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41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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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대애앵- 댕그렁- 대애앵-
“어우우우…. 골 아파. 저 염병 처먹을 종을 깨버리든가 해야지….”
이안은 도시를 깨우는 종소리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떠도 그다지 밝아지지 않는 황무지다. 저 교회 종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자 시계조차 없는 이가 태반인 난민들의 시계였지만, 전날 입김만으로도 작은 설치류 정도는 취하게 할 만큼 술을 마신 사람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습관적으로 목에 걸린 작은 총을 확인한 이안은 대충 옷을 껴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일단 행정부 병동이었지만 절반 정도는 직원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종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 가운데에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그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예의 그 삐딱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청년.
에젤 레이든. 그만큼이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에젤이다.
“어으으으…. 좋은 아침, 이안 형….”
“으으…. 말 걸지 마, 임마. 머리 울려. 물 없냐, 에젤?”
아안의 말에 초췌한 얼굴의 에젤은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이안에게 던졌다. 볶은 곡물 맛이 강한 물이었는데, 확실히 그냥 물보다는 괜찮은 것 같았다.
“어으으으. 살겠다.”
“괜찮지? 밀가루 살짝 태워서 우린 거래.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재밌는 기술이 있는 사람도 많더라고.”
“끄윽. 다들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니까. 한가락 하는 게 있겠지. 그런데 넌 왜 그 모양이냐?”
“응? 아아. 형 다음이 내 차례였거든.”
“….총장?”
끄덕끄덕.
이안은 하마터면 입에 문 담배를 떨어트릴 뻔했다. 아니, 나랑 그렇게 먹고도 또 사람을 불러서 처마셨다고?
“….알콜 중독도 그쯤 되면 강제 입원이 필요하지 않겠냐?”
“뭐. 총장님이야 일하는 중에는 술을 입에서 떼지 않으시니까. 우리 BDSM 활동 보고서 때문에 불렀더라고. BDSM으로 현장 활동을 하면서 감찰부 행정 양식에 익숙한 사람이 있으니, 잠깐 와서 좀 봐달라고. 뭐,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해서 불렀다더라. 그래도 감찰부 나오기 전에는 종종 얼굴 보던 사이였으니까.”
“괴물 같은 인간. 얼마나 마셨냐?”
“4병부터 기억 안 나. 그래도 형이 먼저 상대해준 덕분에 살았어.”
“염병. 다음에 그 인간 만나러 갈 때는 정제 알콜 주사 같은 거 준비해서 쑤셔버릴 거야.”
덜컥.
그렇게 어제 있었던 치열한 전투와 패배를 곱씹고 있으니, 옆방 문이 열리며 졸린 눈의 신시아와 벡스가 나오는 게 보였다. 눈은 반쯤 감겼지만 얼굴은 빤딱빤딱한 게, 벡스가 억지로 씻긴 것 같았다.
“어이, 규격미달 두 명. 좋은 아침.”
“어이. 주정뱅이 삼촌 둘. 좋은 아침~ 흐아암.”
“크흐흐. 한마디를 안 지는 게 아주 그놈을 쏙 빼닮았군. 신시아, 어제도 방송 보다 늦게 잤지?”
“아냐. 어제 큰 삼촌이 내 옷에 토해놓은 것만 씻어놓고 바로 잤어.”
시치미 뚝 떼면서 도리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한마디 하는 신시아. 하지만 옆에 있던 벡스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는 것을 보니, 또 그 녀석의 방송을 몇 시간이나 보다가 잔 모양이다.
“너 그렇게 잠 안 자면 키 안 큰다. 벡스처럼 된다고.”
“치! 벡스 삼촌이 뭐 어때서. 깔끔하지, 매너 있지, 조용하고 친절하지. 화약 냄새나는 수염쟁이 보다는 훨씬 낫네요!”
“[통계 / 신장 / 유전요인 9할 / 문제없음]”
“그래, 그래. 아주 둘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라 임마.”
이안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깨운 다음,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쓸어 넘겼다.
