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75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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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소문이 무성하던 광명의 성자님, 그리고 뭇 젊은 귀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텔드랏에서 온 영애로군요. 이렇게 참석해 파티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스럽게도 1황자 전하를 모시고 있는 벨파티에라고 합니다.”
“하하하. 라투라. 오랜 세월, 인류 문명의 기둥으로 혁혁한 역할을 한 제국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신의 뜻을 견지하는 자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평화와 번영. 이 두 단어에 제국보다 더 어울리는 국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로 하람의 도구, 교수입니다.”
“핫핫핫핫! 이거, 성자님과의 대화를 위해 아침부터 광명의 교전을 읽고 왔는데. 상상하던 것과 많이 다르시군요. 대화가 참 즐겁습니다. 자아, 성자님을 뵙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소개를 해드려도….?”
사교계.
상류층 인사들이 교류하는 장.
귀족의 언어는 우리와 같은 말로 이루어져있지만, 다른 언어를 발한다. 손동작 하나. 작은 한숨, 눈빛 하나에도 작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방금 후덕한 인상의 중년 귀족은 내게 굉장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소문이 무성하던 – 실체가 증명된 적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넘어온 소문만 가득한 허세가 아니냐.’
‘젊은 귀족을 강조 – 나이 어린 귀족들 말고는 그 허무맹랑한 소문에 무게를 두는 이가 없다.’
‘대화를 위해 아침부터 광명의 교전을 읽었다. – 그전에는 읽은 적도 없다. 광명에 관심 없음.’
정도의 뜻이 되는 것이다. 저쪽에서 먼저 다가왔으니 이러한 부정적 의사를 타진할 의도가 있다는 뜻에, 1황자 쪽이라고 밝혔으니 1황자 세력이 내 반응에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 머저리를 내 쪽에서 먼저 내쳤으니, 나도 표면적으로 조금 저자세를 보여달라는 뜻이겠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결국, 저쪽에서는 우릴 1황자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거잖아.]‘그렇다고 황자가 먼저 고개를 숙일 수는 없잖아. 내가 먼저 아이고, 그땐 제가 경황이 없어서 실수했습니다~ 하고 대가리 팍 숙이면 저쪽에서도 아니다, 우리가 사람을 잘못 써서 그랬다. 우리도 미안하다~ 하는 거지. 가벼운 인사치레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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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kass : 제발…. 그냥 다 죽여버려…. 으으…. 개토나와…..
– 노루Drug해요 : 왜. 알아들을 만 한데.
– Jokass : 저게?
– 노루Drug해요 : ㅇㅇ. 왜, 오랜만에 사이 안 좋은 친구를 동창회에서 만나면 그러잖아. ‘어머, 예! 너~무 오랜만이다! 세상에, 살 왜 이렇게 많이 빠졌니?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비결이 뭐야? 내가 아는 방법으로는 이렇게까지 확 빼는게 불가능에 가까운데! 너무 신기하다~’ 같은 거.
– 홀리 : 아아. 그런 맥락이구나.
– 스피드 웨건 : 확실히 비슷한 부분은 있네요.
– takealook : 뭔 소린지 더 모르겠는데요.
– 노루Drug해요 : 센스없긴. ‘너 옛날에는 눈뜨고 못 봐줄 만큼 씹돼지였는데, 너도 제 몸이 부끄러운 줄은 알았구나? 이렇게 죽자고 살 뺀거 보면. 부자연스러운데? 그거 수술이지?’를 돌려 말한 거 아냐. 저 귀족들 대화도 이걸 확장 강화한 수준으로 보면 제법 귀에 들어오네.
– Jokass : 두렵다. 어둠의 걸즈토크.
– 스피드 웨건 : 모두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밖에 없거든요. 저도 병원에 있을 때, 제 뒷담화를 하는 간호사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 DOOMgay : 그런 면에서 우린 좋은 시대를 살고 있지. 불만 있으면 뒷담화를 하는 대신 내가 저놈보다 총을 더 빨리 뽑을 수 있을지만 계산하면 되니. 얼마나 편해.
– takealook : 형왔네? 오늘 일은 끝?
– DOOMgay : 금방 갈거다. 난 이런거 못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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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방에서는 귀족의 언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이드는 그것을 본 내 기억을 읽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어…. 진짜 저런 거야? 귀족들은 다 여성스러워서 저러는 건가?]‘설명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여성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야. 폭력의 사용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다수의 집단 안에서 큰 갈등 없이 우위를 확인하고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이런 암묵적인 관습이 자라나게 된 거지. 직접 폭력은 멸망전, 결투나 영지전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까 끝없이 말로만 다투고, 그런 뒤틀린 암투가 이런 사교계의 음침한 대화로 성장한 거지. 오케이?’
