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3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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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주인 한스.
이곳 윈드 홀 마을에서 거주한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 주민이며, 은퇴한 A급 용병이자 지금은 윈드 홀 유일의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빠르게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전력을 다한 태클이 눈앞에 있는 사제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는 것과,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 사람도 마법사라는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스는 이상하게 값이 싸던 이곳 여관을 인수하고 정착할 때부터 언젠가 생길 참한 아내와 손자를 위해 사둔 두꺼운 이야기책을 꺼내 들었다.
마법사를 쫓아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내버려 뒀다가 또 저렇게 손짓 한 번으로 그의 여관을 망하게 할지 모르니 아예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심정이었다.
마침 소란을 듣고 교수 일행도 모두 내려온 터라 한 번에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마법 성자 용사 교수님?”
“그냥 교수라고 부르쇼.”
“예, 예. 그러니까….펠릭스 드릭시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십니까? 설마 그의 ‘편지 마법’도 모르십니까?”
“난 이곳 사람이 아니라 그 용 꼬리고기랑 눈알, 팔 바꿔먹은 것 정도만 아는데. 애초에 다들 모르지 않나? 제국 사람들은 마법사 얘기를 하면 마법사가 찾아온다는 미신을 믿잖아. 그래서 마법사들이 온 사방에서 사고를 치고 다녀도 소문이 잘 나지 않는 거고.”
여관 주인의 말에 당연히 다들 모르겠거니, 하고 얘기했는데.
“음? 교수 자네…. 설마 그것도 모르나?”
“예?”
“용사님…. 어디 산골에서 수련만 하다 나오셨어요? 제국 사람은 아니라도, 제국의 ‘편지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어요!”
“대장. 숲에 살다 인간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소만.”
“제국의 날아다니는 서한이라…. 마을 어른들께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마법사의 유산이라고.”
루실라에 오트만은 그렇다 쳐도. 보르카에 이드라실까지?
어째 나 빼고 다 아는 분위기였다.
알드리치가 ‘이런 멍청한 놈이 파티의 리더라니.’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데, 솔직히 바보 취급당하는 건 좀 억울하다고. NPC들이야 이곳 주민이니까 ‘제국의 날아다니는 편지’ 쯤은 상식으로 알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이제 겨우 이곳 생활을 시작한 현실의 주민이란 말이다. 여기 사람들이 휘발유가 뭔지도 모르는 것처럼, 이곳에서 상식인 것을 내가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일행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가 쏟아지는 와중에, 한숨을 푹 내쉰 여관주인은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럼 처음부터 설명해 드려야겠군. 어디 보자….”
팔락-
은퇴한 용병 한스는 ‘이 책은 토끼 같은 자식들 머리맡에서 처음 읽게 될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에 서글퍼하며 이야기책을 펼쳤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펠릭스 드릭시엘이라는 바람의 대마법사가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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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친우, 랜돌프.”
“하지마쇼. 제발, 펠릭스님 제발!”
“으음…. 미안하네. 자네도 알잖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랜돌프는 세상에서 저 말이 제일 무서웠다. 왜냐하면, 펠릭스는 저 말 다음에 항상 끔찍한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망할 목동과 종자를 보살피는 디부아시여. 오늘은 또 뭡니까?”
“그게…. 편지가 받아보고 싶어졌지 뭔가.”
“갑자기요?”
“그래. 늘 그렇듯이.”
그의 명예 기사 직위에 딸려온 종자 랜돌프는 세계에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마법사에게 얽힌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였다.
물론 괴팍한 마법사치곤 그에게 잘해주었고, 그와 함께한 지 5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항상 ‘내 친구 랜돌프’라고 불러주었으며(그 전에는 느려터진 살덩이라 불렀다.), 이렇게 종자와 기사라는 관계를 넘어 쌍욕을 지껄여도 아무 말이 없는 괜찮은 상관이었지만.
매일 마법 전보로 각 영지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를 황궁의 무시무시한 재상에게 보고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더러는 발견 즉시 교수형이라고, 대마법사는 안돼도 네놈은 죽일 수 있으니 어떻게든 막으라는 파발을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는 사람으로서 제발 저 마법사 노인이 어디 정착해서 쥐죽은 듯 살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오늘 자 ‘바람과 같이 찾아온 충동’은 좀 얌전한 편이었다.
