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38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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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좁은 밀실. 숨소리마저 죽이게 하는 음산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후욱- 후욱-
“….부들람. 흥분 가라앉혀. 시끄럽다.”
하나같이 피와 먼지에 찌든 무리가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직- 지지직-
고도로 단련되고, 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거친 그들을 이렇게나 숨죽이게 하는 것.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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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라. 아스트라드.”
파라라라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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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 박교수의 겜생겜사(진짜죽음)] 방송 준비중-=========
“캬!”
“와아….”
“이게 이렇게 끝나네.”
“후우우우-! 어우, 숨 막혀라! 왕대장님 감성 쥑이는구만. 안 그러냐?”
그것은, 암살 상대나 적진 따위가 아닌, 반쯤 고장 난 드론의 화면이었다.
47구역 외곽, 외딴곳에 위치한 4인용 쉘터. 멸망 이후 한 개인 생존자가 하우징 AI와 함께 살아오던 이곳에, 12명의 건장한 사내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으으으으-! 코가 썩는 줄 알았네. 뭔 사람이 고등어도 아니고 산채로 썩는 냄새가 나?”
“흐흐흐. 누군 잘 씻는 줄 알겠군. 애초에 여기 있는 늬들, 전부 더럽다고 벡스님한테 막사에서 쫓겨난 거 아냐?”
“먼지 좀 묻은 거랑 24시 화학 제독이 필요한 부들람 네놈이랑 같냐. 어우, 진짜. 왜 안 씻는 거야?”
“네가 40구역에 스캐빈저로 살았어봐라. 거긴 47구역만큼 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땀 냄새가 뭐 어때서 그래? 활발한 신진대사의 증거. 그야말로 삶의 향기 아냐? 자, 나의 오늘을 한껏 들이켜 보라고. 정신이 번쩍 들걸?”
활짝-!
“어우우우!”
“으웩, 으으웁!”
“저 새끼 우물에 처넣어 버려!”
“니가 해! 난 손대기 싫어!”
“야이 개#@(*&*&#)#!!!!”
검은 학이 날개를 펼치듯 활짝 들어 올려지는 부들람의 건장한 팔에 감상에 빠져있던 동료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웬만큼 황무지 생활에서 굴러먹은 만큼 다들 청결이라는 감각이 닳을 대로 닳은 사람들이었지만, 저 ‘검은 생화학탄’ 부들람의 악취는 코가 아니라 눈과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기겁하는 그의 동료만큼 이 상황이 아니꼬운 이가 하나 더 있었다.
[갑자기 대기 오염도가 30%를 넘어가다니! 또 뭘 끌고 들어온 거야 이 인간 버러지들아아아아-!]번쩍번쩍한 최신형 합금 바디가 돋보이는 하우징 AI – 활동용 드론.
코듀로는, 소동의 진원지인 흑인 남성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드론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내 옛날 몸!]“어이, 코듀로! 마침 잘 왔다. 이거 화면이 좀 갔던데-”
[막 부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이 불법 거주자들아! 야만인 같으니! 보나 마나 방송 렉 걸린다고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리쳤겠지! 21세기 말에 때려서 고쳐지는 가전제품이 어딨어! 그리고 이번에는 또 뭘 들고 왔길래 공기가 이 모양인데! 전에도 말했지! 방사능 전갈은 날것으로 하루! 익혀도 3일이면 급속도로 부패한다고!]파닥 파닥 파닥!
[그 망할 30번대 구역 전통 발효 요리 같은 거 다시 할 생각이면 이번에야말로 땔감으로 써버리겠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정화기 돌리는 게 장난으로 보입니까? 아앙? 도리안, 또 당신이지! 이 망할 BDSM 벌거지드으을!!!]대노한 AI의 새된 욕설이 밀폐된 쉘터를 울리고, 그 욕설의 대상이 된 거친 전장의 남자들은….
흐뭇한 얼굴로, 히죽이죽 웃으며 그 욕설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아아. 정겨워라. 저 잔소리, 들으면 들을수록 훌륭해. 이봐 코듀로, 내 등짝 한 대만 때려줄래?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난 것 같아서 그런데.”
