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83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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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진짜 좆됐음을 체감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내 이름이라면 이를 부득부득 가는 적진 한가운데 고립됐을 때?
눈떠보니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와서 ‘선생님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함’을 알릴 때?
아니다.
정답은 ‘나한테 뭔 문제가 생겼는데 옆에 있는 친구 놈들이 웃지 못할 때’ 이다.
생각해보라고. 맨날 뭔 일만 터졌다 하면 찾아와서 ‘엌ㅋㅋㅋㅋㅋ 병신ㅋㅋㅋㅋ’을 외치던 놈들이 정색하고 찾아와서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힘내’ 같은 소리를 하는 순간, 24시간 [괜찮아 안 죽어]를 남발하던 천하태평 깡통 대가리도 ‘어? 죽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상태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게 조정이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는데, 그동안 이 기묘한 대기실에 왔다 간 사람들이 그랬다.
우선, 매일 옆에 붙어서 내 몸을 관리하고 있다는 행정부 연구원.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담당의로 선발된 체이샤라고 해요!”
“아, 예, 뭐.”
“우선 가장 걱정하시는 바깥의 몸 상태부터 설명해 드릴 텐데…. 혹시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마음의…. 뭐?
“그…. 마음의 준비까지 필요합니까?”
“….상당히?”
그런 말을 그렇게 해피한 표정으로 하지 마 이 여자야.
담당의라는 여자가 띄워 준 화면은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분명 내 기억 속의 몸은 왼손 때문에 접속기 뚜껑 안 닫힌다고 투덜거리던 기형팔이 달린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었는데 이건….
“데이터 뭐시기 부서에서 변종 사체도 취급합니까?”
“당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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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저게, 박교수님의 몸이라구요.”
…..망할. 의사 말 들을걸.
“….청심환이라도 하나 준비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여긴 접속기의 플레이 대기실인걸요?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충격에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저게 살아는 있는 겁니까?”
“‘저게’ 아니라 당신 몸이에요. 안에 잘 보이잖아요? 심장이 튼튼하게 뛰고 있는 거.”
“그게 특별한 장비도 없이 맨눈으로 보이니까 하는 소리 아닙니까….”
그녀가 내 몸이라고 말한 ‘그것’의 모습 그 어디에도 나의 형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온갖 기계 장비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검은 팔과 다리.
훤히 열린 복부는 강한 열에 노출된 듯 갈비뼈의 끝부분이 녹아내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 그나마 좀 형태를 유지한 내장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일단 놀랍게도, 유전형질의 99.9%는 인간의 것과 동일해요. 내장 기관이나 세포 조직도 그렇고. 아무래도 죽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화이다 보니 생명 활동과 관련이 없는 피부와 뼈, 손톱 같은 부분을 중심으로 변화가 진행되던 차에 ‘상자’의 활동이 멈추며 어느 정도 선에서 그 변화가 멈춘 것 같구요.”
“그니까…. 저게 겉부분만 싹 변한 거지, 알맹이는 사람이라 그거죠?”
“네에~ 그럼요!”
“내장 위에 뼈 껍데기가 있는데?”
“갈비뼈가 열 대 정도 더 자라서 덮었더라고요. 사람도 비슷한 희귀병이 있어요.”
“심장도 하나 더 있겠는데?”
“깨어나서 축구하시면 잘하시겠네요.”
빠드득!
….참자. 저 사람이 의사라잖아. 딱 봐도 정신 멀쩡한 인간 같지도 않은데, 여기서 두들겨 패버리면 내 손가락 한두 개쯤 슥 잘라버리고 ‘원래 그랬는데요? 님 나보다 변종 잘 아심? 학위 몇 개?’ 해버릴 수도 있잖아.
그나마 진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자가 내 몸의 영상과 함께 보여준 변종 바이러스 진행도 그래프 덕분이었다.
