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80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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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만, 오트만! 들려요?”
[…-직! 그 깊-….일!]“여보세요! 오트만! 나 오러 썼다니까!!! 저기요, 마법사 팀!”
[……..]“제기랄. 먹통이네.”
밖에 있을 때도 오트만이 마법 방해 전파가 어쩌고 했는데, 황후궁 안으로 들어오니 아예 의사소통할 수 없을 정도로 끊겨버렸다. 그쪽도 황비궁에 들어간 다음 그렇게 됐으니, 아마 궁 자체에 설치된 무언가가 메시지 마법을 끊었다고 봐도 좋겠지.
교수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장식된 황후궁 내부를 둘러보며 힘겹게 가이낙스를 끌었다.
….기묘한 광경이다.
사락사락사락사락
뽀득뽀득뽀득-
1황자나 나나 몸이 만신창이인 상황이라 둘이 지나간 자리엔 핏자국이 흥건했고,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나온 사용인들이 멍한 눈으로 그 길게 늘어진 핏자국을 닦으며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의복이. 더러우십니다. 황후께서 언짢아하십니다.”
“전하. 편지가 도착했으니 확인을. 확인을 해주서야 합니다.”
기절한 채로 질질 끌려가는 황자를 무릎걸음으로 따라가며 우그러진 피투성이 갑옷을 닦아대는 메이드.
대답 없는 황자에게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편지 몇 장을 들이미는 집사.
“차 맛이 일품이구나. 아아, 황후궁의 수준에 맞는 접대라. 역시 귀인을 알아 모시는 것인가.”
“제국이여영원하라제국이여영원하라황자의공신이되면우리가문은가장든든한반상위에오르리라제국이여영원하라제국이여-”
빈 찻잔을 홀짝거리며 감탄하는 중년. 대리석 바닥을 핥으며 쉼 없이 중얼거리는 노인.
성하도시의 귀족들보다 더 넋이 나간 1황자 측 귀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저마다의 환상을 토로하고 있었다.
교수는, 힘겹게 그 사이를 지나 이국적인 문양이 음각된 계단을 올랐다.
연회를 위한 홀을 거치면. 그곳이 한눈에 보이면서도 분리된 곳.
거대한 궁전의 층 하나를 통째로 터놓은 알현실.
줄지어 늘어선 제국식 기둥 사이로 붉은 융단이 길을 만들었으며, 그 끝에 화려한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하나는 제국 모든 것의 주인인 황제를 위한 자리.
나머지 하나는, 그 반려이자 국모. 황자의 친어미이며 이 궁전의 주인인 이를 위한 것.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손님이 찾아올 줄이야.”
황후, 알테나 티크 마트레아. 한때 여인의 몸으로 국가 단위 부족의 수장으로 자리했으며, 그 부족과 함께 황제의 품에 안긴 여인.
북방 민족 특유의 검은 머리칼과 황족을 상징하는 금빛 드레스를 입은 황후는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임에도 그 아름다움이 사그라들지 않고 남아있었다.
“….들라. 내 특별히, 그대의 알현을 허할 터이니.”
끼이이익- 쾅.
알현실의 문이 닫히고, 마침내 그녀의 눈이 아래를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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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평소 이런 독대를 즐겼는지, 알현을 허한다는 말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황후의 몸종과 하인들. 닫힌 문 안에 침묵이 흘렀고, 범상치 않은 황후의 기도는 마주한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발끝에 힘을 주게 만들었다.
여전히 한 쪽 옆구리에는 가이낙스의 머리를 끼운 채, 교수는 주머니를 더듬었다.
‘저주화는 반응하지 않는다.’
일단 1차적인 검증은 통과. 허나 마녀는 신을 모시는 성직자들의 검증에서도 빠져나간 전력이 있는 자. 단순히 저주화가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안심하긴 일렀다.
교수의 손이 주머니 더 안쪽.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한 안배를 더듬어 찾던 순간.
“….어미로서 보고 있기 거북하니. 그 아이는 그만 놓아주는 게 어떤가.”
조용히 둘을 바라보던 황후의 목소리가 그 앞에 내려앉았다.
“….어려운 부탁을 하시는군요. 아쉽게도, 제 몰골이 황족을 알현하기는커녕 당장 묏자리를 알아봐야 할 정도인지라.”
“아니라.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거늘. 폐하의 땅을 파헤치는 그 굉음과 빛을 보지 못하였겠느냐.”
스르륵.
또각. 또각. 또각. 사박.
황후는 화려한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기품있게 황자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 눈빛에 담긴 담대함. 그 사이에서 일렁이는 작은 감정. 흔들림. 체념.
‘….아니다. 이 사람이 아니야.’
마주한 순간, 뇌리 한 켠에 ‘답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이 여자는 아니다. 뭐라 확언할 증거는 없지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박.
