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94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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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흠. 상당히 많이 좋아졌구나. 그럼 훈련은 이쯤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겠느냐?”
“갸,갸사하으다….”
자그락, 자그락,
박살난 이빨이 혀를 찌르는 터라 발음이 마구 뭉개져서 나왔다.
두꺼운 나무 바닥 속에 박힌 머리를 들어올리자 볼이 찢어진 곳으로 바스라진 이빨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보였다. 와장창 쏟아지는 이빨과 이 뿌리에서 시큰하게 올라오는 단단한 감각.
‘으. 상어도 아니고.’
직접 겪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징그러운 장면인데 하물며 앞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뭉개진 안구가 자라나는 감각에 한참 눈을 비볐더니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너덜너덜해진 내 몸을 훑어보고 있었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제법 장수했다고 여길 수 있는 나로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로구나.”
“예,예. 좀 징그럽긴 하죠. 무슨 상어도 아니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손으로 분지른 사지와 으깬 살점이거늘. 그리 여상스러울 것도 없지.”
자랑이다 이 인간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네 전투의 방식을 말하는 거란다. 빠르고 공격적인 로 하람 수도사들의 권격에 다소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육체라. 재미있는 조합이다. 덕분에 나도 제법 등골이 서늘했지.”
“아, 예….”
“음? 기뻐하지 않는 게냐? 70년 전에도 내게 몸 쓰는 방법으로 칭찬을 들은 이는 거의 없었는데.”
그게, 좀 애매해서. 왜냐하면 나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거든.
아침에도 그렇고, 지금 밥 먹고 한 번 더 끌려 나와서도 그렇고.
온몸에 힘이 다 빠지도록 용을 쓰고 나니 확실히 느껴졌다.
내 움직임 자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기억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대주교가 줬던 그 스킬 북…. 광명권격이라고 했었나? 분명 검술이나 무투법 종류는 시스템 어시스트 정도 효과로 끝이었던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는 자석에 밀려나는 느낌으로 몸을 검술의 행로를 이끌고 여러 강화효과를 주는 게 일반적인 검술, 권법서 형 스킬의 효과였는데.
지금 가만히 떠올려보니 그게 지금 내 머릿속에 다 들어와 있었다. 막 ‘오, 이건 여기서 이렇게 하면 되는군!’ 하는 식의 기억이 아니라 압축된 파일을 통째로 드래그 앤 드롭 해놓은 것처럼. 배운 기억하나 없는데 내 무의식 한켠에 분명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죽자고 손을 뻗을 때 자연스럽게 손이 그 투로를 따라갈 정도로 아~주 깊숙이.
‘아마 반쯤 NPC에 가까운 상태라고 했던 것과 관련이 있겠지. 이 세계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방식으로 나도 생활하게 됐으니 말이야.’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GG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동감 넘치는 NPC들이 이곳을 거쳐간 유저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정했을 때,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멸망 이후에는 돔의 생산라인에서만 일하다 죽은 A씨의 데이터’
를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알고 보면 정이 많은 여관주인 – 정체는 은퇴한 소드마스터’
이런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들어온 스킬처럼 자연스럽게 기억을 주입하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기억을 데이터화시켜서 통째로 저장도 하는데 편집하는 정도야 뭐.
‘음, 기억밖에 없는 사람의 기억을 마구 주무른다니. 상당히 무섭긴 한데…. 솔직히 쬐끔 흥분되긴 하는걸?’
어쩐지 세계관 최강자급 히어로 유닛이랑 붙는데 몸이 잘 따라붙는다 했더니. 대모님이 손속에 사정을 좀 뒀다고 해도 이런 업그레이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수준의 하이 클래스 전투였다.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고도 ‘내가? 이걸?’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만약 이 삽입된 기억이 나중에 밖에 나갔을 때도 따라온다면?
평생 총잡이로 살아오며 격투는 암살이나 그래플링 정도만 교양으로 익힌 내게 300년 묵은 엘프 괴수랑 들이받아서 버틸 정도의 근접 격투술이 생긴다면?
