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73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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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챙그랑!
“건방진! 주제도 모르는! 감히, 감히 누구한테!!!”
와장창!
깊은 밤. 사용인 도시에서도 귀족들만 상대로 한다는 고급 주점의 개인실.
잔뜩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며 패악을 부리고 있었다.
“저…. 나이딤 경? 술이 과하신 듯한데. 이쯤 드시고 자택으로 돌아가심이.”
“뭐? 집으로 돌아가? 지금, 너 따위가 감히 수도의 귀족을 멸시하는 것이냐? 집으로 돌아가라, 집으로 돌아가라고!!”
와장창!
고급 주점, ‘사자의 휴식’ 직원은 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고객의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귀족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까. 조금 진정되면 예쁘장한 아이를 술 시중으로 들여놓고 가문에 청구를 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조용해진 개인실. 화풀이 할 대상이 없어진 귀족, 케플랙 나이딤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그 같잖은 교세 하나를 믿고! 조부님 세대에만 해도 용병만큼이나 천하게 부려지던 신성 노동자 주제에! 이 나이딤 케플랙의 권유를, 1황자님의 수족을 내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분명 신사적이면서도 1황자 측근이라는 권위를 잃지 않는 태도로 그를 대했으며, 감히 타국의 귀족조차 아닌 사제 나부랭이에게 1황자님의 수발을 들 기회를 주었는데.
천금, 만금을 주어도 마다할 수 없는 기회를 매몰차게 내친 것도 모자라, 마법사를 시켜 물을 끼얹으면서까지 내쫓다니!
오전의 수모를 떠올리니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꿀꺽- 꿀꺽-
“커흐으으-!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 없어….”
그래, 그는 아량이 넓고 깨어있는 젊은 귀족이니, 촌 무지렁이의 무례함을 어떻게 수용할 수는 있었다. 그들이 제국의 귀족, 그것도 수도에 기거하는 귀족의 권위를 모를 정도로 무지할 수는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수모를 당한 그에게 내려진 처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히 중요한 손님이 될 성자에게 가당치도 않은 태도를 보여, 일을 그르치다니!’
‘아, 아버지! 제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제 꼴을 보십시오! 그 미친 것들이 감히 제국의 귀족에게 마법 공격을-’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느냐! 더는 네 추태를 봐줄 수 없구나. 당분간 그 어떤 사교 모임에도 참석하지 말고 근신하며 네놈의 무지한 행동을 반성하거라!’
‘마, 말도 안 됩니다. 황자님! 제 충성심을 높이 사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황자님, 황자님과 이야기하게 해주십쇼! 황자님!!!!’
아버지를 모시는, 앞으로 그를 모시게 될 기사들의 손에 비참하게 끌려나왔다. 그 자리에는 1황자님의 측근을 비롯해 수많은 동년배 귀족, 마음에 두고있던 귀족 영애들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끌려나온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황자님이 날 내치셨을 리가 없어. 분명 뭔가 있다. 뭔가…. 뭔가….”
『예를 들면, 자네를 시기한 누군가의 음모라던가.』
쿠당탕!
나이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의자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곳은 고급 주점, 사자의 휴식 3층에 있는 개인실. 그와 같은 귀족들도 종종 찾는 만큼 보안이 허술하지도 않고, 문은 분명히 굳게 닫혀있었는데?
“누, 누구냐?”
『이쪽이다.』
그림자. 분명 벽으로 막혀있는 곳의 차양을 들추며 나타난 것은 그림자처럼 새까만 옷에, 냉혹한 얼굴을 가진 키 큰 남자였다.
“누, 누구냐…. 감히 대 케플랙 자작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내 앞에, 가, 감히….”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나. 자네를 제 손처럼 아끼던 황자님의 갑작스러운 변심. 아무 잘못도 없는 자네에게 덮어 씌워진 모함. 이상할 만큼 급하게 진행된 추방까지.』
갑작스러운 방문에 뒷걸음치던 나이딤은, 그의 가슴을 간질이는 남자의 음산한 목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이, 이상해. 확실히…. 그래. 뭔가에 쫓기듯, 아버지는 최대한 빨리 나를 그 자리에서 내보내려 하셨어….”
