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26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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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롭네요.”
“그렇구먼. 여긴 우리가 와서 뭘 할 필요도 없었겠어.”
“애초에 비행형 뮤트는 계속 날아드는 걸 파리 잡듯 때려잡고 있었다니까. 이번에는 물량이 좀 많아서 개입할까 했는데, 다행히 알아서 잘 해주는군요.”
“이상한 부분이 좀 모자라서 그렇지 저 치들도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보통 6위계 정도면 어느 나라에 가도 현자취급 정도는 해줄 정도의 지식인이니.”
폭풍의 언덕에 도착 한지 4 일째.
마법사들은 수색을 시작하고 하루에 하나꼴로 둥지를 찾아냈고, 교수 일행이 뒷공작에 익숙해지는 만큼 마법사들도 챔버 메이드와 둥지를 상대하는데 익숙해져갔다.
“오늘로 세 개째로군. 소형 둘에…. 저 정도면 중형 둥지 정도는 되나?”
“옙, 딱 봐도 아예 카테고리가 다른 사출구가 몇 개 있는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저어-기. 좁고 위로 뻗은 통로같은게 조류형 뮤트의 인공자궁 쪽일거고. 그것보다 조금 더 크고 땅에 붙어있는게 그 게딱지 쪽 기관이고. 그것 말고도 특징은 많죠. 저기, 하녀가 있는 중심부 근처를 빙 두르고 있는 기둥들 보이죠?”
“징그럽게 움직이는 저 촉수 같은 거 말인가?”
“예, 그거. 저것도 중형이상 둥지의 특징입니다. 둥지 자체에 붙어있는 방어시설. 지금 보이는 건 근처에 달라붙는 적만 떼어내는 식의 근접형인데, 촉수 끝에 게딱지를 한 움큼 집어들어서 가시를 무더기로 쏟아내는 원거리 방어시설로 쓰고있네요.”
확실히 중형부터는 저항의 수준이 달랐다. 소형 둥지보다 생산력이 몇 배는 뛰어나다 보니 별다른 전투능력이 없는 조류형 뮤트를 끝없이 뽑아내 낙뢰를 막아내고, 동시에 흐느적 거리는 뮤트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소라게 형 뮤트를 뽑아가며 바람 마법사들의 습격에 격렬하게 맞서고 있었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꽈르릉!
교수는 구름 근처까지 올라가 멀찍이서 벼락만 떨구는 마법사들을 보며 둥지 쪽에서 시선을 거뒀다. 소라게 형 뮤트의 투사체는 마법사들에게 닿지 못했으며, 조류형 뮤트는 잔뜩 몰려있는 마법사들의 무차별 윈드커터 난사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놈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저거, 변경백 영지에서 봤던 그 기생형 뮤트, 스킨 크라울러다. 아마 여기서 생산해서 조류형 뮤트가 한 마리씩 들고 변경백 영지 근처에 떨군 모양이다. 어쩌다보니 변경백 영지의 에프터 케어까지 한번에 해버린 샘이지만.
지금 교수에게 그딴건 관심사가 아니었다.
“알드리치. 여전히 소식 없습니까? 둥지 내부 말고 이 주변이라도.”
“털끝만큼도 없네. 안 그래도 낮에 자네 피를 촉매로 산맥 여기저기에 영안을 좀 박아뒀잖나. 자네가 성자로 좀 알려져서 그런지 효과가 끝내주더군. 영의 흔들림은 물론 다른 지원군 같은 것도 없네.
“씁. 오늘도 텄네요 그럼. 사흘 밤을 고생했는데 끝내 코빼기도 안나오는구만.”
마법사들은 둥지를 처음 조우했을 때 이후로 부상을 입기는커녕 둥지 근처에도 접근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교수 일행이 따로 해야 할 일도 없어져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둥지 인근 절벽을 파내고 그 안에 숨어서 팔카투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흘흘흘. 교수 네놈 말대로 그 영혼만 옮겨 다니는 뮤트가 지휘관급이라면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지금까지야 아무도 그놈을 건드릴 수 없었으니 그런 식의 현장 지휘를 선호했지만, 저번에 내게 그리 혼쭐이 났으니 이제 제 몸을 사릴 법도 하지.”
“그렇기는…. 하지만. 그 새끼 그렇게 틀어박혀서 지휘만 하면 진짜 답도 없단 말입니다.”
교수는 바위틈에서 기다란 촉수 끝에 휘감긴 소라게들로 가시를 무더기로 발사하는 챔버 메이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화 수준은 초반 물량 확보가 늦어서 시대에 비해 뒤쳐진 편인데, 지능 발달은 이미 시나리오 끝자락 근처까지 도달한 수준이었으니.
