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4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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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드십쇼!”
쿵!
여관 주인은 요리가 한가득 차려진 테이블 위에 ‘카라멜라이즈한 사과를 곁들인 먼지바람 관조 구이’를 내려놓는 것으로 화려한 아침 상차림의 대미를 장식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에요?”
“뭐긴. 30대 끝자락을 바라보는 노총각 여관 주인의 매우 수상쩍은 호의지. 예상한 거 아냐?”
“어.머.나?”
녀석. 내숭 떨기는.
다사다난했던 아침이 지나가고, 난장판이 된 내 방과 카운터(보르카가 종이 찾는다고 아주 뒤엎어놨다.)를 본 여관 주인은 당장에라도 우릴 내쫓을 기세였지만, 루실라가 슬쩍 흘린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돌변했다.
‘아이 참. 텔드랏에서 여기까지 겨우 와서, 좀 오래 머물면서 여독을 풀만 한 여관을 찾고 있었는데. 이 주변에 이곳 말고는 괜찮은 여관이 없는데 어쩌죠?’
분명히 봤다. ‘텔드랏’이라는 단어 하나에 여관 주인 한스의 눈이 반짝이며 루실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을.
엘프 이드라실을 제외하면 죄다 늙은이와 덩치밖에 없는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이며, 객관적으로 봐도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니 상당히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루실라.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아에드란 가문의 직인이 떡하니 박힌 은화 주머니를 꺼내 파괴된 기물에 대한 값을 치르기까지.
옆에서 슬쩍 보기만 해도 한스라는 노총각의 머릿속에 ‘설마…. 그 전설의 텔드랏 아가씨가…. 내 눈앞에? 나는 오늘의 운명을 위해 혼자 살아온 것이….’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자라나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뒤로는 뭐. 아주 콩깍지가 단단히 씐 노총각과 뼛속부터 상인인 여우 아가씨가 만났으니. 온갖 이유를 들어 배상액을 후려치는 루실라에게 ‘정말 생활력이 넘치십니다! 여관 안주인으로 딱…. 아, 아니, 내 말은…’ 같은 소리를 지껄이더니 이렇게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온 것이다.
음. 확실히 요리 잘하는 남자는 멋있지.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만 아니었으면 점수를 좀 더 줬겠지만.
교수는 카운터 너머로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는 한스를 흘끗 쳐다보며 루실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 어쩌려고 그거 막 남발하고 다니냐. ‘텔드랏 구혼자’ 소문. 더 퍼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거 아냐? 네가 우리같이 막 사는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어쨌든 상인이고 귀족이잖아. 사교계의 평판이나 귀족으로서 위치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남발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소문을 내는 거예요. 어차피 소문의 확산을 막기에는 늦었으니까. 여기가 변경 마을이라서 아직 소문이 안 났지, 이미 제국 사교계에는 제 초상화가 수 백장은 넘게 복사돼서 돌고 있을걸요? 지금쯤 우리 가문에도 소문이 전해졌을 테고, 아버지가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니 소문을 부추기고 있을 수도 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여정이 끝나기 전에 괜찮은 남자를 한번 찾아봐야죠 뭐. 기왕 찾을 거면 선택의 폭이 넓은 게 좋고. 혹시나 제야에 파묻힌 운명적인 낭군님이 있을 수도 있으니 소문은 더 퍼질수록 좋은 거고. 그런 거예요.”
오호라.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결혼하게?”
“약혼 정도는…. 으이익! 다 큰 숙녀한테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에욧!”
찰싹!
“흐히히히. 아니, 네가 정 싫으면 나름 방법을 찾아주려고 했지.”
“방법? 어떻게요?”
“어떻게긴. 당장 내 신분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지금 바로 그 ‘구혼자’라는 명함을 떼버리면 되는 거지.”
“자, 잠시만요. 어, 음. 그러니까, 그 말은, 저랑 용사님이….”
화아악!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루실라는 슬금슬금 의자를 뒤로 물리기까지 하며 말했다.
“아, 아니, 어…. 구혼자 신분을 벗어난다는 것은 혼인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그런? 의미를 말하는 거니까…. 요, 용사님? 제가 물론 용사님을 참 좋게 생각하고, 또 여러 방면에서 빠지는 게 없는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아, 아직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 정도까지 미친 사람이랑 혼약은 쉽게 결정할 만한…. 그…. 영원히 안정될 것 같지 않달까? 물론 교수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그런 중요한 얘기를 생선 수프나 퍼먹으며 하는 사람은 어쩐지….”
“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하려던 말은 광명 교단의 여사제가 되는 방법도 있다는 거였는데.”
