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50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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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교수의 삶에 있어 행운이라 함은, 보통 말도 안 될 정도의 위기와 불행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비교하자면 ‘오, 오늘은 운이 좋군!’ 과 ‘시바 하느님 감사합니다! 좆 같지만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의 차이라고 할까.
“이, 이게 다 뭐냐….”
그런 그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대단히 낯설고 어색한 것이었다.
일이 잘 풀린다. 아니, 잘 풀리는 것뿐만 아니라 뭐가 자꾸 알아서 주머니에 들어와.
수레 만들겠다고 커다란 나무를 분질렀더니-
와르르르!
‘이건…. 두나스 나무의 열매로군요. 마력이 짙은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나무입니다. 나무 자체도 희귀하지만 열매를 맺는게 일년에 딱 사흘뿐이라 제 고향 카네란에서도 두나스 열매를 찾으면 숲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블루라인도 아니고 이런 평범한 숲에 두나스라니. 기이한 일이로군요.’
엘프 성인식에나 쓴다는 귀한 열매가 우르르 떨어졌다.
나뭇가지 세 개로 작은 제단을 만들어 기도하는 이드라실을 뒤로하고 나무를 쪼갰더니-
파르르륵!
‘요, 용사님! 저거 잡아요!’
‘교수! 저 벌레! 저건 연금술, 흑마법사 사이에서 없어서 못 구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골드 비틀이라네! 살아있는 현자의 돌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놈이야! 사막 지형에만 서식하는 놈이 어찌 숲에!’
같은 부피의 금과 교환한다는 주먹 만한 사슴벌레가 무리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어…. 여기서부터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
‘음? 여행자? 혹시 하우누만으로 가는 길이라면 그대로 쭉 가다가 갈라진 바위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길이 나온다네.’
‘그래 맞아. 그리고 요즘 하우누만은 축제 시즌이라 거친 녀석들도 많고 좀도둑도 많으니 조심하시고!’
길을 잃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보따리 상인 두 명이 지름길에 주의할 점까지 가르쳐주질 않나!
그야말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세상이 ‘너 같은 놈한테는 과분한 은혜지만, 한번 주인공이라는게 뭔지 느껴봐라.’ 하고 서비스해주는 기분이란 말이다!
그래서, 수레를 끌고 가는 내내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았다.
“루, 루실라. 여기서 수도까지 나흘 정도 걸린다고 했지? 지금 내가 미친 듯이 뛰어가면…. 해가 지기 전에 수도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좋아서 더 아쉬웠다. 행운 Lv.7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버프가 붙어있는데, 하필 이동하는 중이라 잡템 덤핑으로 다 날려먹다니!
[잡템은 아니지. 기구 떨어지면서 교역품의 절반 가까이 못쓰게 됐는데, 그 황금 딱정벌레 덕분에 돈 걱정은 없어졌다고 하잖아. 헐값에 급처해도 웬만한 고위 귀족만큼 준비해갈 수 있다는데?]‘그러니까! 이 행운이라는 거, 지금 직면한 문제를 막 해결해주고 있다고! 당장 황궁의 대문을 박살내고 들어가서 [우리 전쟁하러 갑시다!] 하면 [어…. 그럴까?] 하고 제국이 참전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런 엄청난 기회를 숲에서 나무나 쪼개면서 흘려보내고 있다니!’
[장소와 시기까지 맞춰서 찾아왔으면 그거야말로 행운 Lv.15겠지. 가진 것에 만족하자고.]다급한 교수의 마음과 달리 하이드의 목소리는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목소리에 교수도 덩달아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아직 시간은 많다. 아직 뽕을 뽑을 기회가 있을거야.”
교수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하우누만의 골재 성벽 앞에서 각오를 다졌다.
성문 앞에 길게 늘어선 인파와 웅성거리는 소리. 가죽과 뼈,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야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성벽.