마침내, 힘에 부쳐 주저앉은 내가 올려봐야 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황후. 당연한 것을 요구하듯 허리를 숙이며 다가오는 여인의 두 손에 교수는 옥죄고 있던 황자의 머리를 풀어주고 말았다.
여염집 아낙처럼 바닥에 앉은 황후의 드레스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피로 얼룩진 아들의 투구를 벗긴 어미는 그 작은 숨을 감싸듯, 지친 머리를 무릎에 뉘었다.
“그래…. 내 아들이. 가이낙스가 패했구나.”
황후궁 안에 있었지만, 그 선명한 황금빛은 황후궁의 벽을 넘어설 정도로 휘황했기에 그녀 또한 가이낙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젊은 날, 그녀를 홀린 당찬 사내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빛이었기에. 모시는 이 하나, 말 한마디 없이 그 존재만으로 스스로가 제국의 주인임을 증명한 그 남자와 같은 빛이었기에.
허나, 아들은 눈앞의 사내의 손에 패하여 쓰러졌고. 그는 무언가를 찾아 그녀의 앞에 당도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 얼굴이로구나.”
“….”
“부외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겠지. 안다. 나 또한 그랬으니. 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묘하고, 복잡한 것으로 가득 찬 나라이니.”
교수는, 황후의 말에 그녀가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제국 북부. 제국의 영역 밖에서 온 황후. 그와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제국민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 영혼 깊숙한 곳에 제국과 황제에 대한 숭상이 없는 자.
“아쉬워 보이지는…. 않아 보이십니다.”
“무엇을 아쉬워하리. 이렇게 됐다면, 그리 정해져 있던 것일 뿐.”
“정해져 있단 말은….?”
“제국. 제국이 그것을 원한다는 뜻이니라.”
황자의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던 황후는, 그 깊은 눈으로 교수를 마주하였다.
“너희가 제국의 경계를 넘어 마주한 것이 무엇이더냐.”
“….블루 라인을 넘어, 변경백 영지로 들어섰습니다.”
“그래. 거기서 무엇을 봤느냐.”
“….뮤트와 언데드.”
“그 다음. 폭풍의 언덕에서는.”
“챔버 메이드와…. 네임드들.”
“그리고. 하우누만을 거쳐, 제국을 좀먹는 이들을 단죄하고, 또 이렇게 수도까지 오게 되었구나. 그리고, 제위에 가장 가까운 내 아들을 쓰러뜨렸지.”
“….”
“내 발자취를 좇아가면 모두 너를 위한 일이었으나, 또한 제국을 위한 일이었구나. 이 모든 게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정녕 네가 이 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순수하게. 오직 네 의지로 움직였다, 그리 여기느냐.”
교수는 황후의 의미심장한 말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조종을 당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마녀인가? 아니면, 황제?
‘하이드, 뭔가 내 머릿속에 파고들어서 일행의 진로를 뒤바꾼 흔적이 있어?’
[전혀. 내가 시뻘겋게 눈을 뜨고 있는데 그런 걸 놓칠 리가 있냐.]절대로 말도 안 된다는 듯 강하게 부정하는 하이드. 저 녀석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겠지. 하지만 황후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기엔,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의 여정이 너무…. 편의적이었다.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과 의심 속에, 황후의 낮은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후후후. 내 그 눈빛도 아니라. 나 또한 그랬지. 제국의 국모로, 폐하의 반려로 이 땅에서 살아오며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지. 걱정하지 말아라. 그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이 제국 자체의 의지이니라.”
“제국 자체의 의지라는 것은….”
“그 말대로. 이 드넓은 땅이, 너의 길을 인도했다는 뜻이지.”
황후의 입에서 꿈꾸듯, 체념하듯. 제국의 비사가 흘러나왔다.
“나의 아들. 패도를 상징하는 1황자 가이낙스는 제국이 영토를 넓히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길 원하는 이들의 의지를. ”
“마법과 사무, 행정관을 틀어쥔 1황녀의 힘은 제국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지금 이 성세를 유지하길, 갈등이 없길 원하는 이들의 의지를.”
“여러 지방 귀족들의 권세를 등에 업은 3황자는 제국 내부의 갈등을 원하고, 그 사이에서 제국의 힘을 손에 넣길 원하는 이들의 의지를.”
“그리고, 2황자. 제국의 치부와 손을 맞잡은 황자는, 제국의 어둠 속. 이 나라가 무너지고, 조각나 사라지길 원하는 제국의 적. 침입자. 첩자와 그릇된 무리의 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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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 나누어진 제국의 힘. 그것은 이 제국 모든 신민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나 다름 없니라. 황족이란 그 능력도, 태생도. 그 행실마저 이 제국 전체에 흐르는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 가이낙스가 패했다면, 제국. 이 ‘발틴 제국’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생물이 그것을 원했다 여길 수밖에 없겠지.”
