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1
Chapter. 11. 마법사들의 마법사(29)
****
철썩. 철썩.
솨아아아-
상쾌한 새벽공기에, 뱃전에 부딪히는 강물 소리.
거기에 머나먼 현실에서 날아온 편지라니.
“해외 파병 나온 해군이라도 된 심정이군.”
베이닉스를 꼬드겨 인근 도둑 길드에 숨게 하고, 되찾은 성혈을 들고 신전에 복귀해 거기 있던 사제들의 아이돌이 된 그 날 밤으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끼이익-
“오트만? 일찍 일어나셨네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아침 강바람만큼 좋은 게 또 있겠나. 그나저나 자네는 거의 잠도 못 자고 돌아다녔으면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그야 뭐. 저지른 일이 있으니 몸으로라도 때워야죠.”
“쯧쯧쯧. 너무 마음 쓰지 말라니까. 동료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지난 이틀, 아니 베이닉스랑 계약한 게 밤이었으니 사실상 24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우선 신전에 돌아가니 거의 뭐 방언이 터져 나오는 사제들 속에서 대주교님의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어이구, 간만입니다, 노먼 대주교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그분을 만났나?]“예?”
[자네가 제국 변경백령에서 행한 일과 기적에 대해서 모두 들었네! 정말…. 로 하람께서 자네에게 임하셨나?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냔 말이네!]“아닌데요.”
[그….! 으으음. 그러고 보니 자네는 성직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내가 말한 음성이라 함은, 단순히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계시나 필연, 징조 같은 것도 포함한다네. 혹여, 이상하게 신비한 빛이 어른거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거나, 문득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기이한 감각을…..]“아니라니까요? 그냥 산맥에서 엘프 안내자 만나서 내려왔는데 어떻게 하다가 걸려든 겁니다.”
[이이익! 그럼 그건 뭔가! 사제 중 한 명이 그쪽 영혼술사가 타락 직전의 자네 영혼을 강제로 어떤 존재와 만나게 한 것을 봤다고 보고했네! 그게 어떤 방식이든 교단은 자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니 제발 숨기지 말고 대답해주게! 혹시 그곳에서 만난 게…. 그 분은 아닌가?]=========
그 무게 있고 체통 넘치던 대주교님이 얼마나 급하셨는지, 신성 통신 너머로도 그 절절함이 제대로 느껴졌다.
=========
“어…. 거기서 뭘 만나긴 만났는데.”
[만났는데!]“로 하람이 아니라…. 간만에 얼굴 보는 제 친구였습니다. 서로 욕도 좀 하고, 고생한다고 덕담도 좀 하고. 그러다 나왔습니다만.”
[이럴 수가…. 이번에야말로 그분의 뜻이 세상에 닿았다고 여겼건만.]“그…. 죄송하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 아니지. 자네는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그저…. 일이 참으로 공교롭게도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환란의 시기에 원행을 떠난 용사와, 이렇게 명확한 전장을 내버려 두고 제국까지 영향력을 넓히려 하는 뮤트의 행동, 그리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있어 막아낸 자네까지…. 너무나도 공교롭지 않은가? 솔직히 생목숨을 들이부어 산맥의 언데드를 자극하는 방식은 생각지도 못했네. 그곳의 언데드는 과거 암흑기부터 자리 잡은 놈들도 있으니 제국의 변경백과 그 기사들이라고 해도 그들만으로는 막아내는 게 쉽지 않았겠지. 운이 좋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필연적이야.]“진짜 그랬으면 신성력이라도 좀 주셨겠죠. 후광이라도 주던가.”
[어쩌면 우리 같은 작은 미물의 눈으로 그분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해가 뜬다 하여 ‘나는 모월 모일 몇 시에 세상을 밝히노라’ 하고 말하고 나오지는 않는 것 아닌가?]=========
고생은 내가 했는데 그게 다 로 하람의 뜻이라고 하니 기분이 좀 그렇긴 했지만, 뒤이어 이어진 대주교의 말에 그 불만은 눈 녹듯 사라졌다.
교단 내부에 급진적인 무리가 우리 일행의 태생을 놓고 ‘용사’라는 직위를 가지기엔 너무나도 천박하여 지원을 할 수 없다- 하며 반대하고 있었는데, 이번 ‘피의 기적’을 계기로 그 반대파의 의견이 쏙 들어갔다는 것이다.
“동부 3국에 비하면 제국 내에서 광명 교단의 위치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신전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은 충분히 쓸모 있지.”
