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7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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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놈 봐라?’
교수는 눈앞의 어린 마법사가 마음에 들었다.
미친놈뿐인 펠릭스 홈에서 처음 만난 정상인이라서?
글쎄. 아닐 수도 있지. 곱게 미쳤을 수도.
현시점에서 바람마법사 집단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그건 맞다. 설명할 게 한 시간 어치는 줄어들었으니까.
잘생겨서?
물론 그것도 있지. 히어로 유닛 꿈나무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지금 그의 손위에 생성된 바람 칼날이었다.
쉭!- 쉬쉭- 시잇!
뱀과 같은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그를 향해 날아들어 올듯한 마법. 이제는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가 된 교수다 보니 대충 봐도 저게 그냥 위협용으로 띄워놓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보였다. 마나의 응축 수준이나 마력 흐름만 봐도 여차하면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이는 진짜 살상마법.
‘이 정도만 해도 저 나이치고 제법이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거짓말을 하고 침입한 게 드러났으니, 일단 조져놓고 보겠다는 뜻이니까.’
기실 마법사는 공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 이런 도덕적인 부분에서 걸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아스트라드라는 어린 마법사는 전투 마법사 꿈나무로는 아주 훌륭한 수준.
하지만, 소년 마법사는 겨우 꿈나무 수준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팔락, 휘릿-
교수의 감각에 아주 작은, 날아다니는 편지 소리 사이로 조용히 파고드는 바람 소리가 잡혔다.
‘후면 6시, 11시에 하나. 우측 책장 사이에 또 하나. 음…. 발목, 어깨, 경동맥인가?’
마법사를 노려보는 교수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러니까, 저 요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손 위의 마법으로 눈길을 끈 다음 몰래 심어둔 작고 조용한 바람 칼날로 암습을 가하겠다는 뜻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은 그 내면 세계의 표현. 마법만큼 그 마법사를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도 없었으니.
저놈은, 원래 저런 녀석이라는 뜻이다.
‘살인, 혹은 그에 준하는 상해 경험이라…. 예기가 제법 섬찟한데? 좀 쑤셔본 놈 같은데….한번 파 볼까?’
원래는 소란이 일어 치매 마법사가 깨기 전에 설득하려 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아니 온전치 못할수록 무서운 게 마법사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눈매 사나운 꼬맹이가 제법 입체적인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걸?
‘칼을 써본 경험? 살인자? 우발적인 사고? 아니면 의도적인? 뭐가 됐든 보통 마법사는 아니라는 소린데….’
난세는 영웅을 만들고, 그냥 난세가 아니라 세계의 멸망을 앞둔 지금 영웅은 문자 그대로 저 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저 개화하지 못한 채 산골 마을을 지키는 자경대장으로 남거나, 채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없이 스러질 뿐.
시스템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지금, 싹수가 있어 보이는 놈은 한 번쯤은 찔러봐야 하는 것이다. 마침 장소도 대마법사의 영구 마법으로 유지되는 제국 중요시설에, 희귀 직업군인 바람 마법사가 우글거리는 곳이니.
얘가 아니라도 한 명쯤 히어로가 잠들어있을 법한 곳이라 안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어차피 맞닥뜨린 거, 슬쩍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디 보자…. 3음계면 3위계랑 비슷한 거겠지? 이런 골방 같은 곳에서 뮤트 사태를 어느 정도 알고 그걸 토대로 내 정체를 유추해볼 정도는 되니까 상황파악도 좀 하는 것 같고. 전투 심리전도 제법 알차게 할 줄 알고. 다짜고짜 공격 마법부터 준비하는 건 바람마법사니까 정상참작 해주고.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에 무시무시한 압박 면접에 속마음을 죄다 털어놨었는데. 그거 어떻게 했더라? 느낌은 대충 기억 나는데…. 팩트로 혼을 쏙 빼놓고, 살기 같은 걸 막 와장창 쏟아 부어서는….’
교수가 속으로 엘프 대모님과의 무시무시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이, 그런 속내를 모르는 마법사의 제자는 겉보기에는 압도당한 듯 조용한 상대에게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듯 말했다.
“….혹여 스승님 앞에서처럼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할 생각이라면 후회할 겁니다. 이 펠릭스 홈에 사리 분별이 안되는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스트라드는 스승님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일단 이 수상한 남자를 제압해서 천천히 진실을 알아내려 했는데.
“가우만 마법사가 이곳에 온 게 8년 전이니까 대충 네가 8~9살 일 때 들어왔고.
