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55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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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제국의 색에 많이 물들긴 했지만 하우누만은 초원의 전통과 대전사 쿤 타기즈를 숭상하는 도시.
그렇기에 훌륭한 전사를 배출한 부족은 언제나 우대와 존중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부족 최고의 전사가 가는 길은 언제나 화려한 장식과 전통 음악이 함께하곤 했다. 전사의 명예가 곧 부족의 명예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풍습은 투기장 전사들의 마차에도 적용됐으며, 2차 예선이 끝나고 뒷배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지금부터가 하우누만 투기대회 볼거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보통 이맘때쯤 하우누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있다.
쿤 타기즈와 제국이 피 터지게 싸우던 시절, 수비를 위해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첨탑.
예년 같으면 투기장 도박꾼들의 열기로 떠들썩할 이곳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저, 저게 뭐시여….”
“가죽 공방 라인이면 엄니발톱쪽 대전사 같은데….”
지난 십여 년간 검투 대회를 봐왔던 사람들은 대놓고 세력을 과시하는 뒷배 덕분에 웅장하거나, 더러는 화려한 마차를 많이 봐왔다.
오크 부족은 특유의 전쟁북과 워 크라이를 울리며 올라왔고, 고블린은 생필품이나 은화를 뿌리며, 인간 귀족은 가문의 깃발과 나팔을 울리며 말을 타고 올라왔고 수인, 초원 유목민은 저마다 부족의 전통 문양과 공예품으로 장식된 마차를 끌고 올라왔다.
하지만, 단 한번도 저렇게까지 화려한 마차는 없었다.
뭐, 전쟁북? 오크의 전투 함성? 돈을 뿌려?
이쪽은 60명의 교단 성가대와 장엄한 신전의 금관악기, 광명 교단 특유의 정신을 맑게(더러는 아무것도 없게) 만든다는 금속 종을 울리며 올라왔다.
초원 부족의 화려한 가죽 공예품과 전통 복장? 은화 세례?
12개의 화형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과 연기, 그것에 실체를 부여하듯 새하얀 빛으로 물들이는 눈부신 성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른 라인에서 올라오는 마차가 전부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장엄한 행렬에 관람객들이 넋이 나가 있을 때 쯤.
“….키, 키이익! 도박꾼! 돈 받아라! 저거! 하얗고 번쩍이는 마차! 누구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고블린이 등에 메고 온 자루를 고블린 도박꾼의 팻말 위에 내려놓더니, 반지와 목걸이, 손목에 찬 장신구마저 벗어 던지며 절박하게 매달렸다.
중앙 콜로세움을 소유한 부족, 열린 갈비뼈 출신 고블린은 당황한 얼굴로 양피지를 살피며 대답했다.
“어, 엄니발톱의 교수와 베나드 팽! 가죽공방 라인의 승자는 두 사람이다!”
“께에엑! 교수와 베나드 팽 팀에 가진 거 전부 건다! 집에 가서 나머지 더 가져온다! 기다려라! 기다려!”
눈이 시뻘게져서는 입금 금액과 배당이 적힌 목패를 받고 구르듯이 달려나가는 고블린.
넋이 나가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정신이 돌아왔는지, 신성하게 빛나는 골목과 두 사람의 배당을 번갈아 보았다.
[인간 교수 / 수인 베나드 팽 : 9.42]9.42면 승리 배당이 말도 안 되게 높은 팀에 속한다.
이유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순수하게 전통밖에 모르는 멍청한 엄니발톱 부족은 거의 모든 검투사가 기피하는 소속이었으니까. 매년 검투사 숫자도 겨우 채워보내는 약소 부족의 대전사에게 돈을 걸 사람은 없으니 배당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특히나 올해는 더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엄니발톱이 하우누만 8부족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갈퀴 발톱이라는 걸출한 전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1년 전 경기에서 치료도 못받고 연전을 거듭하던 늙은 오크 전사 갈퀴발톱이 마침내 숨을 거둔 것이다. 덕분에 올해 하우누만에서 퇴출당하는 부족은 엄니발톱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퍼져있었고, 당연히 그 소문도 배팅에 영향을 미쳤다. 엄니발톱 부족은 말 그대로 가라앉는 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웅장함을 넘어 신성하기까지 한 저 행렬은 뭐란 말인가. 깃발과 복식을 보니 광명 교단의 사제들로 보이는데 대관절 사제들이 왜 저기서 저러고 있으며, 가죽공방 예선을 지켜본 관객들은 어째서 저 엄청난 행렬에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전부 쌈짓돈과 패물을 움켜쥐고 투기 도박장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가?