[….그래서. 결국 귀족은 전부 여성스럽다?]‘에라이. 그렇다고 쳐 그럼. 지들 입으로 스스로가 고상하다고 표현하는 인간들이니.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겠네.’
얘기가 잠시 삼천포로 샜지만, 결국 요점은 그거다.
귀족들, 아무 문제없이, 저주나 세뇌의 징후 없이 평소대로 사교활동 중.
1황자 세력, 지극히 귀족다운 방식으로 성자 교수를 대하는 중.
그 어디에도 마녀의 흔적 따위는 없다는 것.
교수는 끝없이 밀려드는 귀족들에게 잠시 기도할 시간이라 핑계대며 테라스로 나왔다. 어차피 연회의 주인공인 1황자는 연회가 한참 무르익을 중반 즈음에나 느지막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때까지는 서로 얼굴 도장 찍는 시간이니 대충 때워도 무방했다.
무시무시한 군상극에서 빠져나와 찬바람이 부는곳으로 가니 익숙한 빨간머리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녀를 상징하는 빨간 드레스에 작은 샹들리에처럼 빛나는 귀걸이, 옅은 화장으로 한껏 피어나는 미모를 뽐낸 그녀였지만.
“….힘드냐?”
“제발 어디서 이단 정황이나 드러났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용사님이 다 불질러버리게.”
그녀의 표정은 술로 밤을 새우고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의 그것에 가까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명성은 있어도 아직 사교계 접점이 없는 나와 달리, 루실라는 사교계에 이미 한참이나 소문이 난데다 어제 여러 만찬을 다니며 미리 얼굴을 익힌 이들도 있는 상황.
첫 만남과 달리, 두 번째 만남은 그 친분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귀족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명분이 되니까. 내가 좀 풍채 넉넉하고 중후한 1황자 귀족무리만 상대했다면, 루실라는 핀볼처럼 이 무리, 저 무리 끌려다니며 얼굴에 경련이 오도록 미소를 짓고 다녔다는 뜻이다.
“용사님은. 뭐 알아낸 거 있어요?”
“별로. 평범한 견제, 평범한 요구, 평범한 인사.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다는 게 오히려 이질적이라는 것 정도.”
“비슷하네요. 평범한 가십, 평범한 치근거림, 평범한 수다. 하필 제 이름 뒤에 붙은 게 ‘전설적인 구혼자’ 라서 좀 변태 같은 놈이 많았던 것 빼고는, 별거 없었어요.”
겉으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불평. 하지만 귓속의 물방울, 메시지 마법을 통해 들리는 그녀의 말은 조금 달랐다.
[전부 가십거리는 맞았지만, 이상할 만큼 용사님에 대한 질문이 많았어요.] [나? 어떤 거. 내가 왜 여기 왔냐, 이런거?] [그런 구체적으로 수상한 질문은 아니구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어떤 귀족을 마음에 두고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게 맞거든요? 아무래도 제 선택권이 꽤나 강한 경우니까, 영애들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가 제 입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들어오는 질문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어요. ‘성자님이랑은 어떻게 만났냐.’ ‘성자님은 평소 어떤 훈련을 하고, 여가시간을 어떤 취미로 보내시냐.’ ‘그 빨간 드레스는 피의 성자라는 성자님의 이명에 맞춘 커플 드레스냐.’ 같은, 사소하지만 좀…. 수상쩍은 질문.] [….역시. 마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건가. 내 경로, 내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시간의 거취, 너와의 관계는 언제, 어디서부터 알고 파고들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이지. 텔드랏의 구혼자에 대한 소문은 꽤 오래됐으니까.] [….그럼, 1황자의 모친인 황후님이 마녀인 걸까요?] [가능성만 열어둬, 가능성만. 아직 지금 들고있는 것 가지고 그림을 판단하기엔 끼워맞출 조각이 한참 모자라니까. 그 영애들, 영식들 이름은 다 적어놓고.] [예.]일행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예법이나 사교계 화술에 해박한 나와 루실라는 직접적으로 귀족을 상대. 알드리치와 오트만은 사회적 만능 실드, ‘마법사같은 행동’ 으로 무장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뒤, 연회장 내에 저주나 마법의 흔적이 없는지 실시간으로 감시. 노툼과 이드라실은-
[그웍. 역시 있다. 아랫 도시랑 비슷한 간격. 비슷한 양.] [일반적인 식물이라고 볼 순 없지만, 일단 제 눈에는 사용인 도시에 있던 것보다 더 오래 자란 것으로 보입니다. 이파리가 마른 정도도 외곽보다 더 한 것 같군요. 확실히 수도 중심에 다가갈수록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귀족 연회에 익숙하지 않은 행동- 이드라실의 경우 엘프다운 인간 혐오, 노툼의 경우 트롤 특유의 둔한 행동 -을 연기해 연회장에서 쫓겨난 뒤, 그대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저주화 탐색 및 직접적인 저주의 흔적 확인. 식물에 조예가 깊은 이드라실과 주술을 타고난 노툼은 이 일에 가장 걸맞은 사람이었다.
