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45
Chapter. 13. 사냥꾼, 청소부, 그리고 검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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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렙터를 위해 일했다고 말하는 우진의 목소리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회한이 깃들어있었다.
“….외면할 수가 없었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나까지 모두 죽는 게 더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었겠지. 내가 살린 수많은 렙터의 부상병들이 그들과 같은 희생자들을 양산할 테니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막상 그걸 눈앞에서 보고 나니…. 약해지더군. 그래…. 늙어버린 게야. 과거의 강철같은 의지는 노쇠한 육체와 함께 닳아버린 게지. 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세월이 가도 그저 우진으로 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세상의 그 누구도 어르신을 비난하지 않을 거예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리자가 노인의 어깨를 다독이려 했지만, 우진은 손을 들어 그것을 밀어냈다.
“이미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네. 도망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지. 그날 이후로 난 렙터의 의사로 살았어. 두 아이가 내 휠체어를 밀었고, 수많은 짐승의 생명을 구하고 말았네. 먼발치에서 내 손으로 살린 그들이 산 채로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지. 내가 고쳐준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피가 흥건한 나이프를 들고 광소하고 있었단 말이다. 나를 이해한다고? 아니, 아니야. 절대로 그럴 수 없어. 내가 가진 의사로서의 기술로 아이들과 나를 구한 대신 그들을 죽인 것이야. 목숨은 건졌지만, 그 대가로 의사로서의 우진이 죽어버렸다고.”
이안은 가늘게 손을 떨고 있는 노인을 위로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오래전, 우진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환자 중 한 명이 몰래 창고로 들어가 의약품을 몽창 털어갔고, 당장 사용할 모르핀도, 알콜도 없었던 우진이 병원이 떠나가라 욕을 하며 화상 치료용으로 재배 중이던 알로에를 모조리 수확해 술로 만들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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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빌어먹을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들이, 아니 개만도 못한, 병원이나 터는 더러운 도적놈….”
“영감.”
“아 왜! 또 사람 가려 받자느니 그딴 소리나 하면서 속 긁을 거면 꺼져! 혼자 해도 충분하니까!”
“….왜 용병 일을 그만둔 거요?”
“뭐? 갑자기 그건 또 왜?”
“그렇잖아. 우진이면 나도 이름을 알 정도의 용병이니까. 병원 일을 하고 싶었으면 같이 병행했으면 됐을 텐데. 그럼 이렇게 알콜 한 병 짜내겠다고 알로에를 한 솥씩 삶고 있지 않았을 거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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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목숨을 구함 받고 8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슬슬 어눌했지만 발음이 새지도 않았고, 그래서 마침 돈 문제가 튀어나온 김에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 참이었다.
이안은 당시 우진의 대답이 참 가관이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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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주가리 네놈이 여기 와서 한 헛소리만 모아도 책 한 권은 나올 테지만, 오늘 것은 그중에서도 손가락에 꼽겠군. 뭐, 의사 하면서 용병도 하라고? 에라이.”
“딱히 비논리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또또 그놈의 논리고 효율이고 하는 딱딱한 소리 한다. 그게 너를 과거에 묶어두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하냐. 제발 좀 놓아주라고. 자유로워지란 말이다. 왜 그만뒀느냐고? 그냥 이다 이놈아! 사람이 일 때려치우고 싶은데 거창한 이유가 어디 있어. 하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건, 납득하기 힘든, 콜록!”
“됐고, 솥이나 저어 이놈아!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는 좀 갖다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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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 때마다 우진은 그냥 싫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냥. 그냥 싫어서. 그냥 귀찮아서. 그리고 술로 밤을 지새운 날은, 그냥 사람을 더 죽이는 게 싫어서. 그래서 도망치듯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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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그렇잖아. 그렇게 살겠다고, 살아남겠다고 금수 같은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가만 보니까 결국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도 때가 되면 나는 죽는 거잖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숙제를 하나도 안 했는데 당장 몇 시간 뒤에 검사를 받아야 하는 학생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내 손에 죽고, 터지고, 토막 난 놈들이랑 얼굴 마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무섭더라고. 사람을 죽이는 게 무서워졌어. 그런 정신상태로 용병일 해봤자 죽기 딱 좋으니까 그냥 관두기로 한 거지.”
“그럼 이름은 왜 그대로 쓰는 거요? 당장 어제만 해도 핏값을 받아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터렛에 갈려 나간 놈이 셋이나 되는데. 정말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으면 이름도 바꿔야지.”
“에라이, 자존심이 있지 이놈아. 살인자라는 건 말이야, 적어도 지가 살인자라는 사실 자체에는 떳떳해야 돼. 뭐 어쩔 수 없었다느니, 정의니 복수니 다 때려치우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대가리에 박아 둬야 한단 말이다. 거기서마저 도망치려면 정말 평생 단 한순간도 안주하지 못하고 도망쳐야 하거든. 네놈 머리통에서 뇌를 뽑아내지 않는 이상.”
