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24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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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만님. 오트만님?”
“음? 아, 자네인가? 아침 댓바람부터 사라지는 바람에 한참 찾았는데. 어디 있었나?”
“아니 뭐, 몸도 뻐근해서 소일거리를 좀….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오트만. 혹시 오래된 마법을 해주 하는 법을 좀 아십니까?”
“해주? 자네 뭐 저주라도 걸렸나?”
“그건 아니고. 이곳에 걸린 마법을 좀 건드려볼 수 없-”
와장창!
“으븝-!”
“이, 입을 조심하게! 저 치들이 들으면 경을 칠 소리를 어디…. 우리 제발 정신 나간 짓거리는 달에 한 번만 하는 걸로 하세! 아니, 주에 한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겠나?”
식당.
몇 층….이라 표현하긴 애매하지만, 반구형 개미굴 같은 펠릭스홈의 2층 언저리에 있는 식당에는 벌써 사람이 제법 북적이고 있었고, 속이 풀릴 때까지 낡은 편지를 마구 쓸어 담던 나는 느지막이 일행의 식사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제발, 좀! 나 제 명에 죽고싶네! 자네에게 벗어날 수 없는 광증이 있는 것은 알지만, 이번에는 할당량을 채웠잖나! 그러니….”
“아이고,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저도 막 해보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아쉬워서 그랬던 겁니다. 놔 봐요, 좀! 안 해! 안 한다니까!”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방법이 없나, 해서 물어봤다가 뒤지게 혼나는 중이었다.
“어휴, 사람을 무슨 전염병 취급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혼자 계십니까?”
오트만은 음식을 한입 가득 넣은 입을 여는 대신 포크로 식당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세 갈래 잔바람 계곡은….”
“이미 놈들을 겪어본 견공의 의견에 따르면 적어도 작은 집 한 채 정도 구조물은….”
“그럼 평소와 다른 갈래가 없는 높새 삼각바람 분지와 휘파람 언덕은 제외하고….”
제자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대충 입에 쑤셔 넣으며 열띤 토의를 벌이고 있는 마법사들. 보아하니 먼저 복귀한 이들이 밖에 나가 있는 마법사들이 모아온 정보를 종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사들이 저마다 확인한 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제자급 마법사 하나가 돌멩이와 먼지 따위를 띄워 올리며 그럴싸한 수색도를 만들고 있었다.
“하루 만에 제법 진척이 된 것 같네요.”
“제법이 아니라 이 근방은 다 확인했네. 들어보니 소규모 접전이 있었던 무리도 있었고. 풍계 마법사들이 또 할 때는 하는 친구들이 아닌가. 평생 사고치고 쫓겨 다니길 반복하던 이들이니 실전 수행능력도 보통 수준은 넘고 말이야.”
“보자…. 저 하얀 그릇이 홈을 표현한 것 같고. 뾰족한 돌 세 개 높이 띄워놓은 게 저기 창밖에 보이는 삼각봉 세 개라고 치면…. 어우, 빠르긴 하네요.”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하나. 참고점만 따져서 대충 계산해도 하루만에 반경 40km에 가까운 범위를 수색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거의 군용 헬기 수십 대에 측정 장비를 실어서 수색한 수준.
심지어 같은 공중 시야라도 바람 마법사는 그 지역의 바람을 자신의 감각으로 직접 느껴서 확인한다. 시선을 가리는 어떤 수단을 썼다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어들었다 해도 거기에 있기만 하면 그 지역에 부는 바람을 가르게 되니 곧바로 걸리는 것이다.
속도도 빠르고, 범위도 넓은데 한번 지나간 지역은 물리, 마법적으로 100% 수색 완료라니. 능력 하나는 확실한 사람들이다.
“보르카는 저 사이에서 뭐한답니까?”
“지면에 구조적 변형이 있는 곳이 있어서 좀 있다 같이 나가본다고 하더군. 땅 속에 파고들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늑대인간의 후각을 빌리고 싶다나.”
“제가 놀고 있는 동안 다들 열심히 찾고 있었나 보네요.”
