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40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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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의 의뢰서를 읽고 있던 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평소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3형 변종 발생, 피해 내용, 위치, 여차저차해서 방어선에 구멍이 났으니 늬들이 어떻게 좀 해봐라 등등….
하지만, 이번 의뢰에는 거슬리는 게 좀 많았다.
“어디 보자…. 내가 지금 읽은 게 맞나? 이 대가리 셋 달린 놈을 잡아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시체를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후루룩-
“정확하게는, 사체의 확보 및 조사라고 하는 게 옳겠지. 부상을 입은 놈이 제법 방어선 멀리까지 가버렸거든.”
“아니 그…. 이보쇼, 영. 나도 생긴 거랑 달리 제법 머리를 굴리는 놈이라,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일이 때로는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그런데 지금은 좀 아니지 않나? 그런 일은 굳이 우리 쪽에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놈 많잖아?”
“보통이라면 그렇네만. 그놈을 우리 손으로 죽인 게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설마?”
“그래. ‘그놈’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그 말에 이안은 더 구겨진 얼굴로 서류를 휙휙 넘겼다.
물론 변종들끼리 부대끼다가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변종은 편의상 ‘변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 엄밀히 보면 각각의 개체가 전부 다른 종이니까.
공격적인 놈들도 있고, W나 예술가 연합 놈들처럼 지능을 확보한 놈들도 있지만 무해하고 온순한 놈들도 있으며, 변종의 밀도가 높아진 만큼 생활 반경이 겹쳐 서로 죽이는 경우도 빈번히 관측되곤 했다.
팔락, 팔락, 팔락-
글, 글, 글, 글, 사진.
이안은 제법 두터운 서류에서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첨부 1 : 3두형 변종]“이름은 아직 안 붙였어?”
“붙이려고 했으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유력하여 보류 중이지.”
사진 속 놈은 그 명칭답게 얼굴 세 개를 붙여놓은 듯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팔만 많았으면 영락없는 동양의 아수라와 같은 모습이었을 터.
두 번째 사진은 세 개의 얼굴 중 두 개가 터져나가고 몸통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도주하는 놈을 찍은 것이었다.
세 번째는…. 사진이 아니라 지도였다. 45구역 방어선과 놈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
“추적기라…. 아직도 가동 중인가?”
“추적기는 살아있네. 놈이 움직임을 멈춰서 그렇지.”
“며칠이나?”
“일주일 하고도 하루 더.”
이안은 그 말에 움직이지 않는 종류의 변종이 몇이나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머글러 본체랑, 두 달 전에 잡은 ‘지박령’인가 뭐시긴가로 불리던 허접한 2.5형이랑, 챔버 메이드…. 아, 이건 아니지.
아무튼 그런 놈들이랑은 판이하게 생겼으니 죽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 죽였나 하는 것이지.
“인근 3형 변종은 전부 위치 추적기 달아놨지?”
“골렘, 망둥어, 실크 스테이지, 아문센, 파파라치에 세일즈맨까지 전부 실시간으로 추적 중이라네. 연합 쪽 놈들과 소수의 소형 3형 변종을 제외하곤 거의 다 확보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런 예외까지 계산하면 끝도 없으니까, 모르는 쪽은 안 붙었다고 가정하자고. 3형이 지들끼리 붙는 것도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러면…. 45구역 방어선에서 직선거리로 40km 가까운 거리를 도주한 놈을 무언가가 살해했다는 뜻인데…. 역시 그놈이겠지?”
“그래. 그 시체 호랑이 말고는 저 변종이 우글거리는 황무지에서 3형 변종을 살해할 놈이 없어. 중상을 입었다고는 해도 일반 화기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놈이기도 했고.”
총장은 한숨 섞인 이안의 말에, 책상 아래쪽에서 미리 준비해둔 서류 하나를 더 던져주었다.
이쪽은 두텁다 못해 책에 가까울 정도로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대상.
그 두꺼운 자료 위에는 [부루] 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노호 부루. 시체 호랑이. 일명 ‘발톱’ 부루. 예술가 연합의 일원이었으며, 박교수가 저렇게 되기 전에 [저놈이야 말로 나를 죽여줄, 나의 종말이로다!] 하면서 쫓아다니던 미친놈이다.
