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2
나-ㄹ을 세우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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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아앙-
총성. 천류제는 갑작스런 소음에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손에 들고 있는 잡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총성 정도야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니까. 누군가 화가 났고, 누군가 죽었겠지.
그의 관심은 흔한 죽음보다 손에 들린 싸구려 잡지에 집중되어있었다.
거리 외곽에서 구한 잡지. 양복이니, 시계니 하는 전혀 관심 없는 내용의 잡지였지만 천류제는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눈에 담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제 막 뭔가 간절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참이었다. 바깥세상은 이 쓰레기 같은 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화려할 것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놈은 털리거나 비명횡사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뭐라도 좀 알아두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타아앙-
그가 이상하게 여자가 있는 부분만 뜯어진 잡지를 내려놓고 커다란 설산이 표지로 나온 다음 잡지로 손을 뻗는 순간, 두 번째 총성이 들렸다.
두 번의 총성. 두 발의 총알. 이건 좋지 않다. 차라리 한 번에 총알을 와락 쏟아냈으면 누가 누굴 죽이고 확인사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텀을 두고 총성이 들린다는 것은 총격전이 일어났다고 봐도 좋다.
‘카르텔끼리 싸움이라도 붙었나.’
천류제는 잡지를 내려놓고 그의 하수도를 가린 천을 살짝 걷었다. 카르텔 분쟁이 근처에서 일어났다면 잠시 자리를 피해있을 생각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약에 취해 될 대로 되라고, 죽으면 죽는 거지- 같은 생각으로 쇠를 두드렸겠지만. 살아서 해보고 싶어진 게 있는 지금은 위험을 피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들었다.
하지만. 그가 천을 걷고 고개를 내밀었을 때.
“으, 으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 이 약쟁이 새끼야!”
“끄그으으-아아아악! 캬아아악!”
“아아악! 떼어줘! 누가 이 미친놈 좀 떼어줘! 아아아아악!”
타앙! 타탕! 타아앙!
“아니야! 난 그 빌어먹을 약인지 실험인지에 참여한 적 없어! 현금 만진 놈들이 있다니까 그놈들이나 노려볼까 해서-”
타아앙-!
풀썩.
“실험지역 14. 대로변 탈출 인원 정리. 이동한다.”
작게 들어오는 지상의 빛 사이로 뛰어다니는 수많은 발과 목소리. 쓰러진 남자의 이마와 광대를 무참하게 물어뜯는 미친 사람들과, 마구잡이로 사람을 쏴대는 이상한 옷을 입은 군인들뿐이었다.
‘사람들이 미쳤다. 대규모 총격전. 위험해.’
밖으로 나가는 길에서 슬그머니 돌아온 천류제는 화로의 전원을 내리고 하수구 안으로 피할 생각이었다. 마약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린 뇌라도 나가면 죽는다는 것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용하게 움직이는 그의 발끝에 걸린 무언가를 보았을 때, 천류제는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크라콜란지아 외곽 쓰레기통을 전부 뒤져가며. 더러는 드럼통에 불을 피우는 이들의 불쏘시개를 유심히 살펴보며 구해온 바깥의 잡지들.
어둡고 칙칙한 하수도 속, 화려한 유채색이 선명한 잡지는 마치 그에게 방향을 묻는 듯하였다.
정말 빛 한 줌 없는 하수도 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냐고. 혹시, 뭔가 잊어버린 것 없냐고.
“으으음….”
약기운이 떨어지면 으레 들리는 환청이다. 하필 이런 때에.
천류제는 눈앞에 휘청이듯 출렁거리는 하수도의 입구와 밖으로 나가는 출구. 그리고 하수도 속 작은 불빛 속에 그 화려한 색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잡지를 몇 번이고,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달칵.
그의 선택은, 하수도 한쪽 구석에 기대어 놓은 칼 두 자루를 집어드는 것이었다.
“….한서호.”
입안 가득한 샌드위치 파편을 튀겨대며 정부의 임상실험에 열변을 토하던, 지금쯤 밖에 있을 그 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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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팍 찰팍 찰팍 찰팍
“허억, 허억!”
