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04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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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연구시설.
삐빅- 삐빅- 삐빅- 삐빅-
“미니.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아휴. 말도 마세요. 별도의 시설이 제공되지 않는 곳에 피난민이 몰리면서 위생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잖아요. 그것 때문에 이질이나 콜레라 발생시 대책 마련하라고 난리에, 또 갑작스럽게 확산 속도가 빨라진 방사능 지대 때문에 대수층이 오염되어 식수 필터링도 준비해야 하지, 게다가 ‘그’ 샘플에 대한 연구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어느 부서나 똑같군. 전시 행정으로 커피도 끊겼는데 거의 매일 철야라니. 이러다 단체로 과로사해서 ‘연구에 미친 어보미네이션’ 같은 게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푸훗! 그거 일리 있네요. 다들 머릿속에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생각만 가득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뒤져나가면 커뮤니티 놈들도 더이상 ‘화이트 칼라 새끼들 꿀 쪽쪽 빠네, 전방에서는 변종이 사람을 처먹다 못해 취향에 맞는 부위를 골라 먹고 있는데 펜대나 굴리면서 틀어박혀 있네.’ 같은 소리는 못하겠지.”
우적!
행정부 연구원 테신은 칼로리 바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5년 전 멸망 초기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슨 짓이든 다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 밖에서 밀려들어 오는 변종까지 상대해야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5년간 우리가 했던 노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같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바뀐 게 없지는 않군.’
삐빅- 삐빅- 삐빅- 삐빅-
테신은 점심시간인 이 순간조차 그들을 연구실에 붙잡아두고 있는 거대한 동체를 올려다보았다.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샘플. 아직 살아있으며, 인간의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3형 변종.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도 그 힘찬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큼지막한 두 개의 심장. 그것이 펄떡거릴 때마다 요동치는 심전도계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 묘한 감동 비슷한 것이 자리 잡았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또 남자로서 느끼는 경외감의 일종이었다.
그도 연구의 일환으로, 또 팬으로서 박교수의 플레이 녹화본은 잠을 쪼개가며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다. 옆에서 직접 그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알고 있었다. 데이터 소울이라는 백업 데이터가 의식을 대신하곤 있지만, 본체가 완전히 변종이 되어 인간의 의식이 사라졌다면 그것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터.
회수된 오르페우스의 파편을 통해 추정된 ‘멀쩡한 오르페우스’의 출력은 4, 5개 구역 안의 모든 생명체를 일거에 자살시켜버릴 만큼 강력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잠든 사람은 그것이 발동되기 전, 그 모든 출력이 응축된 오르페우스의 핵과 접촉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순간까지 그 모든 에너지를 받아내고 나서도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어느 정도 지켜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몸의 모든 세포가 유전자 단계에서 리빌딩되는 상황에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매우 특수한 케이스로, 변종화가 일부 진행되고 있는 사람이라 오르페우스의 파장에 매우 취약했을 터.
테신도, 같이 자료를 살펴보던 연구원들도 생존자의 바디캠에 찍힌 장면을 보며, 검은 괴수가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에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 뒤로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곳에 와서 쉬는 연구원들이 늘었다.
딱히 모이기로 한 적이 없는데 입부 동기 미네아를 이곳에서 만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불멍하는 거랑 비슷한 거죠, 뭐. 활활 타들어 가잖아요. 저 사람.”
“그것도 있고. 학자로서 저건 증명되지 않은 신비의 영역이잖아. 이론적, 물리적 불가를 뛰어넘은 무언가. 누군가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우리 눈앞에 있는 존재야말로 그 증거 1호에 어울리는 사람이지.”
“….솔직히 말해요. 테신, 당신 그 이상한 박교수 팬클럽에 가입했죠?”
“이, 이상하지 않아! 우,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대화방이라-”
삐비빅! 삐비빅!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 미네아에게 [신도, 악마도 없다. 그런데 박교수는 있다] 대화방의 훌륭함을 설파하려는 찰나.
변종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많은 계기판들이 요동치기 시작하며 근처에 있던 연구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콰앙!
“테신, 미네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뭘 어떻게 건드렸길래···.”
“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냥 모니터링 하면서 밥 먹고 있었는데-”
“변명은 집어치워! 상태는, 뭐가 어떻게 됐는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심각한 얼굴로 호통을 내치는 소장. 미네아는 그 심각한 얼굴에 더듬거리며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을 전했다.
“그게, 시, 심박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신체 말단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으며….”
“말꼬리 흐리지 마!”
“뇌, 뇌 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잔뜩 찌푸린 얼굴로 미네아를 한번 노려본 늙은 연구원은 복잡하게 얽힌 계기판을 살피며 식은땀을 흘렸다. 최고 출력의 엔진처럼 날뛰는 심장. 절대 이 시점에 저렇게 활동할 리가 대뇌.
