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25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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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좀 가주게! 우린 자네나 보르카처럼 튼튼한 사람들이….”
“마법이라도 써서 버텨봐요! 마법사들 오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달이 뜨는 방향. 귀환하는 마법사 다섯 명입니다.”
촤아아악!
반쯤 괴수 형태로 변해서 계곡을 넘나들던 교수는 이드라실의 말에 재빨리 바위 뒤로 숨었다.
수색을 마치고 귀환하는 마법사들의 눈에 걸려서 좋을 게 없었다. 지금부터 그들은 경계태세에 들어간 둥지에 여러 가지 수작을 부릴 참이었고, 당연히 이동 및 교전 중에 괴수 폼이 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그 지랄을 해놓은 ‘붉은 뮤트’가 손님 일행과 사이좋게 움직이는 게 마법사들의 눈에 띄는 순간 저 매직 바바리안들의 목표가 바로 우리 쪽으로 돌아설 게 뻔했으니까.
“….귀환하는 빈도가 줄고 있군.”
“희미하게 편지 몇 장이 날아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아마 홈에 남아있던 마법사들이 멀리까지 수색 나간 마법사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겠지요.”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겠어. 보르카, 아직 많이 남았냐?”
“거의 다 왔소. 저 암반 너머 흔들바위 아래 계곡이오.”
“5km 정도인가. 서두르자. 그 6위계 영감님, 인내심이 그리 깊어 보이진 않았으니까.”
풍계 마법사들은 지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날아다니니 일행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는 이동하면서 번 여유 시간과 작전 수행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며, 다급한 마음으로 발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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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소. 이 아래쪽이오.”
“말 안 해도 알겠다. 뮤트 냄새가 진동하는군.”
달빛이 희미하게 비쳐드는 좁은 계곡은 누가 봐도 큰 전투를 치른 것처럼 보였다.
수천 개의 거대한 칼날에 난자당한 것처럼 곳곳에 베인 자국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그을린 흔적과 녹아내린 바위가 섞여 있는 계곡.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는 기습을 당해서 지연용 마법을 난사하며 도망친 줄 알았는데, 흔적의 규모를 보아하니 제법 진득한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다.
달빛 사이로 늑대인간의 노란 눈이 반짝이더니, 소리 없이 다가온 보르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뮤트 냄새는 분명히 있소만, 대장의 예상과 달리 특별히 방어병력을 더 생산한 것 같지는 않소. 일말의 움직임도 없군.”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달빛 속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계곡은 조용하기만 했지만, 당장 뮤트의 피를 내놓으라고 성화를 내며 욱신거리는 그의 몸과 후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름 시력에 자신이 있지만, 밤 시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늑대인간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그런 늑대인간이 못 봤으면 내 눈으로도 못 찾는 거지.’
교수는 계곡을 살피는 대신 눈을 감아버렸다.
얕은 바람 소리와 일행의 낮은 숨소리만 들리는 한밤의 바위 계곡.
교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예의 욱씬거리는 감각에 더욱 집중했다. 안에서 몸을 밀어내듯, 당장 몸을 키워 날뛰라고 속삭이는 감각.
그 성난 충동에도 교수가 움직일 생각이 없자 감각은 더욱 날뛰며 당장 눈앞에 있는 먹이를 향해 뻗어 나갔다.
….툭. ….툭. ….툭.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 교수를 이끌고 있었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듯 알 수 없는 감각. 들이쉬는 숨으로도, 혀끝에 닿는 공기로도 선연하게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
감은 눈 위로 그려지듯 나타나는 새빨간 덩어리들에 교수는 저도 모르게 흐르는 침을 닦아야 했다.
“츠읍. 어우, 되게 많네. 더 가까이 가지 않길 잘했다.”
“찾았소?”
“응. 잘 숨었더라고.”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군. 어디있소?”
“네가 보고 있는 거기에 잔뜩. 기다려봐. 금방 보여줄게. 오트만, 준비되셨습니까?”
“30초, 아니 20초만 더 주게. 미리 뿌려둔 비가 있어서 지하수는 충분한데, 내가 끌어오던 물이 자네 속도를 따라가질 못해서 아직 모아둔 지하수의 절반 정도밖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2리터만 빌려 갈게요?”
