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05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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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두 괴수의 격돌에 대기가 요동치고, 바닥에 얕게 고인 물 웅덩이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 튀어올랐다.
둘의 전투는 무(武)와 술(術)을 갈고닦은 이들이 펼치는 전투라고 보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크아아아악!!]푸확!
꾸드드득!
기회를 노린 하이드의 갈고리가 교수의 심장을 파고드는 순간, 자라난 갈비뼈가 뒤엉켜 한쪽 팔을 붙들고,
부우우웅!
까드득!
한 팔이 제압된 상대에게 한껏 부푼 오른팔이 공기를 찍어누르듯 날아들면, 짐승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 주먹을 통째로 물어뜯어 막아낸다.
와그작!
타앙!
“….쿨럭!”
[끄으으!]피투성이 갈비뼈에 뒤엉킨 손아귀가 그 악력 만으로 가슴을 우그러뜨리고 몸통에 구멍을 내는 동시에, 이빨에 가로막힌 주먹의 손가락이 펴지며 그 끝에서 쏘아진 붉은 탄환이 괴수의 목구멍을 향해 쏟아졌다.
각각 가슴에 뻥 뚫린 구멍과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둘.
인간의 전투가 아닌, 두 짐승이 피투성이가 되어 뒤얽혀 싸우는 듯한 치열함. 양쪽 모두웬만한 공격으로는 공격한 티도 안 나는 육체를 믿고,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는 식의 저돌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문제는, 한쪽은 살을 내줘도 그 살이 쑥쑥 자라나는 불합리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뭘 해도 흠집도 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
“목 안쪽에 블러드 샷을 퍼부어도 머리 좀 흔들고 마는 몸이라니. 3형 변종답게 상식에서 벗어난 몸이로군”
[가슴에 직경 20cm짜리 구멍을 눈 깜짝할 새에 재생해버리는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뮤트의 재생성 육체에 마법이라니. 이론상 무적 아냐 그거?]떠어엉!
하이드는 기습적으로 파고드는 교수의 공격을 막아내며 불평했다.
시간은 없지. 상대는 무슨 아메바마냥 쑥쑥 불어나는 몸도 모자라 온갖 충격을 흡수하고 되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이상한 마법에, 원거리 공격 수단까지 갖추고 있지.
그런 놈을 상대로 제한된 시간 안에 제압을 해야 하는데, 제압을 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뮤트 감염 인자]라는 요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저 정신상태를 뜯어고쳐야 해결이 되는 것이다.
‘으으으, 생각하자, 생각! 껍데기라면 지금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박교수라면 미쳐버린 아군이 눈앞에 있다면….’
자아, 차분하게 평소 그놈이 생각하던 방식으로 해보자고.
우선, 상대는 누구인가?
‘껍데기지. 저놈은 자기가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뭔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내가 여기 불려온 것만 봐도 그건 확실해.’
하이드는 교수와 자신의 상태를 ‘서로 꼬리가 맞물린 유령’과 같은 상태라 정의했다. 하이드 자신이 정신질환의 일종이든, 박교수가 의식불명 상태일 때 몸에 자율행동을 강제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든 간에 그는 박교수라는 의식과 연결된 생물이었다.
애초에 자기가 원본이 되겠다고 꽥꽥대는 저놈이 원본이 아니라면 그가 이쪽으로 끌려올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다음. 현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음…. 바이러스? 악성코드 감염?’
말도 안 될 정도로 수상하고 현실과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GG는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건 좀 쉬웠다.
개발자, 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게임 안에 심어놓은 정신작용 기제, [뮤트 감염인자]에 머리끝까지 침식당한 박교수가 이상행동을 하고 있는 상황.
‘전에도 머리 근처까지 감염인자가 도달했을 때 비슷한 일이 있었지. 심각한 수준의 자기파괴욕구. 아마 몸을 모두 차지했는데도 숙주가 저항의식이 남아있을 경우, 상해를 통해 생명력을 줄여 남은 의식을 몰아내고자 하는 감염인자의 행동 방식이겠지.’
여기까지는 나름 이해할만한 사실인데.