“잠깐만. 광명 교단과…. 인간 교수? 광명의 교수…. 피, 피의 성자? 가는 곳마다 기적처럼 이단을 피떡으로 만든다는 그?”
“베나드 팽이면 어디선가…. 아냐. 그럴 리가 없지. 절대로 없는데…. 수인 베나드 팽…. 만약에 그 검투사와 피의 성자가 팀이라면….!”
“말이 돼. 저놈들이 가죽공방 예선에서 뭘 봤는지 몰라도, 저렇게 미친 듯이 몰려갈 정도로 확실한 픽을 찾았다는 게 말이 돼!”
희번뜩!
첨탑의 망루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앞다투어 도박꾼의 좌판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엄니발톱의 성자와 검투사에게 2500실링!”
“현물! 현물도 받는다고 했지! 낙엽 이슬 부족의 무녀, 샨-무아가 직접 축복한 금팔찌다! 증조부님 때부터 가보로 내려오던 물건이야!”
“키이익! 내 돈부터 받아!”
“그르르르! 비켜라 작은 고블린! 내가 먼저왔다!”
인간과 수인, 고블린이 앞다투어 돈을 던지다시피 하는 가운데.
내기 금액의 최상단에 적힌 루실라 아에드란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으며, 도박장을 관리하는 고블린은 이미 앞선 두 경기에서 12.04, 10.37 이라는 경이로운 배당을 획득한 그 이름에 역시 골드 가이저는 다르다며 감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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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으셨습니다, 형제님들. 이제 이 앞에서부턴 저와 제 동료의 길이니 잠시 헤어지도록 하지요.”
“급히 준비하는 바람에 성자님을 모시는데 결례가 되지 않았나 아쉬울 따름입니다. 부디 광명의 큰 뜻을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라투라.”
“라투라, 로-하람.”
3차 예선, 시민 거주구에 마련된 투기장에 도착한 교수는 마차에서 내려 주교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대화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제국이 어디까지 손을 썼다고.』
『현 하우누만의 통치 구조는 정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얽혀있다 보시면 됩니다. 제국 세력을 밀어내기 위해 오크 대부분이 암묵적 협력에 들어갔고, 또 투기장의 주인인 열린 갈비뼈는 세력 확대를 위해 빌데랑트, 제국쪽 인사와 손을 잡은 상황이지요. 유일하게 얽혀있지 않은 부족은 야합, 정치적 타협을 혐오하는 엄니발톱 부족입니다. 성자님께서 선택을 정말 잘하셨지요.』
『당신 같은 주교가 이곳에 있었다니. 로 하람께서 도우심이야.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허허허허. 제 존재가 그분의 준비일 수 있었다니. 오늘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군요. 부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드린 ‘부름 막대’를 꺾으면 도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빛의 기둥이 올라올 것입니다. 80명의 성기사단이 성자님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고맙군. 그럼, 경기 끝나고 보지. 라투라.』
『라투라, 로-하람.』
『아, 혹시 여력이 되면 세나디스에게 안부 전해주고.』
『세나디스 주교. 빛의 그림자 중 가장 헌신적인 자매님이지요. 알겠습니다.』
입으로 나오는 말과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말의 끝이 겹치며, 주교와의 대화가 끝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냥 하는 짓이 꼴 받아서 신전을 통째로 불러온 것이 아니다.
이곳은 제국의 영역이며 시민의 대부분이 이종족인 도시. 당연히 과거 광명 교단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암중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을 것이고, 통칭 ‘교단의 그림자’라 불리는 대주교 직속 조직이 활약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주교를 불러서 슬쩍 물어봤는데…. 설마 주교 자신이 그림자에 속해있을 줄이야.’
