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60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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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누만 교구의 주교, 안칼레토는 그 믿음에 한 점 의심조차 없는 독실한 로 하람의 신도였으나, 아홉 살 때부터 교인으로 56년을 살아오며 때로는 광명의 뜻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정원사는 나무를 위해 잔가지를 쳐내건만, 나무의 비명 속에 그 손길에 담긴 선의의 이해가 함께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은밀하게 노먼 대주교의 연락을 받았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숭고한 짐을 받아들였다. 교단의 그림자 속에서 빛을 받드는 일. 그런 그였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성자의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성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 트롤과 흑마법사가 오면 길을 열어라…. 제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요.”
“예. 악신의 주구는 저 혼자 상대하겠습니다. 알다시피 그 악에 물든 피는 대단히 전염성이 강하여 한 방울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으니.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 선량한 로 하람의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유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두 사람은…. 따로 쓰임새가 있어 불렀습니다.”
빌데란트 후작과 제국. 2 황자와 투기장.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주교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요구였다.
교적이 있으면 그 뿌리까지 태우는 것이 맞으며, 그 과정에서 다소 불가피한 희생자가 나온다 한들 그 모든 것이 빛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닌가? 또한, 후작은 하우누만에서 가장 주의 깊게 살핀 대상으로 그가 악행에 발을 담근 것은 분명하나 교적이 된 흔적은 티끌만큼도 없었거늘. 성자께서는 그걸 어찌 확고하게 단언하신단 말인가?
영민한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라났지만, 주교는 짧은 기도문으로 그 모든 의문을 일축해버렸다.
“라투라. 내 너희에게 손을 뻗어 임하매, 그 뜻을 따를지어다. 뜻이 그러하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믿음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니. 그의 작은 의문보다 성자의 의지가 그분의 뜻에 더 가까운 이상, 그는 따를 뿐이었다.
“다녀오십시오, 성자님.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라투라.”
“라투라, 로 하람.”
교수는 만반의 준비가 끝났음을 느끼며 후작의 영역 안, 반쯤 성에 가깝게 축조된 그의 거대한 자택을 둘러보았다.
습격을 유도한 자답게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는 물론 자기 영역 내 모든 병력을 그 단단한 내성 안에 들여 전투를 대비한 모습.
‘이기지 않고 버티기만 할 생각이었겠지. 교단이 제국 귀족을 공격했다, 그 소식 하나로 하우누만 인근 영지의 병력이 이곳에 달려올 구실로 충분하니까.’
그러니 저렇게 거북이처럼 틀어박혔을 것이다. 우르르 몰려온 광신도들의 손에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 그중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하는 이종족이 쓸려나갈 것이고 교단은 제국의 압박을 받게 됨과 동시에 이종족 친화 정책의 저의마저 의심받게 된다.
결국 지원이 올 때까지 몇 시간만 버티면 되는 전투. 명분도, 실리도 모두 빌데란트 쪽에 있는 완벽한 계획….
….이었을 것이다.
평생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단’ 딱지가 붙기 전에는.
“흠흠흠~ 로 하람 가라사대. 이단은 불로 정화할지니~”
줄지어 달려온 사제와 성기사들이 빌데란트 후작의 영역, 도시의 1/8에 속하는 그 넓은 권역을 모두 포위하고, 그들의 생각과 달리 성자의 뜻을 전해 받은 성기사들이 혼란에 빠진 시민들을 후작 영역 밖으로 인도하는 사이.
홀로 그 경계를 뚫고 들어온 성자가 흥얼거리며 후작의 성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이 주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후작의 성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란에 성기사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성의 지붕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검붉은 괴수와 그것을 향해 철권을 휘두르는 성자의 강맹한 모습에 성기사들의 발끝이 들썩였다.
“경거망동하지 말라! 핏방울 하나, 부서진 가옥의 파편 하나 이 경계를 넘어가게 해선 안 된다! 작은 돌조각도 허투루 보지 말고 즉시 정화하라! 상대는 악신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자, 여왕의 대전사, ‘붉은 뮤트’다!”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가던 성기사들의 발끝이 주교의 단호한 목소리에 멈춰 섰다. 연이어 들리는 거친 전투의 함성과 건물 무너지는 소리 속에 제국 기사의 섬뜩한 검명이 섞여들고, 그들의 검 끝이 괴수와 ‘한 몸처럼’ 뒤엉켜 싸우는 성자를 향하는 것을 본 주교는 성자의 말이 이번에도 맞았음을 확신했다.
‘빌데란트 후작가도, 제국에서 나온 기사도 이미 놈들의 것이 되었구나! 로 하람이시여 부디 은총을…. 성자님께서 이번에도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소서!’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돕고 싶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성자의 당부가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카아아아아!!!! 빛의 자.식이라 하였.나! 아비밖에 없는 너.희는 로하.람이 창.녀와 붙어먹은 증인이.로다!』
꽈아아악!
