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69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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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벌써 수도야?”
아침부터 한바탕 땀을 뺀 교수는 마차 밖의 숲이 훤히 트이며 달라진 길에 놀라움을 표했다.
당장 말발굽 소리부터가 달랐다. 숲길을 다닐 때는 부드러운 낙엽과 흙 때문에 투벅 투벅거리며 다녔다면 지금은 단단한 포장도로와 편자가 따각따각 하는 전형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우누만에서 발틴 제국 수도까지는 사흘 거리라며?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원래 이 시대 지도는 좀 신뢰도가 떨어지잖아. 플레이어가 일일이 확인하고 그린 지도가 아닌 이상 지도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거든. 도보로 여행하던 지도 제작자가 거리를 착각하거나, 오솔길로 잘못 들어서며 빙빙 돌아오게 됐다거나. 종종 있는 경우야.’
새로운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언제나 기대를 동반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 저 수도는 무시무시한 황위 쟁탈전의 폭풍이, 그냥 폭풍도 아니고 마녀라는 독안개가 섞인 폭풍이 몰아치는 중이지만.
어쨌든 숲길이 탁 트이며 나타난 제국양식의 건물들은 ‘과연 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성벽이 보이기도 전부터 도로를 포장해놓다니. 길도 사두마차 세대는 그냥 지나가겠네요. 로드릭은 이런 거 안 합니까?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렇게 쭉쭉 닦아놓으면 마차 다니기도 편할 텐데.”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게. 단단한 길이 그냥 생기는 줄 아는가? 깊숙이 땅을 파고, 그 안에 소금을 잔뜩 뿌린 다음 단단하게 다지고, 기반암이 될 판석을 깔고 또 그 위에 흙을 덮어 다진 다음 조약돌로 한 층. 흙으로 한 층. 그다음에야 지금 마차가 지나다니는 표면의 길을 올리지. 그다음 마지막으로 대지 마법사를 불러 그 모든 구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맞물리게 다듬어야 완성되는 게 제국식 포장도로야. 그야말로 은화를 쏟아부어서 만들어진 길이란 말일세.”
“그래요? 오트만은 제국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잘 아십니까?”
“으음…. 사실 돈이 썩어나는 토브룬 영주가 저걸 한번 해보려고 했었거든. 소금 대신 땅을 말려서 굳히겠다고 우리 마탑에서 사람을 좀 고용해 썼었지.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이것저것 많이 주워들었네. 건설비용 말고도 들어가는 돈이 많더군.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유지 보수도 힘들어지고, 잘 다듬은 판석이 돈이 되니까 밤에 몰래 파내서 훔쳐가는 놈들도 막아야하고, 돈 말고도 이리저리 들어가는 품이 한두 개가 아니야. 제국이나 되니까 이런 길을 사용하는게지.”
“오호라.”
교수는 길 자체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오트만의 말에 교수는 슬쩍 발을 굴러 보았다. 과연, 제법 강한 충격에도 진동 하나 없는 게 큰 사고만 없다면 백 년은 너끈히 버틸 것 같은 길이었다.
쩌걱!
“이크!”
얼마나 단단한지 슬쩍 발을 굴러보다가 판석 하나를 쪼개 먹은 뒤. 황급히 마차에 올라타는 교수를 보며 루실라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다들 한가해서 참 좋으시겠어요. 저는 아침 편지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아, 맞다. 뭐 많이 왔던데. 내건 없냐?”
“용사님 편지가 ‘아닌’ 편지를 찾는 중이에요. 아, 노툼. 다과회 초대장 중에 16세 이하 영애들 것은 무도회 초대장 옆에 분류해줘. 작위는 공, 후, 백, 자, 남작 순서인 거 알지? 공작부터 위에서 아래로, 가문단위 초대에서 개인 초대로. 무도회, 사교모임, 다과회 순으로. 개인 초대는 따로 빼줘. 아직 그것까지 받아들일 수준은 아니니까.”
“우우우, 빨간머리. 가끔 착각하는 것 같아서 말한다. 노툼은 트롤이다. 멍청한 트롤은 이런거 잘 모른다. 빼줘라.”