“사, 사제요?”
벙찐 표정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루실라의 얼굴에 교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그래! 나 이제 교단 공인 성자잖아. 성물도 있고, 성유도 있고, 성직자도 있고. 당장 이 자리에서 약식으로 의식을 거행할 수도 있다고. 물론 교단의 여사제들도 적절한 의식과 승인을 거치면 사제로서 배필을 찾는 게 허가되지만, 여사제로서 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종교의 영역이 되잖아? 난 당연히 그쪽으로 방법을 찾아주겠다는 소리였는데….”
“에? 으?”
“푸흑, 큭! 교수 자네…. 과년한 처녀의 상상력을 너무 얕봤구먼그래? 큽, 크흠! 흠! 그,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거 아쉽게 됐구먼. 교수, 자넨 아쉽게 불합격이라네. 미친놈이라.”
“흐허허 쿨럭, 허흐흐흐! 무슨 소린가 오트만! 지금까지 우리가 이 친구를 봐온 게 있는데. 저 정도면 아주 점수를 잘 받은 게지! 만약 나한테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놈이랑 같이 손잡고 나타나면, 그 즉시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되는 극악한 저주를 모조리 퍼부었을 거야! 잘했다 루실라! 저놈은 안돼! 할애비가 그건 못 본다!”
“아, 아으으으….. 아으으으으으!!!! 노, 놀리지 말아요!!!!”
얼굴을 가리고 일행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루실라. 그걸 조용히 듣고 있던 노툼은 자리에서 일어나 루실라의 어깨를 큰 손으로 감싸주었다.
“노툼….”
“작은 인간여자가 짝을 찾는다. 발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따듯한 보금자리. 충분한 식사. 준비할 게 많다. 노툼 암컷. 암컷끼리 도와준다. 그웍.”
토닥토닥.
“바, 바바바…. 발…. 으아아앙! 너까지 왜 그래에에!!!!!”
큭큭큭큭. 어우, 귀여워라. 우리 집 꼬맹이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놀리는 맛이 좋을까. 신시아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교수가 지금쯤 돔의 학교에서 수학이나 역사, 기초 총기 분해결합 따위를 배우고 있을 신시아를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사이.
“커흐흑, 커흑, 큭! 흐흐흑! 푸흑!”
테이블 한쪽 구석에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관 주인이겠거니, 해서 돌아보던 교수의 얼굴이 순간 당황에 물들었다.
“쿨럭!”
여관 주인이 아니라, 먹고 있던 수프까지 질질 흘리며 웃고 있는 보르카였다.
“아아, 흡! 미, 미안하오. 비웃으려던 것은 아니, 크흑! 였는데. 너무 유쾌해 보여서 그만.”
“….알드리치 자네 들었나? 비웃은 게 아니라는군. 사레들린 거나 늑대인간 특유의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 웃은 게 맞다는 소리야.”
“자네도 그렇게 들었나? 그것 참…. 신기하군. 내가 저 친구랑 다니면서 웃기는커녕 저 뚱한 표정이 저렇게까지 바뀌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난 늑대인간은 안면 구조상 표정이 없는 줄 알았지.”
“저도요. 쟤 나 처음 만나서 뒤지게 맞을 때 빼고 인상 찌푸리는 것도 잘 못 봤는데. 배때지에 칼이 박힐 때도 눈썹만 좀 씰룩하고 말더만.”
“커흐흐흐! 바보 같은 소리. 나도 사람이오. 웃기는 일이 있으면, 웃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그렇게 우리가 모두 ‘늑대인간도 웃을 수 있다’라는 놀라운 사실에 감탄하는 사이, 팔로 수프투성이 입가를 슥 문질러 닦은 보르카가 별안간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쾅!
“뭐, 뭐야?”
“아무것도. 그저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한 듯하여. 고맙소 대장. 고맙소, 나의 동료들이여. 이곳에 도착하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소. 이곳에 와서 죽은 줄만 알았던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평생에 다시없을 은혜를 입었소.”
웃음기가 가득 담긴, 그러나 너무나도 진지한 감사.
지난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인 적 없던 늑대인간은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린, 바보 같을 정도로 기쁜 표정으로 웃으며 감사를 전하고 있었다.
“….보르카 씨도 참. 굳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데.”
“아니. 알아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과 담아두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그러니 루실라 그대도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다면 숨기지 말고 얘기하시오. 내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 그자의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그대 옆에 데려다주지.”
“으아아악! 보르카 당신마저어어!!!!”
늦은 아침, 진수성찬과 웃음 가득한 동료들.