“이건 좀 혁신적인 건데, 바이러스 수치가 감소하고 있어요. 매우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물리적으로 유의미한 감소가 확인되기도 했구요. 조금씩 이지만 체조직이 꾸준히 회복되고 있기도 해요. 검은 부분은 그보다 배는 빠르게 재생되고 있고.”
“그럼 저 모습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음…. 네! 바이러스가 꾸준히 감소하고 회복이 진행중에 있으니까….”
“오오오!”
“….지금 속도로 보면 43년 8개월 쯤 뒤에는?”
야이 씨-
“사실 박교수님의 상태는 이런 상태가 되기 전부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한 사례였기 때문에 그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없어요. 변종 바이러스조차 그 유전자에 각인된 패턴과 전혀 다른 ‘살아있는 인간 + 변종’ 이라는 상태에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이고. 어쩌면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하고 몸을 빠져나와 다른 숙주를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르죠. 단세포 생물은 그들 기준에 YES면 활동하고, NO면 이동하는 그런 존재인데…. 박교수님은 YES 와 NO 사이에 걸쳐있는 상태잖아요?”
그 뒤로도 뭔가 이해 못 할 소리를 잔뜩 들었지만…. 아무튼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졌다.
지금 나가면 뭔가…. 좀 아니잖아. 생긴 것도 그렇고, 철제 프레임 같은 거에 고정되어서 커다란 방 중앙에 떡하니 세워져 있는 것도 그렇고. 되살아난다는 느낌보다는 에반x리온에 탑승하는 느낌일 것 같단 말이지. 박교수의 영혼을 흐물흐물하게 녹여서 저 안에 주입하면, 괴물이 눈을 칵! 뜨면서 크아아악 하는 괴성과 함께 도시 밖으로 사출….
‘딱 봐도 전투형으로 생겨서 성능도 발군일 것 같은데, 돔에 위기가 찾아오면 영 총장이 색안경 같은 걸 쓰고 와서는 [네 몸에 타라, 교수] 같은 소리를 지껄일지도 모르지.’
어찌 됐건 지금 당장은 저걸 내 몸이라 인식하는 데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찰나에 도착한 다음 손님이 영 총장.
“댁도 양반은 못되나 보군.”
“양반? 음…. 신사 말인가? 신사적이지 못하다라…. 사색을 방해했다면 미안하군. 지금 말고는 마땅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어쨌든 잘 왔수다. 뭔 사람들이 하나씩 면회 오는 거 보니까 진짜 입원한 느낌이긴 하네.”
영 총장이 가져온 소식은 바깥의 근황에 대한 것이었다.
“돔이랑 렙터랑 한 판 더 붙었다고? 걔네 다 죽은 거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그 미친놈들이 가동한 광역 학살기인가 뭔가의 표적이 렙터였다면서?”
“‘38구역 돔’ 일세. 그쪽과 우리는 완전히 갈라섰으니까. 사실 두 달 전 38구역에서 활동하던 자네가 보낸 보고에 따르면 렙터와 38구역 감찰부의 협력관계가 어느 정도 드러났었지. 그런데 자네도 렙터가 어떤 놈들인지 알 것 아닌가. 그놈들은 이 정도 받았으니 이 정도 해줘야겠다, 라는 상식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놈들인 거. 1을 받으면, 나머지 1을 빼앗을 생각밖에 하지 않는 놈들과 손을 잡다니. 미련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렙터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급진적이었다.
30번대 구역에 파견된 기계화 병사들은 그곳 감찰부로부터 ‘돔이 비었으니 약속한 대로 우리가 돔의 지휘권을 차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 라는 소식을 들었고, 그 얘기는 그대-로 렙터의 본부인 네스트로 넘어갔으며, 마침내 기회가 왔다는 것을 느낀 렙터는 곧장 43구역에서 철수, 네스트가 통째로 38구역 돔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렙터의 고질적인 약점은 실드 같은 첨단 장비가 부족해 환경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지. 과거 52구역 돔을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한 것도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해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였고.”
