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03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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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쿠우우웅.
오트만은 저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가까워질수록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수계 마법사였다. 평생 물과 닮고자 하여, 그 본질 또한 물에 가까워진 자.
물은 다른 것의 색에 쉽게 물들고, 잔물결은 거센 물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의 심상이 저 진원지에서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감정에 휩쓸리고 있음을 느꼈다.
‘분노와 연민, 혼란과 체념. 거칠고 난폭하구나. 대상이 없으니 스스로를 향한 흐름일 터. 도대체 무엇이 저 단단한 아이를 이다지도 흔들었단 말인가.’
좀전의 전투에서 사용했던 물과, 여기까지 오며 인근에 있던 모든 지하수와 우물의 물을 끌어왔건만. 오트만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혀끝으로 피의 맛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짙은 혈향이 가득했다.
사삭!
날렵하게 지붕 사이를 이동하던 이드라실은 그 무형의 경계를 앞에 두고 발걸음을 멈췄다.
“저는 여기서 지켜보고,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도 뭔가…. 느꼈나?”
“….딱히. 그저 더 가까이 가면 ‘저것’에 물들 것 같아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를 보고 배우라 하셨지만, 저것을 감당할 자신은 없기에.”
엘프의 눈에 담긴 것은 두려움 같은 간단한 감정이 아니었다. 일종의…. 경이? 감탄?
오트만은 도대체 이드라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의 가슴속에 울리는 경종이 한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이제 메아리가 아니라 그 소리가 직접 귀에 들릴 정도로, 충격에 발을 헛디딜 정도로 가까워졌다.
툭, 투둑.
박살난 건물의 처마 끝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툭, 투둑. 툭.
후화악!
골목을 돌아 공터에 도착하자 불어닥치는 뜨겁고 끈적한 열풍. 여전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귀를 거슬리게 했지만,
비가 온 적이 없으니 빗방울은 아니리라.
공터를 가득 채운 피안개.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옷을 젖어 들게 만들 수준의 짙은 피안개가, 주변에 흩어진 건물 파편에 뿌려지고, 모여들어 방울져 흘러내리는 소리였다.
그 짙은 피안개 속에 괴물과 기사가 마주하고 있었다.
피에 젖은 성직자의 옷과 목걸이를 한 괴물과.
죽어 뼈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움직이는 기사가.
「경탄하아알- 노릇이로고오오-」
골목에 등장한 일행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망령 기사의 음울한 목소리가 공터에 울렸다.
「인간도오오- 짐승도오오- 생물조차 아닌 몸을 가지고오오- 어찌 그렇게나 매달릴 수 있는지이이-」
망령 기사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심각해 보였다. 칠흑색 투구는 여기저기 깨지고 우그러져 푸른 귀화를 흘리고 있었으며, 갑옷 또한 저 안에 인간의 육체가 있었다면 이미 갑옷에 눌려 죽었을 정도로 심각하게 우그러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검이 없었다. 기사의 본질. 망령이라 하여도, 아니 그렇기에 더 그 부정한 삶을 유지하는 구심점이 되는 망령 기사의 검이 그 손에 없었고, 그 때문인지 언데드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귀화는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약해져 가고 있었다.
콰득!
검고 비늘에 뒤덮인 손아귀가 그것의 머리를 손아귀에 쥐고 들어 올렸다.
“더 하고 싶지만. 손님이 와서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아아아아- 저 나약한 것드으으을- 말인가아아-」
순간 교수가 일행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오트만은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몸의 정중앙에 저주가 넘실거리는 검을 박아넣고, 그 주위로 서로 밀어내듯 살점이 꿈틀거리는 괴수.
“저게 정녕…. 살아있는 생물의 몸이란 말인가.”
“모르겠네 오트만. 영과 육의 관계에 대해 평생을 공부한 사람인 나도…. 모르겠어.”
