!”
“….숨소리도 내지 마.”
“….추워라. 집에 가고 싶다.”
“나도. 이젠 근처에 뭐가 반짝이기만 하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징한 새끼들. 머글러 기백 마리는 몰이해서 넘겼는데, 그걸 안 죽고 살아서 따라오네.”
“조금만 더 가자. 집행부도 어느 정도 거리 이상으로 쫓아오진 못할 거야. 트럭 단위 보급품을 싣고 다니는 우리랑은 사정이 다르니까.”
“망할. 그 자식들은 왜 우리를 조지려는 거야? 바운티 헌터에, 그보다 몇 단계는 더 끔찍한 집행부의 엘리트 저격병이라니!”
“장담하는데, 우리 넷 중 하나는 용한 무당이라도 찾아가서 살풀이라도 해봐야 돼. 뭔 하는 일마다 이따위로 꼬이니 원.”
10월 26일. 37구역. 전 집단 생존지.
“씨발 뭐야! 코끼리?”
“튀어! 미확인 3형 변종이다!”
10월 27일. 37구역. 터널.
“소리가 울려서 느낌이 이상해. 누가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것 같은걸.”
“….뭐?”
“아저씨. 아저씨가 나를 부르고있으히히히-”
“!!!!! 이안! 당장 벡스 마스크 확인해! 동굴 고사리 포자에 당한 것 같아!”
“염병! 뒤쪽이 찢어졌잖아! 2호 차에서 여분 마스크 좀 꺼내와 에젤!”
“흐히히히키히히힛. 쥐방울만 한 놈드으으이히히히히.”
10월 28일. 36구역. 독립기념관.
“새, 생존자다! 건물 급 실드야!”
“이 험난한 황무지를 뚫고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끔찍한 시절이군요.”
“아, 예. 환대에 감사합….”
“허나 고통받는 정착민들보다 더 끔찍하진 않겠죠. 자, 여기 지도에 표시해주겠습니다.”
“아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프레스턴 씨! 안 한다니까! 그냥 은폐장 켜고 버티라고 해요!”
10월 29일. 개활지.
“눈폭풍이다!!”
“녹색 블리자드다!”
“저런 거 정면으로 마주하면 배터리가 작살날 거야! 플라즈마 수류탄 다 꺼내! 플라즈마의 고열로 폭풍의 기류층을 흐트러뜨리고 그 사이에 지나간다!”
“수류탄은 누가 가서 쏟아 넣고 올 건데!”
“에제에엘! 엑소슈트 출동!”
“훌쩍.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기우웅- 철컹!
.
.
.
.
.
.
10월 30일. AM 3:45 / 35구역.
콰드득!
손안에서 인간의 육신이 부서지는 느낌.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역겹다거나 한 감상은 없었다. 하긴. 자동 터렛의 총신이 녹아 돌파력을 잃은 뒤로 폭발물은 쓸 엄두도 못 냈다. 몇 개 남지 않은 소음기를 아껴가며 쓰거나, 대부분 접근한 놈들은 내려서 직접 상대해서 죽이기를 3일. 그동안 왼손으로 으깬 변종이 100마리는 족히 넘을 것이다.
차도. 보급도.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 한계인 상황.
타아앙!
가물가물한 정신 속으로 날카로운 총성이 파고들었다. 설마 집행부가 여기까지 따라왔을 리는 없고.
대충 살펴도 반경 100미터 안에 호드 2, 3개는 있을 것 같았는데. 여기서 총성이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욕할 기운도 없네…. 너냐?”
“총 무거워서 화물칸에 넣어놨어.”
“그럼 너?”
“염병을….해라. 기왕 할 거면 크레모아로 시작했어.”
“나도 아냐…. 엑소슈트 배터리 아직 반 팩 남았다고….”
“….환청인가.”
타아앙-
또 들리네. 그리 멀지 않은 것…. 잠깐만. 멀리서?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울리는 총성? 규칙적으로? 그것도 단발만?
순간, 고장 난 컴퓨터처럼 웽웽 울리는 머릿속에 한줄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파고들었다.
우리 쪽으로 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한 발만 쏴봤자 변종이 몰리기나 하지 의미도 없다. 아무리 멍청한 생존자라도 저런 짓은 안 한다.