과거 제국 서부 평야지대의 야만족을 일통한 초원의 대전사 쿤 타기즈의 도시였으며, 지금은 제국의 속국이 된 도시.
하우누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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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음에 달려나가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일행과 짐을 태운 수레는 성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멈춰야 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성문 앞에, 온갖 인종이 모여있는 줄이 뱀처럼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허어. 줄이 무슨 제국 수도의 검문소 앞보다 더 길게 늘어섰군. 하우누만이 원래 이렇게 검문이 삼엄한가?”
오트만은 그들 앞에 죽 늘어선 인파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얼치기로 만든 것치고는 이상하게 잘 만들어진 수레는 멧돼지 가죽으로 된 삼각 지붕까지 얹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레를 끄는 교수와 사이즈가 안맞는 노툼, 보르카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그 안에서 편안하게 하우누만의 정경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다른 도시보다 훨씬 느슨하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 상인들이 말한 축제 때문이겠구먼. 우리 말고도 보따리를 잔뜩 짊어진 이들이나 수레에 상단 깃발을 꽂아둔 사람들을 잔뜩 지나쳐 왔으니.”
“용사님이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다른 상인들과 좀 더 얘기를 나눠볼 수도 있었을 텐데. 봐요, 그냥 지나가다 만난 상인들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꼬박 하루는 더 걸릴 줄 알았던 하우누만 행 여정이 네 시간으로 팍 줄어들었잖아요. 다들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조금은 이 근처 얘기도 들으면서 와도 됐잖아요?”
“그러게나 말일세. 마침 마법사에게 좋은 물건도 있다며 뭔가 보여주려던 찰나에 휑하니 지나오지 않았나? 하우누만에 뭐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암요. 있고말고요. 뭔지는 나도 몰라도 길거리 상인의 깜짝 할인상품보다는 훨씬 좋은 게 있을게 틀림없지요.’
-라는 속마음을 말해봤자 다들 미친놈 취급할 게 분명하니, 교수는 그냥 야만족의 축제라는게 뭔지 보고싶었다고 짧게 얼버무렸다. 지금은 다른 것에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
행운 효과가 끝나기 전에 최단시간, 최단거리로 하우누만의 모든 명소와 NPC를 방문해야 했으니까.
“거기! 상단의 깃발이 있는 상인들은 대열에서 나와 큰 문으로 와라! 축제 기간 동안 상단은 큰 문을 쓸 수 있다!”
그런 교수의 상념은 문지기 오크의 외침에 끊겼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깊이 숙인 교수가 수레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으와아악! 뭐, 뭐에요!”
“상단 수레 다 앞으로 나오라며! 다른 상단보다 늦으면 저놈들 물건 검사하는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된다고!”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서두르는 거냐구요!”
“추, 축제! 그린 스킨과 제국 소수민족의 축제라니! 와, 와아!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는걸?”
당장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자마자 상인들을 위한 출입구가 따로 열리다니. 행운 효과가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져 교수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수레를 통째로 들고온 일행들 앞에서, 건장한 오크의 구령 아래 가죽을 여러 번 덧댄 방패같은 문이 열렸다.
쿵!
급하게 내려놓은 수레 안에서 루실라와 마법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여기서 제일 큰 여관 잡아놓고 기다려. 알았지? 금방 갔다 올테니까!”
교수는 불만과 욕설이 섞인 일행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이국적인 도시의 인파 속으로 몸을 날렸다.
“….혹시 여기 두고 온 애인이라도 있나?”
“아구구…. 뭐가 있긴 있나봐요.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겠는데요?”
“그래. 보나마나 사고를 잔뜩 쳐서 올테니, 일단 정문 말고 도시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곳부터 찾아보자꾸나.”
“그래야겠네요. 아, 이드라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줘요!”
루실라는 황급히 교수의 뒤를 따라 달려나가는 이드라실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일행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교수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사고를 치기만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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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누만.
