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21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9)
****
킁킁. 킁킁킁-
“전부 나간 것 같군.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소.”
홈 전체에 울려 퍼진 첫 충격 이후,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 건물 내부.
보르카는 최대한 신중히 주변을 살피며 나머지 일행을 이끌었다. 교수에게 전해 들은 계획은 계획 자체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
“내부팀이 소문을 내고, 오트만이랑 내가 바람마법사들을 미치게 만든 다음, 살아나오기만 하면 되는거지. 간단하지?”
“간단하게 죽기 좋은 계획 같소만. 외부 인원의 위험이 너무 큰 것 아니오? 벌떼처럼 달려드는 성난 마법사들을 상대해야 할 텐데?”
“그건 다 생각이 있으니까 맡은 일이나 잘해주셔. 일이 자-알 풀리면 그냥 습격을 알리고 다니는 단계에서 내부팀의 일은 끝. 마법사들이 나가면 우리 쪽 알리바이만 잘 만들어주면 되겠고. 만약 일이 잘 안풀리면…..”
=========
‘그땐 일이 잘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는데.’
키이이이이잉-
보르카는 고막을 울리는 섬뜩한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 수 있었다. 몸의 솜털 하나하나까지 죄다 곤두서는듯한 위기감.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 마법으로 보호받는 건축물 안에서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도대체 밖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저런 무시무시한 기운이 모여드는 상황이 ‘잘’풀린 상황일 리가 없는 것이다.
=========
“잘못되면…..건물 중앙, 그 편지 처리하는 구역에서 기다려.”
“그냥 기다리면 되오?”
“음…. 아마? 회복에 도움되는 거 있으면 좀 준비해주면 고맙겠고. 혹시 여기 마법사들이 뮤트 잡아놓은 거 있으면 좀 찾아봐 줘.”
“뮤트? 어째서.”
“먹게.”
쿨럭!
“이젠 숨길 생각도 없구려….”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부담스러워?”
“대단히. 그런 건 좀 숨겨주시오. 제발.”
=========
똑. 또독. 똑.
상념에 빠진 보르카의 귀에 낯선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혹시나 어떤 신호일까 하는 마음에 찾아보니, 긴장한 루실라가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였다.
“나가….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용사님이라도 저 많은 수의 마법사를 혼자 상대하긴 힘들 것 같은데….”
“불안한 것은 이해하오만, 기다리는 것이 옳은 것 같소. 적어도 대장은 이런 부분에서는 믿을만한 우두머리니.”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하네. 자기 살아날 구멍은 귀신같이 챙기는 친구이니, 괜히 우리까지 나가서 신경 팔리게 하는 것보다는 계획대로 행동하는 게 좋겠지. 노툼, 치유 주술은 준비됐느냐?”
“반 밖에 안됐다. 저 무시무시한 고리에 영혼들이 전부 겁을 먹고 숨어버렸다.”
“이드라실 자네는?”
“제 쪽도 불완전합니다. 이곳 주변을 맴도는 정령들의 감정에 제 정령도 휘말려 버린 것 같아요. 회복과 관련된 정령술을 사용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큰일이군. 인근의 마나가 모조리 밖으로 빨려나가 버려서 내 마법도 영 시원찮은데.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주술도, 정령술도, 마법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인근의 모든 것이 휘말렸는지. 우리도 대비를 좀 해야겠군. 이 정도 규모라면…. 이 안까지 반향이 미칠 수도 있어. 노툼, 루실라를 부탁한다. 저게 대규모 전격 마법의 전조라면, 자칫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 수 있어. 특히 사방에 구멍이 숭숭 뚫린 이런 건물 안이라면 더욱 더.”
“그렇단다. 연약한 발정 빨간머리. 이리와라.”
“야아아악!!!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렇게 분주하게 책상을 끌어모으고, 나름대로 충격에 대비하던 어느 순간.
뚝-
“바람소리가….”
“멈췄군. 곧 온다! 절대 눈 뜨지 마!”
순식간에 적막해진 공동에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채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사이에 섞여든, 비명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기이한 메아리.
—-아—–아아아—–
“아, 알드리치님! 이상한 소리가!”
“….처음듣는 시전음이로군. 내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주문인가?”
“비명소리 같소만….”
“어허! 고개 들지 말게! 눈이 머는 수가 있어!”
“아, 알겠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점점 커지는데요? 정말 비명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이….상하군. 비명소리가 들리는 주문은 흑마법 밖에 없는데….”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 아니오?”
“인간 마법사 오트만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 친구 지금 위에 있는거 아닌가?”
알드리치의 의문에 대답해주기위해 고개를 든 엘프는, 소음의 원인을 확인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 위에 있군요.”
“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3초 정도면…. 더는 위에 있다고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
.
.
.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참다 못한 루실라를 필두로 일행이 슬쩍 눈을뜨고 위를 바라보자,
그곳에 있었다. 저- 지붕 위에 있어야 할 마법사가,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서.
휘우우우우웅-!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오, 오트만님?”
“바, 받아! 보르카!”
“흐아아압!”
