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
Chapter.4 눈꺼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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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받아놓은 빗물로 몸을 정갈하게 만든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맛없는 칼로리 바를 꾹꾹 씹어 삼키고,
차분한 마음으로 접속기 앞으로 다가간다.
“….몇 분 남았냐.”
“18분 47초 남았습니다.”
“….대화방 한번 돌아보고 들어가면 딱 이겠군.”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피와 땀이 스며든 ‘망캐 교수’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그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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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yer ‘professor’ 님이 47구역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Jokass : !!!!!
– 노루Drug해요 : !!!!!
– 하이웨이나초맨 : !!!!
– 모발은죄악 : 왜, 뭔데.
– 간장게이바 : 교, 교! 교수가! 우리 교수님이 돌아오셨다!!!
– 홀리 : 와아아! 오랜만이에요!
– professor : dd 오랜만. 다들 잘 있었냐?
“이곳 분위기는 언제와도 변하질 않는군.”
이젠 정겹다는 느낌마저 드는 게, 아무래도 나도 이 세상에 적응을 하긴 한 모양이다.
– Jokass : 안 그래도 잘 왔다.
– professor : 왜
– 간장게이바 : 너 죽었으면 장례식 어떻게 진행할까 토의하는 중이었거든.
– professor : 으엑. 조크 수준 하고는.
– 홀리 : 음…. 정말이에요.
“뭐 시발?”
아니 이놈들이 누구 맘대로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난리야? 설마 저 선량한 여고생 홀 리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아니지. 3박 4일동안 저 악질 놈들이랑 놀았으면 물이 들었을 수도 있나?’
으으음…. 내 불찰이다. 이 미친 망아지들의 고삐를 며칠씩이나 풀어놨으니. 47번 대화방의 컨트롤 타워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군.
– professor : 뭐, 인사는 겜 하면서 천천히 하고. 나 없는 동안 특별한 소식은 없었냐?
– 스피드 웨건 : 졸라 많았음.
– professor : 오, 반가워라. 간만입니다. 파밍좀 갔다 오느라 며칠 접속을 못 했네요.
– 스피드 웨건 : ㅎㅇㅎㅇ
– 간장게이바 : 왜 우리랑 대화체가 다르냐.
– Jokass : 거울을 봐라.
– 간장게이바 : 그게 무슨- 끼에에에에엑!!!!
“그래도 다들 나 없이도 잘 놀고 있었네.”
채팅창 인구수를 보니 그때 이슈로 유입된 인원들은 방송이 없는 동안 대부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뭐, 감수해야지. 4일이나 방송을 쉬었는데.
– professor : 그래서, 특별한 소식이 뭡니까?
– 스피드 웨건 :
1. 돔에서 교수의 캐릭터에 관심을 가짐. 대화방에 찾아와서 플레이 로그랑 대화내용 싹 다 복사해감.
2. 47구역 대화방 마스코트 ‘홀리’ 님께서 오랜 인고 끝에 마침내 간장게이바에게 욕설을 시전하는데 성공함. 강도는 10점 만점에 8. 전문가의 엄격한 기준에서도 상당히 창의적이고 훌륭한 욕설이었음.
3. 레빗 프린세스가 47구역 대화방을 방문함. 거대한 팬덤을 몰고 와서는 방송 잘 보고 있다고, 새로운 루트는 언제나 환영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남. 토끼단 악질 쳐내는데 좀 걸렸다.
4. 45번 구역에서 온전하게 보존된 구시대 대규모 지하 쉘터가 발견됐다고 함. 황무지에서 이름 좀 날린다 하는 집단은 죄다 찾아간 모양인데, 정작 물건을 챙겨나온 놈들은 엉뚱한 놈이었다고 함.
“헐.”
1,3번이야 내 플레이가 워낙 독특했으니 그렇다 치고. 2번은…..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고.
4번. 황무지에서 제일 빠른 건 소문 이라지만, 설마 벌써 이렇게까지 퍼졌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긴장이 됐다. 과연 어디까지 알려졌을까?
– professor : 4번은 뭐냐. 그런 빅 이벤트 못 들어봤는데.
– Jokass : 너는 나가 있었으니까 못 들었겠지. 어제 온 커뮤니티가 난리도 아니었다.
– 무카바 : 지하 건물을 꽉 채운 변종을 정리하고, 렙터 군단과 돔의 정예를 모두 상대하고 유유히 보물을 챙겨서 나온 3인조 신흥 강자! 이름이…. 뭐랬더라?
– 스피드 웨건 : 햅번, V, I. 뒤에 둘로 봐서는 앞에 것도 가명일 가능성이 높지. 일단 세 명 모두 현상금이 굵직하게 붙었더라.
– professor : 어, 얼마나?
– 스피드 웨건 : 렙터, 생사불문 – V,I 는 각각 150만. 리더격인 햅번은 300만. 돔에서는 같은 가격에, 반드시 생포하는 것으로.
