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84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38)
****
황성 외부. 거인의 다리.
“….는 어디 가고, 얘들은 왜 이러냐?”
….였던 것.
교수는 당장 황성에서 나오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얌전하게 두 손으로 다리를 만들던 거인들이 깊은 절벽에서 기어 올라와 있는 것이다.
당장 저 무저갱 같은 대형 해자를 넘어갈 것만 해도 곤혹스러웠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너머에 있었다.
쿠르르르…. 득, 득득, 드드드드드-!
꽈아아앙!
거대한 석상들이 얌전히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뽑아 들고, 수도를 파괴하고 있었으며,
쩌어어엉-!
“아아아, 나의 서원은, 나의 검은 어디로…. 어디로!”
“부러지지 않으리라, 그 끝은 충정에 닿음을 믿어 의심치 말라아아아!”
“그 앞길을 비켜라! 폐하의 곁으로 가야 한다, 막아서는 자를 모조리 베어서라도 갈 것이다!”
“나, 나는 이렇게 스러지지 않으리라! 쥐는 이 없는 검으로, 녹과 먼지 속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거인은 물론, 주변의 모든 것과 생사결을 벌이는 기사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명확했다. 황제의 죽음. 비록 그 죽음이 촉매 – 시전 – 대상 으로 이어지는 저주의 고리 중 하나를 끊었다지만, 그 대신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스거억-!
“황제 폐하의 곁으로! 설령 그곳이 생의 너머에 있는 곳이라 해도! 끝까지 기사로서 따라가리라!”
본능적으로 황제의 죽음을 알았기에, 그를 따르려는 충의. 기사로서 끝까지 검을 놓지 않고 전장에서 죽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 그것이 저주에 의해 완전히 뒤틀려, 누구든 좋으니 마구 전투를 벌이며 검을 든 채 죽고자 하는 기사들이 되었으며.
쿠우우우-
콰과앙!
뭔지 모를 주술에 묶여있던 고대 골렘들은 수정으로 만든 눈에 보랏빛 안광을 줄줄 흘리며 그나마 남아있는 황제의 힘, 마녀가 흡수한 황제의 힘에 따르는 인형이 되어있었다.
웬만한 귀족가 저택만 한 방패가 도시를 휩쓸고, 또 그걸 막아낼 정도로 무지막지한 기사들이 철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오는 광경은 그 사이를 뚫고 마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지금 수도 상황이 보통 사람은 끽 소리도 못 하고 죽어 나갈 지옥도라지만, 저건 정도를 넘었다고. 지금 저 파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다진 고기가 되어버릴 거란 말이다.
“….야, 하이드. 황제 앞에 박혀있는 동전, 슬쩍 뒤집어놓고 올까? 한 번만 물러 달라고 하자.”
[….안 될 것 같지?]“절대. 만전 상태라도 저길 곱게 뚫고 갈 수는 없겠는데, 우리 지금 연료통이 텅텅 비었잖아.”
괜히 분위기 타서 죽은 황제한테 물어본다고 한 게 실수였다. 개쩌는 황제도 죽으면 그냥 시첸데 운명 같은 거 알 게 뭐야.
저 꼬라지를 보니 다음 대 황제님을 뽑고, 황제의 죽음과 함께 흩어진 힘을 호로록 빨아들인 그분이 쑥쑥 밀어주는 그런 스토리가 분명했다. 내가 저걸 다 밀고 나가야 할 리가 없어. 암, 아무리 GG가 거지 같은 게임이라지만, 연전에 연전을 거듭해서 소모될 대로 소모된 플레이어한테 그보다 더한 전투를 혼자 더 하도록 강요할 리가 없다고. 조력자의 도움이 없는 한….
“…..수야! 교수야아아아!!!!”
“아이고 교수 이놈아!”
“그우우우우! 찾았다! 두 발 달린 재난!”
….썅.
그렇게 당장 죽은 황제 앞으로 복귀하려던 찰나, 저 멀리 절벽 건너에 익숙한 인영 셋이 보였다.
