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43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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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릭- 끼릭-
“다리는 어떻게 된 거요?”
“잘렸지. 시력이 안 좋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
“보이는 게 아니라 내막을 묻는 거 아니오, 누가 잘랐는지!”
“거 말해서 알 것도 아닌…. 아, 네 녀석은 알겠군. 그 케셀링이라는 전쟁광이랑 붉은 망토에 시뻘건 군복 입고 다니는 웃기지도 않는 병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면서, 자기 차에 태워줄 테니 기름값 정도만 내라고 하더군. 그대로 내 다리를 잘라서 그 착유기로 뽑아오더라고. 제법 나오던데.”
“….빨간놈. 혹시 수염이 있었나?”
“어어. 그것도 부러울 만큼 멋들어지게 위로 세웠더군. 나는 평생 길러도 염소수염이 끝인데.”
….으드득!
“무스탕 레드얼럿….렙터. 네스트가 움직이니 스웜알파급이 나설 만도 하지…. 케셀링 그 얼치기는 전에 봤을 때는 팩 리더나 하고 있더니. 어느새 스웜알파 직속까지 치고 올라갔나.”
이안의 눈이 휠체어를 탄 우진을 훑었다. 텅 빈 다리 말고도 눈에 띄는 게 제법 있었다. 목과 얼굴에 하얗게 올라온 흉터. 지나치게 깔끔한 손톱. 예전과 같이 주름이 가득하지만, 표정이 어색한 얼굴.
노인의 손톱은 저런 식으로 깔끔하지 않았다. 어디서 네일 케어라도 받은 게 아니라면, 생으로 뽑혀서 새로 자라났다고 판단하는 게 맞겠지.
어색한 표정은 전기 고문의 후유증으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체에 흐르는 고전압은 단순히 그 순간의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신경계에 영구적인 손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렙터 놈들은 그의 두 다리를 잘라낸 것으로도 모자라, 고문을 했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목적 없는 여흥에 가까운 고문을.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이안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담배 연기와 술 냄새가 자욱한 창고에서 잡혀온 포로들을 폭행하던 렙터의 병사들. 차량 뒤에 손을 묶어 발이 찢어지고 지쳐 죽을 때까지 달리게 한다거나, 떨어지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며 달궈진 포신에 매달리게 하기도 했었다. 그의 눈이 우진의 몸을 스칠 때마다 흉터와 함께 그에게 가해졌을 모진 학대가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의 과거가 떠올랐으며, 우진을 저렇게 만든 렙터의 창시자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연히, 그의 얼굴도 그 안에 있었다.
타악!
이안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확인한 우진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들고 있던 환자 차트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됐다 이놈아. 황무지에서 고생 안 하는 놈이 어디 있다고.”
“….그래도. 면목이 없소. 영감.”
“당연히 면목이 없어야지. 내가 그 짐승 새끼들이랑 같이 있을 때, 네놈들 소식 듣고 얼마나 기대한 줄 알아? 뭐 소문만 들으면 변종의 힘으로 산과 바다를 갈아엎는 박교수에 폭탄마 메탈죠, 살인귀 벡스 세 놈이 폭력과 불, 피를 휘두르며 당장이라도 네스트로 쳐들어올 줄 알았다고. 혹시나 올까 봐 몰래 신호탄도 만들어 놨는데, 끝-까지 얼굴 한번 안 비추더군. 에잉, 무심한 놈들!”
우진은 입으로는 힐난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낄낄거리는 모습이 사실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 할 얘기도 많고. 음…. 턱주가리, 오늘 할 일 없지?”
“어…. 뭐. 그렇지.”
“그럼 시장 구경하다가 저녁이나 먹고 가라. 얘기는 그때 하지. 지금은 좀 바빠서.”
지하 주차장과 녹아내린 계곡이 반쯤 섞인 통로를 지나오자 커다란 철문이 세 개 나왔다. 각각 네온 사인으로 녹십자, 은화, 뼈와 발톱이 섞인 마크가 하나씩 붙어있었는데, 우진은 휠체어를 녹십자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의 아무렇지도 않게 일터로 복귀한다는 몸짓에 이안은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잠깐만 영감. 지금 눈앞에 댁이 죽은 줄 알고 있던 친인들을 다시 만났는데, 만난 지 1분도 안 돼서 ‘일이 급하니 이따보자’ 고? 렙터 놈들한테 무슨 사상개조라도 받으셨소? 소시오패스 수술이라던가.”
“죽다 살아났고 자시고, 내가 안가면 저쪽은 진짜 죽어. 다리 째 놓고 그대로 수술대 위에 놓고 왔단 말이지. 어디 보자…. 마흐메르? 오늘 들어온 친구, 마취를 언제 했었더라?”