38구역 전투 이후로 종적을 감춘 놈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박교수의 뇌와 GG의 세이브데이터를 연결하는 데 성공하고, 플레이를 처음 방송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크허어엉! 내 죽음! 내 죽음을 돌려다오! 그 정도로 죽어 나자빠질 나의 대적자가 아니다! 당장 나와라! 나와서 나를 맞이해라! 박교수!』
방어선 위로 몰아치던 변종의 파도를 문자 그대로 ‘갈아버리며’ 나타나서는, 그대로 방어선을 뛰어넘어 안쪽의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한 시체호랑이.
황급히 출동한 엑소슈트와 집중 포화를 피해 달아날 때조차 놈의 요구 사항은 박교수 하나뿐이었다.
“염병할 또라이 같은 놈. 뒤지고 싶다면서 왜 튀는 거야? 그때 죽었으면 그놈이나 우리나 모두가 해피했을 텐데.”
“자신의 죽음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더군. 다수에 의한 죽음은 그 이상에 맞지 않는 모양이야.”
총장은 그때의 참상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교전 시간 약 15분. 사망자 130명. 모두가 훈련된 병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당시에는 아직 일렉트로 폴을 가동하기 전이라 그런 식으로 엑소슈트를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방어선이 뚫릴 상황.
다시 찾아올 게 분명한 놈을 위해 총장이 내놓은 대책은, 전담 방어 인력이나 레일건 터렛 따위가 아니라….
당시 편집 중에 있던 박교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틀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지럽게 펼쳐진 자료 사이에서 그때의 사건을 보고, 이안이 히죽거렸다.
“영, 가만 보면 당신도 박교수 과인 것 같아.”
“….칭찬으로 듣기에는 우리 모두 그 친구의 기행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잖아. 돔의 총장이라는 인간이, 적의 예견된 공격에 회의하자는 사람들을 다 뿌리치고 향한다는 게 행정부 방송 시설이었으니.”
이안은 당시 반대편 방어선에 지원 나가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장 변종 웨이브만 해도 죽어 나갈 지경인데 이제 ‘적응자’들의 조직적인 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뭉쳐있느니 흩어져 숨어야 한다 등등….
후루룩-
“애초에 그 게임 방송을 보고 박교수를 찾아온 놈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착하는 대상이 오늘내일하는 중상자라는 것도, 저 게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영원히 저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도 확인시켜주면 최소한 당장 교수를 내놓으라고 난동 피우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
결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가슴이 활짝 열려 내장이 다 드러난 모습을 그대로 방영한 이후 놈의 습격은 멈췄으며, 그 ‘47구역 대화방(2)’ 라고 불리는 곳에 [노호 부루] 라는 아이디가 등장한 것을 감찰부 사람들이 확인했다.
매번 모니터링할 때마다 접속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박교수의 겜생겜사(진짜죽음)]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모양이다.
‘그놈도 참. 묘하게 이상한 놈들한테만 인기가 많아서는….’
아무튼, 여기까지가 부루라는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경위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리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어쨌든 놈은 방송인 박교수의 팬으로 돌아서서는 매일같이 클리어하기를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기 심심했는지 놈이 근처의 강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냥 손대중할 만한 정도면 아무거나. 그게 3형 변종이든, 임무하러 나온 엑소슈트든 가리지 않고 심심풀이로 죽여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놈의 손에 썰려 나간 3형 변종이 둘이요, 엑소슈트가 네 대에 무장 차량이 스물한 대였다.
딱히 머무는 곳도 없이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는 놈.
갑자기 3형 변종이 죽었다면, 놈의 흔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쩐지. 냉혈동물 같은 인간이 좀 쉬게 해준다 싶더라니.”
“만약 3두형 변종을 죽인 것이 부루가 맞다면,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몸도 회복하고. 돈 벌었으니 좀 쓸 시간도 있어야 하고. 가족 있는 놈들은 얼굴도 보고. 에라이 쓰벌.”
꿀꺽- 꿀꺽-
타악!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 뭐요. 사실 확인 정도면 그냥 가고. 죽여달라면 가지고 있는 엑소슈트의 절반 정도 내어주시고.”
“둘 다 아니라네. 자네의 임무는, 현재 움직임을 멈춘 ‘3두형 변종’의 사체를 확보하는 것이지.”
“사체? 죽은 3형 변종의?”