덕분에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얘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신성한 광휘는 주교의 신성 통신마법에서 뿜어져나오는 성광을 가려주었고, 화형대의 연기는 주교와 나 사이에 오가는 눈빛과 가까운 거리를 사람들에게서 가려주었다.
찰팍!
『대장. 그런 걸 다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오? 춥다고 한 것도, 치유의 은사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겸사겸사. 마인드 맵을 그리듯 생각의 눈덩어리를 굴리는거야. 치료를 해야겠네. 신전을 못가? 그럼 신관을 부르자. 그러고 보니 여기 그림자 있겠네. 주교 정도면 알겠지. 아, 제국령에 반항적인 속국이니 제국의 첩자가 많겠군? 가리면 되지. 기왕 부르는 거 아예 확실한 자극이 될 수 있게 사이즈를 냅다 키워보자.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막 굴리면서 키워나가는 거야. 습관 되면 쉬워.』
『….그런게 습관이 될 정도면 나는 한참 전에 미쳐버리고도 남을 거요.』
주교와 사제들이 물러가고, 경기장 입구로 다가가는 동안 메시지 마법으로 상황을 설명하자 보르카는 질색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결론이 뭔지 모르겠소만.』
『하나씩 설명해주지.
첫째. 투기 대회의 개최자이자 투기장의 주인, 열린 갈비뼈 고블린은 빌데란트 후작가와 손을 잡았다. 왜? 제국의 막강한 파워로 경쟁자를 밀어내고 이 야만의 도시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둘째. 빌데란트 후작가는 마약이나 만들어파는 쓰레기다. 쓰레기지만 마약은 돈이 되고, 저 너른 초원에서 대량으로 길러낸 마약성 식물은 아무리 후작이라도 쉽게 판매할 수 없지. 암흑가에 라인을 하나 파서 주기적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얘기야. 오케이?』
보르카는 각반을 꺼내 정강이에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하우누만은 범죄자가 몸을 숨기기에도 좋은 도시이니.』
『다음, 셋째. 제국은 하우누만을 흡수하고 싶어해. 제국민 이주 정책이나 기타등등으로 열심히 진행했지만, 아직까진 잘 진행이 안 되고 있었지. 하지만 제국의 후작, 빌데랑트가 몇 년 전에 투기대회 우승을 하고, 8부족중 하나의 대표와 결투에서도 승리해서 한 자리 차지했네? 이런 식으로 계속 세를 늘려나가다 보면 하우누만은 제국에 완전히 흡수되고, 중심을 잃은 초원 부족들도 흐지부지 제국에 스며들거나 흩어지겠지? 와우! 제국의 오래된 숙원 중 하나가 해결되겠는걸?』
『어….대장? 갑자기 둘에서 셋으로 넘어오면서 잘 이해가….』
『들어봐. 넷째. 지금 박터지게 치열한 황위 쟁탈전에서 황자, 황녀님들이 간~~~절하게 원하는게 바로 눈에 띄는 성과야. 변방에 몬스터 처리, 횡령 귀족 처단 같은 부스러기 업적 말고 확실한 덩어리를 가진, 제국의 숙원 해결쯤 되는 특대형 업적. 이제 감이 와?』
『어….』
표정만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고 표현하는 보르카. 답답했던 교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흙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굵은 손가락이 흙 파는 소리 사이로 전 경기보다 배는 커진 환호성과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갈비뼈 고블린 (소속됨)-> 빌데랑트 + 암흑가 (소속됨)-> 업적이 필요한 황족]『결론. 암흑가를 이용한 검은 돈으로 황위 쟁탈전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며, 하우누만의 정세를 이용해 황위 쟁탈전에 큰 점수를 따려는 황족의 움직임이 있다. 올해 투기대회는 제국 황족님의 빅 딜이 포함되었다는 뜻이지. 빌데랑트가 투기장을 움직이고, 그 빌데랑트는 어떤 황족님의 끄나풀이고.』
야만이니, 속국이니 하지만 오크 전사들의 무력은 진짜 중에 진짜다. 특유의 야성과 투기를 담아 휘두르는 도끼의 강력함은 오래전 제국의 검성과 근위 기사단의 합공을 홀로 막아낸 쿤 타기즈가 증명했다. 붉은 투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기사를 썰어대는 쿤 타기즈 때문에 제국은 결국 정복을 포기하고 말만 속국인 자치령화를 선택했으니까.