모든 작전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안정적으로 한발 한발 목표에 다가가고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귀족들은 견제를 하는 한편 그들의 무리에 나를 합류하려 시키고 있었고, 루실라는 젊은 귀족들의 무수한 공세에 시달리며, 마법사팀도, 노툼 이드라실 팀도 별 탈 없이 그들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해.] [….그렇죠?] [그래. 네가 어제 좀 이상하다고 했던 말,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뭐라 설명 못 하겠는데…. 여기 전체가 좀…. 이상해. 뭐랄까. 범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연극에 들어온 느낌? 모두가 배우인데, 우리만 진짜 민간인으로 끼어든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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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이네]하이드의 한마디가, 지금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이질적이다. 마구잡이로 던진 퍼즐이 저들끼리 맞춰졌고, 대충 던진 다트 열 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앙에 틀어박힌 것처럼.
오늘의 작전은 당연히 임시 방편으로 대충 짜온 것이다. 정확한 세부 계획 없이 큼지막한 목표만 말해둔 것도 당연히 그 사이에 변수가 있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가령, 이제 막 1황자 세력에 들어올 것 같은 귀족정치 신참, 그런 주제에 교단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은 성자에게 미리 친분을 쌓기 위해 접근하는 귀족이라던가.
정략 결혼을 앞둔 영애, 그것도 높은 선택권을 가진 귀족 여성에게 으레 따라붙는, ‘곱게 자라서 비싸게 팔려간다’ 는 식의 질투, 험담 섞인 시선과 하인들을 통한 소소한 괴롭힘이라거나.
트롤과 엘프 둘이 귀족 도시를 돌아다니는, 이질적인 현장에 일단 종족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며 길을 가로막는 경비병이라거나.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각 인물별로 다섯 가지 이상의 변수와 트러블이 떠오르는데. 그중 어떤 것도 발생하지 않고, 그냥 ‘귀족 사회는 이런 식이니, 이렇게 가보자-’ 했던 상황대로 부드럽게 작전이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귀족의 얼굴이 가면에 불과하다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가면을 넘어, 거울에 비친 허상 같아.’
그 어느 쪽에도 진짜 ‘귀족다움’은 없었다. 독하고 처절할 정도로 탐욕스럽고, 생기 넘치는 그 강한 존재감 따위는 없이. 뭔가 은밀한 무언가에 휘둘리고,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것 뿐이었다.
어떤 거대한 힘이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허나, 체스라면 최소한 그 말이 움직이는 방향과, 그 손이 가고자 하는 목표라도 보이는 법인데.
제자리에 머물기만 하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드리치에게 눈빛을 보냈지만 여전히 아무런 징후가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저주도 아니라는 뜻.
그 기묘한 분위기에 루실라는 당장이라도 발코니를 넘어 도망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독살스러운 부인 수십 명이 제 모든 것을 모욕하고 헐뜯어도 똑바로 마주할 자신은 있어요. 꿈에도 나온 적 없는 괴물이 마구 뛰쳐나와도 용사님과 우리 일행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으…. 무서워요. 도저히 제 상식으로 제단할 수 없어요. 도대체 제국 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저주도, 마법도 아니라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진정해.] [더, 더 무서운 건…. 제가 저도 모르게 그들의 분위기에 휘말렸다는 거에요! 나, 난 분명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세 제국과 텔드랏의 교류나 가문의 상단 이야기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어요. 마치 내가, 내가 녹아서 없어지는 것만 같은…..] [쉬이이. 괜찮아.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교단에서 준 성물 잘 가지고 있지?] [….예.]애써 울음을 삼키는 루실라의 모습에 교수는 바르르 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연회장 밖으로 이끌었다. 루실라는 수완이 대단하긴 하지만, 결국 평범한 귀족 소녀. 아직 이곳에 떠도는 무엇이 이런 이질감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실라에게까지 그것이 스며들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용사님…. 지금 이렇게 나가면 여기 귀족들에게 좋지 못한 인식을 줄거에요.”