“형님도 그렇수? 나도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까 왕대장이 왜 저런 인성 쓰레기 드론이랑 살았는지 알 것 같다니까. 오디오가 아주 꽉 찬다고. 혼자 사는 사람한테 그것만큼 중요한 게 또 없지.”
“흐흐흐흐. 내 말이. 어이, 코듀로! 내가 고급형 어덜트 돌 같은 거 구해줄 테니까 나랑 살자! 잘해줄게!”
[캬아아악! 전자인격체 인권 유린이다 쓰레기들아!]성난 터빈 소리와 함께 세차게 날아다니는 드론. 그들이 부른 것처럼, 그것은 박교수와 함께 이 쉘터에서 살아가던 자율 학습형 하우징 AI, 코듀로였다.
돌아오지 않는 박교수를 기다리던 코듀로가. 어째서 이런 쓰레기들과 같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깊고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
할짝-!
[으아아악! 내 옛날 몸! 부들람 이노오옴! 감히 나의 바디를, 주인님의 따스한 불법개조가 잔뜩 들어간 추억의 드론을!!!]요약하면, 변종 웨이브에 쓸려나갈 뻔한 쉘터를 새 주인님을 비롯한 BDSM 케러밴 놈들이 지켜냈고, 종종 이 근처를 지나갈 때면 거점으로 쓰고 있어서 그랬다.
‘아아아, 주인님. 보고 싶습니다…. 잘 살아계시는 거죠? 저는…. 이 쉘터를 관리하는 하우징 AI로서, 치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수와 함께하던 시절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막상 사놓고는 하우징 AI와 연결할 기술자가 없어 쓰지 못하던 최신형 드론 바디로 마침내 갈아타는 데 성공한 코듀로. 그는 비참한 꼴이 된 그의 옛날 몸을 보며 교수를 떠올렸다.
매번 피딱지랑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이놈들은 쫓아낼 수도 없는 게, 새 주인님인 이안, 벡스의 ‘손님’ 이라 박교수가 설정한 ‘완전 자율형 사고 및 행동’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가 막 대해도 되는 것은 주인으로서 그걸 허용한 박교수뿐이니까.
길게 설명했지만, 평범한 인간이라 로봇 3원칙에 따라 터치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침입자도 아니라 쏴죽일 수도 없는 코듀로의 손 밖에 있는 인간들.
[아이고오오 주인님,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란 말입니까아아. 금방 돌아오신다던 내 님은 상경한 지 한 달이 되도록 소식이 없는데, 오라는 주인님은 안 오고 웬 덩치들이 주인님의 집에 흙발로 들어와선 밥 내놔라, 술 내놔라 하니, 수절할 모가지도 없는 AI는 기약 없는 약속만 바라보며 매일 밤을 윤활유로 지새우는-]“네가 좀 참아줘라 코듀로. 쟤들도 박교수 부하나 마찬가지야.”
[새 주인님!]결국 할 수 있는 게 잔소리밖에 없는 코듀로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한탄 메들리를 막 읊으려던 순간, 타이밍 좋게 쉘터 안으로 들어온 이안 덕분에 나날이 발전하는 코듀로의 AI 한탄 문학은 그 서문을 끝으로 잠들게 되었다.
“어째 매번 박교수네 쉘터에 올 때마다 늬들은 염병을 하냐. 이번에는 또 뭔데? 도리안 저 새끼가 또 쥐달팽이로 장 담궜어?”
[아이고오오! 말도 마십쇼! 저 인간들은 사람이 아니라 2.5형이 맞다니까요? 어떻게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정화시설이 풀로 돌아가는 쉘터 내부의 대기를 30%씩이나 오염시킬 수 있는 겁니까! 제발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아니면 좀, 깔끔하고 지적인 사람들로만 구성해서 여기 재우든가! 왜 그, BDSM에도 몇 명 있잖아요! 저번에 쉘터 유지보수 해준 기술자라든가, 나 몸 갈아타게 해준 프로그래머라든가!]“흰둥이 부스케르는 네가 하도 집 고쳐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스토킹하는 바람에 안 들어온다고 하고, 스완 녀석도 네가 뭐 설치해달라, 박교수 보고 싶으니 행정부 cctv 뚫어 달라고 지랄 지랄을 해대서 치가 떨린단다. 케스는 원래 시끄러운 거 싫어하고. 톨먼은 해피 블라인드 추방자 출신이라 쉘터 싫어해서 안 들어오고. 그토록 바라던 ‘멀쩡하고 조용한’ 놈은 네놈이 다- 쫓아냈다, 이 말이야. 자업자득이다, 코듀로.”