일단 내가 머리 굴려서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였는데, 교단의 그림자쪽 정보가 들어오면서 나머지 퍼즐이 맞춰졌다.
‘빌데란트 후작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귀족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교단의 그림자로 일하는 동안 후작 가에서 마스터급 기사를 가신으로 들였다는 정보는 없었지요.’
‘수도의 살롱에서 빌데란트 후작과 누군가가 은밀히 만남을 가지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복장은 황궁의 시종, 향한 곳은 2황자의 궁이었지요.
‘2황자는 1,3황자, 1황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야망 하니만큼은 대단한 사람이라는군요. 성정이 난폭하고 아랫사람을 학대하는 경향이 다분하다고 하니…. 이런 사람이 황제가 되면 곤란할 사람이 참 많지 않겠습니까?’
능력은 부족하지만, 황위를 원하기에 일발 역전을 노리는 2 황자.
워낙 땅덩어리가 넓고 다사다난한 제국이라 숙원도 목록을 만들어 책을 편찬해야할 만큼 많지만, 그래도 사실상 제국을 패배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굴욕의 속국, 하우누만 흡수는 황제도 여러번 얘기할 만큼 중요한 의제였다.
매년 열리는 투기 대회와 거기에 걸린 통치권.
교단의 그림자가 정보를 제공하고, 대화방 사람들과 다나가 3월드 제국 정세와 상황을 비교하여 정리한 방대한 자료를 하이드가 머릿속에서 펼쳐 정리해 알아낸 결과물.
미안하지만 난 집단 지성을 실시간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 혼자서 예상했던 모델과 비교해서 짜 올리면 이 정도는 쉽게 가능하단 말이다.
『이렇게 보면 좀 이해가 가지? 결론은- 피튀기는 제국 황위 쟁탈전의 여파가 이 변방의 하우누만까지 튀었다. 우린 이것만 노리고 올인한 2황자님의 행사에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이 말이지.』
『….지난 경기에서 만나 기사가 그렇게 대단한 전사 같지는 않았소만.』
『빌데랑트 후작가를 우승시킨 기사가 있는데 나머지를 고급으로 쓸 필요가 있나. 아마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될 거다. 지금부터는 나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어. 아마 그런 놈이랑 붙으면 나도 팔다리 합쳐서 일고여덟 개 정도는 날려 먹을 각오 해야할걸?』
『….누가 들으면 곤충인 줄 알겠군. 그럼, 우리가 해야할 일에는 아무런 영향 없소?』
결국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보르카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그는 이 투기 대회에서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제국의 거대 세력이 군침을 흘리며 황위 쟁탈전이 어쩌고 한들, 그의 잃어버린 두 자식보다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영향? 있지. 그냥 평범하게 이기는 게 아니라, 진 쪽이 전사의 명예고 나발이고 다 져버릴 만큼, 네발로 기어 도망가면서 소녀처럼 엉엉 울게 만드는 거. 특히나 기사라면 온 제국에 소문이 나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만큼.』
『….응?』
『아니, 1,3황자, 1황녀님은 우리 쪽에 편지를 보내셨는데 2황자님은 편지를 안 보냈잖아?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 이렇게 홀대를 하니 좀 섭섭하기도 하고~ 아예 황위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이쪽 일을 망쳐놓으면 다른 황족들이 우릴 좀 좋게 봐주지 않겠어? 결국, 우리도 그 셋중 하나를 선택해 뮤트 침공에 대한 대응을 확답받아야 하니 말이야.』
“으으음…. 제국 황자의 행사를 전면에서 박살 낸다….”
“원래 높으신 분 만나러 갈 때는 과일이라도 좀 사 들고 가는 게 예의 아니냐. 과일 말고, 눈에 거슬리던 형제 한 명 치워드리면 참 좋다고 하시지 않겠어? 그것 말고도 얻을 게 많다고. 엄연히 제국의 속국인 하우누만에 교단의 자치권을 지닌 영역이 생기는 것의 의미, 그것을 지켜내거나, 양보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이득, 그렇게 난리가 났을 때 한쪽 의견에 편을 들어주면서 얻게 될 호감도와 확고한 지지의 표명….”
