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01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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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내가 긴장을 좀 한 줄 알았다.
변경백이면 제국에서 공인한, 자기 영지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
그런 대귀족을 좋은 일로 만나러 가는 게 아니니 몸이 굳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직은 별 느낌이 아니라 루실라랑 잡담도 하고, 집사 앞에서 컨셉 유지도 좀 할 수 있었고.
쿵.
시작은 가벼운 반 박자. 그 왜, 가슴을 세게 맞으면 충격이 안쪽에서 울리는 거 있잖아. 그래서 안에 들어있던 공기가 반 호흡 정도 밖으로 허, 하고 나오는 그 느낌.
“왼쪽에서부터 1대 가주님을 시작으로 역대 가주님들의 초상화입니다. 개국공신의 가문인 만큼 그 역사가 제국의 나이와 동일하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집사의 안내를 따라 성의 곳곳을 안내받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기묘한 울림.
그 정도 되니까 이게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이것도 NPC화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기사. 이 게임 속 세계에서 스스로의 데이터를 독립시킬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독립시켜 GG라는 우주 안에 개인의 소우주를 완성한 생물.
고위기사라는 마나를 질료로 세상을 유리(遊離)하는 그 괴물들이 잔뜩 모여 있다 보니, 그들의 기세를 게임 속 NPC라는 기묘한 현실로 느끼게 되며, 그 압박감에 숨통이 조여오는 것인 줄 알았다.
쿵. 쿵. 쿵.
응접실에 다가갈수록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을 두들기는 충격은 이제 숨을 쥐어짜 헐떡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노력해야 할 정도였고, 내장을 쥐어짜는 기묘한 갈증은 메시지 마법으로 재잘거리는 루실라의 목소리도, 가문의 연혁을 설명하는 집사의 목소리도 먼 곳에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만들어버렸다. 입을 열면 짐승처럼 받은 숨을 내뱉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침묵을 고수해야 했다.
압박감? 글쎄. 압박이긴 했지. NPC화의 영향인 것도 맞고.
하지만 기사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영주가 기다리는 응접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내 오장육부를 가득 채우다 못해 거죽을 뚫고 터져나올 듯한 그 압박감이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래. 이건 희열이다. 사막의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절벽에 매달린 자가 마침내 그 정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그런, 생물학적 본능에 의한 희열.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기묘한 울림의 정체는 내 심장이었다. 마치 생의 마지막을 향해 질주하는 자와 같이 전력을 다하는. 뇌에 신선하다 못해 타들어 가듯 뜨거운 피를 뿜어 올리고, 한번의 맥동으로 대동맥부터 모세혈관까지 밖에서 보일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하듯 날뛰는 엔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 몸이, 아직 현실의 감각을 가진 게임 캐릭터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벌써 전투 준비를 하고 있음을. 파괴와 재구축을 반복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다 더 전투에 적합한 형태로 성장해오던 몸이, 멍청한 머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뭔가를 느끼고 예열에 들어간 것이다.
“과, 광명의 용사 교수님과 루릴라 아에드란 영애님이오-!”
그리고. 응접실의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그 안에 갇혀있던 공기가 문 밖으로 쏟아지는 순간-
덜컥.
끼이이익-
저벅. 저벅. 저벅.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날뛰던 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끈적하게 피를 퍼올렸으며.
열기로 터져버릴 듯하던 머리는 순식간에 너무나도 명료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공기마저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 속에서, 음미하듯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막 끓여 나온 스프 덕분에 습기가 가득한 공기. 그 위에 실린 음식의 향기가 공복을 자극하고, 그 사이에 찌르듯 섞여든 사람 냄새. 땀과 머릿기름, 찌든 노폐물과 그것을 가리기 위해 뿌려진 싸구려 향유의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가을 바람에 스치는 낙엽의 향기처럼, 미세하게 코끝을 스치고 사라지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몸의 안과 밖을 뒤집어 놓은 듯한 공복을 이끌어내는 비릿한 향기.
그때가 돼서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내가 이 상태가 되고 나서는 단 한번도 뮤트의 피를 섭취한 적이 없구나. 산맥을 넘으며 저장된 피를 모두 소모하고, 고갈된 상태로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전투와 강행군을 반복했으니.