“아침 뭐냐.”
“감자 샐러드랑 삶은 달걀.”
“오! 배급으로 계란을? 이제 닭은 더 안 늘린대?”
“학교에서 들었는데, 이제 단백질 공급원으로 종종 계란을 준다더라고요.”
“나도 어제 총장님이랑 보고서 만들다가 들었어. 최근에 돌연변이 대형 닭이랑 일반 닭의 번식에 성공했다고 하더라고.”
“음? 돌연변이 닭이면…. 몇 달 전에 50번대 피난민들이 고삐 채워서 끌고 온 그 공룡 닭? 그게 가능해? 그거 사람도 태우고 다니던데. 걔랑…. 일반 닭이? 그 정도면 고목 나무에 매미가 아니라 바벨탑에 창던지기 아니냐?”
“낸들 알아. 감찰 고시에는 가금류의 성생활 같은 과목은 없다고. 어떻게든 성공시켰으니까 됐겠지 뭐. 식용으로도 쓰고, 먼저 50번대에서 데려온 길이 든 놈들은 승용으로 쓰기도 한다더라. 지구력이 병신이긴 하지만 제법 빠르고, 무엇보다 기름을 안 먹잖아?”
“허….”
이안은 전날 있었던 총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새 시대. 새로운 돌파구. 단순히 변종 부산물을 넘어 온갖 방향으로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자기 그물의 수명이 1년 안팎이라. 안전하게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한이 1년으로 한정된 만큼, 새 돌파구를 찾는데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겠지.’
이안은 행정부 식당에 나온 그의 주먹만 한 삶은 달걀을 보며,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시고 이상한 향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 삶은 계란은 먹을 만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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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아아-! 쌉니다, 싸요! 12밀리 기관총용 탄 클립이 5천실! 한 자루에 5천실!”
“사람이 풀만 먹고 어떻게 버팁니까? 고기! 육즙 가득-한 고기! 알바니의 쥐고기 육포! 전문가의 솜씨는 다릅니다! 맛있고 오래가는 쥐고기 육포 사세요~!”
낡은 천이나 가죽, 구멍 난 슬레이트 벽 따위로 만든 가건물이 잔뜩 늘어선 거리.
아직 입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소란스러운 거리를 보며, 이안 일행은 저마다의 감탄을 터트렸다.
“아주 살판이 났구만. 암시장은 얼어 죽을.”
“뭐. 감찰부 시절에도 언더돔 지하시장을 좀 털어보긴 했는데. 확실히 거기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걸.”
“제우스 벨리, 제우스 벨리! 와아아, 정말 와보고 싶었는데!”
생각할 문제가 많았지만, 어쨌든 간만의 복귀고, 간만의 휴식이니까.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최근 논란의 중심이자 45, 46, 47구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돔 자치구의 최신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그 ‘암시장’에 한번 놀러 가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다나도 함께 가려고 했으나 마침 오늘이 중요한 건강 검진일이라 그녀는 함께 갈 수 없었다.
“말만 암시장이지, 사실상 그냥 시장이나 다름없거든요. 물론 당장은 현물거래, 실링거래, 물물교환이 마구 얽혀서 좀 통일성이 없긴 하지만, 그것도 조금씩 잡혀가고 있고.”
대신, 새벽부터 다나의 병실에 찾아와 수다를 떨고 있던 레빗이 따라붙었다. 말로는 심심하기도 하고, 중요한 손님들 안내도 해줄 겸 인맥 쌓기라고는 하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박물관 큐레이터 같은 옷에 안경까지 끼고 와서는 돔 주변의 변화와 생활상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고는 있지만-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취향 되게 특이하네.’
‘레빗 언니? 설마…. 진짜로?’
행정부 건물을 나오는 순간부터 벡스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꼴이 인맥 쌓기는 맞는데, 대상이 하나뿐인 것 같았다.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설명을 좀 해드릴게요오~? 앞에 보이는 계곡은 일명 ‘제우스 벨리’. 네에~ 여러분이 아시는 그거 맞아요. 우리 위대하신 박교수님이 직접 ‘메이어 제우스’를 갈겨서 80여대의 전차와 함께 녹여버린 그 계곡으로-”
“[도움! / 구속됨! / 도움!]”
