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22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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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 왔구먼. 그건 이리 주고 나가보게. 보아하니 바쁜 것 같은데.”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홈에서 일어난 사고로 다치셨으니, 충분한 보상이 따를 겁니다.”
“그거 감사한 소리로군. 일단 알겠으니 이만 나가주지 않겠나? 환자….의 안정에 방해되어서 말이야.”
무미건조한 목소리의 아스트라드와,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저희가 알기로는 ‘그 사건’ 당시 홈 중앙의 ‘편지 수거 및 분리실’에 계셨던 것 같은데, 혹시….”
흠칫!
꿀꺽-
“여러분 외에, 다른 생물을 본 적은 없습니까?”
“다, 다른 생물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병상에 누워있는 교수와 루실라, 구석에서 잠든 척하는 노툼과 이드라실, 그리고…. 대단히 어색한 얼굴로 흠칫거리는 알드리치.
교수 일행은, 제법 화려한 손님용 방에 모여 예의 그 눈매 사나운 제자의 추궁을 받고있었다.
“….없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그 붉은 뮤트라는 흉수가 도주한 것으로 확인되어서 말입니다. 혹시….”
“아으으으….어…..으으으으!”
아스트라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뭔가 더 캐물으려던 찰나, 병상에 누워있던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진물이 흥건한 붕대 사이로 드러난 흉터투성이 피부.
낙뢰로 인한 화상이 아닌 것은 이미 확인했기에, 의심을 접은 아스트라드는 뒤로 물러났다.
“….질문을 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닌 듯하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이 빠르게 회복하신다면 교단의 협력에 대해 토의를 할 수도 있겠지요.”
“아, 알겠네. 고생하시게!”
….꾸벅.
마지막까지 게스트룸을 날카롭게 훑어본 다음, 아스트라드는 조용히 문을 열고 사라졌다.
눈매 사나운 마법사의 제자가 떠나고 잠시 후.
“….갔습니까?”
“갔네. 확실히 갔어.”
“푸하아! 환자 연기 못 해먹겠네, 진짜! 저 새끼 눈빛 봤어요? 내가 말했지! 저놈 저거 수상하다고! 마법산데 마법사 같지가 않아! 무슨 바람 마법사가 저렇게 냉철해!”
“용사님은 그래도 상처라도 있죠, 저는 그…. 병명이 뭐였죠?”
“대규모 마나 노출로 인한 마나 중독증.”
“예! 아무튼 그거라서 꼼짝없이 숨만 쉬고 있어야 한다고요!”
“누, 누가 교대좀 해주시게. 나는 이런 거짓말 같은 것은 영 적성에 안맞아서….”
“그럼 누가합니까. 오트만이랑 보르카는 나가있고. 나랑 루실라는 환자라 누워있어야하고. 거짓말 못하는 엘프시킬까요? 아니면 저 순진무구한 노툼한테 시킵니까?”
“됐네, 됐어. 내 말을 말아야지.”
아스타라드가 나가고, 꼼짝없이 정신을 잃은 것처럼 누워있던 루실라와 교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펠릭스 홈의 손님용 방.
교수 일행은 [불행히도 대마법의 여파에 휘말려 몹시 다친 손님] 과 [일행을 다치게 한 마법사들에게 매우 분노한 파티원]을 연기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다 같이 벌벌 떨고 있는 시늉을 하고 있었겠지만.
일행이 둘이나 기절한 데다, 예의 그 데몬스폰 소동으로 의도치 않게 시간을 잡아먹은 바람에 교수의 ‘껍데기’를 잿더미로 만들고 돌아오는 마법사들과 딱! 마주쳐 버린 것이다.
“이젠 약재를 받았으니 루실라는 먹고 나았다고 하면 될 게야.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머리칼이 곤두서는 기분이로구먼. 그냥 미친 바람 마법사만 해도 감당이 안 됐는데, 분노한 바람마법사라니…. 보르카 그 친구의 기지 덕분에 살았지.”
“끄으으으- 보통 기절한 사람을 불구덩이에 집어 던지는 걸 ‘기지’라 표현하진 않습니다만.”
“기절한 ‘사람’이 아니니 괜찮네.”
안광이 흉흉하여 날아드는 마법사들을 만난 순간 알드리치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건물 중앙에는 속이 텅 빈 괴물 팔이 남아있고, 대충 봐도 뭔가 여러모로 겪은 듯 기절한 교수와 루실라를 업어가고 있던 일행. 누가 봐도 매우 수상해 보였다.
