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65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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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덜컹 덜컹.
“하아아아…”
덜컹 덜컹. 덜그덕 덜컹.
“휴우우우.”
볼 것 하나 없는 숲길. 하우누만을 떠나고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어둑한 숲길을 따라 제국으로 나아가는 마차 안에는 한숨 소리가 가득했다.
“그만 좀 해라. 마차 바닥 꺼지겠다.”
“안 꺼져요. 늑대인간 한 명만큼 짐이 덜 실려서.”
“오트만, 얘 좀 어떻게 해봐요. 온종일 이러는데.”
“음? 아아…. 미안하네. 잠시 좀 멍해져 있었군. 숲길이 참 잘 보여서 말이야. 원래 이쯤에, 마차 옆에 커다란 늑대인간이 걸어가고 있어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젠…. 잘 보이는군. 아주 잘 보여. 훤하고, 탁 트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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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
“흐으으음….”
하우누만을 떠난 뒤부터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보르카를 떠나보낸 것은 다들 동의한 일이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일행 모두 그 빈자리를 여실없이 느끼고 있었다.
나도 뭐, 저 사람들이랑 다를 것 없었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막상 지나고 나니 하우누만에서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슬그머니 떠올랐다.
예를 들면, 지금도 대화방에서 한참 떠들어대고 있는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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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ealook : 어디서 많이 들었다 했더니. 푸른 갈기면 그거잖아. 푸른 갈기의 라타야. 라타야의 계보. 몰랐음?
– professor : 성이 달룬이잖아. 투샨 달룬. 마르카 달룬. 그쪽 히어로들은 ~~ 라타야 같은 식으로 이름 붙는거 아니었어? 샤나텔 라타야 같은 식으로.
– takealook : 마! 1월드에서 2월드 넘어오는데 120년, 2월드에서 3월드 오는데 70년! 3월드 진행 내용까지 거의 200년이 지났는데 늑대인간이라고 안 변하겠냐? 한참 고릿적에야 늑대인간이 모계사회였지만,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당장 보르카만 해도 부족 족장이잖아? 애들이 아빠 성을 따라간거 아냐. 엄마 이름이 달리아. 달리아 라타야였던거임. 투샨이랑 마르카가 그 라타야의 계보였다고. 씹사기 푸른늑대. [응, 보름달 뜨면 다 이겨~] 로 유명한 그놈!
– Jokass : 힌트가 제법 나오긴 했지. 보르카가 자기 입으로 ‘아내는 나보다 아름답고, 강했다.’ 라고 말하기도 했고, 대놓고 푸른 갈기라고 떠들어대기도 했고. 라타야의 계보, 늑대인간 종주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힘은 너도 잘 알잖아? 1월드에서 슈퍼 하드캐리하는 영상을 못 봤을리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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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봤다. 점심 먹다가 머리 벅벅 긁으며 튀어나와서는, 화살을 맨몸으로 튕겨내며 돌진하는 야만족 기천 명을 혼자 썰어버린 다음 고기가 식었다며 투덜거리던 훤칠한 늑대인간 여성.
종족의 기원을 간직한 그 푸른갈기의 혈통이라면 이 게임 내에서 몇 안 되는 S급 히어로 유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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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kass : 내 생각에는 보르카라는 캐릭터 자체가 3월드에서 라타야의 계보를 이어가기 위한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캐릭터 히스토리도 특정 인물을 찾는 방향이고. 좀 아쉽게 놓쳤네.
– professor : 아쉽긴 하지만, 내 선택이었으니까. 알잖아? 그렇게나 숲으로 돌아갈 것을 갈망하던 투샨, 마르카라는 인물이 내 쪽에 동료로 합류하게 할 방법이 뭐겠어?
– 노루Drug해요 : 복수?심?