초원의 대전사 쿤 타기즈의 고향이자, 과거 제국과 유랑 민족들 사이에 가장 많은 피가 흘렀던 접경지.
지금은 제국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어느 정도 자치권을 보장받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제국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는 도시.
그 반골 기질 덕분인가. 이 도시에는 소외받는 수인족부터 범죄자, 반역을 꿈꾸는 사상가까지 수많은 제국 확장 전쟁의 부산물들이 모여있는 편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살아나오는 데 성공한 유일한 캐릭터, 처음부터 폭풍의 언덕만 목표로 삼았던 [바람의 음심] 의 다음 목표를 하우누만으로 정한 것은 그 마법사들의 자유로운 기질에 푹 빠진 덕분일 것이다. 자유 그 자체인 자들과 자유를 위해 투쟁 하는 자. 그 아름다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가.
이번 여정도 험난할 것이 분명하나, 스스로 색의 천마라 칭한 이상 굽힐 수는 없는 법. 더욱이 그 바람대로 살아가는 자들과 모든 것을 나눴거늘, 그들로부터 뭔가 배웠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의 기록은 거친 야만의 도시, 하우누만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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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하네 진짜! 야! 이거 누가 보냈어!”
띠링!
교수는 급히 달리는 와중에 전달된 정보를 펴보고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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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ealook : ㅎㅎㅈㅅ. 그래도 퀄리티 있는 정보 중에서 제일 유명한 건 그거지.
– professor : 퀄리티고 나발이고, 전부 여자 얘기밖에 없잖아! 유명한 건물이나 전설이 깃든 이벤트, 하다못해 특산물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다고!
– takealook : 그 편견에 가득 찬 눈을 내려놓아라 이놈! 그분은 도시의 유명한 여자 NPC란 NPC에게는 전부 껄떡거렸단 말이다! 도시의 절반에 해당하는 NPC에 대한 공략이나 다름없다고!
– professor : 아이 씨바, 그딴거 말고 이벤트! 행운 효과 200% 뽑아낼 수 있는 그런 거! 시간 없다!
– Jokass : 글쎄. 하우누만에서 유명한 게 가죽이랑 그린스킨 말고 또 있음?
– 남바쓰리 : 개쩌는 전사와 의리가 유명합니다요.
– 홀리 : 가죽…. 아닐까요? 거기 가죽옷 예쁘다고 들었는데.
– takealook : 애초에 3월드에서 제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힌 유저도 적은데 제국 구탱이에 처박힌 속국 이벤트를 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음. 상인들 소문으로 뭐가 좋더라- 하는 정도만 알려졌지.
– 노루Drug해요 : 그 어려운걸 색천마는 해냅니다.
– 화약과 피 : 재능 낭비도 저 정도면 예술이 아닌가.
– takealook : 야스 할아버지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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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커뮤니티 인간들은 몹시 수상쩍은 정보나 들이대며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이고 있고, 다나는 다른 일이 있는지 대화방에 없는 상황.
결국 알아서 찾아야 하는 상황에 교수는 일단 도시를 뛰어다니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을 눈에 담고 있었다.
하이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눈으로 대충 훑기만 해도 하이드가 스쳐 지나간 거리에 있던 것들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나는 그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기만 하면 되니까. 혼자 둘러볼때보다 배는 빠르게 도시를 탐색할 수 있었다.
