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5
Chapter.3 그 한 줌의 은화를 위하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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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메탈 죠’라고 부르는 이 남자의 인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중무장한 마초 백인 남성’ 이다.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보시지. 지금, 내 물건을, 그것도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와이프처럼 애지중지 써왔단 이 샷건을 한눈에 보자마자 ‘환불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인가?”
아, 정정. ‘중무장한 몹시 화가 난 마초 백인 남성’이다.
“저기, 물건 팔기로 한 사람 맞지? ‘DOOMgay’?”
“Fick dich selber! 난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놈에게는 안 팔아, ‘professor’. 그래서 약간 손해를 보면서도 직접 보고 물건을 넘겨주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래서 직거래를 신청한 거였군.’
황무지에선 종종 이런 놈들을 볼 수 있다. 이상한 개똥철학에 빠져서는 그 룰을 위해서 손해도 감수하는 녀석들.
‘아니지. 이 녀석은 손해를 좀 감수해도 될 만큼 돈이 많은가 본데?’
방금 변종을 떼 몰살 시킨 폭약만 해도 10만 실링어치는 훌쩍 넘을 것이다. 향신료 상이라…. 아직 이런 세계가 되어서도 식도락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어이, 메탈 죠. 일단 그 총 치우고 말하는 게….”
“대답이 먼저다. 지금 네 머리를 향하고 있는 총구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지? 이 아름다운 곡선, 비릿하면서도 선득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쇠 냄새.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착 감기는 이 그립감.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이건 못쓰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느냐는 말이야!”
“아니, 나도 싫다는건 아닌데 사정이 좀….”
“그 사정이 이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
변종의 사체가 타오르는 공동에, 흥분한 이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똑똑히 봐라! 이 멋들어진 쌍 총열을! 인간의 손도, 발도, 눈알도, 모두 두 개다! 2는 가장 균형적으로 완벽한 숫자라고! 이 두 개의 총열은, 말하자면 끝내주게 쭉 빠진 와이프의 가슴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내 평생을 이 총을 사랑해왔어. 그런데 너, 너는 그런 나의 사랑을 보고, 환불 같은 소리를 한다고?”
“아니 그러니까…..”
교수는 입을 열려다, 잠시 곁눈질로 뒤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눈빛으로 둘을 구경하고 있는 벡스를 보았다.
‘뭐, 저 녀석 정도면 말해줘도 되겠지. 크게 비밀로 할 필요가 있는 사실도 아니고.’
약간의 개인사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그 샷건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내가 급전이 좀 많이 필요해서 부득이하게 환불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거든.”
“….흠!”
잠시 교수를 노려보던 이안은, 문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상황이라는 것을 들어보고 판단해야겠군. 일단 자리를 옮기지. 이곳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불이 났으니, 곧 산소가 부족해질 거다.”
“…. 그걸 알면서 폭발물을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썼다고?”
“그럼, 그렇게 작은 것들을 신경 쓰면 어떻게 터트린단 말이지?”
“…..컨셉이냐?”
“소울이다.”
세상에. 진심인가.
그렇게 말하며 사체들 사이에서 그의 상체만큼이나 거대한 각진 배낭과 탄 박스 두 개를 끄집어낸 이안은 자신의 짐에 묻은 살점 조각을 툭툭 털어내며 성큼성큼 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벡스는 아까부터 쭉, 상당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햅번,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스캐빈저 중에서는 메탈 죠를 사이코 갱으로 분류하는 녀석들도 있어….”
“나도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교수는 오래전 유행하던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 다릅니다’ 같은 말을 떠올리며, 저 멀리 쿵쿵거리며 이동하는 이안의 뒤를 따랐다. 어쨌든 아직은 그들의 적이 아니고, 동행을 거부하기엔 저 정신 나간 화력이 너무 매력적이었으니까.
***
교수는 다음층으로 이동하는 동안 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해서 그렇게 된 거야.”
“뭔가 복잡한데,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정리하지. profe…. 아, 밖에서는 행맨이라고 한다고 했나?”
“햅번.”
“행맨이 맞아 이 자식아.”
“흠…. 햅번쪽이 더 어감이 좋군. 아무튼, 햅번은, 그 미친 AI가 만들어 놓은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총을 환불하기 위해 나왔다가, 마침 45구역에 이런 이벤트가 생겨서 이 작은 녀석이랑 같이 털러 왔다는 거지?”
쿵! 쿵! 쿵!
도대체 이안의 저 가방에는 뭐가 들었는지, 뛰어가는 그의 걸음마다 복도를 울리는 소리가 진동했다.