천둥 같은 총성이 쉼 없이 하수도를 울리며 고막을 때렸다. 머리를 울리는 끔찍한 두통 속에 잡음 섞인 몇 마디가 그들의 발밑을 타고 하수도로 흘러들어왔다.
치익-
[C지역, 소개 및 격리 완료했습니다.]치익-
[D지구에 샘플 다수 발생. 곧장 진입해서 지원할 것.] [확인.]간결한 대화와 신속하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발소리.
‘뭔가…. 막고 있어? 하지만 하수도는 이렇게 비워두고…. 카르텔이나 갱이 아닌가? 바깥사람?’
천류제는 서호에게 처음 하수도 길을 보여줬을 때 그가 감탄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수도라 하면 땅에 묻힌 토관 같은 것을 생각했지, 이렇게 허리 펴고 다닐 정도로 큰길을 떠올리진 못했다고.
외지 사람은 땅 거죽 아래의 길이 낯선 것 같았다.
‘카르텔이나 갱의 전투였다면 녀석들은 제일 먼저 하수도 길을 틀어막았겠지.’
바깥의 총 든 놈들이 땅 밑에 기어들어올 일이 없던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으으, 으으으….”
하수도의 희미한 빛 속에 누군가 웅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오물에 얼룩진 옷. 마르고 창백한 얼굴. 침 자국.
‘약쟁이다.’
역시, 이곳 사람답게 하수도부터 찾아 도망친 사람들이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소란이 일면 무시하거나, 흐느적거리며 어두운 곳으로 파고드는 것이 이곳 사람들이었으니까.
철컥.
그는 칼을 들었고, 저들은 많이 지쳐 보였다. 거리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동양인의 행방을 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쓰러진 남자가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달려들 때까지, 천류제는 서호가 그가 했던 조언에 따라 하수구에 뛰어들었을까. 오직 그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카아아악! 으으으으으으!”
비쩍 마른 몸이라곤 믿을 수 없는 힘. 풀이 죽어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핏발이 선 눈을 번뜩이며 시커멓게 썩은 이빨을 들이미는 마약 중독자.
그 힘에 하수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천류제는 그를 향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칼은 어디로 갔는지 놓쳐버린 뒤였다.
망치를 휘두르며 단련된 팔이 중독자의 코를 부수고 썩은 이빨을 몽창 부러뜨렸지만, 멧돼지처럼 파고든 중독자의 입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깨물었다.
“으윽, 으으으으!”
천류제는 왼손으로 그것의 이마를 밀어내며, 오른손은 필사적으로 하수도의 얕은 물 속을 더듬었다. 제발. 제발…!
그리고. 부서진 이빨의 날카로운 부분이 살을 뚫고, 말도 안 되는 치악력이 그의 어깨뼈를 부술 듯 파고드는 순간.
-푸우욱!
구정물의 미끈한 감촉 속에 잡히는 단단한 감각에, 앞뒤 볼 것 없이 휘둘러진 천류제의 검이 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우드득-
“으으으으!”
어깨가 으스러지는 느낌에, 다시 한번 휘둘렀다.
촤아악!
배를 찌르면 사람은 힘이 빠진다. 의지의 영역을 떠나 생물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건만. 살을 베어내는 선명한 감촉 속에서도 놈은 떨어지지 않았다.
“으으윽, 으아아아아악!”
푸욱, 푸확! 서걱! 카악!
가슴. 복부. 등허리. 목.
고통에 비례하듯 필사적으로 휘둘러진 천류제의 칼이 그것을 난자하고, 피투성이가 된 그것의 목에 역수로 잡은 칼이 쑥 파고든 순간.
“흐으으으…. 흐으으….”
뚫린 폐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던 그것이 마침내 힘을 잃었다.
탱, 탱그랑!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어깨를 으스러뜨리던 괴물의 손에서 자유로워진 천류제는, 가슴을 부술 듯한 압박 속에 갇혀있던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어깨에 박힌 괴물의 머리를 밀어내었다.