“아, 저렇게 같이 움직이는 건 보르카 밖에 없다네. 어디까지나 손님과 홈의 주민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를 나누더군. 손님인 우리를 다치게 한 것만으로도 죄스러운데 일까지 시켰다간 나중에 펠릭스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말이야. 루실라와 이드라실은 근처 구경하러 나갔고, 노툼은 알드리치에게 약초와 연금술을 배운다고 하더군. 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준다면서 말이야.”
그나마 다행이다. 보아하니 수색 작전에 쉽게 끼워줄 것 같지 않았는데, 적어도 한 명은 저들 안에 박아뒀으니. 나중에 밥 먹고 가서 얘기나 좀 해둬야겠다. 수색까진 그렇다 쳐도, 둥지를 발견하면 우리도 좀 끼워달라고.
내가 계속 쳐다보는 것을 봤는지 보르카가 눈짓으로 알은 채 하는 게 보였다. 나중에 갔다 오면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봐야겠군.
“그럼…. 당장 제가 할 일은 없는 겁니까?”
“있어도 저들이 막아설 거야. 나도 수맥이 흐트러진 곳이 있나 좀 보겠다고 했더니 가서 밥이나 먹으라고 난리를 피우더군.”
“쩝. 어쩔 수 없죠, 뭐. 둥지 찾으면 그때 가서 얘기해봐야지. 뭐 드십니까? 가뜩이나 말라붙은 이곳에서 오트만님이 드실 만한 걸 찾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나도 그리 생각했네만, 풍계 마법사들이 손님 대접을 진지하게 생각하긴 하더군. 구름 대하(大蝦)와 익사체 풀 간 것이라네. 이 바위 계곡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식사를 할 줄이야.”
“오. 괜찮아 보이는데요.”
“훌륭하더군. 구름 대하는 바다에 살다가 번식기가 되면 껍질 아래 공기주머니를 부풀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생물이지. 지금 시기에 이 근처 습한 구름 사이로 날아다니다 보면 거추장스럽게 부딪힐 정도로 많이 있다고 하더군. 익사체 풀은 지하수층에 서식하다 비가 오면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민물 수초의 일종일세. 둘 다 나 같은 마법사의 허용범위 내에 있는 재료지.”
익숙한 설명이다 했더니, 다나가 보내준 자료 중 ‘제국 특산물 목록’의 윗부분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재료였다.
커다란 공기주머니를 양쪽에 안고 있는 새우와 ‘비바라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수초라.
“그거 더 없습니까?”
“달라면 줄걸세. 이보게! 여기 식사 한 자리만 더 주게나! 나랑 같은 것으로!”
교수는 복잡한 속내는 잠시 접어두고 출출한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너무 팽팽하기만 하면 끊어진다고들 하니까. 의식적으로 멘탈 관리를 좀 해둘 필요도 있겠지.’
다나도 그랬고, 하이드도 그랬고.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니까.
할 일이 없으면 쉬면 되는 것이다.
“우음, 음! 이거 괜찮네요. 입에서 녹는데? 떠나기 전에 좀 많이 챙겨달라고 해도 되겠죠?”
“마음대로 하시게. 그나저나, 아까 그건 왜 물어봤나? 외벽의 고리 두어 개 박살 낸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가?”
“그건 아니고. 아스트라드한테 들었는데 펠릭스 홈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마법적 오류? 설계 미스? 그런 것 때문에.”
“음? 그거 자세히 좀 들어보고 싶구먼. 이 강대한 마법 구조물이 사라져?”
“그게….”
교수는 제자급 마법사들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으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오트만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부슬부슬한 새우와 녹진한 풀은 혀가 녹을 정도로 맛있었고, 오래된 마법과 마법 유물에 얽힌 이야기는 두 마법사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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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그냥 태워버리면 안 돼요?”
배불리 밥도 먹고, 느긋하게 차도 한잔하면서 낙뢰에 녹아내린 바깥 계곡도 감상하고, 열다섯 살짜리 마법사한테 무시당했다고 툴툴거리다 오히려 오트만한테 더 혼나기도 하고.
