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36
Chapter. 12. 레터스 투 윈드메이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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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득- 쿵!
와르르르!
“이쪽으로! 이쪽으로!”
“이쪽이…. 어딘디야….”
“아이고, 베스먼 이 양반아! 짐 싣는 거 한두 번 하남! 센 바람 말고! 부드러운 거로 여러 겹! 귀한 물건 다 찢어지겠네!”
이른 아침보다도 조금 더 이른 새벽. 어둑한 계곡을 마법사들의 푸른 바람이 밝히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커다란 열기구의 바구니에 실리는 각종 금속주괴와 화살촉, 도자기, 온갖 이국적인 뿌리 작물과 씨앗 등.
그 수많은 물건들의 행렬을 보며, 교수는 성스러운 빛무리에 휩싸여있었다.
다른 일행들이 본다면 ‘끝내 로하람이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저 사이비 성자 놈에게 신성력을 내려줬구나!’ 하겠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고.
교수는 그가 나올 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성기사들에게 둘러싸여 대주교와 통신을 하고 있었다.
[크흐음…. 성자와 대주교의 담화를 나누기에 썩 괜찮은 환경은 아니구려. 마력이 섞여서 영 잡음이….]“수십 명의 씻지도 않은 건장한 성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저만 하시겠습니까. 서로 불편하니, 필요한 얘기만 하고 빨리 끝냅시다.”
[그럼 제일 먼저…. 아직도 로-하람님의 옥음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정말로? 이제는 정말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저희를 믿으셔도 됩니다, 성자님. 숨길 필요 없다니까요?]“그거랑 똑같은 질문을 담은 편지가 수십 통은 날아온 거 아실 텐데요? 편지 목록으로 광명교단 주교 명단을 만들어도 되겠어, 아주 그냥! 아니라고요! 나도 혹시나 해서 기도 한번 해봤는데, 로하람님이 따로 연락하고 그런 일 없었다니까? 그러니까 손자뻘인 나한테 존댓말도 좀 그만하시고! 예? 나 막, 그렇게 신성한 사람 아니니까! 좀 원래대로 합시다!”
이 대목에서 성기사 하나가 ‘초심을 잃지 않는 겸손이라, 그야말로, 아아아…’ 같은 소리를 하며 울기 시작해서, 교수는 1초라도 더 빨리 통신 마법을 끝내고 싶었다.
[그럴 순 없지요. 이미 명실상부한 ‘피의 성자’ 님이시며, 무려 성녀의 영혼을 구출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일개 촌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분이시거늘.]“에라이, 맘대로 하십쇼, 그럼. 일단, 다시 한번 설명드리지만, 성녀의 영혼을 구출한 것은 제가 아니라 ‘알드리치’라는 이름의 흑마법사입니다. 정확히는, 영혼술사지요. 뮤트에게 억압되어 소모당하던 성녀님의 영혼을, 그가 영혼의 손아귀를 뻗어 직접 끌어냈단 말입니다. 이거 어디 꼭 좀 기록 해주세요. 오케이?”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지만. 오히려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영혼술사라 한들 생명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인이라는 것은 틀림없지요. 허나 성녀님의 후광은 그런 악인조차 회개하게 만들 수 있다…. 정도로 기록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 알드리치라는 흑마법사를 위한 세례를 준비하면 어떨는지.]“글….쎄요.”
세례라…. 흑마법사인 주제에 성녀의 영혼을 끌어안고 있던 걸 보면 확실히 보통 흑마법사랑은 궤가 좀 다르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영혼을 다루잖아? 무엇보다 그 ‘넬’이라는 영혼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던 것 같던데. 그거 다 성불해버리면 좀…. 그렇지 않을까?
알드리치에 대한 처우는 일단 보류하고, 흑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제를 데려와 교단의 적이 되는 흑마법에 대해 세분화하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얘기는 뭐. 죄다 성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비 교단의 대주교는 오랜 오해의 청산을 위해 출발한 우리 용사 일행의 행보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성녀의 영혼이 자비 교단의 본단에 도착하는 즉시, 그녀가 공식적으로 우리 품에 돌아왔음을 공표할 것이라 하였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의 사기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아마 성녀의 영혼이 해방되면, 자비의 성기사들은 즉시 전열을 이탈하여 성녀 탐색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철저히 성녀를 위주로 움직이게 되겠지요.]“….전열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무자비의 성기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되었을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다행히도 우리 ‘피의 성자’님께서 그 사악하고 끔찍하고 악독한 하얀 악마에게 치명상을 입혔다지 뭡니까? 그 악적을 막기 위해 분투하던 영웅님들에게 여유가 생겼으니, 그들이 빠져나간 구멍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허허허허! 정말이지, 이 자리에 없음에도 그 영향력으로 널리 이롭게 하시니, 꼭 로 하람의 태양 같으십니다. 허허허허!]‘….제발 그 낯간지러운 칭찬 좀 그만하라니까.’
