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4
Chapter.3 그 한 줌의 은화를 위하여(6)
***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저기, 그, 그…. 방금 지나온 그….”
“마켓?”
“그래! 마켓! 아무튼, 거기서 적당히 털어먹고 빠지는게 좋지 않았을까?”
“쯧쯧, 벡스, 그게 아니지.”
스캐빈저 무리가 점령한 마켓을 지나 지하 2층으로 가는 길목, 교수와 벡스는 엘리베이터 줄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분명 네 입으로 말했지, 이건 ‘천금 같은’ 기회라고.”
“그렇….지?”
“그럼 ‘천금 같은’ 기회를 붙잡았는데, 한 10금~15금만 얻어오면, 손해일까? 아닐까?”
“음…. 그래도 얻은 게 있으니까, 이득?”
“아니지! 세상에는 기회비용 이라는게 있다고 임마!”
“악! 햅번! 나 밀지마! 떨어져!”
위에 있던 내가 도움닫기 삼아 벡스의 어깨에 발을 들이밀자, 녀석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수는 눈대중으로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문과 그의 거리를 가늠했다. 충분해보였다.
“떨어지기는. 니가 전깃줄 타고 날아다니는걸 본 게 바로 어젠데. 엄살 피우지 말고 좀 받쳐줘 봐. 저기 좀 뛰어서 건너가게.”
“악! 문! 열려있는데! 그냥 반동으로 넘어가면 되잖아! 팔 뻗으면 닿겠구만! 끝부분 잡고 기어올라가면되지!”
“쓰읍- 형 말 들어. 줄 단단히 잡고 있어라!”
“저건 지 필요할 때만- 아욱!”
벡스의 어깨를 힘차게 박찬 교수는, 멋들어진 자세로 엘리베이터 출입문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한참 남는구만!”
“흐흐, 부처님 가라사대, 현자는 달을 가리켜도 바보는 손가락을 볼 뿐이라더니. 이거 봐라, 이거. 내 이럴 줄 알았지.”
교수는 마체테를 꺼내 랜턴에 불을 켜고, 빛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열려있던 엘리베이터 입구에 다가갔다.
“어이, 벡스.”
“잠깐만! 넘어가고 나 좀! 바로!”
“아니, 거기서 내 쪽 보고 있어 봐.”
교수가 랜턴을 바닥 가까이 비추자, 얇은 인계철선이 랜턴의 불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부비트랩이야. 그냥 뛰었으면 우리 둘 다 걸레짝이 됐을걸?”
“!”
“음…. 보통 이런건 장력식이랑 장력해제식을 같이 해놓는데, 이건 급해서 그랬는지 장력식 하나만 있군. 그럼 해체하기 편하지.”
장력식은 당기면 터지는 것, 장력 해제식은 끊으면 터지는 것으로 같이 있으면 골치아프지만, 이렇게 하나만 있으면 해체하는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선을 따라가 끝에 있는 폭발물을 찾아, 트리거에 연결된 인계철선을 풀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폭발물은 황무지에서 자주볼 수 있는 금속 캔에 화약과 유리, 쇳조각 같은 것을 넣어 만든 깡통 폭탄이었다.
‘이건 거기에 수류탄용 안전 손잡이와 핀까지 써서 터지는 시점을 조절할 수 없다는 깡통 폭탄의 단점을 보완한, 제법 고급품에 속하지만. 어디 불발된 수류탄에서 분해한 부품으로 만들었겠지.’
“음, 벌써부터 수입이 나쁘지 않은데? 깡통 폭탄 하나에 인계철선 약간이라니.”
풀쩍-
벡스는 살짝 반동을 줘 넘어오더니, 인계철선이 있던 자리를 살피며 감탄했다.
“와, 그냥 점프하면 딱 무릎이 걸리는 자리였네.”
“귀한 폭발물까지 써가면서 만든 건데, 당연히 제대로 만들지.”
“밖에서는 매일같이 피 터지게 싸워도 이런 거 보기 힘들잖아.”
“그야 수지가 안 맞으니까. 저격 포인트가 널리고 널린 45구역에서 이거 하나 깔아놓고 적이 오기를 대기하느니, 다른 좋은 저격 포인트를 잡는게 훨씬 이득이거든. 대부분 이런 싸구려 폭탄 하나 만들 재료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여긴 다르지. 좁고, 어둡고,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한정되어 있고. 이런 트랩을 깔아두면 매우 효과적인 지형이란 말이지.
‘그리고 스캐빈저 주제에 그걸 알고 실행할 수 있는 놈이 있다는 것이고.’
“벡스, 긴장 단단히 해라.”