‘게임 속 NPC가 평소 껍데기와 나의 대화를 눈치채고, 일종의 정신이상에 걸린 그놈을 고치겠다고 내 의식을 게임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이건 숫제 스킬의 영향력을 외부의 본체에 투과한 것이 아닌가?
GG를 무더기 고소에 빠져들게 한 버서커 물약 같은 것도 게임 시스템이 현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건 의도치 않게 사용된 전자 마약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건 NPC가 자유 의지로 플레이어의 정신을 조작한 것이다.
크게 보면 플레이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GG라는 게임이, 그 자율의지로 플레이어의 상태에 개입한 것이다.
그냥 기존에 설계된 루트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의 플레이어에게 가장 효율적인 대상을 찾는 방향으로.
그래, 가장 효율적인 대상이다.
‘….누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설계한 것 같아서 묘하게 기분 나쁘네.’
하이드는 지금 같은 상황에 뭐가 제일 효율적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행할 능력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네놈이 심신미약이 되어 주셔야겠다!!!]결국,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대로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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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지지직!
우득!
쾅! 쾅! 쾅! 쾅!
“허억, 허억, 흐윽!”
찢어지고, 부러지고, 터지고 잘려나가는 공방이 수차례 이어지는 사이.
시간이 지날수록 두 괴수는 각자의 몸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충격도 결국 흐름의 일종. 에너지가 분산될 뿐 사라지진 않으니, 그 흐름을 그러모아 사용할 수 있다면….’
힘의 연쇄. 돌아오는 충격을 재사용하는 그 힘의 연쇄를 조금만 더 섬세하게 사용한다면. 어쩌면 이 깨달음을 이 완성되었을 때, 무한히 순환하며 증폭되는 힘이 탄생할 수도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몸을 난자한 날카로운 갈고리는 그 깨달음이 이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쪼렙 마법사 주제에 소모전을 하다니. 네 몸뚱어리야 그렇다 쳐도, 마나가 딸릴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거냐?]생각은 했었다. 전투 중 몸의 구석구석을 감싼 블러드 아머가 불안정해질 때부터. 어떻게든 도망 다니며 시간을 끌면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겠지만….
지끈-!
지금도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충동에, 앞으로 달려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출력이…. 부족했어.’
그가 이 몸에 익숙해진 만큼 하이드도 익숙해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 정도로 단단한 내구도를 믿고 일말의 방어, 회피 동작 하나 없이 오로지 공격만을 강행한 것.
집요하게 블러드 아머를 노리는 것을 보니 녀석도 본체의 기억을 통해 부족한 마나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마나가 다 떨어지고, 여전히 검은 갑피는 남아 있지만 변종의 육체보다는 훨씬 약한, 내세울 게 재생력과 완력만 남은 육체로는 놈을 이길 수 없었다.
질질질질-
그 결과가 바로 사지가 너덜너덜해져서 싸구려 고깃덩어리처럼 갈고리에 끌려가는 지금의 모습이었다. 비참한 패배자의 말로. 조금이라도 몸이 재생되었다 싶으면 가차 없이 갈고리 같은 손톱에 찢겨나가는 현실.
“크흐흐, 크흐흐흐….”
슬프다기보단 후련한 느낌이었다.
[웃어? 야야, 너 상태 안 좋은 건 알고 있는데, 어떻게든 정신줄 놓지 말고 버텨봐 좀. 사상 감염이 아니라 진짜 미친거면 안 된다고.]“이게 원판과 복제본의 차이라는 것이겠지. 가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진짜를 이길 리가 없으니까.”
[니미. 혼자 땅 파는 것도 저 정도면 예술이네 아주. 당연한 결과 아니냐? 이 몸은 내 짧은 삶 속에서 본 것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트라우마 따위를 비집고 나온 3형 변종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의 모든 것을 마모시키는 그 오르페우스의 폭풍 속에서 마지막 한 조각까지 스스로의 의지 앞에 진솔했던 영혼. 그 정수와 같은 몸이란 말이다. 이건 박교수라는 인간의 정수 그 자체야. 이게 너라고. 그 흉측한 모습이 아니라.]“….궤변이군. 아까는 내가 원본 그 자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그 모습과 지금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이지?”