제자가 되자마자 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비(非)마법사이던 시절이 채 10살이 되기 전이었다는 소린데. 그 어린 나이에 이런 건 어디서 배웠을까? 응? 너 마법사 하기 전에는 뭐 했니?”
“….질문을 질문으로 받지 마십시오. 우린 참을성이 그리 많은 사람이-”
“예리하고 깔끔해. 비살상 제압용 두 발. 사살용 한발. 아-주 효율적이고 전문적이군. 내가 만난 마법사는 대부분 마법의 효과나 위력, 범위에 집착하는 게 대부분이었지. 사실 그렇잖아? 마법사에게 마법이란 스스로 이해한 것의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니까. 보통 마법사는 ‘이 강력한 마법을 저[사람]에게 쏘아 맞힌다!’라고 생각하지, ‘이 마법으로 어디에 위치한 근육을 끊고 어디에 있는 치명적인 혈관을 잘라낸다.’ 같은 식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왜냐?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신….”
상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스트라드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꿀꺽.
스승님과 자신밖에 모르는 과거의 기억.
어린 마법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의 손 위에 바람칼날이 더 사납게 떨리고, 은밀하게 자리 잡은 다른 바람조각들도 한층 더 그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전투 마법사의 기본 소양은 살인 경험이라고들 하지. 얼떨결에 범위 마법으로 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가슴 깊숙한 곳에서 ‘저자를 죽이겠다! 여길 자르고 여길 터트려서 죽이겠다!’ 하는 선명한 심상으로 만들어진 마법적 예고 살인 말이야. 진짜 사람을 죽이는 마법은 그런 경험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전투 마법은 그 마법사가 사람을 죽여본 경험만큼 치명적으로 변하는 거야. 지금 내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작은 바람 쪼가리들처럼 말이야.”
“치잇!”
순간, 교수의 눈에 점점 인상이 깊어지던 소년의 눈이 스산하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명백한 살의. 상대에게 자신이 파악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반응하는 저 몸놀림.
쐐에에엑-!
소년의 지팡이가 휘둘러지자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를 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정면과 후면. 각각 가슴과 어깨, 발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세 개의 바람 칼날.
그와 동시에 재빠르게 앞으로 몸을 날리며 책상 위의 뾰족한 펜을 역수로 쥐는 마법사답지 않은 손놀림까지.
“흐흐흐. 웃기는 놈일세 이거.”
상대에게 조금 파악당했다고 바로 위력행사라니. 거기에 미리 준비한 마법에 육탄공세까지?
바람 마법사의 충동적인 면을 고려해도 성급한 행동이다. 아무리 정체를 숨기고 스승의 이름을 도용한 침입자가 말하지도 않은 본인의 과거사를 술술 털어놓았다고 해서….
‘아니, 그 정도면 공격할만한가? 겁나 수상해 보이긴 하겠는데?’
아무튼, 다짜고짜 공격 마법부터 날리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교수는 날아드는 마법과 낮은 자세로 달려들며 펜촉과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를 보며,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어디서 많이 봤다는 것을 떠올렸다.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종류의 절박함. 다짜고짜 무기를 들이밀고 위협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하며, 조금이라도 상대가 자신보다 우위에 섰다는 판단이 들면 주저없이 공격을 감행하는 저 태도까지.
교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너, 뒷골목 출신이지.”
“…..!”
고막 대신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말에, 아스트라드는 대답 대신 날카로운 펜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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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드는 반응도 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사내를 보며 그의 마법이 저 남자의 발목과 어깨를 끊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간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렸다.
‘아니야. 자기 입으로 용사라고 말했잖아. 이 정도 공격에 저렇게 허무하게 당한다는 것부터가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증거야. 일단 반병신으로 만들어서 제압한 다음, 정체와 목적을 듣고 나서 치유 마법이 가능한 분들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충동적이었지만 옳은 판단이었다 생각하며 아스트라드가 혹시나 몰라 준비해둔 마지막 마법을 취소하려던 순간.
콰악!
“커흑!”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의 거대한 손이 그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분명 마법이 지척까지 접근한 것을 봤는데….’
마치 바위로 된 족쇄가 목을 조여오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아스트라드는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사내가 입은 얇은 사제복 위로 날카롭게 베인 자국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옷만 베였을 뿐 이상하게 붉은 기가 도는 피부 위로는 상처 하나 없었다.