이곳 NPC들이 네임드 뮤트를 표현할 때 괜히 ‘말하는 뮤트’라고 표현하는게 아니다. 언어를 사용할 만큼 지능이 발달한 놈들이 여왕이랑 그 직계 자식들 밖에 없거든?
‘그런데 지금 내가 확인한 바로는, 뮤트 전체의 지능 발달 속도가 너무 빨라. 빠른 정도가 아니라, 비정상에 가까워.’
챔버 메이드는 이름만 하녀일 뿐 생체형 건물에 가까운 유닛이다. 지적 사고가 아니라 본능에 의해 움직이며, 여왕의 명령이 없으면 스스로 위치를 옮기지도 못하는 그런 유닛이란 말이다.
그런데 처음 봤던 그 소라게 둥지는 적의 위협 수준을 계산하고 생산한 뮤트를 부려 도주를 시도했으며,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은 아예 소라게 뮤트의 기본 사거리가 안 닿으니까 자신의 부속지를 이용해 어떻게든 사거리를 늘려보기까지 하는 사고를 기반으로 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섭다고. 여왕이라는 종족 신 있지, 개체 수 많지, 전 세계랑 다이 깔 정도로 능력도 출중하지. 이것만 해도 사기인 놈들이 지능까지 쑥쑥 성장하고 있다니.
“….그래서 이번에 무조건 잡던가, 최소한 활동을 못할 정도로 조져놓고 싶었는데….”
급하게 생각했지만 제법 확신을 가지고 진행한 작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니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나름 근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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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 3월드 뮤트 프로파일링 – by 답도없는 너드 연합.
1. 에데오르나.
하얀 죽음, 여왕의 번견, 화이트 스토커 등으로 익히 알려진 최고위 네임드이자 3월드 클리어 수문장으로 유명한 네임드. 월드마다 순서가 뒤죽박죽인 다른 네임드들과 달리 언제나 여왕의 첫째 딸로 등장한다.
행동 원리는 [여왕의 명령 > 생존 > 숙적 처단 > 강자 사냥]으로 구분.
자체적으로 적응, 진화가 가능한 여왕의 분신에 가까운 네임드. 디폴트 값은 스피드형 근접 창술가이며, 진화 방향은 월드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첫 번째로 패퇴시킨 적, 숙적을 상대하기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성장한다. 숙적을 처단하면 여왕을 위한 공물 사냥을 떠나며, 그 과정에서 패배하게 되면 새로운 숙적에게 맞춰 거듭 진화하기 시작한다.
사이어인 마냥 살아남을 때마다 강해지는 성가신 적. 문제는 그렇게 강한 주제에 대단히 보신주의적인 전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측정값은 없지만 보통 최대 체력의 60% 가량의 데미지를 입히면 도주할 준비를 한다고 알려졌다. 빨피도 아니고 노랑피 까지만 까여도 튀는데, 도망가는 속도가 천하일품이라 잡을 수도 없음. 그렇게 놓치면 패배한 전투를 기반으로 온갖 진화무장을 갖춰서 리벤지하러 찾아오신다.
스토커 쌍년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 별도로 여왕이 하달한 명령이 없으면 끝없이, 정말 끝도 없이 치고 들어온다. 숙적 마크뜨면 다른 퀘스트 다 포기하고 왕성에 틀어박혀야 할 수준으로 집착이 심함.
현 박교수님의 월드에서 숙적은 사를롯 데 아가트. 영상을 보면 막고라는 에데오르나가 이겼는데 샬롯의 개사기 버프를 받은 기사단 자살돌격에 밀려 패배한 것으로 나왔다. 대군 전투형 외장으로 방패, 갑주등 방어력 계열 진화를 하거나 아예 지휘관 암살형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음.
집착형 쌍년인 것 빼면 성격은 진중하고 논리적인 편. 어찌 보면 기사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 진화가 거듭되며 인간 강자의 유전인자를 습득함에 따라 점차 인간형 외모로 변해간다. 처먹은 게 거의 다 히어로 유닛인 만큼 외모 보정은 A+++급. 다만 일부 유저들은 초기 개대가리형이 제일 나았다고 주장한다. 퍼리새끼들은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 남았나봄.
2. ???
펠라스 인근 둥지 전투가 끝나고 사령술로 불러낸 흑마법사의 영혼이 ‘여왕의 세번째 권속, 팔카투스’라고 증언함. 첫째는 에데오르나 일테니 둘째가 있다는 소리다. 투란 전투 이후 크게 소문난 활동이 없었으니 샬롯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
대군 전투형에 떡대형 네임드는 확실함. 콩 심은데 콩난다고, 샬롯을 심었는데 다른게 나올 리가 없지. 그 외에는 불명.