“어휴. 난 또 뭐라고. 십 년 감수했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펠릭스님. 제가 달필은 아니지만 글은 배웠으니, 만족하실 때까지-”
“아니아니, 그런 건 매번 자네랑 도망 다니면서 나누는 [윈드 메시지] 마법이랑 다를 게 없잖나. 나는 진짜 편지가 받고 싶단 말이야. 펜과 종이를 준비하고, 잉크와 마음으로 글을 남겨서, 기원을 담아 세상을 떠돌다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그런 편지!”
“그러니까…. 귀족들이 보내는 그런 거 말입니까?”
“그래!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어느날 선물처럼 집 앞에 도착해있는 그런 편지 말이야. 전통적이고, 낭만적이지. 그렇지 않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런 게 참 좋아지더란 말이지!”
“아, 예, 뭐.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뭐가?”
“[사는 곳]이요. 떠돌아다니다 못해 벽 하나라도 세워져 있으면 잠도 못 주무시는 분이 편지를 받을 주소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습니까? 매번 저한테 찾아오는 파발만 해도 대여섯 명 이상의 조를 짜서 수색하듯 찾아다니곤 하는데. 편지를 받을 곳이 어디 있냔 말입니까. 집도 없으신 분이.”
“그걸 아는데 자네한테 묻는 게 아닌가 랜돌프. 뭐 좋은 수가 없을까?”
“어…. 만약에 제가 없다고 하면?”
“글세. ‘좋은 수’가 없다면…. ‘나쁜 수’가 대신하게 되겠지.”
“디부아님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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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말하자면, 여기서 펠릭스가 말한 ‘나쁜 수’란 여름에 펠릭스 드릭시엘이 눈이 보고 싶다 했을 때, 당시 열병에 걸려있던 종자가 뾰족한 수를 못 내자 충동을 참지 못한 펠릭스가 북부의 찬 공기를 모조리 끌어온 사건을 생각하면 될 거요. 그해 제국 밀 생산량이 20%가 줄었고, 대노한 황제가 근위기사단에게 그를 잡아오라 명했으며, 약 5년간의 추격 끝에 수십 명의 소드마스터에게 포위당한 펠릭스는 어쩔 수 없이 3년 동안 제국의 궁정 마법사로 일해야만 했지.”
여관 주인은 바드 겸업이라도 하는지 이야기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고, 그 이야기를 모르는 교수도, 이미 알고 있는 일행들도 창밖에 소란스럽게 팔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걸 겨우 3년 일 시킨 것으로 봐줬다고? 제국 한해 농사의 5분지 1을 말아먹었는데? 그건 단순히 식량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 정도면 저장된 군량을 풀어야 하니 군사력이 축소되고, 민심이 흉흉해지며, 미개한 이들은 신이 노하셨다며 황제의 욕을 하게 될 텐데?”
“[대마법사]란 그런 것이지요. 그가 궁정 마법사로 일한 3년 동안 농민들이 씨를 뿌릴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온통 바람이 휩쓸고 다니며 제국의 산과 들에 지천으로 밀 씨앗을 퍼트렸다고 하니까. 뭐, 그 얘기도 하자면 한참이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넘어가시고.”
“그래서. 결국, 그 ‘충동’은 어떻게 해결됐답니까?”
여관 주인 한스는 교수의 물음에,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편지들의 군무를 가리켰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됐습지요. 그의 사후에 말입니다.”
“사후에라니…. 그럼 죽을 때까진 이루지 못한 건가?”
“그게 아니라, 그 충동 자체가 자신의 수명이 다할 것을 감지한 대마법사의 마지막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용과 신체를 교환하며 천기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가져간 팔 다리는 상징적인 것이었을 뿐. 정말로 가져간 것은 그만큼의 수명이었던 것이지요.”
침을 삼키며 두리번거리는 여관주인에게 물을 만들어주자,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먹은 여관주인은 손짓까지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을 이었다.
“그의 사후 종자 랜돌프가 쓴 ‘펠릭스 드릭시엘 전기’에 의하면 그는 8위계에 이를 정도로 바람을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떠돌며 정착할 수 없는 그 방랑의 운명을 매우 슬퍼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답니다. 결국 그 말년에 ‘편지를 받고 싶다’는 표현으로 자신에게도, 또 그와 같은 운명을 가진 바람의 마법사들에게도 돌아갈 곳이, 안주할 곳이 있었으면 하는 기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법사는 자신의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로 자아내는 사람들이었다. 강하게 원할수록, 더 강한 주문으로 만들어내는.
‘편지를 받고 싶다.’ 그것은 8위계 대마법사가 평생을 염원하던, 누군가 언제든지 그를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 있기를 기원하는 그의 마지막 충동이었다.