“….언제는 자유로워지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마주해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야. 지금 당장 이해하라곤 안 한다. 때가 되면, 네놈도 알아서 이해하게 될 거야. 짐승으로도, 사람으로도 살아본 네놈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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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진이란 사람의 신념이었고, 이안 데스몬트가 메탈죠로 살아가게 만들어준 사람의 의지였다.
그렇게 굳건하던 우진이, 결국 그 두 아이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저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제네바 선언도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어! 이 시대의 많은 의사들이 말하길 ‘그저 환자가 눈앞에 있으면 의사로서 생명을 구할 뿐이다.’ 라고 하더군. 하지만 그건….. 도피가 아닌가? 나의 의술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든다면, 그게 어떻게 의술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야….”
“어르신….”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렇게 끔찍했던 것은 처음이었어. 두 다리가 잘렸을 때보다 더 아팠지. 나는 우진이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패배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의료행위에 열중했어. 자연스럽게 그 사이보그 놈들을 많이 만지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고치는지에 대해서도 숙달되었지. 낮에 봤던 마흐메르의 다리나 리자의 팔은 거기서 배운 지식에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의체 기술을 접목해서 만들었지. 애초에 그놈들 기술도 별 대단할 게 없다 보니 내 결과물도 보잘것없어졌지만.”
우진의 말에 리자는 그녀의 두 팔을 들어 보였다. 구세대의 첨단 의수보다는 확실히 부자연스럽고 무거워 보였지만, 그래도 움직이고, 쥐고, 놓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그건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의수는 그냥 유압펌프와 레버 같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단순한 움직임이라고는 해도 저렇게 리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정도라면 엄청난 첨단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데, 돔에서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그런 첨단 부품을 암시장의 노인이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구만.”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이게 가능한 거요? 아무리 영감이 배우지도 않고 내 턱이나 다른 사람 팔다리를 척척 만들어 붙일 정도로 천재라고는 해도…. 이건 궤가 다르잖소? 혹시 내 생각보다 더 천재였나?”
“천재는 무슨. 그래…. 슬슬 본론으로 돌아가야겠지.”
우진은 팔로 테이블 위의 빈 통조림 깡통을 밀어 자리를 만든 다음, 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리자. 부탁한다.”
“네, 어르신.”
미리 얘기해뒀는지, 리자는 통조림 국물을 대충 문질러 닦은 더러운 테이블 위에 그녀의 기계 의수를 올렸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드라이버 하나를 꺼내, 차분하게 그녀의 팔을 하나하나 분해하기 시작했다.
나사가 하나하나 뽑혀나가고, 유선형 외장이 열리고 그 내부가 드러날수록 이안과 부들람, 도리안의 얼굴은 경악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수 안에는, 살아있는 무언가임이 분명한 생체 조직이 기계 부품과 부품 사이를 그물처럼 오가며 맥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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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릭- 차그락. 철컥!
리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팔을 조립했다. 나사로 조이는 부분 옆으로 부품 하나가 생체 조직에 이끌려 기어가듯 달라붙는 것을 보고 부들람이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그 많은 의미를 담은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자였다.
“대학생이었고, 스캐빈저였으며, 부랑자였습니다.”
리자는 조립을 마친 손을 시험하듯,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팔을 구부렸다.
“황무지에서 두 팔이 없는 자의 삶이 어떤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동료들은 변종을 피해 도망치다 두 팔을 잃은 저를 버렸고, 피난민을 실으러 온 돔의 수송부대의 눈에 띄어 간신히 목숨을 살릴 수는 있었지만,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죠.”
당시 돔은 그녀 같은 민간인 환자를 일일이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씻지도, 먹지도 못한 데다 감염으로 살이 썩어들어가는 그녀는 창녀로조차 일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난민촌 여기저기에 떠밀려 다니며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더러운 골목에 쓰러진 그녀의 뒷덜미를 누군가 잡아챘을 때는, 마침내 끝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인육을 먹는 이들의 소문은 들었으니. 아마 그런 곳으로 끌려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쓰러진 그녀를 들어 올린 것은 두 다리가 없는 노인이었고, 휠체어에 앉은 그의 무릎 위에 실려간 곳은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둑한 계곡의 허름한 천막 안이었다.
그 그늘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깨진 녹색 유리병과 희미한 전구로 만든 녹십자를 봤을 때 리자는 그녀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불타는 듯 이글거리는 노인의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더러운 넝마를 머리까지 덮어쓴 두 소녀의 앞에서, 노인은 죽어가는 리자에게 고함치듯 외쳤다.