훅, 후훅!
나무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주먹을 한번 휘둘러봤다. 설명에 ‘빛의 속도가 어쩌구’ 하던 것이 거짓말은 아닌 듯 빠르게 끊어치듯 날아드는 주먹.
‘광명 뭐시긴지는 모르겠고. 크라브마가랑 절권도를 반쯤 섞은 느낌인데….’
이걸 그대로 가지고 나간다고 상상해보자. 뭐, 사람 몸이야 좀 걸린다니까 로봇 탑승하는 것 마냥 그 3형에 가까운 원래 몸에 돌아간다 치고.
커다란 연구실이 비좁아 보일 정도에 그 죽어가는 모습만으로도 생전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을지 상상이 되는 괴물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강인한 육체로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막 전차탄을 위빙으로 흘려보내고 로우킥으로 궤도를 끊어먹고, 어퍼컷으로 전차 포탑을 뚜껑 따듯 날려버리고….
“오오, 개쩔어.”
미쳤다. 로망이 끓어오른다. 만약 밖에 나가게 된다면 한 몇 개월 정도는 영상에서 봤던 그 괴물 몸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어렸을 때 봤던 로봇 만화처럼 말이야.
솔직히 벡스 녀석, 딸랑 칼 한 자루 들고 기어들어갔다가 금방 피투성이로 나와서는 [클리어] 같은 수신호 갈길 때 좀 멋있었다고. 나도 그런 거 해 보고 싶었단 말이다.
‘나가고 싶다. 나가서 확인하고 싶어!’
물론 지금 당장은 어림도 없는 꿈이다. 이 3월드를 어떻게든 클리어해야 해결책이 나올 판이니까.
뚜둑, 우드득! 드득!
“끄-으으음. 어우 허리야.”
“원 녀석도. 이리 나이를 먹은 나도 가만히 있는데 어린 네가 그러느냐?”
“나이에 상관없이 등허리가 활처럼 휠 정도의 킥을 맞으면 다 이렇게 됩니다만. 아, 아닌가? 보통은 그런 거 맞으면 죽으니까.”
끊어지고 돌아갔던 척추가 슬슬 제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교수는 몸을 일으키며 대모에게 말했다.
“으으으으. 대충 얘기할 정도로 회복은 됐으니 이제 그 ‘본론’이라는 것으로 들어가 보자구요. 설마 진짜 줘 패고 싶어서 따로 부른 건 아닐 거 아닙니까.”
분위기로 보니 대모님이랑 내려가긴 글러먹은 것 같고.
쉴 만큼 쉬고, 일행도 여기까지 넘어오면서 소모한 체력을 대부분 회복한 것 같으니 이제 일해야지. 로드릭에서는 지금도 죽자고 달려드는 뮤트를 막고 있을 텐데.
내 말에 대모님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짓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내 옆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래. 언제까지고 놀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하기에 앞서 하나 물어보고 싶구나. 당장 엘프의 숲을 찾아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쉬운 방법이 좋느냐, 아니면 어려운 방법이 좋느냐?”
으음. 마치 ‘나쁜 생각이 떠올랐어!’ 같은 짓궂은 표정의 대모님이라니. 이건 또 무슨 얘기이실까.
“그야…. 당연히 쉬운 방법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원군을 받아 로드릭으로 내려가려면?”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히죽 웃는 대모님.
“쉬운 방법이라. 정말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듣고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아침에 갈비뼈가 24등분 될 때부터 이미 여기 온 걸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말해주시죠.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그야…..”
.
.
.
.
.
켁.
이어지는 대모님의 말에, 나는 과거로 돌아가 이 일에 뛰어든 내 자신을 마구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번에도 대모님 말씀이 옳았다. 그 해법이라는 거,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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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오래 걸리는데?”
“음. 저 대모라는 엘프도, 대장도 한가락씩은 하는 사람들이니. 여러모로 나눌 대화가 많겠지. 입으로 하는 것이나, 주먹으로 나누는 것이나. 나무 조각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니 후자에 더 가깝겠군.”
