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9
Chapter.3 그 한 줌의 은화를 위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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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득, 푸쉬익!
접속기의 문이 열리고, 순환 공기가 한 번에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땀에 푹 절은 몸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교수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발가락, 발목, 손목, 손가락, 주먹도 쥐어보고, 목도 살짝 풀어보고. 굳은살 박인 손과 단련된 몸 특유의 탄탄한 텐션 감이 느껴졌다.
“주인니이이임! 돌아오셨군요!”
‘돌아왔다.’
접속기 밖에서 호들갑을 떠는 코듀로의 목소리가 이곳이 현실임을 일깨워줬다. 돌아왔다. 돌아왔다, 라…..
따악!
“아코!”
“돌아오긴 임마. 어디 이 세계 갔다 온 것도 아니고. 게임 한판 한 것 가지고 유난 떨기는.”
괜히 코듀로의 드론에 딱밤 한번 때렸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뺐다. 붕대, 붕대가 어디있….
“아, 멀쩡하네.”
“예? 그야 당연하죠. 고객 응대 메뉴얼에 따라 아픈 척 해준 거지, 드론이 딱밤 맞았다고 다칠 리가 있습니까?”
아니, 너 말고. 내 손가락.
“지금 몇 시냐.”
“09 : 48 PM입니다.”
“인 게임으로 28시간 정도 했나?”
“그 정도쯤 됐을걸요?”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게임 속에서 하루, 현실에서는 여섯 시간이 채 안 됐는데 벌써 몸이 적응하다니.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몸이 저절로 반응해 버린다. 접속기 문 닫을 때도 살살, 먼지투성이 소파에 누울 때도 조심스럽게-
풀썩-
“응?”
뭐야. 이거 왜이래.
24시간 먼지에 쩔어서 코듀로랑 농담으로 ‘적이 침입했을 때 연막탄 대신 이 소파를 던져도 되겠다.’같은 소리가 나올만큼 먼지가 풀풀 날리던 소파가….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다시 한번 엉덩이로 소파를 눌러보았다.
푹-
먼지는커녕 살짝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원인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소파 위에 앉자마자 옆에서 코듀로의 드론이 자기좀 봐달라는 듯이 엄청 어색하게 파닥거리고 있었거든.
“어…. 코듀로?”
“넵?”
“너 나 게임하는 동안 뭐 했냐?”
“아아, 이거요? 아이참, 별거 아닌 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쑥스럽긴 한데….”
뭔데.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위잉-
파닥거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코듀로의 드론은, 거실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오랜만에 청소를 좀 했습지요! 헤헤.”
화아아악-!
멍하니 코듀로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교수의 눈이 환한 실내에 찌푸려졌다.
눈부셔. 집에서 광채가 난다고. 나 여기 7년 살았는데 이런 거 처음봤어.
24시간 먼지가 둥둥 떠다녀서 거꾸로 엎어두어야 했던 그릇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7년 동안 원래 누런색인 줄 알았던 벽이 하얗게 빛나고, 습한 내부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유리 벽에 먼지가 들러붙어 매일 두시간 씩은 닦아줘야 했던 온실 내벽도 투명하게 빛나고, 아무튼 눈에 띄는건 죄다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이걸…. 니가 다했다고?”
“엣헴! 기계는 부지런하지요.”
아니, 나는 그걸 물어본 게 아니야. 누군 청소 안 해본 줄 아나.
“….실드 투과율 몇 퍼센트까지 조절했냐.”
“3%. 미세먼지 빼고는 전부 차단했습니다.”
평소에는 30%로 큰 덩어리 빼고는 대충 다 받았다. 출력 높이면 전력 소모량이 늘어나니까.
“조명은?”
“고장 난 거 빼곤 다 쓰고 있죠.”
“물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날씨 때문에 온실 이 좀 말랐잖아. 그때 비축해둔 물 많이 썼을 텐데? 이렇게 깨끗하게 만들었으면….”