그렇게 한껏 여유를 즐기며 게스트 룸으로 돌아와 보니 산책을 나갔던 루실라와 이드라실이 돌아와 있었다.
방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벽난로에 커다란 무쇠솥을 걸어놓고 팔팔 끓이고 있는 노툼과 알드리치까지 있으니 수색을 나간 보르카를 빼고 일행이 전부 모여있는 셈.
낙뢰에 녹아내린 계곡에 대해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루실라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더니, 그게 뭐 어려울 일이냐는 듯한 대답이 나왔다.
“그렇잖아요? 아니, 죽은 대마법사가 편지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는데 집착한 것은 알겠는데, 이미 죽은 사람 아니에요? 당장 마법의 주체가 휘청이는 판에 그 정도 유도리 정도는 발휘할 수 있지 않나?”
“죽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거란다. 편지 하나하나에 부여된 마력량은 미약해도 [대마법사의 마법]에 걸린 편지이니 말이다. 다른 수단으로 그것에 걸린 마법을 파괴하려 하면 마법의 주체가 되는 이 건물이 반응하겠지.”
“여기 오기 전에 들렀던 여관에서도 그랬잖아. 내가 홈으로 날아드는 편지 하나를 낚아채려 했더니 미쳤느냐면서, 마법사들이 벌떼처럼 날아들어서 이곳을 박살 내버릴 거라고. 대마법사의 마법이 어떤 식으로든 가로막히면 그 반발이 이곳 펠릭스 홈에 돌아온다는 뜻이지.”
마침 식당에서 막 돌아온 그의 스승을 부축하던 아스트라드를 만나서 물어봤는데, 이곳 마법사들도 온갖 수단을 다 써봤지만, 편지를 폐기하기 위해 마법을 파훼하는 것이 오히려 이곳의 수명을 더 크게 갉아먹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사실이 발견된 당시 충격으로 펠릭스 홈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한 마법사가 20명 정도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사망한 노마법사도 두 명이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썼다고 봐도 될 것이다.
“….잊어버려. 그냥 아쉬워서 한 소리니까. 우리가 계속 여기 붙어있을 수도 없고.”
“누군들 아쉽지 않겠나. 음…. 시간이 있으니 다음에 한번 재방문하는 것으로 하지.”
“다음에요?”
“그래. 저 끔찍한 뮤트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다시 평화가 찾아올 때쯤에 말이야. 펠릭스 홈에 남은 시간이 그리 촉박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럽시다. 이게 다 끝나면. 세상이 좀 평화로워지면. 그렇게 되면 우리가 왔던 길을 한번 되짚어 가보자구요. 바빠서 구경 못 했던 데도 가보고. 못 먹어본 것도 먹고. 아쉬웠던 것도 천천히, 시간 들여서 해결해보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의 일도 해결되고. 현실에서의 일도 다 해결되고, 정말 순수하게 이 세계를 사랑하는 플레이어로서 이곳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난 빼주게. 뜻은 고맙네만, 여길 다시 오고 싶진 않으니.”
“음…. 생각해보니 교수 저 친구와 더 붙어 다니는 것은 나도 좀….”
피식.
“거 사람 섭섭하게.”
교수는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내던 미래를 지워버리고, 침대에 기대 눈을 감았다.
장작 타오르는 소리와 솥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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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콰앙!
“성직자! 혹시 손님들 중 성직자가 있습니까!”
간만에 찾아온 여유와 나른함을 즐기던 중, 소리 없이 날아온 마법사 한 명이 일행이 있는 손님방으로 들이닥쳤다.
“으으음…. 깜빡 졸았나. 성직자라….”
“저희 중에 성직자는…. 아,”
“아, 있었구먼.”
스윽-
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손을 들자, 안절부절못하던 마법사가 즉시 날아와 내 손을 붙잡았다.
“빨리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색 나가신 스승님들 중, 크게 다치신 분이-”
벌떡!