둘만 하는 통신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지금은 성물도 없고 신전도 아니라서 성기사 20명의 단체 기도회로 통신 마법을 사용하고 있단 말이다. 이 덩치들이 우리 대화를 전부 듣고 있다고. 당신이 칭찬할 때마다, 묵직한 아저씨들이 흐뭇한 얼굴로 슬금슬금 내 쪽으로 붙고 있다고!
안 되겠다. 나중에 따로 편지하든가 해야지, 지금 상황 다 알아보다간 저 성기사들의 신성한 품에 깔려서 압사하겠어.
일단 대충 필요한 소식은 다 전했으니, 가장 중요한 것만 듣고 끝내기로 했다.
“보상은. 자비 쪽에선 뭘 준답니까?”
그 말에, 조금 불편한 헛기침을 하는 대주교.
[솔직히….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조금 조촐한 수준으로밖에….]“전쟁 중이고 교단의 모든 역량을 뮤트와 전투에 끌어넣었으니 어느 정도 정상참작 해줘야죠. 그래서, 내용은?”
[크흠…. 우선 자비와 광명 간의 오랜 불화를 해소하고, 대단히 우호적인 관계가 될 것을 공식적으로 공표하였습니다. 앞으로 자비의 여신께서 광명을 매우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 하더군요.]“그거야 뭐, 당연한 거고. 또?”
[본단에 있던 성물, ‘성녀 라프사체의 손길’을 이번 전쟁을 위해 사용하겠다 하더군요. 성녀를 잃고 그나마 자비의 여신과 연결되어있던 성물입니다. 2주기 성녀 라프사체님의 힘이 담긴 신물이라고 하지요.]오, 이건 좀 괜찮군. 사실상 자비교단 넘버 원 성물이잖아, 그거. 광역 무한 도트힐 토템. 성녀랑 비교해도 반 수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물건이다. 마지막 보루 삼아 본단에 모셔뒀나 본데, 성녀를 되찾게 됐으니 이제 사용하겠다는 뜻이군.
그 외에도 뭐, 물자 지원이니, 성녀를 찾기 위할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악신의 무리와 싸우겠다느니, 평이한 내용이 이어졌다.
“….좀 에반데.”
[후안무치한 이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름답게, 우리에게 ‘자비’를 구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아니, 그런 사람이 아닌 거 아니까 하는 소립니다. 진짜 뭐 더 없습니까? 이게 끝?”
[크흐음….]“진짜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나 당장 기도합니다? 당신들 말대로 로 하람님의 시선이 내게 닿아있으면 저쪽에 직통으로 넘어가요?”
[그게…. 아주 약소한 게 하나 있긴 한데…. 보상이라 해야 할지, 모욕이라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사소한, 로트말리어 그 늙은이가 노망이 난 것이 틀림 없는….]“뭔데 그렇게 망설이십니까? 좀 있으면 해 뜹니다, 진짜? 백일하에 드러내기 전에 그냥 말씀하시죠?”
웅성웅성.
수군수군!
“성자님을…. 성자로?”
“자비의 여신께서 따님을 되찾고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 아닌지.”
“상도덕이 있지, 어찌 우리 성자님을 그따위 날림으로-”
“어허, 그레고리우스 형제! 성자님 앞이오! 언행을 삼가시오!”
당장 내가 당황한 것보다도, 통신 마법에 연결되어있던 성기사들이 더 난리가 났다.
‘어쩐지. 다른 보상이 죄다 평이하다 했더니.’
정말 필요한 보상만 교단에 넘기고, 나머지는 내게 몰빵해준 모양이다.
다수의 교단에 성자로 이름을 올린 이? 드물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레빗 프린세스만 해도 구세의 영웅으로 모든 교단에 신성한 이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 권한이다. 명예직이라도 성자로 이름을 올린 만큼, 난 이제 아무 자비의 신전이나 찾아가 지원을 요청할 권한이 있다. 그냥 지원이 아니라, 해당 신전의 기둥 뿌리까지 뽑아서 들고 가도 될 만큼의 권한이.
심지어 그쪽에서 억지로 주는 것도 아니지. 당장 성녀님 구출한 사람이 나라고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나고 있는 만큼, 내가 10만큼 도와달라고 하면 200, 300을 들고 와 도와주려 할 게 뻔했다.
‘썩 괜찮은데? 이거 최종 시나리오에서 자비의 사제들이랑 성기사 지휘권 달라고 하면 되겠다. 아마 그때쯤이면 성녀의 진체를 찾아 영혼이 안착했을 테니까, 새로 탄생한 자비의 성녀님이랑 일면식도 있고. 괜찮네. 안 그래도 정치 쪽 공작은 하나도 못 해서 최종국면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온갖 스토리가 얽혀 산으로 가는 게 GG의 스토리 라인이지만, 마지막 메인 시나리오 하나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최종 시나리오. 전면전.