인간의 몸은 배불리 먹었을지언정, 뮤트의 피로 움직이는 나머지 부분은 끔찍한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저,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각이기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 뿐.
이상하기도 하지. 왜 청동 잔에 비친 내 모습이, 행정실에 누워있을 그 사진 속 괴물이 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까.
“광명의 용사라…. 이상하군. 내 그대를 초대한 기억이 없네만?”
“새벽을 원치 않는다 한들….”
혀는 상황에 어울리는 답을 뱉어냈지만, 나머지 모든 기관. 시각과 후각. 피부의 솜털 하나까지 모조리 곤두서서 응접실 안의 사냥감을 훑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할 수 있는 종류. 인섬니아 크랩. 스킨 크라울러. 뮤트 도플러. 누구지? 누가 내 먹잇감이지?’
잔을 들어 올리는 척, 매끈한 표면에 비친 주변을 살폈다.
거울, 혹은 매끈한 반사체에 비치지 않는 자. 없음. 도플러는 아니다.
대화를 이어 나가며 하나, 둘 용의 선상에서 지워나갔다.
‘인섬니아 크랩도 제외. 마법사와 달리 기사의 육체는 크랩의 수준으로는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다. 스스로를 무기의 일부라 여기는 이들이니, 자아를 잃는 순간 격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겠지.’
그럼 남은 것은 하나. 찾아야 할 것이 확정되자, 쨍하게 곤두선 감각이 가주와 기사들을 순식간에 살펴내었다.
‘….찾았다.’
몸 안에 깃든 짐승이 환희에 가득 찬 포효를 내질렀다.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상시보다 몇 배는 더 정신이 맑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반쯤 미쳐 날뛰는 상태에서도 가주의 말을 듣고, 대답을 하며, 확실한 대상을 찾기 전까지는 ‘이단’이라는 교단의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기다림도 이제 끝이지.
“비질렌 영지에서 이단 정황이 포착되었소. 교단의 적법한 권한에 따라, 가문과 영지에 대한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바이오.”
콰앙!
“건방이…. 지나치구나!”
이단 선포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데미카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여기 있는 기사들은 모두 한계까지 육체를 단련해서, 손등이며 팔이며 할 것 없이 굵은 힘줄이 찾을 필요도 없이 튀어나와 있는데.
왜 저 데미카스라는 녀석은 이렇게 마네킹처럼 피부가 매끈한 것일까? 꼭, 피부 아래에 다른 가죽이 한 장 더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야.
따지고 보면 용사가 정치적인 자리는 아니라도, 이렇게 말 한마디로 금실 세 개짜리 법복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종교적 권한이 막강한 사람인데. 영지에 들어온 것을 어제 알아놓고도 지금까지 초대 한마디, 인사 한마디 없는 것도 이상했지.
가짜 신실함으로 가짜 이단을 찾아서 왔는데, 진짜 용사님으로서 진짜 악신의 주구를 찾아낸 꼴이었다.
[요, 용사님? 괜…..찮으세요? 표정이 너무…. 으….]내 표정이 뭐?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쭈욱 찢어져, 하얀 이빨을 다 드러내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주의 아들. 그것도 후계자는 아니라지만 가문의 대소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차남. 이단 정황이 아니라 역모의 증거가 나왔어도 가주는 일단 막아설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기다렸으면, 들어오면서 성 내부의 구조를 외워뒀으니 밤에 몰래 찾아와 성유에 담가서 신경에 뿌리박은 그 거죽밖에 없는 뮤트를 끄집어내든, 알드리치의 사령술로 영혼을 뽑아 물어보든 확실한 증거를 잡아 가주의 눈앞에 세웠다면 훨씬 쉬웠겠지. 하지만, 이성과 달리 몸은 이미 이단 선포를 해버린 뒤였다.
[루실라.] [네, 넵!] [숨어. 당장.] [….!]루실라는 그게 누구로부터 숨으라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높은 석조건물에 괴물의 몸이라.’
문득, 오래 전 토브룬에서의 일이 떠오르며 하이드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껍데기. 너는 몸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거라니까? 안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해 죽겠다고.]“그게 이런 말이었냐. 하이드.”
