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39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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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엔진 정지! 밖으로 나와 소속과 신원을 밝히십-”
“어이, 고생 많다! BDSM 이안이다! 뒤에 떨거지들은 우리 애들!”
삼엄한 경계를 자랑하는 거주 구역 외곽. 해치 밖으로 나온 이안이 선글라스를 벗어 보이자, 그가 나올 때부터 알아본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총구를 거뒀다.
“여, 영광입니다, 메탈죠 님! 인원은 나가실 때 그대로 기입하면 되겠습니까?”
“….달리아랑 미치. 두 명 빼.”
“고생….많으셨습니다!”
통과- 하는 소리와 함께 고철 합판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강철문이 좌우로 열렸다. 지금은 저런 스캐빈저 소굴 같은 모습이 됐지만, 처음 준공될 때만 해도 돔의 최신 기술이 잔뜩 들어간 멋들어진 게이트였는데.
문과 연결된 외벽이 통째로 안으로 우그러든 모습에서 이곳이 얼마나 치열한 전장이었는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치직-
“로니. 속도 줄여라. 앞에 애들 돌아다닌다.”
[에헤이. 전차장님. 제가 전차 시야각도 모르는 초보인 줄 아십니까?]“다리 짧아서 악셀에 블록 쌓아놓고 밟는 놈이 건방 떨기는.”
[에이, 실력이 나이에 비례해서 늘면 돔의 노인들은 전부 역전의 용사겠습니다?]쯧. 이안은 전차 통신기를 통해 들려온 소년의 유들유들한 목소리에 혀를 찼다. 역시 애들은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더니. 오래전 중상을 입은 벡스의 등 뒤에서 부들부들 떨던 소년 전차병은 어디 갔는지 능구렁이 같은 말투에 심상치 않은 발육을 자랑하는 13세 소년 전차병만 남아있었다.
치직-
[그러게 제가 로니랑 부들람 같이 노는 거 말리자고 했잖습니까. 뭔 열세 살짜리한테 웨이트 파트너 시킨다고 지랄을 한다니까요.]“조기교육이 중요하다면서 ‘화류계의 왕’ 시절 네놈의 이야기해준 놈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도리안.”
[낄낄낄낄. 뭐, 본인이 만족 한다잖습니까. 그런데 벌써 난민 구역입니까? 방금 외벽 넘어온 것 같은데.]“그러게. 난민촌이 벌써 여기까지 뻗어 나왔군.”
이안은 38구역의 사건 이후, 24시간 전쟁터나 다름없게 됐던 47구역 외곽을 떠올렸다.
몰려오는 변종을 피해, 더러는 바로 옆에서 변종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피해 생존자들은 인근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과 지역 방어시설을 가진 돔으로 몰려들었고, 돔은 급박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대응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멀리 방어선을 만들고, 그 안에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피난민이라고는 해도 전부 황무지의 생존자들이라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간 전부 폭동으로 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파직- 파지직-
‘….확실히 영 총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긴 하지.’
첫 두 달간 매일같이 고막이 찢어지도록 들려오던 거치 기관총의 소음이 지금은 없는 이유는, 영 총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가지고 있는 일렉트로 폴을 모두 최대 출력으로, 24시간 전개해서 외곽 방어선에 전자기 그물로 된 벽을 만든다.’
간단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일렉트로 폴, 돔의 전자기 그물을 올리고, 돔 근처에서 엑소 슈트의 활동 영역을 늘려주는 충전소 역할도 하는 방어전략의 핵심이 되는 전자장비.
구시대의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도시 방어 장비인 만큼 그 효과는 대단했지만, 문제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운용하면 장비의 수명이 다해버린다는 데 있었다.
일종의 변압기인 만큼 제우스 같은 장비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마모되는 부품을 재생산하는 게 불가능한 장비였다.
지금과 같은 상시 운용 덕분에 47구역 외곽을 빙 두르는 변종 차단선이 확보되었고, 안정된 방어선 덕분에 돔 내부와 인근 난민촌의 생활상도 점차 안정되고는 있었지만.
치이익-! 푸쉬이익-
“238번 폴- 교체! 전원 내리고! 천천히 빠져! 휘어지면 큰일 난다!”
그그그긍- 덜덜덜덜덜-
지금 저 앞에서 과열로 교체되는 일렉트로 폴처럼, 대부분 한계까지 운용하는 만큼 그 수명을 급속도로 깎아 먹고 있는 처지였다.
