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286
Chapter. 14. 제국 하나, 전설 셋(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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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그 어떤 역사에도 남지 못한 결사항전의 비밀.
그들은 버려졌다. 인류의 승리를 위해.
‘이걸 보여주고 싶었나.’
언데드를 막기 위해 다리를 끊은 것이 아니다. 원견 마법이 있으니 이들의 결사항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수 있으며, 그들이 후퇴하고 나서도 충분히 다리를 끊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테니까.
다리를 끊은 이들이 막고자 한 것은 ‘살아남은 피란민’ 들이다.
수 만, 어쩌면 수십만에 가까운 굶주린 피란민들.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들은 악의없는 전염병이며, 영지에 떨어지는 폭탄이나 다름 없었다.
한창 전쟁중인 영지에 굶주린 난민 수십만을 먹일 만큼 식량 따위가 남아돌 리가 없으니까.
가까스로 가족, 패물 정도만 챙겨서 빠져나온 이들은 영지에 도착하는 즉시 수십만의 걸인이 되고, 굶주리게 된다.
당장 눈앞에서 저 지옥같은 언데드 군세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굶어 죽어간다고 상상해 보아라. 아이 아버지 된 입장에서,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창칼을 든 병사가 지키고 있다 한들, 그 너머에는 멀건 죽이 팔팔 끓고 있을텐데.
수십만의 난민은 수십만의 걸인으로, 곧 수십만의 강도와 폭도로 돌변한다.
영지의 방어선이 뚫린 순간부터 그들은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니라, 살아 남아버린 또 다른 재난으로 바뀌는 것이다.
시간이 있다면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겠지. 제국 전역에 퍼진 재화를 모으고, 정비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들도 이렇게 극단적인 수단까지는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이라고 좋아서 이런 학살을 계획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수십만의 피난민을 완충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선택을 했다.
인류의 승리를 위해서,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들 모두가 죽어야 하기에. 제국은 출입이 제한된 달라스 영지로 그들을 몰아넣고, 하나뿐인 다리를 그들 손으로 무너뜨렸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네가 말한대로, 이성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 지휘관으로서, 인간으로서.』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모든 일 하나하나에서 로하람의 안배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를 위해 남아있던 전마. 단 한 마리.
아직 전열이 완성되지 않은, 선두의 약한 언데드 정도는 뚫고 나갈 정도의 성기사, 스무명.
선명하게 그녀를 인도하는 빛의 길. 탈출로.
인간은 그럴 수 있다. 실수하며 나아가는 것. 되려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하지만 신이라면. 그녀의 신은, 로하람은, 도대체 왜?
『그래서…. 나는 생에 처음으로. 빛의 인도를 따르는 것을 거부했어.』
마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환상속 풍경이 변했다.
탈출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성녀.
세찬 물살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성으로 되돌아가다, 성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피란민들.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오는 언데드.
그리고, 피. 끝없는 살육.
“그렇게 해서…. 언데드 군주에게 사로잡힌 건가.”
『….다들 그렇게 말했겠지. 분투 끝에 언데드 군주에게 사로잡힌 성녀는, 그 사이한 힘에 의해 타락했다.』
찰칵.
셔터를 누르듯, 화면이 바뀌었다.
마침내, 그 모습으로. 처음 마녀의 영역에 들어섰던 그곳, 부패한 시체의 언덕위에 홀로 남겨진 성녀와, 그녀를 마주한 언데드 군주의 모습으로.
『그 무엇도, 아무리 언데드 군주라 불리는 이의 힘이라도 성녀의 영혼을 타락시킬 순 없어. 그것은 신의 조각이며,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니까.』
군주, 침묵 너머의 시선은 그 이름처럼, 빛을 잃고 주저앉은 성녀를 조용히 내려보다, 지나칠 뿐이었다.
그녀가 타고갈 유령 군마만 한필 남겨둔 채.
성녀는 색을 잃은 눈으로 시체로 뒤덮인 평원을 내려다 보았다.
군주의 사기(死氣)에 의해 이미 썩어들어간 시체들.
피가 내를 이루어 흐른 끝에, 그들을 막아선 강에 스며들에 새까맣게 변해버린 강물.
여전히 그녀에게 살아남길 종용하는, 빛의 인도.
그 기이한 명정 속에서, 마리아는 언젠가 들었던 5대 교단의 비사를 떠올렸다.
수 많은 선신들 중 그 다섯 교단의 세가 유독 강한 이유.
그것은, 그들이 인간계에 개입하기 위해 그들의 완전성의 일부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선택이지. 완전한 존재가 불완전한 세상에 그 힘을 투영할 수 없기에, 스스로 존재를 깎아내고 집어넣은 모순.』
불완전성과 모순됨을 그러안아, 완전한 신의 존재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격하되는 것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5대 선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 있게, 그들을 이루는 존재의 일부나 다름없는 신성력을 그 신도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은 만민을 비추나, 비춰진 자 뒤에 언제나 그림자를 남긴다.