52구역은 렙터에게 함락당하기 직전 도시의 중앙 발전시설을 폭주시켜 도시째 자폭해버렸다고 한다.
그때 뜸 들이다 닭 쫓던 개꼴이 난 경험이 있으니…. 렙터는 다시 한 번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에 모든 걸 다 제쳐놓고 전력으로 38구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까? 대치 중이던 적이 빠졌으면 당연히 옆구리를 쳐야….”
“그럴 줄 알고 사람을 잔뜩 깔아놓고 갔더군. 우리가 정보를 입수하고 행동에 나섰을 때는 렙터의 지연부대가 이미 길목에 융단폭격에 가까운 킬존을 확보한 상태였네. 우리는 늘 넓은 영역을 적은 인원으로 수비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워. 또 생각보다 네스트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기도 했고.”
총장의 표현에 따르면 ‘지난 전투로 규모가 줄어든 만큼 기민해진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38구역 측에서 방해전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47구역의 연락을 모두 씹어버려서 습격을 알릴 방법도 없었으니….
그렇게 전력으로 38구역을 향해 달려간 렙터의 네스트, 그 본진을 이루는 엄청난 숫자의 전쟁 기계들은 앞에 걸리적거리는 변종을 모조리 불태우며 신속하게 38구역에 도착했고, 그 정신 나간 행정총장이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서둘러 도시로 진격을 감행한 것이다.
“기가 막힐 정도의 운인지, 아니면 그쪽 행정부 안까지 스파이를 심어놨는지.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렙터는 인근 스캐빈저, 방랑 생존자를 모조리 죽여버린 라디오 타워의 첫 번째 파장이 울려 퍼질 때 모두 38구역 돔의 도시 실드의 경계 안에 들어가 그 영향을 피할 수 있었고, 3번째 파장이 울려 퍼질 때쯤 순식간에 도시를 탈취해 그 안의 모든 것을 부수고 약탈할 수 있었지.”
지금은 절대 다시 만들 수 없는 도시의 심장, 중앙 발전기의 핵심 부분을 비롯해 거의 도시를 통째로 분해해서 뜯어간 수준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 안에 살아가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다행인 것은 그들이 배를 불리고 발걸음이 느려진 틈을 타 뒤를 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네. 아군의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상자’였어. 그 위력을 겪어 봤으니 그것마저 렙터의 손에 들어가면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했거든.”
총장은 치열한 교전 끝에 엑소슈트 팀이 보급대를 어거지로 밀어내고 상자를 탈취했음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내 손에 반쯤 박살나고, 라디오 타워의 고출력 에너지를 받아내며 폭발하기 직전까지 과부하되고, 또 그 상태에서 렙터의 습격으로 다시 한 번 박살이 난 상자의 파편.
폐허가 된 38구역 돔.
그리고, 38구역 돔의 도시급 실드와 그것을 가동할 발전기를 분해해서 들고 튄, 이제 그 어떤 극한의 험지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된 진짜 이동요새 뉴-렙터 네스트.
당연하지만 도시급 실드에는 은폐장 기능도 탑재되어있다. 당연히 아예 건물을 세워 도시에 뿌리 박고 운용하던 때보다는 그 효능이 한참 덜하겠지만 네스트의 규모가 돔 정도 크기는 아니니까. 나름의 기술 인력도 있고. 개선과 연구까지는 불가능해도 운용 및 유지 보수 정도는 가능하겠지.
무소음에 불가시로 움직이는 살인 전차 도시라니. 인구 200 꽉 채운 아비터 탱크냐.
“….대환장 파티가 따로 없군요.”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네.”
총장은 못 보던 사이 폭삭 늙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 양반은 그걸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지. 나보다 더 답답하겠군.