“니가 모아서 써 이놈아!”
“흐흐흐. 저 괴수폼 했다가 흔적 남으면 난리 나는 거 알잖아요. 이번에는 저도 마법사로만 일해야 하니. 마나 쓸 데가 많아서 그러니 이해 좀 해주시죠.”
출렁!
바닥에 손바닥을 짚자 저 아래에서 오트만의 친숙한 마나가 담긴 물이 느껴졌다. 교수는 그것을 살살 끌어온 다음, 조심스럽게 계곡 표면에 흘려보냈다. 물은 바싹 마른 계곡과 바위 조각 몇 개를 적시고 금세 땅으로 스며들었다.
말없이 젖은 바위를 가리키는 교수의 손가락에 따라 일행이 지켜보기를 잠시.
파르륵!
그때, 바위인 줄만 알았던 것이 들썩이더니, 그 아래로 가느다란 다리 여덟 개가 나와 허둥지둥 젖은 땅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요?”
“뮤트인 것 빼고는 나도 몰라. 하지만 저런 게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지.”
교수는 곳곳에 빼곡하게 느껴지는 뮤트의 심장 고동을 느끼며 히죽거렸다.
“계곡이 뒤집어질 정도로 마법을 퍼부었는데 둥지가 건재하다는 것은 마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바위 계곡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얘기고. 뮤트 생산 말고는 환경 적응 정도의 능력만 가진 챔버 메이드가 그 정도 굴착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 땅 파는 종류의 능력을 가진 뮤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바위를 짊어진 뮤트가 아무리 벗어나려 애써도 마법으로 조종받는 물은 끊임없이 바위를 따라다니며 적셨고, 마침내 포기했는지 여덟 개의 다리가 안으로 오므라들더니, 다리 달린 바위가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쿵.
속이 텅 빈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나타난 것은, 게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소라게 같군.’
등껍질 역할을 하던 바위를 벗어던진 그것은 허둥지둥 달아나더니, 윈드 커터에 베인 바위 사이로 몸을 욱여넣고 그 위로 모래를 덮기 시작했다.
“저런 식으로 숨겨두었군…. 우리 종족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라니.”
“움직이지 않을 때는 거의 무생물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저런 행동도 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근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어진 놈들의 본능에 따른 행동이겠지. 말라붙은 계곡에 딱 하나 젖은 바위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우니까.”
교수의 감각에 느껴지는 개체만 수백 마리를 웃돌았다. 아마 이 계곡에 굴러다니는 바위가 전부 다 저런 형태의 뮤트라고 봐도 좋은 수준.
저 소라게 같은 뮤트의 다리 끝부분이 눈에 익은 것을 보니 아마 마법사를 저격한 뮤트도 저놈들인 것 같았다.
‘단순히 개인 능력에 치중한 뮤트가 아니라, 환경 적응형 맞춤 뮤트를 생산할 정도로 진화했다는 뜻이겠지. 바위 계곡에 가장 적합한 능력에, 바위를 통째로 엄폐물로 쓰는 것도 바람 칼날이나 전격을 사용하는 풍계 마법사를 상대하기 좋으니까.’
마법사들이 말하길 열기구를 띄우지 못하는 이유는 비행형 뮤트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근처에서 감지되는 것은 모두 저 소라게형 뮤트뿐.
‘….소형 둥지로군. 좀 아쉬운데.’
챔버 메이드는 그 둥지의 크기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뮤트의 가짓수가 나뉜다. 보통 소형은 딱 한 종류만 생산하며, 중형은 2~3종류의 개체를, 마을 단위 크기로 뿌리내린 대형 둥지는 6~7종류의 뮤트를 생산할 수 있다.
챔버 메이드에게는 여왕과 같이 상황에 따라 다른 개체를 생산하는 능력이 없으니,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둥지는 이 소라게 뮤트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둥지라는 얘기.
달리 말하면, 열기구를 방해하는 조류형 뮤트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둥지가 이 바위 계곡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얘기였다.
‘기왕이면 한 번에 다 잡고 싶은데…. 이쪽에 좀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조성하면 조류형 뮤트 쪽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을까? 그걸 따라가면 다른 둥지도 찾을 수….’
찰팍!
