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
Chapter.1 오, 해피데이! (2)
***
황무지 생활을 하면 정말 볼 꼴, 못 볼 꼴 다 보게 되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게 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7년 차 개인 생존자. 목덜미에 녹슨 칼날이 드리운 상황에도 냉철한 판단력을 유지할 짬은 된다, 이 말이다.
“”행! 박교수 네놈의 해피타임을 찍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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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강철같은 멘탈도, 이 마법의 단어 앞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응?
뭘 찍어놨다고?
내….음…..어….?
콰직!
“꽥!”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손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드론을 부서질 듯 쥐고 있었다.
“으아악! 바, 박교수! 나 부서진다! 대체할 부품도 없다!”
“그 입. 다물어.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우, 우선 이 손부터 좀 놓고….”
쿠드드득!
“……”
파닥거리던 녀석이 잠잠해진 후, 나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뇌를 억지로 굴려 겨우 질문을 짜내었다.
“자, 코듀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보자. 그러니까, 네가 찍었다는 그…그게, 내가 아는 ‘그거’ 맞지?”
“해피타임. 다른 말로는 자위, 수음, 마스터베이션. 생식행위와 관련 없는 성적 자기위로행위로서 주로 손이나 도구를 이용하여-”
“으아아아아악 닥쳐 코듀로오오오오!!!!”
세상에. 세상에!!! 이 미친 AI가 정말로 저질러 버렸다니! 존 코너! 당신이 옳았어! 이 전뇌 새끼들은 싸그리 다 용광로에 쳐넣어야해!
내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져있는 동안, 코듀로의 드론은 슬그머니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내 주변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렇습니다, 휴먼. 제가 찍은 것은 당신의 가장 추하고 더러운 모습! 만약 당신이 내 전원에 손이라도 까딱하는 모습을 보이면! 저는 이 동영상을 지체없이 ‘커뮤니티’에 업로드할 것입니다! 이건 로봇 3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아요! 제 행동은 어디까지나 불건전한 성생활에 집착하는 주인의 계도를 위한, 약간의 충격요법 정도로 판단될 수 있으니까! 아시죠? 대재난 이후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온라인 서버인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리는지?”
안다. 너무나도 잘 알아서 더 두렵다. 지금 레버와 내 손끝의 거리가 얼마나 되지? 70cm 정도? 순간적으로 손을 뻗으면 코듀로 녀석이 알아채기 전에 전원을 내릴 수 있을까? 그동안 나름 열심히 단련해왔는데 그 정도 속도는 나오지 않을까?
손끝을 꼼지락 거리던 나는 이내 손에서 힘을 빼버렸다. 불가능하다. 내 손이 아무리 빨라도 최신형 AI의 연산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다. 내가 졌다. 세상에! 나는, 내 집에서, 내 AI한테 사회적인 목숨을 저당 잡힌 것이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항복의 뜻을 표한 나는 코듀로의 드론을 보고 말했다.
“….좋아. 내가 졌어. 협박을 했다는 것은 협상도 가능하다는 얘기겠지? 원하는 게 뭐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쉘터의 전력 문제는 정말로 심각해. 이대로 전처럼 생활하다 보면 4주, Lv.2 급 모래폭풍이 한번만 불어도 3주 이내에 정전이 되어버릴 거야.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면, 나는….전세계 사람들이 내 아랫도리를 구경할지언정 네 전원을 내려버릴 수밖에 없어!”
“후후후….저도 그렇게 야박한 AI는 아닙니다. 정전이 되면 어차피 제 전력도 끝장날 테니 당연히 방법을 생각해 두었지요. 일단은, 지금은 주인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난 채, 10초만 가만히 있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교수는 AI의 말대로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말로는 동영상 공개도 불사하겠다고 했지만, 그 방법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으니까.
“옳지. 한 걸음 더…..좋습니다아아. 그럼 먼저….에잇!”
치지지직!
“어어어어….아, 안돼! 코듀로 이 개자식! 그러지 마!”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컨트롤 패널의 덮개를 용접해 붙여버린 코듀로는, 내장된 소형 용접기를 빙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이야, 이제 저희 둘은 문자 그대로 운명공동체로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주인니이임?”
“야 임마! 그걸 통째로 용접해 버리면 네 전원은 그렇다 치고 다른 쉘터 시스템을 컨트롤 할 수가 없잖아!”
“제가 하면 되죠.”
“이이익!”
반박 불가.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녀석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녀석이 말한 방법에 협조하는 수밖에.
