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51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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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간까지 뭘 하다 왔나 했더니…. 투기 대회에 나가신다고요? 그럼 그거 신청하신다고 이렇게 늦으신 거예요?”
“그것도 있고. 여기저기 재밌는 게 많더라고. 아, 이거 선물.”
교수는 음식이 한가득 차려진 테이블 위에 묵직한 자루를 쏟아내었다.
“미스릴 대충 5kg 정도에 특등급 베니 라이온 가죽 두 장, 장신구들은 그린스킨 특유의 거친 가공 때문에 가치는 잘 모르겠고. 아,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거. 그건 비싸 보이더라. 팔씨름 대회 우승 상품인데 주최 측이 울면서 따라오더라고. 봐달라고, 진짜 이길 줄 몰랐다고 그러면서.”
“….이거 진짜 호안석(虎眼石) 같은데요? 이 크기면…. 대형 아인종이 쓰는 반지? 아니면 작은 팔찌?”
“아니, 그거 코에 하는 피어스야. 팔씨름 진 녀석이 자기 코에서 직접 뽑아서 넘겼지. 호안석 장식을 하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용맹한 기운이 섞여 들어온다고 믿는대.”
“으익!”
전 주인의 사용처를 확인한 루실라가 화들짝 놀라며 장신구를 놓쳤다. 테이블 위로 날아간 호안석 장신구를 솜씨 좋게 받은 보르카는 그것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대장이 서두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소. 지금 테이블 위에 쌓인 물건만 해도 은화를 커다란 궤짝으로 담아갈 수준이니.”
“그럼, 그럼. 내가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아도 다 뜻이 있단 말이다.”
“돈도 좋고, 한나절도 안되는 시간 동안 하우누만에 ‘괴력의 교수’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대관절 나는 왜 끌어들인 것이오?”
보르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의 목에 걸린 금속 목걸이를 들이밀었다. 싸구려 목걸이에 매달린 작은 사각형 판에는 ‘보르카 달룬 / 늑대인간 – 엄니 발톱’ 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당연히, 교수의 목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같은 목걸이가 있었다.
“음? 아아, 그게…. 무투 대회는 무조건 2인 1조라네? 한 명 더 데려와야 한다고 하더라고. 자, 봐봐.”
교수의 손가락이 일행을 하나하나 지목했다.
“몇 초만 달려도 헉헉거리는 늙은 마법사 둘.”
“10대 상인 소녀.”
“트롤 주술사.”
“원형 콜로세움에 어울리지 않는, 원거리 특화 엘프”
“전직 투기장 출신으로 투기장에서 몇 년을 굴러먹었던, 검투 대회의 전문가 늑대인간.”
“자, 이 중에서 누가 2인 1조 투기 대회의 동료로 가장 어울릴까?”
따로 묻지도 않았건만,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보르카에게 몰렸다.
“그….래도, 노툼 정도는-”
“참고로 마법사나 주술사는 위대한 전사의 업적을 기리는 대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야. 이겨도 돌 맞는다고 하더군.”
“으으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일행 중 누구를 데려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저 급박한 와중에 위치가 파악된 일행이 보르카뿐이었던 것이지.
신청 종료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점에 동료 한 명을 더 구해오라는 말에,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 입구의 공동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편지 마법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보르카가 매일 아침 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 난리가 나는 바람에 빼먹었으니 무조건 여기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시 안에서 유일하게 대마법사의 편지 마법이 닿는 공동 우체국 앞에 보르카가 편지 두 장을 품에 안고 줄을 서 있었다.
뭘 시키든 우직하게 잘하는 보르카가 이렇게 골이 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었던 내가 납치하다시피 데려오는 바람에 자식들에게 오늘치 편지를 못 보냈기 때문이다.
“대회는 내일 아침부터 3일간, 토너먼트 형식으로 펼쳐진다는군. 참가 팀이 무려 64개 팀, 명수만 128명이야. 너무 커서 제국이 다 소화하지 못하고 속국으로 남겨둔 저 평야의 무수히 많은 부족 중에 최고들은 다 모였다는 소리지. 거기에 명예를 노리는 방랑 기사에 야만 부족에 빚을 지우고 싶은 상단의 대전사, 초원의 보물을 노리는 귀족이 보낸 사람들까지.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을 거야.”
교수는 여관 주인이 내어온 음식을 한입 가득 쑤셔 넣으며 말했다. 그 여유작작한 모습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특히나, 아직 자기 때문에 일행이 발걸음을 돌렸다고 믿는 루실라는 더.