“….내 말하지 않았나. ‘새 시대’라고.”
총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짓하자, 뒤에 서 있던 호위가 찬장에서 술을 두 병 더 꺼내왔다.
‘두 병이라.’
아무래도, 짧게 끝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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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어억- 읍! 어우, 제수씨.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좀….”
“괜찮아요. 총장님이랑 대화가 길어지는 것 보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벡스? 저는 괜찮으니까 이안을 침대로 좀 옮겨주시겠어요?”
….툭툭.
[취객 / 지면 / 적합]다나가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벡스는 빠르게 수화를 날린 뒤 대충 방구석에 이안을 기대 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늦은 저녁. 정해진 면회 시간이 끝나 다나의 병실로 돌아온 일행은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취한 모습으로 돌아온 이안을 맞이할 수 있었다.
머리끝까지 취기가 올라 불콰해진 그의 얼굴은, 모종의 패배감과 분함이 가득했다.
“신시아. 저기 창가에 꽃병 좀 비워주겠니? 벡스님은 등을 좀 두드려 주시면-”
“아, 아, 아. 그 정도는 아니니까…. 끄억! 토할…. 생각 없으니까 그러지 마쇼. 귀한 술 처먹고 아깝게 그걸 왜 뱉어.”
대충 방구석에 기대서 한참을 꺽꺽거리던 이안은, 방 안에 알콜 냄새가 가득 찰 정도의 용트림을 한 다음에야 좀 살겠다는 표정을 했다.
심신 양면으로 철면피인 이안이었지만, 그의 옆에서 일생일대의 원수라도 만난 양 세차게 돌아가는 공기청정기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좀 부끄럽기는 했다.
“커허으으으…. 좀 살겠구만. 아니, 내가 어디서 주량으로 꿀리는 사람이 절대 아닌데. 알렉산더 영 그 인간은 책상물림 주제에 무슨 술을 그렇게 처먹는 거야? 망할 안색 하나 변하지 않던데?”
“영 총장님 주량은 유명해요. 다른 선물은 일절 받지 않지만, 주류는 받는 것도 그렇고. 총장실에 물을 들이지 않는 것은 행정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인걸요.”
“허으으으…. 쓰벌. 무슨 기계 인간 어쩌고 하더니, 자기 간 들어내고 최신형 해독기관을 탑재한 게 틀림없어.”
툭툭.
[무의미한 전투 / 지양 / 전투력 손실 / 부정적]“뭐 임마. 그렇다고 그 인간이 고개 빳빳하게 들고 ‘물은 없고. 우유는 있으니 힘들면 말하게’ 같은 소리를 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빼냐고. 인간 메탈죠를 애 취급하다니. 으으으… 죽겠다.”
[단독 행동 / 1300시부터 1800시 / 무슨 얘기 / ?]“음? 아아, 맞다. 그거 설명해줘야 하는데.”
이안은 온갖 복잡한 얘기와 취기 속에 가물가물했던 기억을 뒤지는 대신, 총장이 따로 챙겨준 서류철을 건넸다.
털푸덕-
취기 때문에 바닥에 흩어져버린 서류들. 그 사이에는 온갖 변종들의 사진과 특징, 복잡한 수식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게…. 뭐죠?”
“변종. 그동안 돔을 골치 아프게 했던 변종이랑, 그 특징. 잡아다 해부한 자료 등등. 뭐 그런 거지.”
순간 다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변종을 해부한 자료. 그 특징과 사용처를 서술한 기록.
최근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인지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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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형, 3형 변종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
최근 급격히 늘어난 특이 변종의 사체와, 이것을 소각하다가 나온 소각되지 않는 부산물이 그 시작이었다.
3형이 되다 만 변종 중 가장 많이 보이는, 자기 보호적인 방향으로 진화한 변종들.
이들의 외피는 나무 판자 수준으로 가벼웠지만 대구경 탄환을 튕겨낼 만큼 단단하고 질겼으며, 레이저 커터를 사용하면 가공을 못 할 정도도 아니라 사용이 제법 용이했다.