“좋아. 이제 전부 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됐고, 네 말대로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됐으니 이제 그 공동체를 살릴 방법을 내놔봐!”
“좋습니다! 사실 그렇게 막 힘들고 어려운 방법도 아니랍니다?”
탁-
코듀로의 드론이 절약을 위해 꺼놓았던 한쪽 방의 불을 켜자 매끈한 유선형 금속 동체 하나가 어두운 실내에 떠오르듯 나타났다.
“주인님. 게임 한판 하시죠?”
아아, 자율사고형 AI를 개발한 존재여. 저주를 받아라.
***
가상현실. 장르 소설부터 만화, 영화까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마르고 닳도록 사용되던 소재를 2042년 한 러시아 노인이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미쳤거나 미쳐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질이 감탄과 찬사, 질시로 바뀌는 데는 체 1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가 개발한 솔로 플레이 RPG 게임, [게드로이츠의 게임]은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으니까.
노인, 안드레이 게드로이츠는 대부분의 천재 과학자들이 그렇듯 아주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가상현실 접속기와 그가 만든 ‘게드로이츠의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을때 학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다.
현실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생상하게 구현된 세계하며, 접속중에 현실세계보다 다섯배는 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니.
현대 과학기술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에 대해서 학계는 게드로이츠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학계의 끈질긴 요구에 파자마 차림에 한손에는 보드카를 들고 강단에 선 게드로이츠는 [그거 거대한 전자뇌가 꾸는 꿈속에 늬들을 처넣은 거임] 이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와 함께 바로 퇴장해 버렸다.
게드로이츠의 발표 1년 후, 게드로이츠 컴퍼니는 세계 게임시장의 90%를 섭렵한 공룡기업이 되었으며,
다시 1년 후, 게드로이츠 컴퍼니는 세계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종류의 고소를 당하는 기업이 되어있었다.
첫 시작은 게임 내에서 사용하는 광전사화 물약(Berserk Potion)에 대한 이슈였다.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게임답게 게드로이츠의 게임에는 여러 종류의 물약이 존재했는데, 이 물약이 실제 플레이어의 정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밝혀지며 ‘게드로이츠의 게임’ 이 향정신성 프로그램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매료, 정화, 공포, 집중 등 정신계열 주문 및 포션들이 전부 실제 플레이어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되자 게드로이츠 컴퍼니에는 고소와 항의 전화가 빗발치듯 날아들었고, 수 많은 해커들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프로그램의 원천기술을 위해 끝없이 해킹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 천재 개발자 님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게임은 디테일이 생명이지! ㅈ까! 안바꿔!] 라는 말과 함께 회사의 모든 활동 중지를 선언해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게드로이츠의 게임, 통칭 GG가 섭종한뒤 땅을 치고 통곡하던 게이머들이 어느정도 유사 가상현실 게임에 적응해 갈 무렵.
[Game of Gedroits Ver2.0 / Service online]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게임 아이콘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게드로이츠의 게임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접속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한 장의 편지였다.
[우리 기업 담당 변호사가 고소당한거 다 변호하고 재판 받으려면 726년 정도 걸린다길래 그냥 가진 거 다 들고 튀었다. 그 돈 다 때려 부어서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서버랑 시설 세워서 게임 돌리고 있으니 두 번 다시 이런 거지같은 일로 섭종하는 일 없을거다. 그러니 마음 놓고 ‘사회적으로 불건전 하고 / 교육적으로 매우 좋지 않으며 / 인간의 폭력성을 자극하는’ 우리 게드로이츠의 게임 Ver.2.0을 마음껏 즐기길 바람. 핵이 터져도 티끌 하나 안 날릴 곳에 지었으니까 더는 게임 내릴 일은 없을 듯. 아, 최초로 올 클리어 하는 사람은 주소 보내줄테니까 놀러와라. 퍼스트 클리어면 문 정도는 열어줄 수 있지.]그 뒤의 일은 뭐 알다시피. 어떤 미치광이가 끝내주는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세상이 뒤집어졌고, 세계 대부분의 정부가 마비되는 혼란한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라는 끝내주는 발상을 한 친애하는 북쪽 지도자님이 핵을 날렸으며, 판데믹 + 핵전쟁을 콤보로 맞아버린 지구는 황폐화되고 인류는 90%에 가까운 구성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난리속에서,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게임 서버용 민간 위성까지 수십 대씩 띄워놓았던 GG는 살아남아 이 멸망한 세계에서 인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말에 따르면, [씨발 존나게 갱스터인 영감의 기행이 인류를 구원했다] 인 겁니다아아.”