“그렇게…. 제 목표를 취한 렙터는 인근의 난민을 모조리 삼키고 30번대 구역 안쪽으로 잠적했다네. 우리는 이제 레이더에조차 걸리지 않는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24시간 촉각을 세워야 하는 처지가 됐고.”
여기까지가, 총장이 말한 ‘두 번째’로 심각한 문제.
“두 번째? 그럼 첫 번째는 뭡니까?”
“그야 당연히 말도 안 되게 불어난 변종들의 문제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면…. 얼마나?”
“….전쟁이 끝난 직후를 기억하나? 전쟁으로 죽은 군인들이 죄다 변종으로 살아나서 줄지어 다니던 시절? 그때랑 비슷하네. 겨우 변종을 밀어내고 인류의 생존 구역을 넓혀나가나 했는데…. 미친놈의 헛짓거리 한방에 다시 사냥당하며 숨어 사는 처지로 바뀌어버렸지.”
“워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보다 여기저기 숨어 살던 생존자들은 훨-씬 많았고, 그들은 그 숫자와 동일한 양의 2형 변종이 되어 산 사람을 찾아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자네의 그 희생…. 덕분에 이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기록을 보니 완성된 상자는 실드 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이건 그 정도는 아니니까. 기록처럼 3형과 2.5형을 그리 많이 양산하지도 않고.”
덕분에 사람들은 생산 활동을 멈추고 죄다 자기 쉘터에 틀어박혀 비축 식량을 까먹고 있거나 아니면 목숨 걸고 그 사이를 돌파해 돔 같은 대형 집단의 근처로 이주하고 있다고.
“자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충고하자면, 지금은 굳이 나오지 않는 편이 속이 편하다고 장담하지. 안에서 좀 쉬고 있게. 휴가라고 생각해.”
그 뒤로 내가 한 일에 대한 보수와 산재처리, 용역비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의 보수를 요구했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가하고 떠났다. 오히려 돈이라도 줘서 마음의 짐을 좀 덜었다는 표정이었다.
다음으로 찾아온 사람은 에젤. 군복을 입고 얼굴에 붕대를 감고 나타난 녀석은….
“으어어어어어어어엉! 혀어어어어어엉!!! 씨발 뒈진 거 아니지? 이거 무슨 가상 PTSD 치료 프로그램의 일환 같은 거 아니지? 형 맞지? 교수 형! 으허허흐어어어어 혀어어어어엉!!!”
처음부터 징그러울 만큼 달라붙으며 울어 제끼기 시작했다.
따악!
“아오, 이 새끼가 쳐돌았나! 간게! 정신 안 차려? 형은 뭔 얼어죽을 형이야! 나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훌쩍! 하, 하지만 형이 분명 그때 나보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내가 언제!”
“….아.”
왈칵!
그 순간, 에젤은 아예 바닥에 엎드려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내 불찰이네, 내가 무능하고 느려터진 병신이라 형님이 이 꼴이 났네 하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하는데, 무슨 공사장에서 들릴법한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박아대는 통에 뭔진 몰라도 일단 말리기로 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그만해 이 미친놈아!’ 한소리 하니까 애가 발딱 일어나서 무릎 꿇고 정좌한 자세로 내 앞에 앉았으니까.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게 더 무서웠다. 아니 도대체 두 달 전에 뭔 일이 있었길래!
“….얼굴은 어쩌다 그렇게 됐냐.”
“으으으으…. 훌쩍! 이거? 별거 아냐. 썅년이 내 얼굴을 지졌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 기억 속 삐뚜름하고 장난스러운 친구의 얼굴이 흉하게 녹아내렸을까.
바닥에 머리를 박다 풀린 붕대가 흘러내리고 나타난 얼굴은, 심한 화상에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진짜 별거 아니야. 행정부에 좋은 약 많은데, 그거로 꾸준히 치료받으면 된대.”
“야, 어떻게 그게 별거 아니야 임마! 그렇게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의 화상을….”
“지금 형 상태랑 비교해볼까?”
“아.”