그것은 신체라고 부르기보다는 어린아이가 토막 난 몸을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것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어떤 것은 안과 밖이 뒤집히고, 어떤 것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붙어있으며, 그 기능을 제대로 할까 의심스러운 것도 있는. 그야말로 생명에 대한 모독과 같은 그런 모습.
“악마가 만든 장난감 같은 모습이로군.”
“오러 때문이오. 자세히 보시오.”
그 기괴한 형태의 공통점이 있다면 절단면이 모두 밖을 향해있다는 것. 보르카의 눈에는 그 절단면에 보랏빛 은은한 잔향이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부러져 밖으로 튀어나온 다리뼈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때 봤던 교수의 무시무시한 재생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단순히 절단된 몸을 복구하기 위해 저러는 것은 아닐 터.
“오러에 잘려나가…. 그 영향으로 재생이 되지 않는 육체를 절단면이 아닌 다른 표면으로 몸에 붙여낸 듯하군. 잘려나간 제 몸으로 만든 방어구쯤 되겠어.”
“인간의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수단이 아니야.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알드리치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그의 목에 걸린 로켓(여닫을 수 있는 목걸이)을 쓰다듬었다. 짙은 피안개에 살짝 흐릿해진 하늘.
“….노툼. 저 영혼을 붙잡을 수 있겠느냐?”
“….안된다. 큰 작은인간, 섞였다. 내가 모르는 것. 썩은 살점은 세게 쥐면 으스러진다.”
“그래. 이제 영혼술에 입문한 네게 너무 과한 기대를 했구나. 그럼…. 비를 불러줄 수는 있겠느냐?”
노툼은 대답 대신 알드리치의 손가락 뼈가 들어간 그의 영혼항아리를 손에 들었다.
“오트만. 잠시만, 아주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게.”
철그럭.
되살아난 영혼을 잃은 기사의 플레이트 메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에, 알드리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불규칙하고 구부정하게 자라난, 폭력을 한 대 뭉친 기괴한 괴수는 빼곡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오…트만…. 알…드리…치…. 노툼…. 보르카….”
킥, 키힉! 그흐으, 큭!
탱, 탱그렁!
괴물의 몸이 경련하며, 아직까지 자색 불꽃을 내뿜는 망령의 검을 떨궈내며 어긋난 몸이 퍼즐을 맞추듯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너희들의 이름은….. 누가…. 지어줬지?”
슈르륵, 꾸드드득.
우득, 뚜둑, 꾸드득!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와 함께 점차 제 모습으로. 오트만과 일행에게 익숙한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괴수.
“어머니가 지어주셨나? 그 어머니는 어디서 태어났지? 어머니의 고향을 기억하는 자가 있나? 있다면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너희들에게 지정된 데이터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지?”
허억, 허억, 허억!
스스로의 입에서 뱉어낸 말에 압사당하듯 숨을 몰아쉬며, 그럼에도 괴물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내 이름은 내가 지었어. ‘교수’ 개성조차 부여하지 않은, 본체의 성을 빼고 이름만 빼다 박은 성의 없는 이름. 그게 나다. 내가 아무리 슬퍼하고, 기뻐하고, 누군가를 구하고, 지키고!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 한들!!!!”
까드득!
“그건…. 어딘가 숨어있는 서버의 전자 신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그저 평범하게 게임에서 나가려 했을 뿐인데, 총장이 내 부고를 가져왔어. 내 부고를! 그 끔찍한 모습으로 실험체처럼 걸려있는 몸이 진짜 나라고, 지금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는 그저 진짜 ‘나’의 행동과 사고를 데이터화 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복제본인 나는, 원본의 의식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거다!”
인간의 형상을 한 괴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흐느끼듯 했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아아, 이안. 그 녀석은 거짓말을 더럽게 못 하지. 그때 뭐라고 했더라?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갈 수 있어어어? 놈은 돌아갈 수 있겠지. 물론 내 본체는 말이야.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나’는…. 글쎄?”
차분한 듯, 그러나 점점 더 격앙되어가는 괴수의 음성.