그렇기에 꿈꾼다. 숫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제국의 신민. 그들 모두에게서 비롯한 힘이 가장 정통한 형태로. 황제에 가까운 형태로 가이낙스에게 깃들었기에.
그렇기에 체념한다. 그녀의 아들이 누군가의 손에 꺾였다면, 그 또한 이 거대한 제국의 의지라 여겼기에.
‘이게, 5세기에 걸쳐 태평성대를 유지한 제국의 저력….’
신이되, 형체도. 본질도. 그 믿음을 위한 경전조차 없는 신.
그 성세가 유지되는 한 반역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신민. 그들 중 반수 이상이 전쟁과 폭력을 원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렇게 평화가 유지되고, 제국 사람들은 더욱이 평화를 바라며, 다시 그 기원은 강화되어 제국의 평화와 안녕으로 이어진다.
영지전이 있었다면 두 귀족의 영지가 하나 되는 것이 제국의 부강을 위한 길이고, 반역이 있다면 그 가문이 사라지는 것이 제국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스스로 강화하며, 증식하는 국가.
그것이, 황제와 제국에 얽힌 거대한 힘의 정체였다.
“그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제가 1황자를 꺾었단 말입니까. 제국의 신민도, 귀족조차 아닌 외부인인 제가. 또 지금의 혼란은 정도를 벗어났는데, 그것 또한 제국의 의지가 깃들었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이….”
“그래. 이상한 일이지. 이미 제국의 모든 신민들의 기원은 황족의 숫자만큼 나뉘어 깃들었거늘. 무엇이, 어떤 의지가 너를 이 수도로 이끌어 그것을 가로지르고 있을까…. 그것만큼은, 나도 알고 싶구나.”
강대한 힘에 홀려, 제국의 운명에 휩쓸린 여인.
황후, 알테나 티크 마트레아는 한 때 강대한 무리를 이끌던 철혈의 여인조차 체념하게 만든 그 운명의 폭풍을 가르며 나타난 기묘한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 또한 이상함을 느꼈기에. 봄을 여물게 하는 서리가 됐어야 할 바람이, 폭풍으로. 눈보라로. 제국의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휘몰아치는 사나운 겨울로 자라났기에.
자그락.
그녀는,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작은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교수에게 내밀었다.
“이건….”
“황궁으로 가거라. 본디 황위 쟁탈전 중 그 누구도. 황족마저 폐하가 기거하는 황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그대라면. 제국의 패도(霸道)를 꺾은 그대라면…. 그 수라장을 뚫고 폐하의 곁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
황후가 건넨 장식. 작은 사자머리 장식은 황궁 곳곳에 설치된 함정, 고대마법, 주술 등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주는 황족을 위한 물건이었다.
“가거라. 황제 폐하께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가서 의문을 풀고, 네 할 일을 하거라.”
교수는 그녀의 눈에 서려 있는 안도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사나운 폭풍의 중심부에서 그녀의 아들이 벗어났음을. 제국의 거대한 손아귀가, 그녀의 혈육을 움켜쥐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눈빛.
한 때 철혈이라 불리던 여인은 이곳에 없었다. 그저, 마침내 그 탄생과 함께 빚어진 운명에서 벗어난 아들을 끌어안은 여인이 있을 뿐.
교수는, 그런 황후의 손에서 황족의 상징을 건네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하거라. 거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배필인 나와 황비들조차. 황제 폐하의 존안을 뵌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무언가…. 황궁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이야.”
마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황후조차 느낄 정도의 이질감.
교수는, 황후궁의 알현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그 둘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황후는 조용히, 오래전, 몇십 년 전 마지막으로 어린 아들의 머리맡에서 북방의 오래된 전설을 읊어줬을 때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다 끝났다. 이제야, 이제서야. 다 끝났구나, 가이낙스. 내 아들아.”
“….푸후, 허윽, 으…. 어머….니…. 저는…. 제국은 저를….”
“그만하자꾸나. 여기까지였던 것이야. 그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여겼으나…. 하늘이 도우셨구나. 이제, 1황자가 아니라 가이낙스로 사는 것이다. 가이낙스 아그단. 마침내…. 이름이 그저 이름으로 불리는 삶이 돌아온 것이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들과, 바닥에 주저앉아 그런 다 큰 아들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늙은 어머니.
날 때부터 황제가 되기 위한 운명이 키워냈으며, 그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것으로 주박에서 벗어난 황자.
“….”
교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은 뒤, 오러의 파편에 흉하게 변한 황후궁을 빠져나왔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황궁.
수도에 넘실거리는 모든 황금빛 기운의 기원. 제국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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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 암페리아 외곽. 점점 광기가 퍼져 나가며 오래전 텔드 마이어의 악몽이 재현되기 시작한 성하도시.
