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1
나-ㄹ을 세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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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앙- 따아앙-
떼카는 기다렸다. 그 동양인이 비참하게 추락하기를.
이곳의 주민과 같이 느슨한 눈과 풀어진 걸음으로. 지난밤의 눈물과 침 자국조차 지우지 못한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그건 마약중독자의 음침한 기대와도 같았다. 갓잡은 새의 심장처럼 팔딱거리는 저 동양인이, 우리와 같은 높이로 추락하길 기대하는 추악한 질투심의 발로.
자기 잠자리를 쳐다본 것만으로도 짐승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이 널린곳이니, 그가 기댈 곳은 그의 하수구 밖에 없겠지. 그는 이 자리에서,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절망하며, 그렇게 물들어가리라. 아마, 그 장면을 누구보다 빨리,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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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아앙- 따앙-
“어어이! 워커홀릭! 밥 구해왔다 밥!”
“….”
“에라이, 이게 집이야 돼지우리야!”
활짝!
“으….”
“하루 종일 전기화로 앞에 있는 놈이 눈부신 척은. 먹고하라고!”
하지만. 그 기다림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한서호라는 동양인을 처음만난 날로부터, 3개월.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만 봐왔던 떼카에게 있어 한서호의 생존의지는 불가사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첫 이틀. 그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조용히 시키는것과 시체를 치우는 것. 둘 중 어느것이 더 귀찮을지 고민할 만큼 그는 혼란한 모습을 보였다. 전기를 연결할 콘센트가 없다는 말에 시시각각 닳아가는 노트북 배터리를 닦달하며, 알고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외부에 연락을 시도하는 그는 놀란 암탉 같이 보일 정도였다.
일주일.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거리를 쏘다니다, 누군가의 몽둥이에 가격당해 속옷 한 올 남기지 못하고 탈탈 털려서 울며 돌아온 뒤로는 잠잠해질 줄 알았으나, 다음날 아침이 되자 기름 닦는 데 쓰는 천을 두르고 또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 주. 약쟁이와 시체밖에 없는 크라콜란지아 거리에서 제정신 가진 놈이라는 포지션을 이용해 선 바깥쪽 카르텔과 연락책? 심부름꾼? 비슷한 일거리를 얻었다며, 푼돈이라도 모아 사람을 사서 바깥에 편지를 보내기만 하면 한국 대사관에서 자길 구출하러 올 것이라 신이 나있던 서호. 내게 신세 진 게 있으니 나갈 때 같이 나가자고 희희덕거렸다.
한 달. 그의 살아있음을 질투한 누군가가 서호를 카르텔의 조직원으로 추천한 날. 동양인 가이드는 동양인 관광객 납치에 효과적이며, 카르텔은 그 의견이 일리있다 여겨 그에게 조직의 일원이 될 것을 권유하고 서호가 그것을 거절한 날.
동시에, 한 달 만에 그의 하수구가 조용해진 날. 헐떡거리며 달려온 마테오가 ‘네 친구가 카르텔에 잡혀갔다!’라고 했을 때, 그의 표현 어디에서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음을 떠올린 날. 망치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불안에 떨던 그가, 그 한마디에 새벽의 거리로 뛰어나가게 됐으며. 카르텔을 무시한 대가로 눈알 하나를 뽑히고 오른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잘린 채 하수도에 버려진 그를 발견하게 된 날.
모든 것이 이곳 크라콜란지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으며, 이곳 사람들이 약에 의지해 현실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겪고도 서호는 물들지 않았으며, 탈출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으으… 으으으… 눈이…. 눈이….’
‘모르핀은 밖에서도 진통제로 쓰는 약이다.’
‘안 한다고 씨발롬아…. 여기라서 안해…. 병원가서 처방 받아와…. 내 눈….개 같은 양아치 새끼들이 내 눈을…. 으으으으….’
두 달. 회복한 그는 그의 방식으로 이 거리에 녹아들었다. 카르텔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적당히 더럽게 구는 방법을 익혔으며, 비가 오는 날이면 미리 준비한 병에 든 편지를 하수구에 띄워보냈다. 시체나 다름없는 약쟁이들 사이에서 나름의 관계를 구축하고, 카르텔의 ‘총알’ 로 식칼 한자루와 함께 바깥에 던져졌다가 운좋게 돌아온 사람들에게 오고가며 본 것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매일 같이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그것을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저 녀석도 중독자야.’