[이드라실입니다. 출발한 마법사들이 막 세 봉우리 바위를 지났습니다.]“쩝. 안 되겠군.”
잠시 욕심을 부려볼까 생각하던 교수는 이드라실의 메시지에 마음을 접었다. 어떻게 하면 될 것 같기도 했지만, 마법사들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니까.
“자자, 바람 열차와 랑데부까지 3분, 3분 남았습니다. 각자 자기 맡은 일 시작해 주시고~”
“으으음. 나름 마법사들을 패퇴시킨 적인데, 우리가 이 정도만 거들어도 될는지….”
오트만이 겨우 이정도만 해도 되겠냐는 듯 의문을 표하며 지금이라도 역류폭포 라던가 한줌의 강물 같은 대규모 주문을 준비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교수는 단호히 거절했다.
“어허! 원래 공병대 작업이라는 게 좀 사소해 보이지만, 그거야말로 작전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일입니다. 막 자르고 터트리고 때려 부수는 것만이 전투가 아니거든요. 오면서 얘기했던 대로 오트만과 노툼이 둥지 공략조, 나머지는 퇴각 준비만 하면 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공병대 작업이랑은 좀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작업을 통해 아군 화력투사의 능률을 올리는 쪽 일이니까 대충 비슷하겠지 뭐.
“크흠. 이보게 교수, 나도 오트만과 비슷한 의견이내만…. 내가 진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나?”
“예? 알드리치님 뭐…. 심심해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요즘들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낮이라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밤에 일하면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좀….”
뭔가 했더니, 밤 시간 한정 강캐의 자존심이 좀 상처받았다는 말이었다. 하긴, 다들 열심히 움직이는데 ‘미안하네, 아직 해가 떠있어서….’ 하는것도 좀 마음에 남았겠지.
물론 알드리치가 할 일이 없는것은 아니다. 알드리치의 영혼술이면 저기 바글거리는 뮤트들에게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는 이런데 힘을 낭비해서는 안됐다. 어차피 화력은 저기 폭주 기관차 친구들만 해도 차고 넘친다고.
“알드리치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남겨둔 겁니다. 일종의 예비조라고 할까?
“예비조? 무엇에 대한?”
“어….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대한 예비조요. 전에 처음 챔버 메이드 잡을 때, 기억하시죠?”
“기억하지. 호위병들이 벌 때처럼 기어나와서는….”
“그런 잡 뮤트 말고. 둥지 건드리면 꼭 찾아올 놈이 있어서. 저흰 여차하면 그놈 잡으려고 기다리는 겁니다.”
퍽 퍽.
“노툼. 풀 다 찾았다. 물마법사 시작 안 하면 못한다. 걸리적거리는 거 좋지 않다.”
“알았네, 알았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바로 시작하지.”
교수가 알드리치에게 그 ‘예비’임무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노툼의 채근에 오트만은 먼저 손을 움직였다.
뚝- 따각! 톡!
“그것은 하늘에 흐르는 강이라. [스팀].”
간결한 주문에 대충 맺은 수인만으로도 발동되는 1 위계 수계 마법, 스팀.
푸쉬이익-
치이익-
오트만의 인도에 따라 지표면 아래 머물고 있던 물은 증기가 되어 계곡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깍- 까가각!”
“까각? 탁탁탁탁!”
“까가가각! 따닥, 깍!”
증기는 금세 작은 계곡을 가득 채우며 계곡과 바위, 뮤트 할 것 없이 모두 촉촉하게 젖어들게 하였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소스라치게 놀란 바위 소라게들은 신경질적인 마찰음을 내며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다르게 몸이 젖어도 바위 등딱지를 벗어던지지 않는 모습. 아마 계곡 전체가 젖었으니 딱히 젖은 바위를 지고 있어도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등에 짊어진 바위까지 벗어버렸으면 베스트였겠지만, 이미 충분히 젖었으니까 상관없겠지.’
계곡에 잔뜩 맺힌 물방울들이 모여 계곡 사이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본 뮤트들은 허겁지겁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바위가 계곡의 벽면을 기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대충 봐서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처럼 보이는 계곡 바닥의 좁은 틈과, 그 위에 납작 엎드려 물을 막아내는 소라게 뮤트들.