교수는 마법사의 말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쳤다. 저 강력한 마법사가, 심지어 공중에 날아다니는 바람 마법사가 일반 몬스터 따위에게 당했을 리는 없으니. 저렇게 급하게 달려와 알릴 정도의 부상이라면….
“찾은 겁니까?”
“예. 보르카님께서도 확인해주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땅속에 숨어있더군요. 그분이 돌아가서 소식을 알리고 철저히 준비를 끝낸 다음에 습격해야 한다고 그렇게 만류하셨는데, 끝내 분기를 이기지 못한 스승님 몇 분이 달려들었다가….”
와락!
교수는 쩔쩔매는 마법사의 말을 끊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둥지는 어떻게 됐지?”
“이, 일단 광역 마법을 퍼부어 몰려드는 몬스터를 최대한 사살한 다음 물러났습니다. 부상자를 안전하게 복귀시키는 게 우선이라 하여….”
“몬스터 말고! 내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나? 다른 찌끄레기 말고 둥지! 챔버 메이드 어떻게 됐냐고!”
“어…. 땅속에 묻혀있어서, 아마…. 거기까지는….”
“….멍청한 새끼들이 진짜!”
망했다. 방심한 둥지를 기습해 챔버 메이드의 목을 딸 기회는 날렸다 쳐도, 걸렸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근에 있는 뮤트의 씨를 말려서 우리 쪽에서 그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어야 했는데. 아니, 다 살려둬도 좋으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챔버 메이드의 목은 날렸어야 했는데.
이제 습격을 받은 둥지는 방어 병력을 양산하는데 박차를 가할 것이고, 일부는 인근 다른 둥지에게 이 소식을 알려 그쪽도 대비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뮤트 쪽에는 ‘그놈’이 있으니까. 어쩌면 바람 마법사가 둥지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소식이 이미 인근 뮤트 전부에게 퍼졌을 수도 있지.‘
이렇게 될까 봐 아까 밥 먹고 미리 그쪽한테 가서 얘기도 해뒀고, 혹시나 해서 보르카한테도 충분히 얘기해 뒀건만.
상황을 들어보니 보르카도 나름 분투했고, 바람 마법사들도 말렸는데 기어코 말을 들어먹지 않는 병신들이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화력 특수부대라니. 최악이로군.’
끝내 바람 마법사의 이름 갚을 하려는지 충동을 참지 못한 이들이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갑시다. 일단 부상자부터 좀 봐야겠으니.”
“아, 예! 이, 이쪽으로!”
짧았던 휴식은 끝났다. 교수는, 앞서 날아가는 마법사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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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탁!
은은한 조명 사이로 발소리와 받은 숨소리만 가득하길 잠시.
저 멀리서 신음과 날카로운 고성이 오가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게브릭, 게브릭! 정신을 놓아선 안 돼!”
“뽀, 뽑아줘, 이 빌어먹을 것을 빨리 뽑아줘!!!”
“미풍의 축복이 그대의 몸에 깃들기를! 펠릭스 드릭시엘의 [재생의 바람!]”
콰앙!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둥지를 마구잡이로 건드려선 안 된다고.”
“….애초에 그렇게 잘 알면 미리 말해줬어야 할 게 아닌가! 저렇게 마구잡이로 가시를 뿜어내는 생물이 있다고는….”
“크르르륵! 수십 번도 넘게, 목이 터져라 얘기했을 텐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변수와 위험’이 산재해 있을 거라고!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자가 누구요! 당신 덕분에 게브릭 마법사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 아니오!”
“나는, 나는 그저….!”
‘개판이군.’
너무나도 익숙한, 딱 전장의 라인 뒤편에서 느낄 수 있는 혼란이다.
뒤쪽으로 후송된 부상자들의 악다구니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소리. 책임을 추궁하는 고함과 거기에 맞서는 음성.
보자마자 짜증이 확 치솟을 정도로 불쾌하고 낯익은 모습이지만,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모, 모셔왔습니다! 손님들 중 성직자가 있었습-억!”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마법사를 밀어내고 신음하는 마법사의 옆으로 다가갔다.