– professor : 그래. 하우누만에는 제국이 보낸 마스터급 기사도 있고, 제국의 끄나풀도 있고. 심지어 황자랑 얽혀있기까지 하잖아. 그들 중 하나의 손에 보르카가 죽었다면 가능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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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누만 이벤트의 막바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완고하게 움직이던 보르카. 아마 그대로 관망했으면 자연스럽게 보르카 혼자 복수를 완성하고 그도 죽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마무리가 됐을 이벤트라는 소리지. 거기에 내가 개입해서 그 흐름을 꺾어버린 것이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대가로 지난 몇 달간 동거동락하며 등을 맞대어온 동료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게 그냥 데이터 쪼가리일 뿐인 게임이면 몰라도. GG는 이미…. 내게 또다른 현실이나 마찬가지가 된 곳이었다. 실제로 지금 당장은 내 현실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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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or : 그러니 아쉬워할 게 없지.
– takealook : 그러엄. 전혀 아쉽지 않지. 비록 1월드 라타야가 발톱 한방에 언덕을 다섯 토막 내는 슈퍼 초인이었지만.
– 노루Drug해요 : 맞아 맞아. 2월드 라타야 일족도 전장에 떴다, 하면 언데드 지우개나 마찬가지였던 슈퍼맨이었지만, 전혀 아쉬울 게 없지~
– Jokass : 아쉬울 리가. 우리 ‘성자’님이 그런 세속적인 이득에 신경이나 쓰시겠어? 홀리 교수님 눈에는 당장 동료와 그 자식들의 행복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 홀리 : 아아, 라투라~
– takealook : 라투라.
– 흥안만두 : 라투라, 광명이 함께하시길.
– 노루Drug해요 : 그 토가 비스름하게 생긴 법복 어울리더라. 들어간 천은 많은데 노출도 많은 게 참 괴리감이 있어서 좋았음. 역시 이름있는 교단은 뭘 해도 제대로 한달까?
– takealook : 어허! 그건 수치스러운게 아니라 [신성]한 겁니다! 교수님의 드러난 가슴은 외설이 아닌 신성 그 자체! 밀로의 비너스 같은 아름다운 돌출이라, 이 말입니다!
– professor : 봐줘, 제발 봐줘 이 염병할 놈들아.
– takealook : 보고있잖아. 녹화본 무한 반복에 커뮤니티 ‘신성한 교수님’ 짤까지. 열심히 봐주고 있다.
– professor : 아니 시발 그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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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분위기를 피해 고개를 돌렸으나, 이쪽은 우울을 넘어 암울한 수준이었다. 내가 요즘 커뮤니티를 안 봐요, 보다가 홧병 날 것 같아서 못 봐.
인기가 많아진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심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장막을 살짝 들춰보면-
[★충격! 박교수 X 교수의 갭 넘치는 모에함에 대해 알아보자!☆] [저희 커뮤니티에서는 ‘지져스 크라이스트’ 대신 ‘지져스 프로페서’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 [박교수 제로투 댄스 딥페이크 버전] [박교수 변신 탈의짤 0.1배속. 마음에 눈으로 보면 보임. 뭐가 보이는진 몰라도 암튼 보임.]“어으으윽! 으윽! 으어억!”
‘모, 못 보겠어!’
[오우 와우.]극명한 내상을 입고 튕겨날 뿐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히어로 포인트나 빌런 포인트, 양쪽 모두 복리 이자마냥 불어난 덕분에 최악의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으니까.]‘로 하람이 시발 보우하사 GG님 만세지. 염병할.’
하이드가 말한 것처럼 히어로 포인트의 주인공 보정, 빌런 포인트의 대악역 보정 덕분에 나의 사회적 자살을 야기할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번개처럼 계곡과 계곡 사이를 박차며 날아다니는 알몸 거구의 남자가 세계의 흑막이나 주인공이라는 건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거든. 절대 찢어지지 않는 헐크의 속옷처럼, 교단제 법복은 그 부족한 내구도에도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그렇게 시스템이 보우하사 가릴 것 다 가리고 주인공처럼, 깊이있는 악역처럼 나온 게 내 플레이 영상인데 커뮤니티가 저 지경이란다.
온갖 소문에, 과장에, 심지어 [잠자는 접속기의 성자님]이라는 팬픽까지 돌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영원히 이 안에 사는게 나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이름이라는 게 참 중요한 거야. 안 그래? 엘리트 전투집단 ‘BDSM’의 영구 명예 수장, 박교수님?]‘크아아악!’