‘살고 싶다고 말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는 시술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의사야. 의사로 살 것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증명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제발, 제발 동의해!’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녹십자의 아롱거리는 불빛 아래, 더러운 천막에서 날이 시퍼런 단검을 들고 더러운 종이 위에 수기로 작성한 ‘수술 동의서’를 들이미는 휠체어를 탄 의사라. 누가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그 성난 듯, 울 것 같은 노인의 얼굴이 불쌍해 보여서,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르신은…. 렙터에서 그 사이보그에 대한 것만 배워 오신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오래전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자원으로 봐왔고, 변종도 마찬가지였죠. 오히려 변종에 집착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로는 돔을 따라갈 수 없지만, 현시점에서 기적이나 신비라고밖에 볼 수 없는 특수 변종의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돔과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이동 요새인 네스트의 특성상 변종 무리와 자주 부딪혔을 것이고, 극히 드물지만 38구역 사건 이전에도 지금 2.5형이라 부르는 애매한 3형 변종이나 공격성이 없는 3형도 있었으니까. 그때는 그냥 죄다 뭉뚱그려 3형이라 불렀지만.”
“그럼….이게 그 기술로 만든?”
“그래. 변종 부산물을 이용해 인간의 신체와 기계를 연결시킨 ‘셀 기어’라고 하지. 아직 개발단계라 영 애매하지만…. 쓸 만한 정도는 됐다고 본다.”
이제 조금 진정이 됐는지 숨을 가다듬은 우진이 리자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변종 바이러스는 굉장한 침투력을 가진 바이러스야. 숙주가 죽는 즉시 그 몸의 모든 세포에 파고들어 제 기능을 유지시키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몸을 ‘잘 아는’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있지.”
“그 무식한 바이러스의 욕심은 단순히 생물에 국한된 것도 아니야. 어보미네이션의 경우, 죽은 숙주 주변의 시체, 감염체를 모조리 숙주의 몸에 병합해 하나의 거대한 복합 생명체로 탄생한 3형 변종이지. 그 과정에서 같이 흡수된 정물을 신체의 일부로 보고 발현시키기도 하고 말이야. 올드 픽처 기억나지? 올드 픽처에 대한 자료가 그걸 증명하더군. 그 본체, 거대한 3형 변종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그 낡은 신발 한 짝이 들어있었으니까.”
요점은 변종 바이러스가 외부 물체를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진은 거기에서 착안해, 전자 신경이나 별다른 최첨단 복합 소재 없이 기계의수의 구동 명령을 내리는 부분을 살아있는 신경과 연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저는 새 팔을 되찾았고, 소문이 날개 돋친 듯 퍼져서 우진 비뇨기과는 이렇게 암시장의 기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죠. 당연히 소문은 돔의 높으신 분들이 있는 곳까지 퍼졌고, 감찰부가 사람을 풀어 어르신을 찾으려 했지만….”
“난민들이 숨겨주었군. 맞지?”
“….네. 이미 난민 구역에서 돔의 영향력보다 어르신의 이름이 더 널리 퍼져있었으니까요. 돔에는 돈 많고 높으신 분들을 위한 병원이 있으니 ‘우진 비뇨기과’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며 다들 적극적으로 숨겨주더라고요. 모비딕의 조직원들은 대부분 어르신에게 그런 식으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에요. 수는 적지만, 적어도 배신을 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죠.”
“원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쪽에서는 귀신같이 뭉치지. 그렇게 해서 이런 거대 암시장 조직의 총수 되셨구만.”
“총수가 아니라 원장이다, 이놈아.”
“황무지 사람들이 원래 그래요. 법이나 규칙 같은 것은 밥 먹듯 어기지만, 자기 개인의 기준은 철저하게 지키거든요. 모비딕은 난민 구역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집단이 되어서 살아남게 된 거예요.”
이안은 이제야 전부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고 뭐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뭐라도 보답한다고 이것저것 두고 갔고, 그런 물건들이 쌓이다 보니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이 물물교환하듯 이것저것 바꿔가기 시작하고, 그게 모자란 의약품과 장비를 위한 돈으로, 시장으로 순식간에 발전한 것이다. 부산물 시장은 우진 영감이 의수에 필요한 변종 부산물을 사들이다 보니 그런 걸 파는 놈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자리 잡게 됐겠지.
“그…. 영감.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의문은 풀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답을 얻지는 못했다. 이안은 지금 이 순간이 어제부터 종일 그를 괴롭혔던 질문의 답을 얻기에 가장 적합하다 판단했다.
“영감은 그 꼬라지를 보고도…. 부산물 사용에 거부감이 없나? 사람이 사람을 쓰는 그 끔찍한 놈들 속에서 그렇게 고통받고도?”
“뭐야? ….허, 이런 이런. 이런 세상에….”
이안의 머뭇거리는 목소리에, 생각에 잠긴 우진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놀랄 일이군. 그 멧돼지 같던 턱주가리가 그런 얌전한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다니.”
“시부럴, 나야 그냥 좀 찝찝해도 쓰면 되지.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잖아. 그런 거에 점점 익숙해지다가 렙터놈들처럼 ‘사람 좀 갈아 쓰면 어때?’ 하는 꼬라지 날까 봐 그러는 거지.”
“그래…. 그렇단 말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빛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적어도 우진이 과거에 그가 알던 그 노인과 다른 사람이 된 것은 확실했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고르던 우진은 문글로우가 들어있던 빈 페트병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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