“그의 사후, 종자 랜돌프는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럽게 가버린 그분은 내게 그 죽음을 준비하고 슬퍼할 시간조차 주시지 않으셨다. 대신, 영원히 기릴 유산을 남겼다.’ 라고 그의 자서전에 적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 유산이….?”
“예. 저 폭풍의 언덕에 있는 바람 마법사들의 고향, ‘펠릭스 홈’입지요. 그 자체로 마법적 토템 역할을 하는 건물은 대마법사의 소원에 따라, 제국 전체에 한가지 마법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한스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게 더 빠르다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낸 다음 난로에서 목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디보자…. 거기 마법사님. 성함이?”
“오트만. 오트만 보들레르라네.”
“오트만…. 보들레르. 자, 그럼 이렇게 [윈드홀 여관의 한스가, 오트만 보들레르에게] 라고 적은 다음, 두 번 접습니다.”
한스는 두 번 접은 종이를 교수의 눈앞에 흔들어 준 다음, 그가 깨고 들어온 창문 밖으로 편지를 내밀고 말했다.
“그 다음, 약속된 주문을 외우는 겁니다. [바람에게 편지를 실어 보낸다.]”
휘우우웅-!
여관 주인이 말을 끝내는 순간,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휘릭-!
팔락, 팔락팔락!
목탄으로 대충 적은 꼬깃꼬깃한 편지가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저 언덕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보시는 바와 같이, 제국 전역에 걸린 대마법사의 주문이 편지를 실어다 보내주는 것이지요. 바람을 타고 윈드홀로 갔다가 마법사님한테 전달될 겁니다. 어디에서 보내도 상관없습니다. 황궁이든, 라스펠 후작가든, 뒷골목 시궁창이나 마약쟁이 소굴이든.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상대가 편지를 받아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 세 가지만 있으면 어떤 편지라도 바람이 전달해줍니다.”
“수신인과 발신인, 그리고 감정적 조건을 통해 발동하는 대마법이라….”
도대체 어떤 심상과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상상도 안 됐다. 마법사는 명확한 이해와 심상을 통해 그 마법을 발현하는 것인데. 타인의 감정과 그 이름만으로 마법을 발동시키다니? 그것도 제국 전역이라는 엄청난 범위로 상시 시전 중에, 심지어 그게 그의 사후로 수십 년이 넘게 지속되었다고?
교수의 마법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규모의 마법이었다.
“아무튼, 저 밖에 날아다니는 편지들은 전부 그렇게 제국 각지에서 모여든 편지들입니다. 저렇게 편지들이 펠릭스 홈에 모여들면, 저곳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이 가야할 곳을 분류하고, 각지의 마법적 기류에 휘말려 그 마법이 변질된 편지들이나 수신인의 이름이 잘못 적혀 펠릭스 홈에 맴도는 편지들을 수정하여 다시 바람에 실어 보내곤 하는 것이지요.”
“아침과 저녁이라…. 하루 정도 배달 시간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마법통신이라니. 엄청나군.”
교수는 다나가 보내준 정보에 쓰여있던 ‘제국 중요시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저곳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제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펠릭스 드릭시엘이라는 마법사는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국 전역을 아우르는 정보망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것도 대마법사의 마법과 그 덕분에 유일한 휴식처를 선사받은 모든 바람 마법사가 비호하는,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정보망을.
그것이 제국에 가져다주는 어마어마한 군사, 경제,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면 보호할 이유가 차고 넘쳐 보였다.
‘마법 우체국이라니. 폭풍의 언덕이 그런 곳일 줄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어쩌면 생각보다…. 그리 끔찍한 곳은 아니지 않을까?’
교수는 머릿속으로 펠릭스 홈을 상상해 보았다. 대마법사의 유해로 만들어진 마법적 조형물. 그 사이로 바람을 타고 철새처럼 편지들이 날아다니고, 그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편지를 분류하고 있는 사무적이고 신비한 모습.
내심 ‘믹서기 같은 폭풍이 몰아치는 마탑을 뚫고, 광소하는 산발머리 마법사를 설득하는 미션’ 같은 걸 상상하고 있던 교수로서는 썩 나쁜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스윽-
“잠깐.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잠시 여관주인이 말을 멈춘 사이, 흥미가 돋아 몇 가지 더 물어보려는 찰나 아까부터 이상하게 흥분해있던 보르카가 재빨리 끼어들며 말했다.
“그 자유분방한 마법사들이 그런 일을 제대로 수행한단 말이오? 갑자기 변덕이 생겨 마구 버려버리지 않고?”