“대충 그렇긴 한데…. 우리 조용히 좀 갈 수 없냐? 여기 사람있어요~ 하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동네 변종 다 불러모으겠다.”
“기도비닉은 속옷이 헐렁한 녀석들이나 하는거지. 남자라면 당당하게 적을 마주하고 납탄으로 놈들의 몸무게를 불려주는게 미덕 아니겠나!”
“…..햅번, 굳이 메탈 죠랑 같이 가야겠어? 이런 전략의 ㅈ도 모르는 뇌근육은 황무지에서 지뢰나 다름 없다고.”
“하! 어차피 아까 그놈들이 변종을 몰이해서 주변에 남은 놈들은 없을 걸! 늙은이, 불알이 시리면 총이 아니라 모종삽을 들라고.”
혹시나 주변에 몰려오는 변종이 있을지 주의하고 있던 교수의 신경이 이안에게 확 쏠렸다.
스캐빈저. 몰이. 중요한 정보다.
“놈들이 그쪽한테 변종을 몰아넣고 갔다고?”
“그래. 알다시피, 내가 워낙 좀 시원하게 싸우는 스타일이라. 근처에 있는 변종들을 좀 끌어들이긴 하거든. 앞에 있는 놈들만 정리하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웬 거적때기 같은 놈들이 우르르 내려와서는 뒤에 달고 있던 놈들을 나한테 떠넘기고 내려가 버렸어.”
“같이 내려가지 않고?”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그놈들이 먼저 복도 끝에 자리 잡은 다음에 제압사격을 오질라게 해대서 그만 팔뚝에 한 두어 방 맞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거든. 그러는 동안 변종들이 복도에 가득차서 아까 거기까지 밀리게 된 거고.”
이안이 팔을 들어 보이자, 과연 팔에 감아놓은 붕대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뭐, 상황은 여기까지 파악하면 됐고. 우선 우리 관계를 좀 정리해야겠지?”
“정리라…. 구체적으로?”
“잠시 동행하자고.”
그렇게 말한 이안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난 저런 걸어다니는 시체 놈들은 몇백 마리가 있어도 괜찮지만, 사람 쪽은 좀 껄끄럽지. 우리 고객님과 그 친구분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음.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어차피 우리도 제일 아래에 있는 쉘터에 다가가려면 놈들과 한번 붙기는 해야 됐으니까.
“정확히 뭘 도와줬으면 하는지는 알려줬으면 하는데.”
“당연한 걸 묻는군. 로망이지!”
쿠웅!
어느새 복도의 끝에 도달해 비상구라고 적힌 계단을 앞에 두고, 이안은 뒤를 보며 씨익 웃었다.
“구시대 부자들의 창고라고! 그 사람들이 정말 자기 생존에 필요한 것만 챙겼을 것 같나? 천만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그림, 언제나 안정적인 화폐인 금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쾅쾅!
“여기! 사나이의 심장을 끓어오르게 하는 머신! 람보르기니! 재규어! 페라리! 할리 데이비슨! 두카티! 엔진으로 이루어진 심장이 맥동하는 괴물들! 후우! 나는 그것들을 만나러 온 거야!”
드드드득-!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던 이안은, 등에 매고 있던 각진 가방을 내려놓더니 그 뚜껑을 열어 보였다.
“내가 머신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대신, 너희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쓸 수 있게 해주지. 특히 햅번, 너!”
처억-
이안은 자신의 아내처럼 아껴 썼다는 샷건을 교수에게 떠넘기듯 안겼다.
“환불 건은 보류해주지. 그녀를 쓰도록 해. 지금 네가 등에 매고 있는 그 쓰레기와 Meine Liebe(내 사랑)의 차이를 그 손으로 직접 느끼고! 그다음에도 환불을 원한다면 이 메탈 죠의 이름을 걸고 환불 해주지. 이게 두 번째 조건이다.”
음…. 대충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는 알겠다. 전형적이구만. 어디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간이야. B급 스플레터 무비 같은데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아내라면서, 왜 나한테 자꾸 팔아넘기려고 안달이 난 거야?”
“음? 아, 그건 말이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이안은, 등 뒤에서 총열이 세 개인 샷건을 꺼내 들었다.
“나한테 가슴이 세 개 달린 와이프가 생겼거든!”
뭐 이 쓰레기가.
“….아까는 뭐 2가 가장 균형 있는 숫자라더니?”
“그러니 더 끝내주는 거 아니겠나! 총열이 세 개라니! 불균형이다! 카오스 한 매력이 있어! 범죄적이야!”
쿠웅!
금속제였는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열린 이안의 가방에는 온갖 폭약과 화기, 탄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 필요한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골라 가라고!”