불굴의 용기는 그 손에 쥔 것을 놓는, 삶을 선택하는 자의 ‘내려놓는 용기’를 그들에게서 앗아갔으며.
한 해의 풍년을 위해 다른 어딘가에선 흉년을 겪고.
지혜는 쌓일수록 현자의 눈을 가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주한 자비는, 행동하지 않는 자비로 남게 되었다.
『처음부터 타락 따위는 없었어. 성녀란, 그런 식으로 타락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다만, 나도 그들처럼 선택한 것뿐이야. 맹목 뒤에 가려진 모순, 그것을 마주하는 선택을.』
성녀도 그 순간, 선택을 했을 뿐이다. 빛의 인도를 외면한 것. 언데드 군주가 그 관심을 물렸기에, 그의 모든 종복이 그녀 앞에 길을 터줬음에도 유령 군마의 위에 올라, 그의 옆으로 말을 몰았던 것.
그녀를 선택했기에 신에게 버려진 모든 영혼들, 사기(死氣)에 물들어 별이 되지 못하고 지상에 남겨질 영혼들을, 그 썩어 문드러진 스무 명의 주검과 함께 통한의 영혼들을 모두 그 품에 그러안은 것.
그 뒤틀린 애정으로, 그들이 빼앗긴 것을 모두 돌려주고, 이 모순된 신들의 세계를 바로잡겠다 맹세한 것.
『그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단다.』
마녀는, 시체 언덕의 환상 속에서 문드러진 머리들을 모두 그 품에 끌어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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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그녀는 언데드 군단의 일원으로. 군주의 오른팔로서 충실하게 움직였다.
본디 인간과 신을 잇는 매개체와 같았기에 인간은 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영혼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고결한 영혼은 강대한 악귀를 위한 만찬과도 같았다.
흰 도화지가 먹물에 물들 듯 그녀의 흑마법은 날이 갈수록 그 수준을 높여갔으며. 잔혹한 산제물을 바치면서도 그녀는 망설임 하나 갖지 않았다.
그들을 떠나보내는게 아닌, 그녀의 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에 불과했으니까.
『성녀로서. 한때 성녀였던 사람으로서. 모순된 신의 선택받은 이는 별이 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차가운 땅을 헤매다 소멸하는 그런 세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위한 별이 없다면, 내가 별이 되겠어. 세상 모든 영혼을 그러안은 거대한 별이. 그것을 향하는 방주가. 로 하람의 빛처럼 밝고, 따사롭지 않을 지언정, 차갑고 시체더미가 뭉친 음산한 별일지언정!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별이!!』
파스스슥-
『그것을 위해. 그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주겠어.』
그녀의 손길이 스칠때마다, 환상속 부패한 시체들이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건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한때 성녀였으며, 작지만 신의 떨어져나간 조각이 분명한 이의 맹세를 형상화 한 것.
‘마녀의 희생제는 저주받은 영혼을 양산한다. 광명의 교전에 의하면 은총에서 멀어진 영혼은 별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상에 남겨진, 선택받지 못한 영혼은…. 모두 마녀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뒤틀린 신의 조각은, 수십년의 노력 끝에 주인 없는 신위, 그 힘만 남아 제국을 번영케 하던 황제의 힘, 그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그 스스로가 모두를 위한 별이 되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공평한 신’이 되기 위해.
환상이 모두 마녀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 교수와 마녀,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마침내 신의 뜻이 닿은 성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꼭 한번 너와 얘기하고 싶었지.』
사박.
시독과 고름에 뒤덮인 맨발이 한걸음 다가왔다.
『‘그’는 뭐라고 하고 있니.』
철퍽.
성녀의 모습이 허물처럼 흘러내리고, 황녀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나에 대해 얘기하니, 마침내, 내가 그분의 눈에 거슬렸기에, 너를 보내 나를 징치하라, 그리 말씀하셨니?』
후둑, 후두둑!
그 황녀의 모습도 문드러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살덩이가 끝없이 자라나고, 부패하기를 반복하며 몸집을 불렸다.
마침내 드러낸 마녀의 본모습. 그 내면의 본질.
『아직도, 내가 그분의 눈에 차지 않아, 성자라는 허명으로 신성력 한 조각 없는 너를, 내게 그 멸시의 뜻을 전하기 위해 보내신 거니….?』
저주에 뒤덮인, 부패한 영혼을 한껏 그러안은, 버려진 자들의 어머니.
그 숨결과 함께 어지럽게 머릿속을 파고드는 저주 속에.
따끔!
잠을 깨우듯, 그의 내면을 꼬집는 손길이 있었다.
[껍데기, 여기까지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너도 미쳐.]‘….그래. 들을만큼 들었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어느새 환상속에 묶여 현실의 육체와 영혼이 괴리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그 대가로 마녀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읽어낼 수 있었으니, 적절한 교환이라 볼 수 있었다.