“으크윽, 크아아악!”
녹색 바람줄기에 휘감겨 침대에 구속되어있는 마법사. 출혈은 별로 없었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그는 목이 쉬다 못해 피가 배어 나오도록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곳 마법사치곤 젊군.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주요 부상은 복부에 박힌 황갈색 가시. 상처 부위는 직경 7~8mm정도로 그리 크진 않지만, 자리가 안 좋다. 간이나 신장에 박혔을 수도 있겠어.’
전투를 하도 많이 겪다 보니 어느 정도 부상자를 대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사실 일반적인 상처였다면 그가 이렇게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옆에서 치유계열 바람주문을 몇 겹으로 퍼붓고 있었으니까.
“….잘 하는 짓입니다. 전날 다 같이 그런 대마법을 쓰고, 마력이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로 마구 쏘다니다가 전투까지 벌이다니.”
“….변명은 하지 않겠네. 소개가 늦었군. 폭풍의 언덕에서 두 번째로 깊은 바람, 질풍의 갈류드라고 하네. 손님은…. 성직자라고 했나?”
“교수. 비슷한 겁니다.”
자신을 책임자라 소개한 노인은 교수에게 익숙한 마법사였다.
어제 건물 꼭대기에서 봤던, 구멍 여섯 개짜리 지팡이를 휘두르며 날 죽이겠다고 안광을 뿜어내던 그 무시무시한 노인이 지금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내게 도움을 간구하고 있었다.
“복부의 이건…. 출혈 때문에 뽑지 않은 겁니까?”
“아니, 그 정도라면 우리끼리도 진작에 해결했겠지. 저 가시가 몸에 파고들어 버렸어.”
“….파고들었다면?”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는다네. 몸에 닿은 모든 면적에 뿌리를 내려버렸어. 저대로 뽑으면 복부를 주먹 두세 개 만큼 뜯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네. 내장까지 같이 딸려 나오겠지.”
교수는 눈을 돌려 마법사의 배에 박힌 가시를 살폈다. 체액이 굳은 것 답지 않게 매끈한 형태. 물리적 공격에 그치지 않고 작은 상처로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공격.
‘….확실히 공격 방식이 치명적으로 진화했군. 지난 몇 달간 로드릭의 최종 방어선을 공략하며 배운 것이겠지.’
환부를 자세히 살펴보니 황갈색 잔뿌리 같은 것이 피부와 모세혈관을 파고든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잔뿌리 주변으로 염증 같은 감염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감염이라. 그럼 뮤트의 피를 기반으로 한 투사체라는 소리군.’
천만다행이다. 이 정도라면 신성력은 하나도 없지만, 대(對) 뮤트전에 있어 특화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상이었으니까.
아득!
손끝을 살짝 물어서 낸 피를 복부에 박힌 가시 위로 떨어트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시가 부글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손끝을 대자 평범한 뮤트의 피처럼 내게 흡수되며 작은 활력을 선사했다.
“꺼어어어…. 으으으으….”
한결 편안해진 환자의 신음 사이로 뻥 뚫린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대를 적시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이제 치유 마법이 통할 겁니다. 놈들에게서 비롯한 것을 제거했으니.”
“이번 손님들에게는…. 정말 몇 번이고 은혜를 입는군. 고맙네. 어…. 성직자.”
“교수. 광명 교단의 성자, 교수입니다.”
교수는 ‘성자’라는 직책과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며 창 밖으로 하나둘 복귀하기 시작하는 마법사들을 둘러보았다.
‘이대로는 안 돼. 이 마법사들을 그냥 뒀다간 진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탑의 골방에 자리 잡던 챔버 메이드는 굴을 파고 내려가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둥지를 틀게 되었고, 뮤트는 전투 중 흩날리는 피로 전염되던 뮤트인자를 아예 침투형 투사체로 만들어 쏘아내기 시작했다.
