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96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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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 위험지역 / 폭풍의 언덕]=========
위험도 : ★★★★(플레이어 능력에 상관없이 자살 마려움.)
특징 : 3월드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바람 마법사가 ‘상주’ 할 수 있는 특수 구조물. 최소 40인 이상의 바람 마법사가 항시 거주 중. 전 세계 바람 마법사의 고향. 유일하게 그들이 안정을 되찾는 곳.
지정학적으로는 근처 계곡의 바람이 모두 모이는 곳인 폭풍의 언덕 전체를 칭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폭풍의 언덕을 말하면 그 꼭대기에 위치한 ‘홈 펠릭스’ 라는 건물을 말한다.
위치 및 입장 방법 : 제국 서남부 암석지대. ‘홈 펠릭스’는 그 인근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입구로 들어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명성이 자자한 ‘매우 괴팍한 바람 마법사 문지기’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 차라리 이 마법사들을 죽이는 게 허가를 받는 것보다 쉽지만, 죽이는 순간 우르르 몰려오는 마법사들에게 개처럼 쳐맞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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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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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된 언덕 근처에 떠다니는 다른 마법사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물론 도움을 받겠다고 큰 소리로 불렀다간 이곳에 와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은 마법사들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되도록 조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함. 쉽게 잠을 깨지 않으므로 낚싯대 같은 것을 사용해서 끌어오면 된다.
주의점 : 폭풍의 언덕 위에 가면 현대 미술품처럼 생긴 ‘펠릭스 홈’이라는 건물이 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이 건물에 흠집 하나 내서는 안 된다. 이곳은 바람 마법사라는 미치광이들이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소이며, 제국에서도 그 유용함과 중요성을 인지하여 이곳을 공격하는 자는 신분을 막론하고 제국의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면 입장 전에 미리 말해서 부유 주문을 받아서 들어가고, 신발이 금속재라면 벗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보면 다들 푸근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마법사들이지만, 실수로 자극하는 순간 전 월드에서 가장 미쳐있기로 소문난 바람 마법사의 기상천외한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 겪어봐서 아는데, 다치거나 죽는 정도로 끝나면 매우 운이 좋은 편이다.
작성자 : 매직 더 가드닝
편집자 : 스피드 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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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으으으으-”
“교수. 자네 아까부터 왜 그러나? 배가 아프면 잠시 멈췄다 가는 것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끔찍한 것을 봐 버려서.”
오트만을 표정을 보니 ‘얘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하지. 저쪽 눈에는 아까부터 허공을 멍하니 보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물론 실제로는 어떻게든 이 퀘스트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나의 몸부림이었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죽어도 가기 싫지만 가야만 한다면 상대에 대해서 알아두는 게 최선이다- 라는 생각에 폭풍의 언덕에 대한 자료를 슥 훑어봤는데, 정말 활자 하나하나에 역겨움이 그득했다.
어쩜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냐 정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로울 일이 없다며. 왜 적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나의 위태로움이 부각되는 건데. 공략도 저런 게 있다~ 정도만 나와 있고, 안에서 뭘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록된 것이 없었다.
제국 주요 시설 정도 되면 그래도 기본적인 자료 정도는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이름하고 건물, 입구 NPC 수준의 얕은 정보 말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폐쇄적이고 난이도 있는 장소라는 뜻일 것이다.
교수는 나중에 제국에 도착하면 직접 조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모님 때 정보 부족으로 그렇게 고생했으니 이번에는 좀 달라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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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네. 분명 들어올 때랑 같은 숲인데.’
마을을 떠나온 지 약 한 시간.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우리 일행이 길을 벗어나자마자 온갖 언데드의 습격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행보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편했다.
당장 조금 전만 해도 경계하기는커녕 딴 생각이나 하며 멍하니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숨죽여 이동하기는커녕 일행들끼리 잡담을 나누거나 루실라가 길가의 잡풀을 캐며 따라오는 등 여기가 블루라인 한가운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숲길.
산행이 이렇게나 편해진 것은 당연히 새로 합류한 엘프 동료, 이드라실 덕분이었다.
“….잠시. 두 이빨 늑대가 움직였습니다. 능선 아래쪽을 살짝 물고 이동하겠습니다.”