종종, 약에 취해 이상할 만큼 날뛰던 녀석들을 보긴 했지만. 작은 과도에 찔렸으면 몰라도 80cm에 육박하는 대형 칼날에 몇 번이나 쑤셔지고도 괴력을 발휘할 정도는 아니었다.
“으윽. 으으으….”
찢어진 어깨 사이로 놈의 피가 들어왔는지, 욱씬거리고 결리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려 해도 마약에 상한 뇌는 깊은 생각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딱 그 정도까지.
나가고 싶다.
밖은 혼란하다.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왜 싫지? 생각이 힘들다. 바닥이 파도치듯 출렁이고, 머리에 열은 오르고, 어깨는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한서호.”
아, 동양인. 문득, 고장 난 머릿속에서 그가 잡지를 읽는 행위 자체를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오늘 저녁. 임상실험을 받으며 짜놓은 계획을 실행하고, 겸사겸사 실험 대가로 받은 돈으로 좀 먹을만한 것을 사오겠다고 히히덕거리던 녀석.
천류제는 잡지에서 발견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 녀석에게 묻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친분을 쌓은 적이 없으므로, 그가 서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현할 수 없었다.
친구인가? 한서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동등한 존재로 보기엔 그와 서호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그가 하수구를 기는 벌레였다면 한서호는 태양을 물어 옮긴다는 전설 속 새와 같이 느껴졌다.
성애인가? 쓰레기 같은 삶 속에 여체를 탐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감정은 쇳조각 한 톨 만큼도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한서호에게 그런 것인가를 물었을 때 그가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휘두른 것을 보니 그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경외. 아마 이것과 가장 비슷하리라. 암굴에 살던 이가 떠오르는 태양을 처음 보고, 그날 이후로 매일 새벽의 지평선을 보며 느끼는 감정. 존재에 대한 찬미, 혹은 숭배. 그것이 그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이며, 가망성이 없다 여겼던 자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
그래. 나의 눈에, 인간 한서호는 경외할만한 인간이었다. 그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새 삶을 기대할 만큼. 경외 받아 마땅한 인간.
천류제는, 떨어트렸던 칼을 다시 집어들었다.
바깥 사람이라고 다 같지는 않으리라. 이곳과 비교할 수 없는 낙원이겠지만, 약쟁이들이 차이가 있듯 그곳 사람들도 차이가 있으리라.
그러니, 녀석에게 배우고 싶었다. 녀석이 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배우면, 태생부터 글러 먹은 그도 조금은 물들지 않을까. 저 변치 않는 생명력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천류제의 발걸음을 돌렸다. 거리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서, 그를 덮친 무언가와 비슷한 이들의 신음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살아있을 것이다. 그토록 대단한 존재가. 이 쓰레기장에서도 빛을 발하던 존재가 그리 허무하게 사라질 리 없다. 이곳의 누구보다 삶의 빛을 간직한 이였으니,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죽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한서호여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기이한 열기 속에 마비되어가는 그의 발끝을 움직였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간질일수록 그는 힘껏 칼을 휘둘렀다.
약기운을 몰아내듯, 쇠를 내리쳐 어지러운 머리를 비우듯.
서걱-
스가악!
천류제는, 그들의 피를 뒤집어쓰며 하수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하수도의 구석. 맨홀 뚜껑을 채 닫지도 못해 날카로운 총성이 귀를 찌르는 곳에서.
“으으으…. 으극, 그으으으….”
불행히도. 찾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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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앙- 투타타타타타- 타앙-
밖에선 총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고, 하수도는 제 역할을 하듯, 쉼 없이 흘러든 그것을 받아들여 빨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시체를 끌어가듯 죽 늘어진 핏자국 끝에 그가 있었다.
“한서호.”
“으극, 끄윽…. 쿨럭!”
‘….살아있을 수 없다.’
죽어가는 중이라는 표현조차 과분할 것이다.