앞으로 1년. 1년이면 현재 운용 중인 일렉트로 폴의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렙터의 전차탄을 막아주던 강력한 전자 그물이 1년 뒤에는 사라지는 것이다. 반 이상 줄어버린 엑소슈트의 무충전 가동범위와 함께. 그때가 되면….
‘전쟁이 재개되겠지. 어떤 식으로든 돔의 구역 안에 렙터의 스파이가 숨어있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변종 시체로 그 역겨운 바이오 디젤을 잔뜩 확보해 모든 병력을 움직이는 데 부담이 없어진 렙터 소사이어티가 쳐들어올 것이다. 지금도 환영처럼 그를 괴롭히는 사람 타는 냄새와 함께, 지난번 전투는 소규모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전차가.
이안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폴의 열기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난민들을 보며, 어쩌면 그의 삶에서 전쟁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의 뒷맛이 씁쓸했다.
“….쯧. 어이, 도리안. 술 남은 거 좀 있냐?”
“예? 아니, 돈도 많으신 분이 왜 맨날 부하들 삥을 뜯으십- 아욱! 이, 있습니다! 있어요!”
“임마, 내가 난민촌에서 나오는 밀주 사주지 말라 그랬지. 사주는 놈이 있으니까 더 만드는 거라고.”
“으으으, 이젠 밀주 아닙니다. 내부 안정되면서 슬슬 식량 자급 수준도 회복됐다던데요? 음지 생활하던 놈들이 남은 감자로 만든 겁니다, 이거.”
“어디 보자…. 문 글로우? 문 샤인 짝퉁이냐?”
“히히히. 파는 놈들이 그러더라구요. 황무지가 샤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달빛이 제대로 비치는 동네가 아니니. 밀주 시장도 세상사를 반영해야 한다면서- 으악!”
“잘하는 짓이다. 아주 뒷골목 놈들이랑 농담도 따먹고. 의형제도 맺지 그러냐.”
퍼억!
탄약수 석에 기댄 도리안의 머리통에 발길질을 하며, 이안은 그가 내민 플라스틱 생수통을 받아들었다.
‘전에는 썩지 않아 문제라던 플라스틱이, 지금은 잘 썩거나 변하지 않는 성질 덕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으니. 이거야 원.’
살짝 찌그러진 플라스틱 속에 뿌연 밀주와 그걸 반쯤 감싼 종이. 그 위에 마구잡이로 써진 Moon glow 라는 글자를 보고 있으면 딱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꿀꺽-
“크으으. 졸라 밍밍하네. 얼마 주고 샀냐? 천오백 실링 보다 더 줬으면 바가진데.”
“오천 줬습니다. 아, 그건 제가 아껴먹는다고 중간에 물 타서 그렇습니다.”
“에라이.”
그와 도리안이 실랑이 하는 사이, 바가지 같은 것을 들고 전차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떼어내기 위해 뒤에 따라오던 무장 트럭이 거칠게 크랙션을 울리기 시작했다.
모여드는 인파와 악다구니 속에서, 저 멀리 돔의 푸른 장막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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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그래서, 팼냐?”
“어….음…. 약간?”
“아니, 몽부장님! 사정을 들어보라니까요? 그게 그냥 구걸하는 사람들이면 적당히 밀고 가겠는데, 그 망할 새끼들이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쌔벼 간다니까? 상판에 체결된 방수포나 연료 같은 거. 그 정도면 우리 탓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탓하는 게 아니라 잘했다고 해주려고 했는데.”
감찰부 차고.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감찰부 정비팀에게 전차와 무장 트럭을 맡긴 BDSM 구성원들은 저마다 휴식처를 향해 헤어졌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있고, 같이 피난 와서 난민 구역에 머물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화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유지보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이안은 특별히 사고만 치지 않으면 대원들이 돔에서 뭘 하든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잘해? 내가 약간이라고 표현하긴 했는데…. 사실 어디 부러진 놈이 한둘이 아니었는데도?”
“이안 당신 성격이야 돔에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것까지 감안해서 잘했다고 한 거야. BDSM이면 여론이 하늘을 찌르니 그런 막 나가는 놈들 좀 팼다고 해서 욕먹을 것 같지도 않고. 감찰부는 뭐만 하면 강제노동에 이어 이제는 폭력 탄압이니, 자유의 기치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온갖 잡설이 커뮤니티에 도배된단 말이지.”
랄프 몽클라르. 감찰부의 부장이자 교수, 에젤의 친인인 그는 밖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는 오히려 잘했다는 듯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난민이지 그 안에 스캐빈저부터 오만 놈들이 다 섞여 있거든. 특히 제우스 벨리 근처는 제법 암시장도 형성되어있고 말이야.”