“알고 있었던 거야. 그 녀석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저 잠든 친구를 깨우기 위해, 0과1로 만들어진 인격을 달래기 위한 달콤한 거짓말임을! 클리어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래! 업데이트 되겠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4월드로 넘어가기 위해 잠든 본체의 기억이 [Player ‘professor’]의 데이터로 업데이트 될 것이고! 거기에 덧씌워질 나는…. 말 그대로 나 스스로의 기억에 강간당하는 거야. 내 모든 것 위에 본체의 기억을 ‘덮어쓰기’ 당할 거라고.”
킥킥킥킥….
까득, 까드득.
“머리가 좋으면 좋은 점이 참 많아. 남들보다 빨리, 더 멀리 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지. 하지만 가만 보니까…. 나쁜 점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차라리 이걸 알지 못했다면. 꼭두각시로 열심히, 밝고 힘차게! 이게 ‘살아남는’ 길이라 여기며 끝까지, 끝까지 나아가기만 했다면!!!!!”
우득!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괴수는 스스로의 목을 꺾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죽을 수 있었다면 기쁘겠다는 듯이.
“….완전히 미쳤군. 저게 교수가 그렇게나 경계하던. 감염인자에 머리끝까지 침식당한 상태인가.”
따가각, 따각, 따가가각!
“WOhUmAA! CurITANAeXeee!!!! IBLAMMM!!!!!”
….쏴아아아
노툼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씻겨나갔다.
쏴아아아아아-
하늘에 해가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전투로 만들어진 공터에만 쏟아붓는 여우비.
덥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피안개 위에 떨어지는 그 비를 괴수는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뚝!
천천히 몸을 짜 맞추던 교수의 몸이 거미줄에 걸리기라도 한 듯 멈추어 섰다.
“….오트만. 나한테는 이런 주문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주문이 아니다, 교수. 이건 수계 마법사의 순수한 역량, 물의 지배력을 겨루는 것을 응용한 것일 뿐.”
장대비 속에서 허공을 움켜잡은 노마법사는, 힘에 부쳐 떨리기 시작하는 팔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용없다. 네 몸의 지방 한 조각, 근육 한 가닥 속에 들어있는 모든 수분이 내 지배하에 있으니. 제자야. 부끄러운 줄 알거라! 스스로의 심상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마법사라는 이가 저열한 뮤트의 속삭임에 감화 당하다니! 내 가르침이 모두 헛되었구나!”
“소용없다…. 그거, 진심이십니까, 오트만?”
꾸드드드드득-
마치 몸속에 수십 개의 말뚝을 박아넣은 감각 속에서, 괴수의 팔뚝에 힘줄이 돋아났다.
“….건방진. 종속된 흐름 속에 영원불멸하게 순환하라! [흐르는 것의 삶]!”
촤촤아악!
한 손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며, 나머지 손으로 약어를 맺어 그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구속주문을 시전한 오트만.
지배력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대상의 몸 안에 수분을 모두 저 몸을 파고든 물의 사슬과 말뚝으로 현 위치에 고정하는 이 마법은 시전과 대상에게 효과를 발휘하기까지가 어렵지, 한번 발동되었다 하면 마스터급 기사가 와도 쉽게 풀지 못한다는 대주문급 마법 중 하나였다.
찰칵.
교수가 미동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알드리치가 그의 영혼 항아리,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로켓을 열었다.
콰악! 꽈아아악!
“우와아. 이거 진짜 꼼짝도 못하겠네.”
“….얌전히 기다리거라. 알드리치에게 수가 있다고 하니. 분명 너를 고쳐줄 것이야. 지금의 너는, 평소의 교수가 아니다.”
뚝.
순간, 히죽거리던 교수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었다.
굳어있는 몸 대신, 광기에 물들어 희번득거리는 그의 눈이 시계바늘처럼 오트만을 향해 돌아갔다.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오트만.”
틱. 티딕. 피시싯!