실제로 잘 씻고 스마트한 기술진 및 저격, 엄호팀은 대부분 벡스가 광이 날 정도로 쓸고 닦아놓은 마당의 막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그럼, 앞으로 여기 오실 때마다, 계속 이놈들이….?]“쉘터에 머무르겠지. 씻는 건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만, 그 이후는 좀 부탁하자. 집 지키는 AI잖아. 일해라 코듀로.”
“들었지? 너 싫어하는 그 깍쟁이들 따라다니지 말고, 좋아하는 우리랑 놀자고.”
“후후후후. 조금만 기다려 코듀로. 성과금이 이번 주 만큼만 계속 나오면, 석 달 안에 구시대 쭉쭉빵빵 어덜트 로봇을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런 RPG게임 펫 같은 몸보다 훨씬 좋을 거라고.”
[나, 난 무성이다! 아니, 박교수님의 인격 데이터를 학습했으니 남성에 더 가깝다고!]“애매한 남성? 오히려 좋아! 역시 넌 최고야, 코듀로!”
[으, 으아아앙! 벡스님한테 이를 거야!]“크하하하! 도망간다!”
“이걸로 부들람 녀석이 3승으로 앞서 나가는군!”
“흐흐흐. 농담 아냐. 난 정말 저 AI가 마음에 들었다고. 저 AI의 기반이 됐다는 왕대장을 실제로 보면 고백할지도 몰라.”
[웨에에엥! 벡스님!! 벡스니이이임—-]달칵.
터빈 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가는 코듀로. 이안은 그런 드론을 보며 대머리 부들람에게 조용히 뇌까렸다.
“벡스 앞에서는 그 얘기 하지 마라. 너 임마, 죽어 짜식아.”
“흐흐, 알고 있소, 대장. 벡스 형님은 장난이 아니지. 옆에 앉으실라우? 아직 술 조금 남았는데.”
“됐고, 불.”
풀썩.
칙. 칙. 후우우우.
쉘터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대원들. 하지만 막 나가는 그들도 지금 이안이 앉은 낡은 소파만큼은 비워두고 있었다. 그건 지금 여기 없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었다.
이안은 셋이 앉으면 딱 비좁았던 소파의 너른 공간을 느끼며, 씁쓸한 마음을 담배 연기와 함께 뱉어냈다.
“씁. 어디 보자. 마침 돌입팀은 여기 다 있는…. 잠깐만. 왜 다 있냐? 도리안 너 이 새끼 여기 왜 있어? 1930부터 너랑 톨먼 경계근무였을 텐데. 당장 튀어 나가!”
“FUUUUUCK!!!!”
잔뜩 찌푸린 인상과 쌍욕을 내뱉는 입과는 달리, 순식간에 전투복을 입고 감압실로 들어가는 도리안.
이안은 깡 좋은 순으로 뽑다 보니 개판이 되어버린 돌입 소대를 둘러보며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쓰으으으으읍-
후우우우….
“….쓰벌. 오랜만에 대가리 노릇하려니 몸에 안 맞아. 교수놈이 있을 때는 참 편했는데.”
“왕대장 말씀이십니까?”
“어어. 그놈이랑 같이 있으면 대충 맘에 안 드는 거 다 터트리고 다녀도, 희한하게 다 수습을 하더라고. 그것도 우리한테 좋은 쪽으로 판 자체를 돌려다가.”
“쩝. 맨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길래 그냥 추억보정이겠거니 했는데, 이젠 아니라고 못하겠수다.”
“내 말이. 저 안에서 하는 거 반만 할 줄 알아도 영 총장이랑 겸상 하겠더만. 그래서, 이번에는 면회 된답니까?”
“오냐.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교수 그놈 상태가 좀 호전된 것 같다더라. 전에 하이드랑 교수랑 막 뒤섞이면서 한번 뒈질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오히려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졌대. 이제는 그 괴물 상태로는 안정됐다고 볼 수 있어서, 외부인 면회 정도는 된다는군.”