그동안 플레이어가 구슬리고, 꼬드기고, 온갖 수작을 부려 만들어낸 정치, 군사적 상황. 영입한 히어로 유닛, 끌어들인 지원군까지.
최종국면에 이르는 순간, 그 모든 성과를 결산하듯 뮤트의 세력과 인간의 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맞붙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당장 가지고 있는 지위는 광명의 성자뿐이라 광명 쪽 세력 대표로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두 교단의 실질적 현장 지휘관이라면 그 무게가 다르거든.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진 마십시오. 그저,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는 자비의 거렁벵이들이 면피를 하기 위해 성자님께 그런 허울뿐인 직위를….]“안 갑니다, 안 가요. 내가 뭐 박쥐도 아니고. 그래도 로-하람님이랑 같이 일한 세월이 있는데. 안 넘어가니까 너무 그렇게 당황하지 마시죠.”
[크, 크흠, 흠!]대주교는 내가 딱히 신앙심 따위가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혹시나 저쪽 교리가 맘에 들어서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겠지.
대충 알았다는 말을 끝으로, 교수는 대주교와의 통신을 끊었다. 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국 쪽 신전을 통해 편지하겠지, 뭐.
쿠르르릉!
와르르!
“어, 어어…. 어어어어!”
“넘어간-다아아아-”
“베스먼 이 머저리가!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잡으란 말일세! [윈드 베일]! [윈드 베일]!”
“꺄아아악! 다른 상단에서 비싼 돈 주고 어렵게 구해온 ‘수박’이! 내 교역품 어찌할 거에요!!!”
어둑한 새벽, 새빨간 속을 드러낸 수박들 속에서 마법사의 멱살을 잡는 루실라가 보였다.
“어이, 성기사들. 할 일 없지?”
“하명하소서. 복된 이여. 어떤 신성한 임무라도, 설령 악의 불구덩이에 뛰어들지라도 우리 광명의 성기사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런 거 아닌데. 나랑 짐이나 좀 옮기러 가자고. 해뜨기 전까지 준비 끝내야 된다고 하는데, 저 꼬라지 보니까 제때 못 맞출 것 같아서. 거, 어깨 널찍- 하니 상하차 잘하게 생겼네. 갑시다!”
“어, 음….당신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새벽 5시경.
교수 일행의 짐과 교역품을 실은 열기구가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좋은 바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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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대단한…. 마법기로군.”
“그래.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나무 조각 사이사이에 서려 있는 마력하며, 저 특색있는 기운은-”
“정령입니다. 돛과 기구 사이를 뛰어 노는 것을 보니 저들이 방향을 잡는 모양입니다.”
“그우…. 배다, 배. 혹이 많이 달린 배.”
결국, 아침이 밝았다.
푹 쉬고 일어난 교수 일행은 홈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쳤고, 필요한 짐은 물론 어떻게든 팔아먹겠다고 루실라가 급하게 구매한 개인 교역품까지 선적을 마쳤으며, 마침내 이곳을 떠날 준비를 끝냈다.
“그…. 열기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오오옴….? 커다란 바구니에…. 바람이 가득 든 공을 매달면 열기구….가 맞는데….”
마침내 출발 준비를 마친 엘프 숲으로 가는 열기구는, 교수가 알고 있는 열기구의 형태와 많이 달랐다. 하나의 커다란 공기주머니가 아니라, 중간 사이즈의 둥근 공기주머니에 소형 공기주머니가 풍선처럼 잔뜩 매달려있는 형태. 심지어 작은 돛과 방향타도 달려 있었다.
“높은 곳에서 잡아온 바람을…. 잔뜩 매달았으니 다들 제자리로 되돌아가려고 성화일 게야…. 바람이 없는 곳까지 떠오르면, 꼬오옥, 숨 주머니를 입에 대고. 정령이 이끄는 방향으로 3일 만 가면…. 도착….”
“아침 시간에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습니다, 마법사님. 따로 할 것은 없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준비된 침실 칸에 머물거나, 반드시 공기주머니를 입에 달고 움직여라. 높은 곳의 바람은 매우 차가우니 따듯한 옷을 입고. 맞죠?”
“그래…. 귀한…. 손님이 죽으면…. 펠릭스님을 뵐 면목이….”
나무늘보를 닮은 긴 수염의 6위계 마법사.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정이 들었는지, 그는 아침 편지를 준비해야 할 시간임에도 밖에 나와 우리를 전송하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거의 다 나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녀석은 보이질 않았다.
“그…. 아스트라드는 어디 있습니까?”
“오오옴…. 아스트라드는…. 인사를 전해 달라더군…. 고마웠다고…. 바람이 닿으면 또 보자고….”