“사흘이면…. 너무 시간을 지체하는 게 아닐까요? 오늘 하루, 앞으로 사흘, 수도까지 가는데 또 사흘이고. 수도에서 보내게 될 시간까지 계산하면…. 못해도 엘프 숲으로 가는 길이 한 달은 더 늦어질 것 같은데….”
“그것도 다 생각했지. 일단 로드릭 전선은 멀쩡할 테니까 시간은 괜찮아. 물론, 시간을 벌었다고 느긋하게 낭비할 생각도 없지만.”
원래 목표는 투기 대회의 우승 상품도 있었지만, 대회 중에 만나게 될 여러 히어로 유닛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엄니발톱인가 하는 부족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것 말고도 제법 수상한 이야기가 잔뜩 있었던 것이다.
‘크흥! 올해는 예년보다 투사가 배는 더 왔다! 강하고, 승리에 대한 투지가 가득한 전사들이 손가락으로 열 명! 그보다 조금 더!’
‘대충 100명이 넘는다는 소리 같은데…. 올해 걸린 상품이 특별한가?’
‘초원에 이상한 괴물이 늘었다! 안전하게 양을 풀어 키울 초원이 줄어들면서 인간 부족 중 굶는 부족이 잔뜩 늘어났고, 그린 스킨들도 살기 힘들어졌다! 다들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하우누만의 여덟 부족 중 하나에게 그 자리를 달라고 할 심산이겠지! 하우누만의 여덟 부족은 도시 주변의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으니까! 부족의 명운을 걸고 달려들 것이다!’
‘잠깐만…. 도시 안에서 뭐든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한 게, 설마 통치권도 포함된 거라고?’
‘크흥! 가장 강한 전사를 가진 부족이 대초원의 전사가 눈감은 땅에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원래 하우누만의 여덟 부족은 모두 그의 자손인 오크들이었지만 지금은 고블린 둘, 인간 하나, 오크 다섯이다!’
교수는 엄니발톱 부족의 오크가 한 말을 떠올리며, 그의 테이블 위에 놓인 따끈한 미트파이를 여덟 조각으로 잘랐다. 다섯 조각 위에는 오크를 의미하는 녹색 향신료를. 두 조각 위에는 회색과 녹색이 섞인 피부의 고블린을 의미하는 후추를. 그리고 마지막, 인간이 차지한 지역을 의미하는 파이에는….
콰악!
무자비하게 포크를.
“생각보다 대회 상품으로 걸린 ‘뭐든지’의 범위가 넓더라고. 부족의 유물이나 돈, 보석 같은 유형의 재산이 아니라 하우누만에 속한 무형의 권리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덕분에 뮤테이션 블러드…. 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의 침공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초원의 부족들이 부족의 명운을 걸고 대회에 참가했으며, 속국이자 제국의 법망에서 벗어난 하우누만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탐욕스러운 귀족, 상인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장 여덟 부족 중 하나의 자리를 차지한 인간도 여기서 한참 떨어진 빌데란트 후작의 사람이라더군. 뭐 하나 한번 둘러보고 왔는데, 그쪽에 할당된 하우누만 인근의 땅에 전부 마약성 식물을 재배하고 있었어. 직접 땅과 권리를 이용할 힘이 없으면 그 권리를 다른 절박한 부족에게 팔아도 되겠지. 당장 살 곳이 없어진 부족들은 무엇을 지불하든 그 권리를 받아내고 싶어 할 테니까.”
“우음…. 생각보다 대회에서 내건 상품이 크긴 하네요. 제국 접경지에 강한 전사를 가진 부족을 받아들여 제국의 간섭을 막겠다고 시작한 대회가, 오히려 제국이 스며들 기회가 되다니….”
“전통을 너무 귀하게 여기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지. 덕분에, 내가 여기서 뭘 얻어가야 할지도 생각났고.”
“뭔데요?”
“음…. 솔직히 아직 대회 상품은 뭘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고. 사실 상품보다 대회 자체를 좀 이용할까 싶어서. 어쨌든 우리 목표는 로드릭에 지원군을 보내는 거잖아?”
만약 그냥 외부인이 이곳에 몰려든 각 부족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얘기하고 싶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거나, 더 나아가서는 내정 간섭을 획책하는 무리로 여겨져 쫓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기장에서 만나서 얘기한다면? 참가자가 많은 만큼 대회는 사흘 내내 벌어질 것이며, 당연히 각 투사들이 대기할 시간도 길어진다. 그때 옆에 있는 투사나, 혹은 좀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투사들한테 몇 마디 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은 그냥 전사가 아니라 각 부족을 대표하는 전사들이다. 힘을 숭상하는 이곳 풍토를 보면 그들이 부족 내에서 가진 권한도 막강할 터.