“머리가 어어어엄~청 좋은 트롤이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잘 분류하던 거 다 봤으니까 도망갈 생각하지 마!”
“그우우우….”
“어머, 카넬리 영애한테서도 초대가 왔네? 고마워라.”
팔락 팔락 팔락 팔락-
마차 안은 제 2의 편지 습격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지금껏 제국령 밖에 있는 하우누만에 있어 까먹고 있었는데, 거기 머무르는 동안에도 우리 기구를 격추시긴 ‘편지 드래곤’은 꾸준히 날아든 모양이었다. 어쩐지, 하우누만에서 나올 때 공용 우체국 직원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파이프를 태우고 있더라니. 투기대회에 참석하는 동안 매일 아침 그쪽으로 쏟아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우누만을 나온 지금, 팬 래터의 맹공이 기구 다음으로 우리 마차를 목표로 삼은 것이고.
아침부터 교수와 오트만이 마차 밖에 나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편지에 습격당해 탈것을 잃을 수는 없었으니까. 지난밤 잠을 설친 덕분에 비몽사몽한 일행은 귀에 익은 [파라라락-] 소리에 너나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나 하얀 맹습을 맞이했다.
그렇게 100년전 대마법사의 의도치 않은 습격을 무사히 막아내고, 생전 처음 보는 기현상에 놀라 날뛰는 말들을 진정시킨 뒤.
우악스럽게 쳐낸 편지들 사이에 무슨 무슨 후작, 뭐시기 백작 같은 이름이 찢겨져 날아다니는 것을 본 루실라가 경악하며 그 모든 편지들을 마차 안에 차곡차곡 쌓고 분류하기 시작한 게-
오늘 아침, 잠에서 깨고 30분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도와줄까?”
“됐어요. 마차 좁아져서 방해나 되지. 우리끼리 알아서 할게요. 아, 이드라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그건 태워버려요.”
“….켈단 비에툼 3세. 백작의 아들이면 상당한 권력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변태에요 그놈. 손버릇 나쁜 것으로 텔드랏 사교계까지 소문이 다 났다구요. 얼굴도 모르는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자는 편지부터 딱 티가 나잖아요? 몸이 열 개라도 시간이 부족할 마당에 그런 놈한테 눈길 한번 주는 시간도 아깝죠. 그쪽에서 자길 무시했다고, 가문을 모욕했다고 빽빽거려도 깔끔하게 쳐낼 명분도 있고.”
루실라는 그녀 앞에 쌓인 고급스러운 편지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잔챙이들을 마구 쳐내도 될 수밖에. 그쪽에서 그렇게 나오면 ‘이러이러한 분들이 같은 시간에 방문을 권유하셨는데. 설마, 그쪽 가문이 그분들 요청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런 의견이 있으신가요?’ 해버리면 찍소리도 못하고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아, 용사님. 용사님 편지 중에서도 좀 급이 있어 보이는 건 따로 빼뒀어요! 나머지 일반 편지는 뒤쪽 수레에 밀어 뒀으니까 확인해 보시고!”
“어휴. 저거 다 확인하기도 전에 수도 입성하겠다야.”
“그럴 일 없어요. 여기 수도 아니니까.”
“음? 여기 아냐?”
교수는 뒤에 연결된 수레, 하우누만에 들어가기전 그 손으로 직접 만든 수레에 올라타 편지를 대충 훑어넘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성벽.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이는 성벽은 기능성뿐만 아니라 예술성까지 갖춘 대단한 건축물이었고, 성벽 너머에서 보일 정도로 높다란 건물이 도시 외곽에서부터 즐비하며, 오트만이 치를 떨던 그 포장도로가 이렇게 숲의 경계선에서부터 이어져 있는데.
저게 수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저건 수도 외곽, 사용인들의 도시에요.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이러시면 안 돼요. 저는 이래 봬도 황족의 초대장을 세 장이나 받은 사람이고, 함께 그 초대를 받아들일 여러분이 그렇게 행동하면 아무나 물어뜯으려고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 귀족들이 미친개처럼 달려들 테니까.”