이렇다 보니 소각장에서 몰래 이런 부산물을 내다 파는 이들이 생겨났고, 감찰부의 화기 제한으로 분신 같던 총기를 몰수당한 사람들이 불안한 난민촌의 치안 속에서 제 손에 맞는 보호구와 무기를 확보하고자 이런 변종 부산물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잡하게 줄로 엮은 갑옷. 이것을 입은 사람이 실제로 방어선에서 변종의 날카로운 발톱을 버텨내는 것이 확인된 뒤로는, 발톱, 눈알, 내분비선, 더 나아가 고기까지. 마구잡이로 뜯어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돔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변종과 얼굴을 마주하는 최전선의 병사들은 눈으로 확인한 그 성능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군복 아래에 변종의 외피를 엮은 ‘뉴 스케일 메일’ 정도는 하나씩 입고 다니는 추세였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비록 2.5형, 3형은 형태가 완전히 다른 괴물일지라도, 결국 그 원본은 인간이었으니까.
조금 격하게 표현하자면 과거 식인종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대퇴골과 갈비뼈로 장신구와 옷을 만드는 수준인 것이다.
윤리를 넘어, 인간성의 끝자락에 걸친 주제. 인간이, 인간의 몸을 자르고 깎아 그것을 사용해도 되는가.
“그걸…. 돔에서 공식적으로 행하겠다는 거예요? 과거의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집단이?!”
충격받은 다나의 목소리에, 이안은 담배를 꺼내다 벡스에게 얻어맞았다.
“아야야…. 뭐, 듣고 보니 그건 아니더라고. 변종이 막 대단한 괴물 같다고는 해도, 결국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신비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대. 몸집이 큰 놈으로 변할 때는 주변의 유기물을 잔뜩 빨아들인다거나 하는 게 그 증거라는 거지.”
“신비가 아니라면….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저것들이?”
“일부는. 그렇게 보면 이건 엄청난 생물학적 진화란 말이야? 죽으면 시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놈들. 그건 에너지의 완전 효율이 어쩌고 하는 거랑 관련이 있다고 하고. 저 단단한 외피, 저것도 사람 몸속의 탄소랑 기타 주변 물건들이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하고. 허니콤이나 나무의 섬유 구조의 연구가 최신 소재의 기반이 된 것처럼, 잘 진화한 변종의 신체를 연구하는 것으로 현재의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말이지.”
과거의 기술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
총장이 ‘새로운 시대’를 강조한 것은 그래서였다.
“뭐. 이것도 찝찝한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옛날에도 아인슈타인이 사망하자마자 그 머리통에 메스부터 들이댔다고 하잖아. 연구 소재로 사용하는 정도는 괜찮지. 스캐빈저의 눈이 아니라, 돔의 착한 어린이 눈으로 봐도 괜찮고말고.”
“그건….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잖아요?”
“그렇지. 이 시대의 마지막 정의를 표방하는 ‘돔’에서 공식적으로 ‘변종 부산물’을 사용, 연구든 뭐든 사용했다. 이게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뻔하지.”
쓰으읍-
이안은 말끝을 흐리며, 속에 담아둔 말을 삼켰다. 이럴 때 담배가 정말 필요한데.
당장 지금만 해도 전문적으로 변종 시체를 수집, 해체하는 ‘청소부’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긴 마당이다. 심지어 암시장에는 각양각색의 변종 부산물을 특성별로 분류, 가공하는 ‘세기말 대장장이’ 까지 등장하고 있는 마당이니. 거기에 돔이 공식적으로 부산물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부산물 시장은 암거래를 넘어 GG 거래소까지 넘어오게 될 것이다.
윤리? 애초에 ‘싼 고기’ 라는 매우 수상쩍은 고기의 수요가 끊이지 않던 세상이었는데 뭘.
총장이 새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술이 필요했던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총장도 예상하고 있을 거야. 지금은 연구용 소재로만 이용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더는 변종 사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돔에서도 그 부산물을 사용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안. 저는 바깥의 사람들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적이 없으니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돔이라는 집단의 가치관이 붕괴하는 것은 괜찮을까요? 난민이라는 새 물이 많이 들어와서 여론이 그쪽으로 기울었다지만, 결국 이곳은 과거의 가치와 정의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곳인데.”