루실라야 겉보기로는 연약한 귀족 아가씨이니 어떻게 둘러댈 수 있지만, 건장하기에는 비교할 사람이 없게 생긴 교수가 알몸으로 기절해 업혀 가는 것은 당장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전격의 여파로 기절했다고 하면 오히려 ‘밖에 있던 그놈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
다행히, 예리한 감각으로 마법사가 접근하는 것을 미리 알아챈 보르카가 순발력을 발휘한 덕분에 일행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외벽과, 대마법의 여파로 여기저기 스파크가 튀고 있는 건물. 그리고 건물을 가득 채운 편지들.
일행이 마법사와 마주한 복도 근처에도 제법 큰 화재가 일어나고 있었고, 보르카는 그 안에 기절한 교수를 냅다 던져넣은 것이다.
잠깐 넣어서 블루 레어로 구운 수준이긴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연약해져 있던 교수의 피부가 짓무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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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 미안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야겠구려. 그자는, 어쩌다 다쳤지?”
“그건 우리가 물어야 할 말이오! 갑자기 온 사방에 벼락이 치더니, 건물에 불이 치솟으며 불붙은 책장이 우릴 덮쳤소! 파티의 리더가 화재에 휘말렸단 말이오!”
“마, 맞아! 이 연약한 아가씨도 충격에 쓰러졌고, 사방에서 편지가 불타고 있다네! 자네들은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하는가!”
“뭐, 뭣이? 집에 불이 났다고!”
“에이잇, 제자들을 불러라! 우선 불을 꺼야 한다! 계곡에서 찬바람을 끌어와!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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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마법사들을 상대로 한 자해공갈은 성공했고, 일행은 ‘집에 방문했다가 크게 다친 손님’이 되어 쩔쩔매는 마법사들에게 큰소리 떵떵 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몸 좀 일으켜보게. 등 쪽에 약을 발라줄 테니.”
“으으으으, 쓰라려…. 믿을 수가 없네요. 그 진중한 늑대인간이,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기절한 사람을 불에 처넣는다는 선택을 하다니.”
“사람은 위기를 통해 배우고 학습하는 생물이지. 그간 우리 일행이 위기를 모면한 방법을 생각해보게.”
“으으으음….”
“맞아요. 보르카 탓할 것 없어요. 애초에 자기 팔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무슨 불에 좀 들어갔다고 투덜거린담? 내가 그 꼴을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그거 아니라니까! 그게 얼마나 섬세한 작업이었는 줄-”
“쉬이이! 둘 다 조용! 누가 왔어!”
후다다닥!
알드리치가 알람마법을 감지하자, 막 언성을 높이려던 루실라와 교수는 순식간에 침대로 파고들었다.
“쌔액. 쌔액.”
“으으으…. 아아아아….”
눈 깜짝할 새에 중환자와 가녀린 귀족 아가씨로 돌아간 둘.
날로 일취월장하는 일행의 연기력에 알드리치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아, 자네들이었나.”
“회의가 끝났소.”
“미안하네. 지천으로 깔린 게 마법사들이라 통신마법도 여의치가 않아서….”
벌떡!
“보르카!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음, 건강해 보이는군, 대장. 겉만 살짝 익혔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오. 몸은 좀 괜찮소?”
“너, 익, 으, 아후우….!”
교수는 뭔가 말하려다 꾹 참아넘겼다. 어쨌든 쟤가 기지를 발휘해서 일행을 살려준 것은 맞거든. 욕을 하기엔, 너무 완벽하게 위기를 넘겨줬던 것이다.
교수는 일행의 지능 / 간계 같은 능력치가 어디까지 상승했는지 궁금해하며 보르카가 품에 잔뜩 들고 온 물건들로 시선을 돌렸다. 한눈에 봐도 마력광이 반짝이는 게 범상치 않은 물건 같아 보였다.
“그건 뭐냐?”
“아, 마법사들에게 받은 선물이오. 그…. ‘주인보다 먼저 강도를 발견하고 경고한 착한 견공’이라며, 이제 이 집의 가족으로 대해주겠다고 하더군.”
“끝내주는군. 자존심은 좀 괜찮냐? 이제 풍계 마법사 공인 번견이 되셨는데.”
“음…. 우리 종족은 강자의 불합리함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데 익숙하오. 서열은 중요하지. 음.”
“에라이.”
돌려 말했지만, 마법사들이 벼락 떨구는 것 보고 쫄았다는 말이다. 원래 수인계열 종족이 저런 경향이 있기는 했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면 알아서 꼬리 말고 수그리는 그런 거.