간단히 줄이자면 촌티나니까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뜻.
이어지는 알드리치의 설명에 의하면, 저건 원래 도시가 아니었다고 했다.
“간단한 이야기일세. 제국은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그 영토만큼의 귀족을 가지고 있지. 수많은 확장 전쟁으로 그 공을 인정받은 고위 귀족도 많은 편이야.”
“그렇죠.”
“문제는, 제국이 처음부터 이런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제국의 수도가 지금 영토에 비해 작은 편이라는 것이지.”
사실 수도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다. 발틴 제국의 수도, 황제의 도시 올 암페리아는 당장 내가 봤던 로드릭의 수도 킹스랜드보다 30% 정도는 더 큰 대형 도시라고 하니까.
하지만 조금 더 크면 뭐해. 당장 제국 영토가 로드릭 왕국령의 여덟 배가 넘는데.
황제의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통치되는 영토인 만큼 황제가 있는 수도가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는 것은 당연했고. 제국의 모든 귀족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도에 입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했다.
“수도에 저택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 가문의 위상이 달라지거든. 당장 수도 정치계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실질 정권과 거리가 나뉘니까.”
결국 그 열화와 같은 성원에 수도는 포화. 땅도 좁은데 또 황제님 눈에 들어오는 도시라 분수 광장, 시장거리, 초대 황제의 거대 석상 등 넓은 땅덩이를 차지하는 곳의 미관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제국 수도, 올 암페리아의 명물, 3단 성벽이란다.
“수도 내부는 그 외곽의 허름한 곳까지 으리으리한 귀족 저택이 꽉꽉 들어찼으며,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귀족은 외성, 과거 수도까지 치고 올라온 외적을 막기 위해 축조된 간이 방어선의 성터에 저택을 지었지. 수도에 비해 당연히 허름하고, 시설도 남루한 주택가였지만 고위 귀족이 들어오니 그런 것쯤은 순식간에 정리됐고. 어떻게든 그들도 수도 안에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귀족들은 만장일치로 그 ‘성하 도시’에 새로운 성벽을 쌓기로 했네. 적어도 그들이 황제의 품 안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성벽을.”
그리고 귀족 저택이 그렇게 마구 밀집되어 있다 보니 그들을 모시는 집사, 하인, 마부, 시녀등 온갖 사용인들도 수도에 머물러야 했는데, 사용인 거처는커녕 당장 귀족 살 집도 모자라는 마당에 그들이 수도 근처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 수도 주변을 빙 두르는 ‘성하 도시’ 아래에 또다른 마을, ‘사용인들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황제, 고위기족 소수) – 성하도시(고위귀족들) – 사용인 도시(그 모든 귀족의 사용인들이 살며 귀족가로 출퇴근 하는 곳)
이러한 세 개의 동심원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현재의 제국 수도였다.
‘서울 주변에 위성도시가 생긴 것과 비슷하다고 봐야하나?’
[구조만 보면…. 그렇지?]교수는 하이드가 띄워올린 기억에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렇게 기형적인 구조의 도시를 본적이 있어야 뭘 비슷하다고 하던가 하지.
“그래서 성벽이 3개라네. 가장 바깥은 원래 목책이었지만, 70년전 언데드 준동 당시 제국과 협력한 드워프들이 ‘급조’한 사용인 도시의 성벽. 그 안쪽은 명목상 성벽이며, 실용성보다는 예술성에 치중한 성하 도시의 성벽. 그리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야 나오는 게 진짜 제국의 수도. 올 암페리아일세.”
“세상에. 성벽에 곡면까지 만들어놓고 저게 급조한 거면, 드워프가 공들여 만든 성벽은 도대체 뭡니까?”
“나중에 보면 알게야. 올 암페리아의 성벽은 드워프 두 개 일족이 합심하여 10년동안 쌓아올린 건축물이라고 하니. 지금도 제국과 드워프들은 종종 왕례가 있는 편인데, 방문할 때 꼭 눈을 가리고 입장한다고 하더군. 선조들의 치부, 사용인 도시의 성벽을 차마 눈에 담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제 제가 왜 여러분을 ‘촌티’난다고 표현했는지 아시겠죠? 빈말이라도 도시에 들어가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벽’ 같은 소리 하시면 안 돼요. 수도 귀족들은 저 드워프들의 실패작이 사용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실제로는 사람이 지은 제 2성벽 보다 잘 지어졌지만, 아무튼 드워프들이 그렇게 반응하니까 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거죠.”