[어디보자…. 입구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게 몰려있던 곳은 기록에 나온 끝자락 우체국이군. 하우누만은 90년 전에는 제국령이 아니라 편지 마법의 영향이 딱 입구에 거기까지만 미친다고 하더라고. 하우누만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저쪽으로 보내면 저기 직원이 직접 전달해주는 식인가 봐] [오, 신기해라. 색천마가 말한 ‘호감도 작업용 선물 사기 좋은 상점’이 저기인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이 즐겨 쓰는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래. 저 동물 가죽이랑 딱딱하게 굳은 치즈, 여기 특산물일걸?] [아! 방금 스쳐 지나온 저 공고문!! 하우누만 바로 옆에 미스릴 광산이 하나 있는데, 지금 축제로 사람이 없어서 급히 인부를 구하고 있데! 당장 광산이 돌아가질 않아서 누구든 오면 채굴한 양의 1할을 넘겨주겠다는데? 야, 우리 정도면 몇 시간 안에 광산을 박살 낼 수 있지 않을까?]‘아니, 그딴거 말고! 좀 제대로 된 거 찾으라고! 진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그런거!’
오랜만에 돌아온 GG의 분위기가 즐거운지 하이드는 연신 신이 난 목소리였지만 교수는 마음이 급했다. 미스릴, 특산물, 관광 명소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도시에 숨어있는 비밀, 전설적인 물건, 하다못해 황위 쟁탈전과 관련된 뭔가라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거라…. 그럼 이건 어때?]콰가가가가가!
“키이익!”
“싸움이다! 난리다!”
“커다란 인간이 길 부순다!”
내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발목에서 돋아난 하이드의 손톱이 브레이크처럼 내 몸을 멈춰 세우며, 뿌옇게 먼지가 휘날리는 사이로 주변의 고블린들이 놀라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도시 경비대한테 나 좀 잡아가라고 시위하는 거냐!’
[흐히히. 급해 보이길래. 이거 말한 거야 이거. 증명 기념일 투기대회. 여기 축제중이라며. 이게 메인 이벤트 아냐? 대충 읽어보니까 축제도 이것 때문에 열린 것 같은데.]‘투기….대회? 투기장? 토너먼트?’
하우누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주변 분위기만 봐도 전투적인 도시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뼈와 가죽, 나무기둥과 흙벽으로 만든 이국적인 건물들.
이 세계의 주민들은 남녀 상관없이 단검 정도는 소지하고 다니지만, 여기 주민들은 죄다 사람 키만 한 칼이나 예리한 도끼를 두 개씩 매고 다니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눈에 전투형 도시처럼 보이는 곳에서 투기 대회라. 그것도 이렇게 축제를 열 정도로 규모가 큰 대회라….
감이 왔다. 이거다! 싶은 감이.
교수는 하이드가 강제로 멈춰 세운 곳, 그 바로 옆에 걸려있는 양피지를 천천히 읽었다.
“대전사이자 초원 유랑민족을 일통한 자,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오크 쿤 타기즈가 전사로서 마지막 도끼를 휘두른 날을 기념하여 여는 축제…. 하우누만을 방문한 모든 종족이 참여 가능하며, 최후의 승자가 된 이에게는…. 이 도시에 속한 어떤 것이든 한 가지를 선택해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거다!!! 이젠 감이 아니라 확신이야!
“아닐거야. 당장 도시가 축제분위기긴 하지만 좀 미지근하잖아. 투기 대회가 시작됐으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 달이 약간 덜 찼었던 것 같아. 신청은 오늘까지 일 거야 아직 안 늦었다!”
행운의 도움을 받을 수많은 기회중 딱 하나를 고르라면 이것밖에 없다.
잘 가다가 추락했는데, 하필 떨어진 곳이 축제중인 도시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곳이라니.
게다가 마침 지나가던 상인들 덕분에 내일쯤에나 도착했을 도시에 벌써 도착해서, 이렇게 신청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투기 대회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흐름이다, 이건…. 흐름이야! 행운님이 내게 점지해주셨다! 투기장으로 가면 길할 것이야!”
확신이 선 교수는 근처에 좌판을 펼쳐놓은 고블린 상인에게 다가갔다.
방금 도로를 엎어버리다시피 정지한 나를 본 고블린은 경계하듯 주춤거리며 좌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키, 키긱?!”
“워워. 놀라지 마시고. 말 좀 물읍시다.”