떼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가진 모든 것과 가지고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던 것까지 약에 중독되어 잃어버렸다면, 녀석은 삶에 중독된 것이다. 원인도, 이유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이 이유가되어 저렇게까지 발버둥치다니.
생전 처음 보는 ‘생기 넘치는 인간’을 구경하는 것은 떼카의 작은 취미가 되었다. 결국 언젠간 추락할 것이라 여기면서도, 이곳 크라콜란지아에 저런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으면, 세상이 포기한 이 거리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오늘도 얘기 안해줄 거야?”
“밥은.”
“아니, 오늘은 들어야겠다! 사실 내가 모르는 것도 아냐! 떼카, 테카! 사람들이 그래 부르더만! 왜 통성명이나 하자는걸 그렇게 거부하는데!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기자였다가, 지금은 눈병신 손병신에 카르텔 심부름하는 한서호 입니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자, 대답!”
“….안먹을 거면 난 들어간다.”
“아오, 화딱질나! 내가 오기 때문에서라도 니 입에서 나오는 이름을 듣고 만다!”
“….없어, 이름.”
“이런 개, 어후! 그래요, 참으로 대단하신 거짓말입니다! 내가 니놈 하수구에 3개월을 빌붙어먹었는데, 이제 와서 이름이 없으시다! 아이고, 더러워서 진짜 내가-”
“진짜. 없어. 이름.”
“….이 인간이 실없는 소리를 몇 번씩 하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진짜?”
“….밥 먹어.”
그래서, 떼카는 그의 이름을 서호에게 밝히기 싫었다.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더러운 오물이 발에 묻은 것을 털어내고 싶은 심정이라 해야하나.
깡통. 길가에 굴러다니다, 누군가의 발에 뻥 하고 차이면 시끄럽게 울며 굴러갈 것 같은 이름.
이 감정이 열등감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는 데 제법 오래 걸렸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바깥의 때가 빠지고 물들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 서호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물었던 순간. 지금까지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겼던 그의 마음에 작은 수치심이 생겨난 것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깡통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죽어도 싫었던 떼카는, 저 동양인 룸메이트가 이름을 물어올 때마다 못 들은 척 묵살하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이름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저 동양인이 눈알을 생으로 뽑힌 고통 속에서도 끝내 모르핀을 거부할 만큼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낮부터 할 일도 다 제쳐두고 온 것을 보니, 뭐라도 던져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골이 울리게 물어댈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떼카…. 하긴, 깡통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름이라 하긴 좀 그렇지. 그럼, 원래 이름은 없었고?”
“….이 거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대부분 이름같은 거 없어. 남한테 불릴 이유가 없으니까. 너, 약쟁이, 손님. 인간이 아니라 약을 소비하는 살덩이나 마찬가지야, 여기 사람들은. 나이나 성별을 구분할 필요도 없는데, 이름 같은 게 필요할 리가 없지.”
“….그으래?”
우적!
서호는 어렵사리 구해온 짬통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물고, 제법 익숙해진 시큼한 맛에 오만상을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그거, 운 한번 좋은 친구로군.”
“….내가?”
“그래. 난 내 이름이 되게 싫었거든. 서호. 서호. 뭔가 여자애 이름 같잖아. 머리가 좀 커서 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세상 모두가 내 이름을 서호라고 못박아 둔 뒤였고. 그런 면에서 너는 운이 좋은 거지. 다 큰 다음에 직접 자기 이름을 정할 수 있게 됐으며, 다른 약쟁이들이랑은 달리 너랑 통성명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는 놈도 있으니까. 이게 운이 좋은 게 아니면 뭐냐?”
운이 좋다. 별로 애쓰지 않았는데도 좋은 일이 생겼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다. 떼카. 깡통. 몇 달 전부터 부끄러워진 이름. 딱히 부르는 사람도 없으니 내 멋대로 바꾼다 한들 아무 일도 없겠지만.
적어도 눈앞의 이 동양인은. 아직 염증에서 흘러내린 물이 눈을 감싼 붕대에 흥건한데도 히죽거리는 이 녀석에게는 지금부터 그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떼카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의 호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름. 지금까지 들었던 이름 중 가장 좋아보이는 이름. 가장 기분좋은 단어.
“….달러.”
“지랄하지 말고.”
“으음….카포.”