“어…. 대충 50도짜리 한 병 목구멍에 들이부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 그럼 곧 깨겠는데.”
우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대답하듯 안쪽에서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내 다리…..! 아아아아악- 의사아아아악-
“….들리지? 그렇다는군. 그럼, 저 친구는 내버려 두고 밀린 회포나 풀러 갈까? 아니면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재미있는 시장 구경이나 하다가, 좋은 술과 고기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지금까지 있었던 얘기를 해볼까.”
“염병.”
이안의 모든 대답이 함축된 욕설에, 우진은 낄낄거리며 그의 엉덩이를 톡톡 쳐주었다.
“그래 이놈아. 리자! 네가 안쪽 안내 좀 해줘라. 초행은 알아둬야 할 게 많으니까.”
“하지만….”
콰앙!
우진은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는 듯, 휠체어로 철문을 밀고 녹십자 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톱이나 공업용 드릴을 쓸 때나 들릴법한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환자의 울음소리가 더 큰 고통과 애원의 소리로 바뀌었다.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살려달라느니, 죽여달라느니 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이안과, 기계 의수를 단 리자라는 이름의 기관총 여자.
“….죽었다 깨어나도 존나 패버리고 싶은 영감이군.”
“어우우, 노인만 아니면 저 불쾌한 아구창을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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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응?”
본의 아니게 우진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본 두 사람은, 어색한 얼굴로 무기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 좀 늦었지만, 모비딕에 온 걸 환영해. 유명인사.”
“메탈죠. 아니면 이안. 어느 쪽이나 상관없다.”
“난 리자. 음…. 그…. 초면에 조금…. 실례였지?”
“뭐. 적당히? 황무지에서 머리에 총구 들이대는 정도야 뭐. 쏘지만 않았으면 가벼운 악수나 다름없지.”
솔직히 말하면 이안은 그에게 먼저 총구를 들이댄 이가 있다면 남녀 상관없이 그 몸에 구멍을 한두 개 정도 뚫어서 교훈을 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영감의 부하라니 특별히 봐주기로 했다.
물론 그런 그의 속내를 모르는 리자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생긴 것만큼이나 쿨한 남자군. 따라와. 어르신 부탁도 있고 하니. 내가 친히 모비딕 암시장을 안내해주도록 하지. 뭐 하러 왔어? 안이 워낙 복잡해서, 목표를 알고 있으면 안내에 좀 도움이 될 텐데.”
“여기 다 부수러 왔는데.”
“아하하하! 농담도 참….?”
리자는 오늘 처음 만난 유명인사의 유머 감각에 감탄할 뻔했지만, 그가 골목 구석으로 되돌아가 주물럭거리고 있는 물건을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타, 타이머? 폭탄?”
“어. 미쳤다고 제대로 무장한 세력의 근거지에 홀몸으로 들어가겠어. 오면서 여기저기 심어놨지. 입구 쪽까지만 회수하고 갈게. 지상 쪽에 뿌려둔 건 나가면서 회수하고.”
“노, 농담이 아니었어?”
“경우에 따라서는 농담이 될 수도, 진담이 될 수도 있었겠지.”
지금은 안 터졌으니 농담이군.
이안은 회수한 폭탄을 건케이스에 쑤셔 넣으며, 리자의 굳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 그럼. 구릿빛 피부만큼이나 은빛 피부가 매력적인 아가씨. 전통적인 방식에는 좀 어긋나긴 하지만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
이안은 과장되게 그의 허리를 숙이며 리자의 기계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그의 턱과 닿은 덕에 쪽, 하는 입맞춤 소리보다 금속 마찰음이 더 크게 났지만, 아까보다 리자의 얼굴이 두 배는 더 굳어졌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 이게, 무슨….”
“크흐흐흐.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댄 벌이지. 가자고. 우리 영감님이 무슨 일을 얼마나 벌려놨는지 한번 보게.”
당황한 리자에게 히죽 웃어 보인 이안은 녹십자를 제외한 두 문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은화 모양의 네온표지가 붙은 문을 열어젖혔다.
“오호라.”
“….이상한 자식. 돔 자치구의 진짜 암시장, 모비딕에 온 걸 환영해.”
후끈한 열기와 함께, 온갖 네온사인의 은은한 조명과 드럼통 속 모닥불이 기이하게 일렁이는 공간을 보며, 이안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밖의 암시장은 겉보기만 그럴싸한 포장이고. 이쪽이….?”