“키익! 사, 상인에게 말을 걸 때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여전히 두려운지 말을 더듬긴 했지만, 질문을 하려면 물건을 사라는 듯 끌어당기던 좌판을 활짝 펼쳐 보이는 고블린.
내가 뼈의 결정인가 하는 잡동사니 하나의 값을 치르자 그는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든 물어봐라, 뭐든!”
“날강도 같은 놈…. 저기 투기장 저거, 게시판에 신청 장소가 ‘엄니발톱 부족’이라고만 쓰여 있는데, 그게 어디요?”
“끼기긱! 오오오…. 투기장! 너도 투사 지원자구나! 끽…. 시간 많지 않다. 절박해 보이는 부족의 전사들, 산더미 같이 몰려와 신청 인원 한참 넘었다!”
“아니, 그러니까 빨리 좀 얘기해 달라니까! 어디냐고! 엄니발톱!”
“케에에에….”
다급한 내 말에 음흉하게 웃더니, 한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다른 손바닥을 내미는 고블린.
“케히히히…. 너 투사, 부족 위치 모르면 전사의 증명 못 한다! 시간 급하다! 비싼 정보! 많은 은화! 좋은 거래! 케히히히!”
작은 눈이 탐욕스럽게 내 허리춤의 은화 주머니를 훑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아무도 안 살 싸구려 물건이나 늘어놓고, 그것도 유동인구가 적은 골목 안쪽에 좌판을 펴서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저 새끼, 이제보니 일부러 저 공고문 옆에 자리 잡았구만.’
[어떻게 할래? 통째로 집어삼키면 흔적도 안 남아.]‘불량식품 먹지 말자.’
교수는 얌전히 은화 주머니로 손을 뻗어, 은화 세 개. 30 실링어치 은화를 꺼냈다.
죽은 생선 비늘처럼 반짝이던 고블린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끼긱. 충분하지 않다. 나 협상 안 한다.”
“그래? 내가 볼 때 세 개면 충분할 것 같은데.”
교수는 은화 세 개중 하나를 엄지 손톱 위에 올린 다음, 손 마디에 강하게 힘을 주어 튕겼다.
피잉-
파삭!
섬전처럼 쏘아져 나간 은화가 놈의 가랑이 사이에 박혔다.
“케…. 케륵?”
“하나아~”
피잉-!
뜨드득!
“두울~”
정확히 한칸 더 위에 박힌 은화가 고블린의 얇은 천 바지를 찢으며 엉덩이 아래에 박히자, 다음 은화가 어디로 지불될지 파악한 고블린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끼히이익! 외, 외부의 인간이 선량한 고블린 상인 공격한다! 너, 너 큰일난다! 부족의 무시무시한 투사들이 널, 너를….”
“세에엣-”
고블린 상인 테카누는 눈앞의 투사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뒷걸음질치는 그의 고간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는 엄지손가락과 손바닥에 마지막으로 남은 은화를 손톱 위로 굴려 올리는 그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반짝이 세 개는 너무 적다. 세 개는 너무 적다. 세 개는…. 케이이익!’
종의 본능에 새겨진 탐욕이 마구 발버둥치는 가운데, 커다란 인간 투사가 미소지으며 손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 셋은 너무 적지. 아직 젊은 고블린인 그의 집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밖에 없었다. 축제 기간이라 묘하게 들뜬 아내는 가족을 더 늘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셋은 너무 적다. 테카누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아내도 많이 늘리고, 자식도 열 명, 스무 명 더 늘리고 싶었다. 당장 여기서 저 은화 하나에 대를 끊기기엔 자식 셋은 너무 적었다.
그래서, 교수가 셋을 세기 전에 입을 열 수 있었다.
“까, 깎아준다! 두 개면 충분하다! 가르쳐 준다아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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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셋.”
파아앙!
“께으으으으으!!!!”
