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74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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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 쟁탈전. 동부 국가들이 진행중인 뮤트와의 전쟁.
그리고, 마녀와 저주화.
위의 두 개와 같은 목록으로 두어야 할 만큼 커다란 사건이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일단, 상황이 급해진 만큼 차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급한 것은 사실 확인.
이곳이 적진이라 가정할 때. 어디서 어디까지가 적의 점령지인가. 안전지대를 확보한다면 어디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상황이 얼마나 진행되었는가.
그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툼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온 교수는 그녀의 말대로 ‘길에 널려있다’는 저주화를 찾아 나섰다.
“여기 있다.”
“어디?”
“여기. 지금 교수 눈앞에.”
“안 보이는데?”
“그웍. 눈이 아니라 영혼으로 찾아라. 피부로, 코로, 들숨과 날숨으로. 부르르 떨고, 찌그리는 느낌. 길을 벗어나 절벽으로 굴러떨어지는 마차를 보면, 그럴 때 떠오르는 느낌. 대충 그런 게 뭉친 것 찾는다. 어렵지 않다.”
‘저게 뭐라는 건데.’
[감이래, 감.]우선 한가지. 저주화는 노툼이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으며, 보통 사람은커녕 100미터 밖에 점자도 읽을 정도로 눈이 좋은 엘프나 나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인식 저해술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둘.
“저주화라니, 저주화라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비록 제국에서 저희 광명의 교세가 태양처럼 밝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다고 칭할 수 없을 만큼의 신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저희와 함께할진대, 어찌 제 눈앞에서, 수도에서 감히 그런 참담한 짓을 벌일 수-”
“-가 있나 본데. 이거, 오다 주운 겁니다.”
“허어어억! 이, 이리 주십시오. 당장 정화 의식을, 봉인을 진행할 사제들을 불러 모으겠-”
“아, 그럼 하는 김에 이것도. 이거랑 이것도.”
툭. 투둑. 툭.
“하, 하나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저주화를 생전 처음 본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반응하는 수도 교구의 주교와 사제들.
교단에서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신성 마법의 범위에 저주화가 들지 않았다는 뜻이며, 아직 저 저주화들이 저주의 촉매로서 기능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셋.
“저주화들을 면밀히 살펴봤네. 이것들은 대학살, 종족전쟁 수준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자라는데 족히 30년은 넘게 걸리는 놈들이지. 태평성대라면 씨앗을 심어도 100년이 넘게 싹조차 틔우지 않을 수 있어. 부정한 것들을 먹고 자라는 놈들인 만큼 주변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뭡니까?”
“성장 속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거야. 불행이 넘쳐 흐르는 빈민가에 심은 것은 빠르게 자랄 것이고, 화목한 가정이 밀집한 곳에 심으면 천천히 자라겠지. 그 성장 기간이 10년은 족히 넘다 보니 하나가 다 자랐다 해도 다른 것은 반도 채 자라지 않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지금 마구잡이로 구해온 것들은 하나같이 완전히 자란 상태로군. 우리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착한 게 아니야. 이미 한참 전에 촉매를 심는 단계는 끝났어.”
“그럼…. 이미 늦었단 말입니까?”
“늦었지. 그것도 십 년은 족히 넘게.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국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야. 대량 학살도, 전염병도, 하다못해 제국이라면 으레 있을법한 반역이나 기타 대죄로 멸문당한 가문도. 의식의 기반이 완성됐는데, 마녀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제국이 잘 굴러가게 놔뒀단 말일세.”
“다른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혹은, 무언가를 두려워 하거나, 방해를 받고 있거나. 이유는 알 수 없지. 확실한 것은 희생제에 필요한 의식은 끝났다는 걸세. 마녀가 무엇을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나로서는 짐작을 하기가 어렵군그래…..”
세 번째. 흑마법사인 알드리치가 흑마법 지식으로 확인한 것.
시간이 급한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손을 쓸 단계가 지났다.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범위에 한해서는, 당장이라도 희생제를 시작할 준비가 끝났다는 것.
제일 큰 의문은, 제국이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교에 빠져 사람을 죽여대는 영주도 없고.
영지 분쟁으로 전쟁을 벌이는 가문도 없고.
보통 역사나 이야기에 나오는 제국보다 오히려 더 평화로운 제국의 모습이 문제였다.