“진짜지. 당장 비싼 것만 바리바리 싸들고 온 피난민들이, 배급이 바닥을 칠 때 당근 한 토막에 모조리 팔아넘긴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영감님…. 젊었을 때는 좀 날리던 용병이었다지?”
이안은 머릿속으로 우진의 화려한 과거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히려 바깥의 가짜 암시장보다 더 불법적인 냄새가 강했지만,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불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안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챠르르르르르륵-!
당장 그의 눈앞에 칩 대신 7.62mm 탄을 우르르 쏟아내는 슬롯머신과 그 뒤로 산더미 같은 화기를 정렬해둔 건샵이 있었으니까.
“이런 곳을 터트릴 생각을 했다니. 메탈죠. 멀었구나.”
“응? 어, 어이! 같이 가! 메탈죠!”
안내를 받기는커녕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안의 모습에 리자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언뜻 스쳐 지나간 그의 눈빛은 디즈니랜드에 처음 도착한 다섯 살 소년 같은 흥분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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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 흐흐흐흐, 내 역작이지. 7탄 있으면 넣고 돌려봐. 전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탄이니까. M30이라. 고딕? 아니면 총신은 다다익선 쪽인가? 팔 생각 있으면 얘기하라고.”
“8번, 15번, 47번!”
“오. 풍채만큼 통이 크시군?”
“빼고 다 내놔!”
제대로 된 건스미스!
“음? 이야아~ 이게 누구신가! BDSM 수장이 우리 가게를 방문하셨네? 시음 한잔하고 가지! 놀러 다닐 때는 독주보다 달달한 포트 와인이 좋지! 싸게 주지! 가져가!”
영 총장이 봤다면 강제로 몰수하려고 날뛰었을 리큐어 샵!
“호오오. 이거 메탈죠 님 아니십니까? 이거 이거, 같은 업계의 유명인사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전자식 고폭탄을 즐겨 쓰시던데, 가끔은 옛 정취가 그득한 다이너마이트는 어떠신지요?”
“햐…. 니트로 글리세린을 구했어?”
“흐흐, 이건 그쪽이니까 말해주는 건데, 사실 변종 분비물 중에 비슷한 성질이 있는걸 섞어서, 정제 나트륨을 밀랍으로 감싸고….”
진짜, 정말로 찾기 힘든 폭약 전문상인까지!
“아아아. 우진. 당신은 이것을 위해 살아남은 게 틀림없어. 정말, 영감 당신은 정말….!”
“헉, 헉, 같이 좀 가요, 좀!”
이안은 지상에 내려온 천국을 노니는 기분이었다. 쓸데없이 쌓인 돈은 썩어날 만큼 있었고, 상품은 하나같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으며, 서비스도 괜찮았다.
딸그락 딱-
이안은 그의 주머니와 손에 가득한 목패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훑었다.
[뉴-럼차타 x 15] [뉴-보드카 x 100] [뉴-다이너마이트 x 30] [불 리볼버 x 1] [.357 탄 x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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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상점 주인들의 얼굴에는 그와 같은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고, 그가 지나간 가판의 주인도 같은 표정으로 가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와 같은 대량 구매자를 위한 배달 서비스도 하는 중이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만났던 그 아우커라는 놈의 이름을 댔더니, 다 아는 눈치인 게 그놈이 하는 일이 바로 암시장 택배였던 모양이다.
“어때, 메탈죠. 제법 마음에 들지?”
“여기 살 거야.”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리자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박교수 그놈이 나오면, 우리가 여길 잡아먹든 아니면 모비딕에 BDSM이 병합되든 여기 살 거라고. 아아아…. 천국에 가지 못할 나를 위해 지상에 낙원이 마련되어 있었노라…. 몰리…. 난 이제 행복해….”
“후후후. 여기 처음 온 사람은 다들 당신 같은 표정을 짓곤 하더라고. 황무지 사람치고 더 좋은 무기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가장 노출이 잘되는 목 좋은 입구 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야.”
“겸사겸사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는 바로 벌집으로 만들어버리고?”
“추가로, 혹시나 감찰부에 걸렸을 때. 그나마 발뺌할 만한 물건 들이기도 하고.”
리자의 말에 이안은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음, 불법. 그래 맞아. 원래 여기 온 이유가 그거였지. 영 애매한 물건 파는 동네인지 확인하고, 여차하면 다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거.
“그럼 더 안쪽에는 발뺌도 못 할 만한 물건들이 있다는 뜻이군?”
“그렇지? 어르신이 안내해주라 하셨고, 원래 알던 사이 같아서 보여주는 거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쪽한테 드러내는 게 맞나, 싶은 곳이야. 갈래?”