아침 식사가 끝난 뒤.
교수가 대모님에게 끌려가 ‘친근함과 연장자에 대한 예의의 차이’ 에 관해 피가 튀기는 명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느긋하게 아래에 남아 주변에 있는 엘프들과 교류하거나 마을에서 사들인 엘프의 물건을 정리하는 등 각자 시간을 보내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첫날 그랬던 것처럼 스르륵, 하고 나무 바닥이 줄기를 타고 내려오더니 거기서 아주 똥 씹은 표정을 한 교수와 대모가 내려왔다.
웃지 않는 박교수라니. 오트만은 좋지 않은 조짐을 느꼈다. 교수는 특별히 감출 때가 아니면 표정에 그의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었으니까.
위에서 내려온 교수는 근처 나뭇가지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로 피투성이 얼굴을 박박 닦아내더니, 일행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으으음. 꼴을 보니 고생한 것 같군 그래. 그래서, 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가? 엘프의 숲을 우리에게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셨나? 안내인을 붙여주신다고?”
“그게, 좀 복잡하게 됐습니다 그려.”
“복잡하다니?”
재차 물어오는 오트만의 말에 교수는 얼굴을 팍 찌푸리며 답했다.
“모른대요.”
“….응?”
“대모님도 엘프의 숲 안에 그들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엘프들의 의식 공동체를 떠나온 순간부터 숲의 결계 안쪽으로 들어갈 자격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구요.”
“그, 그럼 큰 일이 아닌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허비한 시간이 며칠인데 이곳 엘프들도 모른다니!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서부의 사막을 향해 방향을 돌려야 하는 겐가?”
“그우우. 더운 곳, 싫다. 숲이 좋다.”
“노툼의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네. 사막에 사는 친구들은 죄다 영혼에 이상한 것이 박혀있어서 볼 때마다 불쾌하단 말이야.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옛것의 파편이라니. 으으음. 사막 국가로 가고 싶진 않은데.”
오트만의 말에 웅성거리는 일행들.
하긴, 당장 로드릭이 무너져버리면 블루라인 동부 국가 전체가 전장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 또 먼 길을 돌아 사막으로 가는 것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뻔했던 것이다. 위기가 다가올수록 국가간 경계는 삼엄해지고 치안은 불안해지며 그 모든 것이 먼 길을 이동하는 여행객의 발목을 붙잡을 테니까.
“그건 아닙니다. 말했잖아요. ‘복잡해’졌다고. 아예 대모님이 말로만 도와준다고 해놓고 ‘몰라서 못해~’ 했으면 그냥 일이 틀어졌다고 했겠죠. 방법이 있긴 하다는데, 그게 좀…. 음….”
“좀?”
“엿 같아서. 둘 다.”
하아아아.
마치 삶은 고구마를 통째로 입에 쑤셔 넣은 것처럼 어렵게 입을 떼는 교수.
알드리치는 그 모습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교수를 재촉했다.
“선택지가 있다니.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게 아니냐? 잔말 말고 말해보거라. 조금 덜 엿 같은 쪽은?”
“제국의 황제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랍니다. 협력관계는 아니지만 제국의 영토와 엘프의 숲이 경계에 걸쳐있는 만큼 오랜 세월에 거쳐 크고 작은 만남이 있었고, 황제 정도면 그들과 대화할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네요.”
“화, 황제를 말인가? 그 사람을 벌레 보듯 한다는 아그단 7세를 직접?”
“뭐, 굳이 대면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옛 인연이 있어 추천장을 한 장 써 줄 테니 그걸 빌미로 한번 비벼 보랍디다.”
저 추천장은 대주교님의 친필 서신과 비슷한 종류의 키 아이템일 것이다. 과거 아그단 2세를 도와 고위 귀족을 중심으로 분열해 나가던 제국의 기틀을 바로잡고, 또 70년 전 구름처럼 몰려오는 언데드 군단에 맞서 인간 세상을 구해낸 엘프 대 영웅 엘-파르나.