이렇게나 물밑 준비가 끝나도록 마녀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제국이 여전히 제국으로 남아있다는 것.
‘….시발 진짜 뭐지? 일 다 벌여놓고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했나?’
모르겠다. 이번만큼은,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Jokass : 대악마 소환의식아냐? 제국단위 희생제면 그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 스피드 웨건 : 그건 특정한 제물을 필요로 해요. 악마 숭배로 타락한 성직자 다수, 불길한 혜성의 파편, 결정화된 단말마의 편린…. 전부 3월드에서는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라 그럴 가능성은 적어요. 차라리 뮤트 세력과 손을 잡고 동시에 재난을 일으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가정이….
– professor : 그건 아닐거야. 선신의 교단도 여러 갈래가 있는 만큼, 악이라도 그 방향이 다른 법이니까. 뮤트쪽이 수작을 부려 악신의 위를 획득했다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의 목표는 ‘뮤테이션 블러드’ 라는 종족의 생존이야. 신성도 번영과 관련된 것 같고. 언데드 군주의 타락을 받아들인 마녀와는 길이 다르다는 말이지.
– 스피드 웨건 : 잠시 공동의 적,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손을 잡았을 수는 있잖아?
– professor : 그러기엔 수도에 뮤트 피 한 방울조차 느껴지지 않는걸. 뮤트 쪽에는 나만큼이나 의심이 많은 그놈이 있으니까. 그렇게 적의 적으로서 손을 잡았다면 손을 써두지 않았을 리가 없어. 이상할 만큼 제국이 뮤트 청정지대인 것도 그렇고. 오히려 마녀가 뮤트쪽 첩자들, 감염된 인간들을 막아냈다고 봐도 될 것 같아.
———
다른건 몰라도 황무지 최고의 겜박이라 칭할 수 있는 47구역 대화방에서도 답이 안나왔다.
“….일단, 숙소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십 년을 가만히 있었다 한들, 금이 간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잘 수야 없지. 어디로 가겠나?”
“신전. 일단 신전으로 자리를 옮기죠.”
한시가 급한 상황조차 아닌, 이미 타임 리미트가 끝난 상황.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이 기묘한 불안감을 해소할 길이 없었기에. 일행은 먹던 식사도 치우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겨 여관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는 집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따라붙고. 겨울의 차가운 아침 공기에 옷을 동여맨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는 사용인 도시의 풍경.
“….서두르죠.”
저주화가 뿌리내린 도시의 평화로운 모습에, 교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디 그들의 방문이 또 다른 최악의 루트를 향한 방아쇠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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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두말하지 않겠네. 임무를 중지하고, 교단으로 돌아오게.]“그러니까, 정신에 제대로 박혀있으면-!”
“서, 성자님….. 고, 고정하심이…. 으, 으우우우….”
“….쯧.”
교수는 급하게 신성 통신용으로 개조된 고해실의 벽에 구멍을 하나 더 내려다, 맞은편에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사제의 모습에 겨우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사제가 불쌍했다기보단, 그 사제가 통신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명 교단 수도 교구는 만족스러울 만큼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주화의 실체가 확인되자마자 신전을 중심으로 정화 결계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매일 먼지 하나 묻지 않게 관리하던 신물을 모조리 꺼내 괴멸적인 재앙에 대항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과거 언데드 군주의 준동 당시. 성녀를 되찾기 위해 인류 연합군의 선봉에 서며 그때 흘린 피로 만들어진 매뉴얼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할 뿐이었다.
결국, 그날의 준비가 성녀에게 다가가기 위한 준비로 사용되게 됐으니까.
수도 교구는 넘칠 정도로 일을 잘 해주고 있었다. 기민하고 침착한 대응. 심지어 상대가 황실 고위 관계자라는 말을 듣고는 이 모든 준비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이기까지.
겉으로 보면 평소의 신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문을 열어젖히면 드러나는 신성의 요새는 과연 부정한 것들과 최전선에서 싸워온 교단이라는 것을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준비가 끝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교단 본단에 연락해 지원 병력을 받는 것. 다른 일도 아니고 과거, 교단의 가장 뼈아픈 비극이었던 성녀와 관련된 일이니 이번에도 호들갑을 떨며 성기사를 무더기로 지원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 귀가 어두우신 듯하니, 한 번만 더 말씀드리지요. 과거, 교단이 ‘정화’ 했던 타락한 성녀, 메아-마리아가 살아서, 이곳 제국에서 대규모 희생제를 획책하고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당장 성기사와 사제들, 그중에서도 저주받은 것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지원과, 다른 5대 교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똑똑히 들었고, 충분히 숙고했네.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아. 돌아오시게.]후읍, 후우우. 후읍, 후우우.