“지리적 특성상 모래바람이 적게 들어와서 사람들이 모이게 된 장소에요. 아시다시피 피난민들이 들이닥친 후, 언더 돔의 불량배, 양아치 등 범죄 노동인구를 모두 쫓아내고 그 자리를 돔의 관리에 익숙한 47구역 생존자들에게 줬잖아요? 그때 쫓겨난 불량 인간들과 여기저기서 모여든 스캐빈저들이 숨어서 뭣 좀 해보겠다고 찾은 곳이 이 인공 계곡으로 둘러싸인 제우스 벨리였고-”
“[지원 바람! / 측면압박! / 측면압박!]”
“아이참.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니까. 급하시긴!”
꼬오옥!
“어어어…. 어으어어!!”
“아무튼! 그렇게 마약, 싸구려 담배, 밀주 따위가 거래되던 곳에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지금의 제우스 벨리 암시장이 된 거예요. 재미있는 물건도 많고 멀쩡한 물건도 많지만, 본판은 암시장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레빗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이곳에서 실종된 아이들의 사진과 연락 바란다는 감찰부의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이상! 설명 끝! 자, 벡스? 오래 기다렸죠? 우리 얼른 가요.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카람빗 쓰죠? 나는 군용 단검으로 배워서 그런 곡선적인 칼은 어렵던데. 와아, 섬세한 손가락! 어머, 이런 곳에 흉터가? 만져봐도 돼요?”
“어, 으으어…. 나, 나아아… 느아아….!”
파박! 파바바박!
[포로 석방! / 접근 불허! / 놓아 달라!]“음? 이런~ 나는 군용 수신호 하나도 모르는데~ ‘나아아….도 좋다’구요? 후훗, 고마워라. 빨리 가요 우리. 여기 웨폰 스미스가 일을 참 잘하는데, 나 칼 하나만 맞춰줘요. 겸사겸사 다른 것도 좀 맞추고.”
“으아으으-!”
태어나서 여자의 관심은커녕 어머니 품에조차 오래 있지 못했던 벡스가 황무지의 거의 모든 남자를 홀린 레빗의 파상공세를 이겨낼 가능성은 없었다.
벡스는 옆에 찰싹 달라붙어 다정하게 속삭이는 레빗에게 납치당하다시피 끌려갔고,
당연히, 이안과 그 일당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걸 지켜만 보고 있었다.
“햐.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설마 저 토끼공주님이 벡스 형님한테 관심이 있을 줄 몰랐네.”
“짝이라니. 저건 짚신이랑 유리구두 수준 아니냐. 세기말이라 쳐도 너무 힙하다고. 무슨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니냐?”
“어…. 레빗 언니가 벡스 삼촌 얘기를 좀 많이 하긴 했어요. 어차피 얼굴은 자기가 10인분 이상 예쁘니까 배우자는 개빻아도 된다, 원래 사람은 자기한테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솔직히 게임으로 배우지도 않고 쌍수 단검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생각해보니까 좀이 아니라 맨날 얘기했네요.”
“흠. 확실히 미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 전투력이 배우자의 기준이라면 저놈도 일등 신랑감이긴 한데….”
딸깍, 딸깍-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벡스 쪽으로 발광 신호를 보냈는데, 부드러운 압박감에 정신을 못 차리는 벡스 대신 레빗이 대답했다. 대충 신경 끄라는 뜻이었다. 군용 신호를 모르는 여자가 절대 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숙련된 손짓.
“모르기는 개뿔이. 토끼가 아니라 여우구만.”
“뭐, 내버려 둡시다. 솔직히 벡스 형님이나 레빗이나 둘 다 성인이잖아? 벡스 형님이 어디가서 객사할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맨날 햅번 타령만 하고 있으니 대원 중에선 벡스 형님이 게이라고 의심하는 놈들도 있잖아. 그것보단 저게 훨씬 낫지.”