오트만, 알드리치, 노툼.
먼저 꽃의 황비 궁으로 갔던 마법, 저주, 주술사 트리오였다.
좀 미묘하게 반갑긴 했지만. 어쨌든 앞이 깜깜하던 찰나에 타이밍 좋게 도착한 동료들이니.
사방에 저주와 오러가 몰아치는 판국이라 메시지 같은 섬세한 마법은 죄 흩어져 버려서 결국 손을 입에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아아아! 그것도 저 난리 통을 뚫고!!!”
“우리도오오! 쫓겨왔지이이이! 황성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어! 넘어가려는데에!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더니 기사들이 더 미쳐 날뛰고 있어서 이제야 한숨 돌렸다아!!! 너는 그쪽으로 어떻게 넘어갔느냐아아!”
“무너지기 전에!!! 그리고 황성 쪽 일은 다 끝났으니 올 필요 없습니다아아아! 그쪽으로 건너가게 물 좀 이어 주시죠오오오!”
황성 쪽 일은 다 끝났다는 말에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세 사람. 교수가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트롤의 얼굴도 하얘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사이, 오트만이 만든 물의 다리가 절벽을 건너 그의 앞에 도착했다. 보통 사람이 건널 정도로 튼튼하진 않지만, 수계 마법사라면 충분히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찰팍!
“휴우우!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찰나에- 악!”
“반가워? 반가워 이놈아? 이런 종마와 붙어먹은 노새 같은 놈이!”
“미쳐도, 곱게 미쳐달라고, 그렇게 부탁했거늘, 황제를 왜 죽여! 왜! 왜 이놈아! 이제 어쩔 거야!”
“악, 으악! 자, 잠깐! 잠깐만요!”
퍽! 퍽! 팍! 짜악!
반가운 마음에 세 사람에게 달려간 교수를 맞이한 것은 온종일 기사들에게 쫓겨 다니며 한이 맺힌 마법사들의 주먹세례였다.
꽃의 황비의 거처를 떠난 이후로 계속, 늙은 몸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달리던 이들이 겨우 기사를 따돌릴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저 고대 골렘들이 기사들을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린 덕분이지만. 그 대신 기사들과 골렘의 전투 사이에 낑겨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찰나에 그 원흉으로 보이는, 그들이 경험한 큰 사건에 있어 대부분의 원흉이었던 교수가 무너진 황제궁에서 황제의 유품으로 보이는 물건까지 들고 나타나자, 확신과 함께 그간의 설움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니놈이 저쪽에 있을 때부터 설마 했어! 이제 어쩔 것이냐! 어쩔 거야! 황제가 죽는 바람에 수도 전체가 미쳐 날뛰고 있잖나!”
“힘겹게 마녀의 손에서 제국을 지키던 황제를 죽이고 그 재보를 갈무리하다니! 이제 수도는 통제 불능이 되어버렸네! 아니, 자네 손에 들린 그 왕홀을 보면 눈이 뒤집혀 우리에게 달려들겠지!”
“아이구우! 안 죽였어! 내가 안 죽였다니까요!”
“….자네가 안 했다고?”
“예! 누굴 만나는 놈은 다 죽이는 사이코패스로 아나!”
“그럼…. 황제가 아직 살아있나?”
“어…. 아뇨?”
“자네가 가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나?”
“그것도 아니긴 한데….”
“그럼,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에게 간단히 설명해줄 수 있나?”
“음…. 저랑 만나고 눈을 번쩍 뜨더니…. 실실 웃다가 알아서 죽던데요.”
“….”
“….”
“….우우.”
.
.
.
.
퍽! 퍽! 투닥! 탁!
“역시 네놈이 죽였잖나!”
“황제 시해자라니, 내 제자가 황제 시해자라니!”
“두 발 달린 재앙! 어쩌면 악의 원흉! 묵시록의 성자!”
“악! 아야! 아파요, 잠깐만! 나 지금 상태가- 억! 노툼! 니가 때리면 치명상이야!”
