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18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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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자네…. 표정이 안 좋구먼.”
“오트만님도 다 죽어가는 표정이십니다.”
“자괴감이, 자괴감이 멈추질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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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
허어어-
그으으으으….
느지막한 점심시간. 아스트라드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간 교수는 식탁 위에서 머리를 처박고 있는 오트만과 보르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식당이 비어있는 이유를 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콰르릉!
쏴아아아아!
밖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까. 슬쩍 보니 작은 돌이 날아다닐 정도로 사나운 태풍 속에 휘말려 흐느적거리는 로브 같은 게 잔뜩 보였다.
‘아주 신이 나셨구먼그래.’
“그래도 오트만님은 어떻게 성공하셨습니다? 이 물 한 방울 없는 암석 지대에서. 피곤해서 그러십니까?”
“피곤한 게 아니라, 그…. 좀 자괴감이 들어서 말일세….”
교수가 턱짓으로 밖을 가리키자, 오트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자네 말대로 워낙 수분이 적은 지역이 아닌가. 노툼의 주술도 물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연력을 빌려 비구름을 옮기는 것이니 아예 메마른 지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 저 치들 놀이용으로 국소지역에 한정한 비를, 안개비 수준만 만들어낸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 정말 있는 물, 없는 물 다 끌어다 써야 했다네.”
“우는소리 하는 것치고는 잘하신 것 같은데. 대수층이 생각보다 얕았습니까? 아니면 습기가 모인 계곡이 있었다거나?”
우르르릉!
뇌우가 몰아치는 바깥을 보며 교수는 새삼 오트만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런 식으로 미친 듯이 바람을 끌어오면 어떻게든 기류가 만들어져 폭풍이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 촉매가 되는 시발점은 오트만의 손으로 이룩한 것이니까.
덜컹! 펄럭-
사나운 바람에 창문이 열리며 빗방울이 들이치자 오트만은 기겁을 하며 반대편으로 몸을 피했다.
“말했잖나. 정말 ‘있는 물, 없는 물’ 다 짜냈다고. 아무리 해도 도저히 물이 모이지 않고, 우르르 몰려온 저 미치광이들이 슬슬 ‘이거 가짜 마법사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하고 있었지. 나는 절박했네. 절박했어….”
잠시 손가락 사이로 비친 오트만의 눈은 무슨 크툴루 신화라도 마주하고 온 사람 같았다. 끔찍한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 같달까.
“자네도 알다시피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떻게든 버려지는 물이 있지 않나. 그때 당시에는…. 금방이라도 날 조각내버릴 듯한 미치광이들 사이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래, 난 그런 곳에도 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게야. 아아아아….”
“버려지는 물…. 음?”
아직도 이해를 못 한 교수를 위해, 오트만은 친히 손가락으로 이 메마른 곳에 폭풍의 촉매가 된 물의 원천을 가리켰다.
교수의 아랫배.
순간 떠오른 끔찍한 상상에 교수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설마, 저거….!”
“아아아, 자네는 그 감각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 건물 아래, 음습한 골짜기에 모인 온갖 오물과 폐수의 향연 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그 감각을! 내가 거기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떠올린 심상은….. 아아아아! 태어나 처음으로 수계 마법사인 것에 자괴감이 드는구나!”
교수는 오트만과 마찬가지로, 창문이 열린 방향의 반대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니까 지금 밖에 휘몰아치는 사나운 폭풍은 오수를 정제해 만들었다는 소리다. 똥물 폭풍이라니.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을 만하군.
오트만은 서글픈 표정으로 손도 대지 않은 어포를 앞으로 밀어버렸다. 가만 보니, 오트만 뿐만 아니라 보르카도 앞에 있는 식사에 손도 대지 않았다.
“보르카는 왜 저럽디까?”
“저 친구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왔지.”
“예? 늑대인간이 여기서 할 일이 뭐 있다고.”
내가 의문 섞인 눈빛을 던지자 늑대인간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도 하기 싫다는 듯. 오트만이 내 의문을 대신 풀어주었다.
“놀랍게도, 우리보다 조금 더 있더군. 알다시피 이곳은 그 떠돌이들이 ‘집’이라는 공간에 갖는 모든 환상을 쑤셔 박아 놓은 곳이 아닌가?”
“그렇죠.”
“문제는 보르카가 한 어린 마법사의 부탁으로 늑대 폼으로 변신하며 일어났다네. 나한테 달라붙어서 빨리 비를 내리라고 재촉하던 이들의 절반이 그쪽에 붙었지. 옛날부터 집에 개를 키우고 싶었다며.”
“개요? 그 집에 키우는 애완견?”
쾅!
“그렇소! 애완견!”
그 키워드에 폭발했는지, 조용히 분을 삭이고 있던 보르카가 식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명예로운 숲의 부족을 개 취급하다니, 모욕도 그런 모욕이 없었소! 심지어 그들은 속세의 편견 따위와 제일 거리가 먼 사람들 아니오! 정말 순수하게!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나를 ‘개’ 취급했다는 소리가 아니오! 그르르륵! 크으윽!”