“허, 허어어어…..”
– Jokass : 혹시나 돈에 혹해서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교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야. 앞에 나열된 업적만 따져도 터미네이터나 다름없는 놈들이라고. 덤볐다간 뼈도 못추릴 걸?
그거, 난데.
잠시 당황했지만, 생각해보니 딱히 걱정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내 가명이 드러난 것은 의외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 제아무리 날고 기는 바운티 헌터라고 해도 이 넓은 황무지에서 가명만 가지고 누군가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알려진 것은 좀 이상한데. 렙터야 워낙 화려하게 들어갔지만, 돔은 우리 일행이랑 렙터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 아하.’
파충류 새끼들, 쪽팔렸네.
화려하게 폭격을 날리며 들어가서 거지꼴로 나온 렙터 군단.
누가 봐도 패잔병 꼴로 나온 렙터는, 집단의 강인한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똑같이 피해를 입은 돔의 병사들을 드러내고, 그 둘을 제압한 제3세력의 존재를 공표한 것이다.
‘사람 시켜서 커뮤니티에 몰래 정보를 흘렸겠지. 우리가 무능한 게 아니라, 돔과 렙터를 이길 만큼 대단한 녀석이 있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덕분에 쓸데없이 소문이 부풀려진 것 같았지만, 뭐 어때. 안 걸리면 그만이지, 안 걸리면.
삐리리릭-! 삐리리릭-!
접속기 안에 내장된 알람이 울리는 것을 보니,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 professor : 슬슬 방송 시작한다.
– 간장게이바 : 오! 쿨 돌았나!
– 남바쓰리 : 우효~ 기다렸다고! 유리 몸 교수!
– 스피드 웨건 :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더라. 빨리 좀.
“그래, 나도 궁금했다고. 자, 시작해 볼까?”
[환영합니다. 박교수님. 세상, 그 너머의 세상을 위해. 게드로이츠의 게임에 접속하시겠습니까?]익숙한 시스템 음성을 들으며, 교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접속한다.”
화아아악-!
눈부신 빛이 다가오자, 교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고통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망캐 교수로 돌아갈 시간이다.
***
삐익-! 삐익-! 삐익-! 삐익-!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미친 듯이 울려대는 시스템 경고음과 빨간 불빛.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기화는 분명히 다 끝났는데, 몸이 움직이지도 않고, 오감도 전부 마비된 상태. 지금 보이고 들리는 것은 시스템 알림뿐이다.’
지금도 작게 최소화해둔 시스템 창 밑에 셀 수 없이 많은 붉은색 점과, 드문드문 섞인 푸른색 점이 점멸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부터 들어볼까.’
교수는 맛있는 것부터 먹는 타입이었다.
띠링-!
[정보 업데이트 – 명예 획득 [임전무퇴의 지휘관] : 당신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병력을 이끌고 전장의 수세를 극복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으며, 당신의 판단력과 용기를 칭송합니다! / 카리스마 +2 , 히로익 포인트(heroic point) +10]‘좋아. 스텟에 히로익 포인트까지. 일단 중박 하나 건졌고.’
히로익 포인트는, 간단히 말하면 이 GG의 세계가 얼마나 플레이어를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지표다.
GG의 시스템은 거대한 하나의 룰에 의하여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환경이 개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병렬적으로 움직이는 다중 복합….어….뭐시기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A라는 NPC는 다른 프로그램을 따르는게 아니라, A라는 컴퓨터 안에 A만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워진 존재라는 소리다.
그래서 이 세계의 모든 환경과 규칙은 NPC들이 인식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대부분의 NPC들이 ‘해는 동쪽에서 뜬다.’ 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뜬 것이고, ‘바다는 짠맛이 난다.’ 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바다에 염분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NPC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히로익 포인트는 바로 그런 부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해, NPC가 얼마나 플레이어를 영웅적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표.
영웅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 소문이 퍼질 때 쌓이며, 많이 쌓이면 스텟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도 해주는, 흔히 영화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 보정]의 힘이 바로 히로익 포인트다.
그가 영웅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영웅은 죽지 않는다는 믿음에 의거하여, 실제로도 쉽게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10포인트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지만, 이건 극 후반까지 꾸준히 쌓아야 하는 거니까.’
일단 첫 번째는 스트라이크. 아주 좋고.
띠링-!
[정보 업데이트 : 히어로 유닛, 샤를롯 데 아가트와 우호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 ‘살아만 남아다오. 같이 전장에 선 모든 이를 내 손으로 베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네 이야기를 들었노라. 제발 버텨라, 신전에 도착할 때까지만, 제발!’ / 현재 관계 : 목숨을 나눈 전우]‘예에에에에스!’
샤를롯 데 아가트. 로드릭 제 1기사이자 전장의 태양이라는 이명과 함께 클리어까지 같이 가는 동료로 가장 선호되는 동료 중 하나.