보르카는 여기까지 듣고 그만 고개를 흔들어버렸다. 더 들어봤자 머리만 어지러울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소. 거기까지만 듣지. 정말 대장은…. 음. 아니오. 말을 말지. 어쨌든 이기면 된다는 뜻이니. 그것으로 됐소.”
“흐흐흐. 그래, 그거면 됐지. 넌 잘 이기는 것만 신경 쓰라고.”
철컥!
아직도 신성 치유의 영향이 남아 은은하게 빛나는 몸에 몸이 드러난 방어구가 걸쳐지고, 검투사 특유의 황동 투구가 씌워졌다.
[3차~ 예선 경기! 엄니발톱 부족 소속의~ 전설적인 수인 검투사! 혼자서 트롤과 기사를 도륙낸 피에 미친 살인귀! 피투성이 ‘베나드 팽’! 그 동료~ 가는 곳마다 교적의 피로 길을 만든다는 피의 성자~ ‘교수’!]“와아아아아아아아!!!!!”
“어어이! 전설! 너 한테 속옷에 마누라까지 다 걸었다아아!!”
“어흐흐흑, 성자님의 늠름한 모습에 눈물이, 눈물이이이!!!”
“라투라! 라투라! 라투라! 라투라!”
[그에 맞서는~ 세 손가락 고블린 소속 대전사~ 회색 고블린 혼탁한 눈의 ‘카크마놀’! 그의 동료~ 무려 다섯 번의 투기 대회에 참가하고 살아남은 베테랑! 악어 수인족 용병, ‘자켈다’!]“우와아아아아!”
“성직자 같은 가짜 전사는 뭉개버려! 자켈다!”
“키익! 고블린의 전투가 뭔지 보여줘라 카크마놀!”
양측의 나무 문이 올라가며 드러나는 검투사들. 보통 고블린보다 훨씬 단단한 체구에 주머니가 잔뜩 달린 망토를 걸친 고블린에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근육질의 악어 수인.
양측이 모습을 드러내고 관객석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직 열리지 않은 한쪽 문에 몰리게 되었다.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3차전! 떠돌이로서 전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쿤 타기즈에게 주어진 시련을 나타내기위해 준비된 또 하나의 적! 익히 아시는 초원의 부족의 가장 큰 골칫거리! ‘갈바노’ 라고도 불리는! 초원 사자 세 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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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경기장이 떠나갈듯한 함성과 함께 마지막으로 열린 세 번째 문에서 문이 비좁을 정도로 커다란 사자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에 쇠사슬이 매인 사자들은 몹시 굶주렸는지 쇠사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당기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초원 사자. 말만 맹수지 몬스터에 더 가까운 놈이군.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키고 발톱이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고 하는 놈이오.”
“어쩐지. 경기장이 배는 더 크고 문도 세 개나 달려있다 했더니. 환경요소 같은걸 추가한 건가? 저 맹수를 상대하며 적과 싸우는?”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데, 투기장에서 사용하는 약물 중 맹수가 경계하지 않게 하는 약물도 있었소.”
“그러시겠지. 저저, 고블린 새끼 쳐 웃는 거 봐라. 세손가락은 고리대금업에 도둑질로 유명한 고블린 부족이었지? 돈이 드럽게 많다더니 아예 경기 내용에 손을 써뒀군. 어떻게 할래. 이번에도 네가 검투사 잡고, 내가 나머지 닦을까?”
“음…. 아니. 내가 사자쪽으로 가는게 좋겠소. 관중 말대로 ‘고블린다운 전투’를 벌인다면 싸움이 지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으니.”
“오케이. 그럼 내가 둘, 네가 셋.”
교수가 늑대와 고블린을 노려보고, 보르카가 돌바닥을 두부처럼 가르는 사자의 발톱을 지켜보는 사이, 진행자가 네 검투사의 이름이 적힌 목패를 손에 들었다.