앞서 가던 이드라실이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자 일행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숨죽여 엘프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하프엘프의 푸른 머리칼 사이로 나온 뾰족한 귀가 까딱거리고, 지면에 닿은 손이 그녀의 가는 호흡에 맞춰 무언가 읽어내기를 몇 분.
“….지나갔습니다. 이동하지요.”
그녀의 허가가 떨어짐과 동시에 숨죽여 걷던 일행이 저마다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유능하구먼. 이거 마구잡이로 언데드와 마수를 뚫고 들어온 우리가 너무 멍청해 보이지 않나?”
“와아아….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숲에서 엘프가 발휘하는 능력은 정말…. 일부 상단에서 고급 상품확보가 힘들어지면 엘프 노예를 다수 대동하고 블루라인에 들어간다고 하더니.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엘프와 함께 움직이면서, 심지어 산맥 초입에서만 작업을 하면서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하던데. 우린 너무 편한 것 아닌가요? 이게 엘프 노예랑 자유 엘프의 차이인….하읍!”
루실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아차, 싶어서 입을 가렸다. 하프라고는 해도 엘프 앞에서 엘프 노예 이야기를 꺼내다니.
다행히 이드라실은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은 듯, 루실라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엘프라고 해서 모든 나무와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처음 만난 사람을 어색해하듯, 엘프와 나무의 관계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 블루라인에서 살아온 엘프로서 대부분의 나무들과 안면을 터서 그들의 경고를 들을 수 있는 것뿐입니다. 인간 소녀…. 루실라 라고 했나요. 그녀가 말한 엘프들은 숲에서 오래 떨어져 있는 바람에 그러한 감각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으니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웠겠지요.”
“아니면, 일부러 습격을 경고하지 않고 인간들이 혼란에 빠지면 그 틈을 타 도망치려고 했거나.”
이곳의 추방 엘프들이 좀 지나치게 인간 친화적인 것뿐이지. 원래 엘프는 독선적이고 손속에 자비가 없는 것으로도 제법 유명하거든. 평화를 추구하긴 하는데 그 평화가 자신의 공동체에 한정된 평화라서.
내가 그런 식의 말을 해주자, 이드라실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저는 그 의견에 부정적입니다. 엘프는 그런 식의 ‘비 평화’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프로서 엘프의 순수함이 아주 옅어진 저희도 그럴진대, 비록 고초를 겪었다고는 하나 순수한 엘프가 그런 사고를 할 리가….”
“으으음. 이드라실 양, 미안하지만 그보다 더한 사례가 셀 수도 없이 많다네. 엘프 노예가 몰래 독초를 길러서 물 항아리에 집어넣는 바람에 일가족이 몰살당한 사건도 있었고, 엘프 숲 근처에서는 지금도 귀한 목재를 얻으러 들어갔다가 엘프들에게 살해당해 나무에 걸린 나무꾼 시체가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들었으니. 숲의 초입이라 그들이 일부러 나오지 않았다면 딱히 마주할 일도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야..”
“애초에 카네란의 엘프들은 그 ‘공동 의식’ 안에 불순물이 될 것 같아서 추방당한 거잖아. 네 상식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지. 애초에 섞여들 수 없어서 걸러진 것이고, 너는 그런 카네란의 엘프들 사이에서 컸으니까.”
“그런…. 그게 정말이라면. 제 상식으로는 잘…. 인지할 수 없군요. 우리는 그런 식의 삶을 영위하지 않는데 어찌….”
마치 ‘선량한 엘프가 그럴 리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이드라실. 그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깨닫게 되는 점이 있었다.
‘….대모님이 왜 이드라실을 우리 손에 딸려 보냈는지 알겠군.’
이드라실이 70살이니 대충 나누기 5 하면 정신연령 14세 정도 된다. 인간 세상의 세파를 겪고 흘러들어온 1세대 카네란 주민이 아닌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2세대 카네란 주민. 육체적으로는 완성됐으나 정신적으로는 미숙하며,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이용당하기 딱 좋은 상태.