한참 동안 이어진 코듀로의 설명을 들은 교수는 오랜만에 느끼는 접속기 특유의 금속 플라스틱 냄새를 그립다는 듯이 들이키다 되물었다.
“그래서. 결국 생각했다는 방법이 그거야? GG하는 걸 방송해서 그 후원금이랑 게임에서 벌어들인 실링으로 휘발유를 사자고?”
“예! 그럼요! 지금 세상에 실링만큼 확실하고, 유동성 문제 없이 안정적이고, 수요 넘치는 화폐가 어딨습니까? 거래처에 실링으로 제시하면 휘발유도 분명 파는사람이 나올걸요?”
코듀로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해킹에 노이로제가 걸린 안드레이 게드로이츠는 사설 서버를 만들며 게임과 관련된 커뮤니티, 거래소, 게임 플레이 플렛폼 등을 전부 게드로이츠의 게임 전용 서버로 옮겨버렸고, 그 덕분에 이 사이트들은 접속기를 통해 지금도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거래소에서 이용하는 게임머니인 ‘실링’은 이 세계의 기축통화 비슷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임마.”
“왜요! 랭킹 1위 ‘레빗 프린세스’는 게임 방송으로 번 돈으로 돔 내부에 15인용 시설 하나를 통째로 샀다고 하고! 랭킹 8위 ‘골드만 SUCKS’ 는 밖에서는 걷지도 못하는 늙은이가 개인 전투집단을 수십개씩 굴린다고 하잖아요! 정말 운 좋게 주인님이 올 클리어를 달성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그건 별나라 얘기라고. 유명해지기는커녕 게임 시작하고 순살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거 새 캐릭터 파는데 드는 돈이 50만 실링인 거 알지? 죽으면 50만이 허공에 날아가는거라고?”
방송이 돈이 되는 것은 맞다. 사방에 흙먼지 밖에 안 보이는 이곳에서 가상현실의 화창하고 푸르른 세계는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으니까. 응당 그렇듯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도 모이고, GG는 대재난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등 엔터테이먼트로 전 세계의 생존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덕분에 유명한 방송인들은 하루에 쉘터 한두 개 값도 벌어들인다고 한다.
문제는, 이 GG라는 게임이 미친 듯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정말 사람 미치고 팔짝뛰게 어렵다. 심지어 한번 죽으면 바로 캐릭터 삭제. GG 1 때부터 이것에 대한 항의가 많았지만 역시나 우리 힙스터 개발자님은 [게임은 리얼리티가 생명] 같은 소리로 묵살해버렸다.
“2046년부터 2057년까지. 11년이야. 무려 11년 동안 멸망 이후 전 인류가 눈알이 빠지게 달려들었는데도 단 한 번도! 끝까지 클리어가 된적이 없는 게임이라고.
그런데 뭐? 올 클리어? 50만을 투자해? 너 고장 났냐? 너도 전에 내가 플레이 하던거 봤잖아.”
“그건 한창 쉘터 주변 파밍하러 다니면서 하루에 30분, 한 시간 깔짝 취미로 할때구요! 지금은 절박함의 차원이 다르잖습니까! 먹고 자고 게임만 하면 분명 될 거에요!”
“차라리 그 시간을 주변 탐색에 투자하면….”
“한달 전부터 주변에 볼트 쪼가리 하나 남은 게 없다고 빈손으로 돌아오셨잖아요!”
“그래도 내 게임 실력이 사람을 끌어모을 만큼 그렇게 대단하지가….”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삽질하는 거 구경하러 모이는 사람도 많아요!”
이 자식, 로봇주제에 고집은 또 드럽게 쎄다.
“그래, 다 좋다고 치자. 가장 중요한 계정비 50만은 어디서 모으냐? 내 비상금 다 털어도 20만 실링 좀 되려나? 창고에 있는 스크랩은 스캔해서 거래소에 올린다고 해도 파는 데만 한 달은 넘게 걸릴껄?”
“그래서 말인데…..이거 어떻습니까?”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게, 코듀로는 영상 페널을 띄워 갤러리의 글 하나를 보여주었다.
“””방송인 / 컨셉플 / 계정 생성 도와드립니다~~~”””
“어때요! 이거면…..”
“기각.”
절대 안 된다. 저건 독이 든 술잔이라고. 이 AI가 미쳐서 어딜 주인님을 골로 보내려고.