“그야말로 참담한….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음성이 아닐 수 없구나….”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모독을 입에 담는 괴수의 모습에 포위망이 안으로 한 걸음 정도 가까워졌지만, 신앙의 빛으로 가까스로 이겨낸 성기사들은 부여받은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괴수의 비명과 성자의 음성, 그 뒤를 따르는 제국 기사들이 만들어내는 파괴의 소리가 인근 모든 지역을 뒤덮으며 사제들에게 구함 받은 이종족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가운데.
강자들의 결전에 휘말린 빌데란트 후작의 성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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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어디 가서 깽판 치는 솜씨 하나는 견줄 놈이 없을 게야. 이 늙은 영혼을 걸고 장담하지.”
“그우우. 먼지 많다. 눈 아프다.”
“저거…. ‘그거’ 맞지? 교수 그놈 영혼에 붙어있다는 그놈?”
“맞다. 귀신 늙은이 스승도 나랑 같이 봤다. 교수 몸에서 튀어나온 하이드 팔. 하이드 얼굴.”
“아니, 그거야 보긴 봤는데. 저렇게까지 튀어나올 줄은….”
“그웍. 스승 멍청하다. 매번 자기 머리에 맞춰서 상상하다가 놀란다. 교수는 상상하는 거 아니다.”
“그래. 저놈 미친 짓은 나같이 멀쩡한 사람의 머리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지.”
빈민가에서 올라온 알드리치와 노툼. 정말 경천동지(驚天動地)라는 말이 어울리게 날뛰는 교수 덕분에 성벽이 죄다 무너져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방에 먼지가 자욱하고, 혼란에 빠진 사병들은 인식저해 마법을 쓴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
“쯧. 적당히 부술 것이지. 계단이 다 박살 났잖아.”
알드리치는 투덜거리며 그의 영혼항아리를 열었다. 빈민가에서 수집한 영혼.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툼 덕분에, 가늘고 미약한 영혼의 흐느낌마저 구분해 가까스로 시간 안에 찾아낸 영혼.
그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영혼은 잠시 흐릿하게 주변을 맴돌더니 무너져가는 후작가 지하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쿠우웅-
와르르르!
괴수….역할을 하는 교수의 몸에서 튀어나온 하이드의 연기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반파된 후작의 성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운데.
“찾았다! 여기, 이 금고가 틀림없어!”
빈민가에서 찾은 영혼, 투기장의 맹수에게 참살당한 검투사의 원혼이 건물더미에 묻힌 커다란 금속 상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계약에 얽매여 죽을 때까지 원형 경기장으로 내몰린 자의 원혼.
당연히 그 원혼은 계약서 자체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알드리치는 그 원혼을 찾아 힘을 북돋아 주었고, 원혼은 생전에 그토록 후회와 원망을 담아 떠올리던 계약서를 찾아 날아든 것이다.
“노툼. 느껴지나?”
“그우움. 엄청난 수의 원혼. 마을을 통째로 불태워 산 채로 매장한 곳이라 해도 믿겠다.”
“그래. 약한 원혼들은 시체가 버려진 그곳에 머물렀지만, 강한 이들은 벌써 자신의 생을 묶어둔 계약서에 달라붙어 있었구나. 가여운지고….”
상자의 주인도 어느 정도 그것을 알았는지, 다른 곳에 비해 덜 무너진 이 방에는 용기의 교단 기도문이 적힌 커다란 태피스트리와 성물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알드리치가 슬픈 눈으로 원혼과 성물이 가득한 방을 둘러보는 동안,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쿨럭 쿨럭! 이게….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이단이라니! 저 괴물은 뭐고 성자는 뭐란 말이야!”
“일단 대피를….!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이 무너질 것이다!”
“시끄러워! 성이 무너져도 죽지만, 저 안에 든 것을 챙기지 않아도 죽는다! 후작님께서 그분의 자금이 성 아래 파묻혔다고, 이단 혐의로 광명 교단에 넘어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냥 두실 것 같으냐! 나는 물론 내 부모, 형제, 친척까지 모조리 목이 매달릴 것이야! 나를 지키라고 후작님이 보내주신 네놈의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후작의 집사, 발트랑의 머릿속에는 배를 잘못 탔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실패했고, 2황자는 용서와 거리가 먼 사람이며, 암흑가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받아내는 곳이다.
다행히 뒤가 구린 놈들과 거래를 하다 보니 이래저래 약점이라든가, 명분을 잔뜩 잡아둔 게 있었다. 마법으로 엄중하게 잠긴 금고, 그 안에 든 것들만 챙겨 나가면 제 목숨 하나 챙기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후작의 재산과 비리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튼튼하게 만든 창고. 반쯤 무너졌지만 아직 건재한 그 모습에 집사의 얼굴이 환해지려는 찰나.
“뭐, 뭐야! 네놈들은 누구냐!”