“좋지 않아…. 좋지 않아….! 원인은, 원인은 파악되었나?”
타다닥. 타닥, 탁 타닥!
“차, 찾았습니다! 찾긴 했는데….”
“했는데 뭐!”
“어….저희 쪽에서 작용한 것은 없습니다. GG 안쪽에서 접속기를 통해 식별 불가능한 신호가 전달됐는데. 그게 뇌를 자극한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정신 나간 게임 같으니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플레이 실시간 모니터링은 불가능한가!”
“실질적으로 플레이어가 없는 상태라 플레이어가 수면을 취할 때, 데이터 동기화 시 접속기에 저장되는 데이터만 추출 가능합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콰당탕!
결국 현시점에서 명확한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에 공구가 담긴 카트를 밀치며 어디론가 향하는 소장.
테신은 갈수록 일그러지는 생명공학부 소장의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장님? 뇌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좋은 소식 아닙니까? 어쩌면 예정하던 것보다 박교수님의 의식이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가….”
쾅! 와르르르!
“그건 일반적인 식물인간의 예시겠지! 대상의 상태를 몰라서 하는 소린가? 저 몸의 유지관리는 ‘하이드’라는 부 인격이 총괄하고 있는 상태란 말이야! 뇌 활동이 활발해졌음은 대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건 소뇌와 연수 사이에서 활동하던 ‘하이드’가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 아닌가!”
콰르르르!
소장은 연구실 한쪽 구석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난폭하게 치운 뒤, 먼지가 쌓인 빨간 상자를 카트에 실어 끌고 나왔다.
“그럼 설마….”
“그래! 강제로 몸을 움직이던 기이한 존재가 사라졌으니, 곧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한다는 소리다!”
삐비빅, 삑! 삐이이이—–
그 순간, 혼란이 가득한 연구실을 관통하는 소리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굳어버렸다.
파르르르르-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세차게 뛰던 심장이 힘없이 늘어져 경련하고 있었다.
짜아악!
“정신 차려! 가서 젤라틴 패드 한 통 가져오고! 너! 코드 가져와! 메인테넌스건 뭐건 다 뽑아도 좋으니까 빨리! 그리고 거기 너! 저기 이동형 유압 렌치 가져와서 오픈 카디악(개흉 심장마사지) 좀 돌려!”
부왁!
소장은 행정부 엔지니어들이 중장비를 몰고 와 사람 몸통만 한 심장을 마사지하는 동안 찾아온 물건의 포장을 찢었다.
“제세동기….?”
“비슷한 거다! 원래 사이보그용 대인 무기로 개발 중이던 고전압 충격기지만!”
“연결됐습니다!”
파즈즈즉!
지금 말고 좀 한가하던 시절에, 공학부 소장이랑 술 마시다 장난삼아 개발한 쓰레기.
손잡이가 달린 두 전극 사이에 한눈에 봐도 위험한 아크 방전이 일어나는 게 절대 사람한테 쓰는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바로 6000V 때려! 차지!”
위이이이이잉-
빠직-!
두-쿵.
“바, 반응이 없습니다!”
“나도 알아!”
소장은 가늘게 경련하는 심장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미 제세동기로서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전압을 때려 부은 상태.
하지만 상대는 미지의 생물이다. 재질조차 모를 단단한 물질을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3형 변종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미스터리.
소장은 상자의 핵이 부서지며 새어 나온 에너지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도 이렇게나 형태를 유지한 교수의 몸을 믿어보기로 했다.
“….거기 너. 이거 상판 뜯어서 리미터 붙어있는 거 다 떼봐!”
“이 이상 전압을 올리면 직접적인 전기 화상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네놈 몸통만 한 심장 앞에서 상식 같은 소릴 지껄이지 마! 나도 탈까 봐 패드 붙였으니까! 닥치고 출력 올려!”
“차, 차지! 8000V!”
“뒤로 빠져! 감전된다!”
빠지지지직!
두쿵!
“제기랄! 더 올려! 그을은 흔적도 없어! 유전자 반은 장비 가져와서 놀고 있는 심장 계속 마사지해! 어떻게든 뇌에 산소를 퍼 올려야 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좀!”
“벼, 병동에 가서 필요한 약이 있는지 받아오겠습니다!”
테신은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병동을 향해 뛰었다. 문득, 온갖 주사제와 약을 한아름 가득 가지고 오던 그의 눈에 문이 열린 병실 하나가 들어왔다.
사각사각사각-
방송 중임을 알리듯 빨간 불이 들어온 드론 카메라 하나만 띄워둔 채, 자기 할 일에 열중하고 있는 병상 위의 여인.