“으음…. 가보긴…. 해야겠지?”
이안은 사탕을 뺏긴 어린아이처럼 뒤를 돌아봤다, 리자를 쳐다봤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화약과 기름 냄새가 흥건한 저 거리를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지만, 이안은 강철같은 의지로 몸을 돌리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여기서 머나?”
“그렇게 멀진 않지. 이 지하 건물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그럼 됐다. 잠깐만 갔다 오자고.”
일단 우진 영감을 봤을 때부터 여기가 반인륜적인, 끔찍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생각은 말끔하게 지워버린 뒤였다.
기왕 온 김에 그 변종 부산물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써먹는 건지,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나 한번 보고 다시 무기 밀매구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이안은 신나게 장사하고 있던 상인 한 명의 목을 죽을 듯 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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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쿨럭, 쿨럭! 커억, 케헥! 으으으…. 우웩!”
소란을 피울 생각 따위는 없었다. 우진은 그의 은인이었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산물 시장을 포함해 이곳 지하 암시장은 그의 사업체였으니. 그냥 조용히 구경이나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하나쯤 사볼 생각이었다.
그가 입은 가죽 점퍼와 똑같은, BDSM의 마크가 큼지막하게 찍힌 가죽 점퍼를 보기 전까지는.
“네에~ 여기가 맞습니다! 화제의 그 술! 암시장의 미어터지는 열기가 마침내 양지에 닿아 지상의 저 시장에서도 판매 중이며, 들리는 소문으로는 영 총장이 궤짝으로 사다놨다는 그 술! 문 글로우! 달무리 주(酒)를 만드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평생 술독에 빠져 살아온 당신조차 경험해보지 못했을 그 맛!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새로 태어난 기념비적인 술을 맛보십쇼오오~”
기운찬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남자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술 한 병 받아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단상 위에서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소리를 질러대는 놈이 그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리안. 그에게 처음 문글로우를 맛보여준 그의 부하.
그놈이,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니가. 왜. 여기 있냐.”
“콜록, 콜록! 대장, 여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에에-? 놀러 나간 부하 냄새가 진동을 해서 냄새 맡고 찾으러 왔다 이 새끼야!”
처음에는 소중한, 캐러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가죽점퍼를 어떤 정신 나간 대원이 팔았고, 그게 암시장까지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노름하다 왕창 잃었건, 진짜 급전이 필요했건 어쨌든 저 점퍼만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을 거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BDSM의 인기는 굉장했고 그만큼 저 점퍼도 수요가 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팔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서 되사려고 가까이 왔더니….
“아이고오, 대장님! 그, 내 말 좀. 말 조오옴- 어억!”
“말 같은 소리하네. 내 눈으로 다 확인했는데 말은 얼어 죽을. 내가 언제 늬들을 말로 가르쳤냐?”
그 점퍼 주인도 여기 계셨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 새 시대의 술인가 뭔가를 팔면서.
“악! 리, 리자씨! 외부인이 상인 팬다! 도와- 컥!”
“상인? 상이인? 그럼 BDSM은 겸업이냐? 창업자금 마련용 알바였냐고!”
“콜록, 그런 게 아니라-억! 아오 진짜! 말 좀 합시다, 좀! 설명을 해야 오해를 풀든가 할 거- 아뇨!”
와락!
쿠당탕!
꼼짝없이 헤드락 당한 상태로 얻어맞던 도리안은 잠깐 이안의 팔이 느슨해진 틈을 타 그를 엎어치듯 집어던지고, 재빨리 가판 뒤로 숨었다.
상점 한쪽 술무더기에 처박힌 이안이 박스를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술을 잔뜩 뒤집어쓴 그의 눈에는 이제 살기마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흐흐. 크흐흐흐…. 어이구 허리야. 양아치 강도 새끼 두들겨 패서 사람 만들고, 가르치고, 어엿한 일자리도 만들어 줬더니. 날 치네? 어이. 이제 막가자는 거지? 좀 덜 맞으니까 다시 옛날 생각이 나셨구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잇! 솔직히 이쪽은 호흡곤란에 얼굴이 빵떡이 되도록 처맞았는데, 한번 던져진 거로 너무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래그래. 내가 네놈 뜻을 이제야 이해했구나. 내 손맛이 그리웠으면 얘기를 했어야지…. 그치? 안 그래도 저녁까지 할 일도 없었는데, 이번에야말로 니 놈 뼈가지에 예절과 품격, 충성심을 아주 사무치게 심어주지. 일로 와 이 새끼야! 자신 있는 걸로 붙어! 총, 칼, 주먹! 뭐든 받아주마!”