이야. 이쪽도 만만치 않네. 가장 순수한 물에 대한 애정으로 넘치던 오트만이 수십 년 넘게 쌓인 오물 계곡을 퍼올려야 했다면, 이쪽은 이종족으로서 그 자존감이 가루가 될 때까지 예쁨 받았다는 소리다. 현실로 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와! 흑인! 니그로! 아저씨 나도 목화 좋아해요!’ 하는 수준의 모욕이었을 것이다.
“임무만 아니었다면, 아니 임무 따위 무시한다 쳐도, 이곳 편지 마법사들을 은인으로 여기지만 않았더라면…. 저 눈알을 뽑고 혓바닥을 잘라 목걸이를-”
“알았다, 알았어. 보르카 당신도 고생 많았구먼. 뭐라도 먹고 힘이라도 좀 내셔. 그리도 여기 밥은 잘 차려주네.”
“이미 먹었소. 그 ‘애견인’들이 준비해준 것으로. 생식과 건식 중 어느 게 애견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로 치열하게 다투더군….”
터억.
교수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보르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늑대인간은 거의 울먹이고 있는 수준이었다.
“끔찍한 곳이야.”
“정말 끔찍한 곳이지.”
“전적으로 동의하오. 그르르르….”
서늘한 가을 폭풍 아래, 마법사들이 깔깔거리며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 세 남자의 뜨거운 눈빛이 오갔다. 사지를 함께 해치고 나온 병사들처럼 같은 고통을 공유한 이들 특유의 동지 의식이 그들 사이에 넘쳐흘렀다.
어디 보자.
이렇게, 남자 셋은 패배자 클럽이고.
“어머! 이드라실! 그건 뭐예요?”
“알네카님에게 받았습니다. 오래전 세계수의 가지들과 어울릴 때 받았던 선물이라며. 막 숲을 나와 힘든 제게 더 필요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세간의 소문과 달리 지적이고, 우아한 분이셨습니다. 차를 정말 훌륭하게 우려내시더군요.”
“호호호! 그렇죠? 저도 이곳 마법사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는 많이 당황했는데 너무 좋으신 분들인 거 있죠? 괜찮은 귀족들을 많이 소개받았어요. 바람의 고위 마법사와 오래 인연을 유지할 정도면 인내심이 거의 수도승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한 분들이겠죠. 좋은 인맥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약혼식이 있으면 찾아오시겠다는 분들도 많았고. 그거 알아요? 여기 따듯한 물이 가득한 욕실도 있고, 저녁 시간에 마법사들이 모여서 연주하는 공간도 있데요! 나중에 한번 가 봐요, 우리!”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루실라. 노툼. 당신도 즐거웠나요?”
“맞다 귀쟁이. 그웍. 바람쟁이들 재밌다. 마법인데 주술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서로 배울 게 많았다.”
저쪽은 승리자 클럽이로군.
우중충하게 똥이나 퍼 올리고 괴물 취급에 개밥이나 먹은 이쪽과 달리, 여자 셋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모양.
화사한 얼굴로 호호거리면서 오는 셋을 보고 있자니 시기심이 절로 일어났다.
“안녕 용사님! 오트만, 보르카님! 표정이 왜 그래요?”
“….몰라도 되오.”
“밥상머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군. 식사들 하시게.”
“음, 분위기를 보니 좋지만은 않았나 보네요. 알드리치 님은 어디 갔어요?”
“그 녀석은 할 일이 있다며 따로 움직이더군.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데…. 아마 별일 아닐 거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양피지를 잔뜩 들고 있었으니까.”
양피지라. 알드리치는 편지를 보내러 간 모양이다. 하긴, 제국 출신이라고 밝혔으니 나름 인연이 있겠지.
그렇게 알드리치를 제외한 일행 여섯 명이 식탁에 모였다. 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되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이곳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모양.
“그럼 이제, 제일 중요한 자네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로군, 교수. 설마 우리가 이렇게까지 저 치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무 성과도 없다고 하지 말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오. 열기구는? 엘프의 숲으로 갈 수 있다 하오?”
‘두 번은 싫으니 빨리 여길 뜨자’는 원독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르카와 오트만.
“하아아아아….”
“한숨 쉬지 말게. 불안하니까.”
“그…. 미안하게 됐수다.”
아쉽게도, 내 대답은 그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일단, 당장은 열기구가 못 뜬답니다.”
“왜!”
“그르르륵! 어째서!”
“뮤트요 뮤트.”
“뮤트? 설마 변경백 영지에서처럼 또 습격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건 아닌데…. 일이 좀 거지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습격이 아니라, 상시 주둔 중이래요.”
“어디에?”
오트만의 당황한 음성에 교수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어-기. 작은 조류형 뮤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상공을 감시하고 있답니다. 매일 저녁에 찬바람이 올라올 때마다 눈에 띄는 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끝도 없이 밀려온대요.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전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아무리 제거를 해도 눈 돌리면 또 나와 있답니다. 저게 지켜보고 있는 한 엘프 숲으로 열기구를 띄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자칫 악신한테 세계수의 위치가 들통날 수 있다며.”