차분하게. 논리 있게. 분노에 이성을 맡겨서는 안 된다.
노먼 대주교가 갑자기 노망이 들어 이런 개소리를 싸지를 리는 없고.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대주교님, 그럼 한번 그 이유나 들어봅시다. 예측되는 범위가 제국 수도 전역입니다. 발틴 제국의 수도 올 암페리아 하나가 아니라, 그걸 동심원 형태로 둘러싼 대도시 5개 정도의 인구가 살아가는 성하도시와 사용인도시 전역이란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있길래, 위령제에 이름만 불러도 댁의 남은 평생을 사용해도 모자랄 만큼의 사람들을 외면하고 돌아가야 하는지 정말! 너무나도 알고 싶습니다만!”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어서 그렇다네.]대주교의 목소리에는 나만큼이나 깊은 시름이 묻어나고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교단 또한 제국의 동향에 관심을 기울여왔지. 자네가 수도에 들어간 지가 하루인가? 우리는 수십 년을 사제와 신도, 그림자들을 통해 제국을 지켜 봐왔어! 그중 사교에 빠진 이들도 있었고, 잔혹한 취미를 가진 이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대규모 희생제와 저주의 흔적도, 이미 정화된 옛 성녀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지.]“제 동료가….으드득! 그 증인이라잖습니까….”
[신뢰의 문제가 아니야. 제국은 지금도 모든 것이 정상적이라네. 저주화, 텔드마이어 가의 비밀! 이 모든 증거를 합쳐도 아무 문제 없는 제국에서 성전을 벌일 이유는 안 된다는 말이야! 교단의 성기사를 포함한 로드릭 전선은 뮤트가 잠잠해진 틈을 타 점령지의 수복에 나섰네! 이미 그들은 매일 매일 피를 말리는 전투를 치르고 있어! 그런데 잠잠했던 제국에,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증거로 그 모든 영역에 성전의 깃발을 세우고 조사하겠다 하는 순간, 잠자던 사자가 참전하고 말걸세! 아군이 아니라, 말라 죽어가는 우리의 적으로!]현실. 너무나도 냉정하고 날카로워 목구멍에 피 맛마저 느껴지는 현실이다.
광명의 성기사들은 전장에. 자비의 성기사들은 되찾은 성녀의 탐색과 수호를 위해.
용기의 교단은 제국의 국교로서, 제국에 반하는 움직임은 쉽사리 보여주지 않을 것이며. 지혜와 풍요는 연이 없으니.
“그래서…. 지원이 없으니 돌아와라?”
[….과거, 대 성전의 시절. 타락한 성녀를 정화하기 위해 스러져간 순교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네. 그들 중에는 자네처럼 신의 인도를 받았다는 용사도, 기적을 행했다는 성자도 있었어. 그들이 저주에 문드러지고, 스스로 가슴에 칼을 박아넣게 만든 게 그 마녀일세. 한두 명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교단 전체가, 우리뿐만 아니라 5대 교단이 모조리 나서야 할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제국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제기랄….”
[애초에, 우리는 그런 계산 따위를 하고 싶지 않네.]신성 통신 너머. 단단하기가 강철같던 대주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겨우…. 겨우 찾은 빛이란 말일세. 자네는. 성녀를 잃고 수십 년. 암흑과 맹아의 시대를 건너, 이제야 다시 찾은 광명의 작은 빛. 정녕 자네에게 로 하람의 뜻이 닿아있다면,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를 잃을 수 없어. 제발 돌아오게. 거악에 맞서기엔 아직 우리의 빛이 너무나도 미약해….]명령. 통보. 그리고 이어지는 간청.
교수는 그제서야 대주교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딱딱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건 부탁을 거절하기 위함이 아니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마침내 빛이라 확신한 성자를 다시 잃고, 암투와 타협. 고뇌와 정치로 연명하던 과거의 교단으로 돌아갈까 봐.