“암시장이라…. 이런 거?”
탁!
몽클라르는 이안이 던진 빈 페트병을 솜씨 좋게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거. 문 글로우 같은 밀주가 대표적이지. 일단 아직 마약이나 무기류는 없으니, 돔에서는 시장경제 회복의 신호라는 생각으로 지켜볼 생각이야. 이따 시간 나면 대원들이랑 같이 가봐. 꽤 재밌는 것도 많이 팔더군. 거긴 돔 외부라도 계곡이라 먼지도 없어서 놀기 좋아.”
“….그럼 그게 왜 암시장이야? 그냥 시장이지.”
“그래서 감찰부에서 그쪽에서 관리인 비스무리한 역할을 하는 무리한테 허가해준다고 했는데, 그냥 암시장으로 남고 싶다고 하더라고. 시장보다 암시장이 더 좋은 물건이 많아 보인다나?”
웃기는 얘기였지만, 속으로는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이따 애들이랑 같이 가봐야겠군.”
“그래. 복귀했을 때 잘 쉬어두는 게 전장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길이니까. 그 키 작은 친구는 어디 갔나?”
“아. 벡스? 신시아 데리러 갔을걸. 이제 곧 면회시간이라.”
“….그래. 잘 보고 오고. 푹 쉬라고, BDSM 대장 나으리.”
“어이, 땡큐. 몽클라르.”
“아, 저도 면회 가야 돼서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몽부장님!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해요!”
“술 말고! BDSM 활동 보고서 들고 와라! 감찰부 양식에 맞춰서 써가지고 와!”
“이미 써서 제 차량 글러브 박스에 넣어 놨습니다아~~”
“몇 호차!”
“무장 트럭! 4호차요오오오-”
이안과 함께 멀어지며, 말꼬리를 쭉 빼는 에젤.
“….저 새끼. 평생 애 같을 줄 알았더니, 다 컸네 이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랄프의 입가에 반은 후련하고, 반은 서운한 묘한 표정이 어렸다.
멀어져가는 에젤의 가죽 잠바에는 커다랗게 B,D,S,M 네 글자를 움켜쥔 검은 손아귀 마크와, 감찰부 마크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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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루룩-
“오랜만이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군. 4주 만인가? 이안.”
“그렇지. 그러니 이렇게 자리까지 차려서 마주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이 알렉산더 영이라는 남자가 불편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딱히 옆에 경호원이 있다 한들 진짜 전투가 벌어지면 그를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그냥 묘하게, 이 남자랑 얘기하고 있으면 끌려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그랬다.
아무튼 가구부터 담배 취향까지 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는 남자였다.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작은 찻잔에 든 게 차가 아니라 데운 술이라는 정도?
“매일 사지를 돌아다니는 사람한테 한 달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지. 그래, 교수 그 친구를 보고 오니 어떻던가. 많이 괜찮아졌지?”
“….그걸 괜찮아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래, 보고 왔다. 매번 귀찮아 죽을 것 같은 15분가량의 소독 과정도 마치고, 내 몸 같은 화기와 폭탄도 맡겨두고, 에젤이랑 벡스, 신시아까지 우르르 몰고 그놈이 있는 곳에 갔다 왔다.
무슨 대형 마네킹마냥 철제 프레임에 걸쳐 세워져 있는 몸은 확실히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4, 5미터는 되어 보였고.
인간의 형태로 확실히 돌아오는 몸과 달리 뻥 뚫린 가슴과 여기저기 구멍이라도 난 듯 비어 보이는 내부는 전혀 회복된 기색이 없었다.
레일건으로도 뚫리지 않는다는 검은 외피로 둘러싸인 몸은 생체 병기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가운데.
그 무시무시한 몸 옆의 화면 속에서 게임 속 동료들과 활기차게 생활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감정이 몰아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교수의 모습은 치료라기보다는 수리에 가까운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
‘교수님의 몸은 생명체의 원형 자체를 변화시키는 [상자]의 광선에 가장 높은 출력으로 노출됐습니다. 아마 저 활짝 열린 흉부와 사라진 내장 일부는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아으으-! 으아! 아으으으!!!’
‘그럼…. 교수는 회복해도, 영원히 이렇게 병원 신세란 말이오?’