‘좀 모양 빠지기는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로군. 개 취급이지만, 어쨌든 이 집, ‘펠릭스 홈’의 가족으로 대해주겠다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주겠다는 소리니까. 외부인이 마탑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팩션 호감도 끝까지 달성해야 했지? 여기도 마탑 비스무리한 시설이니까, 비슷할 거야 아마. 훌륭한 부수입이로군.’
안 그래도 첫 만남을 무사히 넘긴 덕분에 일행이 전반적으로 이곳 마법사들의 호감을 사고 있었는데, 보르카가 아예 공인 펠릭스 홈의 ‘가족’이 되었으니 적어도 마법사들의 불합리한 변덕에 쫓겨날 일은 없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이쪽은 됐고.
“좋습니다. 일단, 일행의 안전은 확보된 것 같고. 이제 결과를 들어보고 싶은데…. 마법사들이 뭐라고 합디까?”
교수는 [괴수에게 직접 잡혀간 비부르미] 와 [최초 발견자] 신분으로 성난 마법사들의 회의에 참석한 오트만과 보르카에게 물었다.
“그쪽은 걱정할 것 없네. 벌써 출발했거든.”
“출발했다….하면?”
“대노한 마법사들이 위협을 제거하겠다며, 암석지대 사방으로 날아갔다네. 뮤트는 물론 뮤트 비슷한 몬스터까지 씨를 말려버릴 분위기였어. 다친 손님은 집에서 편히 쉬고나 있으라더군. 저희끼리 그 악적을 처단하겠다고.”
“아, 그건 좀 그런데. 혹시 어떻게 끼어들 방법이 없겠습니까? 광명교단 이라던가, 용사라던가 하는 구실로?”
내가 얘들을 어떻게 믿어. 챔버 메이드랑 그 호위 병력이 그냥 잡몹도 아니고. 괜히 지들끼리 갔다가 생산시설 다 차려놓은 곳에 들이받아서 [풍계 마법사형 뮤트]같은거로 다시 태어나면 어쩌려고.
“음…. 이젠 될지도 모르겠군. 마법사들이 제대로 크게 얻어맞고 난 다음부터 좀 이성을 되찾은 느낌이라.”
“다행이네요. 그럼 지금은….”
“쉬어야지. 마법사들이 둥지를 찾을 때까지 쉬면서 회복에 집중하게나.”
“거 반가운 소리군요. 엘프 마을 떠난 뒤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까.”
교수는 오트만의 말을 끝으로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상황이 급변하는 만큼 또 언제 일어나서 차력쑈를 벌여야 할지 모르니까.
‘전장에서는 잘 수 있을 때 자두는 게 최선이지.’
군 시절 몸에 밴 습관 덕분에, 교수는 전신이 쓰라리고 욱신거리는 상황에서도 금세 잠들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법사들이 둥지를 찾을 때까지 깨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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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사각사각.
지이익. 탁.
꾸우욱-
펠릭스 홈 구석. 가우만과 아스트라드의 편지 분류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아스트라드는, 옆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는 시선에 끝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뭐하십니까.”
“구경.”
“환자 아니었습니까?”
짤그락.
“나, 광명교단 성자. 그 정도 상처 회복쯤이야 뭐.”
하아아아.
“그럼 부담스러우니 저쪽에 앉아있기라도 해주십쇼. 일에 방해가 됩니다.”
“오, 땡큐.”
결국 무대응으로 쫓아내는 것을 포기한 아스트라드의 반응에, 교수는 히죽거리며 그의 옆에 앉았다.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과 달리, 하루 반나절을 푹 잔 교수는 여느 때와 같이 새벽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올 무렵 벌떡 일어났다.
‘최근에 대형 사건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습관적으로 눈이 떠졌지만, 회복을 위해서라도 다시 자려고 했는데.
도무지 좀이 쑤셔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GG를 다시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마음 놓고 쉰 적이 거의 없었다. 게임에서 뭐 하나 끝내고 나오면 밖에서 사고가 나 있고, 그거 겨우 처리했나 싶으면 또 감염이니 뭐니 해서 게임에 들어가야 하고.
끝나지 않는 숙제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매번 사건과 사건 사이를 넘나들며 고생만 반년 가까이하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해지는 것이다.
체감상 한참을, 실제로는 1분 30초 가까이 뒤척이던 교수는 결국 지쳐 곯아떨어진 일행들 사이를 빠져나와 홈을 둘러보기로 했다. 간단한 정보수집이나 할 겸, 마법사들이 뭘 하고 있나 구경할 생각이었다.
대충 바람 쐬면서 몸도 좀 풀고, 아침 햇살을 타고 어제처럼 날아든 편지들을 구경한 다음, 어디 갈까 고민하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도착한 곳이 아스트라드와 가우만 마법사가 있는 그 작은 골방이었다.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얽힌 펠릭스 홈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익은 길로 찾아온 모양이다.
