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72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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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도착한 귀족들. 그들은 좋게 말하면 버림패고, 나쁘게 말하면 각 세력의 혹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렇잖아요. 귀족간 협력이라는 게 가문과 가문 사이에서 협의되는거지, 맨투맨으로 되는게 아니니까. 귀족가 자식농사가 끝장나게 어려운 건 세상 사람 다 아는 이야기고. 어떤 가문과 손을 잡게 되면 그 손에 묻어있는 오물 같은, 방금 찾아온 그 잔챙이들도 다 아군으로 끌어들이게 된단 말이죠.”
귀족 특위의 자의식 과잉에 무능이 겹친 쓰레기들. 매우 껄끄럽지만 어떤 가문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 쓰레기들이 ‘난 누구누구 황자님의 가신이다! 날 치면 황자님이 분노하실걸?’ 같은 소리를 하며 겔겔거리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런 멍청이들 높은 확률로 사고를 치는 법이고, 큰일을 앞둔 높으신 분들은 이런 불안 요소를 치워버리고 싶기 마련.
“그래서. 사고를 치라고 보낸 거다?”
“예. 저런 바보같은 놈들이라도 나름 쓸모가 있거든요. 너는 내가 가장 믿는 친구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다, 너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을 맡긴다…. 멍청이들 붕붕 띄워서 저처럼 불확실한 상대를 가늠하는 것. 저쪽에서는 제가 어떤 심정으로 제국에 왔는지 모르니까 저렇게 멍청이들을 던지는 것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황자, 황녀들이 바보도 아니고 진짜 저런놈들을 절친으로 두고 중요한 자리에 보내진 않을테니까.
알드리치와 오트만은 뭔가 알 듯 말 듯,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자충수가 아닌가? 그들의 개인행동이라 하며 관계를 부정한들, 어쨌든 그들이 모시는 자로서 아랫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거니까. 자기 명예를 깎아내리는 행위가 아닌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심어줄 수도 있는데?”
“그 자충수 자체가 노림수라는 거죠. 음…. 좀 복잡한데. 대충 이런 겁니다.”
교수는 점심 만찬이 차려진 테이블을 살짝 치운 다음, 필기까지 곁들여가며 정말 간략하게, 최선을 다해서 요약한 황족의 노림수를 설명해주었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세 가지였다.
1. 미지의 인물에 대한 테스트.
2. 명분.
3. 불필요한 아군 정리.
“하나씩 설명해 드릴 테니 ‘여기서 도망가야겠다.’ 같은 표정은 집어넣으시죠.”
“크흐음, 큼!”
교수는 꿈나라로 도망가려는 두 마법사의 진정제를 뺏어버린 뒤, ‘어떻게 하면 멍청한 아군 귀족을 가장 효율적, 정치적으로 쓸 수 있는가’ 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귀족 정치는 개같이 복잡해서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도 그 동인을 알고 행동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표면적으로 ‘저 웃는 얼굴이 진짜일까?’ 하는 수준의 의심이 아니라,
‘저렇게 웃으면서 눈을 반달처럼 뜨고 내 손을 잡는 게 협력자에게 약속된 신호라 내 음료에 약을 타고 내가 쓰러진 틈에 내 딸을 꼬드겨 아군으로 만든 뒤, 가문의 내분을 야기해 안팎으로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오늘 겨우 손에 넣은 내 멋들어진 구두의 소유권을 이양받으려는 게 아닐까?’
정도는 돼야 ‘진짜 귀족 사교계’의 의심이라고 할 수 있죠. 행동으로 그 동인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귀족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움직이는 대신, 결과로부터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을 많이 쓰는 겁니다.”
“결과로부터 의도를 파악한 다라…. 결국,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알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예. 그래서, 상대의 반응을 알아내기 위해 아랫사람을 시켜 작은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죠. 어이쿠, 드레스에 술을 엎었네! 라거나. 누가 상대하더라도 무례하다 느낄 정도의 머저리를 초대장 대신 보낸다거나.”
작은 일을 여러 개 만들어 상대의 반응을 보는 것. 그 결과로 말미암아, 상대가 어떤 동인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역산하는 것.
원인을 파악해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결과들을 모아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
오늘의 병신 귀족 덤핑은 표면적으로는 초대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그 본의는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어떤 성정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소소한 테스트였을 것이다.
당장 멍청이들 손을 덥썩 잡고 누군가의 세력에 들었다면?
‘아, 이놈은 누구라도 손을 내밀기만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게 모욕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정치에 무지한 놈이구나! 장기말로 막 써먹고 버리면 딱이겠다!’ -같은 식으로 [신실하고 강력한 성자] 라는 정보 앞에 [정치에 무지하며 권력에 목이 마른, 쓰고 버리기 좋은 신실하고 강력한 성자] 라는 정보를 한 줄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이고.
멍청이들 손을 쳐내며 부정적인 모션을 취하면?
‘아, 그래도 저 멍청이들과 같은 수준은 아니네. 어느 세력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사과한답시고 불러서 얘기 한번 해봐야겠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고.