“챔버 메이드, 하녀는 뿌리내린 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여 뮤트를 뽑아내지. 만약 저 부족들이 쫓겨난 땅에 하녀가 셋 정도만 자리 잡았다 쳐도 네다섯 부족은 족히 살아갈 초원이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거야.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이나 다름없는 땅이. 자, 그럼 이 투기 대회에는 살아갈 땅이 없는 이들의 대표가 우글우글 몰려있고. 저어-쪽 산맥 너머 로드릭에는 귀족이 떼로 몰살당해서 텅 빈 땅이 잔뜩 있네? 어떻게, 그 둘을 잘 연결할 각이 나오지 않아?”
“설마…. 초원의 야만 부족을 로드릭에 끌어들이겠다는 거예요?”
루실라의 말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땅을 받으려면 공을 세워야 하지. 단승도 아니고 세습이 가능한 영지를 받으려면 보통 공을 세워서는 어림도 없는데, 마침 로드릭은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을 하는 중이잖아? 저들을 참전시켜 작위를 받아내게 할 명분은 충분하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되는 상황인데.”
물론 잡음이 적진 않을 것이다. 당장 유목 민족으로 살아가던 부족들에게 한 영지에 자리 잡고 살아가라니. 법도, 문화도, 관습도 모두 다른 이들인 데다 부족 단위로 저 만리 타향살이를 해야 한다고 하면 대뜸 거부감부터 느낄 부족들도 많겠지.
“그래-서! 내가 다 발라버리고 이겨야 하는 거야.”
하지만 거부감이 아무리 심하다 한들 가족 같은 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고통에 비할 것은 아닐 것이다. 하우누만의 땅을 얻지 못하면 저들은 진짜 갈 곳이 없다. 다른 부족에 합병되거나 이미 주인이 있는 땅을 불법으로 침입해 살아가는 약탈 부족이 되는 수밖에.
생각이 있으면 내 제안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때. 이 정도면 사흘 정도 여정을 늦출 만하지 않아? 초원 부족의 전사들은 다섯 살 먹은 꼬마부터 70 노인까지 전부 기마병이라고? 말 타는 것 하나 만큼은 기사 국가 로드릭의 기사들보다 한 수 위일걸? 당장 샬롯 입에서 ‘살았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거라고.”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있는 칠면조의 큼지막한 가슴살을 입에 욱여넣었다. 어느새 방음 마법을 펼쳐둔 오트만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일리 있군. 확실히 일리가 있어. 과거 초원의 부족들이 제국 영지를 끊임없이 침범한 것도 척박한 초원에서 나는 것만으로는 겨울을 넘기기 힘들어서 그랬으니. 오래전부터 그들은 내륙의 비옥한 토지를 탐내고 있었지. 얘기할 기회만 생긴다면…. 충분히 그들을 참전시킬 수 있을 것 같네.”
“그러니까요. 우린 이번 투기 대회에서 상품이 아니라, 초원의 사람을 훔쳐 갈 겁니다.”
초원의 각 부족을 대표하는 전사들이 모조리 한자리에, 심지어 절박한 상태로 모여들다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거저 찾아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
교수는 마술처럼 칠면조 한 마리를 먹어치운 뒤, 여덟 조각으로 잘라둔 파이를 그릇째 들어 올려 한 조각씩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물론, 대회 우승 상품도 포기할 생각은 없죠.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고요. 하우누만에 온 지 아직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고, 이 도시가 어떤 보물을 품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허허. 욕심도 많군.”
“다~ 세상 좋으라고 하는 일 아닙니까. 음~ 라투라.”
교수는 어느새 싹 비워버린 테이블을 보며 여관 주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축제를 맞이하여 [특별 칠면조 정식! 5분 안에 다 먹으면 무료!] 라는 이벤트를 내건 주인은 울상이 되어 벌써 세 번째 리필을 외치는 교수의 테이블에 음식을 나르고 있었고, 머릿속에서 하이드가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을 보던 교수는 루실라가 이 여관을 고를 수 있게 도와주신 위대한 시스템님을 향해 속으로 건배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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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어, 눈이네?”
교수는 창밖에 새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부터 투기 대회가 열리는데 눈이라니. 보통 축제가 따듯한 봄이나 여름, 추수가 끝난 가을에 열리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여러모로 일반적인 3월드 문화와 다른 느낌이 있는 도시였다.
