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6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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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홈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대단히 몽환적인 건물이었다.
휘오오오옹-
벽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새하얀 길은 건물의 통로라기보단 이상한 종류의 동굴에 난 구멍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 구멍으로 바람이 파고들 때마다 묵직한 휘파람 같은 울림이 사방을 진동했으며,
팔락, 팔락, 팔락, 팔락-
“아이구. 이 녀석이 또 이러고 있네.”
파다닥! 파다다닥-
팔락- 팔락-
때로는 철새처럼, 때로는 나비처럼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종이의 향연은 여러 가지 기현상에 익숙한 교수로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위로, 옆으로,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하얀 동굴. 그 안에 날아다니는 편지와 그것을 붙잡고 나지막이 타이르는 마법사까지.
누가 봐도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만한 기이한 장소였지만, 그런 생소한 환경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이곳 마법사들은 매우 독특했다.
“와! 비부르미!”
“비 내리게 해줘! 물 만들어 줘!”
“늑대다 늑대. 늑대인간!”
“물에 젖은 개 냄새가 나.”
“으아악! 트롤이다!”
“작은 아가씨가 트롤을 타고있어!”
“트롤 라이더다! 도망쳐어어!!!!”
“흐헤헤헤!”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꽥꽥거리는 부류. 주로 나이 많은 마법사들.
“직접 방문하시는 것은 대단히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숲의 가지여. 우리의 삶은 바람처럼 흩어지나, 기억은 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니. 그 누구도 세계수와 바람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 사람살려! 마법사가 납치를-”
“어허! 내 그쪽 영지에 방문했을 때 집사 자네의 차 솜씨가 너무나도 기억에 남아 좀 도움을 받고자 초대하였으니, 얌전히 차나 좀 따르다 가시게!”
“저는 차를 즐기지 않습니다만, 인간.”
“음? 이런. 그럼 잘가시게.”
“우아아아아——”
그나마 좀 대화가 통하는 것 같지만, 결국 상대방 반응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며 밀어붙이는 이들 그리고-
“아이고오오! 스승님! 기상마법 정도 쓸 수준의 마법사는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니까요! 몇 번을 말합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종족 차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순수한 의미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스승님이 사람은 이래도 동물을 참 좋아하시는…. 아니, 이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라….”
“으아악! 트롤이다!”
“데릴 집사님! 영주님께 안부 좀 전해주십쇼!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한다고오오–”
그런 정신 나간 마법사들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며 쩔쩔매는 어린 마법사들.
[교, 교수! 어떻게 좀 해봐 이 친구야! 오트만! 아니면 이놈들 머리에 물이라도 끼얹던가!] [그랬다가 기분 나빠지면 우리 다 죽어 이 사람아! 뭔가 수가 없겠나? 뭐라도- 어이쿠!]‘쩝. 고생하쇼. 여긴 맡겨도 되겠어.’
수계 마법사를 대단히 좋아하는 문지기 덕분에 싸그리 ‘친구’ 취급받은 일행은, 서로 대접하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마법사들 때문에 대단히 곤욕을 치르고 있었고.
덕분에 ‘손님’ 취급인 나는 저쪽에 죄다 몰려든 마법사들 덕분에 비교적 부드럽게 안으로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내부를 구경할 여유까지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이 어두운 편인 펠릭스 홈을 밝히는 광원. 귀족가 저택에나 있을법한 대형 석제 난로와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의 부엌에 있을법한 그을음 가득한 주방의 땔감이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었고, 그 외에도 신전에서 보던 황동 촛대부터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는 싸구려 횃불, 촛농이 잔뜩 쌓인 대형 양초 등 각계각층의 조명이 다 모여있었다.
그 외에도 곰 가죽 깔개부터 새 사냥용 슬링, 무두질 거치대부터 지푸라기 침대, 화려한 샹들리에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가구가 넓은 홀에 마구 뒤섞여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으며, 그 어색한 가구들의 사이를 작은 가죽 골무나 못, 은식기 등 손때 가득한 잡동사니가 꼼꼼하게 메우고 있었다.
‘고물 까마귀 둥지의 규모를 키우면 딱 이런 느낌이겠군.’
풍계 마법사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 난잡한 수집품의 주제는 하나. 그들이 생각하는 ‘집’에 있어야 할 물건들일 것이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마법사들이 각자 집에 필요한 물건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모아온 끝에 ‘초대형 대리석 난로’ 위에 ‘녹슨 금속 주전자’처럼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이렇게 잔뜩 모이게 된 것이겠지.