“카포? 카포오오? 너 휑하게 비어버린 내 눈앞에서 정말 ‘내 이름은 카포(Capo,대장/보스)다.’ 라고 말할 셈이냐? 응? 왜, 아예 돈(Don)이나 카포 디 카피(두목 중의 두목)라고 하지? 여기 왔을 때 너한테 개 쳐맞은 거 오늘 설욕 한번 해볼까?”
“으으음….”
떼카는 축축해져가는 그 몫의 샌드위치를 만지작거리며 약에 절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려보았다. 이름. 내 것. 누군가 나를 불렀을 때,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칭할 수 있는 단어.
“….모르겠다. 그런건 생각해본 적 없어.”
“으, 알겠으니까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 하지마라. 노상 음울한 표정으로 비웃기나 하던 놈이 그러니까 진짜 한 대 때리고 싶어지잖아. 이름도 없다. 이름을 지을 줄도 모르겠다. 음…. 그럼,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좋을 대로.”
와삭, 우적! 우웨윽, 우적우적우적!
이 동양인은 뭘 하든 역동적으로 보인다고 떼카가 생각하는 사이. 뭔가 쉼없이 웅얼거리며 제 몫의 샌드위치를 목구멍 안으로 욱여넣은 서호는 별안간 손가락을 딱, 튕기며 샌드위치가 가득 든 입을 열었다.
“우허으흐에!”
쿨럭 쿨럭, 켁! 꿀꺽-
“어후, 으, 맛없어. 천류제(天流帝)! 천류제 어때!”
“….차우루지에?”
“아익, 그렇게 발음하니까 겁나 저렴하고 짝퉁같잖아! 아 해봐, 아! 그래! 혀의 옆구리가 볼에 닿게 펴! 혀를 펴고, 똑바로 따라해! 천! 류! 제!”
“츠언….리우….즈에….”
“그래! 천류제! 하늘의 흐름을 관장하는 제왕! 캬, 나 이런 이름 꼭 한번 가져보고 싶었거든! 와 시바, 존나 멋있어! 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으면, 남들이 덕수, 지미, 케일럼 그렇게 얘기할 때 너는 ‘천류제요’ 하는 거다! 야! 돈 내놔! 이건 돈 받아도 되겠다!”
“천….류….제….”
떼카는, 아니 천류제는 21년 만에 처음 생긴 그의 이름을 어렵사리 혀 위로 굴려보았다.
발음하기 어려운 동양의 이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부끄러운 의미. 너무나도 이질적이라, 이제 이 거리의 다른 주민들과 명확히 구분되어버린 그의 명칭.
“천류제! 음, 쌈마이 하면서도 쪽팔릴 정도로 진중해보이는 게, 딱 내취향이군! 씹을수록 맛이 나! 안 되겠다. 나도 여기서 나가면 바로 개명한다! 한, 한…. 한천마! 한비광! 한니발!…. [브라질 상파울루의 마약굴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한니발입니다. 한씨예요.] 크으으으! 죽인다! 돌아가면 온갖 언론이 기적의 생환이며 브라질의 온상이라고 보도 경쟁에 나설 텐데, 미리 좀 바꿔놓을걸!”
“….힉.”
억울하다는 듯 하늘을 향해 주먹까지 흔들어보이는 그를 보며. 손가락이 셋밖에 남지않은 그 주먹을 보며 천류제는 폐를 쥐어짜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고 말았다.
“….힉, 히극, 힉-”
“웃어?”
“히힉, 힉, 히윽 힉! 흐-”
“뭐이 씨…. 웃는 거야 사레들린 거야.”
모르겠다. 그도 그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이게 웃음이라면 지금까지 그가 알고있는 웃음과는 다른 종류의 웃음일 것이다. 의도가 있거나 뭔가를 기대하며 슬그머니 떠오르는 웃음이 아닌, 왜 웃는지도 모르는데 멈추지 않고 터져나오는 짧은 숨의 연속.
“어우, 아우 듣기 거북해. 야, 뱉어! 참지 말고, 뱉어! 후! 하!”
철썩!
그의 마른 등에 날아드는 면적이 조금 부족한 손바닥. 막힌 수로를 뚫어내듯, 두드린 쇠붙이의 슬래그를 긁어내듯 시원하게 날아든 그의 손바닥에 천류제는 속을 간질이던 숨을 시원하게 뱉어낼 수 있었다.
“하하하…. 그흑, 하흐흐흐, 하하하하!”
뭐가 그리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뭐가 그리 우스운지도 모르겠지만 천류제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물들었다.’