고블린 상인의 눈이 ‘왜?’ 라는 의문과 함께 절망에 물들었지만, 교수의 손가락에서 쏘아져나온 은빛 빛줄기는 고블린의 대를 끊는 대신 본능적으로 아랫도리를 가린 그의 두 손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박혀 있었다.
세 개의 은화가 나란히 박힌 벽 위로 고블린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어 갔다.
“케엑, 케헥! 케흐흐흑, 키익, 케에에엑….”
“생각해보니까 네 말이 맞네. 귀한 정보니까 제값은 치러야지. 그렇지?”
“케흐흐흑…. 동쪽, 동쪽으로 가라 사악한 인간 투사…. 엄니발톱 부족은 동쪽에서 제일 큰 빨간 천막에 있다….”
“아, 지나오다 봤던 것 같은데. 고맙다. 번창하시고.”
교수는 바지를 다 적시고 자기 좌판까지 적시고 있는 고블린의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 후련한 발걸음을 돌렸다.
“케헥, 크흑, 케흐흐흑….”
고블린 테카누는 서럽게 울며 벽에 박힌 은화 세 개를 뽑아 박박 닦은 다음, 머리에 감은 터번을 풀어 그 안에 들어있던 종이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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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누만 전사의 증명 출전표]『세 손가락 부족』
– 1. 곰 수인 파구르스 : 곰 수인의 파워로 커다란 양손 메이스를 쓰는 투사. 불덩이 멧돼지를 맨손으로 죽였다.
– 2. 세 번째 손가락 이쉬툼 : 세 손가락 부족의 세 번째 우두머리. 잘 싸운다. 많이 이긴다.
– 3. 인간 고르고닐 : 출신 불분명. 사슬 같은 것을 몸에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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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갈비뼈 부족』
– 1. 푸른 갈기 투샨 : 투기장 소속. 쎄다. 많이 이긴다. 배당이 낮다.
– 2. 멍청한 오몬 : 투기장 소속. 크다. 튼튼하다. 배당이 낮다.
– 3. 푸른 갈기 마르카 : 투기장 소속. 쎄다. 영리하게 이긴다. 한달 전 경기에서 많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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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발톱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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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흐흐… 케… 케히히히…. 인간 투사…. 그래도 나는 돈을 번다….”
테카누는, 찌그러진 은화 세 개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어린아이 낙서같은 글씨를 종이위에 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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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발톱 부족』
– 1. 제국 검사 로메우스 데미아누스 : 바보다. 얼치기다. 죽는다. 배당 높다.
– 2. 날쎈 치키티아누 : 날쎄다.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내 돈을 훔쳐간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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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커다란 인간, 펑퍼짐한 하얀옷 검은 발톱 : 외부인. 사악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무섭다. 고간을 노린다. 손가락을 튕겨 동전을 벽에 박는다. 힘이 세다. 처음보는 인간. 배당은 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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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히히히…. 문지기는 이름을 알거다. 투사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상대 선수들의 정보…. 이건 비싼 값에 팔 수 있을거다! 결국 마지막에 돈을 버는 것은 고블린이다! 케히히히!”
테카누는 이번 축제에도 한몫 단단히 벌 생각에 바지에 지린 소변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채 신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목덜미로,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은밀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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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이드라실은 고블린의 지린내나는 종이를 품어 넣고 있었다.
‘루실라는 사고가 나지 않게 잘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도 사람이었다. 폭풍의 언덕에서 같은 경험은 한번으로 족했고, 그런 그녀의 눈에 뭔가 수상한 고블린은 그 ‘사고’의 시발점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방금 교수의 은화 탄환이 매우 효과적인 것을 학습하며 상대에 따라 다소 과격해도 된다는 것을 배운 이드라실이었다.
가느다란 밧줄에 꽁꽁 묶인 고블린의 허망한 눈빛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이드라실은 다시 교수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대모가 봤다면 가슴을 치고 후회했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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