그 병실 입구의 이름표에는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박교수의 연인으로 알려진 사람.
‘….만약 교수님의 신체 기능을 복구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테신은 병실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연구동을 향해 달리는 발소리는 두 개로 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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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똑.
아무리 움직여도 멀어지지 않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끄우우욱-
익숙한 낡은 소파가 항의를 토로하듯 비명을 지르는 소리.
그리고.
[어이. 간만이다?]‘가짜’인 자신은,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녀석의 목소리.
찰팍, 찰팍, 찰팍.
낡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검붉은 괴수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형제여, 아버지여, 친구여.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구먼. 그렇잖아? 네 의식이 만들어낸 괴물 안에는 내가. 뮤트 세포를 기반으로 내가 기틀을 잡아 만들어낸 그 괴물 안에는 네가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야.]까드득.
손끝으로 왼손 마디를 긁어내던 하이드는, 피냄새가 코를 찌르는 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꼴은 뭐냐 도대체. 그날 상자를 향해 나아가던 개 멋있는 박교수는 어디 가고 웬 병신 찌질이 훌쩍이가 여기 있는 거냐고. 솔직히 그날, 마모되어가는 정신 속에서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되어가는 네 의식을 보면서 ‘아, 나는 이놈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그야. 영혼을 가진 존재와 데이터와 기억으로만 구성된 존재의 차이겠지.’
콰르르릉-
번쩍!
고요한 어둠이 가득하던 공간에, 새하얀 번개가 어둠을 가르고 내리꽂혔다.
[푸흡! 야, 방금 그거 좀 웃겼다. 뭐, 다른 존재? 데이터랑 기억이 뭐? 아무리 뮤트 세포가 마이너한 감정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네 상태가 거의 뭐 존재 철학의 분수령에 서 있는 수준인 것을 고려해도. 그건 너무 병신같은 소리 아니냐? 원본이고 나발이고 가 어디 있냐고.]꾸욱, 꾸우욱-
하이드의 날카로운 손끝이 교수의 가슴을 찔렀다.
[지금 내 눈앞에서 대화하는 상대가 박교수가 아니면 누군데? 꼭 몸이 있어야 사람이고, 없으면 가짜냐? 나 좀 섭섭하다? 누군 날 때부터 의식밖에 없었는데. 그럼 난 처음부터 없는 존재였냐? 그럼 여기 있는 난 뭔데? 네 말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너 머리 좋잖아 임마! 논리적으로 사고를-]‘….그래서 모르는 것이겠지. 내게 속해있는 것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고, 나는 클릭 한 번으로 복제될 수 있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을 말이야.’
[….말이 안 통하네. 박교수가 맨날 머리통에 뮤트 세포가 올라오는 걸 경계하더니. 진짜 가관이구먼, 가관이야.]꽈르릉!
번쩌-억!
저 먼 의식의 저편에서 내려오는 벼락을 보며, 하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뭐, 됐다. 시간도 없는데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자.]‘시간이…. 없어?’
[그래 임마. 내가 뭐에 끌려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나 없으면 너 시체거든? 저 벼락, 밖에서 네 몸을 어떻게든 살려두겠다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지. 쓸데없이 바쁜 사람 불러들이고 말이야.]‘그래. 그러고 보니…. 네가 저쪽 몸을 살려두고 있었지?’
꽈르르릉!
제세동기의 전기충격이 몸을 울리며, 새하얀 충격이 이빨을 드러낸 두 괴수를 비추었다.
꾸드드득, 우득! 뚜둑!
푸쉬익- 우드득! 꽈아악!
검붉은 괴물의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증기화된 선혈을 안개처럼 뿜어내는 검은 괴수의 몸이 금방이라도 도약할 듯 앞으로 굽혀졌다.
[빠르게 가자고. 내가 잘 아는 누구한테 배웠는데. 미친놈은 매가 약이라더라.]‘너를 죽여 이곳에 붙잡아두면···. 바깥의 그놈이 죽게 된다는 뜻이겠지.’
[하! 겨우 몸 좀 다룰 줄 알게 된 것 가지고…..]꽈르르릉!
마주한 붉고 노란 눈에 투지와 광기가. 피투성이 이빨과 새하얀 송곳니에 의미가 다른 미소가 어리고.
의식의 저편에 닿은 번개가 다시 한번 두 괴수를 비춘 순간.
[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냐아아아!!!!]‘내가! 너를! 나 외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오롯이 나로서의 존재를 되찾겠다!!!’
투확!
“크아아아아아아아!!!!!!”
“그르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앙!
검은 공간에 내리치는 벼락을 배경으로,
비틀린 자아에서 탄생한 괴수와 비틀린 자아를 극복하며 만들어진 괴수가 격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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