『자네는 총명한 사내로 보이는군. 하긴, 1황자님이 믿고 일을 맡길 정도의 사람이니 당연하겠군. 그럼 그 총명한 머리로 생각해보시게. 과연,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사내의 음산하지만, 달콤한 말에 술에 취한 나이딤의 어설픈 추리가 흘러나왔다.
“나, 나는 1황자님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했어. 하지만, 1황자님을 뵙기는커녕, 아버지와 다른 애국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면박을 당하고, 쫓겨났지.”
『그래.』
“화, 황자님은 내가 돌아오신 것조차 모르셨던 거야! 그러니 자신의 손발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보러 내려오시지 않은 것이고!”
『좋아. 계속해.』
“누, 누가 소식을 끊었어. 누군가, 나를 향한 전하의 총애를 시기하는 놈이 그 사이를 가로막은 거야! 이, 이이이! 그,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짝. 짝. 짝.
분통을 터트리던 나이딤은, 밀랍인형처럼 표정없는 남자의 박수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 대단한 통찰력이야. 단박에 진실을 향해 파고들다니. 믿음직스럽군.』
“넌…. 넌 누구지? 누구인데 내게 이런 걸…. 알려주는 거지?”
『이런. 내가 알려준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게 아닌가? 나이딤 케플랙. 황자 전하의 충실하고 총명한 가신이여.』
남자는 어둑한 개인실의 조명 아래로 한 걸음 다가서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개인실을 벽을 타고 흐르던 음산한 목소리도 한결 명확해지며, 나이딤에게 이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푸른 피에 대한 예우를 못하는 걸 용서해주길. 본디 나라는 존재 위에 황가를 제외한 그 어떠한 것도 올리지 않게 맹세한 몸이라.”
“화, 황가의 그림자! 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라 들었는데….”
“그편이 활동하기 쉽지 않겠나?”
“확실히….”
소문으로만 듣던 황가의 심복,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한다는 황가의 그림자를 본 나이딤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는 무슨. 애초에 당장 황제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림자가 왜 다른 놈한테 붙어있겠느냐고. 저거 바보 아니야?]‘바보 맞아. 바보니까 이렇게 써먹으려고 찾아왔지.’
당연히, 남자는 거무튀튀한 무언가로 위장한 교수였다.
하이드가 얼굴 위에 씌운 가짜 얼굴. 대충 투란에서 봤던 용병의 얼굴을 본뜬 그것은 말 그대로 얼굴 위에 한 겹 덧씌운 것뿐이라 표정까지 구사하진 못했지만, 이미 만취한 나이딤은 그냥 무표정한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에…. 어디보자. 그 다음 대사가….]‘읽어 좀! 평소에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기억을 다 읽어대더니!’
[히히. 이게 속에 남아서 보는 거랑 몸을 컨트롤하며 보는게 좀 다르네.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다고.]교수도 몸을 늘이고 줄이거나 완전히 괴수 폼으로 변신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체형이나 목소리까지 바꾸는 것은 여전히 하이드 정도나 가능한 일. 덕분에 지금 육체의 통제권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있는 것은 하이드였다.
[어디보자….]하이드는, 교수가 속에서 읊어주는 대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연기하기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1황자 전하의 휘하에 첩자가 있다.”
“첩….자?”
“그래. 그분의 곁에서 충신을 쳐내고, 간신과 머저리만 남겨 황자님이 당연히 그분의 것인 제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정신 나간 자들. 그들이 자네를 쳐낸 것이야. 가만히 두면 그분의 큰 도움이 될 자네를 말이야.”
“여, 역시! 그렇지! 나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근신 같은 가혹한 처벌을 받을 때부터 뭔가 있다고 느꼈어! 그래, 누구지? 아슈왈트 그놈인가? 빈자르코? 겔리드?”
“누구인지는 모르지. 그래서, 내가 지금 자네를 찾아온 것이고.”
남자, 대충 음지에서 활동할 것 같은 모습으로 위장한 하이드는 낡은 편지지 몇 장을 나이딤에게 건네며 말했다.
“비록 쫓겨났지만, 자네는 여전히 1황자 전하의 수족이고,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다. 그런 자네를 믿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중요하다면….”