“이미 여기 들어올 때부터 하고 있었지.”
“그거 말고, 진짜 까딱하면 죽겠다는 느낌으로 하라고.”
왜냐하면 여기 앞에 있는 녀석들은, 진짜 제대로 된 놈들 같거든.
교수는 오래전 끔찍했던 시가전을 떠올리며, 랜턴에 불을 껐다.
***
또옥- 또옥-
천장의 갈라진 틈으로 물이 세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수인가…..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랬는지, 아니면 이번에 들어와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이제 오래 못버티겠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원형 테이블이 잔뜩 배치된 큰 방이 하나 나타났다.
“여기는…. 식당이었던 것 같지?”
“음. 그래 보이는군. 이거 봐, 포크랑 나이프야.”
교수는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식기를 옷에 쓱쓱 닦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스테인리스는 귀한 철이고, 당연히 비싸게 팔린다.
“그나저나 여긴 앞이 꽤 보이는데? 암적응이 됐다곤 해도, 빛이 없으면 못 보는 거 아닌가?”
“그럼 빛이 있다는 소리겠지. 전에 언더돔에서 한번 본 적 있어. 지상에 있는 햇빛을 지하로 보내주는 시설 같은 거.”
“햅번, 언더돔도 가봤어?”
“….어쩌다가.”
두 사람은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가득한, 이미 지나간 적들의 흔적과 변종의 시체들. 그리고….
“그아아아-”
“으으으-”
“으. 이건 좀.”
“음. 이곳 주민들이 그리 행복하게 살진 못했나 본데.”
주방처럼 보이는 곳에, 갈고리에 걸린 변종을 보며 둘은 신음을 삼켰다. 뚫린 자국을 보아 최근에 걸린 게 아니라 걸린 상태로 죽어서 변종이 된 것으로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그거 같지?”
“아마도. 이 정도 규모의 쉘터면 식량을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을 텐데…. 고기가 부족했나?”
“뭐, 의식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밖에도 그런놈들 많잖아.”
“아니면 부자 친구들이 즐기기엔 이곳에 여흥 거리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
뭐가 됐든 이곳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자명했다.
교수는 갈고리에 걸려 버둥거리는 변종을 살폈다.
‘손과 발, 턱을 날렸군. 웬만해선 죽지 않는 변종을 상대할 때, 시체를 태울 여유가 안 될 때 쓰는 방법이지만…. 이미 갈고리에 걸려서 위협이 되지 않는 녀석들을 굳이? 심지어 상흔으로 볼 때 손목 과, 발목, 턱을 날린 건 전부 총상이야.’
둘 중의 하나겠지. 저렇게 움직일 수 없는 변종도 확실하게 무력화 시킬 만큼 꼼꼼한 녀석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살아 움직이는 거에 납탄을 때려 박는 걸 선호하는 일반적인 스캐빈저거나. 둘 중 어느 쪽이라도 탄약 소모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녀석들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부비트랩에, 발자국으로 보아 인원도 제법 되는 것 같은데, 탄약도 넉넉하다라…. 벡스, 무기 뭐 있냐.”
“쿠크리 하나, 투척용 단검 세 개, 섬광탄 하나, 두발 들이 전 장식 권총이랑 탄 다섯 발.”
“뭐, 전장식? 그딴건 또 어디서 구했어? 그거 유효 사거리 10미터는 되냐?”
“내가 만들었지 뭐. 급할 때는 그래도 쓸만해.”
“급할 때라는건 신속하게 자살이 필요할 때를 말하는거냐?
‘벡스 쪽에 원거리 화기는 없다고 봐야겠군.’
교수는 자신의 조끼 안에 들어 있는 스물 네발의 샷건 탄을 생각했다. 어차피 화력전으로 가면 밀리니 최대한 전투를 피하며 내려갈 생각이지만, 점점 잦아지는 흔적이나 멀리서 울리는 폭음으로 보아 전투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각개 격파를 해야겠지.’
“벡스, 아까 투척 단검 있다고 했지? 쓸만해?”
“그럼. 이게 훨씬 편하다고. 총보다, 나한테는, 사람 죽이는데.”
하긴. 그 몸놀림이면 전면전 보다는 암습에 특화되어있겠지.
쿠우웅-!
폭발음이 복도를 울리며 귀에 불쾌한 이명을 선사했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곳이었다.
“….따라잡은 모양이군.”
“어떻게, 이번에도 피해?”
“….아니. 저렇게 폭발물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건 변종을 상대하고 있다는 뜻이지. 놈들의 뒤로 조용히 다가가서, 우리 대신 열심히 싸우는 걸 지켜보다가 길이 열렸다 싶으면 그대로-”
쓰윽-
교수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벡스가 즐겁게 받아쳤다.