“아참,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분 좋게 날개를 파닥이던 코듀로의 드론이, 어딘가에서 물에 젖은 흰 수건을 하나 가져왔다.
“자요. 게임하느라 고생하셨는데. 땀 좀 닦으세요.”
“….나 샤워할 물도 없다고?”
접속기는 들어가서 ‘링커’라고 불리는 초크 형 단말기를 목에 거는 즉시 접속기 내벽이 부풀어 사용자의 체형에 맞게 착 달라붙는다.
냉방 시설이 내장되어있긴 한데, 작년에 그 냉방기기가 충전형 배터리를 쓴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냉큼 뜯어서 온실에 넣어버렸거든.
덕분에 5평 남짓한 감자밭 하나를 더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접속기는 찜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코듀로는 그렇게 내가 알뜰살뜰하게 아끼고 또 아껴온 전기를 마구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드득.
“워워워, 화내지 마세요! 손 멈춰! 인간은 지성으로 대화한다!”
“안 때려. 화, 안 났어.”
나도 몰랐는데,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화도 안 나더라고. 그냥 궁금할 뿐이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짓을 한 거야? 응?”
“후후후후….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주인님도 제가 본 것을 보면! 아이구 우리 AI잘 했다, 하실 테니까요! 자, 보시죠!”
자신만만한 코듀로의 목소리와 함께, 녀석의 드론에 내장된 작은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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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rrymoode0385’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가스맨’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ㅂㄷㅅㄹ’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님이
+ ….님이
+ …
– 가스맨 : 낚시인 줄 알면서도 들어왔는데, 진짜냐? 이거 진짜라고?
– garrymoode0385 : is that real? that fucking white one is roaming war sight? and defeated it? guys, it’s 124 solar year!
_ 스피드 웨건 : yes. ridiculously, it’s real.
– 하이웨이나초맨 : 뭐여. 양형이 뭐라고 하는 거임?
– garrymoode0385 : Holy Mama!
– 스피드 웨건 : 124년도에 하얀 놈이 돌아다니고, 그걸 이긴 게 진짜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함.
– 간장게이바 : 샬롯은 무적이고 교수는 신이야! 샬롯은 무적이고 교수는 신이야! 샬롯은 무적이고 교수는 신이야!
– g3854 : 나작방 크냐? 크냐??
– Jokass : 진짜 아쉽긴 하다. 에데오르나를 여기서 잡았으면 월드 클리어 확률이 엄청 올라갔을 텐데.
– 무카바 : 내 말이. 흑마 시대 초기에 저런 고티어 뮤트를 뽑았다는 것 자체가 여왕 입장에서는 엄청난 출혈을 감수했다는 건데, 저거 잡았으면 겜 그냥 엎어졌지.
– ㅂㄷㅅㄹ : 그런데 마지막에 샬롯은 왜 저걸 그냥 보내준거임? 킹스 나이트면 그 스킬 있을 거 아냐. 결투 신청. 15분 강제 1대1 전투 들어가는 그거.
– 흥안만두 : 그거 최대 체력 5% 소모하잖아. 중반에 투창 맞은 게 데미지가 너무 커서 소모 값이 모자랐겠지. 아니면 진짜 죽기 직전이라 막고라 뜨면 죽을 것 같아서 안 했을 수도 있고.
– 홀리 : 너무, 너무 울어서 힘들어요….ㅠㅠ 마지막에 샤를롯이 살아남은 기사들 목을 베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소리하나 안내고 눈물만 흘리는데…..ㅠㅠ
– 하이웨이나초맨 : 부끄러워 하지 마라. 저런 기사들을 보내는데 눈물 한 방울 정도를 사치라고 할 이는 없을 테니.
– takealook : 캬, 명언에 치인다.
– Jokass : 그대로 두면 제 발로 여왕한테 걸어갈 테니까. 이성이 남아있을 때 그래 주는 게 맞지.