재밌는 사실은, 그런 물건들이 고물상처럼 주변에 가득 널리고 매달린 이 분위기가 제법 아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벽이나 바닥, 천장에 매달려 각자의 온기를 내뿜는 여러 종류의 벽난로. 그 주변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 저마다 누군가의 그리움을 간직한 물건이라 그런가, 어울리지 않는 잡동사니와 가구가 잔뜩 모인 이곳 분위기는 그 자체로 바람 마법사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뭐가 됐든, 신비롭기만 하던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안은 제법 아늑했다는 소리다.
와장창창!
“이봐 들! 늑대 친구가 할 말이 있대!”
“그…. 나, 나는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그리고 가능하다면 편지가 향하는 곳을 가르쳐 줄- 끄악! 무, 물지 마시오!”
“빨간 머리. 작은 키. 트롤라이더 아가씨? 방금 바람이 재미있는 소식을 전해줬는데….”
“아, 아하하하…. 사람 잘못 보신 게 아닐지….”
“나도 들었어! 결혼하러 왔다메! 장하기도 하지.”
“좀 도와줄까? 야무진 바람을 잡아서 목소리를 살짝 실어 보내면,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이 아가씨 이름을 외치고 다니게 할 수도 있어! 골짜기에 바람이 불 때마다 [루실라~], [루실라 아에드란~]하는 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는 거야!”
“그건 좀…. 무서운 것 같은데….”
“당장 나가자! 여긴 메마른 곳이라 비가 잘 안 온단 말이야!”
“아니, 나는….”
“폭풍을 준비해! 오랜만에 비바람이 불 거야!!!”
“노, 놓으시오! 나는 그 정도 마법을….으어어어!”
쿡쿡쿡!
“교수 손님. 한눈팔지 말고 잘 따라와. 네 친구를 만나러 가야지.”
“아, 예.”
물론 그 아늑함이 한적한 오두막의 그것이 아니라 바이킹 연회장의 알코올 냄새 가득한 그것과 같은 느낌이라는 게 좀 그랬지만. 어쨌든 대충 봐도 ‘호의’를 기반으로 한 반응이었으니까. 여긴 일행에게 맡겨두고, 교수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건….”
“한눈팔지 말라니까. 편지 처음 봐아?”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니까 그렇지.’
아무리 문지기가 재촉해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장담하는데 이 광경을 처음 보는 모든 사람이 그처럼 멈춰 섰을 것이다.
모든 바람 마법사의 ‘내 집 같음’을 담은 홀을 지나서 마주하게 된 것은 온 사방을 빽빽하게 메운 벽장과 서랍들이었다.
촤라라락-
덜컥! 덜컥덜컥!
팔락! 파라락!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며 편지를 받고, 또 내보내는 거대한 서랍.
몇몇 마법사들이 그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편지를 혼내거나, 지팡이를 휘둘러 새로 마법을 거는 등 열심히 우편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꼭 벌집을 돌아다니는 일벌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문지기가 나를 대단히 귀찮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저히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문지기님?”
“왜.”
“저건 뭐하는 겁니까?”
“손님은…. 눈이 없나아…?”
대단히 한심하고 멍청한 사람 보듯 나를 돌아본 문지기 노인은 불편 가득한 얼굴과 달리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저건…. 편지야.”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아니, 몰라. 저건 잉크와 종이로 이루어졌고, 작성자의 감정을 촉매로 하며, 펠릭스 홈의 마력을 이용하는 편지니까. 다르지…. 손님이 아는…. 것과는.”
“….왜요?”
“마법사면 생각을 해. 시시콜콜하게 가르쳐주는 건 내 ‘일’이 아니니까. 내 일은 손님의 안내를 돕는 것까지야. 난 빨리 널 데려다 주고 비부르미를 보러 갈 거야.”
훙- 후웅- 휘웅-
그렇게 말한 문지기는 구멍이 난 나무지팡이를 휘둘러 잔뜩 쌓인 책더미 같은 것을 옆으로 가지런히 치웠다. 그러자 책더미가 쌓여있던 곳에 아래로 비스듬하게 세워진 작은 여닫이문이 있었다.
“자, 다 왔어. 가우만 델허스트. 최초 방문일로부터 8년 7개월 23일이 지난 식구야. 누락 편지 분류 및 심사 담당. 네 친구는 여기 있어.”
“내 친구…. 그렇죠. 고맙습-”
휘이잉-
채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휑하니 날아가 버리는 문지기. 지금까지의 퉁명스러운 얼굴과 달리 돌아가는 그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 오트만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나도 물마법사 맞는디.”