[….뭐. 사람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겠어. 그때의 히로익(Heroic)한 모습은 수많은 삶을 등에 짊어진 박교수의 끝이었고. 지금의 모습은…. 그 내면에 고여있던 찌꺼기 같은 게 감염인자에 의해 표면으로 올라온 모습이겠지. 넌 원래 끝내주게 이타적인 주제에 자기애가 좀 많이 부족한 편이었거든.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도피처랍시고 나 같은 상상친구를 만들어낼 정도로 외롭기도 했고.]“자기애가 부족하다니. 내가? 내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지금껏 수많은 생존자들의 머리에 탄환을 박아넣은 내가?”
[너 자살 시도 졸라 많이 하지 않았냐? 그때마다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부채감이 널 멈춰 세웠던 거지. 인정해 임마. 너 완~전히 정신병자야. 다른 황무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기억이라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눈처럼 쌓이는 거라고. 아스팔트에서 눈사람 만들다 보면 그 밑바닥에 시커먼 눈이 올라오잖아. 표면이 하얗다고 그 안에 검은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소리지. 감염인자는 네 멀쩡한 부분에 가려있던 부정적인 부분을 마구 부풀려 강제로 끄집어낸 것이고.]이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그 롤러코스터 같은 의식의 변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해온 하이드가 가지게 된 나름의 철학이었다.
‘어쩌면…. 1월드에서 원시 부족의 폭력성을 부추기던 검은 죽음, 2월드의 언데드화, 3월드의 뮤트 감염인자. 모두 저런 역할을 위해 설계된 것일 수도 있겠지. 게드로이츠 그 인간이 게임에 그딴 프로그램을 쳐넣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이드는 뭔가 알 듯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것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퍼어억!
하이드는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을 쇼파에 대충 던져둔 다음, 그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기억들을 손으로 훑고 다녔다.
“이제…. 내게 뭘 어쩔 셈이지? 나를 죽여 다시 4달 전 기억으로 리셋시킬 생각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임마. 그렇게 간편한 시스템이었으면 현존하는 최고의 공학자들이 네놈 머리통이랑 접속기에 붙어서 60일이 넘게 고생하지 않았지. 가만 생각해봤는데, 거울 보고 열폭하는 네놈을 아주 확실하게 식혀줄 방법이 있지 뭐야?]짜그락, 짜그락.
구부정한 모습으로 유리알 같은 기억 사이를 누비던 하이드는, 한눈에 봐도 색이 다른 묘한 기억 하나를 따 교수 곁으로 돌아왔다.
“….뭐냐 그건.”
[약. 너한테 없는 기억의 일부.]“….두 달 전의?”
[그래. 네가 정말 복제본이라 생각한다면 거부할 수 없겠지? 너한테는 없는, 원본만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고~ 원본만! 가지고 있는!]꿀꺽.
교수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저것에 강렬한 탐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쪽 구석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저것을 당장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회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훨씬 강력했다.
[아- 해. 그리 길진 않을 거야. 기억을 편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거든. 전에 약-간 기억에 손대봤는데, 별것도 아닌 기억을 살짝 뒤로 치운 것만으로도 두 달 가까이 잠만 자야 했어. 내 손으로 머리를 열고 뇌 수술을 하는 기분이더군. 심지어 의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말이야.]“그럼 지금은?”
[지금이야 니놈만 해결되면 다시 나가서 기계처럼 우심실 조이고, 소장 꿀럭거리고 하는 게 전부니까. 그 정도는 의식의 표면에 나오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거든. 진짜 무의식에 박힌 대로 몸과 동화되어야 하는 일이라.]작은 빛이 일렁이는 기억의 조각. 잠시 망설이던 교수가 입을 벌리자, 하이드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튕겨 넣었다.
토옥!
[다행히 그냥 먹여도 되는군. 기억이라서 뚜껑 따고 머리통에 쑤셔 넣어야 되나 싶었는데.]꽈르르릉!
벼락과 함께 크게 흔들리는 검은 공간을 보며 하이드는 중얼거렸다.
[….2달 전 약속. 좀 다르긴 하지만 지켰다. 껍데기.]교수는 하이드의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의 뇌리에 방사능과 폭음이 가득한 황무지가 선연하게 펼쳐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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