“히, 히이이익! 사, 살려줘!!!”
눈이 뒤집어진 이안이 비호처럼 좌판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도리안은 그 흉흉한 기세에 그의 유일한 아군 쪽으로 달렸으며, 결국 눈치만 보고 있던 두 사람이 이안에게 매달렸다.
한 명은 이안의 안내역으로 낙점 당한 리자였으며. 나머지 한명은….
“팔 놔, 부들람. 안 떨어지면 항명으로 죽인다. 저 새끼 다음은 너야.”
“아이고 대장, 형님!”
도리안과 허구한 날 붙어 다니는, 검은 피부의 대머리 부들람이었다.
“대, 대장? 우리 정신계 3형 변종 만나면 하는 거 기억나지? 심호흡- 심호흡. 착한 생각, 좋은 생각. 오- 내게 마약 같은 평화를.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들어보쇼. 도리안 저놈, 사정이 있어서 저러고 있는 겁니다. 잠깐 아는 사람 일 봐주고 있는 거라, 이 말이오.”
“후욱, 후욱, 남의 일을…. 봐주고 있었다고?”
“그, 그렇다니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밀도는 어마무시하잖아? 설마 우리가 대장을 배신하겠어? 안 그러냐? 도리안?”
“어, 어어어! 그, 그렇지! 사랑합니다, 메탈죠! 사랑합니다! BDSM! 박교수 찬양해 찬양해!”
이안이 잠깐 진정하는 듯하자, 두 대원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안은 약간 진정된 숨을 가다듬으며, 무릎걸음으로 기어온 도리안과 슬쩍 그의 리치에서 벗어난 부들람을 살폈다.
“후우우…. 그래. 잠깐 둘이 놀러 나왔다가, 우연히 암시장에 들어왔다 이거지?”
“예!”
“그 암시장에서도 진짜배기만 안다는 모비딕도 우연히 찾았고?”
“그렇….겠죠?”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도 우연이고? 그 사람이 우연히 바빠서 저놈에게 일을 맡겼고? 정말 잠깐만 일했는데, 마침 그게 여기 들어온 지 30분도 채 안 된 내 눈에 걸린 거고?”
“어…..”
두 사람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이안의 미소는 어금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짙어져갔다.
“아하하하…. 세상에 우연이라는 게 참 기묘해서…. 그렇지? 어찌 보면 이것도 인연이랄까….응? 대장?”
“크흐흐흐….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고 말고.”
“그, 그렇지?”
“그러엄. 내가 다른 놈도 아니고 내 자식 같은 부하들, 그중에서도 맨날 같이 먹고 자고 싸고 하는 돌격소대 애들 말을 못 믿어서야 쓰나.”
“아,아하하하…..”
“크흐흐흐흐흐….”
잠시 도리안과 부들람. 이안 사이에 어색한 웃음이 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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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마.”
“썅! 좆됐다! 덮쳐!”
“우아아악!”
그 웃음이 끊긴 순간, 이안의 손이 번개같이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도리안과 부들람이 이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둘은 이안의 부하인 만큼, 그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을 때 뭐부터 꺼내 드는지 정말 잘 알고 있었고.
덕분에 이안의 품에서 나온 수류탄이 그 용도를 다하기 전에 그의 팔에 매달릴 수 있었다.
“말려! 말려!”
“참으쇼, 제발! 저래 봬도 저 코딱지만 한 상점에 내 사촌의 꿈과 희망이-!”
“놔 이 새끼들아! 나 돈 많아! 깔끔하게 잿더미로 만들고 그 사촌인가 뭔가한테 돈으로 물어주마!”
핑-!
“으, 으아아악! 진짜 뽑았어! 핀 뽑았다고!”
“리자씨이이이!! 모비딕 사람들 불러! 이러다 우리 다 죽어!”
“그래! 죽어 이 새끼들아!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놀라고 했더니, 암시장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아?! 그냥 다 죽어 이 새끼들아!!!!”
힘에는 자신이 있는 이안이었지만, BDSM에서도 힘 좀 쓰는 두 사람에 기계 의수를 단 리자까지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쉽게 움직일 수 없었으니.
광인처럼 악을 써대는 이안의 손에서 모비딕 사람들이 수류탄을 빼앗아 다시 안전핀을 꽂았고, 술을 사기 위해 모여든 손님들은 저마다 무기에 손을 얹은 채 이 한바탕 촌극을 구경할 뿐이었다.
“….끄억. 잘하는 집은…. 서비스도 기가 막히군. 술도 팔고. 안주도 제대로 챙겨주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취객의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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