아. 시원하다. 하이드가 이 모습을 봤으면. 지금 옆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투둑, 쫘아아악!
간신히 버티고 있던 사제복이 터져나가고. 태생부터 연약했던 가죽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자라난 근섬유가 앞다투어 밖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강인한 힘이 응축된, 그러나 힘을 버티지 못할 만큼 연약한 육체 위로 검은 가죽이 자리 잡는다. 파충류의 비늘과 곤충의 껍데기를 섞어놓은 듯 검고 광택이 흐르는 그 위로, 터져 나온 핏방울이 스며들어 빈 부분에 붉은 갑옷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딱, 따닥!
패시브 스킬 [고통 감소]의 효과. 게임으로서 대할 때는 그저 온몸이 부서지고 터져나가는 고통을 줄여주는 스킬일 뿐이었는데.
[고통 감소(중) : 당신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을 겪어오며, 그것을 완전히 체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플레이어가 받는 고통의 일부가 경감됩니다.]고통을 겪어서, 그것을 체화하여 고통이 줄어들었다. 게임적 효과가 아니라 실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 대응하면 이건 단순히 감이 줄어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거…. 신경이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는 뜻이잖아···!’
뇌를 전기로 튀기는 듯한 고양감에 턱이 떨리며 빼곡하게 자라난 송곳니가 맞물렸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걱정을 토로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맞지. 그렇지? 하이드. 듣고 있어? 내가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린 게 아니겠지?’
진정으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며, 실시간으로 이성이 본능으로 치환되며 자아가 뒤틀리는 감각이 피부에 와닿고 있었다. 인간성을 잃는 것. 내 몸마저 저렇게 되어버리고, 인간인 부분은 데이터로 남아있는 기억밖에 없는 이로서 그마저 사라지고, 변질되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 공포도 끝없이 차오르는 고양감에 밀려 이내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바깥의 내 몸이 이미 3형으로 완성되었으니. 괴물이 되어간다는 것은, 잃어버린 그 기억에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닌가? 어쩌면 식물인간에 가까운 내 기억의 원형이 캐릭터에 영향을 미쳐 이렇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
피 냄새. 비릿하고, 향긋한. 5년 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생명을 이어온 진한 생명의 향기.
마지막으로 깊이 숨을 들이쉬는 순간, 감겨있던 괴물의 쭉 찢어진 눈이 떠졌다.
지금까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실상은 시스템이라는 장막에 가려 기억의 겉 부분만 훑고 지나갔던 GG가 제공하는 모든 전투정보가 체화되어 만들어진 육체.
스릉.
“….산맥 너머에서는 기괴한 괴물들과의 전쟁이 한참이라더니. 적어도 이런 것을 만들어낸 그 광신도들이 남 말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르르륵. 알레시오 비질렌. 교단의 법률에 따라…. 단 한번의 항소를 권한다. 현 시간부로. 광명의 용사 교수는 비질렌 가문의 아들이 이단에 물들었음을 선포하니. 그대는 휘하의 데미카스 비질렌이 악신의 주구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나?”
콰앙!
“아버지! 저 괴물의 말은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반생을 함께해온 혈육과 인간도 아닌 저 괴물의 말, 둘 중 어느 것을 믿으실지는 너무 자명하지 않습니까!”
“데미카스님 말이 옳습니다! 언제부터 비질렌의 기사들이 몬스터와 대화를 나눴습니까! 가주님, 당장 저 괴물의 목을-”
스가악!
“조용히.”
가주가 내리그은 검에 테이블이 거울처럼 매끈하게 잘려 나갔다. 끝없이 언데드와 마수가 몰려오는 영지를 철통처럼 막아낸 기사, 그 기사들을 다스리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는 정련된 오러.
단 한번의 기수식으로 앞을 가리고 있던 장애물 대부분을 치워낸 가주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괴물의 눈을 응시했다.
“데미카스는…. 자질이 있고 뛰어난 아이였지. 제 형에 대한 열등감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녀석이었어. 산맥에 처음 보는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에 뛰쳐나간 녀석이 돌아왔을 때도. 평소와 달리 기행을 일삼는 것도 그저 형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발버둥이라 여겼건만….”