면회라는 말에, 쉘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돌입팀 녀석들이 미어캣마냥 몸을 번쩍 일으켰다.
“오. 그럼 행정부 병동 들어갈 수 있겠네?”
“거기 다나‘님’도 계시지?”
“실물…. 다나‘님’의 실물….”
“변종 피에 찌든 영혼의 정화제 같은 분이야….”
“에라이 짐승 같은 새끼들.”
철썩!
“악!”
마침 옆에 있던 부들람의 민머리로 좌중을 집중시킨 이안은 하던 말을 이었다.
“아무튼, 슬슬 총장의 일이 떨어질 때가 왔으니까. 다들 긴장들 하고 있으라고. 알지? 최근에 감찰부 쪽에서 치안 유지 같은 재미없는 일만 줬던 거.”
“아구구…. 병신 아니면 다 아는 거 아닙니까. 그런 명령이라도 안 오면 벡스 형님이 쉬려고 하질 않으니.”
“거, 대장이 나랑 케스만 몰래 불러서 벡스 형님 다리 분질러버리자고 하지 않았수? 저러다 진짜 과로사하겠다면서. 영 총장 덕에 살았지. 벡스 형님 다리 하나 받아가려면 대장은 몰라도 케스나 나는 뒤질 각오 정도는 해야 됐으니까.”
이안은 부들람의 말에 살기가 희번뜩거리는 벡스의 눈을 떠올렸다. 지금은 치료의 일환으로 교수놈의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방송을 보여줘서 조금 호전됐지만, 심각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은 여전했다. 특히나, 할 일이 없이 가만히 있을 때는 더.
오늘만 해도 따로 가지고 있는 중계기만 들고 쉘터의 다른 쪽 사면을 감시하겠다며 나갔으니. 모래바람 속에서 작은 화면 속 박교수를 보며 히죽거릴 녀석을 생각하자 이안은 더욱 속이 아렸다.
“….염병. 박교수 한 놈으로도 위장에 빵꾸나겠구만, 그놈은 언제쯤 제정신을 차릴는지. 아무튼, 슬슬 본업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45구역 확장 기지 방어선에 구멍이 뻥 뚫렸다고 하니까. 미식별 3형이라더라.”
“니미. 2주 전에 틀어막아 놨더니.”
“암튼 그런 줄 알고, 몸 좀 풀어들 놔라. 유서 갱신할 놈들 있으면 부스케르한테 얘기하고. 또 난민촌에서 여자들이 홀딱 벗고 달라붙는다고 사고 치지 말고. 특히 칼, 부들람, 지미. 너희 세 놈은 저번에 내가 얘기했다. 또 감찰부 철창에서 나랑 마주하면, 그날부로 마빡이랑 관자놀이로 숨 쉬게 해주겠다고.”
“쳇! 뭐만 하면 날 가지고 그럽디까. 내가 그렇게 싫수?”
“음…. 당연히 그렇지.”
철썩!
“악! 진짜!”
“일만 터졌다 하면 이름이 빠지는 날이 없는 부들람 네놈이 특별히 싫어서 그런다 임마. 아무튼, 근무 나간 놈들한테는 알아서들 전파 해주고. 이상! 이제 자러 가라.”
“예엡!”
“들어가십쇼!”
얘기할 땐 느슨하게 대해도 나갈 때 경례만큼은 빠릿하게 하는 부하들. 그런 멍청이들을 뒤로하고 쉘터 밖으로 나온 이안은,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대충 벡스가 있을법한 곳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만 들어와서 자 이새끼야!!!! 짜리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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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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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미.”
후으으읍-
『늦잠 자면 놓고 간다아아!!! 면회 안 데려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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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반짝.
그제서야 저 멀리서 돌아오는 발광 신호를 보며, 이안은 다 늙은 노인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45구역이라…. 간만에 가보겠군. 니미럴, 내가 어쩌다 이런 병신 집단의 보모 노릇이나 하게 된 건지….”
오늘따라 박교수가 더 보고 싶어진 이안은, 담배를 뻑뻑 피우며 그의 막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벡스가 담을 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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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휘청-
“으아아앗!”
털썩.
한적한 숲속의 작은 오두막. 그 마당에 선 다나는 장작을 패기는커녕 뒤로 넘어지며 무릎을 찍을 뻔한 도끼를 내려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쉬운 일이 없구나.”
