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09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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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닉스 그릭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추남이었다. 곱추에, 이상하게 튀어나온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었으며 들창코는 비가 들어 올 때마다 물이 튀어들어 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못생긴 자신을 사랑했으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약간의 뿌듯함 마저 느꼈다.
?(베이)는 연금술 약어로 분말을.
?(닉스)는 섞다는 뜻을.
분말을 섞다. 그야말로 연금술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베이닉스는 그 이름답게 광물성 재료의 혼합을 주로 연구하는 광물 연금술사였다.
산골 촌구석 영지의 농노였던 부모님이 이걸 알고 그의 이름을 지었을 리는 없지만, 모르고 지었기에 오히려 더 운명의 인도에 가깝다고 느꼈다. 산골 마을에 방문한 상단과 함께 따라온 바드의 이야기를 듣고 자도 부자가 되겠다며 곡괭이를 들고 무작정 검은 돌이 나오는 골짜기를 파러 다닌 것도, 광산은 못 찾았지만 감별을 위해 모닥불 속에 던져넣은 광물이 신비한 빛으로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며 연금술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새겨진 것도, 노상 땅을 파고 다니며 섞어대는 그에게 비밀스럽게 접근한 대지마법사들의 끈질긴 유혹을 뿌리쳐낸 끝에 어엿한 연금술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게 된 것도.
비록 그 과정에서 잘못된 조합의 폭발로 귀가 반쯤 먹긴 했지만, 베이닉스는 그 모든 것이 위대한 연금술의 신, ‘존재하되 아무도 만나지 못한 미지’ 가 점지한 그의 운명이라 여겼다. 귀족과 마법사에겐 재능 없는 이들의 학문이라 천대받고, 예비 마약사범으로 몰려 큰 도시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처지이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분말을 섞는 자의 이름을 믿었다. 오래전 대 연금술사 아드펨이 트롤 피의 독성을 중화시켜 힐링 포션을 만들어내 사제가 찾아오지 않는 산골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것처럼. 그에게도 만천하에 베이닉스 그릭스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여느 때처럼 연막 분말을 팔러 도둑길드에 방문한 그는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귀가 안 좋은 그를 위해 항상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주는 도둑 길이, 흥미로운 정보를 물어온 것이었다.
“성자?”
“그래, 성자! 내가 우리 길드원 목숨 여럿 살려준 자네이니까 해주는 말인데, 바로 어제 오전에 시그필룬드 시에서 피의 성자가 탄생했다는군!”
“성자는 무슨. 또 이상한 교단 놈들이 헌금 끌어모으겠다고 한바탕 연극을 벌이는 것이겠지.”
“이 사람이! 우리가 뒤통수도 치고 물건도 훔치지만 구라는 치지 않는다는 것 잊었나? 어제 변경백의 기사들이 죽어나갈 만큼 끔찍한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는데, 그것을 미리 예견하고 도시에 머무르고 있던 광명의 성자가 일거에 그것들을 쓸어버렸다는군!”
“시그필룬드면…. 동부잖아? 설마 요즘 산맥 너머에서 시끌시끌한 그 뮤트인가 하는 것들이 넘어온 것 아냐?”
“그야 우리도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성자의 몸에서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온 피가 사람들을 치유했다는군! 어때, 이 정도면 자네 같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소식이 아닌가?”
흥미롭다마다. 흥미롭다 못해 엉덩이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더? 더 자세한 정보는…. 우정만으로 셈을 치르기 힘들 것 같은데….”
망할 도둑놈.
베이닉스는 가진 연막분말과 천식 가루를 모두 넘긴 다음에야 상세한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고, 그의 소중한 연금술 가방에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쓸어담은 뒤 시그필룬드 시를 향해 말을 달렸다.
바로 옆 도시라고는 해도 하루도 안 돼서 변경백령에 도착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거의 동네 친구처럼 나타나는 산적도 없었고, 급하게 만들었음에도 버서크 물약과 암말 번식향은 그의 늙은 말에 기가 막히게 잘 들어먹혔으며, 심지어 도시에 난리가 난 덕분에 경계병도 줄어들어 성벽에 툭 튀어나온 망루의 한쪽 벽을 살짝 녹여 파낼 때까지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미지의 인도이리라. 왕족의 신체에 특수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소문에 그가 도굴꾼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그들의 비법을 배운 것도, 도둑들과 친하게 지내며 지붕을 타고 넘는 것을 배운 것도 모두 이 순간을 위한 ‘미지’님의 안배였으리라! 머지않아 이 베이닉스가, 성자의 피로 위대한 연금술을 행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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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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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쏘옥!
“여기 있었군. 연금술사.”
“흐이이익! 서, 성자!”
퍼어엉! 후다다닥!