3. 팔카투스.
일명 샛별의 팔카투스. 여왕의 세 번째 권속.
3월드의 가장 큰 특징인 ‘플레이어 기반’ 네임드. 이번 경우 플레이어 박교수의 특성을 진하게 물려받은 것이 확인되었으며 다른 뮤트의 육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개체의 기본능력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아 다소 특이한 기생+버프형 네임드가 아닐까 추측 중. 유리몸에 마력 적성, 신경쇠약을 가져갔으니 적어도 근접형 개체는 확실히 아니다.
펠라스 인근 둥지 전투 당시 성격을 유추할 만한 대화가 있었다.
키워드는 열등감, 인정 욕구와 그 해소감에서 나오는 자아 비대. 추가하자면 노력형, 과시형.
정확히 ‘재능없는 명문가 막내형’ 인물이다.
여왕이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뽑아낸 에데오르나와 8~6급 뮤트들이 투란 전투에서 패배했으니 가뜩이나 굶고있던 여왕이 더 굶었을거고.
이런 가난한 상황에서는 전투로 계속 자원을 수급하는 게 중요한데 정작 갖춘 능력이 기생-빙의 형이니 영 쓸모가 없는 상황. 여왕의 직계 자식들이 여왕에게 가지는 애정을 생각하면 이건 늙고 굶주린 노모와 유지하는 가정에 빌붙어 먹는 40대 미혼 백수에 필적할 자괴감이다. 심지어 자기는 이렇게 밑바닥인데 손윗 누이나 형제들은 다 잘나가서 이제 막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어. 이거 완전 미치는 거거든. 거기에 신경쇠약까지 있으니 정서적으로 더 불안하겠지.
스스로의 무능에 분노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형 캐릭터가 아닌가 싶음.
행동 원리도 아마 [여왕의 명령 > 자기 증명 > 생존 > 지휘] 이런 식이지 않을까? 조우한 데이터가 없어서 이건 모름.
아무튼 허약한 몸으로 뭔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모양. 둥지 전투 이후 흑마법사의 영혼이 증언한 바로는 플레이어가 건드리지도 않은 흑마법사 집단에 내분을 일으켜 조져놓고 흡수했다고 하고, 다른 월드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특수개체를 적극적으로 운용한 것도 이놈이 부린 수작이라고 함.
찐따시절에 말도 안 되게 비대해진 인정 욕구는 놈을 빙의 능력으로 거의 모든 현장을 오고가며 지휘하는 극성 현장 지휘관형 캐릭터로 만들었음. 전투지휘뿐만 아니라 기생체를 이용한 정치, 종교 집단을 이용한 선동, 경제적 테러까지 손을 안 대는 곳이 없음. 여러모로 GG 역사에 있어 전설로 남을 전설적인 찐따 네임드.
특이사항으로는 플레이어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매우 존경하고, 심지어 ‘모시고 가겠다고’ 표현했음. 자기가 박교수의 복제판이니 그 몸으로 입지전적적인 업적을 새운 박교수에게 동질감과 기대심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현실은 마초 떡대 재생형 괴인. 아버지의 끔찍한 실체를 확인한 팔카투스가 실시간으로 흑화하는 모습은 플레이어 박교수의 방송에 아주 선명하게 촬영되었다(‘위대한 무지성 박교수’ 동영상 링크 참고).
전체적으로 시간대보다 유기적, 지능적,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전장으로 보아 현 박교수 3월드는 거의 이놈이 만들어낸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거의 모든 전장, 특히나 중요한 네임드의 전장이나 둥지가 있는 전장에는 필히 끼어들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4. 이후 유추 가능한 필수 등장 네임드 : 지그닐, 테르마키안, 독스, 바즈유르중 가장 유력한 것은, 근접형 대표 캐릭 테르마키안은 초기 가난함으로 보았을 때 자원 수급용으로 확정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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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둥지 얘기가 나오자마자 다음날 바로 도착한 다나의 정보였다.
내 방송이 인기라더니 이제 각종 네임드 대화방에서 내 방송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지는 모양.
확실히 전문적으로 분석한 느낌이 있었다. 특히 직접 대화해본 팔카투스에 대한 내용은 특히나 더.
그놈은 자기가 쓸모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해 안달이 난 녀석이다. 여왕이 제 살 깎아 먹어가며 쥐어짜낸 네임드가 밥충이였으니 그런 성격장애가 생길 만도 하지.