“끝내 안 나오나. 박정한 꼬맹이 같으니라고.”
“너무 그러지 말게…. 아직 어린 바람이니…. 스승을 잃고 쉬이 흔들리고 싶지 않았을 게야…. 이제…. 홀로 강해져야 할….”
“몰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나름 복잡할 테니까. 그래도, 제법 정들었으니 인사나 하고 가려 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홈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더러는 금이 간 곳도 보이지만, 여전히 그 신비한 아름다움만큼은 변치 않은 건물. 바람 마법사들의 고향.
부우우우우-!!!!
뱃고동 소리 같은 울림에, 교수는 마지막으로 늙은 마법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보겠습니다.”
“오오옴…. 좋은 바람이 그대의 이마를 스치길….”
“….예. 마법사님도 건강하시고요.”
펄럭!
교수가 올라타고, 열기구를 땅에 묶어둔 밧줄이 하나씩 풀리며, 일행을 싣은 열기구는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간에 기대어 점점 작아져 가는 펠릭스 홈을 보는 교수의 곁으로, 두터운 코트로 갈아입은 루실라가 흩날리는 머리를 묶으며 다가왔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떠나게 되네요.”
“그러게. 다른 사람들은?”
“오트만이랑 알드리치는 속이 울렁거린다고 누웠어요. 노툼이 간호하고 있고, 보르카는 제일 높은 곳에서 편지를 띄워서 어디로 가는지 보겠다고 돛대 위로 올라갔고. 이드라실은….”
쿡쿡.
루실라가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어슴푸레한 새벽공기 속에서 눈을 빛내며 이쪽을 주시하는 엘프가 보였다. 그 옆에 양손 가득, 심지어 주둥이에까지 편지를 한 뭉텅이 물고 있는 늑대인간이 있는 것을 보니 저기가 돛대인 모양.
“….편지는 홈으로 돌아갔다가 나와서 의미 없을 텐데.”
“채취를 묻혀뒀다고 하더라고요. 쏟아져 나오는 편지들 속에서 어떻게든 자기 편지를 찾아내겠데요.”
“….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아버지 심정이야.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솨아아아.
솨아아아아-!
저 멀리, 여명과 함께 하얀 종이들이 철새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아, 아침 편지다.”
“그러게. 바람 마법사들의 하루가 또 시작됐다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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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루실.”
“네?”
“아스트라드 말이야. 날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
날아드는 편지 무리를 보니, 작은 골방에서 끝없이 날아드는 편지와 씨름하던 녀석이 떠올랐다.
“음….글쎄요. 굳이 표현하자면, 역귀(疫鬼) 정도?”
“윽, 아니 왜?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디 보자. 처음 들어올 때는 스승님 지인을 사칭해 숨어들어왔고, 붉은 뮤트라는 게 다 까발려졌으니 소중한 집을 때려 부순 괴물로 기억될 것이고, 그…. 물론 그대로 뒀으면 숨어서 잔뜩 세력을 키운 뮤트가 지금보다 훨씬 끔찍한 세력을 이끌고 폭풍의 언덕을 공격했겠지만, 어쨌든, 스승님을 잃게 된 사건의 계기이기도 하고….”
“….망할. 역시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왔어야 하나? 이대로면, 내 장밋빛 4월드가, 대마법사의 호의가….으으으으….”
찰싹!
구구절절 맞는 말에 ‘이러다 호의는커녕, 4월드에서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거 아냐?’ 같은 생각에 휩싸인 내게, 루실라의 작은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아이, 참!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농담 아냐. 난 저놈한테 잘 보일 이유가 있다고.”
“그거 말고, 아스트라드요. 난 걔가 왜 안 나왔는지 알 것 같은데.”
“뭔데.”
“싫은게 아니라, 용사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못 나온 거예요. 홈에서 할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바람처럼 훨훨 날아가버리는 우리들을 보면, 자기도 흔들릴까 봐. 뭐, 그런 것 아니겠어요?”
루실라는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어제의 기억 속에서, 교수와 함께 귀환한 일행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굳어버린 어린 마법사가, 끝내 그 갈 곳 없는 마음을 풀어놓고 스승의 이름을 부르짖게 만든, 지금 눈앞의 멍청해 보이는 남자와 절!대! 동일인물이라 믿을 수 없었다던 그 아름다운 광경을.
“….쩝. 그랬으면 좋겠다만.”
점점 멀어져가는 폭풍의 언덕.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군무를 이루는 하얀 건물.
“….잘 살아라, 아스트라드. 기회가 되면, 4월드에서 보자고.”
솨아아아-
홈으로 빨려 들어갔던 편지가 다시 하늘로, 제 주인을 찾아 창공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교수는 열기구를 휘감은 그 하얀 마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스트라드의 바람을 느낀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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