형편없이 찢겨나간 상의 아래, 총탄에 비틀려 찢어진 상체가 보였다. 전에 총에 맞은 사람을 봤는데, 작은 구멍 뒤에 커다랗게 터져나간 자국이 있었다. 앞이 저 정도면 등 쪽은 전기톱으로 갈아낸 것 같을 것이다.
곳곳에 물린 자국, 뜯겨나간 자국도 잔뜩 있었고, 슬라이드가 뒤로 고정된 권총은 그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류제야…. 시발…. 이번엔 환상 아니고…. 진짜 너냐….?”
하지만, 지금껏 그와 같은 상태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뚫고 온 천류제는 그를 알아보는 서호의 목소리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끄르륵…. 망할…. 그냥 임상실험이 아니었…. 쿨럭!”
“말하지 마라. 말하면….”
천류제는 헐떡이는 그의 말을 가로막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말하면 뭐. 상처가 벌어져? 피가 더 나와?
이미 부축하면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손도 못 댈 정도다. 연쇄살인범이 난자한 시체 같은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 많이 다쳤냐.”
“….”
“머리 빼고…. 감각이 없어서 그래…. 눈도 안 보이고…. 많이 다쳤냐고 묻잖아….”
“….”
“….새끼. 또 벙어리 됐네.”
서호는 흐릿한 눈으로, 천류제의 얼굴에 깃든 감정을 읽어내고 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쇳덩이 같던 녀석의 얼굴에 피어오른 끝없는 절망. 아마, 가망 없는 그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겠지.
임상실험에 참가한 것이 실수인 것은 분명했지만, 후회 같은 감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신약 테스트라고는 해도. 그게 도시의 오물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찾아올 정도로 좀 불안한 약이라고는 해도, 사람을 미친 짐승으로 만드는 약일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처음 주사를 맞은 누군가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투약받은 사람들을 둘러싼 군인들이 전기 그물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자마자 빠져나와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을 찾던 서호는 그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피부에서 연기가 날 정도의 전압에도 몇몇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힘으로 군인들을 덮치기 시작했고, 군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실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좀비 영화는…. A급 아니면 쳐다도 안 봤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허리 부근에 있는 게 다 더러운 하수도 바닥에 흘러내리고 척추 언저리만 남은 것 같은데, 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간지러움이 느껴지다니.
뇌 주름을 핥듯 다가오는 기이한 감각과 함께 맑아져오는 정신에, 서호는 자기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서호.”
“거…. 안 어울리는 짓 하지 마라. 가는 사람 미련 남게.”
천류제. 아무 생각 없이 장난처럼 지어줬는데, 그게 또 좋다고 써먹는 이상한 녀석.
최근 흐리멍텅한 눈에 생기가 좀 생겨서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팔자가 어지간히도 사나운 녀석인가보다.
그래도, 당장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걷지도 못하는 저 녀석에게 좀비 같은 게 되어 달려들고, 사이좋게 저승 가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으니까.
“부탁….좀 하자.”
서호는, 제가 움직이는지도 모를 손가락을 들어 천류제가 들고 있는 칼을 가리키고, 시체나 다름없는 자신을 가리켰다.
약 때문에 머리가 좀 고장 나서 그렇지, 멍청한 녀석은 아니니까. 분명 알아듣겠지.
“….싫다.”
“좀.”
“싫다고 했다.”
“야.”
“굳이 왜! 나에게!”
눈썹까지 파르르 떨어대는 천류제의 모습에 서호는 피가래 끓는 소리로 웃었다.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평소에 못 보던 게 잘 보이네.
“이 쓰레기통 속에서도 ‘나’로 살았는데…. 주사 한 방에 그걸 잃어버리면, 좀 그렇잖냐. 내가 좀 그렇네.”
“너는….”
“….해버려. 더 늦기…. 전에.”
움찔.
순간, 시체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서호의 다리가 움직였다. 마지막 한 마디까지 쥐어짜듯 말하는 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 아마도. 다른 약쟁이들과 같이 그도 뭔가에 물들어버린 것이리라.
힘겹게 들어 올린 칼에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그의 우상이 비쳤다.
그 모습에 천류제는 그가 서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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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류제 외전]