묘하게 차별받은 느낌이고 일행과 떨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상황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
어차피 공략한다면 각양각색의 마법사 전부를 만족시키는 것보다는 한 명을 공략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고, 마침 나는 평범한 ‘손님’ 신분으로 다른 마법사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우연찮게 걸려든 이 가우만 델허스트라는 마법사를 찾아온 것이 되었으니까.
‘제발, 이 가우만이라는 마법사가 조금이라도 더 멀쩡한 사람이길!’
교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낡은 나무문을 열었다.
“….누구시오?”
늙수그래한 목소리와 함께 따듯한 온기와 오래된 종이, 양초 타는 냄새가 그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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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만 델허스트 : 높새바람의 마법사. 5~6위계. 63세. 남성.
작은 장난감을 수집해 장식하는 취미가 있음.
특별한 NPC는 아니다. 이름이 누락되거나 잘못 표기되어 마법이 제대로 걸리지 못한 편지를 보관하는 일을 하며, 외부 활동이 지극히 적다.
다른 마법사 NPC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안정되어있는 것이 특징. 마법사적으로 대단히 안정되어있다.
하지만 중증 치매 환자로 종종 예상외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마법 사고의 비율은 펠릭스 홈의 다른 마법사들보다 조금 높은 정도. 양젖 치즈와 부드러운 빵을 좋아한다. 인근 마을에서는 양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매해오면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편. 그 외의 특징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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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우~?”
“예, 어르신.”
“에잉…. 난 너처럼 큰 아가는 키운 적이 없는데….”
“하, 하하….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지요…. 하하하하….”
내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골방.
안 그래도 좁은 방의 사방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책장과 서랍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남아있는 공간이라곤 늙은 마법사가 누워있는 침대와 내 팔뚝 반만 한 작은 테이블, 그리고 편지가 가득한 이곳에서 위태롭게 타들어 가는 촛대가 있는 곳뿐이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문지기 앞에서 아무 이름이나 불러댄 결과, 통과한 것은 좋은데 생판 모르는 마법사의 지인으로 여기까지 안내를 받게 되었다. 적어도 1대 1로 면담할 구실이 생긴 것은 좋지만, 상대가 얼굴도 모르는 덩치가 와서 ‘너 보러왔다-’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상황.
일단 다행인 것은 이 ‘가우만 델허스트’라는 마법사가 스스로 기억도 온전치 못한 상황이라 내가 지인이었는지, 생판 남이 지인인 척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내심 모르는 놈이 자기 이름을 이용한 것에 마법사가 분노하면 어쩌나, 하고 있던 나로서는 천만다행인 상황이었지만….
“저…. 혹시 이곳에 있는 마법사 중 엘프와 교역을 담당하는 마법사가 누구인지….”
“엘프? 엘프가 주는 사과는 맛있었어. 벌레가 들어있었지만.”
울컥!
“후우우…. 그래요, 엘프. 자아, 엘프에 집중해 봅시다. 긴 귀에 숲에 사는 종족, 그 친구들에게 주기적으로 가는 열기구가 있을 겁니다. 혹시 그걸 담당하는 마법사나 그 열기구를 관리하는 부서가-”
“여긴 아늑한 집이야. 손님? 손님이 왔구나. 이…. 차린 게 없어서 어쩌나….”
“하하…. 대접은 괜찮으니까, 가우만님? 엘프 숲으로 가는 열기구가-”
“곰인형은 지푸라기보다 양털로 채운 게 좋지이….”
“아니, 좀….!”
울컥, 울컥울컥!
문제는, 하필이면 이 마법사가 치매에 걸려 사리분별이 되지 않을 수준이라는 것이다. 뭔가 정보를 알아내려 해도 이 가우만 델허스트라는 마법사는 매번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댈 뿐이었다.
끼이이익-
“소용없을 겁니다. 스승님은 5년 전부터 쭉 그 상태이시거든요.”
교수가 어떻게든 그의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보려는 찰나, 노인의 침대 뒤쪽이 열리며 자기 몸보다 커다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마법사님은 누구-”
“잠시.”
달칵.
좁디좁은 방 안으로 능숙하게 들어온 마법사는 익숙한 몸짓으로 가우만의 몸을 일으킨 뒤, 그의 옷을 정리해주고 테이블 위에 빵과 수프, 치즈가 든 접시를 올려놓았다.
“식사하세요, 스승님.”
“치즈, 치즈가 없어….”
“자세히 보세요. 거기 빵 옆에 있잖아요.”