당장 지금 전황만 봐도 이 녀석이 얼마나 성격이 급한지가 잘 보인다.
로드릭 공세를 유지해 동부 3국을 잡아먹고 블루 라인을 중심으로 [서부(제국 및 동부 패잔병) 대 동부(뮤트)] 양상으로 진득하게 끌고 가면 될 것을, 로드릭의 공세를 줄이고 미리 제국 방면으로 둥지를 전진배치 하는 등 매우 공격적으로 전황을 끌어나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무조건 올 줄 알았다. 오직 여왕만 생산 가능한 둥지를 세 개나 이곳 암석지대에 투입했고, 인근에서 가장 강한 영지인 변경백 영지에는 벌써 기생형 뮤트를 통해 제압할 준비를 끝내놓은 상황.
거의 준비가 끝나가던 변경백 영지의 노림수를 내가 완성되기 전에 터트려버렸고 이제 둥지마저 작살내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현장에 나타날 수 있는 그놈 능력상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길 줄 알았는데.
꽈르릉! 쿠르르릉!
“끼아아아아아악-!”
저 높은 상공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낙뢰에 바싹 타들어가는 둥지를 보니 이번에는 확실히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난 이틀간 연이어 이어진 고위마법 난사로 마나가 다 떨어진 풍계 마법사들은 집에서 사무보던 제자들까지 전부 끌고나와 ‘집 근처에 뿌리내린 짐승 처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수는 어렴풋이 보이는 가우만과 그의 지도에 따라 마력을 조종하는 아스트라드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에효. 이번 기회도 놓쳤으니 이제 언제쯤 그 망할 아들놈을 줘 팰수 있을지. 철수합시다. 이제 인근 둥지는 다 처리했으니 열기구 탈 준비 해야죠. 보르카는 가서 윈드 홈 여관에 맡겨둔 우리 짐 수레좀 찾아오시고.”
“어구구구- 허리야.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더니 몸이 아주…. 그나저나 그 열기구 비용은 얼마나 든다고 하던가? 우리 무게만큼 엘프 교역품을 빼야 할텐데, 안그래도 몇 달동안 수입이 없었던 저 치들이 공짜로 해주진 않을텐데.”
“집에 남아있던 루실라가 중개 무역으로 어떻게 커버한다고 하더라구요. 나머지 손해 분은 보르카가 저쪽 일원이라 그냥 해준다고 하고.”
“흘흘흘. 견공(犬公)이라. 그 우스꽝스러운 직함이 이리 도움이 될줄이야.”
“….온전치 못한 이들이니 이해하기로 했소. 어찌보면 우리 종족을 더러운 피라 칭하며 차별하는 이들보다 더 순수하게 바라봐주는 것 같기도 하고.”
구우우우우-
교수는 마침내 생명력이 다해 무너지기 시작한 둥지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그래, 팔카투스는 못잡았지만 둥지를 3개나 박살낸 게 어디인가. 시간을 더 줘서 소형이던 둥지들이 중형급으로 자라나고, 변경백 영지에 숨어든 기생 뮤트들도 더 늘어났으면 자칫 제국 동부에 대규모 침입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그게 성공했으면 뮤트에게 제국 침략의 교두보가 생겼을테니 제법 골머리를 썩였겠지. 놈들의 침략 계획 하나를 막아낸 것으로 만족하자.
“아으으으- 뻐근해라. 오늘 저녁 뭐랍니까?”
“며칠 전에 먹었던 거랑 비슷할걸세. 매일 고고도 비행하느라 마법사들이 집에 와서 로브만 털어도 구름 대하가 우르르 쏟아질 정도라고 했거든. 내가 매일 지하수 끌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바람에 이젠 계곡 바닥이 녹색으로 물들 정도로 익사체 풀이 올라왔고 말이야.”
“잘됐군. 내 입맛에도 제법 맞았으니 말이오.”
“가기 전에 보존식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좀 가져가자. 알드리치, 혹시 아는 거 있어요?”
“풀은 몰라도 구름 대하는 말려서 많이들 먹었지. 애초에 구름 사이로 떠다닐 만큼 가볍고 수분이 적은 새우이기도 하니 말이야. 풍계 마법사는 건조 식품을 많이 먹으니 이미 만들어놓은게 있을게야.”
며칠 전에 먹었던 그 이상한 새우와 녹색 소스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다.
“고된 노동과 만찬이라. 좋네.”
“여자팀이 여기 목욕탕이 썩 괜찮다고 하더군. 가서 아무 생각없이 물에 푹 담궈서 피로를 다 털어내고 가지.”
“거 좋지요.”