“추가로 외부 인사를 잡음 없이 받아들이기 위한 명분 작업도 되죠. 종교-정치 불가침은 오래된 규범이니까요. 그냥 바로 끌어들이면 용기 교단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 수도 있고, 지고한 황제의 권력을 넓혀 나가지는 못할망정 다른 거대세력을 떠안아 조각낼 생각이냐며 상대 세력의 강도 높은 비난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우선 황위 쟁탈전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만남을 주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병신 투척 -> 높은 확률로 사고 -> 종교계 고위 인사에게 매우 큰 결례 -> 아랫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내 실수다. 사과 겸, 밥이나 한끼 하쉴?
같은 초대라도, 이렇게 한 바퀴 돌려서 세탁하면 상대 세력이 치고 들어올 껀덕지가 없는 깔끔한 초대가 되는 것.
“그 다음에는 뭐. 밥 먹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아서 자주 교류하게 됐다던가, 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거고.”
“으음…. 마지막은 알겠군. 애초에 결례를 상정하고 보낸 놈들이니, 자네가 역정을 내며 돌려보낸 다음 사람 초대 하나 할 줄 모르는 머저리들이라 성토하며 그쪽 세력에서 내쫓아버리는 건가?”
“예. 그렇게 되면 그쪽 가문을 불편하게 하는 일 없이 내실을 다질 수 있으니까요.”
귀족의 행동을 다각도에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한테 이득이 돌아오게 만드는 게 그들. 그 모든 진의를 읽어내고, 상대에게 어떤 행동으로 대답을 전할지 판단하는 것.
이게, 정치 좀 친다~ 하는 귀족들 사이의 ‘대화’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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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kass : 어…. 귀족 얘기 정리되면 불러라. 어우, 토 쏠려.
– professor : 구경하는 늬들이 그 정도인데, 실시간으로 그걸 맞닥뜨리는 난 어떻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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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징글징글하지.
버림패 몇 명 받아낼 정도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상대는 그런 생활이 온몸에 베어 삶이 되어버린 자. 다른 말로, 귀족.
앞으로 일정이 험난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고난의 행군이라는 뜻이다. 귀족들 상대하는 것 하나만 생각해도.
그런데, 나는 여기서 생각해야 할게 하나 더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귀족 정치를 정치 ‘따위’로 치부할 만큼 큼지막한게 하나 더.
테이블 위의 샐러드가 들썩거릴 만큼 깊은 한숨과 함께, 입에 올리는 것조차 무거운 그 이름이 교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녀.”
“으으음…. 그래. 제국에는 그게 있었지….”
“보통 상황이라면….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어요. 애초에 상대도 가볍게 건드려본 것 뿐이고. 매몰찬 거절로 의사를 표현했으니 이제 진짜배기 초대가 오길 기다리는 일 밖에 없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군.”
“예. 그 살육에 미친 마녀가 개입했다면, 일반적인 정치 상황으로 볼게 아니니까. 상대방의 의도가 충분히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튀어나갈 가능성을 생각해야죠.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쪽이 아니라 우리가 상황을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렇다. 그냥 둬도 겨울 잠자는 뱀굴마냥 배배꼬인 제국 수도 사교계 위에 ‘100년 묵은 마녀’ 라는 핵폭탄을 얹어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별 탈 없이 귀족가로 입양됐다고 했죠?”
“그렇네.”
“어느 가문?”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어. 당시 너무 패닉에 빠져서 그 어린 사제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거든.”
“그녀의 동인으로 정확히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힘의 회복이라던가, 그 회복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던가….”
알드리치는 눈을 감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듬었다. 그날, 피와 시취가 가득한 석실에서 그의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 광기와 애정어린 홍소. 그 사이에서 파고들던 낱말들.
“없네.”
“….예?”
“이유 따윈 없네. 그저, 우리가 눈을 깜빡이고. 심장이 뛰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듯. 그것은 사람을 죽여 없애는 게 그 본질이란 말이야. 적어도 내가 아는 것으로는 그렇네.”
“살인 그 자체가 본질이라…. 그 규모는 점점 커져왔고, 알드리치가 겪은 비극은 이전의 대량 학살로부터 13년 뒤였단 말이죠?”
“그렇지.”
“음….”
생각하자. 생각. 생각. 그날로부터 52년이 흘렀다. 마녀가 본인 입으로 ‘버틸 수 없어 저질렀다’ 라고 말한 기간이 13년. 오차를 몇 년 주더라도 대규모 희생제를 세 번은 더 저질렀을 시간이다.
———
– professor : 진짜 없어?
– 스피드 웨건 : 없어. 물론 귀족 전쟁 당시 멸문한 가문이 한둘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국과는 거리가 있다보니 연관성을 증명하기 힘들어. 제국 내에서는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마을이나 영지는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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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 일 없었단다. 아니, 저질렀다고 해도 다른 모든 플레이어의 기록에 남지 않을 정도로 소규모였다는 소리.