철벽녀라고 불릴 만큼 우호 관계를 만드는 게 어렵지만, 딱 하나, 이 뼛속까지 기사인 아가씨를 혹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전우애다.
[목숨을 나눈 전우] 정도면, 정상적으로 잘 진행하면 동료 영입까지 노려볼 수 있는 상당히 친밀한 관계다.‘이것도 너무 훌륭하고. 다음…..? 다음 없어?’
없다. 더는 파란 메시지가 없다.
‘뭐여. 참전 보상은. 지휘 보상은! 용병 승급 심사 알림은! 전부 다 어디 갔어!’
특이한건 다 받았는데, 정작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보상이 하나도 안 떴다.
시스템 창 아래쪽에 시뻘겋게 점멸하는 메시지들을 보니,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확인해야 될 거, 한 번에 확인하자.’
교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빨간색으로 점멸하는 메시지를 전부 긁어서 가져왔다.
– 정보 업데이트 :
[경고 – ‘뮤테이션 블러드’ 감염률 94%(외상으로 인해 지연중)] [경고 – 오른 손목, 왼 손목, 오른 발목, 왼 발목, 오른쪽 무릎, 왼쪽 무릎, 허리, 목 구속 중] [경고 – 혈액 손실 30% (뮤테이션 블러드에 의한 강화중)] [부상 – 오른쪽 발 절단(뮤테이션 블러드 재생 강화에 의해 재생중, 32%)] [부상 – 척추 손상(신경 마비됨. 뮤테이션 블러드 재생 강화에 의해 재생중 45%)] [부상 – 오른쪽, 왼쪽 안구 파손(뮤테이션 블러드 재생 강화에 의해 재생중, 좌 99% 우 42%)] [부상 – 간 45% 손실(뮤테이션 블러드 재생 강화에 의해 재생중, 88%)] [새 특성! 둔한 신경 획득 : 당신의 몸은 너무나도 많은 고통과 자극에 노출되었습니다. 전신의 신경 역치는 말도 안 되게 높아졌으며, 이제 당신은 작은 고통 정도는 무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스킬 : 고통감소(약) , 인지 -1] [강제 전직 – 마법사의 실험체 : 어떠한 이유로, 당신은 사악한 마법사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주의하십시오! 그는 당신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뮤테이션 특성 획득 – 극단적 재생력(유리몸 + 뮤테이션 블러드 재생 강화 + 뮤테이션 블러드 표피 강화) : 잘 다치지만 쉽게 회복하는 당신의 몸에 뮤테이션 블러드의 특성이 침투하였습니다. 당신의 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회복하지만, 여전히 잘 부스러집니다. / 내구도 120 고정 / 자연 회복력 5000% 증가 / 위기 시 혈액을 사용하여 재생력 x 4 / 과도한 재생으로 소진된 혈액을 보충하지 않을 시 사망] [뮤테이션 특성 획득 – 어머니의 부름 : 당신의 머리에 뮤테이션 블러드의 세포가 침투했습니다. 의식 저편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부름이 들려옵니다. 당신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특성 대립! 어머니의 부름 VS 정신 쇠약 : ‘이리 오너라, 아이야. 네 몸을 바쳐라’,’뭐지?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수상하다! 위험해!’ / 당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심어진 의심은 모든 신경을 장악한 뮤트 세포의 유혹마저 의심합니다. 특성 ‘어머니의 부름’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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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두야.
이게 대체 뭐람.
자, 정리해보자고. 대충 많이 다쳤어. 어디 잘리고, 어디 부러지고, 어디 터지고, 묶이고. 난리가 났군. 강제로 바뀐 직업, [마법사의 실험체]와 관련이 있겠지.
‘현실 시간으로 145시간. 게임 시간으로는 725시간. 약 한 달. 그 한 달 동안 내 몸은 감염률 93%를 유지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염은 내 뇌를 약간 침투한 상태에서 멈춰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뮤테이션 특성. 몸은 이미 뮤트 세포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다.
‘척추 손상, 구속은 자의적으로 움직이려는 뮤트세포의 움직임을 막으려는 것이겠지. 그것들은 뇌를 확보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움직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결론. 나는 마법사의 실험체가 됐다. 실험주제는, 아마 뮤트에 감염된 인간에 관한 것. 제기랄.
스륵, 투두둑 톡!
“아윽, 으아아…”
재생이 끝난 오른쪽 눈이 차오르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드디어 시야가 돌아왔다.
‘정보! 뭐든 좋으니 현 상황을 유추할….수……’
곧바로 주변을 돌아본 교수는, 그 기절 할 것 같은 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친…..자식들….”
핏자국이 붉다 못해 검어질 정도로 두껍게 눌러붙은 방은, 녹슨 줄톱과 단검, 같은 도구들과 수많은 피에 젖은 양피지를 제외하고는 한가지 물건으로 거의 대부분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바로, 교수 자신의 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재생되고 있는 그의 몸의 일부분 들이, 모든 벽과 찬장, 책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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