지난 3개월. 한서호라는 인간을 볼 때마다 머리에 그려지는 순간이 있었다.
저열한 기대감으로. 쇠창살이 튼튼할수록 빠르게 단념하는 죄수처럼,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저 외지의 멍청이가 그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를 기다리며.
새장에 머리를 박아댄 끝에 골이 갈라진 파랑새처럼, 크라콜란지아의 현실을 마주한 한서호가 절망 속에 울부짖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오물을 구분할 수 없는 이 진창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은 끝에, 서호는 하나뿐인 눈으로도 처음 그를 만나던 순간처럼 웃고 있었으며.
죽은 듯 살아온 그의 삶을 세상의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천류제는, 사람이 사람을 존경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하학, 콜록! 하흑, 학! 하하하하!”
“거 허파에 구멍이라도 났나. 어이, 이제 한번 해봐.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한서호입니다~ 병신같이 이 쓰레기장에 제 발로 기어들어온 또라이고, 너 새끼 이름 한번 못들어본 친구예요~”
천류제는 받은 숨을 내뱉으며, 이제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는 서호와 마주했다.
“크라콜란지아의…. 천류제….입니다. 칼을…. 만듭니다.”
“조오오오오아!!!! 여기 와서 생긴 소원 1호 성취했다! 삼고초려도 아니고 삼백고초려 끝에 겨우 이름 세글자를 들을 수 있게 되다니! 뉘신지 몰라도 어마무시하게 대단하신 분인가봅니다! 천류제씨! 이름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녀석이라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어디가냐?”
“칼 만들러.”
“벌써? 샌드위치 안먹으면 내가 먹는다?”
“….이름 값이다.”
“이게? 겨우?”
끄덕.
“마음에 들었다. 이름.”
천류제는 그의 하수도를 가린 천막을 걷고, 화로에 전원을 올렸다.
이름이 생겨서 그런가. 찐득한 가레가 엉킨 것 같은 그의 속에 서호의 불이 옮겨붙어서 그런가.
마약이 만들어낸 병적인 식욕도, 머리를 속부터 긁어내는 가려움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필요하겠지.’
서호는 나갈때까지 무언가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락책 손에 쥐어지는 보수라고 해봐야, 더 먹었다간 속이 썩어버릴 것 같은 쓰레기 샌드위치를 사는 게 고작인 정도.
하지만, 그의 칼은 마피아 사이에서 제법 비싸게 팔린다고 들었다.
지금까진 배터리 값만 되면 칼 값으로 얼마를 쳐주든 상관 없었지만, 앞으로는 계산을 좀 해볼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저 쇠라면 환장하기는…. 하면서 들어봐라. 이번엔 진짜 괜찮은 정보가 들어왔는데, 브라질 정부에서 되게 불안한 신약 실험의 대상으로 부랑자들을 끌어모은다더라고. 크라콜란지아도 그 목록에 들어가있던 것 같던데, 잘하면 바깥 사람들이랑 접촉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임상실험이라봤자 여기 샌드위치보다 더 독하겠냐? 한방 맞고, 의료진 사이로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전화 한통만 하게 해달라고 하면….”
따앙-
따아앙-!
오늘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수상한 정보를 풀어내는 서호의 목소리 사이로, 천류제의 망치소리가 하수도에 울려퍼졌다.
나가고싶다. 어쩌면, 저렇게 환하게 빛나는 서호같은 사람이 아니라. 태생부터 쓰레기장에서 나고 자란 그와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도 저 바깥 세상에 있다면.
‘나가서, 보고싶다.’
그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그정도는 꿈꿔도 되는 것이 아닐까.
천류제는, 저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한번쯤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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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화르르륵!
[상파울루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지금 크라콜란지아 인근에 대단히 치명적인 가스가 퍼지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인근에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지금 치명적이며, 폭발 위험이 있는 가스가-]“콜록 콜록! 시발…. 뭐가 가스고, 뭐가 대피야…. 개새끼들이.”
“서호, 한서호!”
“류제….냐…. 사지 멀쩡한 게…. 역시 운 좋은 놈은….으으으윽….”
그르륵, 그륵-
꿀럭 꿀럭-
“해….버려. 더 늦기….전에.”
“….”
철컥.
정확히 78시간 뒤. 형편없이 일그러진 서호의 목에 칼을 밀어넣기 전까지는. 그것이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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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류제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