사고하며, 성장하는 적. 이렇게 몇 번 더 무작정 달려들었다간 또 다른 대비책을 세워올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이쪽은 내 지휘는커녕 자기네 제일 높은 마법사의 말도 들어 처먹지 않는 매직 바바리안이나 다름없는 머저리새끼들.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화력 하나는 확실한 아군. 이들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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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긴. 잘 써먹어야지.’
오늘따라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다.
기실 특작대 시절, 14특작대를 제외한 모든 아군이 잠정적 위협에 가까운 이름만 아군인 이들이었으니.
교수는 이런 상황에조차 익숙한 그의 인생에 한탄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전투가 가능한 마법사가 몇이나 있습니까.”
“나는 물론이고, 절반 정도는 충분히 전투를 수행할 수 있네만…. 설마 지금 바로 되갚아주겠다는 건가?”
“예.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군요. 제가 성직에 임하는 자로서 악신의 주구에 대해서 조금 아는데, 둥지는 위협을 받으면 도주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도주라….”
씰룩.
교수의 말에 노마법사의 눈이 스산하게 변했다.
“게브릭은…. 바보 같이 착한 친구였지. 다들 귀찮아하는 집의 청소도 도맡아 하고, 배려심 넘치고, 가족을 사랑하고…. 사랑하다 못해 저 머저리가 벌집이 될 뻔했을때도, 앞으로 나서다 저렇게 될 정도로 말이야….”
씰룩. 씰룩씰룩.
노마법사의 눈이 피와 식은 땀에 젖어 축 늘어진 마법사를 향했다.
“그런 선하디 선한 친구를…. 홈의 가족을 저 꼴로 만들어놓고, 도망간다고? 이 폭풍의 언덕 앞에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럴 수는 없어. 세상에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꾸우우욱-
빠드득! 빠드드득!
한껏 일그러지는 미간. 다시 펄럭이기 시작하는 로브.
그리고,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보르카가 놀란 눈으로 돌아볼 정도로, 섬뜩하게 이빨을 가는 소리.
눈앞에 있던 마법사는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던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날아가 때려잡고 싶지만, 눈앞의 마법사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어찌할 줄 몰라 한 것뿐.
슬쩍 내뱉은 말 한마디로 다시 예의 그 초사이언으로 돌아온 마법사를 보며 교수는 조용히 웃었다.
‘통제할 수 없는 아군은 통제 안 하면 되지. 저들은 아군이 아니라 전장의 일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챔버 메이드의 둥지가 목표물이라면, 저들은 그 목표물 위로 지나가는 기관차 같은 것이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그들의 충동에 따라 달려들 뿐인 폭주 기관차. 아군이 아니라 적이 아닌 제 3 세력으로 간주하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해진다.
‘제 3세력이 적을 완전히 분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전투 방면의 지원은 어렵다. 내가 괴물 형태로 변하면 대번에 테러범이 나인 게 들통이 나니까.
다행히, 뮤트를 대상으로 한 전투라면 내가 굳이 전투에 끼어들지 않아도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이 많았다.
점차 불이 붙고 있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일행을 빼낸 교수는 그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우린 먼저 빠져나갑니다. 루실라, 너는 여기 남아.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여, 여기서 제가요?”
“그래. 나머지는 지금 당장 출발합니다. 마법사들이 통제 불능이긴 해도 아예 멍청이는 아니니 최소한 다른 정찰 나간 마법사들이 모일 때까지는 기다렸다가 출발하겠죠. 적어도 저들보다 먼저 둥지가 있는 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보르카, 위치는 기억하고 있지?”
“당연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좋아. 움직인다. 미리 말하지만, 절대로 교전은 피한다. 마무리는 마법사들이 할 거야. 우린 저들이 마무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할 거고. 확인?”
“….확인.”
“출발해. 이드라실과 보르카부터. 오트만과 알드리치는 평소처럼 업히시고.”
타닥!
우우우우우- 후우우우우우-
분노한 마법사들이 자아내는 스산한 바람이 폭풍의 언덕에 음산한 울음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바위 계곡의 어둠은 여섯 일행을 소리 없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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