결국 ‘용사 교수’의 지위를 겉으로 드러난 이름뿐만 아니라 교단 내부에서도 정식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고 한다.
이거 진짜 큰 거다. 지금까지는 용역 용사였다면 이젠 진짜 교단 용사로서 여러 가지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당장 이곳 변경백령에 위치한 신전만 해도 내가 ‘성전사랑 사제 죄다 끌고 나와! 변경백을 족친다!’ 같은 소리를 하면 반응이 판이했을 것이다.
어제까지의 나였다면? ‘아이고 용사님. 의기가 충만하신 것은 알지만…. 신전을 유지하는 주교의 입장으로서 세속의 도리 또한 살펴야 하는 게 저의 의무입니다. 신전이 사라지면 그 믿음을 누가 어디서 유지한단 말입니까.’ 같은 식으로 좋게 돌려 말하면서 까였겠지.
하지만 노먼 대주교를 비롯해 각지에 흩어진 3명의 대주교가 내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진짜 교단 유일의 용사로 공인한 지금. 그 발언은 곧 ‘성전’으로 이어진다.
내 말 한마디에 저 선량한 사제가 황동 촛대로 민간인의 눈알을 후벼파고, 저 인자한 수녀님이 전투 수레바퀴를 휘두르게 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사제들이 나를 대하는 행동도 달라졌다.
이 난리통에, 심지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내가 지나가는 길에 꽃을 뿌려대질 않나.
그저 지나가는 길에 ‘수고하십니다’ 하는 한마디에 눈물을 터트리며 신성한 빛에 휘감기질 않나.
정작 나는 신성력 한 쪼가리도 없는데 내가 눈길만 줘도 사제들이 ‘홀리’ 해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좀 배가 아프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광명교단 쪽으로는 대주교 말고 깝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
그렇게 진짜 성자님이 되어 신전을 나온 다음 만난 것은 이곳의 영주이자 소드마스터, 변경백이었다.
이쪽은 꽤나 심플하게 끝났는데, 친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니 성자의 대접에 소홀한 것을 용서해 달라며 우리 배에 식량과 보급을 가득 채워주는 것으로 영주의 감사를 표하겠다고 했다.
‘말은 저렇게 빙빙 돌려서 했지만 결국 내가 불편하단 소리지.’
영주 입장에서는 오해가 풀리긴 했어도 반은 괴물이나 다름없고 또 언제 미쳐 날뛸지 모르니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보급 채워주기’라는 좋은 행동으로 돌려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행과 같이 변경백 영지를 떠나 루실라가 대여한 배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이-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풍덩-!
어제까지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사이, 오트만이 강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아.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기분이로군. 교수 자네도 고민이 있으면 일단 뛰어드는 게 어떤가?”
“어…. 좀 있다가요. 아무리 그래도 초겨울 강에 막 뛰어드는 건 좀.”
“흘흘흘. 수행이 부족한 마법사로고.”
솔직히 나한테도 몹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한데, 수영하면서 메시지를 읽을 수도 없잖아.
나는 저 노구에서 무슨 힘이 나오는지 수영 선수처럼 배 주위를 돌아다니는 오트만을 보며 밖에서 날아온 메시지를 열었다.
띠링-!
아, 이 시스템 소리. 진짜 오랜만이군. 인 게임 UI가 죄다 NPC용 감각으로 대체되어버려서 한동안 못 듣던 저 알림음이 참 반가웠다.
[메시지 허용 플레이어로부터 온 메시지가 ‘63’건 있습니다.]“63? 어…. 하긴. 그 꼴 봤으면 메시지 한번 보내볼 법하니까.”
오랜만에 보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시스템창에 바깥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가 주르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솔직히 좀…. 두렵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지?’
교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제일 용량이 많은 [스피드 웨건]의 메시지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스피드 웨건 : 내가 너한테 실망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어메 뜨거라. 시작부터 굉장하군.
[솔직히…. 현실과 유리된 네 상황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어. 눈떠보니 내 몸은 어디 가고 괴물의 몸이 나라고 하지, 실질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지, 게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자신이 게임 데이터를 뇌에 덮어씌운 것이라고 하면…. 당연히 혼란스럽고 좌절하게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하다 죽어버려도 좋다는 식으로 행동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난 너와 38구역에서 그 짧은 만남으로 생긴 감정으로 4개월을 기다렸고, 며칠 전 접속기 안에서 너와의 짧은 재회로 다시 그만큼의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낼 각오를 마쳤어. 겨우 2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시간 중 하나야. 그런데 교수 네가 그렇게 나와 만나고, 또 감정을 나눈 자신을 가짜라 취급한다면, 나는 정말…. 우스운 꼴이 되는 것 아닐까.]어…. 음. 솔직히 다나한테 혼날 줄 알았는데. 욕먹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싸늘하게 죄책감을 부추기다니. 무시무시하다. 내가 천하의 개쓰레기가 돼서 당장 자살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이 느껴지잖아?