계단을 내려오니 다른 일행은 아직 자고 있는지, 아침부터 북적이는 여관 1층에 오트만 혼자 테이블에 앉아 접시 위의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고~ 좋은 아침입니다. 건조한 동네라 컨디션이 좀 안 좋을 것 같았는데, 딱 눈이 와주네요.”
“그러게 말이야. 수계 마법사는 강수량이 적은 지역을 좀 피해 다니는 게 좋지. 물을 끌어들이기 힘드니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눈이라도 와 줬으니 교수 자네에겐 좋은 일이지.”
“뭐, 마지막 행운치고는 소소하니, 썩 괜찮은 편이네요. 뭐 하십니까?”
“그게…. 이곳에 특색있는 어류가 있다길래 요리하지 말고 하나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음…. 어류는 맞습니까?”
“옆 테이블에 요리된 상태로 나온 것을 보면 확실히 생선은 맞았거늘. 이 모습은 도저히…. 으으음. 모르겠어.”
어째서인지 우리 테이블에 유난히 퉁명스러운 주인이 가져다준 것은 타조알 같은 진흙 덩어리였다. 손으로 슬쩍 걷어보니 그 안에 미끌미끌한 생선이 들어있는 게, 오트만이 왜 고민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먹어도 마법적으로 문제없을 것 같은 기분입니까?”
“글쎄…. 아가미가 있으니 물에 사는 생물은 맞을 터인데. 배를 갈라보니 허파도 있고. 역시 이런 것은 안 먹는 게 좋겠지. ‘혹시나 아니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마법사의 확신을 줄이고, 실제로 약화된 마법이 그 의심을 더욱 키우게 할 테니 말이야. 조금 질리지만, 오늘도 수초와 구름 대하로 배를 채울 수밖에.”
“어휴. 정말 사서 고생하십니다. 당장 눈앞에 구운 고기랑 이것저것 다 먹고도 잘만 마법 쓰는 제자가 있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드십니까?”
오트만은 눈앞에 기이한 생선을 치워버린 다음 로브 주머니에서 말린 수초를 꺼내며 쓰게 웃었다.
“몇십 년간 머리에 박힌 고정관념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나.”
“마법사 고집하고는. 알아서 하시지요. 보르카랑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알드리치랑 루실라는 어제 얻은 그 귀하다는 열매와 황금 딱정벌레를 팔러 시장에. 노툼은 자고 있고, 보르카는 오랜만에 투기장이라 몸을 좀 풀겠다면서 나가더군. 말은 그렇게 해도 품에 편지 쪼가리를 들고 있던 것을 보니 시간이 좀 걸릴 게야.”
“다들 열심히구만. 아, 이드라실은 어디 갔습니까? 안 그래도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드라실이야 뭐…. 한번 둘러보게. 아침에는 못 봤지만 자네 주변에 있겠지. 저쯤에 있는 것 같군. 자네 말대로 참 열심히들 사는 것 같아.”
오트만이 주변을 둘러보다 손을 휘젓자, 물의 정령의 힘인지 여관 구석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있던 이드라실이 드러났다.
[쟤는 어째 갈수록 스토커 같이 변해가는데? 저 집 아줌마가 너 믿고 맡긴 거 아냐?]‘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진짜로.’
[그런 것 치고는 숲에서 나왔을 때의 그 엘프랑 너무 달라졌잖아. 엘프 나이 70이면 되게 어린 거라며. 아무것도 안 했다는 그 대목에서 이미 실격인 것 같은데. 어른에게는 아이들에 관한 교육적 책임이 있다고. 특히나 네가 암묵적 대리 보호자가 된 상황이라면.]‘음….’
하이드의 말에 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눈과 무시무시한 전투망치가 떠올랐다. 저 녀석, 대모님이 나를 통해 인간을 배우라고 했던 것을 너무 충실하게 따라서 아예 내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기록하고 있었지.
순간 나도 모르게 ‘느금마 신이라며! 뒤져서 곁으로 가라!’ 라고 외치는 내 옆에서 ‘당신의 모친이 신이니, 여기서 개처럼 죽어도 어머니 곁으로 가겠군요. 축복입니다.’ 라고 무미건조하게 외치는 이드라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걸 보고 대노하여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대모님도 함께.
‘으음…. 너무 방임하는 것도 좋진 않겠군.’
[그렇지? 특히나 상대가 완전히 순수한 백지나 다름없는 엘프인데 말이야. 어쩌면 벌써 늦었을지도 모르지. 엘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잖아.]그 말에 더 불안해진 내가 손짓으로 이드라실을 부르자, 사뿐사뿐 걸어와 내 반대편에 앉은 이드라실은 그 불안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었냐?”