엘 파르나의 이름과 광명 교단 대주교의 이름값이면 먼발치에서나마 황제와 대면하는 것이 썩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싸이코패스 황제가 제국이 가지고 있는 핫라인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뭘 얼마나 요구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죠.”
장담하는데 그냥 편지 두 장 들고 황제 앞으로 쭐래쭐래 걸어 들어갔다간 ‘편지 잘 받았다. 이제 꺼져라, 배달부. 도움? 나는 제국에 도움도 안 되는 버러지들과 말을 섞을 생각이 없다.’ 같은 소리나 듣고 쫓겨날 것이 틀림없었다. 제국의 젊은 황제는 그런 성격이라고 들었으니까. 설령 말을 들어준다고 해도 그 대가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겠지. 용사라는 고급 인력을 얻었으니 헤라클레스마냥 12가지 과제를 다 해오면 들어준다고 강짜를 놓는다거나.
아마 그냥은 안 되고, 제국 귀족 라인부터 천천히 파고들어서 나름의 세력을 등에 업고 황제와 대담을 진행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퀘스트일 것이다. 아아, 벌써 머리 아파. 노쇠한 제국의 귀족들에게 블루라인 동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로 하람 교단과 손을 잡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설명하고, 황제와 대담에서 슬쩍 이름만 흘려달라고 청탁하는 귀족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또 현 정권에 불만이 있는 상당수의 귀족이 ‘황제와 대담할 기회를 가지고 있는 강한 무력을 가진 외국인’ 을 찾아와 황제의 목을 뽑아달라고 하며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을 것이고….
으으으, 끔찍해. 크게 ‘전투’와 ‘비전투’ 퀘스트로 나뉘는 GG의 퀘스트 중에서도 이건 극한의 ‘비전투’ 퀘스트다. [귀족 화법]이나 [간계], [언변], [촌철살인]같은 귀족형 스킬로 무장한 영지 귀족형 플레이어를 위한 퀘스트.
뭐, 나도 이 방면에서는 한가락 하는 편이니 아예 못할 것은 또 없는데….
진짜, 정말로, 더럽게 하기 싫다. 내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국이라는 마굴에서 고일 대로 고인 노귀족이 득실거리는 제국 사교계에 발을 들이밀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으으음. 황제와의 대담이라…. 숲의 엘프들도 황제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성사가 되기만 하면 확실하게 숲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겠군. 문제는 시간인가?”
“시간이죠.”
사실 하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이 시간에 제일 큰 문제였다. 제국 귀족은 만나자, 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특별히 알려진 이름이 없다면 명성을 쌓고 관련 퀘스트를 줄줄이 해나가며 귀족의 눈에 들어야 5분 정도 만나줄까 말까 하는 콧대 높은 인간들. 용사 네임밸류로 어떻게 만나는 것까지는 밀어붙인다 쳐도 내 계획을 설명하고 동조시키는데 또 한세월일 것이다. 그동안 로드릭은 쫄딱 망해서 뮤트 잔칫집으로 변할 것이고.
즉, 난이도에 상관없이 이 방법은 불가하다는 말씀.
“나도 나름 리드플로우 학파의 마법사로서 제국에 인연이 좀 있긴 하지만…. 빠르게 진행하긴 힘들 것 같군. 그럼 더 좋지 않은 그 두 번째 방법이라는 것은 뭔가?”
“….”
푸하아아아아….
오트만의 물음에 교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쉬었다.
“제기랄. 대장, 도대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요?”
“….빌어먹을. 입에 담기도 싫은 거.”
차라리 농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방법.
“지금 엘프들과 유일하게 교역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도움을 받으랍니다. 적어도 물건을 교환하는 자리에는 숲의 엘프들이 나오니까. 그때 만나서 얘기하고 들어가라는 겁니다.”
“….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방법에 일행의 안색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건…. 나쁘지 않은 제안 같소만?”