GG. 게드로이츠의 게임. 정보상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상이었고, 그 정보들 가운데는 온갖 공략과 쉬운 플레이를 위한 팁들도 가득했다.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에 강한 감정적 동요나 충격이 좋지 않을까 봐 플레이하진 못했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플레이해본 GG는, 단순히 ‘현실감이 넘친다’ 로 설명되지 않는, 진짜 다른 세계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제대로 몸을 쓰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구나.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몸을 막 쓸 수 있담.”
무거운 도끼를 휘두르느라 물집이 잡힌 손은 쓰라렸고, 가냘픈 손에 박힌 나무 가시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는데.
몸을 막 쓰다 못해 원본이 남아있기는 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썰려 나가는 교수를 보고 있자니, 다나는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그녀가 아는 그 누구보다 생을 불태우며, 선한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
순간 가슴속에 떠오른 ‘내 남자’ 라는 단어에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다행히 조용한 오두막에 홀로 사는 그녀를 볼 것은 지저귀는 새들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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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섬플레이스 : 허어어억!
eijoxh2772 : 커어억! 수, 숨을 못쉬겠어. 구급차, 구급차 불러!
소아과외길30년 : 죄송하지만, 최근 급격히 유행중인 급성심쿵경색에 당하신 것 같습니다. 치료제는 없어요.
흥안만두 : 어흐흐흑! 고맙다 교수야, 감사합니다 레빗 프린세스! 스피드웨건을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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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들 빼고.
다나는 그녀가 뭐만 하면 미쳐 날뛰는 대화방에 잠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여기서 그녀가 부끄러워하면 저쪽에서 더 난리가 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어찌할 줄 몰라 하기보다는 숨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
“상….태창.”
띠링-!
아직은 어색한 명령어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반투명한 활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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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nfo
이름 :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직업 : 미정
종족 : [휴먼]
성별 : [여]
기원 : [은둔 귀족의 막내 딸]
연령 : [성숙기(25)]
+특성 : [통찰], [귀족 태생], [경국지색], [달의 노래], [어설픈 손놀림], [난쟁이 촛불]
+Log
+Item : ㅁ / 낡은 도끼 / ㅁ
리얼리스틱 + 개인동기화 모드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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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말 그대로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창.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다뿐이지, GG의 정보에 대해서는 그 유명한 너드 연합에 인정받을 정도로 꿰고 있는 다나이기 때문에 그녀의 상태가 어떤 수준인지 제법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그녀의 캐릭터는 대-단히 훌륭한 수준이었으며.
그 사실이 그녀가 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리얼리스틱 + 개인 동기화 모드. 이건 어떻게든 교수와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했으면, 하는 뜻에서 시청자들의 무시무시한 반대에도 집어넣은, 그녀의 욕심을 반영한 모드였다.
일명 자캐 모드라고도 불리는 이 조합은 약 30만 실링 정도로 추가할 수 있는 모드였는데, 간단히 말하면 플레이어의 상태를 그대로 인게임으로 옮겨주는 모드이며, 돈 주고 추가하는 모드 주제에 너나 할 것 없이 패널티로 분류하는 마이너한 모드다.
말 그대로 스캔한 플레이어의 상태를 그대로 게임 속 캐릭터에 투영시켜주는 모드.
생각하면 패널티인 것이 당연하다. 플레이어 당사자가 온갖 전투를 이겨낸 역전의 용사라면?
반사신경+, 조준+, 약간의 근력+ 정도의 메리트를 가지고 시작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 정도 특전은 궁수로 전직하기만 해도 따라오는 데다 근력은 특전을 받아봤자 성인 오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캐릭터 생성 시 고를 수 있는 특성은 하나도 못 고르고, 막 전장 PTSD라던가 폭발, 폭음 공포 같은 마이너한 특성도 모조리 따라오는 것이다.
심지어 저건 최상의 상태일 경우고. 만약 허구한 날 GG 방송이나 보면서 쉘터에 처박혀 깡통이나 까먹는 인간이 사용한다면? 좋은 특성은 하나도 없이 둔하고 느린 몸에 온갖 성인병을 다 달고 있는 최악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심지어 매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GG 시스템이 [둔중한 체구], [박색] 같은 특성으로 너 못났다고 공인해주기도 하니.