그럼에도 굳이 저렇게 띄엄띄엄 한발씩, 온 동네가 다 울리게 총을 쏴대는 경우가 있다면….
“저,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야….”
“풀어서 얘기해…. 박교수. 내 뇌는 이틀 전부터 총파업이라고.”
“일부러 총성으로 변종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거라고! 에젤, 엑소슈트 통신기 켜! 당장!”
“어, 으응!”
타아앙-
한 번 더 규칙적으로 울리는 총성과, 엑소슈트 통신기가 지직거리는 소리가 작은 불씨처럼 귓가에 울렸고,
[치직- EZ-007. 응답하라. EZ-007. 여기는 47-F 채널. 신호에 확인되는 차량이 BDSM의 차량이 맞는지 응답하라. 치직- 반복한다. 여기는 47-F 채널, 캐러밴 BDSM과 합류 명령을 받았다. 응답하라. EZ-007.]인접한 변종의 멱을 따던 벡스도, 고장 난 총의 개머리판으로 변종을 후려갈기던 이안도 모두 그 통신의 내용에 순간 얼어버렸다.
에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슈트의 수화기를 들었다.
“여, 여기는 EZ-007. 47구역 감찰부 요원 에젤 레이든. 지원 대상….BDSM과 함께 있음.”
치익-
[음성 확인. 고생했다 EZ-007. 예상보다 많은 변종의 숫자에 36구역까지 지원을 가야 하나 회의 중이었는데, 역시 히어로 팀에게는 기우였던 모양이군. 변종은 이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니 빠른 속도로 합류하라. 47-F 아웃.]치익-
통신이 꺼지고 순식간에 다시 바람소리와 변종 신음소리만 가득한 곳에 남겨진 일행.
“사, 살았다….”
“살았다고. 저 빌어 처먹을 랜드 오브 데드 뺨치는 변종 소굴을 뚫고! 돌잡이로 스코프를 잡은 것 같은 그 저격수 놈들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으허어어어어어! 커어엉! 크어어어어어엉!”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진 사람들처럼 환호하는 일행들 뒤로 47구역 지원군이 변종을 쓸어버리는 폭음이 들렸다.
쿠아아앙!
“야, 밟아! 이제 신경 쓸 거 없어!”
“도, 돌아왔다! 47구역의 품에 돌아왔어어어!!!”
거의 검붉은 색으로 도색을 하다시피 한 트럭 두 대가 무너진 빌딩 숲 사이를 질주했다. 폭격으로 만들어진 개활지에 나와 그들이 마주한 것은, 대전쟁 시절 형식으로 만들어진 현장 주둔지였다.
10월 30일. AM 4:00 / 35구역 돔 주둔지. BDSM 합류 완료.
****
“박교수님?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더 쉬시지 않으시고.”
“쉴 시간이 있었으면 이렇게 서두를 생각도 안 했겠지요. 그래서, 와서 보니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주둔지에 도착하고 딱 세 시간. 정말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자고 난 다음 나는 곧바로 지휘관 막사로 찾아갔다. 새삼 느껴지는 게, 저 38구역 머저리 새끼들을 보다가 각 잡힌 47구역 돔 군인들을 보니 같은 돔이라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싶었다. 전투용 개조 차량 30대. 마찬가지로 전투용으로 개조한 트럭 10대와 그 안에 가득 실린 보급품. 지금만 해도 주둔지 밖에서 끊임없이 폭음이 울리는 게 보급이 넘치도록 있으니 아예 주둔지 근처의 변종 숫자를 줄여둘 생각인 것 같았다.
“해피 블라인드 자체의 전투력은 그리 신경 쓸 것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놈들의 근거지 주변에 상당히 거슬리는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직접 보시죠.”
미리 총장으로부터 언질이 있었는지 지원군 사령관임에도 내게 깍듯하게 존대하는 남자. 그가 내민 영상기록에는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5미터 남짓 되는 담장과 끝을 날카롭게 잘라낸 쇠파이프, 철사 등으로 만든 방어시설. 그 위에 거치형 석궁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고, 드물게 수동 터렛이 몇 개 박혀있긴 했지만 지금의 아군 전력으로는 크게 신경 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앞에 늘어선 변종들. 턱이 기형적으로 크거나, 풍선처럼 부풀어있는 등 제각기 다른 모습의 변종들이 그 어설픈 방어시설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전부 미확인 개체입니다. 3형이라고 보기에는 2형과 거의 흡사하고, 그렇다고 2형이라고 보기에는 또 개성이 확실하고…. 변수가 있다면 저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2.5형…. 제법 확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저렇게나 많이 모았나. 지휘관. 혹시 지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적 세력이 아군의 중요한 기술을 탈취해 광역 오염 병기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버블실드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병기에 당한 병사가 배반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총장이 어느 정도 알려주긴 한 모양. 허나, 전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이 지휘관으로서는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휘관. 지금 이 주둔지에서 내 명령권은 어느 정도나 되죠?”