“경기 방식은 동일! 적을 모두 꺾고 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승리합니다! 대전사 쿤 타기즈의 눈에 부끄럽지 않을 전투를!”
휘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목패가 하늘을 가르고, 사자를 묶어둔 사슬이 풀려나는 순간.
집채만한 사자들에게 둘러싸인 보르카를 내버려둔 교수는 곧장 경기장 외곽, 원형 벽을 향해 달려갔다.
3경기로 넘어오면서 나무가 아닌 돌 벽으로 업그레이드된 경기장.
“흠!”
그 아래로 손을 깊숙이 집어넣은 교수는 가벼운 기합과 함께 허벅지와 허리에 힘을 주었다.
드드드득, 그그그그그-
“어, 어어 저거. 저거….”
투사들의 경기장임을 고려해 드러난 부분보다 땅에 묻어둔 부분이 더 컸던 원형 경기장의 벽이다. 무지막지한 힘에 부러진 원의 1/4가량이 들어 올려지며 경기장에 난데없는 그늘을 선사했다.
“생긴 것도 매끈매끈하니, 들어오면서부터 마음에 들더라고.”
양손에 큼지막한 메이스를 든 악어 수인이 이를 악물고 고블린 검투사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검과 각종 암기를 던져대는 사이.
날카로운 단검을 모두 몸으로 받아내며, 얼어버린 관객들의 분위기를 만끽하던 교수가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길. 교적은 영원히 그늘을 벗어나지 못함이라.”
쿠우우우우-
어울리지않게 경건한 기도문과 함께 거대한 돌벽이 눈발을 가르며 지면을 강타했다.
쿠아앙!
“으하하하! 라투라!”
콰직!
“라투라아아! 항복해라 이놈들아! 항복하지 않으면-”
부와아악!
“이 신성한 그늘이 결국 네놈들의 정수리에 닿을 것이야! 와하하하하하!!!”
쿵쿵쾅콰득콰직콰직쿵쿠웅!
떡매 치듯 투기장을 가르는 거대한 돌벽과 필사적으로 그에 맞서는 두 검투사.
“우, 우와아악!”
“지진이다, 땅이 흔들려!”
“관람석이 무너진다아아!!!!”
교수는 사정 봐주지 않고 돌벽을 마구 내리쳤고, 그 충격에 경기장 주변에 만들어진 목재 관람석이 무너져내리며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상대는 정말 잘 싸웠다. 고블린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암기를 날렸고, 악어 수인은 커다란 메이스 두 자루를 휘둘러 위에서 내려찍는 돌벽을 박살 내는 기염을 토해냈으니.
떨어지는 돌가루 속에 문짝만큼 짧아져 버린 벽을 교수가 내던지고, 무시무시한 맹공을 극복했다는 생각에 고블린과 악어 수인이 득의한 미소를 지으려던 순간.
드드드득!
쿠우우우-
“아니야…. 아니야! 그런 방법은 옳지가 않아! 회개가 아니면 죄를 벗어날 길은 없다지 않았느냐!!! 다시! 다시이이!”
남아있던 돌벽이 한 번 더 뽑혀 올라오고, 다시 한 번 그들의 머리위로 드리우는 그늘에 고블린와 수인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웠다.
초원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사자 세 마리는 이미 발톱으로 그들이 들어온 입구를 잘라내고 우리로 도망가 벌벌 떨고 있었다.
“찬양하라아아아아!”
콰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이 모두 도망간 투기장에 다시한번 무시무시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단상에 남아있던 진행자가 교수 일행의 승리를 선언한 것은 교수가 세 번째 돌벽을 들어올리고, 터져나간 손아귀로 찌그러진 메이스를 휘두르던 악어 수인이 항복을 외친 뒤였다.
“라투라, 로-하람. 늦게나마 교적의 자리를 포기하셔서 다행입니다.”
“….크르르륵. 감사….”
“더 버텼으면 정말로 피떡이 됐을 테니. 하하하하.”
“….하오. 크흠, 쿨럭!”
‘사이코 같은 놈.’
‘키이익! 미친 인간!’
‘광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이를….’
속이 다 후련한듯 밝은 얼굴로 기도하는 교수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악어 수인, 고블린, 진행자 모두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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