“아냐. 내가 볼 때, 이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넌 이 길로 오트만, 알드리치와 함께 밖에서 조사중인 두사람에게 합류해.”
루실라는 벌벌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을 살피고 있던 오트만과 알드리치가 루실라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용사님은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주머니에 넣어둔 저주화를 만지작거리던 교수는, 일행을 모두 밖으로 보낸 다음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하게 쓰일 줄 몰랐으며. 성하도시의 귀족들에 비하면 100배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귀족 하나에게 메시지 마법을 걸었다.
“앗 차거! 뭐야, 갑자기 웬 물이….”
[케플랙 나이딤. 이 목소리를 기억할지 모르겠군.]“그, 그림자님?”
첫날 우리 여관을 방문했던 오만하고 젊은 귀족 남성. 케플랙 나이딤.
“어, 어디에 계십니까? 임무라면 이제 막 하려던 참이-”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해도 좋아.]그말에 극도로 부자연스럽게 굳어버린 나이딤을 보며, 교수는 긴장으로 마른 입을 살짝 핥았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방법을 좀 바꿔볼 생각이었다.
‘눈앞이 전부 이질적인 것투성이라면. 이질적이지 않은 테두리까지 시야를 확장해야지.’
성하도시. 이질적인 수준으로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이한 귀족들.
사용인 도시. 첫날. 견제에 가까운 버림패 던지기. 정석이며, 귀족적인 방법.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황위 쟁탈전이라는 불꽃 튀는 경쟁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다. 내가 부정적으로 다가갈 때 상대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그대로 상대에게 빼앗기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평상시에나 할법한 접근법.
하우누만. 폭풍의 언덕이 뮤트에게 습격받았다는 소식이 퍼졌음에도, 평소와 같이 연례행사를 벌이는 모습. 그에 비해 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초원 부족들.
생각해보면 이 성하도시만 평소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산맥너머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해도 몇 개 국가가 사활을 걸고 뮤트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당장 변경백 영지와 폭풍의 언덕처럼 그 여파가 제국에까지 넘어오고 있는데 바로 옆 영지로 넘어오기만 해도, 너무 평온했던 것이다.
교수는 이런 불가해한 현상을 일으키는 힘을 하나 알고 있었다.
[케플랙 나이딤. 지금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황제 만세’를 세 번 외치도록.]“지, 지금 여기- 허읍!”
[그래. 대답하지 말고. 당장. 1황자 전하를 위한 일이다.]나이딤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둘러싼 귀족들을 살피는 가운데, 주머니속 저주화를 잡은 교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화,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충실한 멍청이 나이딤이 고상한 귀족들 사이에서 만세 삼창을 외치는 순간.
덜컥.
누군가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허깨비처럼 평온함을 가장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이질적인 ‘이상 귀족’의 모습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 또다른 이질적임으로.
짝짝짝짝.
“기억에…. 있는 얼굴이군. 케플랙 가문의 아들이었던 것 같은데.”
“아, 아하하하…. 그, 그게, 저…. 갑자기 황제폐하에 대한 존경심이….”
“이해하네. 그럴 수 있지. 황제 폐하야 말로 이 나라의 근간이 아닌가?”
“멋졌어요, 나이딤 영식!”
“어…. 가, 감사…. 합니다?”
뜬금없는 외침에 한껏 창피를 당할 것이라 여겼지만, 나이딤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호의적인 반응과.
주머니속에서 빠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저주화.
‘논리와 이성의 경계를 벗어난 힘…. 신성!’
그 말라가는 이파리가 말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뒤바뀐 분위기. 이것이, 이 실체없는 무형의 것들이 마녀의 의식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그냥 체스가 아니라, 체스말로 하는 체커 게임이었어. 말들은 [제국의 안녕]을 위해 각자 게임을 진행하지만, 그 흑과 백은 마구잡이로 뒤섞이는 중이었던 거야!’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선을 뒤로 물리자 금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마녀. 그 대척점은…. 제국 그 자체.
황제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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