[….짠하기는 해. 너 죽는 꼴 못 보겠다고 그러는 거기도 하고. 어떻게 할래?]‘….노먼 저 인간은 세상에서 제일 신실한 주제에 성서를 고쳐먹을 정도로 맛탱이가 간 사제이기도 하지. 지원은 글렀다.’
그 뜻을 이해하기에, 교수도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좋습니다. 복귀를 준비하죠.”
[이해해줘서 고맙네. 상황이 조금 정리되고, 자네가 확보한 저주화를 통해 여러 교단의 동의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면 제국의 전역이 저주화에 물들었음을, 신성불가침에 가까운 황제의 영역이 다른 것의 손에 움직이고 있음을 공표할 수 있겠지.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게. 혹시, 돌아오는 길에 호위가 필요한가?]“대주교님이 말한 대로라면. 이미 마녀가 제가 수도에 들어왔음을 파악하고, 관찰하고 있으니 쉽게 놓아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모종의 수작을 부릴 가능성도 있겠죠.”
[….나를 호위하기 위해 남아있는 성기사단을 보내주지. 그레고리오 형제가 갈걸세.]“보고했다시피, 제국 변경에 뮤트 세력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마녀와 뮤트, 양면으로 압박을 받으면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빛의 성찬대를 같이 보내주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성기사들이 업고 간다면 자네랑 만날 때쯤….]“감사합니다. 그럼 믿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본단에서 뵙죠.”
[….잠깐만. 설마 자네-]뚝-
교수는, 주교에게 필요한 말만 다 들은 다음 재빨리 통신을 끊어버렸다. 더 말했다간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진짜 돌아가게?]‘미쳤냐. 냅두면 활화산처럼 터져나갈 게 뻔한데. 교단 말 들었다가 래빗이 그렇게 마녀를 놓쳤는데 여기서 또 들어먹으면 그게 병신이지.’
도저히 말을 들어줄 기미가 안 보여서, 대충 속여넘겼다.
‘기대했던 교단의 전력은 아니지만. 대주교 직속 호위면 전부 고위 성기사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 성찬대면 찬송가랑 광역 버프, 해주, 정화에 특화되어 있는 사제들이니 그쪽도 나름 쓸모있겠고.’
일단 돌아간다고 하면서 심각한 척하면 호위 정도는 보내 주겠지. 그리고 호위로 도착한 놈들이 수도 교구에 도착하면-
‘성자님이요? 이미 수도 안쪽으로 들어가셨는데?’
‘????’
이럼 지들이 어쩌겠어. 나 살리겠다고 온 놈들인데. 따라 들어오겠지 뭐.
‘꼬우면 성자 하라고 해. 내가 평균 신도들만큼만 신성력 줬어도 대주교 말 들어주는 척은 했다.’
통신을 마친 교수는 고해실 문을 박차고 나와 일행이 있는 곳에 합류했다.
“어떻게 됐나?”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성전은 옳은 방향이 아니었어요.”
“설마…. 교단에서 지원 군을 못 보내준다고 한 건가?”
“….예.”
“아니, 그럼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부정적인 결과에 절망하는 일행들. 교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훑었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교단이 저렇게 극명하게 거부를 표한다는 것은 성전이 이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는 뜻이야. 억지로 일으켜도 부정적인 결과만 나오겠지. 저주화가 퍼진 수도. 마녀의 기다림. 아무 문제 없는 제국. 정상. 정상이라….’
정화 결계가 진행 중인 신전. 영혼술사 하나, 주술사 하나. 상인이자 정치, 사교 전문가 하나. 수계 마법사 하나, 그리고 플레이어.
‘알드리치는 정확히 마녀의 대적자 포지션. 노툼은 퀘스트의 진행을 앞당긴 키 맨 포지션이다. 둘은 이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캐릭터가 될 거야. 생각하자. 막다른 길을 만났다면, 확실히 길이 나뉜 곳으로 되돌아가. 지금의 움직임이 시작된 지점. 사건의 시작, 키 아이템은….’
“알드리치, 저주화 좀 봅시다.”
“저기, 교단에서 봉인하는 중이네.”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분주한 사제들을 헤치고 저주화에 다가갔다.
하얀 대리석 제단 위에 가지런히 나열된 저주화들.
사건의 시작이 된 아이템. 단순히 저주의 매개체라는 사실과 수도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눈앞에서 치워버린 물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마리는 이것밖에 없었다.