내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늑대인간의 표정.
확실히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지. 한 쪽은 제국의 황제, 다른 쪽은 엘프와 교역하는 상인. 그 무게를 달아 봤을 때 설득 난이도가 압도적으로 한쪽이 낮은 것이 명백했으니까.
문제는 이게 전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서 그렇지.
다들 희망에 차 있을 때, 혼자 안색이 새파래진 루실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상인답게 엘프가 만든 물건을 들여오는 이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 숲의 엘프들이랑 교역을 한다면…. ‘그’ 사람들 말하는거죠?”
“그래. ‘그’ 인간들.”
“마, 말도 안 돼. 난 여기서 빠지겠어요. 그런 리스크, 절대 감수하고 싶지 않아….”
“음?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사람을 죽여 머릿가죽을 벗긴다는 야만 유목민족이라도 되는가?”
“어휴, 그거랑 비교하기엔 격이 많이 떨어지네요. 말 탄 야만인이랑 그 인간들을 비교하다니.”
“에잇, 도저히 못 참겠군. 그래서 누군가? 그 엘프 교역인이라는 이들이!”
….꿀꺽.
차마 입에 담기 부담스러워서 빙빙 돌렸던 그 이름. 진짜 싫었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마법사요.”
“….응?”
“마법사 말입니다, 마법사. 엘프랑 물건을 주고받는 건 바람계열 마법사들이란 말입니다. 상인들이 블루라인 너머로 밀수할 때 바람계열 마법사를 고용해 교역품을 기구에 띄워 산맥을 넘기듯, 엘프들이랑도 그런 식으로 교역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놈들을 만나서, 그 교역용 기구 안에 들어가서 엘프랑 만나랍니다.”
마법사라는 말에 생기를 되찾아 가던 일행의 얼굴이 팍 죽어버렸다.
곁눈질로 알드리치, 나, 오트만을 번갈아 보는 일행들.
“크흐음, 여기서 마법사를 더….”
“평균 마법사 1인이 한 달 사이에 벌이는 기행을 계산했을 때, 이만한 숫자의 마법사가 모여있는데 거기에 마법사를 또 추가하면….”
“예, 예. 아마 여러분이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겠죠.”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아무도 모른다. 진짜 그 치들이랑 함께 하는 순간 뭔 수를 써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게 제일 두려운 것이다.
바람 계열 마법사. 풍계(風界)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유달리 그 종잡을 수 없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수계 마법사나 화계 마법사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아, 얘는 어디 물에 들어가 있겠구나. 아, 얘는 어디서 불을 지르고 있겠구나, 하고 예측이라도 가능하지.
풍계 마법사는 그렇게 쉽게 예측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바로 1초 전에 ‘오늘은 토마토 수프가 땡기는군. 속이 안 좋아서’ 라고 말해놓고는 여급이 오면 ‘양고기 스테이크와 통밀빵, 폴 되네브 두 접시 주문하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바람 속성 마나를 품은 마법사들은 아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마법사다움’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마법사가 그러하듯 자신이 사역하는 마력의 속성과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에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세상을 방랑하는 마법사.
마탑이 없는 마법사. 물, 불, 바람, 대지 4대 속성 중 가장 숫자가 적은 마법사인 바람의 마법사가 대모님이 말한 ‘쉬운’ 방법의 핵심이었다.
“황제를 설득하는 쪽으로 가지.”
“황제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장.”
“그웍?”
“다 필요 없으니까 상단으로 무사히만 되돌려보내 줘요, 제발….”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황제 쪽 방법을 추천하는 일행들.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아아아! 저주받을 마나의 인도여! 운명의 흐름이여!”
“크르으으! 인간 세상에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그 노예상들만 아니었으면 이런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인데!”
“흐흑, 어흐흑….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돈을 모아왔는데, 다 써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가다니….”
“….그웍?”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음을 알리자 울부짖는 일행들 사이에서 아직 마법사의 매운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노툼만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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