“초입부터 허들이 참 높구만….”
교수는 점차 가까워져 가는, 아무리 봐도 웅장한 성벽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도가 틀린 게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옛 지도를 똑같이 베껴 만든 지도여서 그럴 뿐이지.
이곳에서부터 수도까지 이틀 거리.
사용인들의 도시에서 제 2 성벽, 성하 도시까지 직선거리로 무려 하루 반나절.
성하도시에서 올 암페리아까지 검문 시간을 제외하면 마차로 세 시간을 가야하는 엄청난 크기의 도시 집합체.
“염병. 이러니 맨날 다른 나라 보고 소국, 소국 하는 소리를 하지.”
둘러보는데만 일주일이 걸린다는 엄청난 크기의 수도 외곽을 보며, 교수는 3월드 플레이로 쌓아온 자신감이 살짝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그들은, 이 엄청난 제국의 소유권을 둘러싼 암투 한가운데로 뛰어들 거니까.
“또, 또 멍한 눈! 그렇게 얼빠진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니까요!”
“그냥 두자꾸나. 지금이라도 미리 충격을 받아둬야 성 안에서 좀 덜할테니.”
알드리치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행의 모습을 보며 그의 영혼항아리를 꽉 쥐었다.
작은 소국만한 도시. 수도 올 암페리아.
저곳 어딘가에 그 마녀가 있다.
『돌려줘.』
『돌려줘.』
“….그래. 더는, 도망치지 말자꾸나.”
영혼 항아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는 모종의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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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레이디 루실라!”
그그그그그긍-
사용인들의 도시, 편의상 ‘하우스키퍼 라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주변도시도 다른 도시들처럼 성문 앞에 긴 장사진이 늘어서 있었지만, 이번에는 기다리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은은한 금빛이 번쩍이는 황족의 초대장 하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프리패스니까.
“와. 이 큰 문을 우리 하나를 위해 개문해주네.”
“뭔가 입성한다- 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잖아요? 사실상 귀족들의 허영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인 만큼 이런 부분은 확실하더라고요.”
“아, 여기 주민의 90%가 귀족가 사용인들이지.”
바로 납득이 갔다. 다른 귀족들도 수도에 가려면 이곳을 거쳐 가야 하니까. 어쩐지 성벽에 비해 문이 좀 얇아 보인다 했더니 자주 여닫아야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참고로 제국 경비대처럼 차려입은 저 사람들도 사실 귀족가 사병이에요.”
“엥? 그럼 저놈들이 다 사병이라고? 당장 잡혀가야 하는 거 아냐?”
“이게 대단히 복잡한 정치 규범적 항목이 얽혀있는데….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성하도시와 사용인 도시는 모두 황실 소유지 위에 지어졌지만 정식 수도는 아니에요. 암묵적인 묵인, 행동없는 허가에 따라 그 위에 자리잡았달까? 온갖 제국 법을 얽어서 어떻게 합법의 틀에는 집어넣은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본질은 수도 외곽에 지어진 귀족 개인저택이기 때문에 수도 경비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안 되고, 그래서 저렇게 귀족 사병이 경비대 역할을 하는거죠.”
“워….”
“재밌는 건, 저 사병 경비대도 특정 귀족가가 돌아가면서 한다는 거에요. 방금 겪은 것처럼 검문도 경비대 마음대로라서 A귀족 경비대가 검문을 하는 날이면 A귀족가 상단이 우르르 몰려와 날림 검문을 받고. B귀족 경비대가 검문을 하면 또 B귀족가 상단, B귀족과 친분이 있는 가문의 상단이 우르르 몰려와 기록에 없는 물건을 마구 들여오고. 또 그 물건을 유통하는 쪽과 말을 맞추고. 어때요? 아주 복잡하기가 하늘을 찌르죠?”