“이제 그만 포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냥 얘기만 좀 하자니까?”
“으아아악!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빠른 거야!”
쑤우욱!
아무리 연막을 뿌리고, 담을 넘고,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도. 어느새 고개를 돌려보면 담장 너머로 성자의 흉악한 얼굴이 스윽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쳐 결국 몰린 막다른 골목.
그 거대한 몸이 골목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며, 베이닉스는 어쩌면 그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의 끝자락이 이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훔치는 게 아니었어…. 결코, 저자의 앞에서 훔치는 게 아니었어!’
그래. 훔쳤다.
시그필룬드에 하루만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그 ‘성혈’이라는 것은 죄다 없어진지 오래였다. 확인해보니 성자의 피는 오직 그 ‘뮤테이션 블러드’라는 생물군의 강력한 감염효과를 막아주는 효과만 증명됐지만, 도둑길드에서 치유 효과를 얘기한 것처럼 촌 무지렁이들 사이에서
‘성자님 피를 빵에 찍어 먹으면 병이 낫는다더라.’
‘성자님 피를 몸에 바르면 그 힘을 가질 수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며 도시 곳곳에 퍼져있던 성자의 혈흔을 채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모조리 닦아먹은 것이었다.
남은 것은 오염되고 말라붙은 일부와, 신전의 사제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한 다섯 병이 전부.
도시를 헤매며 만난 다른 연금술사들이 신전에 가서 어떻게든 한 병 받아오자고 할 때 베이닉스도 당연히 동참했다. 위대한 미지가 그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이라 여겼으니까.
물론 깽판을 놓아 피를 받아온다는 계획은 신전 뒤편에서 걸어나와 ‘이것은 통신마법으로 신성력이 바닥난 사제들을 대신하여, 아직 감염인자의 차도를 지켜봐야 할 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하며 벽처럼 연금술사들을 가로막은 성자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지만.
그 순간까지도, 평사제들이 그 듬직한 모습에 환호하는 순간조차 베이닉스는 이것도 위대한 미지의 인도라 여겼다. 아, 그분께서 한 병을 넷이 나눠 가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기시는구나! 다섯 병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로구나! 어쩐지. 도둑길드 놈들 주기에 아까울 만큼 잘 만들어진 연막 분말 하나는 숨기고 싶더라니!
그렇게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잘 풀린 그의 운명을 믿고, 그 자리에서 연막을 터트리고 사제의 손에 들린 성혈 상자를 훔쳐서 탈출하게 된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피투성이 성자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베이닉스의 귀에 그 걸음 소리가 저승의 뱃사공이 울리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슬프게도 ‘존재하되 아무도 만나지 못한 미지’께서는 그에게 위대한 연금술을 안배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걸 돌려주고 사죄한다면….’
베이닉스는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날 길을 모색했지만,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저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만 봐도 견적이 나왔다. 피라는 것은 생명의 근원. 아무것도 모르는 이라 하여도, 자신의 피가 타인의 손 위에서 마구 다뤄진다면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낄 것인데 하물며 성자의 귀한 피라면 오죽할까.
베이닉스는 그의 꿈이 스러져가는 환상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의연하게. 의연하게 가리라! 모든 연금술사의 끝은 죽음이라는 미지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니! 의연하게. 의연하게….’
훌쩍, 훌쩍!
“어흐흑! 어흐흐흑!”
“….왜 울지?”
“살려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다시는 교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을 테니…. 어흐흐흑!”
의연하긴커녕, 속절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죽는 것도 두렵지만, 그의 운명이 연금술이 아니었다는 것을, 연금술사가 아닌 그는 그저 좀도둑 도굴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베이닉스는 살고 싶었다.
허나 그의 앞을 철탑처럼 가로막은 성자는 그 전투의 흔적만큼이나 가차없었으니.
날카로운 예식용 단검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며 호선을 그리고. 베이닉스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
톡.
힘껏 휘둘러 그의 목을 벨 줄 알았던 단검을, 성자는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응?”
“살려드려야지. 당연히, 살려는 드려야지. 어디 보자…. 이렇게 말하면 좀 대화가 되려나? 들리나? 들. 리. 나?”
“드, 들립니다! 들려…. 아니 그러니까, 이게 보여서 들리는데, 이게 그러니까….”
“흠. 역시 귀가 잘 안 들리는 친구였군. 어쩐지 그렇게 불러도 뒤도 안 돌아보더니. 아예 귀가 먹었나?”
“그건 아니지만….”
사실 뒤쫓아오던 성자가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그저, 당연히 ‘회개하라!’ 나 ‘네놈의 피로 성당에 축문을 새기겠다!’ 정도인 줄 알았지. 솔직히, 야심한 밤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우다다다 쫓아오면 오금이 저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살려준다고는 했다.