교수는 잠깐 사이에 머리를 파고든 나쁜 기억, 커뮤니티 게시글 목록의 열 페이지를 꽉꽉 채운 ‘박교수’ 항목을 지우기 위해 다시 숲길과 일행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시간 날 때 알아둬야겠다- 싶었던 것도 있었으니까.
“알드리치.”
“왜.”
“거 심심한데 옛날 얘기나 좀 들어봅시다. 꽤 유명한 귀족이었다면서요? 그…. 무슨 가문?”
“….텔드마이어. 미안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네.”
“어…. 얘기하기 힘드신가요?”
알드리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가문이 사라진 지 반세기가 지났다. 세월이 약이라고, 이제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나, 생사를 함께한 이 사람들에게라면.
하지만,
“루실라. 때로는 듣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단다. 교수, 자네라면 알텐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얽히는 일들이 있는 것을 말이야.”
“….알죠. 보통 그런 비화들이 세상에 남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고, 그걸 어떤 식으로든 알게된 이들을 매우 불편해하는 이들이 손을 쓰기도 하는 거. 너무 잘 알죠.”
“그래. 네놈이라면 잘 알아 들을 줄 알았지. 내가 여기 있는 일행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래서 더 들어봐야겠는데요.”
내 대답에 알드리치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50년이나 지났다면서. 50년이면 추억도 닳아 없어질 시간 아닙니까? 그런데 옛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경계한다니. 그건 50년 전, 알드리치 텔드마이어를 그냥 알드리치로, 귀족가 10대 소년을 흑마법사로 살아가게 한 그 일이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너….!”
“허허, 참. 사람 너무 띄엄띄엄 보시네. 나 교숩니다, 교수. 여어~기 제국 끄트머리에서 수레나 끌면서도 저 북부에 팔카투스놈 꼼지락 거리는 것도 예측하는 천재. 그런 제가 바로 옆에 있는 동료의 행동이 달라진 것도 못 알아봤을까 봐? 알드리치 당신 제국 들어오고 묘하게 조용해진 거 알아요? 가끔 일행들 사이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것도? 엘프 숲으로 향하는 기구에 타고있을때는 편안~한 얼굴이다가 추락하고나서 내가 ‘제국도 들렀다 가자’ 하는 순간 얼굴이 무슨 돌덩이처럼 굳은 것도?”
“….”
덜그덕.
교수는 직접 끌던 수레의 마구를 다시 말에게 돌려준 다음, 이제는 그가 들어와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널직해진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제국에 뭐가 있는거잖아요. 50년 전 그 일은 아직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건재하고, 그게 제국에 남아있는 거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알드리치 텔드마이어씨? 그럼 제국 최악의 마굴, 황실로 기어들어가는 우리가 그걸 모르고 처맞는 게 더 나을까요, 아니면 알고 처맞는 게 더 나을까요? 예? 알드리치.”
지난밤 알드리치가 그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것은 딱 세 가지. 그의 이름이 알드리치 텔드마이어이며, 50년 전 그의 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정치적 암투도, 물리적으로 대립하던 상대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기에 제국 귀족 명부에는 아직 남아있다는 것. 계약 해지에 필요한 귀족 셋을 찾던 중, 거기에 필요한 것만 딱 얘기해주고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린 알드리치였다.
시간 생겼으니까 이젠 그 내막을 들어 둬야지. 보통 사이즈도 아니고 귀족 가문 하나를 통째로 실종시킬만한 사건인데. 알고가야 뭘 대비하든가 할 거 아냐.
달그락!
내가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자리잡는 동안 노툼과 이드라실이 어느새 짐을 뒤져 하우누만 제 마유주(馬乳酒)와 넓은 잔, 말린 어포같은 것을 착착 내어왔다.
“….나 빼고 따로 말이라도 맞췄나?”
“그웍. 옛날 얘기. 찌푸린 얼굴. 술 필요하다.”
“마을에서 들었는데, 취기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부터 차오른다고 합니다. 아래를 채우면 가라앉은 옛 기억이 수면으로 떠오르겠지요.”