“….너 향신료 상이라며. 파는 물건은 어디 있는데?”
“음? 여기있잖나, 여기!”
가방 안에서 그 큰 손으로 샷건 탄약을 한 움큼 집어 교수의 주머니에 쑤셔 넣어준 이안은, 그중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굴리며 말했다.
“바로 이놈들 말이지. 술, 담배, 그리고 화약!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스파이스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 메탈 죠, 밋밋한 인생에 화끈한 향신료를 선사하는것을 업으로 삼고있는 사람이지!”
스스로도 가방에서 꺼낸 온갖 탄약과 무기로 무장한 그는, 껄껄 웃으며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친구들! 인생의 맛을 한번 제대로 보러 가자고!”
***
지하 3층.
이안이 합류하며 시끌벅적해진 분위기는 이곳에 깔린 어둠만큼이나 무거운 침묵 아래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툭툭.
“[흔적/ 좌측 셋 / 이동]”
“[흔적/ 우측 열 다섯 / 이동]”
내려오면서 이안에게는 미리 말해뒀다. 적들은 상당히 프로인 것으로 보이며, 그러니 최대한 우리 위치를 드러내지 않고 접근해서 폭발물로 빠르게 타격을 입히고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뒤에서 조심스럽게 따라와 달라고 말이다.
다행히 완전히 상식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지만 아직까지는 조용히 잘 따라와 주고 있-
“feige Mädchen(겁쟁이 소녀)….. 적을 앞에 두고 쥐새끼처럼…. 으으으, 마이 레이디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꽈아아악-!
지는 않군. 벡스가 어떻게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위험한 눈으로 총을 바라보는 이안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변종을 처리하지 않고 이동하고 있어. 심지어 주기적으로 분대의 일부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고 있어. 이건 뒤에 따라오는 적을 포위할때 쓰는 전법인데….’
교수는 바로 뒤에서 소리없이 툭탁 거리는 둘을 보았다.
흔적을 보니 아직 작게 말해도 될 정도의 거리는 있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세 명이니, 우리가 아닌 다른 집단을 상정하고 구성한 전투지역이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는 동안 전투의 흔적은 발견했지만, 약탈의 흔적은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 귀한 것을 찾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고 쳐도, 닫힌 문 정도는 열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 모르는데?’
그동안 놈들을 뒤쫒아온 길을 더듬어보자, 차츰 적의 윤곽이 드러났다.
‘….돈이 목적인 녀석들이 아니군. 스캐빈저가 아니야.’
누구일까? 교수는 지나오면서 봤던 것들을 떠올렸다. 묘하게 고급스러운 부비트랩. 전략적이고 체계화된 움직임. 여러 쉘터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사각이 많고 길이 좁은 지하 3층에서 적을 기다리는, 시가전에 익숙한 듯한 움직임…..
“….돔 이군.”
“뭐?”
“지금부터 서로 이름을 음성 기호로 변경한다. 벡스는 V, 이안은 I, 나는 H. 바로 숙지해.”
“이봐, 무슨 일인지-”
“목소리 낮춰. 앞에 자리 잡은 녀석들은 돔에서 온 녀석들이야. 그 말은 우리 이름 한 글자만 들통나도 순식간에 본명과 사는 곳을 찾아내서 쫓아올 놈들이라는 거지.”
“….떨거지들. 묘하게 움직임이 좋더라니.”
“햅번, 왜 돔에서….”
쓰읍-
“브이, 설마 이것도 입이 문제냐.”
“….H.”
“그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 추측이지만…. 놈들은 여기서 대규모 접전을 준비하고 있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유리한 전장을 만들어 놓고. 돔의 정예들이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할만한 적 중에, 이곳으로 오고 있는 녀석들이 누가있지?”
“렙터….!”
“정답이다.”
“흐흐흐, Scheisse! 이제 나도 알겠군. 우리가 고래들 싸움에 끼었다, 그거지?”
이안의 물음에 교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추측이었지만,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스캐빈저로 위장한 돔의 정예가 랩터를 노린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야. 돔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전투 이후의 파장을 생각한 거야. 뭘 위해서지? 렙터가 이곳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덜 가지길 원한다면….. 설마!’
교수는 등을 기대고 있는 벽을 손으로 쓸었다.
핵전쟁을 대비해 지어진 튼튼한 외벽. 여기저기 금이 갔지만, 벽에 물이 새는 것으로보아 지하수도 잘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 안에는 70가구의 쉘터에 공급하기 위한 발전기도 있을 것이다. 내가 노리는 이동형이 아니라, 건물 가장 깊숙한 곳에 박힌 거대한 놈이. 발전기와 내구성이 모두 갖춰진 건물.