[제발 너 자신을 소중히 해줬으면 해. 전에 벡스씨랑 이안씨도 한번 만나봤는데, 이안 그 사람은 몰라도 벡스라는 사람은…. 정말 많이 위험해 보였어. 네가 또 잘못되면 너한테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줘. 황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희망을 잃은 사람은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해. 넌 지금 수많은 황무지 사람들의 가슴속에 부러지지 않는 희망으로 자리 잡고 있어. 물론…. 나한테도.]크흥! 쿨쩍!
촤아아악!
“음? 자네 추운가? 고위 사제용 법복은 온도 유지 술식이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을 텐데?”
“예, 춥….네요. 좀. 쿨쩍!”
아아아. 마음이 녹아내린다. 38구역에서 다나를 만나러 간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 치유가 된다, 치유가 돼….
그 이후로도 다나의 메시지는 주욱 이어졌다. 잠들기 전에 강으로 배 타고 내려간다고 했더니 라이안 강에서 구할 수 있는 희귀 어류부터 수생식물, 가을철 별미 어종을 이용한 요리법과 주요 수적들의 위치까지.
전과는 다르게 요리재료나 경치가 좋은 곳의 정보가 한가득 포함된 게, 말을 저렇게 해도 내가 또 우울증 걸려서 전처럼 폭주할까 봐 많이 걱정된 모양이다. 이런 섬세한 배려가 또 가슴을 녹인다고.
그렇게 흐뭇한 얼굴로 메시지를 읽어나가던 중, 마지막 줄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아, 그리고…. 나도 GG를 시작했어.]“….응?”
아니 왜. 지금 나만 해도 이 게임 때문에 정신이 한두 번 나갈 뻔한 게 아닌데? 물론 이 게임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당장 하이드 처음 만났을 때 그 무한 오체분시 쇼만 해도 보통 사람은 정신이 나가다 못해 현실 자해를 할 급이었다고. 이 미친 게임에 당신 같이 여린 사람이 왜?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모아준 데이터 처리하는데 굳이 현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GG 안에서 5배 느린 시간 속에서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할 여유도 생기고. 너무 걱정하지 마. 레빗 언니가 옆에서 여러모로 잘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클리어할 생각이 없으니까 조금 실링을 써서 스타팅도 가장 안전한 곳에서 시작했고, 조용히 일만 할 수 있는 안전한 곳에서 플레이하게 될 거야. 누구처럼 올 랜덤 리얼리티 스타트는 아니니까 걱정하진 않아도 돼.] [그리고 사실…. 어쩌다 보니 정보 수집 차원에서 시작한 방송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어. 그래서 조금 진지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작한 GG이기도 하고. 일단 지식적인 면에서는 나도 너 못지않게 GG를 잘 알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잘할지도 모르겠어.]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게. 네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 것은 알지만, 너도 환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편히 쉬겠다는 생각으로 플레이 해봐. 세상 일을 네가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히 있기를. – 다나 -]“허…..”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병약 미소녀 다나~♥의 GG공략집 만드는 방송]은 어느새 랭킹 17위에 육박해 있는 게, 아무래도 방송을 이용해 공개적으로 정보를 모으는 쪽이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레빗 그 인간이 다나를 잘 꼬드겨 넘겼던가.
다음.
[레빗 프린세스 : 안녀엉~? 이렇게 직접 얘기 나누는 건 처음이지? 사실, 처음은 아니지만. 그때 제우스 갈기고 쓰러졌을 때, 연구원들한테 쫓기던 당신을 안내해준 간호사가 나였다는 거. 혹시 눈치챘을까 몰라아? 어쨌든! 당신의 연인 다나양은 제가 자-알 보살피고 있습니다. 아휴, 이 복덩이 같은 아이를 구해오다니, 영 쑥맥인 줄 알았는데 다시 봤어! 응! 잠깐 일 얘기 좀 하려고 메시지했어. 말했다시피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양은 우리 레빗 엔터테이먼트 소속 방송인으로 본격적으로 런칭하게 될 것 같은데, 혹시나 우리 무시무시한 괴물이자 돔의 영웅이신 남자친구가 날 고깝게 보고 죽여버릴까봐~ 미리 얘기하는 게 맞지 않나, 해서-]삑-!