‘….기사! 오러로 몸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의!’
아스트라드는 오래전 그가 속한 왈패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던 ‘기사’의 위험성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휙- 휙.
‘어째서. 어째서 바람이?’
아무리 휘둘러도 그 음을 내어주지 않는 지팡이. 점차 충혈되어가는 아스트라드의 눈에 지팡이 끝에 얽힌 물 덩어리가 보였다. 지팡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람구멍을 모두 막아버린 물 덩어리가.
물 마법. 정체를 숨긴 오러 유저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어온 또 다른 수계 마법사까지. 교수의 정체를 모르는 아스트라드는 기사와 마법사 둘에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착각했으며, 그래서 아스트라드는 확신했다. 이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맨몸으로 마법을 받아낼 정도의 기사에 바람의 마나로 가득한 홈에서 이 정도로 은밀하게 수계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가 숨어들어왔다면, 뭔가 대단한 꿍꿍이를 가지고 홈에 잠입했다는 것을!
‘아, 알려야 해. 스승님을 걱정할 때가, 이대로 가면….’
점차 아득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아스트라드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콜록, 다, 당장….놓지 않으면, 너, 널….”
“놓지 않으면 뭐. 마지막 남은 저거라도 날려보게?”
교수가 히죽거리며 뒤쪽 서랍을 가리키자 허공에서 모여든 물이 숨어있던 바람 칼날과 얽히며
물방울 튀는 소리를 내었다. 죽이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까지 남겨둔, 목을 노리던 마법이었다.
털썩!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숨이 트이며 아스트라드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콜록, 콜록!”
“잘 생각했다. 내 모가지 노리던 저거까지 날렸으면 그때는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었거든. 죽이려는 것과 다치게 하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 부상 정도는 여기 있는 마법사 중 누가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수상한 놈이니 제압해놓고 치료할 생각이었겠지.”
어깨를 으쓱이다 찢어진 옷을 보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아스트라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회를 노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손을 놀리던 남자다. 섣불리 휘파람을 불려고 하면 그땐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경계심 가득 담은 눈으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아스트라드를 보며, 잠시 심호흡을 하던 남자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이봐, 마법사의 제자님. 우리 첫 단추를 좀 잘못 꿴 것 같은데…. 진정하고 0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자기소개부터.”
‘거짓말! 처음에 마법사라고 소개해놓고, 맨몸으로 마법을 받아냈잖아! 역시 바깥 놈들은 전부 믿을 수 없어. 제국 놈들도, 날 버린 부모도. 뒷골목 왈패들도. 모두….입을 열면 쓰레기만 토해낼 놈들이야.’
아스트라드는 방의 구석까지 물러난 다음, 조심스럽게 검지와 엄지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남자는 그런 아스트라드가 안중에도 없는 듯, 방구석의 의자를 끌어와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숨이 답답했다.
소년의 불안한 눈에 여유 가득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편안한 모습.
이제 힘껏 불기만 하면. 휘파람 소리가 이 벽 너머에 울리는 순간 몰려온 마법사들이 당장에라도 이 악한을 제압해 주겠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사내 앞에서 아스트라드는 끝내 휘파람을 불지 못했다.
검지와 엄지를 입에 물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스트라드의 앞에서 남자가 히죽거렸다.
“그건 무슨 신호 같은 거지?”
“….”
“가우만 마법사님은 한눈에 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 널 각별히 아끼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아마 위험신호 같은 게 울려 퍼지면 당장 제일 먼저 달려오실 분 일 거야. 물론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나야 죽어 나가겠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가우만님이 적과 대치상황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마법을 제대로 조율하실 수 있을까? 음, 마법 폭주는 보통 큰일이 아니지. 늙고 노쇠한 마법사라면 특히나 더.”
아스트라드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의자에 앉아, 까딱거리며 균형을 잡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무섭다.
시종일관 히죽거리는 저 미소. 처음엔 기분 나빴지만, 이젠 무서웠다. 저 미소도. 가늘게 뜬 눈도. 수계 마법사라고 믿을 수 없는, 저 짙고 끈적한 마나도.
마시는 순간 익사할 것 같은 짙고 붉은 안개였다. 스승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저 거대한 존재감의 악마에게 대항할 수도 없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스트라드에게, 남자의 두 손이 다가와….
“어이, 정신 차려, 이봐! 제자님! 아스트라드!”
“왁! 욱, 으악! 억!”
그대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올린 다음,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흐억!”