철썩!
철푸덕!
오트만 주변을 감싸고있던 녹색 보호주문이 사라지며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떨어져내렸다. 하나는 보르카의 품으로, 하나는 바닥으로.
늑대인간 다운 순발력으로 가까스로 받아낸 보르카가 소리쳤다.
“바, 받았소! 내가 받았으니 안심하시오, 오트만!”
“끄으으으…. 난 여기 있네, 워터 실드가 아니었으면 추락사 할뻔했구만….”
“음? 아니, 그럼 내가 잡은 것은 대체….”
보르카는 그의 옆 바닥에 드러누운 오트만을 보며 그의 품안에 있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받아내는데 성공한 것. 약간 뜨뜻 미지근하고, 딱딱하고, 맥동하는….
“크어엉! 컹! 워억! 뭐, 뭐요 이건!”
팔뚝.
철퍽- 퍽, 툭- 데구르르-
오트만과 같이 떨어지고, 보르카가 받아서 냅다 던져버린 그것은 거의 늑대인간 몸통만 한 괴수의 오른팔이었다.
“끄으으으…. 정신 나간, 미친놈이 나를 또 끌어들여서는…. 아이구, 누가 나좀….”
떨어지는 충격에 삐끗했는지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오트만.
하지만 일행은 그런 그를 부축해줄 여유가 없었다.
쿠화아아아아아악!
마침내 떨어진 거대한 낙뢰는 펠릭스 홈에 거의 충격을 주지 않고 그 벽면을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달렸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낙뢰 사이로 그 거대한 에너지를 받아낸 돔의 외벽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달궈진 벽면의 음산한 붉은 조명 아래에서, 사람 몸통만한 팔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꿈틀, 꿈틀꿈틀! 부르르르-
“으으으으…. 저게, 뭐야….”
“악마….같은 건가?”
“XICaNiacK! UnWaKUuuu!! DeVak! 부정한 것! 역겨운 것!”
투둑, 츄르르륵…. 찌지직-
경악하는 일행들의 시선속에서 경련하던 팔뚝이 잠잠해지더니, 곧이어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뭉개지는 그런 소리가.
그 안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나, 나와요…. 뭔가, 나오고 있어요!”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것이 떨어지는가! 노툼! 제령 준비를! 어서!”
서둘러 영혼항아리를 꺼내는 알드리치와 노툼의 시선 속에서 팔뚝은 순식간에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안이 답답하기라도 한 듯 요동치던 것도 잠시.
팔뚝의 한 부분이 부풀어 오르더니, 톡- 하고 터져나가며 그 안에서 피투성이 손가락 여덟 개가 찢어진 가죽을 좌우로 벌리고. 마침내 그것이 밖으로-
퓩!
“아욱!”
나오려다, 이드라실이 쏜 화살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
.
.
.
.
“해, 해치웠나?”
알드리치의 부정한 말과 달리, 아무 반응도 없는 팔뚝.
“잘했소, 엘프! 역시 엘프다운 반응속도였소!”
“부정한 것은 온전히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잠재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들어서. 헌데, 이번에도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같았는데….”
이드라실이 의문을 표했지만, 저 기괴한 공포에서 해방된 일행의 기쁨 사이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환호하는 일행들 사이로 허리를 부여잡은 오트만이 걸어들어왔다.
“아이구 허리야…. 교수 저놈은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사람을 이따위로 다루다니…. 뭐 하고 있나? 뭘 해치워?”
“아아, 고생 많았네, 오트만! 교수는 무사한가?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데몬 스폰같은게 자네와 같이 떨어진 건가?”
“데몬 스폰은 또 무슨 소린가? 교수라면 저기, 나랑 같이 내려왔잖나.”
“같이? 어디?”
“어디긴. 분명 나랑 같이 구체 안에서 이렇게, 커다란 팔뚝 안에….”
쿵.
“안에…. 저, 저기 저 팔뚝 안에….”
허리 통증으로 잔뜩 찌푸려져있던 오트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하얀 곡선기둥 사이에 처참하게 널부러진, 화살이 박힌 괴수의 팔뚝.
“교, 교수야.”
“음? 어디 마법으로 숨겨둔겐가? 난 모르겠는-”
“교수야아아아!!!!”
사색이 된 오트만이 괴수의 팔뚝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이고오오, 이놈아! 그러게 좀 정상적으로 살았어야지! 아이고오오, 이렇게 멍청하게 가면 어쩌나아아아….! 교수 이놈아아!”
손 끝에 물의 칼날을 만들어 팔뚝을 마구 헤집는 오트만과,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얼이 빠진 일행들.
얼마 지나지 않아 찾던 것을 발견했는지, 오트만은 묘하게 속이 비어 보이는 팔뚝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은 다음 힘을 줘서 단숨에 뽑아냈다.
푝!
방금 전, 살짝 열렸던 팔뚝 안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갔던 화살. 오트만이 그것을 뽑아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팔뚝이 다시 한 번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쫘아아악-
턱. 터억.