바보라도 저곳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하녀’가 저기 있나 보는군?”
“예. 암반 지형에 땅을 파고 숨어들었으니 비가 오면 물이 고이겠지요. 땅 파면서 배수로까지 생각할 정도면 그건 그냥 뮤트가 아니라 네임드 아니겠습니까? 챔버 메이드가 익사할 수 있는 종류의 생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능이 없는 뮤트들은 여왕과 챔버 메이드를 최우선적으로 방어하게 설계되어있으니까. 이상이 생기면 당연히 호위대상 쪽으로 몰려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크고 작은 바위 수백 개가 저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좀 징그럽구만.”
“뮤트가 귀여우면 사상검증부터 받아봐야죠.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마법사들은 어디쯤 왔으려나….”
“저기 오는군.”
“음? 벌써 보여?”
“장님도 볼 수 있을 정도요.”
이드라실의 관측시간과 거리, 이동속도를 계산하던 교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쿠르릉. 쿠르르릉.
단단히 화가 난 채로, 수색 나갔던 인원까지 모두 끌어모아서 다시 출발한 풍계 마법사들.
어둑한 밤하늘에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끌고 온 뇌운은 선명하게 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먹히겠지.’
원래 바람계열 마법은 물리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땅을 파고든 둥지와, 마찬가지로 반쯤 땅에 파고들어 바위 껍데기를 들고 가시를 발사해대는 이곳 뮤트들과는 영 상성이 좋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온 계곡을 전기가 아-주 잘 통하게 흠뻑 적셔놨으며, 혹시나 한 마리라도 놓칠까 둥지가 있는 곳에 꽉꽉 뭉쳐뒀다.
파직. 파지직.
계곡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마법사들은 멈췄다. 아예 뮤트쪽 투사체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고도에서 일방적으로 패버리겠다는 전략. 좋은 생각이다.
멀찍이 떨어진 뇌운에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하고, 뮤트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결 더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하며 놈들의 공격수단인 발끝이 마법사들을 향하는 대신 바닥을 향하기 시작했다. 젖은 바위가 파헤쳐지며 짙은 수증기 속에서도 먼지가 일어날 만큼 빠르게 땅을 파고드는 뮤트들.
콰가가각! 콰각!
순식간에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니 둥지가 뿌리내린 땅을 통째로 깎아서 더 깊숙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모양이었지만.
교수는 여전히 여유 있었다.
‘요즘 하나같이 내가 알던 플레이에서 벗어난 움직임만 보여줬는데, 그나마 이건 좀 알던 대로 움직여주는군.’
지금이 시기로 따지면 아직 3월드 중반부이지만 갑자기 지능이 떡상한 뮤트 때문에 시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게 됐다.
메인 시나리오 끝자락쯤에는 아예 초대형 땅굴벌레가 둥지를 뱃속에 넣어 다니며 수시로 옮겨 다니기도 했으니까. 지금 뮤트가 진화하는 속도를 보면 전투력은 둘째 치고서라도 그런 응용력 정도는 충분히 갖추고 있다 봐도 좋았기 때문에, 저런 도주 패턴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그래서 노툼한테 한참 전부터 준비를 시켜뒀던 것이고.
“TrEna do MuuiKta. wUtra viNe! 인-탱글(entangle)!”
쑤아아아악!
노툼의 주문과 함께 온통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통통한 식물 줄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점심으로 먹었던 것 중에 ‘익사체 풀’인가 하는 게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살다가 비만 오면 줄기를 뻗어 물을 받아먹는다는 이상한 수초.
‘그 제자 말로는 이 근방에 비만 오면 발에 차일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자생한다고 했었지?’
현지 식물은 드루이드 마법이나 주술 계열에 훌륭한 촉매이니까. 있으면 당연히 써야지.
오트만이 지하수를 한가득 끌어온 덕분에 이 근방에 있는 익사체 풀들은 전부 힘껏 팔을 뻗듯 오트만의 지하수 덩어리를 향해 그 끝을 내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노툼에게는 혹시나 놈들이 도망칠 때를 대비해서 이 수초들을 끌어모아서 구속계 주술을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
막 억지로 묶을 필요도 없었다. 바위를 파고들던 뮤트의 발끝에 미끈미끈하고 축축한 수초들이 마구 얽혀들며 땅 파는 속도를 현저히 늦추었고, 그동안 마법사들이 끌어온 뇌운에는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힐 정도의 구형 번개가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꽈르르르르릉!!!