대모님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이 순수하고 무지한 하프 엘프에게 ‘세상의 쓴맛’을 아주 제대로 보았으면 했던 것이다. 꼼꼼하게 검증해본 결과 제법 믿을만한 인간들 손에 맡겨서, 어쩌면 그녀의 수명이 다하고 다음 대의 ‘대모’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이드라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삼백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15세에 육체의 성장이 끝나고 고정되는 엘프가 그렇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라는 것만 봐도 수명이 다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어쩌면…. 정말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고.’
대모는 내 간절한 요청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으며, 그 이유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만약 그 이유가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이드라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전에 했던 말이 그냥 빈말이 아니라면….
‘….제기랄.’
“이드라실.”
“네.”
“대모님,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당황한 듯, 살짝 발걸음을 늦춘 이드라실은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만. 여느 자식에게 어머니의 존재가 가지는 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요.”
“….그런가.”
하긴. 그렇겠지. 엘프라고 우리랑 다른 게 뭐가 있겠어.
교수는 마을을 떠나기 직전 귓가에 울리던, 마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
[잘 가르쳐 줘.]‘흐억! 뭔…. 대모님 목소리?’
[잘 가르치라고. 그렇다고 ‘끝’까지 다 가르치려 들지는 말고.]‘그게 무슨….’
[….반푼이었나? 모르면 됐네. 자네의 길 끝에도 평안이 가득하길 빌지. 만나서 반가웠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저 할 말만 다 하고 끝나버린 메세지. 귀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짓이겨진 작은 꽃잎이 스르륵 흩어지는 게, 아마 대련을 빙자한 폭행 중에 몰래 씨앗을 하나 남겨뒀던 모양이다.
그땐 그냥 조심해서 가라, 뭐 이 정도 얘기인 줄 알았는데.
“하아아아. 진짜. 사람 부담시럽게시리….”
“왜 그러십니까. 제 대답에 뭔가 문제라도?”
“아냐.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사정 봐주지 않는 할머니였구나, 싶어서. 이드라실, 너처럼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엘프들은 나무를 통해 숲을 관찰할 수 있는 거지?”
“예.”
“우리도 볼 수 있고?”
“나무가 느끼는 방식이라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교수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을 한번 둘러본 다음, 성큼성큼 걸어나가던 발걸음을 늦췄다.
“….그럼 조금만 천천히 가자.”
“천천히…. 말입니까?”
“그래. 너도 한참 숲을 떠나 있을 테니 고향 숲을 눈에 좀 담아둬야지.”
“지금 이 속도로 가면 내일 점심은 인간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듣기로는 분명 한시라도 더 빨리 이 임무를 끝내고 로드릭이라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쓰으읍!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라.”
“….네.”
잠시 고민하던 이드라실은 이내 발걸음을 늦춰 일행의 옆에 붙었다. 이 인간 남자가 왜 제 뜻을 번복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시종일관 가볍기만 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깊은 울림을 주었으니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을 밖으로 향하는 발이 이상할 만큼 무겁기도 했고.
‘….숲을 떠나는 중이라 그런 것이겠지요. 아마.’
이드라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정겨운 고향 숲의 정경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자 고개를 들었다.
솨아아아-
문득,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칼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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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교수 일행은 마침내 끝없이 이어지던 수목의 미로를 벗어나 인간의 손길이 잔뜩 느껴지는 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이방인. 손 하나라도 까딱하면 제국 방위법에 따라 목을 치겠다.”
물론, 그 길을 지키는 인간들도 함께.
‘제국 기사. 확실히 반대편에서 길을 지키던 교단의 성기사랑은 수준의 차이가 있군.’
눈대중으로만 봐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보통 말과는 차원이 다르게 건장한 우수한 전마와 흙먼지에 뒤덮이긴 했지만 은은한 마나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마법부여 플레이트 메일.
말린 자국, 티끌 하나 없이 새것처럼 번쩍이는 브로드 소드만 봐도 확실했다.
‘갑옷도 그렇고, 마구나 망토도 그렇고. 기름을 먹여 잘 관리하긴 했지만, 장기 임무에 투입되어 바깥에서 구른 티가 역력해. 하지만 검은 그런 흔적이 전혀 없지. 우연히 오늘 새 검을 가져온 게 아니라면…. 오러를 쓰는 놈이다. 오러를 쓰면 같은 오러 유저 만나기 전까지는 검날에 이가 나갈 일도 없고, 칼에 피나 기름 같은 것이 달라붙을 일도 없으니까.’