“키히힛! 그거참 내 취향인데?”
벡스는 날로 먹을 생각에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
그로부터 5분 뒤.
벡스와 교수의 행복한 망상은 순식간에 박살나 버렸다.
“그아아아-!!”
“끄으으! 아아아아!!!”
“벡스! 벡스! 뒤로 물러나!”
“제기랄! 뭐야 여기! 전까지 방금 몇 마리 없던 쓰레기!”
퍼엉!
철컥!
“12발! 뒤로 빠지면서 싸워! 어차피 이거 다 못 죽여!”
“으아아아!!!! 망할!”
은신 상태는 훌륭했다. 벡스는 정말 소리 없이 걸었고, 나도 조용히 다니는 것은 제법 자신 있는 편이었으니까.
이변은, 저 멀리 화약의 섬광이 눈에 보일 때쯤 일어났다.
자그락-
“!”
“!!!”
깨진 유리 조각. 혹여 저쪽에 있는 녀석에게 들킬까봐 랜턴도 끄고 움직이던 우리로서는, 발밑의 조그만 파편까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툭툭-
“[뒤로 / 물러서]”
“[전방 / 적]”
벡스의 신호에 앞을 보니 근처를 배회하던 변종 하나가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자그락- 자그락-
“!”
“!!!”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유리 조각 밟는 소리가 놈의 걸음마다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전방 / 파편 / 전체]”
“[함정 / 함정 / 함정 / 함정]”
“[도주 / 후퇴 / 적 / 증원]”
“에이 썅! 말로 해 말로! 어차피 걸렸어!”
“햅번! 함정이야!”
“나도 알아!”
‘유리 조각이야 있을 수 있다지만, 유리 조각이 저렇게 한쪽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건 부자연스럽잖아! 누군가 일부러, 변종을 유인하기 위해 만든 거다!’
떨그럭 땡그렁! 터텅!
교수의 그런 생각을 증명하듯,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하는 변종들 쪽에서 빈 깡통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염병! 앞에 간 친구들 중에 짱구가 제법 돌아가는 녀석이 있었군!”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다. 녀석들 입장에서는 지나가면서 식당에서 얻은 유리를 좀 부수면서 가고, 인계 철선에 깡통을 매달아 어깨 높이에 걸어두고 지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되면 근처를 지나던 변종이 저 깡통과 유리를 건드려 소음을 만들며, 그 소음은 주변의 다른 변종들을 불러모은다. 일종의 알람 트랩을 이용한 변종들의 장벽을 만든 것이다.
‘알람은 변종들이 꽉 찰 만큼 모여들어서 움직이기 힘들어지자 자연스레 잦아들었겠지. 그 상태에서, 우리가 소리를 낸거야. 그 밀집지역 바로 바깥쪽에서!’
“젠장! 벡스!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해!”
“햅번! 뒤쪽도 이미 막혔어!”
“우라질! 샛길에도 똑같은 걸 만들어 놨나! 그쪽에서도 소리를 듣고 몰려온 거야!”
앞뒤가 막힌 상황. 남은 것은 이제 하나, 총성과 폭음이 들려오는 복도 건너편의 문으로 가려진 공간 뿐이다.
‘폭음이 제법 울리는 거로 봐서는 꽤 큰 공간이다. 변종으로 가득 찬 좁은 복도보단 훨씬 대응하기 편할 거야!’
교수는 그동안 최대한 아껴오던 직접 만든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철컥-
“23! 베엑스! 길을 뚫는다!”
“무리야! 대충 봐도 100마리는 넘어!”
“전부 말고! 저기 문! 다른 놈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가자고!”
“뭐? 그놈들이라고 없을텐데? 우리 그릇을 존중 할?”
“저쪽은 아까부터 싸우고 있었다고!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닐 거야!”
퍼엉!
어설프게 만든 샷건이 불을 뿜으며, 변종 두어 마리가 밀려났다. 애초에 재료가 부족해 살상력보다 펀치력정도만 기대하고 만든 물건이다. 탄약도, 화력도, 이 많은 수의 변종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 없어! 어차피 여기 있으면 죽어!”
“으으으…. 망할! 그러니까 마트나 털고 나가자고 했잖아! 내가!”
“아, 앞에 봐! 앞! 앞에 보라고!”
“그어어어!!!”
“우와아아악!”
.
.
.
.
퍼엉-
“열한발!”
그렇게 돼서,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문! 문이다! 뚫었다고! 저 많은 수의 변종을!”
퍼엉!
철컥-!