– 노루Drug해요 : 나는 봤다! 주변 정리하고 몰려온 병사들에게 부축받으면서, 용병들이 업고가는 교수를 바라보는 샬롯의 눈빛을! 그건…. 그건 공략 각이었어!
– Jokass : 넌 제발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아래쪽 대가리 말고 위쪽 대가리로 생각을 해줄 순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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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뭐여….”
“뭐긴요! 속된 말로 ‘떡상’ 이라는 겁니다! 제가 확인해보니까 주인님이 로그아웃 선택을 하고 대기하던 중에 정신을 잃어버리셨더라구요! 그래서 주인님은 모르시겠지만, 사람들은 전투의 결말까지 생생하게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저렇게들 흥분한 거구요.”
“그럼…. 이긴 거야? 샬롯이?”
“에…. 투란 병력을 5할 이상 잃고 기사단은 전멸했지만…. 일단 여왕님은 굶게 생겼으니. 이겼다고 볼까요?”
교수는 대화창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았다.
대충 봐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평소에 보이던 사람들의 대화도 보였지만, 상당수가 처음 보는 아이디였다.
“치, 칠백? 대화방 인원이 칠백 명?”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자, 계속 보자구요!”
코듀로는 얼이 빠진 내 얼굴 주변을 휙휙 돌아다니며 주의를 끈 다음, 화면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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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 : 부정적 특성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by 데달루스
매일 보는 놈들이니 인사는 생략함.
최근에 정신 나간 방송을 하나 보고 왔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걸 봐서 글을 쓰게 됐음.
알다시피 이 게임은 상~당히 접근성이 취약함. 전 세계에 GG안하는 사람이 없는데 뭔소리냐고?
기준을 좀 높이자고. 그냥 게임을 하는 사람 말고, 제대로 파고, 연구하는 고인 물이 없다는 거야.
난이도는 거지같이 어려운 데다가, 계정 하나 파는데 들어가는 돈이 무려 50만 실링. 돈이 썩어나는 사람이 아니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라는 말이지. 통계적으로 80% 이상의 플레이어가 여기 커뮤니티에서 추천하는 스타팅 조합을 사용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면에서 어제 본 ‘professor’의 방송은 충격이었음. 댓글에 캐릭터 시트 복사해서 올려놨으니까 참고하시고.
조건부 플레이어야. 음~ 조건부. 향수가 느껴지는 단어구만. 조건부 리얼리스틱인데, 캐릭터가 아주 개박살이났어. 뭐, 설명하자면 끝도 없으니까 다 넘기고.
[ 정신쇠약 ] 이라는 특성 말인데, 이거 생각보다 물건이더라. 니들이 알고있는 그거 맞음. 랭커 캐릭 한방에 폭파시킨 그거. 캐스팅 불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두통, 정신 사나움….. 최악 중에 최악이지. 그런데 그게 ‘리얼리스틱모드’랑 맞물리니까, 시너지가 죽이더라고?거의 뭐 전천후 레이더야. 주변에 있으면 시야에 안 들어오는 게 없어.
궁금해서 알아보니까 일반 모드에서 [ 정신쇠약 ]은 옛날에 그 PC 화면에 오류 메세지 도배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온다고 하더라고.
이게 리얼모드로 넘어오니까 플레이어 머릿속에 직접 때려 박히는 걸로 변한 거지. 물론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건 플레이어의 역량이겠지만, 그래도 부정 특성을 저렇게까지 잘 활용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professor’라는 플레이어한테 찬사를 보내겠음.
방송 재밌더라. 다들 가서 한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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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이 글이 올라온 게 10분 전입니다. 겨우 10분! 이 조회 수를 봐요. 이제 된겁니다! 우린 성공했다고! 이제 거렁뱅이 생활 끝이라, 이 말입니다!”
“글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건…. 확실히 먹히겠군.”
그냥 게시글도 아니고 인기 글까지 올라갔으니 노출량이 장난 아닐 것이다. 방송에 유입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나겠지.