‘뭔가 큰 한 방을 노리고 있거나.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희생제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거나.’
[둘 다일 수도 있지. 그 마녀, 딸내미 몸을 엄청 마음에 들어 했다며. 자기 닮아서 영력을 타고 났다고. 사고치고 몸 갈아타는 식이면 그 몸도 버려야 할텐데. 애초에 희생제가 살육에 대한 갈증을 채우는 것도 있지만, 그냥 죽이지 않고 저렇게 거창하게 의식을 진행한다는 것은 본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함도 있잖아? 마녀이자 성녀인 자의 혈통. 그거 보통 귀한 거 아닐 텐데. 함부로 버리려고 하진 않을걸?]….일리있는 이야기다. 마녀의 동인이 단순하게 대량 학살이었다면 구태여 신전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악한 제의(祭儀)를 치를 필요가 없었으니까. 뭔가 힘을 회복해서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뜻. 그리고 하이드의 말처럼, 그런 육신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귀족가 입양. 사악한 힘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혈육의 육신. 대량 학살.
정보로 이루어진 퍼즐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아직 전체적인 그림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한 부분은 드러낼 수 있는 조각들의 모임.
스치듯 지나간, 자칫 흘려들을 수 있는 작은 정보. 가장 중요한 정보인 줄도 몰랐던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도로 건설. 알드리치, 분명 마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죠. 당신의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마레 텔드마이어가 마레 아벨라디스였던 시절. 아벨라디스 가문 사람이 모두 죽고 그녀에게 넘어온 유산으로 텔드마이어 영지 구석구석까지 도로를 깔고, 건물을 세워 영지를 발전시켰다고.”
“그래. 아니 잠깐. 설마….?”
“예. 그날 사라진 것은 텔드마이어 가문 사람들만이 아니잖아요. 용기의 교단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지 전체에 저주가 내렸다고 하니. 아마 그 건설 과정에 뭔가 수작을 부렸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저주, 촉매…. 그래, 가능하군. 촉매는 저주가 발현하기 전까지는 그냥 이상하고 기이한 물건일 뿐이니까. 인부를 수족으로 만들어 영지를 관통하는 모든 도로와 주요한 지점에 저주의 촉매를 심어두었다면…. 확실히, 아무 전조도 없이 교단의 눈을 피해 대규모 저주를 준비할 수 있어.”
“그리고, 이번에도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높은 직위에 있어야겠지. 완벽에 가까운 수도 곳곳을 들어내고 새 공사를 시작한다든가. 제국 전역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위치 정도로 높은…. 오오, 이런. 하지만, 설마….”
오트만은 말하던 도중 뭔가를 깨달았는지 탄식을 토해내었다. 아마 내가 이해한 것과 같은 것일 테지.
“몸을 갈아타지 않았다면 지금 그녀의 육체 나이는 63세. 황후들 나이도 그쯤 되죠, 아마?”
제국이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황제의 자리를 두고 황족들이 총력전을 벌이는 황위 쟁탈전.
갑작스럽게 팝업된 알드리치의 과거. 거기에 얽힌 마녀의 이야기.
그리고, 수도에 도착한 플레이어.
이 모든 것을 한 흐름으로 보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이 있었다.
이 황위 쟁탈전, 어딘가에 마녀가 끼어들었다는 것. 그것도 아주 높은 권력을 가진 존재로서.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황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황태후가 될 수도 있는 존재.
“….그래서, 아까 돌멩이고, 투석기가 어쩌고 하는 말을 한 것인가?”
“예. 정석대로라면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는 게 맞지만, 마녀가 개입했다면 좀 더 빠르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죠. 특히나 제 입장에서는 더욱이. 저는 수도 사교계에 정치적으로 뭔가 가지고 있는게 없고, 방금 눈앞에 저들이 던지고 버린 돌맹이들이 떨어져 있으니. 그거라도 주워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누가 아군인지 정하지도 않았지만, 밟으면 확실히 터져나갈 지뢰가 있는 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이상. 그냥 평범한 정치적 대응만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 고로, 신전 좀 갔다 오겠습니다. 알아볼 게 있어서.”
“….같이가지.”
“아뇨, 혼자 가는게 좋습니다. 저 늦게 올 것 같으니 두분은 여관에서 기다렸다가, 나머지 일행 복귀하면 지금 얘기를 전해주시죠.”
상대가 진짜 마녀라면. 타락한 광명의 성녀라면 대놓고 수도를 찾아온 나, 광명의 성자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 당연한 법.
‘성자로서는 당분간 몸을 숨긴다. 그렇다고 진짜 숨죽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나를 쓴다는 말이지.]펄럭이는 하얀 법복의 그늘 속. 스며들 듯 드러난 검은 피부가 히죽거렸다.
시작이다. 본격적인 수도 파헤치기의.
목표는 둘.
제국의 지원 약속.
마녀의 격살.
그리고…. 최악의 경우. 마녀의 계획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진행됐다면.
제국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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