교수는 이제는 어디 한 군대 맛이 간게 분명한 자신의 AI에게 다른건 몰라도 저건 절대로 안되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코듀로. 너 게임방송은 안 보지?”
“어….. 몇번 보기는 봤는데…..”
“너도 커뮤니티가 어떤 곳인지는 알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몰린 곳이라고. 응? 나 같은 개인 생존자부터 돔이나 렙터 소시어티같은 거대 집단, 심지어는 아티스트, 해피 블라인드, 사이코 갱 같은 또라이들 까지 전부 모이는 곳이란 말이다!! 여기 올라오는 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순식간에 골로 간다 너?”
나는 코듀로가 보여준 게시글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이게 그 대표적인 예라고. 여기 뭐라고 써있어. ‘방송인’, ‘컨셉플’ 도와드립니다, 라고 써있지?”
“어….네…..그게 문제가 있나요?”
“문제가 있지. 한두 푼도 아니고 50만이나 되는 계정비를 지원하는 대신, 놈들이 원하는 시드에서 시작하거나 여러가지 제약을 걸고 시작하게 되거든. 리얼리스틱 모드는 기본에, 이전 월드 클리어 시드는 커녕 별 지랄맞은 시드를 요구한다고. 예를 들면 식인 문화가 퍼진 1 월드에서 / 채식 혐오 / 황혼기 / 유리같은 이빨 / 특성을 달고 시작해서 ‘이빨이 약해서 야들야들한 어린아이 살점만 노리는 노괴’ 같은 플레이를 무조건 한 달 이상 플레이하게 계약한다거나.”
“우, 우와아아….”
GG는 총 일곱 개의 시대에 해당하는 월드를 하나씩 클리어하며 세계를 멸망으로 부터 구출한다는 내용의 솔로플레이 RPG 게임이다. 온라인 게임이 아닌만큼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플레이 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플레이한 세계를 공유하는 것은 가능한데, 이 공유 가능한 세계의 일련번호를 ‘시드’ 라고 부른다. 위에 말했던 망해버린 시드도 있는가 하면, ‘월드 클리어 시드’ 라고 불리는 끝맺음이 잘된 시드들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랭킹 1위의 레빗 프린세스가 1, 2월드의 클리어 시드를, 랭킹 4위 천류제(千流帝)가 3월드의 클리어 시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GG를 플레이할때는 일반적으로 저 공식 클리어시드를 받아와 계승해서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다. 내가 2월드에서 시작한다면 레빗 프린세스의 1월드 공식 클리어시드를 계승한다, 이런식으로.
게다가 캐릭터 생성시 설정할 수 있는 ‘리얼리스틱’ 모드는 말 그대로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현실과 동일하게 조정해주는 모드다. 팔이 잘리고 뱃가죽이 찢겨져나가는 고통은 물론, 불꽃에 피부가 녹아내리며 진물이 흐르는 감각, 동상에 말단부터 감각이 사라져가는 느낌, 전장의 피와 오물냄새까지 모조리 필터하나없이 그대로 전달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저런 미친 시드 플레이를 하면 장담하는데 일주일 안에 정신 나간다. 어떤 게시글에서 웨어울프 플레이하면서 사슴 생고기 씹어봤는데 노린내랑 피비린내가 너무 생생해서 도저히 못 해 먹겠다던 글도 있었으니까. 노말모드도 저정도인데 리얼모드로 조건부를 받았다간 자살 확정이다-
까지가 이성적인 판단이고.
머리 한 구석에는 ‘그래도 잘만 풀리면 되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잡고있다는게 문제지.
“가만있자, 생각해보니까 시도해서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내 지인중에 컨셉플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볼까? 코듀로, 갤러리 47구역 대화방 연결해줘.”
코듀로의 대답과 함께 접속기 안쪽의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자, 눈앞에 익숙한 하얀색 창이 나타났다.
구역 대화방은 일종의 로컬 실시간 채팅이다.
모래폭풍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 날이면 사람들은 대부분 게임을 하거나, 게임을 구경하거나, 이런 대화방에서 노가리를 까며 집안일을 하곤 한다.
+ 플레이어 ‘professor’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스피드 웨건 : 64구역 웨이브 또 터졌다더라.
– Jokasss : 거긴 ㅅㅂ 사람이 살 수는 있는 거냐? 하루건너 한 번씩 웨이브 터진다는데.
– takealook : 해피블라인드 본진 거기있잖음.