바로 눈앞에서 하얀 법복을 입은 사제가 응접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되었음에도 흔들림 하나 없이 고요한 빛을 담아내는 가주의 눈동자.
그는 교수의 눈에서 무언가 읽어내기라도 한 듯, 체념과 결단이 담긴 눈으로 뇌까렸다.
“비질렌은 제국의 수호자로서. 단 하나의 적도 이곳을 넘긴 적이 없으니..”
“아버지! 접니다! 제가 데미카스 비질렌 이라구요! 아버지가 직접 검을 잡아주시고, 함께 산맥의 몬스터들과 맞서던- 크아아아악!”
서걱-
작은 예비 동작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아래를 향해있던 검 끝이 옆으로 옮겨진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없이 휘둘러진 칼날에 데미카스의 팔뚝이 잘려 나갔다.
“크아아악- 으으, 끄으으, 끼이이익, 꺼우우욱!”
가주는 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 꿈틀거리며 빠져나오는, 나무 뿌리 같은 것이 잔뜩 달린 피투성이 천 같은 것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았다.
“….성직자. 교단은 저것을…. 치료하나.”
“가죽을 벗겨 삿된 것을 제거하고, 악에 물든 육체를 불로 정화하지.”
“….성 뒤편에 대대로 비질렌 가문의 이들이 묻힌 묘지가 있지. 나의 자리도. 내 아들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건만….”
“께에에엑! 아버- 아버ㅈ- 어떻게, 어떠어어어-”
스겅!
“한자리는 비워야 되겠군. 아내의 옆에 저런 것을 묻을 수는 없으니.”
굳은 입매로 가주가 데미카스 였던 것의 목을 단칼에 쳐냈다.
“비질렌 가문은 그 손으로 혈육이었….던 이단을 처리했다. 항소를 받아주겠나. 성직자.”
잠시 감정이 격앙된 듯 숨을 끊으며, 냉정한 듯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입을 여는 변경백.
교수는 그런 그보다 지금 바닥에 흐르는, 그의 발끝으로 흘러드는 뮤트의 피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안달하지 않았다.
데미카스 안에 있던 것이 죽으며 남긴 단말마. 묘하게 귀를 찌르는 그 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 그의 감각에 또 다른 먹이가 잔뜩 걸려들었으니까.
괴수의 피를 탐하는 괴수는, 그의 발끝으로 흘러드는 피를 음미하며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일부는. 받아들이지.”
“….일부라. 내 손으로 아들의 목을 베었음에도 부족하다는 것인가?”
“그르르르. 가문의 결백은 증명되었다. 허나, 영지 전체의 결백을 주장하기에는. 부족하군. 나이트 데미카스는 성벽 경계병, 순찰병을 운용하는 직위에 있었지. 변경백. 아들이 이상해지고 나서, 데미카스와 같이 산맥에 들어갔다 나온 병사가 모두 몇 명인가.”
“….빌어먹을.”
마침내 변경백의 평정이 깨지고, 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는 순간.
콰앙!
“가, 가주님! 비상입니다! 갑자기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몬스터로 변하며 시민을 학살하기 시작- 흐이이익! 괴물이다!”
가주의 확신을 증명하듯 숨을 헐떡이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병사.
한달음에 테라스로 달려간 가주의 눈에 불길과 도륙당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콰드드득. 챙그랑!
비좁은 유리문을 부수고 나온 괴물이 그의 옆에 섰다.
“가는가.”
“남은 이들이라도 살리려면. 이미 늦은 이들은 죽여 없애는 게 마땅히 용사가 할 일이 아닌가.”
“….가증스러운 것. 입가에 흐르는 침이나 닦고 얘기할 것을.”
괴물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어느새 흥건하게 고이다 못해 넘쳐 흐르는 타액. 부족했다. 작은 스킨 크라울러. 그 한 마리로는 너무나도 부족해!
도의적으로도, 용사로서도, 플레이어로서도 마땅히 달려들어 모조리 죽여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충분히 즐겨도 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르륵. 살아남은 이들을 내성에 들여라. 그들 중 숨어든 뮤트가 없는지 감시하고,”
“그 외. 도움은?”
“….내가 있는 쪽을,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
투화악!
그 말을 끝으로, 모든 필요한 준비를 마친 괴물은 시가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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