이건 쓸모없는 이야기고. 다나가 애도 아니고 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지. 내가 천년만년 그녀 옆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언제 어떻게 뒤질지도 모르는데.
다음-
[Jokass : 와, 오늘 너 진짜 개쪽팔렸음. 고화질로 녹화해놨다. 혹시 조증 같은 거 오면 처방 삼아 보여줌.]“아익! 이 자식은 진짜!”
차라리 내면세계에서 하이드랑 38구역에서 나눴던 기억까지 방송에 나갔으면 모르겠는데, 그건 말 그대로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방송에 나간 것은 존재가 어쩌고~ 하면서 난동 부리다가 알드리치님의 무시무시한 영혼술 장법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것까지였다.
대충 열폭해서 날뛰다 두들겨 맞고 정신 차린 것처럼 보이겠지. 으으으 쪽팔려.
다음.
[흥안만두 : 부럽다. 나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통속의 뇌로 만들어줘! 요즘 돔은 미쳤어! 영 총장이 스탈린이 되어가고 있다고! 의무 노동이라니! 전시 행정체계라지만 노동의 선택권이 없는 돔이라니! 나도 게임뇌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어서도 돔 공식 방송으로 플레이 영상 틀면서 실링으로 산을 쌓는 네놈처럼 되고 싶다! 모든 황무지 겜박이들이 부러워할 상황에 열폭이라니! 자살 충돌이라니! 배가 불렀구나 이놈! 꽤에에에엑!]으드득!
….다음.
[노루Drug해요 : ㅂㅅ]다음, 다음, 다음!
뭐, 그 이후로는 안부에 욕설에 기타 등등 쓸모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아니, 쓸모없지는 않지. 이렇게 열 받는 메시지를 읽고 있다 보면 바깥에서 코듀로의 화면으로 대화방 보던 그 시절 같은 기분이 들긴 했으니까.
“….그래. 살아있는 게 별건가.”
좀 많이 굴곡이 있긴 했지만, 한번 후련하게 털어놓고 해결해서 그런가. 이곳에 반쪽짜리 NPC로 들어온 이후 끊임없이 가슴 한구석에서 섬뜩하게 하던 감각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큰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엄청나게 후련했다.
철썩-
속도 후련하고, 새벽 공기도 후련하고. 어둑한 가을 새벽을 가르고 느지막이 떠오르는 태양도 기분 좋고.
철-썩!
순간, 여명을 받아 붉게 물드는 강물 위에 커다란 동심원이 그려졌다.
낚시 포인트라는 의미.
교수는 더 이상의 생각은 접어둔 채, 사제복을 벗어 던지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풍더엉!
속옷 바람으로 뛰어든 몸을 감싸는 초겨울의 얼음장 같은 물. 춥다는 감각보다, 머리를 쨍하고 울리는 그 서늘한 감각이 모든 근심 걱정을 사르르 얼려서 털어내는 것 같은 느낌에 가슴 깊은 곳부터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아아. 그냥 플레이어일 때도 이 감각은 정말 사람 미치게 했는데. NPC 입장의 수계 마법사로 물에 뛰어드는 것은 그 차원을 넘는구나. 정신력 수치가 있다면 0에서 100%까지 단숨에 회복되는 기분이야!
“어-어어어어어어….. 주, 죽인다….”
“허허허허. 그래. 수계 마법사가 응당 그래야지. 진작에 내 말 들을 걸 그랬지?”
“예에에에…. 스승님 말씀이 참으로 맞습니다. 으어어어…..”
대포알 빠지는 소리에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 일행도, 한참 전부터 제트스키처럼 물살을 가르는 오트만을 보며 헛웃음만 내뱉던 선원들도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어 하는 사이.
어느새 돌고래처럼 물살을 가르고 들어간 교수가 은빛 찬란한 메기 한 마리를 잡아 올리며 말했다.
“밥 먹자! 여기 좋은 거 많다더라!”
이번 사건을 겪으며 확실히 마음을 다잡았다. 기왕 게임 속 주민으로 살아가게 된 거, 최대한 즐겁게, 열심히 살아볼 참이었다.
어차피 밖이나 여기나,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죽는 것은 같으니까. 기왕 죽도록 살아야되는 거. 유쾌하게 살자고. 밖에서 그러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