꽈아악-
주변에서 가장 권세가 높은 귀족이며, 그만큼 크고 높은 저택을 소유한 귀족. 드골 공작 저택의 첨탑 위에 온갖 보따리를 싸맨 소녀가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나는…. 나는 루실라 아에드란! 장차 골드 가이저 대상단을 이끌 여걸이자, 세계만방에 황금의 율법을 세워 아에드란가의 명성을 퍼트릴 사람이야! 우악! 우아아악!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흔들리는 눈빛, 한 발짝이라도 미끄러지면 그대로 추락사할 좁은 첨탑 옥상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루실라는 자신의 뺨을 세차게 치며 두려움을 잊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루실라 아에드란. 그녀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비록 이드라실이 그녀를 숨겨준 구석, 그 바로 옆 건물에 쥐의 사체를 마구 짓이기고, 그걸 청소하길 반복하는 메이드가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녀를 숨겨준 정령술은 비전문가인 그녀가 봐도 훌륭한 수준으로 보였기 때문에, 평상시의 그녀였다면 나머지 일행이 이 모든 일을 끝낼 때까지 쥐죽은 듯 그곳에 숨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훙훙훙훙- 덜컥!
“조, 좋아! 걸렸다!”
묘한 충동. 알 수 없는 이끌림. 그리고, 밤하늘에 번쩍이는 오러의 빛과 전투의 소음, 그것에서 자라난 일행들에 대한 걱정.
“….아에드란은, 자신의 거래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분명, 있어. 저 성벽 너머에!”
그리고, 스스로도 이상하다 여길 정도의 확신. 옅은 금빛 일렁임과 함께 다가온 확신에.
루실라는, 그 높은 첨탑에서 부러진 촛대로 만든 밧줄 갈고리를 성벽을 향해 던지게 된 것이다.
덜컥.
사방에 오러가 빗발치던 전투는 드워프의 역작, 올 암페리아의 성벽마저 훼손시켰고.
마침 루실라가 올라온 첨탑에서 가까운 곳이 무너지는 바람에 첨탑이 성벽보다 더 높은 지점이 생긴 참이었다.
기묘한 우연. 기묘한 충동. 마치 그녀를 저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듯한 우연이 겹친 결과.
“꽃꽂이보다 꽃을 파는 걸 배웠고, 마차보다 상단 수레에 익숙한 게 나, 루실라 아에드란이다! 할 수 있어…. 다들 나를 전설이니 뭐니 부르는데, 까짓거, 제대로 전설이 되어 주겠어어어어-!”
부우웅-!
광기와 살육으로 물들어가는 성하도시, 그 휩쓸린 자들의 머리 위로.
수도의 모든 이들이, 우스갯소리일지언정 ‘전설’이라 부르던 소녀의 그림자가. 그 새된 비명과 함께 올 암페리아 내부로 날아들었다.
너무나도 우연히, 1황자의 기사들이 다른 기사를 정리해 안전해진 그곳으로.
황궁으로 향하는 통로와 맞붙은 곳으로.
성벽 내부. 또 다른 첨탑 위에서 마법사 일행을 찾던 엘프는. 만신창이가 된 성자를 따라,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의 대상을 따라 황궁으로.
“어푸푸풉! 오, 오트만! 이러다 우리가 죽겠네!”
“자네 발로 근위 기사단보다 빨리 달리거나, 네리아 양을 불러 나를 도와준다면 그 불평을 들어주지!”
“푸훕, 넬은, 마녀를 만났을 때를, 위해-”
“그럼 닥치고 물살에 몸을 맡기시게! 근위 기사단은 황궁에 접근하는 모든 이들을 베어버릴 생각 같으니! 저 노툼도 잘만 떠내려가는데 자네는 왜 이렇게-”
“노툼은 트롤이라 지방 덩어리잖나! 나는 뼈밖에 없고!”
“그우, 푸후! 실례다. 스승. 노툼은 충분히 근육이 있는 아름다운 암컷이다.”
“아, 알았어! 알- 푸흡! 알았으니까 잡아다오! 나, 나는 수영을-그르르륽!”
푸화아악!
겁에 질려 덜덜 떠는 꽃의 황비와 조우한 뒤, 2황자의 어머니인 테레누아 황비가 있는 궁전으로 가던 중.
근위 기사단에게 걸려 좁은 복도를 가득 채운 오트만의 물과 함께 휩쓸려 도주 중인 오트만, 알드리치, 노툼.
우연과 필연으로 수도에 모여든 이들이, 어떤 의지에 이끌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황궁. 이 모든 힘과 사건의 시발점이며, 음산하고 휘황한 기운이 몰아치는 곳으로.
어떤 거대한 의지가 만들어낸 각자의 길을 따라.
황제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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