맞다. 난 뒤지기 직전까지 다쳤지. 쟤 입장에서는 별거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겠구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고인에 가까운 수준이니까.
아무튼 에젤도 좀 어르고 달래고 난 뒤에 얘기해보니 녀석은 돔에서 나와 정식으로 BDSM에 합류했다고 한다.
“누구 맘대로? 싫은데?”
“아 왜!”
“아니, 돔에 잘 남아 있었으면 필요할 때마다 불러서 써먹을 수 있는 엑소슈트 1 + 1 이 우리 집 밥충이에 합류했다는데 그럼 좋겠냐! 돌아가! 가서 총장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려!”
“크으윽, 이 매정하고 신랄한 느낌…. 역시 형이야! 너무 그리웠어!”
“뭐, 뭔 미친….”
알고 보니 두 달 전에 얘도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생각이 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냥 정의에 대한 관념이 좀 바뀌더라고. 그렇잖아? 물론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오겠지. 길 가다 만난 어린아이에게 적 포탄 낙하시 대피 요령을 물었을 때 ‘그게 뭐에요?’ 하고 되묻게 되는 날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부모님은 어딨니? 하고 물을 때 당연히 둘 다 죽었으리라는 생각 없이 순수하게 물을 수 있는 날이. 그런 날이 오면 오래된 옛 정의에 맞춰 사는 것도 좋겠지.”
“….”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요즘 애들은 구구단보다 모잠비크 드릴을 배우고, 장난감 대신 칼을 선물 받아. 우린 그런 시대를 만든 어른으로서 차갑고 축축한 정의를 짊어질 의무가 어느 정도는 있는 거야.”
“너…. 후우우. 그래, 대충 알 만하군.”
신념의 변화. 그리고 현재 돔이 처한 상황. 난민이 하루에 수백 명도 넘게 몰려든다고 했지.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사람은 이기적이고 독하게 변한다. 돔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을 테고, 그만큼 감찰부의 운신에 제약이 걸린 상황에서 녀석은 집단을 나와서라도 나름의 정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
“응? 난민이 뭐? 아닌데? 영 총장님이 있는데 그런 불순분자가 있으면 바로 언더돔 인간 발전기 행이지. 나 이안이랑 같이 전차 타고 감찰부 관사 들이받아서 쫓겨난 거야. 돔이랑 BDSM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적대해야 한다면 뭘 고르겠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못하겠더라고. 그때 결론 났지 뭐.”
에라이,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남은 시간 동안(에젤 말로는 1인당 정해진 면회 시간이 있다고 했다) 대충 잡담이나 나눈 뒤 매달리는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보내버리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생각나 녀석을 붙잡았다.
“야. 벡스는 왜 안 오냐.”
“히끅!”
그 말에 불에 데인 것 마냥 화들짝 놀라는 에젤.
‘….설마?’
“어, 음, 벡스…. 벡스 말이지…. 아하하하, 그, 그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나?’
“벡스 죽었어?”
“아아아아니! 안 죽었지! 살아 돌아와서 막 총도 쏘고 칼도 휘두르고 얼마나 활기찼는데!”
“그럼 왜 안 오는데. 걔 성격상 제일 먼저 올 것 같았는데.”
“그…. 좀 바빠! 응! 눈썹이 휘날리게 바빠서 그래! 아이고, 나 시간 다 됐다! 다음에 또 올게! 안녕!”
띠링-!
[Player ‘간장게이바’ 님이 로그아웃 하셨습니다.]달라붙을 때는 언제고 황급히 도망쳐버리는 에젤.
녀석이 왜 그랬는지는 그날 저녁에 방문한 벡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미, 미안….해, 햅번. 급하게, 물, 피가 더러워서, 자꾸 귀찮게 달라붙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다시 되돌아 가버린 녀석의 말투.
날 찾아온 지인들이 웃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농담을 못하게 되었다.
벡스는, 상태가 정말 심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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