“그! 래! 서! 실컷 고생하고 온 주인님을 위해 제가 있는 자원 없는 자원 싹싹 긁어모아서 환경 정리 좀 했습니다! 이제 저어~기 천상계 랭커들처럼 몇천 명, 몇만 명 씩 끌고다니면서 방송하게 되실 텐데, 돈이 문젭니까?”
“음….어…..”
문제지. 그렇게 이슈가 된 캐릭터 보러왔는데, 그거 지금 죽었어. 대형 방송인이 아니라 대형 사기꾼이 되게 생겼다고.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코듀로가 또 뭘 주섬주섬 하더니 안쪽에서 낡은 종이 쪼가리 하나를 꺼냈다.
“주인님, 이거 기억나시죠? 버킷리스트.”
“아, 저번에 그….”
“예에~ 맞습니다! 재작년에 우울증 빡쎄게 와서 죽네, 사네 할 때 제가 이거라도 한번 해보라고 드린 거 있잖아요.”
아, 기억난다. 온실에 병충해가 와서 작물 다 말라 죽고 바퀴벌레 주워 먹고 살던 때였는데.
우울증으로 맛이 가서는 실실 웃으면서 생각나는 대로 막 써재낀 흑역사 덩어리 였지 아마.
“그거 내가 버리라고 하지 않았냐?”
“분명 그런 명령이 입력은 됐습니다만, 사용자 의료기록으로 처리해서 우선순위 바꿔서 저장했지요.”
“이런 씹-”
“다 충심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충심. 아무튼, 저희가 이렇게 갑부가 되었으니 이제 하나씩 지워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꺼냈습니다.”
교수는 티 없이 순진무구한 코듀로의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AI 아니야, 저거. 누가 조종하고 있거나, 귀신이 들린 게 틀림없다고.
“에휴. 알았다. 줘봐. 하나씩 해볼게. 시간 나면. 여유 생기면.”
교수가 한숨 섞인 손을 내밀자, 코듀로는 그대로 버킷리스트를 뒤로 숨겼다.
“음? 뭔데. 하라며.”
“아,하. 기다려 보시죠.
저 같은 하우징 AI의 존재 이유가 뭡니까? 사용자의 편의성 증대잖아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근검절약이 뼛속에 스며든 주인님이 이 버킷리스트 위에 올라온 탐욕스럽고 어두침침한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할 것 같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지끈-!
뭐야, 이 익숙한 위기감은. 불안하다. 저 자식 말 길어지면 항상 뭔가 큰일이 터졌는데.
“너…. 설마…..”
“옙! 15번부터 32번까지, 적혀있는 것 중에 당장 살 수 있는 품목은 다 구매했습니다!”
오, 마이, 갓.
“야아아아아아악!!!!!!”
“왜, 왜요! 이것 봐요! 오늘 하루 벌어들인 실링이 자그마치 8만! 8만이 넘는다구요! 원래 이런 쪽은 그래프가 산술 그래프가 아니라 기하 그래프로 올라가는거 몰라요? 내일은 10만, 모래는 20만, 일주일이면 100만! 200만!”
“그, 그래서. 그걸로 다 산 거야? 8만 실링으로?”
“아뇨?”
교수는 숨을 탁 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아직 못 샀지? 대충 기억해도 그때 버킷리스트에 쓴 게 한두푼 하는게 아닌데-”
“돔의 마켓 플레이스 사이트에 플레이어 정보 올려주니까 방송 잘 보고 있다고 하면서, 외상으로 보내주던데요?”
콰앙!
“꿰에에엑!”
날개가 박살 난 코듀로의 드론이 비참한 소리를 내며 추락했다.
“왜, 왜에에에!!!”
“음? 뭐 어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손에 닿는 거 전부 산 것 같은데. 드론 수리용 부품도 잔뜩 샀을 거야. 맞지?”
“어….음…..”
콰악!
“그럼 문제없네?”
“그, 그게…. 없다고 할지…. 있을지도 모른달지으아아악!”
그 뒤로는 이성을 잃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주먹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같은 소리를 했던 것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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