“노툼. 이 쥐 가죽으로 봉인했던 건 어디서 발견했지?”
“그웍. 처음 찾은 거. 잘 차려입은 수염 늙은이가 정원에 물주던 곳 앞. 여기서 제일 작은 집.”
“이건?”
“조상 귀신이 밀쳐서 굴러 들어간 골목.”
“골목이 있을 정도로 공간 여유가 있는 곳…. 적어도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이군. 그럼 이건?”
“우리 여관 아래.”
“그럼 이건…. 그것보다 더 안쪽이군.”
“어어, 서, 성자님! 손대시면 위험합니다!”
하나, 둘, 셋, 넷. 총 아홉 송이. 교수는 마구잡이로 늘어서 있던 저주화들을 순서대로, 발견한 위치에 따라 나열했다.
그렇게 하자 드러난, 미처 눈치채지 못한 희미한 단서 하나.
“알드리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기가…. 다르군.”
거의 비슷하게 생긴 보랏빛 저주화들. 그러나 약간, 약초에 정통하거나, 나만큼 눈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사용인 도시 외곽에서 여관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며 발견한 저주화일수록, 약간 마르고 생기가 덜한 느낌이 들었다.
“알드리치. 아까 그렇게 말했죠. 의식 자체의 준비는 끝났다. 적어도 여기서 봤을 때는, 끝났다.”
“그, 그렇지.”
“그럼에도 각기 생장 속도가 다른 저주화가 이렇게 다 자랄 때까지, 뜸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라고도 하셨죠. 뭔가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뭔가 두려워하거나….”
“방해를 받고 있거나.”
준비를 끝냈음에도 의식을 시작하지 못하는 마녀.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저주화.
날이 갈수록 혼란을 더해가는 수도 사교계.
“….염병. 숨겨진 길이 아니라, 아예 쥐구멍을 찾아서 뚫으라는 수준이군.”
너무나도 희미하게 감춰져 있던 길이 드러나자, 그 복잡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이, 루실라.”
“네, 넵?”
“어제, 좀 이상했지만 만남 자체는 잘 성사됐다고 했지?”
“그….렇죠?”
“그럼 초대도 몇 개 받았겠네?”
“예. 용사님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 일행 전체가 참석할 수 있는 파티로, 백작 둘에 후작 하나, 후작 부인 주최로 하나 정도….”
“준비해. 제일 끗발 높은 사람 쪽으로.”
“지, 지금이요? 이 상황에?”
“그래. 지금이라서. 이 상황이라. 꼭 참석해야겠다.”
마녀와 제국. 부정한 것에 대항하는데 가장 강력한 아군인 교단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완벽하게 정상 운영 중인 제국.
“저 제국 안에, 뭔가가 마녀의 의식을 방해하고 있다. 우선 그걸 찾아야 해. 교단의 이름으로 설치는 것은 불가능. 우리 힘만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 그럼 답은 하나지.”
플레이어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세력의 도움이 완벽하게 배제된 상황.
플레이어 본인의 무력, 동료들까지 합쳐도 드래곤을 끌고 다니거나 기사단 수십을 썰어버릴 치트와 같은 실력이 아닌 이상 시작도 불가능한 퀘스트.
‘그럼, 결국 저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마녀와 대항할 힘이라는 뜻이겠지.’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말라가는 저주화. 그것이 보여준 단서.
결국, 답은 저 제국의 심장부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저주로 뒤덮인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전대고수나 다름없는 마녀님 눈앞에서 성자라는 이름을 걸고 정치 싸움을 해야한다니. 악취미도 이 정도면 예술이야. 늘 새로워. 빌어먹을 게임’
“지, 진짜 가요? 저 연락 해요?”
교수는 이게 맞나? 하는 표정으로 급히 싸들고 온 짐에서 옷을 꺼내는 루실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가 이용한 방어막이 ‘제국’이라는 이름의 권위라면, 이쪽도 그 안에 스며드는 수밖에.
‘완벽하게 정상’ 운영중인 제국에 ‘완벽하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중심부에 파고드는 것.
결국, 돌고 돌아 정치판이었다. 그 안에 숨어있는 진의를 아느냐, 모르느냐일 뿐.
“그래. 성하도시로 간다.”
교수는 저 멀리. 수도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성.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곳을 눈에 담았다.
뭐가 됐든, 저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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