‘아뇨. 다행히 신체 능력 자체는 인간에 비해 월등히 우월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전투 사이보그 시술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보이구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렙터의 그 너절한 동력인간 수준의 사이보그는 아니니까. 사실 인공 장기와 금속제 피부를 약간 덮는 수준이라고 봐도 좋아요. 워낙 생명력이 준수하고, 변종화된 육체의 자체 출력이 좋아서 시도하는 것뿐이에요. 가슴이 좀 서늘한 사람이 되는 것 말고는 전과 차이가 없을걸요?’
———
‘망할 사이코패스 같은 년.’
작아진 교수 옆에 걸려있던 이상한 철판과 기계 부품이 설마 그 몸에 들어갈 것일 줄이야.
의젓한 척하던 신시아가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그 아이를 안고 있던 벡스가 뭐라도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달싹이며 신음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을 봤을 때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을 참아내느라 주먹이 하얘지도록 꽉 쥐어야만 했다.
뭐가 괜찮아졌단 말인가. 방송 화면 속 활기찬 녀석을 보고있을 때면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지만…..
꽈아악!
이게 현실이었다. 괴물, 심지어 이제는 기계화 괴물이 될 친구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자신. 터트리고 부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메탈죠.
무력감과 자괴감 속에 이안 떨고 있을 동안, 다나는 그 정신 나간 여자 과학자를 붙잡아 시술 과정에 대해 매우 공격적으로 캐묻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는 사이코패스 과학자조차 몸을 사리게 할 정도였다.
“가끔 보면…. 제수씨가 어떻게 저렇게 차분할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야. 쇠말뚝 같은 그 손가락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더군.”
“다나 양은 강한 여성이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교수가 살아날 확률을 묻지 않았지. 그저 ‘돌아온’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질문했을 뿐. 의심조차 하지 않는 거야. 교수 저 친구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는.”
“그렇겠지. 참…. 박교수 저놈도 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놈이야.”
이안은 감시카메라의 화면 속에 비친 네 사람이 ‘저 모습’의 교수 앞에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그의 몫으로 나온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홧홧한 기운과 함께 우울함에 찌들어있던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그래. 어떻게든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야.”
“지금으로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하는 수밖에 없네. 가까스로 그가 저 가상의 세계에서 회복한 그의 자아를 이끌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 저런 몸 상태로 쇼크사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썅. 기분 거지 같군.”
벌컥!
작은 찻잔 속 독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이안에게, 총장은 그의 찬장에서 커다란 술병 하나를 꺼내 병째 넘겨주었다.
제법 고급스러운 병과 달리, 반쯤 감싼 누런 종이와 숯을 갈아낸 물로 쓴듯한 그 이름이 심히 익숙했다.
[Moon glow]어째 오늘 자주 보는 이름인데.
“당신 이런 것도 마셔?”
“새 시대를 기념할만한 술이라 생각하여 내 콜렉션에 넣어두었지. 문 글로우, 감자와 옥수수, 사막토끼의 간이 들어갔다네.”
“사막토끼 그거 맹독성 아니었나? 좆밥같이 생겨서는 독성이 너무 강해서 스캐빈저들이 무기로도 쓰는 놈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간과 쓸개에는 독이 없다는군. 어떤 미치광이가 만지는 족족 죽어 나가는 그 맹독성 생물의 내장을 맛볼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나, 뭐. 복어를 처음 먹고 살아남은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겠지. 여하튼간, 이 시대에 새로 태어난 종의 주류라고 할 수 있지.”
“새 시대라….”
불투명한 액체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안은, 독살의 가능성을 접어두고 단숨에 병 안의 내용물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의외로 도수가 그리 높지 않고 단맛이 강했다. 놀랍게도…. 먹을 만했다.
“….괜찮네. 새 시대. 새 술. 새로운 메카 교수. 시발 진짜 지랄이 났군.”
“이해해줘서 고맙네. 다나 양을 설득하는 데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거든.”
“거, 기왕이면 명치에서 빔 나오게 해주쇼.”
“시도 중이네.”
“손끝에서는 기관총이 나오고, 무릎에서는 캘버린 포가 발사되는 것도 좋겠네.”
“….자네, 제정신인가?”
“크흐흐흐. 기왕 강철 인간이 될 거면 확실한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결단이 빠른 사람답게 이안은 교수가 반쯤 인조인간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떤 무기를 달아주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고민을 한 것 같군. 자네가 이 자리에서 총기 난사할 것까지도 각오했는데.”
영 총장은 히죽거리는 이안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이번 의뢰 내용이 적힌 서류철을 내밀었다.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45구역에 발생한 3형 변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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