『신성력도, 특별한 힘도 없이 무작정 신의 뜻을 따라 달려들다니….너도 모순된 신들의 계획을 위해 버려지는 아이였구나…. 가엾어라. 괜찮아. 괜찮단다. 나는 모두를 품을 수 있어. 자아 이리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는 교수를 향해, 마녀의 뒤틀린 애정이 담긴 포옹이 다가왔다. 아름답고 색정적인 동시에 어머니의 품과 같이 자애로운, 저주에 물들여 하나의 존재로 만드는 포옹.
달싹.
굳어가는 혀끝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맛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혀를 향해 잡아 당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무언가가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아작.
마치 전신의 세포 모두가 머리의 명령에서 벗어나 그것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쇠할대로 쇠했으며 영혼마저 구속당한 몸이 그것을 깨물었고, 맥동하는 탄력을 느꼈으며, 이빨이 으스러지도록 파고들어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냈다.
우득-
시력이 돌아온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또렷해지고, 어느새 자라난 왼손이 내 몸을 휘감은 썩은 시체들을 뜯어내며, 성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우드득, 뜨득!
정신없이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내가 있다. 흰 살점. 매끈하고 유려한 흰 곡선과 독사의 맹독처럼 그 사이를 파고들어 퍼진 핏빛 실선들. 선정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군침이 도는 광경이다.
마지막 안배. 미래를 위해, 어차피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최종 보스를 상대해 봤자 미래가 없기에 아끼고, 아끼고, 죽기 직전까지 아껴왔던! 최후의 전투력.
폭풍의 언덕에서 받은 의미를 알 수 없던 보상.
에데오르나의, 잘린 팔.
몸에서 떨어져나간지 한참 지났음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를 간직한 그것을. 아공간에서 꺼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달려들까봐 꺼내보지도 못했던 그것을 마침내 입에 넣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아…. 라투라. 잘 먹었습니다.”
따로 시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뮤트의 육신, 피를 먹으면 재생하는 육체. 그 기이한 몸이 여왕의 분신이라 불리는 가장 뛰어난 세포를 섭취하며 완전히 그 힘을 회복했다는 것을.
아니, 회복을 넘어서 그 넘치는 에너지가 전신 곳곳에 날뛰고 있다는 것을!
[심호흡해라, 심호흡! 멘탈이 마녀한테 잡혀서 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한순간에 너무 하이 해졌어! 맛이 갔다고! 정신줄 단단히 잡아!]“후우, 후우, 그 정도는, 나도 알아아아아!!!!”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열기. 이대로 두면 변경백 영지 때처럼 미쳐버린다.
‘과한 회복이 문제라면…. 소모해버리면 되는 것!’
뚜둑, 뚝, 우드드득!
교수의 의지에 따라, 전신에 넘쳐 흐르던 재생력이 한 점으로, 오른 팔 하나로 모여들며 겉잡을 수 없는 힘에 팔이 갈라지기 시작하고.
푸확, 화르르륵!
그 갈라진 틈으로 어디 쳐박혀있었는지 모를 그의 하얀 불꽃이 그 갈라진 틈으로 터져나왔다.
『신성….은 아니구나. 오러도, 마력도, 한없이 뒤섞인….』
“애초에, 후우- 로 하람 그 양반 목소리 한번, 후우우-! 들어본 적 없거든!”
우득, 우드득, 우직….!
거대한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직접 익힌 힘을 다루는 방법과, 머리에 새겨진 무투기의 지식에 따라 낮게, 바닥에 붙을 만큼 더 낮게 그의 몸이 내려 앉았다.
사출되기 전의 캐터펄트처럼. 땅에 박힌 강인한 왼손을 브레이크 삼아, 하얀 불꽃에 휘감긴 오른팔을 뒤로, 더 뒤로.
“그러니까 뭐, 그분의 시선이 어쨌느니, 거슬렸느니 묻고싶으면…. 가서 직접 물어봐.”
-뚝.
그리고, 임계점으로.
몸을 내던지듯, 투창을 던지듯 임계점을 돌파한 그의 팔이, 안개와 저주로 휩싸인 마녀의 영역으로 빨려들었다.
신앙도 없으며, 100년의 시간을 넘어온 마녀의 고통, 그 모든 것을 헤아려 줄 능력도 없는 그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으니까.
세상을 모두 집어삼켜 스스로가 멸망이 되기 전에, 끝나지 않을 마녀의 절망을 강제로 끝내주는 것.
안개가 흩어지고, 저주가 흐려지며, 저주화의 탑에 작은, 좁쌀만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라투라, 성녀님. 미안하게 됐어. 내가 가진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아, 아아아아….]그 작은 빛에 관통당한 마녀의 본체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오기를 몇 초.
수도를 뒤덮은 저주의 안개 사이로, 거대한 빛의 궤적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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