거기에 오늘 아침부터 즐거워진 늑대인간까지.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좋은 일만 잔뜩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언제 어디서 엿 같은 일이 튀어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매사에 뚱한 얼굴에 말수도 없던 우리 털북숭이 아저씨가 저렇게 헤죽헤죽 웃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그것만 해도 이곳에 방문한 보람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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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녀올 때까지 잘 좀 부탁합시다!”
“창고가 습해지지 않게 부탁할게요! ”
“몸조심 하십쇼! 절대! 절대로 일하는 마법사를 자극해선 안 됩니다-!”
배도 채웠겠다, 일행 간 동료애도 두둑이 장착했겠다.
우리 일행은 무슨 전장에 연인을 보내는 눈빛으로 손을 흔드는 여관 주인을 뒤로하고 ‘그’ 폭풍의 언덕을 향해 이동하게 되었다.
더 머뭇거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내가 스쳐가는 말투로 ‘펠릭스 홈에서 보르카 당신이 보낸 편지를 찾고, 그게 날아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면….’ 같은 말을 하는 바람에 보르카의 의욕이 넘치다 못해 폭발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행의 맨 앞에서 마을에서 산 제국 전도(루실라의 전투적 할인가 – 1500sil)를 펼쳐 들고 코를 벌름거리며 바람의 방향과 지역 이름을 외우고 있는 늑대인간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실실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의외로 마을에서 폭풍의 언덕이 가깝기도 하고. 그 어떤 미치광이 산적이 마법사 소굴 앞에 자리 잡을 일도 없고.
심지어 주변에 볼 것이라곤 맨날 보던 황무지랑 닮은 바위와 모래투성이 암반지대밖에 없으니,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조용한 바람 소리와 편지들이 팔락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던 것이다.
참으로 평화로운. 그래, 마치….
“폭풍전야 같군요.”
“으아익! 일부러 그 얘기 안 하려고 꾹 참고 있었는데!”
사정없이 플래그를 세워버리는 이드라실의 말에 맥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진짜 그거다. 그냥 평화로운 게 아니라, 대형 재난이 휩쓸고 가서 주변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그런 평화로움. 돌밖에 없는 동네라도, 심지어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안전지대라도 바위 지네라던가, 동굴 토끼나 오늘 아침에 먹은 먼지바람 관조 같은 환경 생물은 나올 법하거든?
근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 바람과 바람에 실려있는 것들만 가득할 뿐.
자박. 자박. 자박. 자박.
휘우우웅-
작은 돌 부스러기를 밟는 소리 사이로 어느새 바람 소리가 섞여 들어와 있었다. 바람소리는 언덕 위를 향할수록 점점 더 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내딛는 발걸음을 휘청이게 할 정도로 세차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군! 계곡도 아닌 곳에서 점점 바람이 더 모여들다니!”
“와아악! 내 모자! 누가, 누가 저 좀…. 잡아줘요!”
콰아아아아-!
파라라락! 파라라라라락!
일행의 머리 위로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편지들이 무리를 이루다 못해 거대한 기둥이 되어 날아오르고, 세찬 바람에 날려갈 뻔한 루실라를 노툼이 잡아주며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동안.
후화악!
숨이 답답할 정도로 몰아치던 공기가 갑작스럽게 탁- 퍼지는 느낌과 함께 앞을 가리고 있던 오르막이 사라지며 눈앞이 환하게 트였다. 어느 순간부터 바람에 떠밀려 걸음을 옮기던 일행이 언덕의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나름 충분히 각오를 다지고 왔다 자부하던 그들로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모습이었다.
“와아아아, 예뻐라….”
“이건…. 그야말로 대마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이로고. 8위계 마법사의 라스트 스펠다운 웅장함이군.”
교수는 오트만의 감탄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것은 정말…. 동화 속 한 장면이라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펠릭스 홈은 새하얀 반구형 건물이었다. 크고 작은 곡선형 기둥이 겹쳐 만들어진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며 한눈에 봐도 마력이 가득한 푸른 바람이 끝없이 그 빈틈투성이 건물 사이를 노닐며 휘- 하는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바람과 건물이 만들어낸 음악을 타고 모여든 편지들은, 하얀 건물 위에 둥글게 모여들어 그 중심의 작은 나선을 타고 느릿하게 건물의 정상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현대의 마천루나 메이어 제우스 같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직접 본 나조차도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장관.
“저게…. 바람 마법사들의 유일한 안식처.”
펠릭스 홈. 마법의 끝자락에 발을 걸친 대마법사의 평생의 염원과 그 유해로 만들어진, 바람이 머무는 곳.
그 압도적인 광경에, 일행은 그 노래하는 건물이 연주를 끝낼 때까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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