“아니, 이게 아니야…. 크고, 노랗고, 부드럽고, 냄새나는…. 양젖으로 만든 치즈으….”
“쉬이이. 다음에 구해 드릴게요. 원하시는 치즈가 아니라도, 이것도 꽤 힘들게 구한 거예요.”
“으으음, 아으으음….”
마치 방의 절반을 꽉 채운 내가 없는 것처럼, 먹이고 먹는 데 집중하는 늙은 마법사와 제자.
“으음, 으으으음….”
“잠깐만. 신발 벗으시고. 예. 저번처럼 이불 걷어차고 춥다고 하시지 마시구요.”
“으으음…. 아스트라드, 멀리 가면 안 된다, 멀리가면….”
“어휴. 예, 화장실 가고 싶으시면 금방 올 테니까, 주무세요 스승님.”
.
.
.
.
드르렁- 피유우우….
그렇게 힘겨운 식사자리가 끝나고.
자기 몸보다 한참이나 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제자는 스승이 잠든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교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스승님은 식사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잘 드시지 않으셔서요.”
“아, 예에….”
“이쪽으로. 아, 너무 그쪽한테는 좀 그런가.”
로브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밖으로 드러난 손목이나 목소리로 보아 10대 소년으로 추정되는 마법사의 제자.
그는 품에서 구멍 세 개 뚫린 지팡이를 꺼내더니, 허공에 대고 조용히 흔들어 보였다.
후웅- 휘오옹- 휘잉-
‘아까도 그렇고, 바람 마법사는 저런 식으로 주문을 구성하는 모양이군.’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나무 지팡이의 구멍에 빨려 들어간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고, 그 소리에 마나가 얽혀들며 주문을 자아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수계 마법사가 손가락의 종류와 그 마디를 접는 것으로 수인을 구성한다면, 저들은 각자 지팡이에 흘러드는 바람과 소리를 이용해 주문을 구성하는 모양.
하나씩 이어지던 휘파람 소리가 겹쳐 들며 화음을 이루더니-
끄그그극- 덜컥, 끼이익!
움직일 틈도 없이 좁아 보이던 골방의 벽이 밀려나며 교수가 간신히 움직일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빨리 건너오세요. 홈의 마력을 빌린 거라 그렇게 오래 늘려둘 수는 없으니까. 스승님 깨시면 또 한참 시달려야 하기도 하고.”
짧았지만 제법 힘든 주문이었는지, 작게 숨을 몰아쉬며 후드를 걷어 보이는 마법사.
예상하던 대로 소년이었다. 노인처럼 하얗게 센 백발에 무표정한 녹색 눈. 열여섯? 열다섯 정도로 보이는 얼굴은 세상만사에 달관한 표정이었고, 굳은 입매 또한 그리 말수가 많아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잘생겼지만 깊은 다크서클과 나른한 눈매가 특징적인, 매우 피곤해 보이는 소년.
‘….이놈이다!’
녀석이 후드를 벗자마자 감이 왔다. 색천마의 공략에서 집중하라는 ‘매우 피곤해 보이는 제자, 세상사에 좀 익숙하고 머리에 바람이 덜 들어간, 사회화된 마법사’가 바로 이런 종류의 마법사라는 것을.
끼이익- 탁!
가까스로 침대 뒤쪽의 다락문으로 들어오자, 마찬가지로 좁지만 가우만의 방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주기적으로 편지가 하나둘씩 날아들어 쌓이고 있는 방이 나타났다.
소년은 지팡이를 휘둘러 주변을 정리한 다음, 어둑한 방에 촛불을 밝히며 내게 손짓했다.
“스승님 일은 대부분 제가 알고 있으니 저랑 얘기하셔도 될 겁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지인 이시라구요.”
하아아아-
편지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한 방안에, 소년의 한숨 소리가 내려앉았다.
“개소리 마시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교수’손님. 스승님은 왜 찾아오신 겁니까?”
휘우웅-
휘리릭! 시싯-!
소년의 나른한 눈 위로 가늘게 인상이 잡히며 섬뜩한 소리를 내는 유형의 바람이 모여들고.
…..피식.
“이제야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온 것 같군. 교숩니다. 성은 없고, 광명교단 용사. 수계 3위계.”
“….아스트라드. 마찬가지로 성은 없고. 3음계 바람 마법사. 가우만 델허스트님의 제자. 누락 편지 관리인 대리. 교단의 용사님이라…. 설마, 우리 풍계 마법사들의 참전을 권하러 온 겁니까?”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얘기가 편하겠군그래.”
그 날카로운 반응에, 교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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