“물론입니다. 그들이 펠릭스 홈에 거주하며 유일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그것이니까요. 매일 아침 날아드는 편지를 정리하고 분배하는 것. 그것이 바람의 마법사들이 대마법사가 모든 것을 바쳐 만든 보금자리를 이용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숙박비인 것이지요.”
후욱!
여관주인의 확언에 보르카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럼…. 제국 안에만 있으면 누구든 편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요.”
후욱, 후욱!
“누구나? 제국민이 아니라도? 설령 그게 숲에서 붙잡혀, 이곳으로 팔려온 나의 두 아이라 해도 말인가!!”
“어….아마도?”
쿠당탕탕!
늑대인간의 거센 콧김 소리에 당황한 여관주인이 조심스럽게 답을 하자,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보르카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곧 밖에서 뭔가 마구 쏟아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품에 찢어진 종이와 생닭의 깃털, 잉크 따위를 한 아름 든 늑대인간이 박살이 난 문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절박함이 마구 뒤섞여있었다.
“누, 누가 글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편지 좀 써주시오! 보내는 이는 보르카 달룬, 받는 이는 투샨 달룬, 마르카 달룬! 이, 이곳에 잡혀 왔다고 알려진 내 아이들이오!”
“….아!”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순간 보르카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은 교수는 무릎을 탁 쳤다.
‘맞다! 얘 자기 자식들 찾아서 여기 온 거였지!’
생각해보니 용사대 퀘스트 시작할 때, 엘프냐 서부 사막의 고대 인간이냐 선택할 때 보르카 때문에 제국행을 골랐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제국 영역 내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진행되는 모양.
보르카는 제국 어딘가에 있을 그의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의 행방을 알아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운이 좋다면 답신이 날아와 그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고.
답신이 없어도 최소한 그가 제국에 있음을, 아직 자식들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려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도….
“여관주인. 만약…. 모든 조건을 만족했더라도. 수신인이 세상에 없는 경우에는….”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의 여정이 끝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리 줘보게. 내가 써주지.”
사각, 사각사각-
오트만이 귀족 마법사다운 정갈한 글씨로 보르카의 말을 받아적는 동안,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 아무렇지 않은 듯 품고 있던 속내를 털어내던 늑대인간의 목소리에 물기가 맺혔다.
탁.
“자아. 다 됐네.”
“이, 이리 주시오.”
오트만이 건네준 편지를 소중히 품에 안은 보르카. 늑대인간은 그 털투성이 손안에 쥐어진 편지를 간절히 바라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바, 바람에게 편지를 실어 보낸다.]”
휘우우웅-!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방안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팔락.
그 바람을 타고, 한 장의 편지가 그의 곁으로 날아올랐다. 한 장이.
그 고요한 마법의 바람 속에서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이보게 보르카. 이건….”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아무 말도.”
뚝- 뚝-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지만, 늑대인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동도 없이 남겨진 편지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 오랜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상상과 각오로만 다가오던 현실을 눈앞에서 마주하기 위해서.
휘우우웅-
그때.
….팔락.
다시금 불어온 작은 바람에 편지가 휘날렸다. 자식의 사망통지서와 같은 그 편지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자, 저도 모르게 붙잡으려 늑대인간이 손을 뻗는 순간.
팔락- 팔락-
그의 피투성이 손이 허공을 가르고, 초점을 잃은 눈 위로 힘겹게 날아오르는 종이가 보였다.
마음이 담긴 두 장의 편지와, 두 번의 마법.
“오오. 오오오오….”
바람을 타고 힘껏 하늘 위로 날아가는 두 장의 편지를 보며, 결국 보르카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축하하네. 정말…. 애썼어.”
그간 묵묵히 파티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던 보르카.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제국을 향했는지 아는 오트만은 진심으로 그의 두 아이가 살아있음을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우우! 으으으으…. 아아아…. 우우우우….”
숲을 나와 15년. 4년을 떠돌이로. 8년을 검투사로. 그리고 마지막 3년을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맨 끝에 교단에 잡혀와 이곳에 오기까지.
그 긴 세월 동안 마모되고 부스러진 희망의 찌꺼기가 그의 눈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긴 세월을 살아남은 자식들에 대한 감사와, 그 고통의 세월을 이방인으로 보내게 한 미안함에 늑대인간은 그 자리에 못박혀, 긴 시간을 울부짖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이곳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찾을 때까지만 건강히 있어 주기를. 자식을 버린 부모라 힐난하며 그의 목을 물어뜯고 가슴에 손톱을 박아넣어도 좋으니,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살아있는 자식들을 안을 수 있기를.
늑대인간의 그런 기원을 담은 편지는 푸른 겨울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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