결국, 교수는 골렘과 기사, 황성을 지키려는 자와 황성에 들어가려는 자의 전투로 생긴 공백지대인 황성 앞 절벽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앞서 있었던 황제와의 대담을 들려줘야 했다.
물론 시시각각 마녀의 저주 섞인 울음이 수도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었으나, 당장은 여기 모인 넷이서 저 무식한 파워 파이트의 틈바구니를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무너지길 기다려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
“….황제가 많이 늙었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 들었네. 하긴, 제국의 황제는 장수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니. 노망이 들 만하지.”
“새로운 황조를 열어라. 그 전권이나 다름없는 권한을 받은 것이 이 놈이라….”
“교수라면…. 크흠! 으음….”
“나 왜요! 나 정도면 능력 있지, 머리 좋지, 뒷배경 빵빵하지! 어디 가서 꿀리는 인재는 아닌데!”
“인재(人才)가 아니라 인재(人災)겠지 이놈아.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고, 그걸로도 모자라 매번 스케일이 커지기만 하는 게야. 난 제국 문제가 끝나도, 그 다음에는 뭐가 터질지가 두려워서 쓰러질 지경이다. 뭐, 5대 선신이라도 죽어 나가려나?”
“그우우. 전부 시끄럽다. 사기(死氣)가 잘 안 느껴진다.”
“으음. 이쪽일세. 좌측은 음습한 마나가 잔뜩 몰려있군.”
끔찍한 비명과 파괴의 소음 속에서, 약 두 시간.
점점 골렘 뒤쪽의 안전지대가 뒤로 밀리는 와중에, 일행은 아예 절벽 안쪽, 튀어나온 부분에서 상황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리다 소음이 잦아들 즈음 조심스럽게 나온 참이었다.
2중으로 쳐놓은 방음 마법에 밤이라서 더욱 강력해진 알드리치의 인식 저해 마법. 거기에 노툼의 자연 은폐 주술까지 더해서 딱히 이렇게 살금살금 다니지 않아도 될 법했지만.
찰칵!
“….누구….냐….”
‘읍읍읍읍! 으읍-! 읍!’
‘음, 음음! 음음음!’
문제는, 작은 성만 한 골렘 무리와 전투 끝에, 오러도 안 박히는 그 고대 마법의 총아를 모조리 썰어버리고 승리한 게 미친 기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사도 많이 죽었다. 발밑을 조심하지 않으면 잘려나간 기사의 허벅지라거나, 반쯤 으깨져 플레이트 메일과 한 몸이 된 납작한 기사에게 걸려 넘어질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난전 끝에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고. 다시 말하면 진짜 중에 진짜 기사들만 살아남아 이 박살 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읍읍, 읍읍읍읍!’
‘후으읍…. 읍!’
“찌직, 찌이익! 찌-”
스각!
“….쥐새끼였나. ….으음, 미안하오 줄리어드. 내가 너무 과민해져 있던 모양이야. 좀 추운 것 같은데. 난로는 아직인가. 으음…. 어지럽구나. 여흥이 과했나보군….”
노툼이 주술로 끌어들인 쥐 한 마리를 던져주자,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다시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드는 기사.
피투성이에 정신이 나가긴 했지만, 30분 전에 저 기사는 제 키만 한 하늘빛 오러를 뽑아내며 골렘의 거검을 썰어내던, 엄청난 무력을 소유한 진짜배기 마스터 나이트였다.
그런 기사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로 도처에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전투를 피해 마녀에게 접근하는 발걸음이 더뎌질 수밖에.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그 더딘 발걸음을 재촉하듯, 마녀의 비명이 거리를 관통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겠네요.”
“선택이지. 전투력을 온존하고 적에게 시간을 주느냐, 남은 것을 모조리 털어 최대한 빨리 마녀의 앞에 당도하느냐. 상대가 원래부터 강자라는 것을 아는 이상, 그녀와 맞붙어야 할 미래를 위해 우리도 소모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게야.”
“부디, 마녀가 다른 준비를 끝내기 전에 우리가 도착하길 빌 수밖에.”