“평소의 나. 기록상 입력된 데이터와 상이하게 행동하는 나. 그게, 내가 저 본체와 다른 객체임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어? 역시 마법사는 말이 통하네.”
피시싯! 뜨드드득!
오트만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지배력과 대주문으로 완전히 구속된 몸에서, 혈관들이 그 몸을 탈출하듯 살을 가르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3위계랑 5위계는 그 벽이 어마어마하네. 나름 완력은 자신 있는데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그런데 스승님, 내가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뜨드득, 촤악! 슈와아악!
“피는. 물보다 진하대.”
“크으으으! 알드리치! 어서!”
표본을 떠내듯 몸에서 벗어난 동맥을 중심으로 탈피하듯, 새 뼈와 살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오트만은 절박하게 외쳤다.
콰악!
‘시간이…. 부족해! 저런 방법으로 [흐르는것의 삶]을 파훼할 줄이야!’
새로 태어난 오른팔에 검붉은 껍질이 자라나더니, 몸을 속박한 물의 사슬을 거칠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오트만. 나 방금, 평소의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 떠올랐어.”
이제 완전히 자유로워진 오른팔을 들어, 검지와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을 접어 오트만을 겨냥하는 괴수.
“이게, 내 존재의 증명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찰칵!
엄지의 첫마디가 접혀지며, 응축된 마력이 장전된 공이와 같은 소리를 울렸다.
“알드리치-! 시간이 없네! 어서-”
“이 모든 지랄이 다 끝나면. 서버룸에서 보자고. 스승님.”
오트만은 괴수의 손끝에 붉은 마력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파앙-
깔끔하고, 부드러운 파공성.
오트만은 모여들던 마나가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슬그머니 눈을 떴다.
“바다여 맙소사!”
오트만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지붕 위에 꼿꼿이 선 인형이 슬쩍 손을 들어보였다.
“….같은 이의 머리에 화살을 두 번이나 꽂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직 생나무의 푸르름이 선연한 엘프의 화살이, 꼬리깃까지 교수의 머리를 파고들어 있었다.
스아아악-
“됐다! 비키시게 오트만! 휘말려 들면 죽을 수도 있어!”
주문의 설계를 마친 알드리치가 그의 로켓을 들어 올리자 그의 로브 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이며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영혼을 엮어 목을 맨 누이여. 내 삶의 끝자락으로 그대의 입술을 적실지니. 피와 죽음으로 그대에게 손 내밀어 초대하노라!”
으적!
알드리치가 짓씹어 피를 낸 엄지손가락으로 허공을 부유하는 로켓의 뒷면을 찍어내자 그 피가 로켓을 관통하며 안에 든 초상화를 허공에 그려내었다.
“오라! 알드리치 페트라르카의 결속자, 넬 페트라르카여!”
사아아악!
알드리치가 주문의 마지막과 함께 초상화가 든 로켓을 닫는 순간.
허공에 떠 있던 피의 초상화가 부풀어 오르며, 그 안에서 초상화와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의 형상이 걸어 나왔다.
사박. 사박. 사박.
쏟아붓는 장대비 속에서 걸음마다 서리를 뿌리는 소녀가, 알드리치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알드리치는 세상을 떠난 누이의 손을 잡는 순간부터 시간을 세었다.
‘10초. 아니, 15초는 써야겠지.’
그는 영혼술사로서 흥미로운 연구 거리였던 교수를 떠올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혼의 흔들림이 고요해지더니, 그 안에서 다른 목소리와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 기이한 영혼에 대해.
그가 비밀을 품은 것처럼 교수에게도 숨겨야 할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 밤하늘 같은 공간에서, 자네는 가장 편안해 보였지!’
아무리 영혼의 반향을 울려도, 교수의 안에 들어있던 그 작은 목소리가 이제 들리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타락은 그것의 영향이 분명히 있으리라.
‘아직 깊이 물들지 않았다. 저 어딘가, 그의 수호령(守護靈)과 그의 영혼이 묶인 매듭이 있을 터!’
콰악!