“황자 전하의 옆에서 그분을 좀먹는 첩자를 색출하는 것. 근신 처분은 자네가 조용히 군다면 얼마 가지 않아 풀릴 것이야. 그렇게 되면 다시 전하의 세력, 귀족들의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되겠지. 그들 가운데 첩자 노릇을 하는 이들을 찾아 이 종이에 적어주게. 우리가 그놈을 처단할 테니.”
“첩자…. 위,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하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 오직 자네, 케플랙 나이딤 밖에 할 수 없는 임무야. 전하께서 제위에 오르면 절대 자네 이름을 잊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나밖에 할 수 없는…. 전하의, 오오….”
젊고,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의 눈에 그만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황제의 그림자와 함께 제국의 그늘에서 활약하며 황자를 보필하는 자신. 치열한 임무 끝에 황자는 제위에 오르고, 그 곁에 저 멋들어진 검은 의복을 입은 자신이 그의 서임을 받는….
“하, 하겠다! 찾아서, 여기에 적기만 하면 되나?”
“병ㅅ…. 크흠! 그, 그래. 그것은 우리 그림자들이 쓰는 특수한 편지지로, 내용을 적고 두 번 접기만 하면 이름을 쓰지 않아도 우리에게 날아오는 물건이지. 그럼, 부탁하겠네. 1황자 전하의 이름으로, 제국에 영광을.”
“제, 제국에 영광을.”
스륵-
커다란 남자는 나타났을 때처럼 조용히 차양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바람이 불어 차양이 펄럭였지만, 이미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 신비한 모습이, 마침내 이 젊은 귀족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황가의 그림자. 내가, 이 케플랙 나이딤이…. 그래, 나 밖에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나의 위상에 걸맞은 일이야!”
취기가 확 달아나는 것 같은 느낌에 나이딤은 그 길로 주점을 나와 그의 저택을 향해 달렸다. 마차를 부를 정신도 없이, 머릿속으로 그에게 고깝게 굴었던 귀족들의 명단을 마구 떠올리며.
[와, 진짜 병신소리 참기 힘들었다. 귀가 얇다 못해 흔적만 남아 있을 정도인데? 뭔 남의 말을 저렇게 잘 듣냐?]‘뭐, 취한 것도 있고, 원래 병신이라 채택한 것도 있고. 분위기 연출도 나름 괜찮았지.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아직 바보는 많이 남았으니까.’
덜그럭.
손톱으로 매끈하게 잘라낸 벽을 잘 맞춰 넣은 교수는 광명교단 제국 수도 교구에서 전해준 종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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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랙 나이딤 : 사용인 도시, 주점 ‘사자의 하품’ 3층 개인실.
길라드 뤼튼 : 수도 밖, 협곡. 불법 약초, 마약 거래용 살롱, 케이브 지하 2층. 우측 끝방.
아리시엘라 데마칼로 : 성하도시 굴지의 창관, 나이트 라이트 나이트. 정확한 소재 파악 불가. 엘프 남창을 자주 이용한다고 함.
가일리 돌로레스
푸텍스 말로
코라 디미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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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의 그림자는 모르겠는데, 교단의 그림자라면 우리도 잘 알거든.”
하우누만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솜씨.
암행을 좀 나가야겠다고 하기 전부터 그의 사이즈에 맞는 검은 의복을 준비해둔 수도 교구의 준비성에는 교수도 감탄하고 말았다.
‘성하께서 성자님이 사용하실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어….’
‘대주교님이? 아, 하우누만 주교님이 보고하셨구나. 잘 쓰겠습니다.’
‘모쪼록, 광명의 인도가 함께하시길….’
옷 갈아입고 하이드랑 쑥덕거리는 그 잠깐 동안 오늘 여관을 방문한 귀족들의 위치와 성향까지 싹 긁어서 정리해온 교단 사람들.
‘저거 뭐 어따 쓰겠어. 던져야지. 소란 좀 일으키고. 내분도 만들고.’
[….저 바보들로? 되려나?]‘그럼. 보통 사람이 던지면 돌팔매지만, 내가 던지면 트레뷰셋이거든.’
평소에 이런 공작을 많이 하는지 교단의 그림자 쪽에서 전해준 것.
그냥 봐서는 안보이지만, 마력을 부여하면 직인이 드러나는 2황자, 3황자, 기타 여러 황족의 편지지.