“이야….”
“이게, 제국 수도에요.”
그야말로 진흙탕. 심지어 수도도 아니고, 수도 근처에 자리 잡은 귀족 도시도 아니고, 그들을 모시는 아랫사람들의 도시가 이 정도 수준이란다.
———
– 노루Drug해요 : 언변, 사교 몰빵 플레이하는 놈들은 부처님도 포기할 종말기 변태임이 틀림없어.
– professor :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우, 배배 꼬인 게 아주 초입부터 더럽게 맵네.
– takealook : ….박교수 플레이에서 언변이 차지하는 비율이 몇 할이나 될까.
– 남바쓰리 : 7할?
– takealook : 그 정도는 되겠지?
– 노루Drug해요 : 으음…. 자타공인….
———
늘 그렇듯 중간에 얘기가 불편한 방향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도 제국 수도가 얼마나 복잡한 마굴인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뭐하지? 일단 쭉 지나서 성하 도시까지는 가야 하나?”
“무슨 소리에요! 이 꼬라지로 어디를 어떻게 가겠다고! 당장 부티크도 들러야 하고, 마차도 좀 단장하고 저 성자님 수제작 수레는 어디 버려버리고! 여기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야 해요.”
“….여기서? 올 암페리아가 아니라?”
“그래요, 여기서! 그 개 같은 고블린 놈을 묻어버릴 만큼 은화를 주는 바람에, 전부 최고급으로 맞출 돈은 없거든요! 드레스랑 장신구까지는 눈 딱 감고 최고급으로 맞춘다고 해도, 나머지는 어느 정도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어요.”
루실라는 정돈된 편지를 부드러운 끈으로 묶어 잘 정리한 다음, 전의를 불태우며 마부석에 앉은 오트만을 다그쳤다.
“가요, 오트만! 지금까지는 당신들 전투였다면, 이젠 제 전투에요! 이렇게 된 이상 돈도, 명예도, 우리 가문 사람들이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로 무지막지한 신랑감도! 모두 얻어가고 말 거에요!”
텔드랏의 구혼자.
어차피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소문이다. 이제 와서 부정하면 그것만큼 우스운 꼴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 사교계에 도는 가장 유력한 신랑 후보는 놀랍게도 ‘성자 교수’라는 것이다.
루실라는 제국 경관에 얼이 빠진 교수를 보며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에드란 영애. 실례가 안 된다면, 오랫동안 여정을 함께한 성자님과는 어떤 사이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광명의 성자님의 대단한 위명은 저희 가문에서도 익히 들었어요. 외람되지만 이번 신행은 그분을 선택한 것이라 봐도 될까요?]“으으, 으으으으!”
귀족 영애들의 편지에서 그 소문의 진위를 묻는 글을 보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용사님이 내 배필이라니. 용사님과 내가 그, 그런….!
“아, 아니야. 백마탄 왕자님까지는 몰라도, 자작 수레에 탄 마초 성자님보단 더 괜찮은 신랑감을 찾고 말거야! 영애들은…. 이 사람의 실체를 몰라!”
물론 교수는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좋은 남자였고, 그녀도 그것은 인정했지만…. 싫었다.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으로서, 저렇게까지 미친 사람은 역시 아니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문이라는 게 퍼지고 굳어지다 보면 실체를 가지게 되는 법.
벌써 제법 표면을 굳힌 소문에 루실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제국의 내로라 하는 모든 귀족이 모인 수도. 이곳에서 반드시 그녀의 배필을 찾겠다고.
[광명의 성자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구나. 가문은 네게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결정했다. 네가 데려온 그 괴짜에게도, 네 이번 신행에도.]“으으으으! 으아으으으으!!!”
가문에서 온 편지를 봐서라도, 그 소문이 실체를 가지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여차하면, 용사님에게 좋은 짝을 찾아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저쪽이 먼저 임자있는 몸이 되면 그 소문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겠지!’
그렇게 교수를 흘끔거리다 머리를 쥐어뜯기를 반복하는 소녀의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혼란스러운 그들 앞으로. 정갈한 사용인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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