“이런….”
식탁 위로 일행들의 낮은 탄식 소리가 쏟아졌다.
“하늘은 바람 마법사들의 공간이 아닌가? 심지어 이곳 대마법사의 유산 근처에서라면 다들 평소보다 마법 실력이 배는 늘어날 텐데?”
“그렇죠. 눈에 띌 때마다 깡그리 잡아 없애고 있답니다. 집에 새똥 떨어지면 안 된다면서 다들 적극적으로다가. 아스트라드 마법사 말로는 하루 평균 4~500마리 정도 잡는데, 아무리~ 잡아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날아든다는군요.”
“으으음….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날아든다라….”
“둥지 같죠?”
“내 생각도 그렇네. 인근에 챔버 메이드가 둥지를 틀고 이 조류형 뮤트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군.”
1급, 챔버 메이드(Chamber maid : 허드렛일 하녀). 둥지, 하녀 따위로 불리는 뮤트의 대리모 개체.
이드라실과 루실라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저번에 이 녀석을 한번 상대해봐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상대의 정체를 유추하고 있었다.
잠시 오트만에게 둥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루실라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의외로 문제의 해결 방법은 간단하겠군요? 그 둥지를 파괴하고 남은 잔당을 소탕하면 다시 열기구 운행이 시작될 테니까. 아무리 마법사라도 경제적인 부분은 무시할 수 없잖아요?”
“이런, 루실라 너는 못 봤겠지만 둥지 주변에는 강력한 뮤트가 잔뜩 있단다. 저번에 침투했을 때는-”
“아아아, 그건 아닙니다 오트만. 우리도 나름 성장을 했잖아요. 이제 둥지 하나 정도 때려 부수는 것쯤이야 목숨 걸고 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죠. 문제는….”
교수는 포크를 들어, 식당의 탁 트인 바깥을 가리켰다. 폭풍우와 날아다니는 마법사들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바위 계곡을.
“저기 어느 골짝에 처박혔는 줄 알고 찾아서 조진답니까?”
“아.”
“….이런.”
교수의 말에 일행도 그의 시선을 따라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끝없이,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진 황량한 바위 계곡. 같은 구간을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처럼 생긴 자연의 미로였다.
“파하아아….”
답답한 마음에 포크로 빵이나 긁어대던 교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예, 이번 임무는 수색에 중점이 된 거점 파괴 임무가 될 것 같습니다. 저 바싹 마른 바위틈을 싹싹 뒤져서 챔버 메이드의 모가지를 따야 세계수행 열기구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대충 들어도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소만….”
끄덕끄덕.
“무작정 들이박으면 동부 3국이 멸망하고 제국이 뮤트를 상대로 조공무역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쯤은 되겠지. 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해내는 게 문제라고.”
거의 그랜드 캐니언 정도 넓이의 암석 지대에서 적의 거점을 찾아내는 일. 심지어 챔버 메이드가 실제로 뿌리박고 생산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공간은 최소로 잡으면 종탑의 작은 꼭대기 방 수준 정도만 있어도 된다.
‘심지어 몇 기가 박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루 4~500 마리면 메이드 한기로도 충분히 소화 가능한 물량이지만, 그건 인공 자궁을 대량으로 넓힐 수 있게 큰 거점을 만들었을 때 얘기고. 기껏해야 4개월 전부터 시작된 사건이니 그 정도 규모는 안됐을 거야. 작은 둥지 여럿이 있다는 소리다. 중형이면 두 기, 소형이면 다섯 기까지 봐야겠지.’
당장 하루라도 빨리 지원군이 필요한 로드릭을 보면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아직 여유 자금이 약간 있으니 사람을 고용해서 수색 인원을 늘리면….”
“그 정도로는 안 돼. 어중이떠중이는 4급 뮤트만 만나도 소리소문없이 썰려 나갈 테니까. 수색 인원을 늘리는 데는 동의하지만.”
항상 그렇지만, 퀘스트는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가지고는 있다. 이번 퀘스트는 아예 대놓고 그걸 눈앞에 훤히 보여주고 있고.
여기서 교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반 수색 인원이 아니라 다른 수색 인원이라면….?”
“그야 당연히-”
와장창!
쿵! 쿠당탕-
철푸덕!
“히히히히! 미끄러졌다아- 흐히히! 안녕 손님들! 비를 불러줘서 고마워! 바닥 깨끗하니까 주워들 먹어!”
쒜에에엑!
“….저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답이 뻔히 보이는데, 그게 졸라게 싫었으니까.
교수는 창문을 통해 미사일처럼 날아와 식탁을 다 엎어버리고, 바람처럼 날아간 마법사를 가리켰다.
“세상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게 바람이라고들 하잖아. 풍계 마법사는 수색, 색적에 있어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달인이야. 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해.”
“어…. 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겠나? 저렇게…. 자유분방한 이들인데?”
“그러니까 잘 맞춰주면서 꼬드겨야죠. 오늘처럼.”
교수의 말에, 오트만과 보르카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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