최소 오러 유저. 제국에는 그 큰 땅덩어리만큼 실력자가 별처럼 많다고 하더니, 제국의 가장 끝자락에 가까운 레이 라인에도 오러 유저를 배치할 만큼 남아도는 모양이다.
이드라실이 저 앞에 말 탄 사람이 있다고 미리 알려줘서 일부러 일행들이랑 크게 떠들기도 하면서 소란을 피워서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렸건만. 아무래도 그 정도로는 이들의 경계심을 떨어트리는 데 도움이 안 된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모양이라 내가 나서려는데, 나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쏘옥!
“금발에 녹안, 소드 유저. 마구에 박힌 사자머리 세 개짜리 문양. 혹시 비질렌 가문의 나이트 데미카스 님 아니신가요?”
내가 운임료가 어쩌고 했더니 아득바득 걸어서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채 하루가 가기도 전에 퍼져버려서 수레에 태워온 루실라.
한참 조용하길래 자고 있겠거니, 했는데 언제 갈아입었는지 꾀죄죄한 상단복 대신 제법 깔끔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선머슴같이 부스스한 빨간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정리한 꼬맹이가 수레에서 우아한 몸짓으로 살짝 치맛자락을 들어 보이더니…..
툭, 툭툭툭!
‘….뭐?’
‘아 정말! 인간아! 눈치를 좀!’
같은 눈빛을 하고 가죽 부츠 끝으로 내 등을 마구 찔렀다. 하긴. 저런 옷으로 수레에서 폴짝 뛰어내리면 모양이 안 살지.
일단 뭘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 맞춰주기로 했다.
레이디. 그것도 가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어린 레이디. 기사를 상대로는 치트키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그 위력을 증명하듯, 에스코트하듯 내민 팔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온 루실라가 생긋 웃어 보이자 기사는 그대로 검을 거둬들였다. 잠시 갈등하던 기사는 면갑을 들어 올려 당혹한 모습이 역력한 얼굴을 드러내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오늘 따로 레이라인 통행 의사를 밝힌 자가 없었기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보잘것없는 기사에게 이름을 물어볼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에드란 가문의 여식, 루실라 아에드란 이라고 해요. 설마 비질렌 가문의 나이트께서 아에드란의 이름을 모르신다 하시진 않으시겠죠?”
누가 봐도 귀족 여식같이 살짝 손끝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루실라. 기사는 그런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레이디 루실라. 미처 알아뵙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시길. 검 끝을 좇아 살다 보니 그 안에 사람을 담지 못한 둔한 눈입니다. 그럼 뒤에 있는 자들은….”
“가문의 상단 사람들이에요.”
“골드 가이저로군요. 알겠습니다. 이 앞으로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쿡! 쿡쿡!
깍듯한 자세로 기사가 고개를 숙이는 동안 뒤에서 또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에 ‘쟤 뭐야?’ 하는 의문이 가득한 모습으로 루실라를 가리키는 알드리치. 어깨를 으쓱해줬더니 이번에는 옆에 있는 오트만과 보르카를 찌르기 시작했다.
‘거기 찔러봐야 아는 거 아무것도 없을 텐데.’
쿡, 쿡쿡!
소곤소곤!
“야, 야 꼬맹이!”
“…..”
꾸우우욱!
“야, 임마, 루실!”
여길 찔러야 뭐가 나오지.
기사가 말의 뒤에 태워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수레로 돌아온 루실라는, 내 집요한 부름에 가면 같은 웃음을 보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사님. 저와의 담소를 즐기시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좀 피곤하니 삼가 주시겠어요?”
“오. 제법.”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하지만 지금 건들지 말라는 느낌으로 한쪽 눈썹에 힘이 팍! 들어간 루실라.
‘….얘 좀 봐라?’
산맥 초입에서 만난 상단주…. 인 척하던 뚱뚱한 남자가 데려가면 도움이 될 거라느니, 제국과 끈이 있느니 하더니 확실히 이것저것 숨겨둔 게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내 생각보다, 조금 더 큰 스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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