알드리치는 어느새 도착한 꽃나무의 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비명의 중심이자, 마녀가 있는 곳.
첫 비명과 함께 피어난 엄청난 숫자의 저주화는 그 줄기를 뻗어 서로를 엮었으며, 이제 마녀가 있던 곳은 거대한 보랏빛 꽃으로 뒤덮인 탑이 되어있었다.
끝을 모르고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마천루.
보는 것만으로 저도 모르게 제 안구를 파내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진한 저주의 집합체.
“….어머니.”
저 안에, 그의 오랜 악몽과 마주하게 될 터였다.
알드리치는 그의 영혼 항아리를 만지작거리며, 은폐 마법을 유지하는 오트만에게 말했다.
“그럼, 미리 정한 대로 부탁하지.”
“….알겠네. 노툼과 나는 밖에서 대기하다, 저주의 기점이 되는 곳이 드러나면 그것을 요격하라는 말이었지?”
알드리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의 꽃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탑.
흑마법사는 언제나 핍박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그들의 거점을 요새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드래곤의 레어처럼. 자신의 흑마법은 더 강해지고, 상대는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공간.
과거, 그의 고향에서 석실이 살점 덩어리의 끔찍한 공간으로 변하며 일반적인 신성의 감시를 피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저주화를 통해 피워올린 마녀를 위한 공간.
‘황제가 살아있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준비한 마녀의 저주가 완성됐다면…. 제국 수도 전역이 저 끔찍한 탑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군….’
황제의 결단으로 그런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지금 규모만 해도 일반적인 마탑 몇 개를 겹쳐 올린 듯 말도 안 되는 높이였으며. 그 둘레는 황성에 준할 정도로 넓었다.
탑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뻗은 기둥과 같은 저주화의 탑.
그 영역의 크기만큼. 그간 희생시킨 인간의 수만큼 강해졌을 것이 분명한 마녀.
그래서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뒤흔들어, 영역을 통째로 부수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흐트러뜨리는 것을 선택했다.
‘복잡한 저주이지만, 저주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날 순 없다. 저주와 저주를 엮어 만든 영역이라면 그 핵 역할을 하는 저주화 몇 개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걸 공략하는 수밖에….’
구성원을 나눈 기준은 매우 간단했다. 저주에 정통한 그와 마법사의 약점인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교수가 마녀를 상대. 그 나머지가 외부 임무를 수행.
안에서는 교수와 그가 대저주의 실패, 그 반작용으로 불안정해졌을 마녀를 공격하고, 밖에서는 그 공격에 맞서 마녀가 소홀해진 틈을 타 저 거대한 탑의 핵이 되는 몇몇 저주화를 탐색, 파괴하여 마녀의 영역을 허물고 합류.
마땅히 뾰족한 수가 없는 지금으로선, 그 정도 작전밖에 짜낼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래 이 순간을 피하고, 또 기다려왔건만. 겨우 이 정도가 최선일 뿐이었다.
“….”
“알드리치.”
“….”
“알드리치, 알드리치!”
“으음?! 아, 미안하네. 잠시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준비됐냐고 물었는데. 시간이 필요합니까?”
“아닐세. 시간을 더 주는 만큼 마녀의 저주와 그 영역이 안정될 뿐이지. 자네야말로 그 상태로 괜찮겠나? 올 때는 분명, 성치 못한 근위기사 한 명 상대하는 것도 버거워 보이던데.”
“….좀 그렇긴 합니다만. 나름 수가 있으니 작전에 차질은 없을 겁니다. 가시죠, 그럼.”
끄드드득. 뚜둑, 쫘아아악!
왼팔만 검게 변한 교수의 손끝이 꽃나무로 이루어진 벽을 쭈욱 가르고, 잘리자마자 스스로 엉겨 붙기 시작한 그것의 사이로 노툼의 나무줄기가 엉켜들며 작은 문의 형상을 유지했다.
“그웍.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주술적, 상징적으로 엄청난 차이 있다. 저주는 모르지만, 이 문이 남아있는 동안에 나와라. 그게 좋다.”