‘대가가 없지는 않겠지. 단검을 준 것을 보니…. 도둑의 방식으로 새끼와 엄지손가락을 요구할 생각인가?’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베이닉스는 골목을 철탑같이 막아선 성자를 보며 각오를 다졌다. 이대로 살아 아직 연금술사로 살 수만 있다면. 베이닉스 그릭스의 이름이 좀도둑 도굴꾼으로 남지 않을 기회가 있다면 뭐든 좋았다.
꿀꺽.
꽈아악-
예식용 단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오, 그래? 역시 내가 사람 제대로 봤군. 눈치도 빠르고 말이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베이닉스가 대답하자, 교수는 골목의 입구를 슥 둘러보고 그의 앞으로 다가와….
쑤욱.
흉터 자국이 선연한 그의 오른팔을 내밀었다.
“….?”
“뭐해. 찔러.”
“예?”
“찌르라고. 아, 연금술사라서 이런 거랑은 거리가 좀 먼가? 사람 안 찔러봤구나?”
푸우욱!
당황한 베이닉스가 대답할 틈도 없이, 성자의 큼지막한 손이 그의 손을 잡고 단검을 그 팔에 깊숙이 박아넣었다.
피싯!
깊숙이 박힌 단검과, 좁은 뒷골목 사이로 퍼져나가는 혈향.
베이닉스의 이성은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 쫓기던 중이라는 것은 새카맣게 잊고,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땅에 떨어지면 오염된다!’ 라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그의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내 피를 받아내고 있었고.
씨이익-
그런 그의 모습을, 성자가 흐뭇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자는 내가 도로 교단에 반납할 테니까, 너 그거 다 가져라. 혹시 피 말고 다른 건 관심 없나? 성자의 뼈나 살점, 눈알 같은 거? 필요하면 주고. 아, 이건 너무 네크로멘시 쪽인가?”
‘….미, 미친 사람인가? 아까 교단의 그 성자랑 같은 사람이 맞나? 쌍둥이?’
베이닉스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성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쨌든 하루 묵은 피 보다는 방금 채취해서 미리 보존처리가 끝난 병에 담은 피가 훨씬 가치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아직 ‘누구도 만나지 못한 미지’ 님의 가호는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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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베, 베이닉스 그릭스입니다.”
“베이닉….스. 그릭스. 직업은요?”
“보시다시피, 연금술사입니다. 광물을 주로 연구하지요.”
“광물계 연금술사라…. 연금술사 중에서 범용성이 떨어지는 편이네요?”
“예, 예….”
“주로 만드는 물건은요?”
“지금은 다 써서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만, 이 근방 도둑길드에서 없어서 못사는 연막 분말로 유명합니다. 또 광물 독을 좀 만들기도 하고,”
“주 거래처는…. 도둑길드. 어디에요? 세발 쥐? 춤추는 손가락? 달그림자?”
움찔!
“세, 세발 쥐입니다.”
“세발 쥐라….저도 몇 번 이용해봤던 길드네요.”
내가 익숙한 이름에 잠시 당황하는 동안, 내 뒤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온 루실라는 베이닉스의 상태를 보며 내게 힐난하는 눈빛을 보냈다.
[….꽝이잖아요! 그러게 내가 그 똥쟁이 늙은이 쫓아가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허. 있어 봐. 분명 이 친구 뭔가 있다니까.] [있긴 뭐가 있어요! 연금술사는 까마귀 둥지 같은 거라구요! 뭔가 잔뜩 쌓여있는데 그게 보물일지 쓰레기일지는 알 수 없는! 그 영감은 딱 봐도 돈냄새가 풀풀 났잖아요! 반면 이 사람은 포션 장사도 안 해서 현금도 없어, 길드에서 금연성 허가를 받을 수준도 안 돼, 하다못해 재료라도 많았으면 어떻게 셈을 치르겠는데 방금 가방 내려놓을 때 텅 빈소리가 났다구요! 텅! 터엉-!]녀석. 잔뜩 뿔이 났군. 보나 마나 그 ‘손해’를 봤다는 스위치가 켜져서 저러는 것이겠지.
루실라의 말대로 베이닉스는 동료로서도, 내정 NPC로서도 그리 큰 가치는 없는 연금술사였다.
애초에 워낙 마이너한 광물계 연금술사에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었는지 그 흔한 ‘기력 증강제’ 같은 것도 만들 줄 모른다고 하니.
만드는 것도 죄다 밤손님들한테나 유용한 물건이다 보니 대충 보기에는 무늬만 연금술사인 그런 놈으로 보이기 십상이긴 했다.
하지만….글세? 과연 그게 다일까?