‘돔에서 이번 기회에 영역을 확장할 생각인거야. 이런 보물을 그냥 지나칠리 없는 렙터 소사이어티를 이용해 스캐빈저를 밀어버리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렙터들을 조용히 사살한 다음 건물 전체를 확보해서 사용할 계획이겠지. 안쪽만 정리해두면 돔의 기술자들은 충분히 고장 난 시설을 고칠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력만 수복해도 내부 격벽 같은 시설로 다른 놈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 그렇게 버티는 사이에 돔의 본대가 도착해 이곳을 방어하게 되면, 이곳에 제 2의 돔이 완성되는 거야.’
생각은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진짜 고래 싸움에 잘못 끼었다는 것.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간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자, 벡스가 엄지로 계단 쪽을 가리키며 그냥 빠지자고 하고 있었다.
‘나도 진즉에 그렇게 하고 싶긴 했는데….. 어려울 것 같으니까 고민하고 있는 거지.’
돔의 정예들이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렙터들과의 거리가 멀었다면 쓸데없는 전투 긴장으로 전투력을 소모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만큼 준비한 작전이라면 분명 외부에서 출입한 인원을 감시하고 있는 병력도 있을 테니, 준비를 시작한 시점에서 렙터 소사이어티의 부대가 지하로 진입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툭툭.
“[후방 / 적 / 다수 / 퇴로 / 없음]”
수신호로 뒤쪽으로 슬금슬금 빠지던 벡스와 앞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던 이안을 불러들이고, 최대한 벽 쪽으로 붙었다. 이동하는 동안 만난 변종 둘은 이안과 벡스가 소리 없이 처리했다. 어느 정도 주변이 확보되자, 벡스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퇴로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지?”
“이미 렙터의 군단이 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지하 3층을 나가는 것은 문제 없지만, 올라가는 도중에 놈들을 맞닥트릴거야.”
“그 땅개새끼들이 잔뜩 있다면, 우리 셋 중 누군가가 폭탄을 지고 돌격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기각.”
맞는 말이기는 하다만. 놈들은 어디 싸우러 간다 하면 미니건이나 화염방사기, 둘 중의 하나는 무조건 챙기니까. 정면에서 뚫는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탈출할 방법은?”
“….지금으로선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어.”
적대 세력은 셋. 돔의 정예, 렙터의 군단, 그리고 변종.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변종이다.
“놈들이 머리를 잘 노려서 쏴주면 걱정이 없겠지만….”
“계집애 같이 시가전이나 고집하는 돔 새끼들이 퍽이나. 몸통이나 픽픽 쏴대겠지.”
변종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라기보다 기생 생물에 가깝다. 감염되어, 전신에 퍼질 때까지 그 어떠한 증상도 보이지 않지만, 숙주가 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활동을 시작하여 의식이 끊어지는 바로 그 시점에서 전신을 장악하고 신체를 강화하여 조종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은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사체에서 발현된 변종이 2형, 그 2형이 시간이 지나 몸이 죽고, 피부와 근육이 썩어 약해진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1형, 그리고 건강한 상태로 숨이 끊어져 바이러스가 몸을 잠식하는 동안 신체가 버텨내어 몸이 살아있는 상태로 변이가 이루어진 것을 3형, 완성형 변이체라고 한다.
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인구의 90% 이상이 이미 변이 바이러스의 보균자라고 한다. 그 말은 누구든 죽을 때 머리를 터트리거나 불을 질러주지 않으면 변종으로 되살아난다는 뜻이다.
‘이런 난전 속에서 전부 머리를 노리지는 못할 테니,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녀석들은 대부분 2형으로 되살아난다고 봐도 되겠지.’
사람보다 오감이 예민하고 근력, 순발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 2형 변종. 전투 중 몇 명만 2형으로 변이한다고 해도 순식간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그 혼란을 틈타, 전투 지역에 공간을 만들고 탈출한다.’
교수 쪽이 가지고 있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아직 그 누구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 이쪽에서는 누가 언제 전투를 하게 될지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제기럴. 머신은 포기해야겠군.”
저 황무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약을 많이 들고 다니는 바보. 가방 안에 들어있던 수류탄이나 기타 폭발물의 숫자와 기습으로 볼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가장 좋은 방향은 이게 전부 내 망상이고 저 앞에 있는 놈들이 그냥 용의주도한 스캐빈저라는 것이겠지만….’
….척, 척, 척, 척
“….씨팔.”
저 위에서 조금씩 커지는 규칙적인 발소리를 보니, 그런 희망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