“열! 떠들 시간 있으면 빨리 들어가!”
“잠겼어!”
“부숴어어어!!”
콰직!
샷건으로 놈들을 밀어내며 커다란 문에 발길질을 몇 번 하자, 습기 때문에 삭아 있었는지 문이 완전히 박살 나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쿠아아앙-!
“윽!”
문을 열자마자 훅, 하고 얼굴에 닿는 열기에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어어!! 구그으으으!!!”
“햅번, 멍때리지 마!”
“나도 알아 임마! 그냥….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원래 이벤트나 모임용으로 설계됐는지, 천장이 높은 커다란 광장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곳곳에 폭발물의 파편으로 인한 흔적이 남아있고, 여기저기 불이 옮겨붙어 대낮처럼 밝은 데다 터지고 불타 죽은 변종의 시체가 한가득이었다.
타앙-!
“저기다! 저기 사람이 있어!”
“몇 명이나!”
“한 명!”
한 명밖에 없다는 것에 잠시 의아했지만, 곧 생각하는 걸 멈추고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문틈에 서로 뭉쳐서 끼어있던 변종들이 하나씩 빠져나오기 시작했으니, 얼마 안 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교수는 달리면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살폈다.
‘체격이 크고, 힘이 좋군. 샷건 두 정을 양손에 들고 사용하다니. 스캐빈저 치고는 옷도, 장비도 너무 훌륭한데? 주변에 사람의 사체로 보이는 것도 없고. 설마 저 사람 혼자 이 난리를 피웠단 말이야?’
그를 향해 달려가며 적인지, 아군인지 끊임없이 가늠하던 교수의 눈에 뭔가 익숙한 것이 들어왔다.
“어.”
“어라?”
“벡스, 저놈 알아?”
“어. 확실하진 않지만, 소문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햅번은?”
“….잘 아는 건 아닌데. 부르면 저쪽이 알아들을 정도는 되겠어.”
“지인이야? 그럼 아군이네!”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때, 저쪽에서도 달려오는 둘을 눈치챘는지 총구를 이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뭐해! 안 부르고! 이렇게 시야가 제한된 전장에서 피아식별 없이 막 접근하면 총 맞는다고!”
“아니 그게….. 에라 모르겠다.”
교수는 천천히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샷건을 유심히 보며, 소리쳤다.
“어어이! ‘DOOMgay’! 마켓 플레이스에 위탁판매 넣은 놈! 직거래!”
흠칫!
“42만 실링! 엔티크 더블배럴 샷건 맞지!”
퍼엉!
남자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샷건이 불을 뿜으며, 교수의 뒤로 다가오던 변종 한 마리가 날아갔다.
‘총열이 옆으로 누운 SxS형(수평쌍대식) 총신에 방아쇠가 두 개 달린 더블 트리거, 목재 개머리판, 그리고 흠집까지! 확실해. 코듀로가 보여준 구매 목록에 있던 그 총이다!’
잘못봤을 리가 없다. 혹시나 거래하게 됐을 때 사기당할까봐 눈에 아주 새겨넣을 듯이 기억하고 왔으니까.
총을 든 남자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거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 크흐흐! 이거이거, 웬 스캐빈저 잡놈 새끼가 이몸에게 또 죽으러 오나, 했더니.”
“해, 햅번, 저, 저거!”
“이런 썅! 엎드려!!”
티잉-
쿠아아아앙!!!!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앞에 있던 공동과 함께 변종을 싹 날려버린 남자는 화려한 폭연을 등지고 모자를 들어보이며 가볍게 인사했다.
“실례도 보통 실례가 아니었군! 우리 고객님이 직접 찾아오도록 만들었으니 말이야! 하하하하!”
“저 인공 턱에, 미친 짓거리에….”
“벡스, 저놈에 대해 뭐 알고 있어?”
“40번대 살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저놈이 바로 그 ‘향신료 상’ 이라고! ‘금속 턱’ 이안!”
“richtig(정답)!”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온 남자는, 폭발의 후폭풍으로 고꾸라진 교수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고객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셔서 약속한 접선 장소가 아닌 곳까지 따라와, 이 미천한 보따리상 메탈 죠-를 찾아주셨는지?”
턱이 아예 날아가 버린 것인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그 치아의 절반 또한 금속 재질로 되어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들어 보이며 싱긋 웃는 그의 미소는, 움직이지 않는 그 금속 턱과 맞물려 굉장히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 환불하러 왔다만….”
“…..너, 쓰레기?”
철컥-!
인상을 쓴 모습을 보니, 방금 했던 생각은 철회해야 할 것 같았다. 웃는 모습은 지금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