나이딤 같은 쭉정이들은 모르지만, 황족의 진짜 심복들이 혹시 모를 공작에 대비하여 쓴다는 물건. 약속된 공식대로 마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그대로 마력 화염에 잿가루도 남기지 않고 타버리는 고-가의 마법 편지지다.
‘저놈, 절대 은밀하게 뭘 하거나 첩자를 찾을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나름 감춘다고 씰룩거리면서 다니다가 들통 나겠지.’
저런 머저리를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제대로 정신 박힌 귀족들일 것이고.
그 이름이 주르륵 나열된 종이가, 자세히 살펴보니 상대 진영에서 진짜 숨겨야 할 일이 있을 때나 쓰는 편지에서 발견된다?
있지도 않은 첩자를 찾겠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소동에 얽힌 귀족 가문은 당연히 억울한 혐의를 전면 부정할 것이고. 그렇게 사이가 벌어지고, 탐욕으로 뭉친 단단한 서클에 틈이 벌어지면….
‘타초경사(打草驚蛇)라. 풀을 때려 뱀을 찾는다. 이런 식으로 세 세력 전부 혼란에 빠지면, 어떤 식으로든 뒤에서 조종하던 놈이 흔적을 드러내겠지. 그게 마녀건, 다른 놈이건.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물론 100% 내 생각대로 실행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말 기대대로 마녀가 움직인다 한들, 다섯, 여섯 다리는 건너서 전달된 명령 한마디 정도일 테니.
어디까지나 혼란책. 저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가벼운’ 잽과 비슷한 정도.
‘루실라가 가져올 결과도 있을 테니 그거랑 또 조합해서 상황 봐가며 쑤셔야지.’
뱀이 튀어나올 때까지, 마구. 풀을 치는 게 아니라 으깨져서 즙이 될 때까지.
우선 저들 사이에 마구 혼란을 뿌려서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아 볼 생각이었다.
그날 밤. 약 서른명의 귀족이 ‘황가의 그림자’의 방문을 받았고, 저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나름대로 비밀 작전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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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어스름하게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온 교수는, 그를 기다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일행에게 그 둘의 자랑스러운 행보를 전했다.
“하루만. 아니, 반나절 조금 넘는 정도만 얌전히 있어달라는게….. 그렇게 힘든 부탁이었나요!”
그리고, 혼났다.
“아니 루실라. 상황이 바뀌었다니까? 마녀라고 마녀. 단순히 귀족 사이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창피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목숨이 걸렸다고!”
“그러면 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다가가야지! 그래요! 내가 고위 종교계 인사가 가지는 정치적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건 이해했어요! 오히려 잘했어! 그런 식으로 버려진 녀석들을 내치는 행동으로 답을 전할 정도로 정치적 소양이 있다는 것을 전했으니까! 이제 성자가 아니라, 광명 교단이라는 뒷배를 업은 귀족 정도로 진지한 접촉이 올 예정이었겠죠!”
“예정이라면…. 안오려나?”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외부 인사를 만나고 자시고 해요!”
촤아악!
루실라는 오늘 아침, 평소와 같이 부지런히 도시를 살피러 다니던 이드라실이 뜯어온 공고문을 펼쳐 보였다.
“도대체 이 미친년한테 무슨 바람을 불어넣었길래 독살 미수로 3대가 교수형에 처한다는 거야! 내란 획책? 반역? 황가 모독? 이,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이야아아아!!!!”
“어…. 음….”
[역시. 100% 잘 들어먹히진 않을거라고 예상했지만.]‘염병.’
이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지.
힘껏 던진 조약돌이, 포수의 글러브와 가슴을 뚫고 펜스를 박살 내며 외야를 덮쳤다.
평소에 눈엣가시 같은 영애의 찻잔에 독을 타고, 들통나자 저년 첩자라며 마구 악을 썼다고 소문이난 아리시엘라 영애.
약에 취해 3황자 앞에서 칼을 꺼내 보이며 재차 황가의 수족으로, 그림자로서 살 것을 서임 받겠다고 날뛰다 붙잡혀가며 ‘3황자가 그림자를 다룬다! 3황자가 차기 황제로 이미 정해졌단 말이다!’ 같은 소리를 질러 황가 모독으로 끌려간 길라드 뤼튼.
그 외에도 몇 명이 새벽부터 설레발 치다가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걸려서 질질 끌려나갔다는 소리다.