그렇게 비좁은 문으로 내려가니 예의 치매 노인은 간데없고 안쪽에 있는 아스트라드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길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가우만 님은 어디 가시고?”
“흉수를 찾겠다고 나가셨습니다.”
“….그 상태로?”
“예. 어차피 말리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셔서. 다른 마법사님이 같이 동행하셨으니 큰일은 없을 겁니다.”
아스트라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산더미 같은 종이 위로 마구 손을 놀리고 있었다. 하루 이틀 해본 일이 아닌 듯 매우 숙련된 모습.
“바람 마법사의 제자들은…. 다 너처럼 이렇게 일하는 거야?”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제자들은 5세~7세에 스승을 만나고, 이곳에 들어올 무렵에는 기껏해야 10살 언저리에 지나지 않으며, 특유의 방랑벽 때문에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습니다.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기엔 능력도, 배울 시간도 부족하지요.”
“그러는 너는?”
“저는 여덟 살에 스승님을 만나 바로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스승님은 이곳에 매우 이례적으로, 8년이나 머무르고 계시고요. 그러다 보니 이곳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익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할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여러 가지 일을 떠맡고 있습니다.”
사각사각사각- 철컹!
촤라라락!
아스트라드는 교수에게 설명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직인을, 다른 손으로는 편지를 쓰며 마법으로 띄워놓은 깃펜 4개를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기계적인 장면을 멍하니 구경하던 교수의 눈에 다른 편지들과 달리 거뭇거뭇한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스트라드는 그 편지를 그의 앞으로 끌어들이더니 다른 작업을 멈추고 펜을 들어 그 옆에 작은 메모지 한 장을 적어넣기 시작했다.
“그건 뭐냐.”
“사과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손상된 편지가 산더미 같은지라. 그리 큰 화재도 아니었고, 조기에 진압됐지만 그래도 겉 부분이나 귀퉁이가 그슬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으니까요. 편지의 수신인에게는 배송 지연을, 발신인에게는 재발송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공지사항 같은 거로군.
“굳이? 이것도 펠릭스 홈에 머무는 대가로 수행해야 하는 일인 거야?”
“규정에는 없습니다. 기타 누락 편지 관리부서의 업무는 수신자의 이름이 잘못 표기되는 바람에, 홈에 도착한 다음 수신인에게 날아가지 못하고 홈을 끝없이 맴도는 편지를 잡아 보관하는 일이 전부이니까요.”
아스트라드가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터질 듯 덜컥거리는 목재 서랍이 가득한 곳으로 몇몇 편지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럼 그건 왜 하고 있는데?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조용히 답하는 아스트라드.
잠자코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 도와줄 것 없냐? 이렇게 가만히 있기도 심심한데.”
어차피 가만히 있기도 힘들고, 마법사들이 둥지를 찾을 때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
‘펠릭스 홈에서 사무에 제일 빠싹하고, 그나마 제정신인 제자급 마법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녀석이랑 친해두면 나쁠 일이야 없겠지. 퀘스트의 메인 배경이 되는 곳이 펠릭스 홈이니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이곳이 어떤 시설인지 알아둬야 할 필요도 있고 말이야.’
무엇보다, 그 무시무시한 낙뢰를 좀 달아오르는 수준으로 막아낸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여기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가. 이제 ‘마법사적 탐구심’이 어떤 의미인지 슬슬 알아가고있는 교수였다.
“그럼…. 서가의 정리 쪽을. 마법사라고 하셨으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호감도 작이나 하자, 싶어서 교수가 꺼낸 말에 아스트라드는 기다렸다는 듯 좀전의 그 터질듯한 서랍들을 가리켰다.
“저거?”
“예. 미리 말하는데, 그냥 열면 휘말리실 겁니다. 8위계 마법사가 만든 공간마법에 휘말렸다간 평생 나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십쇼.”
“그게 무슨….”
쿵! 쿠궁! 쿵쿵쿵쿵쿵쿵-
교수가 질문을 채 마치기도 전에 쭈우욱- 늘어나기 시작하는 아스트라드의 골방과, 그 벽면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덜컥거리는 서랍들.
“어…. 단순 정리 맞지?”
“예. 빈 것을 찾아, 밖에 나다니는 것을 넣을 뿐인 간단한. 마법사는 거짓을 말할수록 그 마법이 약해진다는 것을 아실 테니, 허언을 하진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교수는 그의 시야에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늘어선 복도를 보며 아스트라드를 쳐다보았다.
잠깐이었지만, 무표정한 소년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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