“객사할 놈은 아닌데, 지금 숨도 못 쉬는 거 보니까 저대로 손만 잡고 있어도 복상사는 하겠다, 야.”
“응? 삼촌, 복상사가 뭐야?”
“어…. 그런 게 있다.”
신시아가 있는 것을 깜빡한 이안은, 대충 얼버무리다 신시아를 어깨 위에 태웠다.
“뭐, 보아하니 저쪽은 내일쯤에나 오겠군. 우리도 놀러 가자.”
그렇게 벡스를 떠나보낸 이안과 신시아, 에젤은 암시장, 제우스 마켓으로 들어갔다. 물론 마지막까지 애절한 눈빛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는 벡스에게 엄지를 척! 치켜세워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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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앙!
계곡의 한쪽 구석에서 녹아 붙은 전차의 잔해를 캐는 사람들.
“300 실~ 너저분한 재생지가 아니라, 희고 깨끗한 종이가 300 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법처럼 당신의 마음을 전할 편지지가 300실링~”
최근 가장 조회수가 높은 ‘두 바람 마법사의 편지’ 영상을 좌판 위에 틀어놓고는 [마음을 전하는 편지] 라며 펄프 자국이 너저분한 빳빳한 종이를 판매하는 상인.
“아니, 6기통 엔진 실린더 두 개가 어떻게 2천 실링도 안 나옵니까? 장사 그딴 식으로 할거요?”
“어허, 스크랩이라는 게 원래 시세가 자주 변한다니까? 이쪽에서 보관하는 비용도 있고. 적절한 고객을 찾아야 하니 위험 부담도 있고. 1700 위로는 못 쳐주니까 딴 데 가서 알아보시던가.”
제법 큰 규모로 차려진 스크랩 환전소.
물건의 퀄리티는 둘째치고, 이곳 암시장이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당연히, ‘그것’도 있었다.
[변종 부산물 처리소]“염병. 이제 진짜 대놓고 장사하네.”
“….졸라 큰데?”
좌판이 아니라, 골목 하나에 부산물 처리 업체가 우르르 모여서 거리를 이룬 수준이었다.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냄새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찌푸려버렸다. 변종의 피 냄새는 독특한 단 향이 있어서 구분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골칫거리를 잊으려고 나왔더니. 아예 찾아와버린 꼴이 되어버렸군. 야, 에젤.”
“엉?”
“연장 좀 챙겨왔냐?”
그 말에 에젤은 슬쩍 가죽 점퍼를 열어 보였다. 즐겨쓰는 권총 두 자루. 나이프 하나. 신호탄 하나.
“들어가게?”
“어. 신시아랑 좀 놀고 있어라. 우리 돈 많다고 개수작 부리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꼭 붙어 다니고.”
“뭐, 뒷골목 쓰레기 정도야 한 손 묶어놓고도 커버 가능하지만. 형 혼자 가서 뭐 하려고.”
“그냥 뭐. 구경이나 좀 하려고.”
순순히 손을 들어 보이는 이안의 모습에 에젤은 문득 불안해졌다.
어제부터 좀 고민이 많아 보이던 이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바로는, 이 메탈죠라는 사람이 고민거리를 대하는 방법은….
“….무슨 구경?”
“대구경?”
철컥!
….고민거리를 신속, 정확하게 섬멸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항상 등에 메고 다니는 그 건케이스에서 총을 꺼내는 모습에 사색이 된 에젤이 달려들자, 이안은 히죽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흐흐흐. 농담이다 짜식아. 내가 미친 살인마도 아니고 설마 저 많은 상인들을 다 죽이고 보겠어?”
“어, 아냐?”
“지금은 아냐 임마. 그냥 내 눈으로 한번 보고 오려고. 이게 정말 시대를 따라가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볼 수준인지, 아니면 타락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인지.”