“보시다시피. 흑마법사와 트롤이라네. 마침 잘 왔군. 이게 잘 안 열려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온 손님의 모습에 후작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법 돈을 썼나 보군. 나는 아무래도 한쪽에 좀 특화된 마법사고, 내 제자도 봉인이나 결계 같은 마법과는 거리가 멀어서 말이지. 마침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와주다니. 후작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자네도 매우- 깊게 얽혀있었던 모양이야. 이렇게 원혼들이 날뛰는 것을 보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늙은이와 멍청해 보이는 트롤. 금고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상황을 파악한 집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이죽거리는 말투로 답했다.
“….혼란을 틈타 창고를 털러 온 놈들이었나. 더러운 좀도둑들 같으니. 네놈들 같은 얼치기들 따위가 후작님의 금고를 털 수 있었을 성싶더냐! 내가 미쳤다고 네놈들을 도와? 기가 막히는군. 갈마르! 저들을 죽여버려! 어차피 후작님의 금고에 들어온 놈들이야!”
상자의 봉인과 호위 기사의 실력에 대한 확신 덕분인지 기세가 살아난 후작. 그 모습에 알드리치는 손짓으로 노툼을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난 자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지 특별히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다네.”
검을 뽑아 든 기사가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고 있었지만 알드리치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약서가 든 상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딸칵!
알드리치의 영혼항아리. 사진이 든 로켓이 열리고, 그의 주름진 손이 부드럽게 상자를 쓸었다.
“죄와 벌이라. 벌은 이 상자 안에 가득한데, 죄인이 없어서 문제였거든. 다행히 그 둘이 한자리에 모였군.”
손길을 따라 상자로 흘러드는 영혼술사의 힘.
귀곡성과 함께 부서질 듯 덜컥거리는 상자를 보며 알드리치가 작게 미소지었다.
“집사…. 집사 발트랑. 이런 이름이었나. 그래, 후작의 뒤를 핥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배를 불린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됐겠지.”
….파각!
『우우우우우우우우!!!!』
안에서 부풀 듯 위태롭게 떨리던 상자의 경첩이 터져나가고, 마침내 해방된 원혼들이 후작의 창고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건물의 지하가 귀곡성으로 가득 채워지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영혼의 얼굴에 집사도, 호위 기사도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모두 그들의 손과 귀로 단말마를 쥐어 짜낸 이들의 얼굴이었다.
“[숨을 들이쉬라. 마지막 비명조차 덧없이 흘러간 이여. 뜻을 이루지 못한 삶의 조각이여. 이제, 그 못다 한 마지막 숨결이 내려앉을 시간이구나.]”
그 귀기 어린 폭풍 사이로, 알드리치의 주문이 얽혀들며 그들을 한 데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노툼. 안에 있는 것을 챙겨서 콜로세움으로 향하거라.”
“….스승은.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
뒤에서 그 모습을 관망하던 트롤이 조심스럽게 낡은 계약서들을 챙겨 들자, 모습을 드러낸 넬과 그녀의 드레스처럼 얽혀든 악령에 휘감긴 알드리치가 쓰게 웃었다.
“이 정도 수의 악령을 그냥 뒀다간 큰일이 나니 말이야. 이 작은 해소가….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
“….그웍.”
노움은 이해했다는 듯 계약서들을 손에 쥐고 무너진 벽 사이로 빠져나갔다.
노툼이 나가고, 벽에 몰려 벌벌 떠는 두 죄인과 흑마법사, 그리고 시체처럼 창백한 소녀의 악령만이 남은 지하실.
[….]울부짖는 악령을 날카로운 손톱에 담아낸 소녀가 허락을 구하듯 알드리치를 내려다보고. 한숨을 내쉰 알드리치는 뒤로 돌아 성상이 모여있는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눈감아 주시지요.”
달칵.
그리고, 밝게 빛나는 용기의 신의 초상을 뒤집어 버렸다.
파각!
파각!파각!파각!파각!파각!
그것을 신호로 빛을 발하던 성상과 기도문, 온갖 성스러운 물건들이 하나둘 터져나가기 시작하며 지하실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뒤로한 흑마법사가 짙은 먼지 속에 기침을 하며 건물 밖으로 나서는 가운데.
“아, 안돼! 오, 오지 마!”
“으아아아아악!”
마지막 성상의 목이 부러지며 완벽히 캄캄해진 지하실에 소녀의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두 죄인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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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시작 후 약 한 시간.
하우누만 콜로세움의 불공정 노예 계약서, 획득.
빌데란트 후작가의 개입, 원천 봉쇄.
까아앙!
“크으으으….! 어째서! 어째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당신처럼 우리 손으로 자유를 되찾겠다는 것을 어째서 가로막냔 말이다!”
“너는…. 모른다! 신기루 같은 목표에 눈이 멀어 한 치 앞을 못 보고 있는 것뿐이야!”
“비켜라, 베나드 팽!”
“이해해달라 하진 않겠다!”
카가각!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결승전,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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