“늘 그렇듯, 관찰과 학습입니다. 지난번 제 행동이 불쾌하고 징그럽다 하셨으니.”
“그래서…. 정령까지 써가면서 숨어서 날 보고 있었다고?”
“예. 이렇게 들통났으니 다시 불쾌해지셨겠지요. 다음에는 조금 더 은밀하고 드러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큰일 났다. 고귀한 영웅의 자손이자 카네란의 나림 계급인 하프 엘프가, 그 순진무구하던 이드라실이 조금 더 전문적인 스토킹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지 입으로 말하고 있어!
당장 그녀 주변에 맴도는 물의 정령만 해도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이거 맞아?’ 같은 느낌의 몸짓을 반복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저런. 늦었네.]‘아냐! 아직, 아직 그 시절 이드라실로 되돌릴 기회가….’
“아. 어제 교수님의 뒤를 추적하던 중. 다소 불미스러운 계획을 세우던 고블린을 발견하여 습격했습니다. 여기, 투사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하더군요.”
“머, 먼저 습격해서…. 물건을 빼앗았다고?”
“충분히 그래도 되는 대상이라 판단했습니다. 죽이지 않고 잘 포박하여 큰길에 내려놓았으니 인복이 있는 고블린이라면 금방 구출됐겠지요.”
이드라실은 누렇고 얼룩진 종이를 내게 내밀며 살짝 웃어 보였다. 마치, 자기 성과가 자랑스럽다는 듯.
슬슬 공기를 찢어발기는 대모님의 전투망치 풀스윙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강도라니. 엘프 스토커에 이어 엘프 강도라니! 이드라실 넌 도대체….!’
하이드가 속에서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그와 오트만의 얼굴에도 이건 아니라는 표정이 가득 떠오르는 가운데.
지금이라도 엄하게 가르쳐 어떻게든 대모의 망치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교수였지만….
“어…. 으…. 자, 잘했어….”
“감사합니다.”
종이를 펼쳐본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얼떨떨한 칭찬이었다. 어린 강도 엘프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질만한, 그런 칭찬.
오트만의 표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을 본 것처럼 일그러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보게 교수! 아무리 피붙이가 아니라도 자네를 보고 배우는 이드라실에게 그 무슨 망발을! 저 종이가 아무리 가치 있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데…. 어, 그게 아니라 이건…. 진짜 잘…. 어…. 잘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뎁쇼?”
슬쩍 곁눈질로 본 누런 종이에서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한 교수는 차마 이드라실을 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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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갈비뼈 부족』
– 1. 푸른 갈기 투샨
– 2. ….
– 3. 푸른 갈기 마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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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갈기 투샨. 푸른 갈기 마르카.
투샨. 마르카. 투샨이랑 마르카.
‘하, 하이드. 기억 좀 뒤져봐. 이거…. 내가 기억하는 그거 맞냐?’
[자, 여기. 직접 확인해 보시지. 그리 오래된 기억도 아니니.]아직까지 키득거리던 하이드는 괴물의 모습으로 빛나는 기억들을 헤치더니, 하나의 기억을 내게 던져주었다.
『아아, 달리아, 투샨, 마르카…. 기다려라. 곧, 만나러 갈 테니….』
보르카랑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 서열 정리한다고 줘 팼더니 죽어도 상관없다며 달려들던 보르카가 중얼거리던 이름.
나중에 알았지만 달리아는 죽은 아내의 이름이었으니, 투샨과 마르카는….
‘녀석의…. 보르카의 잃어버린 두 자식이야. 지금도 매일 아침 보내는 편지에 쓰여지는, 그 이름.’
찾았다. 저렇게 매일 애가 끓는 것을 보며 찾아주고는 싶었지만, 이 넓은 제국 어디에 처박혔는지 알 수 없는 보르카의 잃어버린 두 자식의 이름이, 떡하니 투기 대회 참전 명단에 박혀있는 것이다.
“자, 잘했어…. 정말 잘했으니까, 당장 보르카 불러와….”
“늑대인간 말입니까. 용무는 뭐라고 하면 될지.”
“그딴 편지 같은 것은 직접 전할 수 있으니까, 당장 오라고! 당장!”
메인 퀘스트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교수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속으로 바라고 있던 일. 그야말로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인연.
행운이 가져다준 마지막 선물에, 교수는 차마 이드라실에게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
보르카의 잃어버린 두 자식이, 제국의 속국. 하우누만 투기장 소속으로 그들과 같은 도시에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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