‘뭐, 절반 가까이 만취한 상태였으니까. 숙취 때문에 으어어어-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퍼질러 자고 있겠지. 덕분에 심어둔 바보가 제법 살아 남았군.’
[그렇지. 이렇게 첩자 행위를 한 놈들이 잡혀가는 걸 보고, 우리 말이 진짜였다고 철썩같이 믿을 거고 말이야.]‘으헤헤헤!’
[크히히히!]루실라는 당장 사교계 지반이 흔들려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없게 됐다고 불평이지만 나로서는 대만족이다.
“아무튼 내 쪽은 그렇게 마무리됐고. 루실라, 너는 어떻게 됐냐?”
“으음…. 무난하다면 무난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지만. 조금…. 이상했어요. 수도의 귀족들이 뭔가…. 바보 같았다고 해야하나? 정신이 없어보였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무딘 사람들이 아닌데, 이상할만큼…. 어…. 표현을 못하겠네요. 이상하더라구요. 일단 전부 괜찮게 헤어졌고, 우리 일행 전부를 포함한 파티 초대장도 몇장 받았지만, 너무 쉬워서 조금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그거 이상한데. 나를 찾아온 바보들이 특별한 병신이 아니라 제국 평균이라고?”
“아니, 그런 종류의 이상함이 아니라…. 아잇, 저도 뭔지 모르겠다니까요! 이질감! 그래! 이질감이 있었어요!”
“이질감이라….”
루실라의 말에 교수의 가슴속에 작은 불안이 싹을 틔웠다. 제국은 아무 문제 없이, 대량 학살이나 갑작스러운 범죄자 처형, 전염병 하나 없이 잘만 굴러가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어제 만난 귀족들 명단을 받으려는 찰나.
“그웍. 나 할말 있다.”
조용히 옆에 앉아있던, 아침부터 계속 표정이 심각하던 노툼이 손을 들었다.
“노툼? 뭔데?”
“어제. 조상 귀신들이랑 수도 돌아다니다 이거 주웠다.”
노툼은 어디서 났는지 동물의 생가죽 같은 것과 뼛조각, 자신의 피로 보이는 것으로 흠뻑 젖은 덩어리를 꺼냈다.
“으, 노툼!”
“미안하다, 빨간머리. 급해서 근처에 있던 걸로 봉인해야 했다.”
“봉인?”
“그우. 봉인. 선조령이 직접. 내 손에 들어와서.”
평소답지 않은 진지한 모습에 일행도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나 차츰 그 덩어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겹씩 젖은 가죽과 마른 피딱지를 긁어내고, 트롤의 굵은 손가락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
독특한 향이 있었다, 코가 아니라 머리로 직접 맡는 것 같은 진하고 달콤한 향.
“….꽃?”
“노툼…. 그걸 대체 어디서?”
“주웠다.”
그 봉인을 풀어내는 순간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알드리치를 하얗게 질리게 만든 것.
“저주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느냐.”
“세번 말한다. 주웠다. 길에서. 골목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툭. 툭. 툭. 툭.
노툼의 뒷주머니에서, 같은 형식의 주술로 봉인된 뭉치가 네 개 더 나왔다.
“주웠다. 그냥 찾으면 주울 수 있을 만큼, 많다. 제국 수도, 무서운 곳이다. 나 여기 있기 싫다.”
노툼이 놀러 나간 몇 시간 사이에 다섯 개나 주워온 그것.
짙은 보라색에 달콤한 향을 뿌리는 그 꽃은 지금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지만.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썩어가는 사체처럼 꺼려지는 것이었다.
보라 달무리 꽃. 일명, 저주화.
그것은, 과거 언데드의 준동 당시. 세계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저주의 촉매였으며.
“흥미롭군요. 어머니와 마을 어른들에게 전해듣던 생김세와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카네란에서 듣기로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둥근 구체에, 검은 점 세 개가 삼각형으로 박힌 형태라고….”
“그럴 수 밖에. 촉매는 저주의 발현 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세간에 알려진 저주화의 구분법은 그 구근을 찾아내는 법이야. 저렇게 꽃을 피워, 향을 내뿜는 다는 것은…. 언제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저주의 발현이 가능하다는 뜻이지.”
“….예?”
지금,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수도에 이미 마녀의 희생제가 벌어질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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