철새처럼 날아다니던 마법사들은 혹시나 남은 뮤트를 찾기위해 내려오고 있었고, 일행은 돌아가면 기다리고있을 만찬을 기대하며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잘 끝난 퀘스트의 배경으로 더할나위없이 어울리는 평화로운 장면.
두쿵.
그 분위기에 취해서일까. 내 몸이 뭔가를 감지한 것을 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있었다.
가슴을 타고 흘러나오는 불쾌한 긴장감. 타르처럼 끈적한 감정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몸을 깨우고 있었다 마치 전투 준비를 하라는 것처럼.
“어….”
“왜 그러나? 아, 혹시 마법사들과 함께 귀환하려고 그러는가? 하긴, 그놈이 나타나질 않으니 이제 숨을 필요가 없지.”
“아니, 이게 왜….”
두쿵. 두쿵.
오트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차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속에 교수는 미친 듯이 주변을 살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간 하녀.
마찬가지로 깎이고 타들어간 둥지.
천천히 내려오는 마법사들 사이로,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활짝 웃는 아스트라드와 그의 늙은 스승.
평화롭다.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더 두려웠다. 한껏 늘어져 막사에 누워있을 때, 천천히 가까워져가는 미사일의 날카로운 소리와 같은 서늘함.
뭔가 일어났는데,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감각.
“아, 알드리치….”
“말하게.”
“그 주술, 지금도 확인하고 있습니까?”
“….흑마술은 장시간 사용하면 생명력을 소모해서, 둥지가 무너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거둬들였네만-”
타다닥!
알드리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업혀있던 오트만을 내팽개치고 달려나갔다. 석양을 등지고 내려오는 마법사들이 보인다. 오늘 사용한 마법에 대해 토의하며 천천히 내려오는 스승과 제자들. 그들의 얼굴에는 위기감 따위는 없었다. 절박한 얼굴로 달려오는 교수를 발견하는 그 순간까지도.
‘어디지? 어디에 있는거지?’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던 교수는 눈을 감았다. 달군 쇠처럼 달아오른 피가 눈가를 휘감는게 느껴졌다. 적이 뮤트라면 이 시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직….
‘….망할.’
붉은색. 온통 붉은 색이었다. 바위 언덕도, 새까맣게 타들어간 계곡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려오는 일행이 있는 분지도.
뮤트의 붉은 기운이 사방을 채우고있었지만, 정작 느껴지는 고동은 세 개 뿐이었다.
셋. 단 세 개체로 교수의 감각을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뮤트.
사방에 퍼진 붉은 기운의 중심은 마법사들의 발밑이었다. 붉다못해 새까만 점이 된 구멍.
검게 타들어간 계곡의 밑바닥에, 하늘을 향하는 작은 손가락이 있었다.
쩌어억-
“재가 된 육신은 신도의 마지막 기도일지니.”
빼곡한 송곳니로 둘러싸인 구멍. 음산하고 서늘한 목소리는 손끝이 가리키는 대상을 향해 끈적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이변을 알아차린 마법사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교수는 치매걸린 마법사의 눈썹이 사납게 휘며 그의 제자를 밀치는 것을 보았다.
“찬미하라. 불신자들이여.”
창백한 손 끝에 맺힌 광구는 은하수처럼 아름다웠다.
[강요된 제례(祭禮)]천지를 울리는 진동도, 고막을 찢는 소음도 없이. 그저 작은 촛불을 불어 끄는 듯 작은 한숨 소리였으나.
『훅』
무저갱에서 올라온 듯한 숨결은 이곳에 있는 모두의 고막을 울렸다.
당황한 마법사들 사이로 몇몇 노 마법사가 백열하는 지팡이를 들어올리는 사이.
“투스 그아이의 말이 맞았구나. 정말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도 낯익은, 두 번다시 듣고싶지 않은 목소리에 교수의 몸이 저절로 멈춰버렸다.
창백한 손가락이 나온 땅굴벌레 옆에 다른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자박.
상아처럼 새하얗고,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
“에데오르나….!”
“기다리거라. 재회의 기쁨은 알겠으나, 선약이 있으니. 유르, 치우거라.”
“….말씀대로.”
또로록.
에드오르나의 말에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천천히 굽어들고. 밤을 녹여낸 구체가 작은 구슬이 되어 그 손아귀 사이에 잡혀들었다. 색유리를 통해 하늘을 보듯. 검은 구슬에 비친 마법사들은 은하수 속에 허우적거리는 벌레처럼 보였으니.
『불신자여, 죽어라.』
파삭!
보랏빛 눈동자에 비친 밤하늘이 산산이 부서짐과 동시에,
조각난 밤이 성난 바람 위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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