“그렇지. 도덕과 정의. 하지만 제수씨, 현실은 트럭처럼 치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빗물처럼 스며들기도 하는 법이야. 매일같이 전선에 나가 탄환을 한 트럭씩 쏴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어. 산더미처럼 쌓아두던 탄환이 언젠가부터 하루 사용할 정량만 보급되고 있는 것. 매일 시뻘겋게 달아올라 과열된 일렉트로 폴을 수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다들 느끼게 되는 거지. ‘아, 이렇게 가다간 우리 말라 죽는구나. 다른 수가 필요하구나.’ 그런 상황에, 변종 부산물은 그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얹어두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다른 수’가 되어준 거라고.”
그 말과 함께 이안은 서류를 뒤적거려, 사진이 들어간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이안이 내민 종이 위에는 게임 속에서나 나올 법한 기괴한 장비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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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7호. 3형 변종 ‘코쿤 버드’ 의 총배설강을 이용한 제독, 제분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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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 애들이 걸레짝으로 만들어 소각로에 던졌던, 던져진 줄 알았던 3형 변종을 이용한 공기 정화기. 어린아이 세발자전거 돌리는 수준의 동력만 있으면 된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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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 3호.
화염 투사류 2.5형의 내분비선을 이용한 화염 방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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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연히 조우한 렙터 정찰대와 교전에서 노획한 무기. 그 망할 바이오 디젤로 쓰는 거라나봐.”
사진과 함께 위력, 장단점이 자세히 적힌 그 자료의 말미에는, 돔에서 일하는 건스미스들의 총평과 함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대부분 현 시점에서 전선에 투입해도 될 정도로 완성되어 있음]팔락. 팔락.
“우리는 38구역의 행정총장. 그 미치광이가 만들어낸 변종화 파동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아닐지도 모르지. 놈은 이미 이 인근의 생태계를 바꿔버렸거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말이야.”
취한 손길로 종이를 뒤적거리던 이안은,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아서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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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 1호. 박교수.
– 97%가량의 신체가 변종화 완료. 뇌의 일부와 의식은 아직 인간의 것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
– ‘상자’ 오르페우스의 에너지에 가장 많이 노출된 개체이며, 원형에 가까운 에너지에 노출된 신체는 손상된 그대로 고정된 것으로 보임.
– 여러 형질의 금속, 인공 신체로 결손 부분을 보완하려 했으나 심한 거부반응으로 잠정 중단.
– 최근 발견된 ‘3두형 변종’의 체조직과 대상의 체조직에서 유사성 발견. 거부반응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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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봤던 박교수와 같은 모습.
이식할 부품만 준비해둔 채, 아직 시작은 하지 않은, 반쯤 조립하다 만 프라모델 같은 사진.
이번에는 벡스도 이안이 담배를 꺼내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기에, 이안은 그 답답한 속내를 연기와 함께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거. 영 총장 그 씨발롬은 매번 이런 식이더라고. 거부할 수 없는 걸 가져와서는,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을 해. 이번에 우리 시키는 일이 저 3두형 뭐시긴가 시체 가져오는 거라더라. 도덕이고, 윤리고 같은 문제를 떠나서. 이건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후우우-
허탈하게 웃으며 담배를 빨아들인 이안은 그 복잡한 감정이 뒤엉킨 연기를 뱉어내고야 말았다.
“….이틀 뒤에 출발이야. 방어선 너머 제법 깊은 곳이고, 특히나 전투형 3형을 죽인 무언가가 있는 만큼 더 위험하겠지.”
부스슥- 휘청!
이안은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 다음, 대단히 복잡한 얼굴로 뭔가 말하려 애쓰는 다나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읏-!”
“흐흐흐흐.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마. 제수씨는- 게임 속 교수가 살아 돌아올 수 있게. 우리는- 현실의 교수가 살아 돌아올 수 있게. 각자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우선은, 그것만 생각하는 거야. 끄억-”
“….그렇….죠. 세상을 바꾸기엔, 우린 너무 작은 개인이니까.”
“그렇다고 너무 풀 죽지도 말고. 당장 저기 누워있는 병신만 해도, 그 작은 개인 주제에 세상을 바꾼 놈이니까.”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해 벡스와 신시아의 부축을 받은 이안은, 흐트러진 머리 위에 걸어둔 선글라스를 내려썼다.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보지 말고 나아가자고. 그놈처럼.”
철컥!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아니라….’
이안이 나가며 마지막에 남긴 말은 다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작은 개인. 하지만 대외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랭커.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옆방에서 이안의 토하는 소리와 신시아의 새된 욕설을 들으며, 다나는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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