“어우, 미안해라. 이렇게 본격적으로 해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도 처음이라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침 닦아라, 야.”
“무, 무슨…. 방금 그건 도대체….”
숨통을 옥죄어오던 붉은 안개는 어디 갔는지, 방안에는 남자와 아스트라드, 그리고 잔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편지뿐이었다.
“음? 아아, 니가 나한테 처음에 하려고 했던 거의 강화판. 나도 처음 만나는 상대를 줘 패놓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거든.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니까. 300년 묵은 엘프한테 배웠지.”
아스트라드는 아직도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붉은 안개의 환영을 털어내려 애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눈앞의 남자가 ‘효과 죽이네.’ 같은 말을 하는 게 들렸지만, 귀로 들어온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 그럼. 드디어 ‘제대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군. 매우 신경질적이고 사나운 바람 마법사님. 이제 대화라는 걸 한번 해보실까아?”
무겁고 끔찍한 공기를 털어내듯 명랑한 목소리.
놀리듯 히죽거리는 그 모습에, 아스트라드는 손에 쥔 지팡이를 꽉 잡았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사제의 옷을 입고 마법을 쓰며 기사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 해괴한 존재는 뭐냔 말이다.
“괴물….인가?”
“어?”
아스트라드는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한 번 놀랐고, 그걸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상대의 행동에 한 번 더 놀랐으며,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지팡이를 부여잡고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그, 그럼 소문의 그…. 변경백 영지를 피로 물들였다는 괴물이 당신이라는….”
“무슨 소문이 그렇게 퍼졌….아니, 제자님 잠깐만! 진정하고…. 도망칠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겁에 질린, 한편으로는 결연한 얼굴로 마구 뒷걸음질 치며 온몸으로 스승의 방으로 향하는 문을 막으려 하는 소년 마법사.
교수는 공포를 넘어 뭔가 각오까지 해버린 어린 마법사를 달래기 위해 한참을 애써야 했다.
‘….역시. 변경백 영지에서 그 사건 이후로 뭔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같아.’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균형하게 삐걱거리던 무언가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체감은 되었다.
그의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카네란의 대모가 사용했고, 방금 교수 자신이 어린 마법사에게 사용했던 것은 보스몹이나 사용한다고 알려진 기술,
피어(Fear)였으니까.
적어도 시스템이 돌아오면 그가 휴먼 종으로 분류될 일은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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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열기구를 못 쓰고 있다고?”
충격에 빠진 어린 마법사를 달래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일단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다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아스트라드는 어린 나이에 3위계라는 상당한 수준을 이룩한 마법사였으니까. 세상을 이해하는 게 일인 마법사에게 온갖 기현상을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하프 뮤트의 몸으로 인간 우월주의 교단의 용사이자 성자이며, 성자인데 신성력이 한 톨도 없어 마법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온갖 기현상’의 상정 범위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교수는 그렇게 진정한 아스트라드 앞에서 ‘마나에 대한 맹세’ 까지 나눠 그의 진정성과 결백함을 증명한 끝에, 아스트라드에게서 폭풍의 언덕이 처한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펠릭스 홈의 상황은 매우, 대단히, 끔찍하게 좋지 않았다.
“네. 벌써 몇 달째 엘프와 교역은 중지된 상태입니다.”
아이 시발 진짜.
이쯤 되니 어떤 종류의 선명한 악의 같은 게 느껴졌다. 잘 가는가, 싶으면 ‘히히, 못 가!’ 하면서 사건의 벽을 죽 둘러치는 시스템의 거대한 악의가.
엘프의 숲 행 하이패스를 끊으러 왔는데, 잠정 운영 중지란다.
“왜! 너네 그것 말고는 제대로 된 수입원도 없잖아! 죽은 펠릭스 드릭시엘이 월급 주는 것도 아니고!”
“후우우우. 그렇….지요.”
그 말에 동의하듯 한숨을 내쉬는 어린 마법사.
“그게….”
아스트라드는, 어렵사리 눈앞의 괴생물체에게 홈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정체가 뭐든, 그가 진실로 용사이며 성자이자 마법사에 그런 임무를 받은 이라면, 어쩌면 이 상황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정상적이지 않은 돌파구에 기대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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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 *&$^#*^!!!! 으아아악! 안 해! 하기 싫어! 게드로이츠 시발놈아! 그냥 곱게 집에 보내줘!!! 으아아아!!!”
“….이런.”
아쉽게도 그의 반응을 보니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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