어제 총장과 다 기억도 못 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게 몇 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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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사람을 억압하며 단결시키고, 평화는 자유와 분열을 야기하지.”
“끄으윽- 그게…. 뭔…. 딸꾹!”
“간단한 얘기일세. 앞으로 1년. 탄환과 첨단 장비를 적극 소모해서 안전을 구가하는 동안, 평화로울 때만 나타나는 혼란이 있을 거라는 소리야. 대표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있겠군.”
“크흐흐흐. 그거….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로군. 무소불위의 감찰 총장 알렉산더 영이 계신데, 정치적 정적이 나타난다?”
“그럼. 부산물 시장만 봐도 어렵지 않게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신나게 변종을 해체하는데, 그놈의 목에서 은빛 군번줄이 발견되는 거야. 돔을 위해 헌신한 군인의 비참한 최후가 커뮤니티를 통해 날개 돋친 듯 퍼지겠지. 이런 시기에 변종 부산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자는 파와 그건 괴물이나 다름없다는 파로 사람들이 분열되고, 나는 그중 하나의 손을 들어줘야 하며, 그 기회를 틈타 선동꾼과 쓰레기들이 판을 치게 될걸세. 분열, 갈등, 내란, 약화. 이어지는 렙터의 습격과 멸망.”
“애미…. 씨부럴….”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자네같이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명확한 시나리오지. 위정자는 단순히 눈앞의 사실만 생각해서는 안 되니 최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지 않겠나.”
“거…. 대가리 터지겠수….”
“어쩌겠나. 그러라고 있는 자리에 앉아버린 것을. 어떻게든 심리적 충격을 완화시켜 봐야지. 아마 그 가운데서 이득을 보겠다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놈들도 있을 것이고….”
“끄으으윽-”
쿵.
“음? 이보게. 데스몬트. 자나? 허허, 이런. 오랜만에 제법 길게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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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물 시장에 대한 총장의 의견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도덕적 기준의 변화는 감수해야 한다고. 그저 그 인식변화의 과도기 속에서 사람들이 너무 혼란해 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한때 렙터의 스웜 알파였으며, 수많은 인간 군상 속에서도 가장 나락에 가까운 사람들과 부대꼈고, 덕분에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겨우 몇 달 만에 암시장의 가장 크고 좋은 거리를 차지한 부산물 시장.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사람도 토막쳐 먹는 쓰레기들.
38구역 사건 이후,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진 3형, 2.5형 변종의 변화 메커니즘.
총장의 최악과 달리, 이안의 최악은 훨씬 더 깊은 무저갱을 바라보고 있었다.
‘변종 부산물이 그렇게나 잘 팔린다면, [사냥]이 아니라 직접 [생산]하겠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지.’
이안은 등에 멘 건케이스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꼈다. 화약도, 무기도 충분했다.
‘만약 정말 거기까지 갔다면…. 정리한다.’
변화를 거부할 생각은 없다. 화살촉에서 납탄으로 넘어오듯, 변화는 언제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방향이 잘못됐다면 가차 없이 잘라낼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몇 명이고 상관없이. 아무리 대가리가 빈 쓰레기라도, 그 앞에 시체가 쌓이다 보면 이렇게 하면 죽는구나! 정도의 생각은 할 테니까. 그렇게 옳은 방향을 찾을 때까지 계속 잘라내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애총, 트리플 배럴 샷건과 핸드 캐논을 점검한 이안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떠오르는 아침 해와 함께 돔의 건물이 그늘을 드리웠다. 선글라스를 내려쓰던 이안은, 그중 하나를 보며 저도 모르게 실소를 입에 담고 말았다.
“나 같은 놈을 뭐하러 살리셨나 했더니. 거 되게 알뜰하게 쓰시네. 재활용도 잘하시고”
“응? 뭐라고?”
“그런 게 있다. 신시아랑 잘 놀아줘라. 나 간다.”
“다녀와 삼촌~”
“오냐.”
이안은 신시아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부산물 시장의 골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선글라스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저 멀리 높다란 교회 첨탑의 십자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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