알드리치는 팔을 걷어 피로 주문을 새기고, 그 안에 넬이 깃들게 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 인(因)과 과(果)를 만나게 하여,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게 될 것이다!”
콰악!
알드리치의 손이 교수의 얼굴을 뒤덮음과 동시에, 주문이 새겨진 팔에서 흑마력과 냉기가 요동쳤다.
“부디, 그가 자네에게 중요한 이기를 기원하지!”
.
.
.
.
딸랑.
『초혼제(招魂祭)』
후아아아악!
순간, 소나기를 뚫고 날뛰던 귀기와 어둠, 냉기가 모두 교수의 입으로 빨려들어가더니,
파앙-!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구름도, 귀기도, 사방을 옥죄던 끈적한 혈향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허억!”
털썩!
비와 땀, 피에 흠뻑 젖은 알드리치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되, 된 건가?”
“허억, 허억,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알드리치는 주문의 마지막 순간, 손끝에 밀려나던 그 영의 감각을 더듬었다.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덩치가 큰 영혼이었다.
“나머지는, 스스로 이겨내길 바라야지.”
척- 척- 척- 척!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가주가 맡았던 망령기사도, 기사단이 담당했던 망령기사도 정리되고 내성의 경계병들이 중장갑을 입은 채 남은 언데드를 밀어내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자리를 옮기지. 그의 영혼은 지금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잠겨있는 상태이니. 큰 충격을 줘선 안 돼.”
알드리치의 신호에 소음을 듣고 몰려드는 언데드를 상대하던 보르카가 냉큼 달려와 교수를 업었다.
“….성 밖으로. 내 작은 개천이 있는 곳을 봐뒀네. 그 모습을 성안에서 보지 못한 자가 없으니.”
“적어도 교수가 깨어나 설명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영주의 눈에 띄어선 안 되겠지.”
일행은 그렇게 지친 몸을 부축하며 혼란을 틈타 숲으로 숨어들었다.
부디 알드리치의 처방이 동료의 어긋난 영혼을 바로잡아주길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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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똑.
규칙적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공간.
그리고 그 한켠에 준비된, 낡은 소파와 따듯한 색감의 모빌이 별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곳.
‘하이드의 의식세계잖아. 여길 강제로 보낼 수도 있는 거였나?’
정확히는, 그와 하이드가 공유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였다.
깊고 고요한 공간 속에서 그의 흉측한 몸을 내려다보던 괴수는, 작은 빛무리가 어우러진 그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똑. 똑. 똑. 똑.
“….하이드가 남아있었다면. 그 녀석 정도는 내 하소연을 들어줬을 텐데.”
뭐, 없는 게 당연한가. 지금 녀석은 본체의 몸을 살리느라 그 괴물 같은 몸의 대가리 안에서 미동도 없는 본체의 의식을 보살피고 있을 테니까.
밖에 있을 원본을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이렇게 된 거, 이 내면세계도 원본과 다르게 마구 박살내려는 찰나.
[…..세상 모지리 같은 놈.]찰팍.
아무도 없어야 할 소파의 뒤편에서. 귀에 익은 투덜거림이 들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똥이란 똥은 다 치워줘야 하고. 염병할 인간 심폐 소생기까지 해주면서 휴가 보내놨더니. 휴가지에서 씨발 테러범이 되어서 돌아와?]말도 안 돼. 분명 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몸의 유지를 위해. 녀석은 의식의 경계를 넘나들 수 없다고 했는데.
설마.
‘하이드….냐?’
끄우우욱-
내 물음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낡은 소파가 비명을 질렀다.
GG에 접속하기 전. 이안이 사진으로 보여준 내 원본의 육체. 광택이 흐르는, 그의 마구잡이로 키운 육체와 달리 유연함과 단단함의 경계에 서 있는 검붉은 근육질 육체.
[어이. 간만이다?]유난히 커다란 왼팔과 갈고리 같은 발톱을 가진 괴수가, 소파 위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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