마치 파충류가 흐물흐물한 알껍데기를 찢고 밖으로 나오듯,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겨우겨우 팔뚝 밖으로 기어나오는 인형.
“아이고오오오- 이 친구야! 나는 자네가 죽은 줄 알았어!”
“아우아아아악! 오, 오트만! 살살, 살살! 지, 진짜 죽을 것 같이 아파요! 우악! 신생아처럼, 신생아처럼 다뤄줘!”
“요, 용사님? 용사님이…. 괴물의 팔뚝에서 태어났- 꼬르르륵!”
결국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에 루실라는 혼절해버리고. 그런 루실라를 받아낸 트롤의 얼굴에도 ‘무슨 저런 괴물 같은 게’ 하는 표정이 자리 잡으며, ‘저 사람’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세상에 나온 엘프가 저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향년 64세라는 나이와 흑마법사로서 온갖 기괴한 꼴을 봐온 덕분에 간신히 이성을 유지한 알드리치가 교수-로 추정되는 것과 오트만에게 다가갔다.
“서, 설명해주게….”
“내가, 여기서 기다리면 온다고 했잖습니- 쿠헑! 쿨럭! 아으으으…. 성대가 터졌나 봐…. 망할 깐프새끼가 두 번이나 사람 머리에 화살을….”
“누가 ‘저걸’ 보고 저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겠나! 자네 진짜 사람은 맞나? 슬라임도 핵이 있어야 분열하거늘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
“콜록, 콜록! 그런 게 아니라, 껍데기만 남겨두고 변신 해제한 겁니다. 내 몸속을 유영하는 느낌 같았달까. 나보다 몸 잘쓰는 놈을 하나 아는데 걘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하더라구요. 그놈은 막 팔로 집채만한 창도 만들고 그 끝에 눈알 수백개에 이빨도 달고 그랬는데….”
“자, 자네 지인중에 악마라도 있는겐가? 고대의 이형체라거나….”
“그런게 아니라, 그…. 설명하기 힘든게 있습니다. 으으으, 이따 자세히 설명해 드릴테니까 좀….온 몸에 힘이, 신경이이이우으아아으으….”
꼬르륵.
결국, 교수도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오트만은 축 늘어진 교수와 루실라, 그리고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어디 한적한 곳으로 옮기세. 보아하니 교수는 완전히 탈진했고, 루실 저 아이도 좀 진정을 시켜야 할 것 같으니.”
“….당장 나부터 좀 진정을 해야겠네만.”
알드리치의 말에 오트만은 그의 로브 자락에 몇 개나 쟁여둔 흙갈색 포션을 꺼냈다. 물의 정령 때문에 그가 상시 복용중인 마법사용 진정제였다.
꿀꺽, 꿀꺽-
“푸흐으으으. 좀 낫군. 이거 잔뜩 만들어서 쟁여놔야겠어. 교수 이놈이랑 같이 다니려면 수레 가득 실고다녀도 모자랄 테니까.”
“동감일세. 내 이 나이가 되도록 온갖 일을 다 겪었건만, 단언컨대 이정도 미치광이는 겪어본 적이 없다네.”
“그냥 미친놈이면 차라리 낫지. 문제는…. 교수 이놈의 미친 짓은 항상 들어먹힌 다는 게야. 이 따위 ‘정답’이라니. 이놈 뿐만 아니라 세상이 아주 미쳤어.”
알드리치는 결국 정신을 잃어버린 교수의 하반신에 로브를 벗어 둘러주며 혀를 찼다.
거의 심장이 방광 근처까지 뚝 떨어졌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다친 사람은 교수 한 명 빼고 아무도 없었으며.
마법사들은 이곳이 만들어진 이후 최초로 이곳을 습격하고, 또 박살낸 뮤트에게 어마어마한 원한을 품게 된 동시에 뮤트가 단순히 해충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이 행복한 ‘가정’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됐으니.
이 넓은 암석지대에서 뮤트 둥지 찾기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해결책을 거의 피해없이 반나절 만에 찾아내 성공시킨 것이다.
“이리주시오. 대장은 노인 둘이 들만한 체격이 아니니.”
들썩-
“끄으으으아아아아아악! ….!…..!!”
추우욱.
격통에 강제로 기상했다가 다시 기절하는 교수를 보며 노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 작은 인간…. 아니다. 교수다. 교수. 저건 교수다.”
귀쟁이 / 귀신늙은이 스승 / 발정 빨간머리 / 늑대 / 물마법사 / 그리고, 큰 작은 인간.
노툼은 그의 머릿속 인물 목록에서 [큰 작은인간] 항목을 지워버린다음, 그 위에 [교수]라고 덧칠했다. 예의바르고 착한 트롤인 그녀에게 있어, 교수 같은 것을 인간으로 분류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흡족해하는 노툼을 마지막으로 펠릭스 홈의 중앙 공동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실신 둘.
타박상 하나.
전신 쇠약화 하나.
매우 심각한 정신적 충격 여섯.
가치관 혼란 넷.
펠릭스 홈의 풍계 마법사를 모두 의도대로 움직이게 된 것을 생각하면, 거의 무혈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