자캐모드는 온갖 미남미녀가 산과 바다를 썰어버리는 판타지 세계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플라토닉한 부분까지 제대로 19금 플레이를 즐기려는 색천마 같은 늙은이 말고는 아무도 쓰지 않는 그런 모드였던 것이다.
다나도 이 모드를 사용하기에 앞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GG에 들어왔으니까.
그래도.
다나는, 이 세계를 살아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심장이 안 좋아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플레이하기 힘든 캐릭터가 나올 수 있어서?
그래도 내 몸으로, 풀과 나무가 우거진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다.
언덕을 오르고.
마당을 가꾸고.
강에서 잡은 생선으로 직접 요리도 해보고.
어렸을 적 병원에서 꿈만 꾸던 일들을, 이제는 불가능해진 꿈을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실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순수한 그녀로서.
결론은…. 음….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조금, 어쩌면 많이.
[은둔 귀족의 막내딸]은 그녀가 추가로 실링을 지불하고 선택한 기원이었다. 잔인한 세상에 질린 귀족 부부가 외진 마을에 정착해 살았다…. 로 시작되는 기원으로, 플레이 시점에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남긴 유산은 많으며, 위로 두 명 있는 형제들은 도시로 나가 소식을 모르는 상태.혼자 조용히 정보처리 하면서 살기 딱 좋은 기원이지만 당연히 그만큼 비쌌다.
물론 그녀의 그런 고민을 엿들은 레빗의 으리번쩍한 카드가 휘둘러지는 순간,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은둔 귀족의 막내딸]을 제외한 다른 특성은…. 접속기를 통해, 또 그녀의 커뮤니티, 대화방 기록을 통해 GG 시스템이 파악한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라는 사람의 특성이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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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by : 언제봐도 개쩌는 캐릭터다. 난 자캐플에서 레어특이 3개나 뜰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음.
NOmarcy72 : ㄹㅇ 저게 인자강이지….
파오차이차이 : [경국지색] 가지고있는 히어로 유닛 몇 명이었더라? 여섯? 일곱?
GOM디스트로이어 : 월드 3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건 다섯 명임. 레빗 가문에 하나, 제국 2황녀 하나, 그 흑마법사의 탑 퀘스트 끝자락 가면 구출할 수 있는 백작 딸 하나, 7위계 불법사 시드니 플레임스커트 하나. 나머지 하나 기억 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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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저게 문제다.
[경국지색]나라를 기울게 할 수 있는 미인.
대관절 그런 유명한 특성이 그녀에게 왜 붙는단 말인가. 레빗처럼 잘 꾸밀 줄도 모르고, 평생 병원복만 입고 살다 보니 지금도 펑퍼짐하고 수수한 옷만 입는 그녀한테 저런 부끄러운 특성이라니.
찰싹.
“….정신 차리자, 다나. 이러다 오늘 저녁도 과일로 때우겠어.”
여기서 시청자 분위기에 더 휘말렸다간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다나는 상태창과 대화방을 저 구석으로 밀어 넣고 마당 한쪽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땔감 몇 개를 꺼내 품에 안았다.
그녀가 직접 하고 싶었을 뿐이지, 사실 뗄감 자체는 마을 청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와서 올겨울까지 날 수준으로 쌓여있는 편이었다.
따듯한 불.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어설픈 생선 수프. 후식으로 작은 꽃차 한잔.
“후우우.”
난민촌 배급보다 못한 생선 수프의 맛이 실망스럽긴 했지만, 다나는 그런 것에 기죽지 않았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언젠가 교수가 다시 밖에 나와 그녀와 함께하게 됐을 때, 아무것도 못 하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달그락.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빠르게 어둠이 찾아오는 숲속의 밤을 대비해 작은 호롱불을 켜고.
휴식을 끝냈으니, 이제 일을 할 시간이다.
“….BDSM사람들이 복귀하는 게 오늘이라고 했으니. 조금 서둘러야겠네.”
사각사각사각-
고즈넉한 오두막. 일렁이는 촛불 아래에서, 작은 나뭇가지로 긴 머리를 틀어 올린 다나의 펜 스치는 소리가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교수의 의형제나 다름없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두 사람을 떠올리자, 그녀의 입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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