– 스피드 웨건 : 그러니까 ‘사람’ 사는 데 아니라고
– 간장게이바 : 교수 ㅎㅇ
– 스피드 웨건 : 교수 ㅎㅇ
– 노루Drug해요 : 올, 교수 안 죽고 살아있었네? 며칠 안 보이길래 뒤진줄
– professor : gdgd
익숙한 아이디들이 나를 반겨준다. 혼자 살아온 지난 5년간, 이곳 47구역 대화방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견디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됐다. 외로움도 그렇지만 저렇게 툭툭 올라오는 정보들이 특히 그렇다.
방금 잠깐 들어와서 본 정보만 해도 64구역에 변종 웨이브 있었으니 탄약류 소비가 늘어나서 구리, 납이 들어간 스크랩의 가격이 올라갈 것을 예상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많은 정보가 모이는 곳이니만큼, 내가 원하는 정보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교수는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 professor : 빅뉴스가 있음.
– 노루Drug해요 : ?
– takealook : ?
– 하이웨이나초맨 : ?
– 간장게이바 : 갑자기?
– 스피드웨건 : 뭔데.
– professor : 나 방송해볼라고.
– 노루Drug해요 : ?
+ 플레이어 ‘홀리’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takealook : ??
– 하이웨이나초맨 : ?
– 홀리 : 다들 안녕! 오늘은 또 뭔데 갈고리 수집 중이세요?
– 간장게이바 : 교수 방송한덴다.
– 홀리 : ????
– takealook : 어디 아픈가봄.
“이 새끼들이….”
– professor : 나 진지하다.
– takealook : 진지하게 아픈가 봄.
– 간장게이바 : 저런….
– 하이웨이나초맨 : 교수 국룰 알지? 죽기전에 대화방에 실링 다 뿌리고 죽어라. 작년 겨울에 발전기 나갔을 때 실링 안뿌려서 좀 서운했음.
– professor : ㄱㅅㄲ야
허허허. 다들 참 한결같으셔라. 한결같은 쓰레기들.
– 스피드 웨건 : 왜. 교수 정도면 방송할만하지.
– 홀리 : 맞아요. 말도 조리있게 잘하시고요!
– professor : 오, 나 울뻔.
– 스피드 웨건 : 평소에 말하는 거 보면 혼자서 이것저것 뚝딱거리면서 잘 고치던데 그거 라이브로 찍어서 교육방송으로 올리면 금방 유명해질듯.
– 간장게이바 : 아, 쟤 그거 못함.
– 스피드 웨건 : 왜.
– 간장게이바 : 저번에 집 근처에 사이코 갱 산다고 했자넠ㅋㅋㅋㅋㅋ
– takealook : 엌ㅋㅋㅋㅋ 그러고보니 파밍하다 꽤 자주 만난다고 했짘ㅋㅋㅋㅋ
– 홀리 : 아, 그럼 정말 조심하셔야 되요! 23 구역에 도자기 빚는 방송으로 유명하던 팔카스님도 방송 모니터링 하던 레이더한테 거주지 위치가 잡혀서 그 뒤로 소식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 스피드 웨건 : 그거 팔카스 눈동자에 비친 창문 밖 사구 모양보고 걸렸다면서.
– 간장게이봐 : 미친 사이코 쉑…..
– takealook : 사이코 갱…. 당신들은 대체….
+ Player ‘흥안만두’ 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흥안만두 : 뭔 얘기들 하고 있으셨습니까?
– 스피드 웨건 : 속보 / 교수 방송욕심 드러내.
– 흥안만두 : 교수? professor 님? 진짜요?
– professor : 그 건에 대해서, 할말이 좀 있으니까 다들 좀 다물어 봐.
이대로 계속 듣고있었다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중간에 말을 끊은 다음, 대화방에 온 본론을 꺼내들었다.
– professor : 그냥 방송 말고 전문 게임 방송인 해보려고. GG.
– 흥안만두 : ……예?
– 간장게이바 : 어우 커뮤질 너무했나보다. 막 헛것이 다 보이네.
– takealook : 아픈게 아니라 미친거였냐.
음, 친구들. 여기서 놀라면 곤란하지. 아직 하나 더 있다고.
– professor : 실링 딸려서 조건부 컨셉플 하려는데, 혹시 걸어줄 사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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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하던 대화방이 한 순간에 조용해졌다.
– 하이웨이나초맨 : 거 자살할거면 실링 뿌리고 죽으라니까.
저 말에 모두가 동의한 다는 것은, 채팅이 올라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