노툼이 만들어낸 나무 뿌리의 문. 인상을 잔뜩 찌푸린 데다 이마와 팔에 푸른 주술각인이 올라온 것으로 보아 저 작은 문 하나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심력을 소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불퉁한 얼굴이지만. 오래 봐서 그런가, 저 불퉁하고 사나운 트롤의 얼굴 속에서 미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불안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 중 최연소 인원은 루실라가 아니라 노툼이었지 아마?
“….고맙다 노툼. 따지고 보면 넌 교단에 의해 합류한 것일 뿐, 이렇게 위험한 일에 휘말릴 이유가 없는데.”
“그우우. 오래된 질서의 회복. 이것도 내 일이다. 조상 귀신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그래그래. 살아 돌아올게. 츤데레 트롤 같으니.”
“교수, 말 많다. 빨리 가면, 빨리 나온다.”
녀석. 새침하긴.
준비는 끝났고,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안배를 남겨둔 채 여기까지 왔다.
변경백 영지. 폭풍의 언덕. 하우누만, 그리고 수도.
그 모든 것을 지나, 마침내 제국의 심장에 파고든 마녀에게까지.
교수의 눈에 그 마지막 조우를 가로막은 장애물이 들어왔다.
갈라진 저주화의 벽 사이로 드러난 것.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보랏빛 안개가 몰아치는 내부와.
아무리 봐도 처음에 봤던 수도와는 완전히 다른, 저주화가 흐드러진 끔찍한 전쟁터.
시산혈해 속에 탐스럽게 피어난 저주화의 정원.
“완전히 다른 공간이로군.”
“저주의 힘만이 아닐 겁니다. 제가 봤던 황제는, 손짓 하나로 황성을 다른 공간으로 만들었으니까. 아마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겠죠.”
“제국의 힘…. 그래. 마녀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전에 그 주변을 자기 취향껏 바꿨었지….”
….파각!
잠시 눈을 감고 그 힘을 느끼던 알드리치는, 손 안에 굴리던 영혼 항아리를 엄지로 눌러 깨버렸다.
평소 사나운 모습이 아닌, 소녀의 모습으로 얌전히 알드리치의 팔에 매달리는 네리아의 영혼.
“그래, 느껴지는구나. 이제 이 아이를 담을 함은 필요가 없겠어. 저기에 있다. 마녀에게, 어머니에게 빼앗긴 네 몸이. 가자꾸나, 네리아. 이제…. 끝이다. 마침내, 끝에 도착한 거야. 그토록 오래 기다린, 계약을 이행할 때가.”
“….예? 황제가 분명 저 안에 있는 건 1황녀라고….”
“아니야. 분명히 있어. 계약의 주체. 나를 흑마법사로 만들고, 나와 넬을 엮어낸 저주의 매개. 네리아의 육신이, 저 안에 있어….”
분위기에 압도된 교수보다 먼저, 알드리치가 마녀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고.
“에라 모르겠다.”
그 뒤로, 순식간에 사라진 알드리치를 따라 교수도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갔군.”
노툼과 오트만만 남겨둔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사람.
“….이제, 우리도 시작해볼까. 교수와 알드리치만큼은 아니라도 우리도 고생 좀 해야지.”
“그우우.”
뒷발을 떼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보던 오트만은, 교수가 힘을 아끼듯 마찬가지로 아껴왔던 모든 마나와 지하수를 끌어올리며 수인을 맺었다.
가느다란 물줄기와 영험한 나무뿌리 수십이 거대한 저주화의 언덕을 타고 오르며 그물처럼 감쌌다.
오트만은 흑마법사도 아니며, 저주에 정통한 것도 아니기에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흐름의 깨달음을 얻은 마법사로서, 한가지 예감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끝이로구나.”
어떤 거대한 흐름의 막바지. 굽이쳐 흐르는 강에도 그 끝이 있듯,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그 역사를 타고 흐르던 거대한 힘의 흐름이, 마침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끝에 두 발로 선 자가 누구일지는, 아마 저 안에서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