[루실라. 내가 장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야. 결국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거든? 로만도 그렇고. 널 본가에서 여기까지 나오는데 도와준 그 뚱뚱한 행수도 그렇고.] [그거야…. 당연하죠.] [자, 그럼 사람의 가치는 뭘로 정해지는지를 따져보자고.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잖아? 어디서 어떻게 성장할지 모른다고. 이 녀석의 눈을 봐.]쪼로로록-
교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슬그머니 옆으로 옮겼다. 상당히 주눅이 든 상태로 시종일관 눈치만 보고 있던 베이닉스의 손이 그 순간 기계처럼 움직이며, 유리병 안에 든 피가 흔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팔을 따라 움직였다.
[저 눈을 보라고 눈을. 뭔가 느껴지지 않아?] [음…. 굉장히 익숙한….느낌이긴 하네요. 뭔가 위험하고, 불쾌한 기억이….] [그렇지? 익숙하지? 나도 마법사라서 잘 아는데, 저건 그야말로 ‘마법사 같은 눈’ 이라고. 저 넘실거리는 집착을 봐. 대단하지 않니? 저거야말로 타고난 재능이지. 눈빛이 아아-주 마법사 적이어서 마음에 들었어.] [윽. 역겨-]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저 똘망똘망한 눈을 보라고. 세상에 표본과 그 자신, 둘밖에 없다는 듯 빠져든 모습이잖아?
연금술 같은 수상쩍은 학문에 빠져들지만 않았으면 당장 나부터 ‘물 좋아해요?’ 하고 물어볼 뻔했다고.
아무튼, 저 녀석이 언젠가 크게 사고를 칠 놈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말이다. 이런 놈들은 챙겨둬야지.
[그럼…. 그냥 뭔가 저지를 것 같은 놈이라 당장 돈이 되는 연금술사들 대신 이쪽으로 왔다는 소린데. 개인적으로는 날린 기회비용이 기대수익을 훨씬 웃돌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연금술사라는, 사실 원시 화학자에 가까운 직업군. 그중에서도 유독 마이너한 광물 전문가.
스승이 없다 보니 기존의 틀에 박힌 포션 조합 위주의 연금술 방식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연금술을 사용하고, 거기에 마법사가 인정하는 마법사 수준의 집착까지.
이거, 완전히 혁신을 위해 준비된 재료가 아닌가? 혁신하면 또 내가 잘 아는 친구가 있거든. 전 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가챠-맨이라고 아시나 몰라?
“베이닉스.”
“예, 옙!”
“내가 워낙 자비로워서 널 놔뒀지만, 어쨌든 교단의 사제들이 보는 앞에서 교단의 귀물을 훔쳤단 말이지?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4인 집단 단위로 벌어졌으며, 치밀하게 준비된 연금술 도구까지 사용한 계획 범죄로 말이야.”
“그, 그런!”
“쓰으읍! 끝까지 들어. 제국법으로도, 교단법으로도 넌 완벽한 범죄자야. 성상 앞에서 그 지독한 연막을 피웠으니 교단에 잡히면 그 유명한 광명교단 지하 감옥의 인간 종탑행. 제국에 붙잡혀도 30년 노역행이지. 어때, 내 말이 틀려?”
“….으흑! 마, 맞습니다. 저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 어흐흑!”
눈물이 많은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또 울기 시작하는 베이닉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꽉 찬 병에 마개를 채우고 새 병을 찾아 가져다 대는 것을 보니 확실히 기인은 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는 성자다운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쉬이이. 괜찮아. 괜찮아. 처음에 내가 말했잖아.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고.”
“일….이요?”
“그래, 일! 어차피 이 나라에서 너는 글렀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무도 모르는 해외로 도피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 밀과 맥주로 유명한 황금의 나라 텔드랏! 대귀족의 후원! 씻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넘쳐 흐르는 연구과제와 풍부한 재료들! 어때,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아?”
“훌쩍!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꿈만 같은 일이겠습니다….”
“오케이! 루실라! 계약서 가져와!”
생각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 마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이성이 위태위태한 지금,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루실라가 품에서 꺼내든 것은 내가 그녀에게 미리 주문했던 계약서였다. 어차피 내 속도를 따라올 수도 없으니 천천히 따라오면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새 다 만들어서 붉은 리본으로 말아두기까지 하셨다.
꾸우욱-
온갖 독소, 노예조항이 가득한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연금술사를 보며 교수의 입에 함박웃음이 맺혔다.
‘흐흐흐흐. 이런 식으로 몇 놈 더 잡아서 로만 옆에 박아 둬야지. 한참 손이 부족할 때니까 굉장히 좋아하겠지?’
시약을 다루는 섬세한 손놀림에. 신소재에 대한 열정에.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화학 공학에 대한 기초지식까지.
교수는 지금쯤 한창 텔드랏에서 비공정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친구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코밑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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