순식간에 준비된 술자리와 청중들. 술을 즐기지 않는 오트만이 슬그머니 나가 마부석에 자리를 잡는 사이,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에 나가던 오트만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세상에. 이드라실에 노툼 너마저? 교수 자네를 따라다니더니 이 녀석들도 글러 먹기 시작한 것 같은데.”
“왜요. 내 옷깃 한번 들어준 걸 평생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보고 배웠으면 잘 배운 거지.”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오트만의 그 말에, 알드리치는 고뇌가 가득한 눈을 꽉 감았다. 주름지고 단단한 손아귀가 술병을 잡아채고, 그 앞에 있는 잔에 그 내용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네 말이 맞아. 미쳤지,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미쳐 돌아가고 있어.”
쪼르륵. 쪼르르륵-
자신의 잔을 채운 뒤 나머지 사람들의 잔도 채우기 시작하는 알드리치. 루실라는 살짝 혀를 댔다가 뜨악한 얼굴로 잔을 밀어냈고, 이드라실은 잠시 향을 맡는 듯하더니 뭔가 수긍한 얼굴로 그릇 같은 잔을 받아들었다.
알드리치는 잔에 비친 늙은 흑마법사의 얼굴에 모종의 기대가 어려있음을 알고 허탈하게 웃었다. 기대라.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그래…. 날도 어둑하고. 조용한 숲길을 지나는 마차 한 대라. 이런 이야기를 하기 딱 좋은 시간이 아닐 수 없군.”
“어떤…. 이야기요?”
“괴담. 알 수 없는 것. 불가사의한 일에 얽혀 사라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지.”
그릇에 담긴 기대를 허물듯, 받아들이듯 단숨에 털어 넣은 알드리치는 그 더운 숨과 함께 속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내가 열세 살이던 무렵, 텔드마이어 가의 모든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일이 있었네. 어머니와 아버지. 일가친척과 식객, 기사, 사용인부터 잠시 배달을 위해 가문에 들렀던 시장의 상인까지 모조리. 주민의 신고를 받은 제국의 감찰관이 서둘러 출발했고, 하루도 채 안돼서 도착한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사람의 흔적이라곤 하나 없는 침묵 속의 도시였지. 공식적인 생존자 전무함. 텔드마이어 가의 영지에 대한 보고는 그게 전부였어. 그 편지를 끝으로 그곳을 찾아간 감찰관들도 모두 실종되었으니까.”
“공식적이라.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두 명.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둘이 살아남았지. 나, 그리고 넬. 봄날의 햇살같이 밝았던 내 어린 누이. 네리아 텔드마이어. 텔드마이어 가의 어린 남매는 피와 살점을 뒤집어 쓴 채 그 저주받은 땅에서 도망쳐 나왔다….”
달칵.
그 몫의 술을 한잔 더 들이킨 알드리치는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로켓의 뚜껑을 열었다. 그의 손길이 로켓 안쪽의 사진을 쓰다듬자 음산한 푸른빛과 함께 귀기어린 속삭임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래. 네놈이 짐작하듯, 이 아이가 바로 내 동생. 네리아다. 나는 우리 두 남매가 무사히 도망쳐나왔다고 생각했지. 긴 악몽과 같은 그 밤을 지나, 마침내 벗어났다고. 적어도 우리 둘은 살아남았다고….”
그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생략된 말을 알아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둘 모두 무사했다면 그 동생이라는 소녀가 그때 그 어린 모습 그대로 섬뜩한 악령이 되진 않았을 테니까.
타악!
“….미리 말하겠네. 자네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반적인 흑마법사랑은 다르다고들 생각하고 있겠지. 영혼술사는 다르다고. 저 사악한 흑마법사들과 다른 면이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 미리 말해두겠네. 이 이야기가 끝나고, 자네들이 나를 혐오한다고 한들 아무 탓하지 않겠네. 아무리 깨끗한 척한들. 나 역시 흑마법사이니 말이야.”
살짝 갈라진 거친 목소리가 담담하게 그의 과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52년 전. 65세의 알드리치가 열 세 살이던 시절.
“오스왈드. 또 몸이 안 좋아진 거야?”
시작은, 기침이 잦아진 시종에 대한 어린 주인의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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