“까가가가각! 깍! 깍!”
“끄끼긱, 까각! 깍깍!”
퍽! 퍼퍽! 퍽!
마침내 마법사의 손에서 벗어난 낙뢰가 계곡을 가르며 물에 푹 젖은 뮤트들에게 적중했다. 비명인지 마찰음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퓨즈 터지듯 퍽, 하고 게딱지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계곡 전체가 새까맣게 타들어갈 정도로 강맹한 전격.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는 듯 벌써 2타를 준비 중인 듯 구형 번개가 모여드는 뇌운.
“끝났군. 성공이야.”
“….예. 성공이죠. 하녀 공략은.”
에휴우.
“공략‘은’? 그럼 다른 게 또 있었나?”
눈에띄게 축 늘어진 교수의 모습에 오트만이 물었다.
“예에. 둥지 하나보다 훨씬 가치 있는 목표요. 애초에 그것 때문에 마법사들이랑 따로 움직였고, 피 마나랑 잔뜩 끌어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알드리치님도 주문 푸셔도 됩니다. 안 왔나 봐요.”
“이런, 넬이 아쉬워하겠군. 저번에 한번 놓쳤던 먹이라고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우, 아쉬워라. 둥지는 제거했는데, 정작 진짜 노리고 있던 놈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팔카투스 이 쫄보새끼.’
저 변수 덩어리들이랑 같이 다니기 싫어서도 있었지만, 그것 뿐이었으면 그냥 적당히 발 맞춰와서 비만 뿌려도 됐겠지.
저번에 챔버 메이드의 둥지를 습격했을 때. 호위 뮤트를 몇 마리 쳐 날리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뮤트가 땅굴벌레 타고 우르르 몰려왔고, 덕분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힘든 전투가 벌어졌었다.
그때 만났던 네임드 뮤트가 팔카투스였다. 여왕의 몇 번째 자식인지는 모르지만, 내 피를 통해 얻어낸 특성으로 만들어낸 계략형 네임드.
안 그래도 갑자기 로드릭 공세를 줄이고 제국 쪽으로 촉수를 뻗어대는 걸 보면서 ‘또 뭔 수작질이냐’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둥지 건드려서 한번 잡아보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법사들 몰래 움직이면서 먼저 도착하고, 최소한의 마나와 전투력만 사용해서 둥지 사냥을 준비한 것은 혹시나 둥지를 건드리면 튀어나올 녀석을 위해서였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바람 마법사들 중 뮤트에게 기생당한 이가 있을지도 모르고, 만약 있다면 같이 움직이는 우리까지 모두 놈의 시야에 들어갈 테니.
알드리치가 부리는 저 정체모를 ‘넬’이라는 영혼에게 한번 끝장날뻔한 팔카투스라면 네임드나 2,3급 뮤트 무더기라도 없으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아무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는데, 잔뜩 준비해놓고 허탕을 치게 된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생산 속도가 한정된 둥지는 직접 관리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나? 아니면 여기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는 건가? 마탑 단위 마법사가 작정하고 하녀 사냥을 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잘- 풀리다가도 그놈 생각만 하면 속이 콱 막히는 느낌이라 어떻게든 빨리 제거하고 싶었는데.
운인지 실력인지, 녀석은 둥지가 잿더미가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적어도, 한껏 영력을 퍼뜨려 새로운 영혼이 깃드는 게 없나 감시하던 알드리치의 의견으로는 그랬다.
“철수합시다. 어쨌든 둥지는 털었으니까. 앞으로도 마법사들이 둥지를 발견하면 이런 식으로 먼저 와서 작업하고, 슥 빠지면 되겠네요.”
꽈르르릉!
교수는 혹시나 마법사들에게 걸릴까 싶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였지만, 바람 마법사들은 마법을 쏟아붓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지 바위 너머로 사라지는 교수 일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아예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못하는, 멀티 태스킹 능력이 0에 가까운 마법사들을 보며 교수는 혀를 찼다.
전투 중에 주변 경계할 생각도 못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보조해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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