“저보다 높습니다. 총장님께서 합류하게 되면 전적으로 박교수님의 판단을 따르라 하셨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전투 계획을 짜도록 해보죠.”
군용 홀로그램 작계도. 드론이 찍어온 영상을 토대로 3차원 지도를 만들어놓은 홀로그램 위에, 교수는 커다랗게 [일반 변종], [2.5 형], [38구역 집행부], [3형 변종 ? W, 발톱, 미확인] 이라는 글씨를 써넣었다.
홀로그램 작계도와 군용 막사. 군복 입은 사람들과 자욱한 담배 연기.
교수는 문득 6년 전 특작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안 좋은데.’
그 말은 곧 진득한 피냄새가 느껴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으니까. 누가 됐든 엄청나게 죽어 나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추론한 사실이 아닌, 죽고 죽이다 보니 피부에 배어버린 감각이었다.
****
짤칵. 챠각. 끼리릭-
“그들이 왔습니다.”
끼리릭, 끼릭. 지이익.
“리 쉬에. 듣고 있습니까? 더 늦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나도 압니다, 적응자. 비록 늙은이가 눈먼 이들의 수장이지만, 귀까지 먹진 않았으니. 저 무자비한 과거의 강철들이 세상을 박살 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해피 블라인드 중앙. 과거에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순수하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손수 만든 높다란 신전.
첨단의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해피 블라인드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교단의 신전 최상층, ‘눈’이라고 불리는 지도자의 방은 돔의 연구시설에 버금가는 첨단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콜렉터. 그녀가 혹…. 우리에 대해 무언가를 봤을까요?”
“아쉽게도. 그녀는 수집가이지, 예지자가 아닙니다. 아마 이 일이 끝나면 그녀는 결과를 수집해 갈 겁니다.”
“이겨내긴…. 힘들겠지요?”
“아마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47구역의 대응이 지나치게 기민했습니다.”
“그래요. 막을 수 없겠지요. 우리도, 렙터도, 그 누구도. 저 과거의 망령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겠지요….”
한아름 정도 되는 상자를 다시 조립하고, 봉합하고, 용접하는 노파. 그녀는 우물처럼 깊은 눈빛으로 그 상자를 쓰다듬었다. 조용한 맥박이 느껴졌다. 태동하는 새 시대의 맥박이.
꺼져가는 눈빛에 새파란 불이 붙었다.
“그러니 막아야 하는 겁니다. 렙터가 크게 패배했으니 당분간 그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없겠지요. 그 사이 그들은 세력을 늘리고, 오래된 지식을 계승하고…. 어쩌면 정말 과거의 성세를 일부나마 회복할지 모르니. 지금, 더 그들이 자라나기 전에 막아야 하는 거예요.”
뚜벅. 뚜벅. 뚜벅.
그녀는 상자를 품에 안은 채, 그녀의 옆에 선 하얀 양복의 남자에게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6년 전. 오르페우스를 연구하던 동료들이 모두 폭사한 그 날,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작은 망설임은 모두 사라졌다.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뒤틀린 세상. 그 구세계가 대부분 전소된 지금이야말로 세계를 바로잡을 유일한 기회이리라. 신이 내린 마지막 기회.
눈물로 피를 씻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기꺼이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다.
“저는 목자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양들의 대피를, 그리고 상자를 준비하는 동안 저들을 맡아주시길.”
“기꺼이. 사실…. 새로 사귄 형제들은 충동적인 부분에서 억제가 잘 안 되어, 타이르는 데 애를 먹고 있었으니까요.”
W의 기침하는듯한 웃음소리 뒤로 대여섯 명 정도 되는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부디, 오늘이 기억에 남을 가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형제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